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

커트/컷/컽?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참으로 많은 간판을 만나게 된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미용실. 대부분의 미용실 간판에는 ‘○○ 미용실’ 또는 ‘○○ 머리방’ 등의 이름이 붙어 있고 그 아래 유리문에는 거의 집집마다 ‘컷, 파마의 집’이라는 말이 씌여 있다. 곧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라는 뜻인데, 간혹 ‘컽, 파마의 집’이라는 표기도 눈에 띈다. 이것만 보아서는 아마도 머리를 자른다는 뜻의 영어 단어 ‘cut’를 우리말로는 ‘컷’ 또는 ‘컽’이라고 쓰는 것으로 알기가 쉽다. 그러나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 벽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면 또 한결같이 ‘커트’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말에서 영어 단어 ‘cut’는 ‘컷/컽/커트’ 등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형태로 표기되고 있다는 말이다. 어떤 것이 바른 어형일까?

이중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어야 할 표기는 ‘컽’이다. 왜냐하면 외래어를 적을 때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의 7개 받침만 쓰도록 「외래어 표기법」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어에서 ‘ㄷ, ㅈ, ㅊ, ㅋ, ㅌ, ㅍ, ㅎ’ 등을 받침으로 쓰는 것은 그것이 단독형으로 쓰일 때에는 대표음으로 소리 나더라도 모음 앞에 올 때에는 그 음가(音價)대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즉 ‘밭’을 ‘밧’이나 ‘받’으로 쓰지 않는 이유는 ‘밭을’ [바틀] ‘밭에서’[바테서]와 같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ㅌ’음이 발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래어의 경우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에도 [커틀], [커튼]과 같이 발음하지 않으므로 ‘컽’과 같은 표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른다는 뜻은 ‘커트’로

그러면 ‘컷’과 ‘커트’ 중에서는 어느 것이 맞는 어형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머리를 자른다는 의미로는 ‘커트’가 맞다. 영어 단어 ‘cut’에서 온 외래어는 우리말에서 그 쓰임이 독특하다. 즉 ‘커트’와 ‘컷’ 두 가지 중의 어느 하나만 맞는 것이 아니라 두 형태를 다 인정하되 각각의 의미를 달리 정의해서 사용한다. ‘커트’의 경우는 전체 중에서 일부를 잘라낸다는 의미를 기본 뜻으로 하여 미용을 목적으로 머리를 자르는 일이나, 또는 정구나 탁구 등의 운동에서 공을 옆으로 깎아 치는 방법을 뜻할 때 쓰인다. 반면에 ‘컷’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따위의 장면이나, 인쇄물에 넣는 작은 삽화를 이른다. 따라서 “올봄엔 커트 머리가 유행할 것”이라든가 “머리를 짧게 커트하니까 얼굴이 돋보인다.”와 같이 쓸 때에는 ‘커트’를 써야 하고, “이번 영화는 한 컷 한 컷 정성을 다해 찍었다.”라고 할 때에는 ‘컷’을 써야 한다.

장면이나 삽화는 ‘컷’으로

이처럼 외래어에는 그 수가 많지는 않으나, 같은 단어에서 기원한 것이라도 쓰임에 따라 표기를 달리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type’가 있는데, 어떤 부류의 형식이나 형태라는 뜻으로 쓸 때에는 ‘타입’이라고 하고, 타자기라는 뜻으로 쓸 때에는 ‘타이프’라고 한다. 따라서 “지금 타이프를 치고 있는 여성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와 같이 구분해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