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국어 오용 사례

드라마 속의 동어 반복과 부적절한 어휘 선택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극의 핵심은 대사에 있다고 본다. 특히 텔레비전 드라마는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를 중시하면서도, 협소한 화면의 제약 때문에 감동을 효과적으로 주고자 청각적인 요소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그만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쓰이는 대사나 해설이 정확하고 품위 있게 쓰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커진다. 이 글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드라마 ‘○○ ○○’의 제17회분과 제18회분을 중심으로 언어 사용상 드러나는 문제점 중에서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하거나 적절치 않은 단어를 사용한 예를 들고자 한다.



동어 반복

(1) 전하의 어명 <다수>
     사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어명(御命)’ 자체가 ‘왕의 명령’인데 이 앞에 ‘전하의’를 덧붙인다는 것은 ‘신하의 어명’, ‘왕자의 어명’, ‘장군의 어명’, ‘내시의 어명’도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을 분명히 한다는 합리화도 있을 수 있으나 ‘아내의 처남’, ‘여자의 여성 심리’, ‘아이의 아동 병원’이라는 식의 말이 잘못되었듯이 이는 잘못된 말이다. ‘전하의 명’, ‘전하의 명령’, ‘어명’ 등으로 고쳐야 한다.


(2) 과인어명을 수행한 것은 바로 네놈이 아니던가. <제18회분, 왕이 도승지에게>
    이 예는 앞뒤 말이 맞지 않는 말이다. ‘과인(寡人)’은 임금이 겸손의 뜻으로 자기를 낮추어 하던 말이다. 이에 반해 ‘어(御)’는 임금에게 관계된 말에 붙어 경의를 표하는 말로, ‘어명(御命)’은 ‘임금의 명령’이다. 임금 자신이 자기를 낮추어 ‘과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말이나, 그 바로 뒤에 스스로 경의를 표하는 ‘어(御)’라는 말을 이어 쓰는 일은 마치 왼발엔 구두, 오른발엔 고무신을 신은 모습을 보는 듯 부자연스럽다. ‘과인을’로 고치면 무난하다.


(3) 전하의 성심(聖心)은 이미 개경을 떠나셨사옵니다.

<제18회분, 무학 왕사가 통 장군에게>

‘성은(聖恩: 임금의 은총)’, ‘성총(聖聰: 임금의 총명)’, ‘성총(聖寵: 임금의 사랑)’처럼 ‘성(聖)’을 왕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썼다면 이 역시 ‘전하의 어명’의 예와 같이 겹치는 말이 된다. ‘성심(聖心)’을 굳이 쓰려면 ‘전하의’를 생략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밖에 “도읍지를 옮기는 일이 얼마나 큰 대역사인 줄 아시오?”(제18회분, 도당에서)의 ‘큰 대역사’는 ‘큰 역사(役事)’로 바꾸어 간결하게 써야 할 것이다.

(4) (새 도읍지를 찾아) 지관(地官)과 풍수가들이 <제17회분,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여기에서 지적할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풍수가(風水家?)’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라는 것이 그 첫째고, ‘풍수가’ 대신 ‘풍수(風水)’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이 ‘풍수(風水)’나 ‘지관(地官)’은 같은 말이므로 둘 중 하나만 써도 충분하다는 것이 그 둘째다. 지관(地官)들이 또는 풍수(風水)들이 중 어느 하나를 택하여 써야 할 것이다.



부적절한 어휘 선택

(5) (두문동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다만, (이 일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야사(野史)로 전해질 따름이다.

<제18회분, 해설>

‘역사’가 ‘인류 사회의 흥망과 변천의 과정’이라면 ‘야사(野史)’도 역사에 속한다. 여기에서 ‘야사’의 상대어는 ‘정사(正史)’가 될 것이다. 또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가 ‘널리 상찬(賞讚)되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고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꺼려 밖으로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불을 놓고 초토화한 것이 과연 인구에 회자될 만한 일인가.

(6) 소첩은 나으리를 위해 혼신을 다 쏟고 있사온데

<제18회분, 민씨가 남편 이방원에게>
    혼신(渾身)’은 ‘온몸’이다. 혹 ‘온몸의 힘’으로 잘못 알고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또는 “온 힘을 다 쏟고”로 하던 말이다.

(7) ① 길게 뜻을 세우시고는 <제17회분, 무학 대사가 왕에게>
    이 장면에서는 “먼 앞일까지 미리 잘 헤아려 생각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이런 뜻을 가진 단어로 ‘원려(遠慮)’나 ‘원념(遠念)’이라는 말은 있어도 ‘장려(長慮)’나 ‘장념(長念)’이라는 말은 없음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물론 비유법적으로 ‘멀리’를 ‘길게’로 쓴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유아어적(幼兒語的)인 느낌을 준다. ‘길게’보다는 멀리 쪽이 적절하다.
    ② 왕사: (두문동 선비들을) 길게 놔 두어 좋을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왕 : 그리 하겠구려.     <제17회분>

‘길게’가 썩 어울리는 말은 아닌 듯싶다. ‘오래’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길게 놔 둘 놈이 아닐 것 같소”(제18회분, 조영무가 조영규에게) 역시 오래 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또한 이 대화에서 왕이 보인 반응은 이 문맥에 잘 맞지 않는다. 왕사(王師)가 “∼ 좋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한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면 그리하겠구려(동사)가 아닌 ‘그러하겠구려’(형용사)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다’는 ‘그러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므로 이 자리에서는 어색한 것이다.

(8) 곧 나라에서 무슨 조치가 내릴 것 같소이다.

<제17회분, 민무질이 매부 이방원에게>

‘조치(措置)’는 ‘일을 잘 살펴서 처리하는 것’으로 ‘조처(措處)’와 같은 말이다. 이 장면에서 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조치가 있을 것 또는 어떤 조치를 할 것으로 다듬어야 한다.

(9) 신첩을 실망시키려(속이시려) 하옵니까? <제18회분, 민씨가 남편 이방원에게>
    
이 드라마에서 남편에 대해 자신을 ‘소첩(小妾)’이라고 내내 잘 부르다가 ‘신첩(臣妾)’이라고 자신을 부른 바 있다. 남편이 왕이 아닌 한 ‘신첩’은 망발이다.

(10) 행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제18회분, 민씨가 남편 이방원에게>
    이 장면이 일이 나쁘게(바람직하지 않게) 되어 간다는 의미로 썼다면 ‘혹시(或是)’ 또는 ‘혹(或)’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행여(幸─)’는 ‘다행스러운’ 일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말이다.


(11) (두문동 사건은) 그의 치세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했다.

<제18회분, 해설>

‘미치는〔及〕’ 것은 ‘영향’이고, ‘행사하는 것’은 ‘영향력’이라는 일반적인 감각에 따른다면 이 말은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것이다. 문맥으로 보아 ‘영향력’을 쓸 수 없으니 영향을 미치게 또는 영향을 끼치게로 쓰는 쪽이 무리가 없겠다.

(12) 왕씨라는 이름만 들어도 허리부터 숙이는 습관이 들어 있습니다.

<제17회분,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허리를 어떻게 숙이는가. 한국인의 언어 감각으로 고개는 ‘숙이고’, 허리는 ‘굽힌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허리부터 굽히는 또는 머리부터 숙이는이 제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