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

어두의 된소리

최혜원(崔惠媛) / 국립국어연구원

사람이 내는 말소리는 그 종류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소리를 낼 때 입속 어느 곳에서도 걸리는 것이 없이 나오는 모음은 부드럽고 편안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양성 모음과 음성 모음도 그 느낌이 다르다. 따뜻하고 작은 어감의 양성 모음이 어린아이라면 음성 모음은 큰 남자 어른으로 비유할 수 있다. 자음 중에서도 ‘ㄹ’은 명칭(流音) 그대로 물 흐르듯 유연한 느낌을 준다. 또한 예사소리가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면 된소리는 딱딱하고 빡빡한 느낌을 준다. 거센소리는 예사소리에 비해서 격렬하고 거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말소리의 서로 다른 느낌을 이용해서 만든 대표적인 것이 우리말의 의성·의태어라고 할 수 있다. 새끼 오리가 물 위에서 ‘동동’ 뜬다면, 어미 오리는 ‘둥둥’ 그 옆을 떠다닐 것이고, 꼬마가 편지를 ‘꼬깃꼬깃’ 꾸겼다면 삼촌의 주머니에서는 ‘꾸깃꾸깃’한 지폐가 나온다. ‘단단하다’보다 ‘딴딴하다’가 더 단단하게 들리고, ‘똥그라미’가 ‘동그라미’보다 더 동그랗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밖에도 ‘반짝반짝, 번쩍번쩍’, ‘잘각, 잘깍, 짤깍, 잘칵, 찰칵’, ‘조금, 쪼금, 쪼끔’ 등 무수한 말들에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을 조금이라도 더 섬세하게 표현하려는 욕구가 담겨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말에서 된소리가 지나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 ‘딸’, ‘탈’이 소리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장애음이 예사소리·된소리·거센소리의 삼중 대립을 보이는 것이 우리말의 음성학 및 음운론적인 특성이므로 된소리를 써야 할 곳에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쓰지 말아야 할 말에서마저 된소리를 쓴다는 것이다. 이러한 된소리화 경향은 젊은 층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는데 ‘과 사무실’을 ‘꽈 사무실’로, ‘잘리다(切)’를 ‘짤리다’로, ‘수세미’를 ‘쑤세미’로 소리 내는 것 등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예들이다. 이렇게 어두에서 예사소리를 된소리로 내는 일은 말씨를 거칠게 하는 요인이 된다.


“휴일 아침이다. 한바탕 워를 하고 나서 맥주 한잔을 가볍게 하니 몸이 다 운했다. 눈이 저절로 긴다. 딸이 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연필을 너무 게 쥐는 바람에 연필심을 똑 러트렸다. 아들 녀석은 손가락에 시가 들어갔다고 집게로 어 달라고 왔다. 눈물을 찔끔찔끔 짜는 아들에게 나는 “나이가 그까짓 일에 울면 안 되지”라고 말하며 달랬다. 오후에는 머리를 르러 미장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 앞 은 골목에서 슬머리 소년이 나운 개에게 돌을 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잘못된 발음 습관은 말씨를 거칠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어의 철자에까지 영향을 주어 결국에는 한글 맞춤법에 어긋나는 글을 쓰게 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된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 말에서 된소리로 발음하는 부모와 선생님 밑에서 자란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선생님은 계속 ‘힘이 딸리다’라고 불러 주면서 그대로 받아쓴 아이에게 ‘힘이 달리다’를 요구할 수 있을까? 그 선생님이 어느 글에서인가 ‘달리다’를 ‘딸리다’로 잘못 쓰는 경우는 과연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