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어
배 꼽 티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배꼽’은 탯줄을 끊은 자리이다. 탯줄은 모체에서 태아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 그것이 절단된 ‘배꼽’은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한다.
‘배꼽’은 모양새도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그런지 ‘배꼽’은 ‘배꼽시계’, ‘배꼽참외’, ‘배꼽춤’ 등에서 보듯 우스꽝스럽거나 하찮은 것 등을 표현하는 데 자주 이용되고 있다. 요사이는 야하디야한 ‘배꼽티’라는 옷의 명칭에까지 이용되어 ‘배꼽’의 신세는 그야말로 더욱 우스운 꼴이 되었다.
‘배꼽’의 15세기 어형은 ‘ 복’이었다. 이 ‘ 복’은 ‘ ’와 ‘복’이 사이시옷에 의해 연결된 어형이다. ‘ ’는 ‘위장 따위가 들어 있는 가슴과 골반 사이의 부분’〔腹〕을 뜻하며, ‘복’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복판’(사물의 한가운데)의 ‘복’과 같이 ‘가운데’라는 의미를 띠지 않나 한다. 그렇다면 ‘ 복’은 ‘배의 가운데’라는 어원적 의미로 해석된다. ‘배꼽’이 배〔腹〕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5세기의 ‘ 복’은 18세기의 “증수무원록언해”에 ‘ 곱’으로 약간 변해 나온다. ‘복’이 ‘곱’으로 바뀐 것이다. ‘복’이 ‘곱’으로 변한 것은 ‘ㅂ’과 ‘ㄱ’의 교체로 설명된다. 따라서 지금 쓰고 있는 ‘배꼽’은 ‘ 복’에서 ‘ 곱’ 그리고 ‘ 곱’에서 ‘배 ’으로의 변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배꼽’이 ‘ 복’에서 출발한 것이니 형태만 약간 달라졌을 뿐 그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신체의 중심 부분인 ‘배’가 보호되어야 한다면 그 가운데인 ‘배꼽’은 더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코흘리개 시절 “배꼽 보이네!” 또는 “배꼽 내놨네!”라는 놀림 말에 겸연쩍어하던 일이 있었다. 그 겸연쩍음은 단지 자기가 칠칠맞다고 느껴서라기보다 내놓아서는 안 될 부분을 내놓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배꼽’은 탯줄이 끊어진 하찮은 자리이지만 어머니와 나를 이어 주는 생명 줄인 동시에 우주의 기를 체내로 연결하는 길목인데 함부로 내놓고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배꼽의 때’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여성들의 배꼽은 문밖 출입이 잦다. 바로 ‘배꼽티’ 때문이다. ‘배꼽티’는 ‘배꼽을 내놓은 티셔츠’라는 뜻이지만, 기실 그것은 T자 모양의 티셔츠가 아니라 어깨나 목 부위를 깊게 판 속옷에 가깝다. 그러니 ‘배꼽 셔츠’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