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 방언

김영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 머리말

  '서북 방언' 그 구획은 대체로 광복 전 행정구역인 평안남·북도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이라 했을 때 듣는 이의 처지에서는 무엇을 생각할까. '동남 방언'이나 '서남 방언'이라 했을 경우에는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겠지만, '서북 방언'에 대해서는 아마도 '무엇?'하고 주춤거리면서 되묻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그만큼 이제 가까운 주변에서 '서북 방언'-이하에서는 '이 방언'으로 씀-을 쓰는 사람이 드물어졌다는 것이다.
  광복 직후나 한국전쟁 당시에 월남한 평안도 출신 난민들이 상당한 수에 이르러 '70년대까지만 해도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에 나가면 이 방언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던 데 비하면, 근래는 애써 찾아 나서면 모를까, 시장에서도 '동남 방언, 서남 방언'을 쓰는 이는 만나기 쉬워도 이 방언을 말하는 이는 그렇지 못하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이제는 저 민족적 비극인 한국전쟁까지도 까마득하게 잊고, 또 그 난리 후에 태어난 세대들의 수가 늘어가고 북한에 고향을 두고 월남한 이들은 일방적으로 줄어들기만 하는 처지에서 이 방언―물론 이 방언 본래의 말이 아니고 수십년 동안 중부 방언의 영향을 입은―을 쓰는 이들 또한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근래 '금강산 관광'으로 반세기 이래 초유의 남한 주민들의 대대적인 북한 여행―제한적이긴 하나―을 눈 앞에 두고 북한에 대한 관심이 좀 달라지는 계제에 이런 글을 쓰게 되어 실향민의 한 사람인 필자 필자는 평안북도 영변군 출생으로 18세에 월남했음.로서는 남다른 느낌에 젖는다.
   '서북(평안) 방언'이라 해도 그 하위 분류가 되어야 할 것이나, 필자의 연구도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고, 북한에서 나온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글에서는 광복 전까지 평안남북도에서 쓰이던 말을 통틀어 이르고, 시대적으로는 1940년대까지 쓰이던 이른바 '전통적인 방언'을 대상으로 했음을 밝혀 둔다. 이런 까닭은 휴전선으로 현지 조사가 불가능한 처지와 필자가 그동안 이 방언의 자료로 수집한 것은 광복 후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월남한 분들을 제보자로 삼은바, 대체로 1940년대에 언어 형성기를 출생지에서 지냈거나(필자 포함) 그 이상의 연령에 해당되는 분들의 제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방언의 명칭에 대하여 언급해 둘 것이 있다. 학문적으로는 전국의 방언 명칭을, 방위를 기준으로 '서북 방언, 동북 방언, 중부 방언, 동남 방언, 서남 방언' 등으로 쓰기도 하거니와 필자는 8도의 명칭을 빌어 '평안 방언, 함경 방언, 중부 방언, 경상 방언, 전라 방언' 등으로 쓰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좀 더 친밀감이 있고 알기 쉽다고 보아 필자는 후자를 자주 썼다.(김영배 1977:5~7)
  한편, 북한 학계에서는 '서북 방언'이라 할 때 황해도 방언까지를 포함시켜서(김병제 1988:208~216) 쓰기 때문에 이 용어가 남북한에 공통된 개념으로 쓰이지 못하는 점도 이 용어의 쓰기를 주저하게 한다.
  방언 이야기에 앞서 평안도 지방의 널리 알려진 특징을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인지 문헌적인 근거를 찾지는 못했으나, 8도민의 성격적 특징을 말하는 한자 숙어로 평안도는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일러 왔다.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황해에 면한 서해안 지역과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하류의 일부 평야 지역을 제외하면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자연 생활 환경이 거칠게 마련이고, 여기에다가 북으로는 중국과 경계가 되어 있어서 변방 지역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상무(尙武)의 기질이 겹쳐서 용맹하고 성급한 성질로 굳어져서 마치 '숲속에서 사나운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상징적인 표현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환경은 평민·평등 의식을 일찍 뿌리박게 하여 나아가 반상(班常)의 구별이나, 남녀의 존비(尊卑), 적서(嫡庶)의 차별 등이 남한보다는 아주 희박하게 되었다.
  이런 것이 평안도 말에도 반영되어서 서너 명이 모여 정담을 나누는 것도 옆에서 들으면 마치 싸우기라도 하는 듯이 큰 소리로 들려, 다른 이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니, 이는 다분히 평안도민의 공통되는 성격의 표출이 아닌가 한다. 또 뒤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존댓말이 중앙어에 비하면 덜 발달된 것도 위와 같은 맥락과 관련이 있겠다.
  이 글은 이상과 같은 점을 전제하고 이 방언의 음운·문법·어휘의 세 부문별로 그 특징적인 점을 쉽게 소개하려 하는데, 표준어와 동떨어진 것같이 보이는 이 방언도 역사적으로는 한 줄기 같은 말에서 바뀌어 왔다는 것을 보이려고 후기 중세국어와 관계 지어 옛말을 인용 설명하기도 했다.


2. 말소리의 다름

2.1. '순턴'(順天)과 '순천'(順川)

   이 지명은 전라남도의 순천(順天)과 평안남도의 순천(順川)으로 한자는 달라도 표준어로는 그 음이 같아져서 구별되지 않는 것이, 저 광주(光州) 대 광주(廣州)의 경우와 같다. 그래서 두 광주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앞에다 도(道)명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앞의 순천(順天)과 뒤의 순천(順川)은 휴전선으로 갈라져서 별로 같이 쓰일 경우가 많지 않아서 혼동될 염려는 없으나 표준어로는 '전남'과 '평남'이라는 도명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이 방언에서는 전혀 그런 번거로운 일이 없이 구별할 수 있어서 평안도 출신 일부 연로한 어르신네들은 이 방언의 한자음이 표준어보다 맞다(?)고 하는 것을 방언 조사를 하면서 듣기도 했다. 그러면 그런 말을 하는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근거 없는 억지인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소항목에 적은 바와 같이, 전남의 순천은 이 방언의 한자음으로 [순턴]이고, 평남의 순천은 [순천]으로 전혀 다른 발음이 된다. 표준어로는 같은 한자음이 이 방언에서는 이렇게 다른 음이 되었는가? 그것은 '같이'라는 부사가 표준어에서는 [가치]로, 이 방언에서는 [가티]로 발음되는 것과 같은 데 말미암은 것이다. 곧,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방언에서는 ㄷ구개음화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차이가 나게 되었다 음운 규칙의 적용 순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이런 정도의 기술에 머무르기로 한다.. 더 부연하자면, 고유어나 한자어를 막론하고 통시적이나 공시적으로 'ㄷ, ㄸ, ㅌ'이 'ㅣ'모음이나 상승적 이중모음(ㅑ, ㅕ, ㅛ, ㅠ, ㅒ, ㅖ 등) 앞에서 'ㅈ, ㅉ, ㅊ'으로 바뀌는 것이 이 방언과 6진 방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방언의 음운 현상인데 반해서 이 방언과 6진 방언은 그런 음운 현상을 모르는 것이다(필자 1977. 곽충구 1991).
  이와 같이 ㄷ구개음화 현상이 있고 없음에 따라 표준어와 이 방언에서 달라지는 낱말은 상당한 수에 이를 것이다. 더구나 피동접사 '-디다(-지다)', 강세접사 '-티다(-치다)' 등은 그 쓰임의 빈도에 따라서 이 방언의 차이를 더 드러나게 하므로 ㄷ구개음화 현상의 불수용은 이 방언의 특징으로 제일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좀더 그 변천의 내력을 살피기로 한다.
  이와 같은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은 대략 18세기 초엽 이후에 중앙어에 ㄷ구개음화 현상이 퍼져서 그리되었고, 그 이전은 중앙어에서도 순천(順天)은 '순텬'으로, 또 천자문 첫머리는 '하 텬(天),  디(地)'와 같이 씌었다. 이렇게 되면 일부 평안도 출신 어르신네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피면 '天'의 음은 [텬]이었으므로 이 방언의 [턴]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이를 개략적인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18C 초 19C 이후
┌  텬 ── 텬 ............ 6진 방언
텬 ── 턴 ............ 이 방언
쳔 ──  천 ............  나머지 방언

           

   6진 방언은 그대로이고, 이 방언은, 자음은 그대로 두고 이중모음이 단모음으로 바뀐 데 대하여, '나머지 방언'에서는 자음이 바뀌고 난 다음 이중모음까지도 단모음으로 바뀐 결과이다. 그래서 '정거장의 전깃불'은 이 방언에서는 '덩거당의 던깃불'이 되는 것이다. 이런 단어의 보기를 몇 개 더 들어 둔다.

 

더기 누구레 옴무다(저기 누가 옵니다).
돟은 소식을 우테부레 가제와시요(좋은 소식을 우체부가 가져왔어요).
발쎄 덤심시간이가?(벌써 점심시간이냐?)
딜그릇이    떨어서              깨시요(질그릇이 떨어져 깨졌어요).
                (떨어디-+어서)    (깨디-+어시요)
둥매비(中媒婢) 덕분에 당개가게 돼시요(중매장이 덕분에 장가가게 됐어요).
아츰마당 테조를 하디요(아침마다 체조를 하지요). 


2.2. '니씨'(李氏)와 '이씨'(異氏)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두음법칙을 정한 이래, 한자 본음이 '랴, 려, 례, 료, 류, 리'인 경우 어두에서 각각 '야, 여, 예, 요, 유, 이'로 발음하게 돼 있다. 따라서 성씨의 본음이 '량(梁), 려(呂), 렴(廉), 룡(龍), 류(柳), 리(李)'인 경우 각각 '양, 여, 염, 용, 유, 이'로 쓰게 된다.
  이렇게 쓰게 될 때, '이씨(李氏)'는 '이씨(異氏)'와 '유씨(柳氏)'는 '유씨(劉·兪氏)'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3대 성씨의 하나인 이씨(李氏)의 경우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리승만'으로 적는 데 부지중 영향을 받아서인지 '리'로 쓰는 분이 많다. 이런 경향은 유씨(柳氏)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류'씨로 구별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근래는 북한에서 나온 출판물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일반 어휘에서도 맞춤법을 따르지 않는 표기를 자주 보게 된다.
  장황하게 이런 말을 늘어놓는 까닭은, 이들 성씨를 이 방언에서는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고, 나아가 남북 통일 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러면 이 방언에서는 맞춤법의 두음법칙에 관련되는 한자음을 어떻게 발음하는가 그 보기를 먼저 들어본다.

 

한자 본음 어두 어중
 나씨(羅氏) 신라[실라](新羅)
남색(藍色) 청람[청남](靑藍)
넌습(練習) 단런[달런](鍛鍊)
넉사(歷史) 니럭서(履歷書)
넝감(令監) 멩렁[멩넝](命令)
네식(禮式) 경레[경네](敬禮)
鹿 녹용(鹿茸) 순록[술록](馴鹿)
농왕(龍王) 청롱[청농](靑龍)
눅군(陸軍) 대룩(大陸) 
님시(臨時) 왕림[왕님](枉臨)


  위에서 ㄹ 다음에 단모음이 오는 경우는 표준어와 같으므로 제외하고 ㄹ 다음에 상승 이중모음이 오는 경우가 다른 것인데, 이 때도 앞의 ㄷ구개음화 관련 낱말에서 바뀌었던 것처럼, 이중모음의 부음을 탈락시켜 단모음이 되고 어두에서 ㄹ은 ㄴ으로, 어중에서는 ㄹ은 그대로 두고 모음만이 단모음으로 바뀐 것이 이 방언의 한자음이다.
  이 밖에 한자음 아닌 고유어에서도 두음법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있다.

 

① 올 너름은 세과디 더워시요(올 여름은 몹씨 더웠어요).

   위의 '너름'은 옛말 '녀름'이 표준어에서는 ㄴ이 탈락되어 '여름'이 되었으   나, 이 방언에서는 자음은 그대로 두고, ㄷ구개음화 현상이 적용되지 않을 때처럼, 이중모음의 부음 j가 탈락하여 단모음으로 바뀌고 '니'의 경우는 변화가 없다.

 

님재레 찾아와시요(임자가 찾아왔어요).
③ 약속을 니저삐렛수다(약속을 잊어버렸오).
④ 디과레 다 닉엇갓다(고구마가 다 익었겠다).
넙구리가 쏜다(옆구리가 쑤신다).
너느 사람들은 다 갓수다(여느 사람들은 다 갔소).
넷날에 쓰던 물건(옛날에 쓰던 물건). 

 

2.3. '승겁다'와 '싱겁다', '아츰'과 '아침'

   고유어의 옛말에 'ㅅ, ㅈ, ㅊ' 다음의 'ㅡ'모음이 연결되었던 말이 19세기가 되면서 전설모음 'ㅣ'로 바뀜이 시작되어 19세기 후반에는 일반화하게 된다.

 

승겁다 ― 싱겁다
즐다 ― 질다
츩 ― 칡
슳다 ― 싫다
즘 ― 즘승 ― 짐승
츠다 ― 치다 

  그런데 이 방언에서는 이런 현상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옛말과 같은 형태가 그대로 쓰인다. 

 

슬건(실컷) 놀아봐라.
② 산에 즘성이 줄엇다.
승겁게(싱겁게) 먹는게 건강에 돟댄다.
④ 길이 즐어서(질어서) 가기가 나쁘다.
⑤ 눈을 츠디(치지) 않아서 길이 미끄럽다.
(칡) 넝쿨이 낭게(나무에) 얼켓다(얽혔다).
아츰(아침)에 신문이 안 와시요(왔어요). 

 

 

3. 문법 형태의 다름

   보통 음운·문법·어휘의 세 부문에서 변천의 속도가 빠른 것이 어휘이고, 다음이 음운, 제일 느린 부분이 문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앞에서 다른 음운 부문은 역사적으로 중세국어와 관련하여 설명되는 것들이었지만, 이 장에서 다룰 문법 형태의 어떤 것은 그렇게 설명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3.1. 주격 /-레/

   이 '-레'는 제주도 방언에서도 쓰인다고 하는데, 이 방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내레 점적해서 못 가갓다.
(내가 부끄러워서 못 가겠다.)
네레 어지께 그러디 아난?
(네가 어제 그러지 않았니?)
학교레 멀어서 댕기기 힘들갓다.
(학교가 멀어서 다니기 힘들겠다.)
그 문데는 어러와서 풀 수레 없다.
(그 문제는 어려워서 풀 수가 없다.)


  이와 같이 개음절로 끝난 체언 아래 쓰여서 표준어의 조사 /-가/와 수의적으로 교체된다. 필자 자신도 거의 쓰지 않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 계실 '80년대 초반까지 집에서 자주 들었다. 그래서 필자(1979)에는 간단히 특이한 주격 형태로 '-레'가 쓰인다고 보기만을 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형태가 체언의 자질에 관계없이 쓰이는지, 곧, 사람에게만 쓰는 것인지 동물에도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보자들에게 물어 보아도 의문점에 대해 분명히 대답해 주는 이가 없어서 미결인 채로 글을 마무리했었다. 그러다가 1988년 봄에 간행된 고 임석재 선생의 「한국구전설화」 평안북도편(Ⅰ·Ⅱ)을 보고서 10년래의 숙제를 풀 수 있어서 혼자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필자(1989)는 이 자료를 이용해서 묵었던 숙제를 푼 셈이다. 필자(1989)를 쓰던 당시까지 평안남도편은 출간되지 않아서 제목을 '평북방언의 주격 /-레/에 대하여'라고 했으나 그 후에 나온 평안남도편을 보면 15개 시군에서 채록한 것에서 8개군이 쓰였으므로 이 방언이 전 지역에 쓰였던 것으로 상정한다. 이 구전설화는 1920년대 후반에서 1940년까지 편자가 선천(宣川) 신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주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시켜서 제보자의 구술(口述)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는 물론 학교 교육의 영향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제공된 자료를 될 수 있는 대로 손상하지 않고 그 기술을 십분 살려 두려고 애썼다."는 편자의 말을 받아들이고 표기법에서 좀 주의해서 가려내면 문법부문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평안북도편 Ⅰ·Ⅱ'에서 찾아낸 보기를 간단히 들면 다음과 같다.

 

큰아바지레<Ⅰ·32, Ⅰ편 32쪽의 줄임>
오마니레<Ⅰ·41>  cf. 오마니가<Ⅰ·39>
색시레<Ⅰ·255> cf. 색시가<Ⅰ·48>
시뉘레<Ⅰ·48> cf. 시뉘가<Ⅰ·123>
총바치레<Ⅰ·54> cf. 총바지가<Ⅰ·54>
내레<Ⅰ·34> cf. 내가<Ⅰ·17>
누구레<Ⅰ·29>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가'와는 수의적으로 교체되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한 이야기, 한 쪽의 글안에서까지 그런 보기가 있다.   설화집이기 때문에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은 의인화해서 쓰인 것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보기도 있으므로 사람만이 아니고 동물에도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식물이나 무생물에도 나아가 형식명사나 용언의 명사형에도 씌었다.

 

소레<Ⅰ·193, 227, 238> cf. 소가<Ⅰ·14>
토까이레<Ⅰ·14>  cf. 토까이가<Ⅰ·22, 23>
쥐레<Ⅰ·25> cf. 쥐가<Ⅰ·26>
나무레<Ⅰ·15>
펜지(便紙)레<Ⅰ·39>
소나기레<Ⅰ·15>
금복지개레(금주발뚜껑이)<Ⅰ·45> cf. 금복지개가<Ⅰ·47>
고따우레(그것 따위가)<Ⅰ·18>
시집 사람 보기레<Ⅰ·214>

             

3.2. /-앗-~-아시-/와 /-갓-~-가시-/

   다음은 선행어미 가운데 과거와 미래 표시 형태를 알아보기로 한다.

 

① 낚시로 붕어를 ┌ 잡아시오. ¦¤(......잡았어요)
                           └ 잡앗어요. ┘
② 덤심을 ┌ 먹어시오. ┐( 점심을 먹었어요)
               └ 먹엇어요. ┘
③ 공부를 ┌ 해시요.(<하+아/어시오) ¦¤(...했어요)
               └ 햇어요.(<하+앗/엇시오) ┘
④ 학교에 ┌ 가가시오. ¦¤(...가겠어요)
               └ 가갓어요. ┘
⑤ 내레 ┌ 먹가시오. ┐( 내가 먹겠어요)
            └ 먹갓어요. ┘


  ①②③에서는 과거의 선행어미 '-아시-~-앗-'과 '-어시-~-엇-'은 각각 모음조화에 따라 쓰였고, '-아시-'와 '-앗-', '-어시-'와 '-엇-'은 수이변이로 된 것이다. ④⑤에서는 미래의 선행어미 '-가시-~-갓-'은 수이변이로 선택된다.
이 '-아/어시-~-앗/엇-'은 표준어의 '-았/었-'에, '-가시-~-갓-'은 '-겠-'에 대응된다. 표준어의 '-았/었-'은 통시적으로 '-아/어+잇-'에서 변천되었다고 보는데, 이 방언의 '-아시-~-앗-'도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다만 ㅆ받침이 아닌 ㅅ받침인 점이 다를 뿐이다. 곧 중세국어에서 '잇-[有]'은 그 이형태로 '잇-~이시-~-시-'가 쓰였으므로 이 중의 '-시-'가 어미 '-아/어'에 통합되어 '-아시-~-어시-'가 된 것이다. 이 이형태는 어미 '-아/어'나 부사 '마니', 명사 '오' 등에 후행되었으므로 이 방언의 형태가 유별나게 달라진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한편 미래의 '-가시-~-갓-'은 필자(1972)에서 그 조어법을 고찰한 바 있듯이, /가-[去]+잇-[有]/이 문법화된 것으로 보았다. 물론 이 '-갓-'은 표준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추정'이나 '가능'을 나타내는 데도 쓰임은 말할 것도 없다.


⑥ 네레 그 일 할 수 잇갓네?(네가 그 일을 할 수 있겠나?)
⑦ 지금쯤 철수레 집에 갓갓다.(...... 철수가 ...... 갔겠다.)


  그런데 이 형태를 대상으로 자료 수집을 따로 한 것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아/어시-'보다는 '-앗/엇-'을, '-가시-'보다는 '-갓-'이 각각 더 자주 쓰이는 것으로 들었으니, 이는 아마도 표준어 '-았/었-'과 '-겠-'에 이끌린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한편, 이 '-앗/엇-, -갓-'이 의문 종결어미 '-네'와 통합되면 다음과 같이 과거 의문이나, 미래 의문으로도 쓰인다.


⑧ 발쎄 덤심 먹언?(벌써 점심 먹었니?)
⑨ 내일 나무하레 가간?(내일 땔 나무하러 가겠니?)


  에서 ⑧ '먹언'은 '먹었네', 또는 '먹엇니'에서 'ㅅ'이 비음화되고 '-네,-니'가 준 것으로, ⑨ '하간'도 마찬가지로 'ㅅ'의 비음화와 '-네,-니'의 줄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겠는데, 이를 각각 '-아/어-, -가-'와 'ㄴ'으로 더 분석해야 할 것인지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3.3. ' 그 소식 드던?'

 이 방언의 동사 '듣-[聞]'은 ㄷ불규칙 활용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규칙 활용으로 쓰임이 특이한데, 나머지 ㄷ불규칙 동사 묻-[問], 붇[殖], 싣-[載] 등은 표준어와 같이 모두 불규칙 활용이다.


① 그 노래 드더 봔?(... 들어 봤나?)
② 그 소식 드던?(... 들었나?)
③ 그 말 드드니 마음이 놓인다(...... 들으니 ......)
④ 내 말 드드문 알 꺼웨다(... 들으면 ... 알 것이외다).
⑤ 내 말 드든 사람(...... 들은 ...).
⑥ 그 소리 드들 사람(...... 들을 ...).
⑦ 오마니 말 드드라 (어머니 ... 들어라).


  와 같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어, -언, -으니, -으면, -은, -을, -으라' 앞에서 어간의 ㄷ받침이 ㄹ로 변동되지 않고 규칙 활용되어 연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문헌으로 다루어진 것은 없었고 오구라심뻬이(1944상:367)에 함경도 몇 지점의 활용형 한 가지만이 전할 뿐이다.


듣다 ㉠ [tꐇn-nꐇn-da] 新高山·高原 그밖의 많은 지방.
㉡ [tꐇl-lꐇn-da] 安辺·德源

   ㉠은 표준어와 같으며 이는 이 방언에서도 마찬가지다. ㉡은 모음 어미 앞에서 불규칙 활용된 것이 아니라 자음 어미 '-는다' 앞에서 변이형 'tꐇl-'이 쓰이고 어미의 첫 자음이 이 변이형의 'l'에 순행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방언에서는 이런 용법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1971년 1월 이 문제를 통신 조사로 해서 평북 18개 지점, 평남 13개 지점의 제보자(월남 인사)의 회신을 정리 분석한 글이 필자(1973)이다.
  그 결과는 평북 12개 지점은 ㄷ규칙으로, 4개 지점은 규칙/불규칙으로, 1개 지점은 불규칙으로 쓴다 했고, 평남 13개 지점 중 10개 지점은 규칙으로, 2개 지점은 규칙/불규칙으로, 1개 지점만이 불규칙으로 보고되었다. 이 방언 외에 '듣-'이 규칙 활용으로 쓰이는 것은 평안남도와 경계한 황해도 북부지역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필자(1973)참조. 결국 이런 현상은 이 방언에서 '듣-'이 모두 ㄷ규칙으로 쓰이다가 근래 중앙어의 영향으로 ㄷ불규칙으로 쓰는 곳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차차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그 역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4. 낱말의 다름

 4.1.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어휘의 변천 속도가 음운·문법 부분에 비해 빠르다고 했는데, 이는 주로 사회가 변천함에 따라 새로운 사물의 등장과 옛 것의 퇴장으로 옛말이 사라지며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고 외래 문물과 함께 외래어가 들어오게 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런 낱말의 바뀜은 보기를 들지 않아도 알 만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낱말의 달라짐이 아니라, 지역을 달리하는 두 지점 사이에 오랫동안 교류가 활발하지 않으면 그 지점 서로 사이에 낱말이 달라지는 그런 것을 다루는데, 개중에는 표준어와 뜻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고, 낱말은 같은데 그 낱말이 지시하는 지시 대상이 다른 것도 있다. 

4.1.1. 싸다[高價]

 이 말은 표준어라면 '값이 싸다'의 경우가 '시가(時價)보다 적다' 뜻으로 쓰이는데 반해서 이 방언에서는, 

 

그 물건은 값이 싸서 못사갓수다.(............ 비싸서 못사겠소다.)

 와 같이 쓰인다. 이는 북한의 방언사전, 김병제(1980)에도,

 

비싸다[형] 값이 많다.
싸다:평남(안주, 개천) 평북(삭주, 정주, 선천, 곽산, 피현, 태천) 

로 올라 있으니, 그 사용 지점은 필자의 조사 지점(필자 1997ㄴ:218)과 달라도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준어의 '싸다'에 대응되는 말에는 '눅다'가 있다. 이 말은 생소한 것도 아닌데 '싸다'에 밀려서 남한에서는 사전에 예를 들면, 금성판 국어대사전(1992년판)에는 '눅다'의 뜻풀이가 ①~⑤번까지 나와 있는데, 이 ⑤에 '(값이) 싸다'로 돼 있다.만 남아 있고 실생활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도 이 말만 따로 수집한 것은 없으나 '값싼 물건[低價品] 항목에(필자 1997ㄴ:125).

 

누근 물건:평북(용천)
눅거리:평남(대동 제외 전 지점) 평북(전 지점)

 로 보고했다. 나중에 확인한 것이지만, '눅어서, 눅드라, 눅구나' (싸서, 싸더라, 싸구나)로 활용되었다. '눅은'이란 관형사형과 '눅+거리'라는 파생어로 보아 전에는 흔히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방언 사전에는 볼 수 없었다. 

4.1.2. '고추'와 '후추'

   이번에는 지시어는 같은데 그 지시물이 다른 보기이다.
  이는 한국전쟁 후에 월남한 평안도 사람이 운영하는 냉면집에서 가끔 있었던 일이나, 지금은 그렇게 쓰는 집은 없을 것으로 본다. 곧 냉면에 '고추가루'를 더 쳐서 먹고 싶은 사람이 '고추가루'를 달라고 했을 때, 이 방언을 쓰는 사람이면 '후추가루'를 갖다 주는 데서 생기는 우스운 장면이다. 이 방언의 '고추'는 표준어 '후추'에 대응하고, '고추'에 대응되는 말은 '당가지·당추·당취·댕가지, 댕추' 여러 가지이다.(필자 1997ㄴ:5) 아마도 이 말은 한자어 '당초'(唐椒)에서 바뀐 말로 보인다. 또한 이 말은 황해도와 함경도 일부 지역에서도 쓰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김병제 1980:286). 

4.1.3. '큰아바지'[祖父]와 '맏아바지'[伯父]

   친척의 호칭 가운데, '할아버지'[祖父]와 '큰아버지'[伯父]에 대응되는 이 방언의 대응어는 '큰아바지'와 '맏아바지'이어서 대가족제도 당시라면 항렬이 달라지게 되므로 잘못하면 큰 일이 날 것이었다. 

 

야, 큰아버지레 오셋네?(얘, 할아버지께서 오셨니?)
아니요. 맏아버지만 오세시오(... 큰아버지만 오셨어요).

  이렇게 쓰이는 이 말은 그나름의 까닭이 있다. 옛말, 중세국어의 '한아비'(할아비, 할아버지)와 '아자비'(큰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전자는 '한[大]+아버지'로 후자는 조금 다르지만 '[伯]+아버지'란 합성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김병제(1980:206·7)에도 이 계통을 잇는 것으로 '컨아버지, 컨바지, 큰아버지, 클바지, 한아저비, 할우반, 할으바니'[祖父]와 '맏아버지, 큰방아버지'[伯父]가 실려 있다.
  이런 조어 방식에 따라서 '할머니'[祖母]와 '큰어머니'[伯母]도 각각 '큰마니(<큰+오마니), 클마니'와 '맏오마니, 맏엄매'(필자 1997ㄴ:122)로 쓰이는데 평안남도는 표준어와 같은 계통의 말, '할아바지, 할아버지, 할우반, 할으바니'가 쓰이는 것으로 보고되어 이 경우, 대체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가 다름을 보여 준다. 

4.2. 그밖의 것

  4.1.에서와 같이 일일이 다 들어서 쓸 수가 없으므로 이 항에서는 3.에서 다루었어야 할 청자 대우법의 종결 형식을 간략히 기술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3.의 끝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이 지방민들의 평등 의식으로 해서 이 방언에는 경어법이 덜 발달된 것으로 보아서 그 등급도 '손아래, 평교, 손위'를 각각 '하칭(下稱), 중칭(中稱), 상칭(上稱)'의 세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이때, '중칭'은 주로 동년배이거나 듣는 이가 항렬이 낮으면서도 말하는 이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에 상대방을 대우해서 쓰는 것이다.   다음에 서술형과 의문형, 명령형을 위의 세 등급으로 나누어 '니르다'(읽다)의 보기를 들어본다.

 

서술형
하칭 중칭 상칭
현재 닐러 니릅네 니릅무다
과거 닐러서 닐럿쉐 닐럿수다
미래 니르가서 니르갓쉐 니르갓수다
의문형
하칭 중칭 상칭
현재 니르네 니릅마 니르시우
과거 닐런  닐럿습마 닐럿소
미래 니르간 니르갓습마 니르갓소
명령형
하칭 중칭 상칭
닐르라우 니르시 니르시우
닐르러마 니르시다나 니르시라요

  이 '니르다'는 아마도 15세기 중엽 이전의 어느 단계에선 현대어의 '이르다'[謂]와 '읽다'[謂]가 분화되지 않고 쓰이다가 '읽다'의 '닑다'로 분화된 것이 아닌가 한다. 16세기 초엽의 문헌에도 '니르다'[讀]로 쓰인 보기가 있다.

 

셔산늬 올아 주으려셔  먹고 글 니르더니<이륜:48>
cf. 讀은 닐글씨오<월석 서:22>

 그렇다면 이 방언의 '닑-, 니르-, 니리-'(필자 1997:256)의 이 형태는 상당히 오래된 말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 되겠다. 

5. 맺음말

   필자가 월남한 지 꼭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고향에서 산 시간보다 남한에서 살아온 시일이 약 2.7배나 더 긴 셈이다. 필자도 이 방언을 공부하느라고 해서 그렇지, 다른이가 이 방언으로 말하면 이해는 해도 쉽게 그 말을 맞받아 이 방언의 말투로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물론 옛날 동향의 친구들이나 만나서 분위기가 조성되면 다르지만, 그만큼 중부 방언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받고 동화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머리말에도 언급한 것처럼 여기에 쓰인 이 방언의 보기는 '40년대까지의 전통적 방언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예문은 임석재(1988)에서 인용한 것 외에는 모두 필자의 내성(內省)으로 재구하고, 고향 친구들에게 확인한 것임을 밝혀 둔다. 따라서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글은 평북 영변지역어를 중심으로 해서 쓴 글이긴 하나, 이 방언 전체에서 본다 해도 그리 벗어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참 고 문 헌

곽충구 (1991). 「함경북도 육진방언의 음운론」.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김병제 (1988). 『조선언어지리학시고』. 평양: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김영배 (1972). 「미래시제의 한 고찰」. 『동악어문론집』8집. 서울:동악어문학회.
(1973). 「평안방언의 '듣다'[聞]에 대하여」. 『양주동박사고희기념논문집』. 서울:탐구당.
(1977). 「평안방언의 음운체계연구」. 서울:동국대 한국학연구소.
(1979). 「평안방언의 형태론적 고찰」. 『성곡논총』. 서울:성곡문화재단.
(1984). 「평안방언의 의문종결어미」. 『박태권선생회갑기념논총』. 부산:동 간행위원회.
(1986). 「평안방언의 한자음에 대하여」. 『국어학신연구』. 서울:탑출판사.
(1989). 「평안방언의 주격 /-레/에 대하여」. 『송하 이종출박사화갑기념논문집』. 서울:동 간행위원회. 이상 필자의 7편은 (1997ㄱ)에 모두 재수록됨.
(1997ㄱ). 『증보 평안방언연구』. 서울:태학사.
(1997ㄴ). 『평안방언연구 자료편』. 서울:태학사.
김이협 (1981). 「평안방언 한자발음」. 『방언』 3. 서울: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임석재 (1988). 『한국구전설화』(평안북도편Ⅰ·Ⅱ). 서울:평민사.
小倉進平 (1944). 『朝鮮語方言の硏究』上·下卷. 일본:동경 岩波書店.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