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왠지’에 대하여

안상순(安庠淳) / 금성출판사


(1) 뒹구는 낙엽을 보니 왠지 서글퍼진다.

위 문장에 쓰인 ‘왠지’는, 내가 편찬에 참여했던 금성판 『국어대사전』(1991)에서 맨 처음 단어로 수용한 말이다. 이 말은 꽤 빈도 높게 사용되었으면서도 그동안 국어사전의 공인을 받지 못했었다. 사전들이 이 말을 외면한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일반 언중의 입에 익지 않은 문학어에 불과하다든가, ‘웬일인지, 왜 그런지’와 같은 말로 쉽게 바꿀 수가 있다든가, 하나로 굳어진 단어로 보기는 어렵다든가 하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었음 직하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사전들에서 ‘왠지’를 다르게 처리한 결과 ‘왠지’와 ‘웬지’의 표기가 마구 뒤섞여 쓰이게 되었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사전들이 ‘왠지’를 수용하기 시작했고, 국립국어연구원에서도 ‘왠지’가 옳은 표기라고 유권 해석을 내림으로써 점차 ‘왠지’의 형태가 규범적 표기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국정 교과서가 이에 대해 다른 입장를 취하고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 난 외국 사람들을 보면, 웬지 어색한 기분이 들어.<『초등 도덕』 3-2, 88쪽>

교과서 교열 책임자에게 확인한 바로는 ‘왠지’와 ‘웬지’는 서로 다른 말이라고 한다. ‘왠지’는 단순히 ‘왜인지’이고, ‘웬지’는 ‘웬일인지’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 두 문장에서, (3ㄱ)은 ‘왠지’가 옳지만 (3ㄴ)은 ‘웬지’로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3ㄱ) 왠지 아니?

(3ㄴ) 왠지 눈물이 난다.

사실, (3ㄱ)의 ‘왠지’와 (3ㄴ)의 ‘왠지’ 사이에는 통사적, 의미적 차이가 있다. 통사적인 면에서 볼 때, 전자는 ‘알다’의 목적어이고 후자는 ‘눈물이 난다’를 꾸며 주는 부사어이다. 의미적으로는, 전자가 화자의 적극적 물음을 나타내는 반면 후자는 막연한 짐작을 나타낼 뿐 그 이유를 묻는 물음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양자는 모두 ‘왜+인지(서술격조사 ‘이다’가 ‘-ㄴ지’로 활용한 꼴)’로 분석되는, 기원적으로 한 뿌리의 말이다. (3ㄱ)은 “왜인지(=왜 그런지/왜 그런가) 아니?”로, (3ㄴ)은 “왜인지(=왜 그런지/왜 그런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여기서 (3ㄱ), (3ㄴ) 모두 ‘왜 그런지’로 환치할 수 있는 사실이야말로 양자가 근원적으로 같은 말임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3ㄱ)은 ‘왜 그러지 모르게’로 바뀔 수 없고, (3ㄴ)은 ‘왜 그런가’로 바뀔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양자가 전혀 다른 말이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어미 ‘-ㄴ지’가 갖는 다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ㄴ지’ 자체가 물음을 나타낼 수도 있고(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막연한 짐작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다).  따라서 교과서의 이중적 표기는 아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옳다.

그렇다면 ‘왠지’는 하나의 단어라 할 수 있는가? 또 사전에 실을 만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3ㄱ)은 그렇지 않고 (3ㄴ)은 그렇다. (3ㄱ)의 경우는 “이것이 뭔지 아니?”에서의 ‘뭔지’와 통사적으로 같은 성격을 띤 것으로, 서술어 의미가 강한 단순한 구이다. 그러나 (3ㄴ)의 경우는 아직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한 단어로 굳어져 가는 부사로 보인다. 쓰임도 상당히 보편화된 것 같다. 대체로 1960년대에 문필가들에 의해 쓰이기 시작하여 70, 80년대를 거치면서 비교적 폭넓은 세력을 얻고 있다. 아직은 문학적 감성이 물씬 풍기기는 하지만, 더 이상 전문 작가들만의 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제는 사전의 한 갈피에 깃들여 있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