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물음   가장자리를 뜻하는 ‘가’에 주격 조사가 붙으면 ‘가가…’입니까? 꽤 어색하기도 하고 노래에도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처럼 ‘가이…’인데요? 그리고 우리 고향에서는 ‘갓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역시 ‘가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최향란, 종로구 관훈동)

  당연히 ‘가가…’가 맞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틀리지 않고 ‘밥이…’처럼 자음으로 끝나는 말 뒤에서는 주격조사 ‘-이’를 쓰고 ‘내가…’처럼 모음으로 끝나는 말 뒤에는 ‘-가’를 씁니다. 그러므로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가가…’라고 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노래에 나오는 ‘가이없다’는 ‘한없다’라는 뜻을 지닌 하나의 단어로서 통사적으로 ‘가’라는 명사에 주격조사가 붙은 경우와 다릅니다. 따라서 ‘가이 없다’처럼 띄어 쓰지 않고 ‘가이없다’처럼 붙여 씁니다. 이 ‘가이없다’는 고어에 쓰이던 어형이 굳어진 말입니다. 고어에서 ‘가’는 ‘’ 또는 ‘’이었는데 나중에 ‘ㅿ’의 소리와 글자가 없어지면서 ‘’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표준어 ‘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대국어 이전에는 주격조사에 ‘-이’만 있었고 ‘-가’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에 주격조사가 붙으면 ‘이’가 됩니다. 그 결과 ‘이 없다’와 같은 어형이 나타나고 이것이 단어로 굳어져 오늘날 ‘가이없다’처럼 하나의 형용사가 된 것입니다. 
한편, 말씀하셨듯이 방언(예를 들어 전라방언)에 따라 ‘갓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 방언이 표준어와 달리 ‘’의 어형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철구)


 
물음   ‘피난’이 맞습니까? ‘피란’이 맞습니까? 
(박도국, 경남 울산시)

  둘 다 맞습니다. 신문 기사 등을 보면 ‘피난’과 ‘피란’이 뒤섞여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거의 같은 뜻으로 모두 맞는 말입니다. ‘피난’은 ‘避難’으로서 사전상으로는 ‘재난을 피함’이라는 뜻이고, ‘피란’은 ‘避亂’으로서 ‘난리를 피함’이라는 뜻입니다. 
난리는 대체로 전쟁 따위를 가리키므로 ‘피란’은 전쟁을 피해 길을 떠나는 상황에 어울리는 용어입니다. 또 전쟁은 재난의 일종이기도 하므로 ‘피난’ 역시 이 경우 적절한 말입니다. 
그런데 작은 규모의 재난을 난리라고 하지는 않으므로 그 경우에는 ‘피난’이 어울리지 ‘피란’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약간의 의미 차이로 인해 합성어들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피난민/피란민, 피난살이/피란살이, 피난처/피란처’ 등이 모두 있는 말인 것과 달리, ‘피난소, 피난항’은 있지만 ‘*피란소, *피란항’은 없는 말입니다. ‘피난소’는 통상, 예를 들어 산 따위에서 비바람을 피해 피신하는 ‘작은 장소’ 따위를 가리키고, ‘피난항’ 역시 악천후를 피해 배가 들어오는 ‘항구’를 가리키는데, 둘 다 보편적인 세상살이에 비추어 볼 때 ‘난리’를 피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기에는 적절한 장소나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으로는 난리라고는 할 수 없는 어떤 재난을 피하는 경우가 보통이어서 ‘피난소, 피난항’이라는 어휘들만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피난’이 ‘피란’보다 다소 의미의 영역이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단어가 모두 쓰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반적으로 ‘피난’이 훨씬 더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피란’의 경우 ‘난을 피하다’ 따위에서 보듯 국어의 단어 ‘난’에 접두사 ‘피-’가 결합한 것으로 보아 ‘피난’으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피뢰(避雷), 피서(避署), 피한(避寒)’ 등과 마찬가지로 ‘避’와 ‘亂’이 국어의 접두사와 명사가 아닌 한문의 한 성분으로서 조어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본음대로 ‘피란’으로 적는 것이 옳습니다.

(허철구)


 
물음  우리 고장의 면(面) 가운데 ‘新寧面’이 있는데 그 표기와 발음에 대하여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령면’으로 적고 [실령면]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의견이고, 다른 하나는 ‘신녕면’으로 적고 [신녕면]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실제로 표기도 뒤섞여 쓰이고 있고, 사람에 따라 발음도 다릅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요?
(경북 영천 시청)

  ‘신녕면’으로 적고 [신녕면]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선 ‘新寧面’의 ‘新寧’을 한글로 어떻게 적느냐 하는 것은 그 발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즉 [신녕]으로 발음되면 ‘신녕’으로 적고, [실령]으로 발음되면 ‘신령’으로 적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어느 것이 표준 발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녕]은 ‘寧’이 본음대로 발음된 것이고, [실령]은 속음으로 발음된 것입니다. 이 가운데 올바른 발음은 본음에 따른 [신녕]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寧’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날 경우 속음 [령]으로 발음되기도 하나, 자음으로 끝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본음대로 발음되지, 속음으로 발음되지 않습니다. 

  앞말이 모음으로 끝날 때 앞말이 자음으로 끝날 때
본음 [녕]으로 발음 歸寧 귀녕 
靡寧 미녕 
粗寧 조녕 
…… 
安寧 안녕
單寧 단녕
蕭孫寧 소손녕
南寧 남녕
集寧 집녕
丁寧 정녕 
昌寧 창녕
李東寧 이동녕
……
속음 [령]으로 발음 會寧 회령
宜寧 의령
郞世寧 낭세령
……
없음

 
다만, 벼슬명 ‘敦寧(東敦寧, 領敦寧, 知敦寧, 判敦寧)’의 발음은 원래 [돈녕]인데, 그 후 발음이 변하여 [돌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리는 사전에 따라 일치하지 않아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의 경우 속음 [돌령]으로 발음하는 것을 인정하고 ‘돈령(동돈령, 영돈령, 지돈령, 판돈령)’으로 표기하는 데 반하여,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은 [돈녕]으로 발음하는 것을 인정하고 ‘돈녕(동돈녕, 영돈녕, 지돈녕, 판돈녕)’으로 표기합니다. 즉 앞말이 자음으로 끝날 경우에는 ‘寧’은 거의 예외없이 본음 [녕]으로 발음되고, 예외라 할 수 있는 ‘敦寧’에서조차도 속음 [령]의 발음을 완전하게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녕]으로 발음되는 다른 한자의 경우들도 앞말이 자음으로 끝날 경우 예외없이 본음대로 발음되며, 더욱이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더라도 속음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便佞 편녕 (말로는 모든 일을 잘할 것 같으나 마음이 음험하여 실속이 없음)
讒佞 참녕 (아첨하여 남을 참소하는 재주가 있음)
諛佞 유녕 (남에게 아첨함)
  ……
凶犭寧 흉녕 (성질이 흉악하고 사나움)
水濘 수녕 (수렁)
洿濘 오녕 (진창)
泥濘 이녕 (진창)
  ……


셋째, 이상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속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한자어를 속음으로 발음하여야 합니다. ‘곤란(*곤난), 허락(*허낙), 모과(*목과)’ 등은 거의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속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표준으로 인정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질문에 따르면, ‘新寧’의 경우는 해당 지역에서 [신녕]과 [실령] 두 가지 모두로 발음하고 있습니다. 즉 속음으로 발음되는 [실령]이 본음으로 발음되는 [신녕]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세하지 않습니다.
이상과 같이 [녕] 음을 갖는 한자어가 자음으로 끝나는 말 뒤에서 속음으로 발음되는 경우를 국어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과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실령]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新寧’은 원칙에 따라 본음대로 [신녕]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新寧面’은 [신녕면]으로 발음하고 ‘신녕면’으로 표기하여야 합니다. 이상의 원칙은 이와 유사한 지명 또는 인명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허철구)
 


 
물음    신문에서 “○○○ 있음에 (한국 축구 앞날 밝다)”와 같은 표현을 가끔 보는데 혹시 “○○○ 있으매”가 잘못 쓰인 것은 아닌지요? 
(김선희, 신교동)

  렇습니다. 어미 ‘-으매’는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 연결어미로서 “나라가 있으매 우리가 있다”나 “물이 깊으매 고기가 모이고 덕이 높으매 사람이 따른다”처럼 쓰입니다. 질문하신 표현 역시 생략된 뒷말의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므로 ‘있음에’는 ‘있으매’로 고쳐 써야 옳습니다. 
사람들이 ‘-으매’를 ‘-음에’로 잘못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애’와 ‘에’의 발음을 잘 분간하지 못하고 부사격조사 ‘에’도 “바람 쓰러진 나무”나 “빗소리 잠을 깨다”처럼 원인을 나타내는 용법을 가지는 데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때 부사격조사 ‘에’가 보이는 원인의 용법은 ‘-으매’가 보이는 이유의 용법과 같지 않으며, 또 원인의 용법으로 쓰이는 ‘에’는 그 앞말로 문장이 오지 못하고 명사구만 올 수 있는 데 비해 연결어미 ‘-으매’에는 이러한 제약이 없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시제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가 결합하여 앞말이 문장임이 분명한 “비가 왔으매 강물이 불었으리라”와 같은 표현은 “비가 왔음에 강물이 불었으리라”처럼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라는 표현도 ‘그대 있으매’로 고쳐 써서 엉뚱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임동훈)


 
물음   ‘그 사실은 암흑 속에 가려졌다/가리워졌다’에서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지 알고 싶습니다. 
(김원범, 서울시)

  ‘가려졌다’가 맞습니다. 기본형인 ‘가려지다’는 동사 ‘가리다’의 어간인 ‘가리-’에 ‘어지다’가 결합하여 ‘무엇이 사이에 가리게 되다’라는 뜻을 가진 자동사입니다. 그래서 윗 문장에서 암흑을 사이에 두고 진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가려지다’의 과거형인 ‘가려졌다’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동사 ‘가리다’의 뜻 중에는 ‘무엇으로 보이지 않게 막다’라는 타동사의 뜻도 들어 있는데 이 경우에는 ‘가리우다’라는 단어도 같은 뜻으로 쓸 수 있습니다. ‘가리우다’의 어간인 ‘가리우-’에 ‘어지다’를 결합하면 ‘가리워지다’가 만들어지는데 이 단어는 자동사 ‘가려지다’의 뜻과는 다른 단어이므로 ‘가려지다’의 뜻으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이승재)


 
물음   ‘아이를 낳으시고/나으시고’, ‘근심에 쌓여/싸여 있다’ 중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지 알고 싶습니다. 
(신홍식, 한국통신 대구 본부)

  ‘아이를 낳다’라는 말에서 동사 ‘낳다’는 다른 어미와 어울릴 때 ‘낳고, 낳으니, 낳아서’에서와 같이 어간 부분인 ‘낳-’의 형태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낳다’‘낳-’에 ‘으시고’라는 어미가 결합하여도 ‘낳’의 형태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를 낳으시고/나으시고’에서는 ‘낳으시고’가 맞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근심에 쌓여/싸여 있다’는 표현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쌓여’의 기본형은 ‘쌓이다’라는 동사이지만 ‘싸여’의 기본형은 ‘싸이다’라는 동사로 ‘쌓여’와 ‘싸여’는 각각 다른 동사의 활용형입니다. 그래서 ‘쌓여/싸여’의 올바른 표현을 알기 위해서는 이것들이 어느 동사의 의미로 쓰였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금성판 국어대사전에는 이들 동사의 뜻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쌓이다 : 한꺼번에 많이 겹쳐지다.
싸이다 :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뒤덮이다.


‘근심에 쌓여/싸여’라는 표현은 어떤 사람이 걱정거리에 뒤덮여 있다는 뜻이므로 ‘싸이다’의 활용형인 ‘싸여’를 써서 ‘근심에 싸여’로 써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근심이 쌓여/싸여 간다’라는 문장에서는 ‘쌓여/싸여’가 그의 마음 속에 근심이 겹쳐진다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쌓이다’의 활용형인 ‘쌓여’를 써서 ‘그의 마음 속에 근심이 쌓여 간다’라고 써야 합니다.

(이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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