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쓰기
법원 판결문의 문장(2)
김광해(金光海) / 서울대학교
글은 단번에 완벽하게 써내는 것이 어려우므로 다시 보면서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퇴고 단계인데, 글이 완성되려면 이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글을 쓴 바로 뒤에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므로, 자기 글이 낯설어질 때까지 얼마간 묵힌 뒤에 다시 보아야 한다고 권하는 분도 있다.
퇴고라는 절차는 사사로운 글을 쓸 때에도 매우 중요한 절차이거니와, 막강한 사회적 구속력을 발휘하며, 앞으로도 길이 남을 공문서에서 이 절차를 밟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발견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공문서는 세상에 나오기 전에 결재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몇 차례 검토를 받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도 잘못들이 고쳐지지 않은 채 유유하게 통과되고 있다면 이는 해당 집단의 문장 작성 능력 전반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함의 도가 더하다.
다음은 대법원에서 나온 한 판결문이다. 다행히 그 내용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어법상의 흠집이 있다고 해서 그 해석까지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문장이야 어떻든 간에 뜻만 통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공식 문서라면 어법이 완전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세련미까지도 겸비해야 한다. 공식 문서에 쓰인 문장의 수준은 그 나라 문화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 원래의 문장 】 대법원 1998.5.26. 선고98도1036판결
[1] ① 감금죄는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그 보호 법익으로 하여 사람이 특정한 구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매우 ② 곤란하게 하는 죄로서 ③ 그 본질은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④ 구속하는 데에 있다. ⑤ 이와 같이 행동의 자유를 구속하는 수단과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고, 사람이 특정한 구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매우 곤란하게 하는 ⑥ 장애는 물리적·유형적 장애뿐만 아니라 심리적·무형적 장애에 의하여서도 ⑦ 가능하므로 ⑧ 감금죄의 수단과 방법은 유형적인 것이거나 무형적인 것이거나를 ⑨ 가리지 아니한다. 또한 감금죄가 성립하기 위하여 반드시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할 ⑩ 필요는 없고, 감금된 특정한 구역 범위 안에서 일정한 생활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⑪ 유형적이거나 무형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하여 사람이 특정한 구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매우 곤란하게 ⑫ 한 이상 감금죄의 성립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 문제점 :
①
문장의 서두인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매우 모호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보호 법익’이란 ‘어떤 법의 규정이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이라는 법률용어였다.
그렇다면 이 문장에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감금죄를 설정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사람의 행동의 자유이다’일 터이다.
② 이 구절의 주어가 ‘감금죄’임을
생각해 보면, 호응이 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곤란하게 만들었을
때 성립하는 죄’라는 뜻일 것이다.
③ ‘감금죄의 본질’이라는 표현이
역시 불분명하다. ‘본질’이라는 단어보다는 ‘핵심’ 정도가 나을 것이다.
④ 역시 주술 호응이 바르지 못하다.
‘죄의 핵심은’이 주어이므로 ‘구속하는 데 있다’로 써서는 안 되며,
반드시 ‘구속한다는 점에 있다’로 써야 한다.
⑤ ‘이와 같이’라는 표현 ─ 아무리
앞에서 찾아보아도 도대체 무엇과 같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습관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쓴 구절로서, 삭제해야 한다.
⑥ ‘장애는’이 주어인데, 앞부분과의
연결도 어색하고, 뒤의 서술부와도 자꾸만 중복되어 구차스런 표현이 되었다.
⑦ 이미 충분히 긴 문장을 이어 왔으므로
이쯤에서 한번 끊어 주는 것이 좋다.
⑧ 이 부분에서 자르게 되면 ‘따라서’
같은 접속어가 필요하며, 이 구절도 ‘의’를 사용하여 무작정 연결해 놓은
것으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아마도 ‘감금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사용된 수단과 방법은’ 정도일 것이다.
⑨ ‘가리지 아니한다’의 주어는 ‘감금죄의
수단과 방법은’인데, 이를 연결하여 생각해 보자.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아래 다듬은 문장과 같은 것이었을 터이다.
⑩ ‘필요는 없고’라고 하니, 범죄자의
행동에 초점이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정도가 좋을 것이다.
⑪ 장황하다. ‘유형, 무형의 수단 방법’으로
줄여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⑫ 역시 장황하다. ‘했다면 감금죄는
성립한다’로 해도 지장이 없으며 간결해진다.
이것 말고도 고쳐야 할 부분들은 더 있다. 짧은 글인데도 그 속에 상당한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는 판결문이었다. 위의 글을 감히 다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 다듬은 문장 】
[1] 감금죄를 설정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사람의 행동의 자유이다. 이 죄는 사람이 특정한 구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매우 곤란하게 만들었을 때 성립한다. 따라서 이 죄의 핵심은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행동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사람이 특정한 구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매우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물리적·유형적 장애뿐만 아니라 심리적·무형적 장애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따라서 감금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사용된 수단과 방법이 유형적인 것이든 무형적인 것이든 관계가 없다. 또한 감금죄가 성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감금된 구역 안에서 일정한 생활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형, 무형의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특정한 구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매우 곤란하게 했다면 감금죄는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