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휘

누가 누구에게 배워 주지

이현우(李鉉雨) / 국립국어연구원

‘배워 주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특히 어린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배워 주셨다.”와 같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배워 주다’라고 하는 것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 더구나 환갑이 넘었는데도 그런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남한에서는 삼사십대의 사람들도 잘 쓰지 않는 말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런 표현을 남한에서 배운 것일까 아니면 북한에서 쓰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일까? 물어 볼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북한 자료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배워 주다’로 쓰인 것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런 식의 표현이 분단 전부터 쓰이던 것인지, 아니면 분단 후에 남북에서 똑같은 표현이 따로 생긴 것인지 궁금했다. 잘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어느 한 작가의 해방 조금 후의 작품에서 그런 표현을 하나 찾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보조동사 ‘주다’는 일반적으로 능동적인 동사 뒤에 와서 그 동사가 나타내는 동작을 해서 그것이 남에게 혜택이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본동사가 나타내는 동작을 하는 주체와 이 보조동사 ‘주다’가 나타내는 혜택을 주는 주체가 일치하는 것이 정상적인 용법이다. “철수가 순이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에서 읽는 행위를 하는 것도 철수이고 어떤 혜택을 주는 것도 철수이다. “철수가 순이의 손을 들어 주었다.”에서도 비록 손은 순이의 손이지만 손을 드는 행위를 하는 것도 철수이고 순이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철수이다.

흔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피동사나 피동적인 의미를 가지는 동사 다음에도 ‘주다’가 오는 경우가 있다. “도둑이 경찰에게 잡혀 주었다.”, “영수는 동생에게 맞아 주었다.”와 같은 경우가 그런 예이다. 이런 경우 경찰은 잡으려고 하고 동생은 때리려고 한다. 그러나 도둑은 잡히지 않으려 하고 영수는 맞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이렇게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혜택을 베푸는 일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보조동사 ‘주다’가 피동사나 피동적인 의미를 가지는 동사 다음에 오기 어렵거나 오더라도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도둑이 보기에 경찰이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다거나 영수가 동생이 때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헤아려 본래의 마음을 바꿔 먹고 잡히기로 하고 맞기로 한다면 잡으려는 경찰이나 때리려는 동생에게 혜택을 베푸는 셈이 된다. 이것이 “도둑이 경찰에게 잡혀 주었다.”, “영수는 동생에게 맞아 주었다.”라는 문장이 뜻하는 바이다. 이때 잡히는 동작를 하는 것과 그 혜택을 베푸는 것의 주체는 도둑이고 맞는 동작을 하고 그 혜택을 주는 주체는 영수이다.

그렇다면 ‘배워 주다’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배우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에게 배움을 받는 것이다. “선생님이 나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배워 주셨다.”라는 문장에서 배우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닌 나이고 어떤 혜택을 베푸는 것은 선생님이다. 두 주체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주다’의 용법에서 벗어난 잘못된 용법이다. 흔히 쓰는 표현도 아니고 억지가 있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나는 재미는 없었지만 참고 노래를 배워 주었다.”라고 하면 배우는 행위를 하는 것도 나이고 주는 행위를 하는 것도 나이어서 보조동사 ‘주다’의 용법에 맞는 용법이 되고 그 의미는 가르쳐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내가 배우는 행위를 함으로써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 있는 사람에게 어떤 혜택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배우다’와는 반대로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알게 해 주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가르치다’이다. “선생님이 나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쓰면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것도 선생님이고 혜택을 주는 행위를 하는 것도 선생님이어서 보조동사 ‘주다’의 용법에 맞는 옳은 문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