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쓰기

법원 판결문의 문장(5)

김광해(金光海) / 서울대학교

법원에서 내리는 판단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헌법재판소에서 내리는 판단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장 작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판단의 무게가 오히려 작문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급 법원에서 고심 끝에 얻어낸 판단이 중차대한 만큼 이를 멋진 문장으로 표현해 내야 되겠다는 압박감이 간명한 문장 쓰기를 훼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장 쓰기란 생각이나 판단을 논리에 맞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연결을 위하여 우리말에는 조사와 어미, 그리고 ‘그러므로, 따라서, 그러나’ 같은 접속어들이 준비되어 있다. 문장을 잘 작성하려면 이러한 논리 표현어들을 정확히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에 보이는 판결문은 이러한 논리 표현어들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글의 정확한 뜻을 알아내려면 한참 읽고 따져보아야만 한다. 사실은 그렇게 하더라도 대강의 뜻이나마 파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많은 경우 글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글을 읽는 사람의 수준이 낮아서라기보다는 쓰는 사람이 글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다음의 판결문도 결국은 작문 능력의 미숙으로 말미암아 글 전체의 투명성, 간명성이 확보되지 못하였다. 예를 들면, 조사, 어미의 자연스러운 용법에 숙달되지 못한 결과 다음과 같은 어색한 구절이 나타난다. 이는 조금만 손을 보면 간단히 아래의 문장처럼 바꿀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의 문장인지 판단해 보기 바란다.

원      문
청구인들 주장과 같은 대통령에 의한 여야 의석분포의 인위적 조작행위로 ∼
수 정 문
청구인들의 주장과 같이 대통령이 여야 의석 분포를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

우선 이 판결문의 문장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의 판결문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998.10.29.96헌마186>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국민의 국회의원 선거권이란 ① 국회의원을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①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하는 권리에 ③ 그치며, ④ 국민과 국회의원은 명령적 위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위임관계에 있으므로, ⑤ 유권자가 ⑥ 설정한 국회의석분포에 국회의원들을 기속시키고자 하는 내용의 ⑦ “국회구성권”이라는 ⑧ 기본권은 오늘날 이해되고 있는 대의제도의 본질에 반하는 ⑨ 것이어서 헌법상 인정될 여지가 없고, ⑩ ⑪ 청구인들 주장과 같은 대통령에 의한 여야 의석분포의 인위적 조작행위로 국민주권주의라든지 복수정당제도가 훼손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⑫ 별론으로 하고 그로 인하여 바로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⑬ 구체적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문 제 점

① 목적어의 자리가 부적절하다. 한참 들여다 보면 저 앞에 있는 ‘국회의원을’이라는 말이 목적어라는 사실이 파악되지만, 자리를 간단히 이동해 줌으로써 그런 독자의 수고를 덜어 줄 수 있다.

② 이런 부분은 과도한 생략이다. 조금 길어지더라도 ‘보통선거·평등선거·직접평등·비밀선거’로 적는 것이 좋다.

③ 이 문장도 역시 판결문의 병폐인 줄글로 되어 있다. 몇 군데에서 문장을 끊어 주는 것이 좋다. 또 앞뒤 문장의 내용으로 보아 대등 연결 관계가 아니라 인과 관계에 가까운 종속적 연결 관계에 있으므로, ‘그치며’의 ‘­며’어미를 쓸 수 없다.

④ 앞뒤 문장이 인과 관계로 연결된 내용이라는 점이 구체적으로 더 드러나야 한다.

⑤ 역시 한번 끊어 주고, ‘그러므로’ 등으로 다시 연결하는 것이 읽기에 좋다.

⑥ ‘설정해 놓은’ 대상이 무엇인지, ‘기속시키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드러내지 않고 대강대강 넘어가고 말았다. 조금만 더 구체화하면 완전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다.

⑦ 이런 경우 ‘이른바’ 정도를 사용하여 이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면 읽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 “국회구성권”은 큰 따옴표(“ ”)보다는 작은따옴표(‘ ’)를 써야 맞는다.

⑧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고 있는 “국회구성권”은 이미 ‘기본권’은 아닐 것이다. 그냥 ‘권리’ 정도로 표현해야 옳다.

⑨ 원인을 나타내는 ‘-어서’보다는 자격을 나타내는 ‘으로’가 더 적절하다.

⑩ 역시 이 자리에서 문장을 한번 끊어주는 것이 좋다.

⑪ 조사나 어미를 사용하는 데 미숙한 부분이다. 이 요소들을 바꿔 보면 문장이 한결 간명하고 자연스러워진다.

⑫ 역시 생각을 구체화하여 표현할 필요가 있고, 내용을 추가하여 정확한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할 부분이다.

⑬ ‘구체적 기본권’이라는 것은 무슨 기본권인가? 아마도 하고 싶었던 말은 “기본권이 구체적으로(또는 직접적으로) 침해당하는 것은 아니다.”일 것이다.


이 밖에도 이 판결문에는 더 고쳐야 할 부분들이 더 있다. 이 내용들을 반영하여 위의 판결문을 감히 다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다듬은 문장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국회의원 선거권이란 보통선거·평등선거·직접선거·비밀선거에 의하여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하는 권리에 그친다. 따라서 이렇게 선출된 국회의원과 국민의 관계는 명령적 위임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 위임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유권자가 국회 의석 분포 비율을 먼저 설정해 놓고 여기에 국회의원의 수를 기속시키고자 하는 내용의 이른바 ‘국회구성권’이라는 권리는 오늘날 이해되고 있는 대의 제도의 본질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상 인정될 여지가 없다. 청구인들 주장과 같 대통령 여야 의석 분포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국민 주권주의 복수 정당 제도가 훼손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지만, 그러한 인위적 조작 행위로 인하여 헌법상에(또는 헌법상으로) 보장된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구체적으로(또는 직접적으로) 침해당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