‘얼짱’, ‘왕따’
이성구(李聖求) / 서울사대부고
복도를 지나가다 “걔가 우리 반 얼짱이야.”라고 하는 어떤 아이의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를 듣는 순간 나는 당혹스러웠다. ‘얼짱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 의미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과 늘 함께 해 왔던 사람으로 또 국어를 가르친다는 사람으로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아이를 불러 ‘얼짱’이 무어냐고 물어 봤다. 그 아이는 “우리 반에서 한 얼굴하는 애를 말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한 얼굴한다’는 말에 생소함을 느끼며 ‘짱’이라는 말 정도는 익히 알고 있어, 대충 감을 잡고 “아, 너의 반에서 얼굴이 가장 잘 생긴 애를 말하는 거구나.” 하고 되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아이들의 이와 같은 언어의 사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들의 언어 사용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가 하고 생각했다.
‘얼짱’이란 ‘얼굴이 짱이다’라는 문장을 하나의 단어로 바꾼 것이다. 언뜻 듣기에 느낌이 썩 좋은 말은 아니구나 하면서도 매우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기발한 재치의 소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어서 ‘한 얼굴한다’도 생각해 보았다. ‘한 얼굴’이라니? ‘한’과 ‘얼굴’을 붙여야 하나 띄어야 하나 고심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한’의 의미는 ‘한가닥한다’에서의 ‘한’과 유사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얼굴하다’와 같은 새로운 단어의 파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언어 사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비속어니 은어로 치부하여 쓰지 못하게 하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왕따’라는 말이 그 예의 하나이다. ‘왕따’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왕따’라는 말의 어감이 나빠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왕따’라는 말을 쓰지 말고 ‘집단 따돌림’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쓰라는 공문이 접수되었다. 교무 회의 때나 교실에서 ‘왕따’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었고, 굳이 쓰게 될 경우 ‘집단 따돌림’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라는 것이었다. ‘왕따’는 이제 학생들만의 어휘는 아니다. 일간지나 지식인들이 주로 본다는 주간지에서도 ‘왕따’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를 왕따시키기 위한 일련의 시나리오”, “‘왕따 주식’ 여름에 사라.”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성인들의 언어에까지 확산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 현실을 무시하고 ‘왕따’라는 단어 하나를 ‘집단 따돌림’으로 바꾸라는 공문은 행차 뒤에 나팔 부는 격은 아닐까 한다. 공문 정도로 ‘왕따’라는 말이 사라질 리는 없다. 또한 잘 따져 보면 ‘집단 따돌림’이라는 말은 ‘왕따’에 완전히 대체될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이 아이들의 어감을 반영할 수 없다는 점을 접어 두고라도, ‘왕따’의 경우는 집단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왕따’에서 ‘왕’은 ‘가장 심한’이나 ‘최고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런 행동을 하면 나는 우리 반에서 완전히 따 당해.”에서 보듯이 ‘따 당하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왕따’는 ‘따’에 ‘왕’이 덧붙여진 것이며, ‘따’는 ‘따돌림’에서 온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손쉬운 분석을 통해서도 현상만을 나타내는 ‘집단 따돌림’은 ‘왕따’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결국 ‘얼짱’이나 ‘왕따’와 같은 언어 사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아 쓰지 못하게 하려면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적합한 말을 개발해 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