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의 지나친 생략
국어 문화 운동 본부
기자들은 신문 기사를 작성할 때 간결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그 간결함이 지나칠 때가 많다. 어떤 기사를 보면 과감하게 잘라내다 보니 손과 발뿐만 아니라 몸통까지도 잘라내 버린 경우들을 볼 수 있다. ‘간결함’을 너무 받들다 보니 낱말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신문이라는 매체가 우리 국민들의 문자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그 문제점들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문 제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나친 생략은 국어의 기능을 턱없이 떨어트릴 우려가 있다. 제목은 한 기사의 내용을 함축하기도 하고 시각을 통한 잔상 효과도 크기 때문에 일반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신문에서 문장 단위로 제목을 잡지 않고 되도록 구로 제목을 잡으려는 관행과 기사의 양이나 중요도에 따라 시각적인 효과를 더 고려하여 제목을 잡는 관행이 터무니없는 생략을 빚기도 한다.
(2) 개혁 입법도 박차 <한겨레신문, 7. 30.>
(3) 소비재 수입 봇물 <동아일보, 6. 2.>
(4) APEC 투자 박람회 막판 對韓 투자 봇물 <한국, 6. 5.>
(5) 가건물 불구 정상 건물로 분류 <한국일보, 7. 1.>
(6) ‘최선의 선수 조합’ 불구 졸전 일관 <조선일보, 6. 21.>
(7) “밀로셰비치 퇴진” 불길 <한국일보, 7. 8.>
관용적인 표현에서 표현의 일부를 떼어내고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1)과 (2)에서 ‘박차를 가하다’라는 표현을 ‘박차’로만 줄여 썼고, (3)과 (4)에서는 ‘봇물 터지듯이’라는 표현에서 ‘봇물’만 떼어내 썼다. 또 (5)와 (6)에서는 ‘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의 앞뒤를 잘라 놓고 써서 글을 정말로 불구로 만들었다. (7)에서는 ‘불길처럼 번지다’를 불길로 줄여 썼을 뿐만 아니라 직유의 대상이 되는 낱말인 ‘외치는 시위’가 빠져 있다. 이렇게 써놓고 줄여 쓰기 이전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 이는 무리이다.
(9) 모처럼 이름 값 톡톡 <한국일보, 7. 21.>
의미를 가를 수 있는 형태소의 일부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8)과 (9)에서 ‘톡톡’은 ‘톡톡히’를 잘못 쓴 것이다. 접미사 ‘-히’가 붙은 것과 붙지 않은 것은 의미의 차이가 분명한데도 이렇게 생략을 해서 뜻을 혼동하게 하고 있다.
(11) 팬 안중 없는 배구협회 무감각 <한겨레신문, 5. 5.>
(12) 주식 관련 상품 14兆 몰렸다 <조선일보, 5. 8.>
(13) 魯迅 저항 정신도 영향 <조선일보, 6. 10.>
국어에서 토씨의 기능은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10)∼(13)은 신문 제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각각 ‘에’, ‘에도’, ‘에’, ‘에서’가 생략된 예이다. 이렇게 토씨를 아무렇게나 생략하여 우리말의 특성을 훼손시키는 관행은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하다. 잘못 쓴 글들에 익다 보면 우리들이 일반 글을 쓸 때도 자기도 모르게 위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된다.
눈 밝은 이들은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신문이 베껴 쓰는 데에는 굉장히 민첩하다. 심지어 다른 신문이 저지른 잘못까지도 생각 없이 잽싸게 베낀다는 사실에 아연해질 때도 있다. 아름다운 국어를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대중에게 미치는 신문의 큰 영향력을 생각할 때 아름다운 글, 제대로 쓰여진 글을 자주 만나고 싶은 바람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