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갑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글 머리에
2. 소리의 특징
서남 방언을 표준말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규칙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방언에서는 '셋:'을 '싯:'으로 말하는데 표준어의 /ㅔ/가 서남 방언에서 /ㅣ/로 대응하는 낱말은 이에 한정되지 않고 '시:상(=세상), 기:(=게), 띠(=떼), 닛:(=넷)'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러한 규칙적 대응은 서남 방언도 원래는 표준말처럼 /ㅔ/로 소리가 났었으나, 나중에 이것이 /ㅣ/로 바뀌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그러나 모든 /ㅔ/가 /ㅣ/로 바뀐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옷감을 뜻하는 '베'는 '비'로 되지는 않는다. 대체로 /ㅔ/가 /ㅣ/로 바뀐 것들은 모음이 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긴 모음은 /ㅣ/로 변하고 짧은 모음은 /ㅔ/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런데 짧은 모음의 /ㅔ/는 다시 /ㅐ/와 합쳐져서 하나의 소리로 합류하였다. 그래서 '베'는 서남 방언에서 '배'와 소리로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현대 한국어는 체계적으로 /ㄲ, ㄸ, ㅃ, ㅆ, ㅉ/의 된소리를 갖는다. 이런 소리는 한국의 어느 방언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같은 낱말이 방언에 따라 예사소리로 나타나기도 하고, 된소리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채소의 하나인 '가지'는 서남 방언에서는 '까:지'로 실현된다. 이처럼 표준어와 서남 방언이 예사소리와 된소리의 대립을 보이는 예는 수없이 많다.
까죽(=가죽), 깔앙그다(=가라앉다), 깝깝허다(=갑갑하다), 깟난애기(=갓난아기), 깨구락지(=개구리), 또랑(=도랑), 딲다(=닦다), 따독거리다(=다독거리다), 따듬독(=다듬잇돌), 떠듬떠듬허다(=더듬거리다), 때롱(=대롱), 빤:허다(=번하다), 빤듯허다(=반듯하다), 뽀시레기(=부스러기), 뽀:짝(=바싹), 뽁:쥐(=박쥐), 뽄뜨다(=본받다), ... |
서남 방언 안에서도 남쪽으로 갈수록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향은 심해진다. 그래서 '부지땡이'는 남해안에 이르면 소리가 변해서 '비:땅'이 되거나 심지어 된소리인 '삐:땅'으로 실현되기도 한다.
된소리뿐 아니라 거센소리로 변하는 예도 이 방언에는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예를 들어 '카마니(=가만히), 클씨(=글쎄), 타레박(=두레박), 탐박질(=달음박질), 토막(=도막), 펭풍(=병풍), 폴쎄(=벌써/진즉), 팜나(=밤낮), 포도시(=빠듯이/겨우), 찰잘하다(=자잘하다), 차꼬(=자꾸), 참시(=잠시), 혼차(=혼자), 몬차(=먼저)' 등은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예이다.
둘째 음절 이하의 /ㅎ/가 약화되거나 탈락되어 나타나는 것이 서남 방언의 커다란 특징이다. 예를 들어 '고향, 전화'는 각각 [고양], [저나]로 발음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앞 음절의 끝소리가 /ㄱ, ㄷ, ㅂ/일 경우, 뒤따르는 음절의 첫소리 /ㅎ/와 결합하여 거센소리로 되는 것이 표준말의 경우라면, 이 방언에서는 /ㅎ/가 탈락되는 탓으로 거센소리로의 결합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육학년'은 표준말에서는 [유캉년]으로 발음되지만 서남 방언에서는 /ㅎ/이 약화되어 소리가 나지 않으므로 단지 [유강년]으로 발음된다.
3. 문법의 특징
3.1. 부정
부정문을 만들 때 표준말은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갔다'의 부정문은 '안 갔다'처럼 부사 '안'을 앞세우거나 아니면 '가지 않았다'처럼 '-지 않-'과 같은 구성을 사용한다. 그런데 서남 방언에서는 부사 '안'을 앞세우는 방식이 주로 쓰이고, '-지 않-'와 같은 구성을 사용할 경우에는 어미 '-지' 대신 '-도'나 '-든' 또는 '-들'을 사용해서 '가도 안했다'나 '가든 안했다'처럼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중세어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서남 방언에는 일상적인 용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예에서도 본 바와 같이 '않다'를 이 방언에서는 '안 했다'처럼 말하기도 한다. 본디 '않다'는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아니'가 '안'으로 줄어든 것은 일반적인 것이며, '하-'의 모음 /ㅏ/가 줄어든 것은 '않다' 외에도 '점잖다'나 '귀찮다'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서남 방언에서는 '하-'의 모음 /ㅏ/가 줄어들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탓에 '안 하-'로 쓰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점잖다'는 이 방언에서 '점잔허다'로, '귀찮다'는 '귀찬허다' 등으로 쓰인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예로는 '삘:허다(=빨갛다), 만허다(=많다), 신:찬허다(=시원찮다)' 등을 들 수 있다.
표준말에서 '있다'의 부정은 흔히 '없다'로 쓰이는데, 서남 방언에서는 '있도 없다'와 같은 형식이 쓰이기도 한다. 이 경우의 '없다'는 '않다'와 기능이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다'의 부정은 흔히 '모르다'로 쓰이지만 서남 방언에서는 '알도 몰르다'와 같은 형식이 쓰이는데, 그 구성 방식은 '있도 없다'와 동일한 것이다.
표준어에서 재차 확인하는 물음으로 '-잖아?'가 쓰인다. 예를 들어 '내가 말했잖아?'는 '내가 말했음'을 강조하는 말일 뿐 대답을 구하는 전형적인 의문문은 아니다. 서남 방언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형식이 쓰인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나 전라남도의 북부 지역에서는 '-잔히여?'처럼 쓰인다. 예를 들어 '내가 말했잔히여?'처럼 쓰인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해'를 '히여'로 말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확인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서남 방언에서는 또다른 표현 '안'을 쓰기도 한다. '안'은 물론 부정의 부사인데, 이 경우는 기능이 달라져서 재확인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내가 안 갔냐?'는 표준말의 '내가 갔잖아?'와 같은 뜻을 갖는다. 쓰여진 대로만 보면 '내가 안 갔냐?'는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는 '내가 가지 않았니?'로 번역할 만한 뜻으로서 정상적인 부정의 의문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의 의미가 바로 '내가 갔잖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의미는 표기상으로는 구별되지 않지만 실제 말로 할 때에는 분명히 구별된다. 즉 전자처럼 부정의 의문으로 쓰일 때에는 '안'이 뒤따르는 동사 '갔냐'에 이어 소리난다. 즉 '안 갔냐'가 하나의 소리 단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재확인의 뜻을 가질 때에는 '안'과 뒤따르는 동사 사이에 약간의 쉼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안 갔냐'는 하나의 소리 단위가 아니라 두 개의 단위로 읽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재확인의 '안'은 부정의 '안'과 구별되어야 한다. 재확인의 '안'은 문장 내의 모든 어절 다음에 올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문장의 맨 앞에 올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안 항꾼에 안 거그 안 갔다고?(=우리가 함께 거기 갔잖아?)'처럼 문장 중간에서 여러 차례 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임의 기능을 하는 조사 '-요'와 유사한 분포를 보여준다.
새국어생활 제8권 제4호('98년 겨울)
3.2. 조사
서남 방언의 조사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할라'이다. 이것은 표준말의 '조차'와 흡사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혈압할라 높은디 멋 허로 술을 마셔 쌓냐?'는 '혈압조차 높은데 무엇 때문에 술을 마셔 대니?'로 번역될 만한 문장이다. 이 경우의 '할라'는 이 방언에서 '할차'로도 쓰인다. '할차'는 아마도 '할라'와 '조차'가 합쳐져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마치 영어에서 smoke(연기)와 fog(안개)가 합쳐져서 smog(매연)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듯이.
조사 '가'도 서남 방언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이것은 처격의 '에' 다음에 나타나 '에가' 형태로 실현된다. 예를 들어 '우리 고향에가 밤나무가 많다'처럼 쓰이므로 이 '에가'는 표준말의 '에서'와 거의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에가'의 '가'는 원래 동사 '가-'[去]가 변한 것이다. '에가'의 '에'는 생략될 수 있는데 이 때 자음 뒤에서는 '까'로 실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아들은 서울까 살아라우'(=우리 아들은 서울에서 살아요)처럼 쓰인다.
조사 '라우'는 표준말의 '요'처럼 높임의 기능을 한다. '내가라우, 어지께라우, 서울 갔는디라우, 거그서라우, 친구를 만났어라우.(=내가요, 어제요, 서울 갔는데요, 거기서요, 친구를, 만났어요)처럼 대부분의 어절 다음에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라우'는 '요'와 다른 면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표준말로 '누구세요?'처럼 물을 때 이를 서남 방언으로 옮긴 '누구세라우?'는 불가능한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라우'는 반말의 '-어'나 '-지' 다음에 쓰일 수 있으나, 의문사가 있는 전형적인 설명의문문에 쓰이지 않는다.
3.3. 어미
어미 가운데 서남 방언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는 '-소'를 들 수 있다. 이것은 표준말의 '-게'에 대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서 오소'는 표준말로 '어서 오게'에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말에서 명령의 어미 '-소'와 '-게'는 중앙어의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지는데, 그 선후는 '-소'가 16세기 경에 먼저 나타나고 18세기 이후에 '-게'가 출현하였다. 현재는 표준말에서 '-소'는 사용되지 않고 '-게'만 사용되나 서남 방언에서는 대체로 원래의 '-소'를 간직하여 쓰고 있다. 다만 전라남도의 남부 섬 지역에서 일부 '-게'가 쓰이고 있음이 눈에 띤다.
서남 방언의 어미 '-간디'는 표준말의 '-관대'에 대응한다. 예를 들어 '누가 오간디 조롷게 난리데?'는 '누가 오기에 저렇게 난리다니?'의 의미를 갖는다. 표준말의 '-관대'는 현대의 구어에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어미이지만 서남 방언의 '-간디'는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쓰이는 살아있는 어미이다. '-간디'는 때때로 '-가니'나 '-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미 '-으까미'는 표준어로 옮긴다면 '-을까봐'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 '누가 죽이까미 그냐?'는 표준어로 '누가 죽일까봐 그러니?'로 옮겨야 한다. 이 '-으까미'는 '-을까 봐'에서 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봐'의 /ㅂ/이 /ㅁ/으로 바뀌어 생겨난 것이다. '-으까미'는 때로 '-으깨미'나 '-으까마니'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미 '-구만'은 표준말의 '-건만'에 대응한다. 예를 들어 '비도 오구만 멋허로 나가냐?'는 '비도 오건만 무엇하러 나가니?'로 옮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표준말의 '-건만'은 문어적 성격이 강하지만 서남 방언의 '-구만'은 구어로 당당히 쓰이는 어형이다.
4. 어휘적 특징
4.1. 명사 파생
접미사 '-가심'은 표준말 '-감'과 어원을 같이하며 의미적으로는 접미사 '-거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접미사는 표준말 '-감'에서 불가능한 형태소 결합이 많이 나타난다. '짓가심(=김치용 채소), 맷가심(=매를 맞아 마땅한 사람), 주먹가심(=한 주먹이면 능히 대적할만한 상대), 골칫가심(=골칫거리)' 등이 이에 속한다.
'-거리'는 표준말의 '-거리'와 같은 뜻을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땔:거리(=땔감), 짐칫거리(=김칫감), 샛거리(=곁두리), 처진거리(=쓰고 남은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단순히 낱말 형성에 참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거리'가 있는데, 이 때는 비하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짓'에 대한 '짓거리'가 전자의 예이라면 '등거리(=등), 밑둥거리(=밑둥)'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단순히 낱말 형성에 참여하는 '-거리'는 지역에 따라 '-어리'로 실현되기도 한다.(예:짓거리/짓어리, 등거리/등어리)
접미사 '-데기'는 이 방언에서 '-뎅이'로도 실현되는데, 비하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접미사는 특히 신체의 일부분을 가리키는 데에 쓰이는 수가 많다.(예:발목데기/뎅이(=발모가지), 손목데기/뎅이(=손모가지), 빰데기/뎅이/떼기(=뺨따귀), 귓데기(=귀때기)) 그 밖에 일반 명사에도 붙는 경우가 있다.(예:보촛데기(=보추), 소락데기(=소리), 뽄떼기(=본보기), 구석데기(=구석)) '-데기'의 변이형으로 '-아데기'가 쓰이기도 한다.(예:빰아데기/뎅이(=뺨따귀), 가심아데기(=가슴패기))
사람을 가리키는 또다른 접미사로 '-보'가 있다. '-보'는 표준말에도 있지만 이 방언에는 표준말에는 불가능한 예가 많이 나타난다. '-보'가 결합한 낱말을 어간을 따라 분류하면, 우선 어간에 직접 결합하는 예가 있고(예:쩨:보(=얼챙이), 먹보(=귀머거리), 귀먹보(=귀머거리), 꼴:보(=자주 토라지는 아이))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