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휘

이런 잠, 저런 잠

이현우(李鉉雨) / 국립국어연구원

사람은 그 길지 않은 인생 가운데 1/4∼1/3 정도를 잠으로 보내게 된다. 잠이 많아 걱정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을 못 이뤄 걱정인 사람도 있다. 또 그때 그때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잠을 이루는 모습도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잠에 대한 말도 적지 않게 사전에 올라 있다. 가장 평화스러운 잠은 역시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나비잠일 것이고 안타까운 잠은 일자리를 잃고 집을 떠나 어느 공원 아무데서나 자는 노숙자들의 한뎃잠일 것이다. 이런 노숙자들의 잠은 제대로 덮을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입은 옷 그대로 잠 드는 것일 테니 이것이 바로 등걸잠일 것이다. 근로 조건에 불만이 있는 근로자들도 가끔은 한뎃잠을 청해야 할 것이고 농성을 하는 틈틈이 앉아서 고주박잠이나 말뚝잠을 청해야 할 것이다.

한뎃잠을 면한 사람들도 구조 조정의 한파를 벗어날 수 있을까 줄어든 봉급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이런저런 걱정으로 굳잠, 귀잠, 쇠잠을 이루지 못하고 괭이잠, 벼룩잠, 노루잠, 토끼잠으로 매일 밤을 보내야 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비록 집 안에서 자기는 하지만 들에서 맹수들을 경계하면서 잠을 자야 하는 힘없는 동물의 처지와 다름없는 것이다. 그전 같으면 온 방을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굴러 다니며 돌꼇잠을 자던 아들도 밖에서 들리는 부모들의 학비 걱정하는 소리에 잠은 오지 않고 헛잠, 꾀잠을 자면서 그 소리를 엿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잠은 모자라고 그렇다고 그렇게 매일  밤 집안일, 자식 걱정에 겉잠, 수잠으로 보내는 부모들을 생각하여 수업 시간에 도둑잠을 잘 수도 없고 밀려 오는 잠을 간신히 참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책상 위에 엎드려 쪽잠을 자게 된다.

돈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굳잠, 귀잠, 쇠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집안에 숨겨 놓은 돈이나 보석을 도둑맞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사로자거나 겉잠, 수잠을 잘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사회가 어려운 가운데도 마음이 느긋한 사람은 있어 일요일이면 다방골잠을 자고, 월요일이 되면 조금 일찍 일어났다가 출근 시간에 여유가 있다고 그루잠, 개잠, 두벌잠이 들었다가 기어코 시간에 쫓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뛰쳐 나오지만 결국은 지각을 하고 만다.예전에 없는 가운데서도 발칫잠을 자며 비록 시위잠이나 새우잠일망정 한잠을 푹 잤던 것처럼,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나 봉급이 줄어든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꿀잠을 잘 날이 빨리 돌아왔으면 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거기에 더해 덧잠을 잘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