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과 국어사전

명희 작가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1997년 11월 8일 작가 최명희(崔明姬) 선생을 초청하여 「『혼불』과 국어사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1998년 12월 11일에 별세한 최명희 선생을 추모하며 작가의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원 장:우리뿐 아니라 사전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나 이 『혼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인상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대강대강 읽지 못하는(웃음) 성격이고 그래서 연필로 뭘 계속 체크를 해 가면서 읽는 쪽인데, 그래서 『혼불』을 읽으면서도 이런 어휘가 사전에 있을까 하고서 체크를 계속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리 자세하게 못했지마는 대강은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는데 그 중의 많은 것들은 사전에 있는 것인데 제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꽤 많은 것들은 사전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전에 있는 것들,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못한 고급스러운 어휘들, 이것들이 우리 사전에서 용례가 다 뽑혀 있는가를 몇 가지만 이렇게 사전실에 주고서 의뢰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얘기가 길면 최 선생이…. 가령 ‘섬서하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 “섬서한 면면이 남의 눈에도 드러났으니” 하는 것이 2권에 나오는데 사전에 찾아보면 “적절치 못하다, 어울리지 못하다” 이런 말입니다. 여기에는 한자(漢字)가 들어가 있지 않아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전실에 ‘섬서하다’는 용례가 뽑혀 있느냐 했더니 없다는 겁니다. 그런 것이, 없는 것이 몇 개 지금 나와 있습니다. ‘염념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있는데 그 ‘염념(另念)’도 우리 사전에 용례가 뽑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한자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만약 우리가 이 『혼불』에서 용례를 뽑아 놓으면 우리 국어사전은 최초로 이 어휘들의 용례를 찾아내는 사전이 되는데 만일 『혼불』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 단어들의 용례를 우리가 아무리 찾아서 넣으려고 해도 넣을 수가 없는 그런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특별히 “『혼불』과 국어사전”이라는 걸로 정했습니다마는 국어사전을 만드는 우리로서는 ‘특히 『혼불』이 중요한 문헌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오늘 주제를 그렇게 잡고 대체로 그것과 관련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가 부탁드리기에는 우선 처음 한 한 시간 동안은 자유롭게 말씀을 해 주십사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연이 끝난 다음에 지금 이런 쪽과 관련된 질문들을 하면서 그쪽 말씀을 듣기로 하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일동 박수)

최명희: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저……. 

원 장:앉아서 말씀하시지요.

최명희:앉아서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가지고 어떨지 모르겠어요. 이런 게 좀 익숙지 않아서 제가 아무래도 좀 서서 해야 될 거 같아요.

원 장:그럼 편하실 대로.(웃음)

최명희:예. (웃음) 인사를 새로 드리겠습니다.
  (일동 박수)

최명희:제가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일이 있어요. 한 만 9년 간 중학교·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항상 제가 국어를 가르치면서 생각할 때 나는 모국의 소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국어 선생이라고 하는 거를 참 감격이라고 말씀드리면 좀 과장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매순간 그 누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곤 했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때 습관이 늘 서서 이야기하던 게 몸에 배서 지금도 이렇게 아무래도 서는 게 제가 좀 자세가 익숙하고, 또 하나는 얘기할 때 이렇게 얼굴이 보이고 눈빛이 보이고 서로 맘을 나누고 하면서 얘기를 해야지, 모습이 안 보이면은 뭔지 장막이 가로막힌 것 같고 저 너머에 그 누가 계실까 궁금하고 그러니까 그냥 서서 얘기하겠습니다. 
  저는 여기 오기 전에 사실은 원장님께서 제게 그 전언(傳言)의 말씀을 주셨을 때 굉장히 마음에 두렵고 또 다른 하나는 너무나 감사하고 또 참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이 나라에, 그러니까 제가 전라북도 전주 태생인데요, 제가 정말 대한민국 국민으로 나서 모국어의 언어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설을 써 왔는데 그 모국어의 사전을 편찬하는 이런 소중한 그 작업을 하는 이런 한복판에서 당신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시간을 마련해 주시고 청해 주시는 이런 그 영광은 저로서는 어떠한 훈장을 받고 어떠한 표창을 받는 순간보다도 정말 너무나 제 마음에 자랑스럽고 또 이 시간이 사실은 벅차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실 수천 명, 수만 명, 혹은 뭐 수십만 명이 앉아 있는 자리도 소박한 자리가 있는가 하면 단 한 분을 모시고 얘기를 해도 굉장히 긴장이 되고 저 자신이 조심스러운 그런 자리도 있는데 바로 오늘과 같은 자리는 저로서는 시험 보는 자리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혹시 제가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제대로 잘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한번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그냥 자유롭게 얘기를 시작할게요. 제가 국어사전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뭔가 이렇게 시험 공부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좀 얘기가 딱딱해질지 몰라서요. 그냥 편안하게 얘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처음에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지금은 ‘경원동’이라고 이름이 바뀐 그런 동네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어렸을 때 ― 그때 국민학교라고 했지요, 초등학교가 아니고 ― 그때 뭐 조사하는 게 많아요. 학교에서 무슨 주소 같은 거, 본적, 아버지, 어머니, 성함, 가족 관계, 그럴 때 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 ‘꽃밭’이라는 뜻이겠지만 ―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듣는 말이 그 사람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준다는데 제가 어떤 아주 날카로운 발음의 동네에서 태어나지 않고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났다는 게 항상 저에게 그 ‘ㅈ’ 발음이 주는, 이상하게 편안하고 낮은 음조이면서도 이렇게 활짝 피었다기보다는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그 발음의 음감이 제 성격의 어떤 일면을 꼭 이루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열변하는 최명희 선생


  그리고 저의 어머니의 택호가 ‘간치내댁’이에요. 그런데 ‘간치내’ 그러면은 ‘까치 작(鵲)’자(字)에다가 ‘내 천(川)’자를 썼는데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 이 세상의 언어 감각이 아직 익숙지 않을 때 사람들이 저의 집에 놀러 오면은 “아, 간치내 아짐 계시냐”고 그러고 또 저의 아버지보고는 “간치내 아저씨 계시냐”고 그러고 또 “간치내 누구”라고 그러고 “간치내 조카 있는가” 그러면 참 이상했어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함은 분명히 있는데 왜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아버지를 부를 때 앞에다 ‘간치내’를 붙일까. 그런데 뜻을 모르면서도 ‘간치내’라고 하는 말이 풍겨 주는 그 음률이 참 좋았어요, 저는. 그래서 나중에 조금 자라면서 어머니한테 ‘간치내’가 뭐냐고 그랬더니 어머니 말씀이 그냥 어머니 살던 동네 이름이라고 그러세요. 그래 나중에 제가 거꾸로 좀 시차(時差)를 뛰어넘어서 말씀드리면 『혼불』을 쓰면서 거꾸로 이제 그 택호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존여비, 남존여비’ 하는데 옛날의 조선 시대 같은 그 엄격한 시대에 이제 관작(官爵)이 있어서 ‘진사댁’이라든가 무슨 뭐 ‘영의정댁’이라든가 이런 택호말고 이렇게 자기네 가문에 통혼(通婚)한 그런 상대편 여인의 동네의 이름을 붙이면서, 그러니까 자기가 얻은 아내의 친정 동네 이름으로 남자의 이름도 바뀔까, 그러니까 저의 어머니 같으면 ‘간치내’에서 시집 오셨는데 저의 아버지는 ‘간치내 양반’으로 일생 통하셨거든요, 그래 ‘참 재미있다’ 이렇게 유추를 해 보았는데 어렸을 때 그 ‘간치내 양반’, ‘간치내 아짐’ 그때 그 ‘간치네’가 주는 그 상상력, 나중에 알고 보니까 ‘까치 냇물’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까치내’가 옛날에는 ‘까치’가 ‘가치’였잖아요. 그러니까 ‘야, 어쩌면 이렇게 어머니 택호는 좋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화원동에서 태어난 제가 또 ‘간치내’라고 하는 어머니의 택호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모국어의 그 음향에서 저에게 한 상상력의 공간이 실제로 구체적으로 가슴 속에 어떤 실제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도 이렇게 언어가 사람에게 주는 그런 구체적인 화폐의 교환과도 같은― 백 원짜리 동전을 내가 내면은 백 원어치에 해당하는 물건을 받는 그런 화폐 교환과도 같은 ― 그런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 자체는 백 원짜리 동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언어가 제 가슴 속에 떨어지면서 제 몸 둘레에 그 어떤 음향을 남기면서 전혀 저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어떤 하나의 동네를 또 만들어 내는 것을 저는 경험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또 그러한 예 중의 하나로 ― 이건 아주 정말 소박한 얘긴데 ―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앞을 지나가면서 ‘사립문 다방’이라는 다방을 본 일이 있어요. 지금도 전주에 가면은 도청 앞에 그 찻집이 있을 거예요. 학교를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사립문 다방’, 참 다방이 뭔지도 모르면서 어릴 때 출입 금지니까 그런데 ‘사립문’이라는 제목이 주는 상상력이 ‘싸리문’이라는 말일까, 안 그러면 ‘생각하는 마을이라는 마을의 입구’라는 말일까, 그래서 그 단어가 저에게 주는 꼬투리 혹은 실마리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하루 온종일 숙제였어요. 문득 어떤 간판이 하나 떠오르면은 그 간판을 바라보면서 저는 문장을 만들어 보고 또 그 앞에다가 말도 하나 넣어 보고 뒤에도 말 하나 넣어 보고…. 
  그리고 또 어렸을 때부터 제가 수첩을 늘 사용을 했는데 ― 오늘 사실은 그걸 가져와 볼까 했지만 조금 부끄러워서 제가 그냥 사양하고 ‘요 다음 혹시 기회가 있으면 한 번 가져 나와 보고 싶다’하고 생각을 했는데 ― 중학교 때부터도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때 종이가 참 귀했을 때였어요. 인쇄소 근처에 제가 놀러갈 일이 있었는데, 절단하고 내버린 종이들이 있었는데 아주 한 1. 5cm 정도에 한 5cm, 혹은 6cm 정도의 그걸 조각조각 해서 잘라 내버린 종이가 있는데 너무 깨끗하고 이뻐 가지고 한 주먹을 제가 주워 왔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거기에다가 제가 알고 있는 낱말을 하나, 가령 인제 무슨 새로 배운 말 같은 거 있으면 제가 혼자서 단어장을 만든 거예요. 그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게 했다고 그래서 누구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도 않은데 혼자서 그렇게 낱말들을 제 주머니에다 넣고 다니면서 간판에서도 이쁜 말이 떠오르면은 적어 가지고 주머니에 넣고, 또 그때 우리 옛날 학생 교복에 주머니가 다 있었어요. 글쎄 이 언어가 주는, 그러니까 아무도 이 언어에 대해서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지 않았을 때도 저절로 제 몸 속에서 그런 낱말들이 하나의 인력(引力)처럼, 끌어당기는 힘처럼 그냥 서로 만나서 그게 어우러지는 것을 제가 느끼곤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자라면서 제가 국어 시간을 어느 시간보다 좋아하고 또 드디어는 국어 선생이 됐을 때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지금 조그만 학생으로 여기 앉아 있지만 훗날에 이 나라의 어머니가 될 사람들이고 어머니가 된 다음에는 여러분의 자녀들은 당신들의 말을 배우고 거기서 정신적인 영양을 얻고 한 세대를 이루어 갈 거”라고 늘 그렇게 얘기를 했지요. 그래서 만 9년을 학생들하고 같이 국어 공부를 했는데, 그때 제가 여러 가지 숙제를 많이 냈어요. 그래서 시집(詩集) 같은 것을 한 번 읽고 외우고, 저는 아주 학생들한테 시를 굉장히 많이 읽히는 편이에요. 그래서 매일 수업하기 전에는 꼭 자기가 미리 전날 그러니까 1번부터 60번까지 수업을 하기 전에 미리 칠판에 자기가 어제 알아 온 시를 적어 놓으라고 해요. 그러면 학생들은 전부 그 수첩에다가 또 시를 적거든요. 그래 시(詩) 노트가 따로 있는데 그럴 때 어떤 숙제를 같이 내느냐 하면,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니까 글자가 틀리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런데 그 시집, 자기가 알아 온 시에 새로운 낱말이 나오는 거를 그 노트 밑에다가 꼭 자기가 사전을 만들어 보라고 제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편찬한 최초의 사전이죠. 아주 소박한 솜씨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엉뚱한 무슨 잘못된 단어를 알아 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그냥 일상생활에서 자기가 시를 하나 찾아오고 그 담에 그 시에 나오는 낱말 중에 자기가 잘 모르는 말은 스스로 사전을 만들어 보는, 그러니까 물론 단어 두세 개짜리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그런 조각 사전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모아서 나중에 ㄱ, ㄴ으로 전부 분류를 한번 해 보도록 그렇게 해 본 일도 한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첩에다가 ‘견출지’라고 그러나요? 옆구리에다 이렇게 한 장씩 붙여 가지고 그러니까 ㄱ에서부터 ㅎ까지 전부 옆구리에다가 이렇게 분류표를 붙여서 자기가 스스로 골라 온 시에 나오는 새로운 낱말로 한번 사전을 만들어 보도록 했었는데 그 방법을 저는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그 우리나라의 인쇄된 사전말고 제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어휘록’이라고 하는 사전이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그냥 저 혼자서 보는 거니까 굉장히 소박하고 유치한 건데요, 그러니까 무슨 품사 분류라든가 용례라든가 이런 거를 제대로 쓰진 못 했지만 제가 그냥 대학 노트 하나 준비해서 옆구리에다가 띠를 다 만들어 가지고 스스로 만든 사전인데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워요. 그래서 거기에 사투리 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말들, 아니면 제가 새로 발견한 말들 이런 말들을 쓰죠.
  그런데 제가 외국으로 이민 가시는 분들한테 반드시 꼭 드리는 게 사전입니다. 국어사전인데 크게 좀 무겁게 만든 사전은 아무래도 가지고 가기도 힘들고 늘 일상적으로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고 소박한 것이지만 국어사전을 꼭 선물을 해요, 아주 예쁘게 포장을 해서. 그러면서 말하기를 “사전을 시집(詩集)처럼 읽으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죠. 그래서 저도 사실은 사전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책상머리에는 항상 사전이 있죠. 그런데 그 사전을 저 자신이 ‘시집’처럼 읽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일부러 제가 필요한 말을 찾으려고 사전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날은 정말 무료한 날, 아니면 쓸쓸한 날, 아니면 그저 심심한 날, 또는 전화를 받다가도 그냥 사전을 넘겨요. 
  그러던 어떤 날은 제가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아주 아름다운 말을 발견하게 됐어요. ‘아리잠직하다’라는 말인데요, 혹시 잘 아시겠지만 저는 이 『혼불』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강실이를 묘사할 때에 제가 아주 이 마음 속에 애련하고 안개처럼 자욱하고 그립고 일생 동안 그 실체를 만질 수 없으면서도 정말 자기 가슴 속의 깊은 심지에 그 촛농이 타는 것 같은 그런 어떤 안타까운 애절한 그 어떤 고운 여인의 모습을 한 자로 딱 표현해 보고 싶은데 아무리 무슨 말을 해 봐도 거기에 맞지가 않아요. ‘아름답다’하는 것은 너무나 헤버러진 말 같고 ‘예쁘다’는 것도 작고, ‘곱다’하는 거는 그냥 또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고 안타까운 말인데 그 날도 그냥 사전을 계속 자르르 자르르 넘기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사전 읽는 방법이 좀 독특한데 그냥 구체적으로 필요한 말을 고를 때는 물론 그 칸을 순(順)으로 해서 쫙 고르지만 대체로 많은 시간 저는 사전을 펼치면 대각선으로 이 끝에서 이 끝까지 한 칸도 안 빼 놓고 죽 한 번 읽어 봐요, 그냥. 정말 시를 읽듯이.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걸 전부 읽으면 뜻밖에도 아주 좋은 말들을 많이 발견하는데 그러한 중의 하나가 그 ‘아리잠직’이었어요. 너무 제 맘에 기뻐 가지고 언어의 배열도 아주 예쁘고요, ‘아리잠직’. 그리고 화려하게 드러나지도 않았으면서 그러나 아주 아련한 어떤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데 ‘아리잠직’이 참 저는 알맞아서 강실이 외모를 설명할 때 ‘아리잠직하다’고 딱 한 번, 단 한 번을 쓰래도, 그런데 또 그 ‘아리잠직’ 같은 말은 너무 독특하고 너무 격이 높기 때문에 자꾸만 여러 번 ‘아리잠직’을 쓰면은 좀 싸구려가 될 것 같아서 그것도 한 번밖에 못 써 보는 거예요.
  그렇게 바깝게 만난 말을 딱 한 번 보석처럼 쓰고, 사실은 그 말을 발견해서 만나는 기쁨도 보물찾기처럼 독자 여러분이 또 갈피갈피 누리게 해 드리고 싶은 저 나름대로의 퀴즈 같은 심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그 ‘아리잠직’이란 말은 저는 정말 몰랐던 말이었어요. 그런데 사전에서 보물을 캤어요. 얼마나 사전이 이쁜지 진짜 막 쓰다듬어 줘요, 저는. 그리고 이 사전이 그냥 무슨 그 책이라든가 종이라든가 활자로 생각이 안 들고 정말 살아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늘 보는 조그만 사전인데 -큰 사전은 물론 늘 찾아보지만- 그 작은 사전은 어느 때는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이쁜 게 있을까 전 너무 기뻐요. 
  그런데 반대로 제가 참 감명 깊은 말을 배워서 사전에서 한번 확인해 보려고 찾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 다를 때 좀 섭섭할 때도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표변’(豹變)이란 말인데 ‘표변’은 사실은 제가 저의 집안 간의 한 어른이신데, 아주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서로 얘기하다가 저한테 무슨 얘기를 하느냐 하면 “군자(君子)는 표변이란다” 그러세요. 그런데 이상한 게 어렸을 때부터 ‘표변’이란 말은 아주 변덕쟁이인 경우에 주로 많이 쓰는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의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다 갑자기 변해 가지고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낼 때 ‘표변했다’, ‘변절했다’ 이럴 때 ‘표변’일 것 같은데 “‘군자는 표변’이라니 무슨 말씀인가요?”라고 했더니 이 세상에 그 많은 동물들이 있고 그 동물들이 움직이는데 대체로 동물들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되는데 그 중 특히 달리는 습성을 가진 동물들은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그 속도를 줄일 수가 없대요. 그래서 아주 빠른 가속도를 내는데 그 중에 제일 빠른 게 표범이라고 해요, 이 달리는 속도가. 그런데 대체로의 경우에 자기가 가속도로 달리다가 자기 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난다든가 혹은 무슨 장애물, 아니면 부딪히면 죽을 무슨 일이 있을 때 보통 자기 가속도를 줄이지 못하기 때문에 죽을 줄 알면서도 그냥 거기 뛰어들어 버린대요. 절벽으로 떨어지거나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아니면 어떤 큰 횡액을 당하는 거지요. 그런데 표범의 경우만큼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빠른 비호(飛虎), 날아다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빠르지만 자기 앞에 장애물이 보이면은 가속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그 자리에 탁 멈춰 선대요. 그리고 보통의 경우에는 이제 탁 멈춰도 앞으로 자빠지거나 안 그러면은 이 속도를 바꿔 내가 지금 온 길이 잘못 돼서 되돌아가고 싶을 때 탁 멈췄다고 하더라도 바로 돌지를 못하고 그대로 좀더 달려가다가 이렇게 선회(旋回)를 한다고 그럽니다, 보통. 그래서 선회하다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런데 표범의 경우에는 딱 제자리에 서면서 돌아설 때 180도로 탁 돌아선대요, 전혀 자기의 관성의 영향도 받지 않고 선회의 낭비도 하지 않고. “그래서 군자는 표변이란다” 그러면서 군자는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것이 아무리 내 몸에 익숙하고 내 몸에 큰 가속도를 불러일으킨 그런 행위일지라도 잘못 됐다고 생각되면 그 순간에 그걸 딱 멈추고 그대로 180도로 돌아서 바로 길을 바꿀 수 있는 그게 군자란다 그러세요. 저는 너무너무 그 말씀이 좋아서 ‘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왜 그 남자분들은 담배 많이 피우시면서 그렇게 끊겠다 끊겠다 하면서도 왜 표범처럼 단순간에 못 끊고 그냥 그렇게 끊어 보려다가 또 저만치 갔다가 또 그러한 과정을 겪으시잖아요? 아, 그러면 군자 여러분, 이렇게 담배를 끊겠다는 그 순간에 담배를 딱 끊을 수 있다면 그러면 표범이겠다.
  그래 저는 ‘표변’이라는 말을 새로 배운 기쁨에 정말 저는 그냥 벅차 가지고 사전에 뭐라고 되어 있나 오늘 아침에도 확인해 보았어요.(청중 웃음) 그런데 그렇게 안 쓰여 있어요.(청중 웃음) 그리고 괄호를 딱 해 가지고 그러니까 예를 들면서 괄호를 해 가지고 “가을에는 표범의 무늬가 아름답게 변화하는 것을 비유하여”라고 나와 있어요. 아닌 것 같아요. 거꾸로 제가 숙제를 한번 내 드려 볼게요. 가을에 표범의 무늬가 어떻게 변하길래, 여름이나 봄에는 까만 점이 가을에는 하얀 점으로 바뀌고 이렇게 그 까맣고 하얀 점이 반대로 바뀌나, 어떻게 변하길래 지금까지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고 또 지금까지의 모습이 한순간에 변하는 그런 예로 ‘표변’이라는 말이 쓰였을까. 그런데 가을에 그 털빛이 아름답게 바뀌는 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때는 조금 섭섭하고 이렇게 조금 더 정확한 어떤 근거라든가 아니면 좀 그 예문이라든가 이런 것을 들어 줬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저의 어릴 때는 이런 것 있잖아요. ‘생명’이라는 말을 처음 배우게 되면은 사전에는 ‘생명’을 뭐라고 풀이했을까 그거 또 찾아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워낙 간단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니까 그럴 때도 저희들이 알고자 하는 욕구에 비해서 너무 인색하게 조금 나온 점 좀 애석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렇게 언어들을 하나씩 배우면서 저는 그래서 지금도 또 한 번 되풀이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전을 시집처럼, 그러니까 어떤 분들은 소설을 쓰거나 그러면은 굉장히 많이 어휘가 필요한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말을 모았는가 이렇게 물으시곤 하죠.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일부러 말을 찾아서 막 헤매다니거나 아니면 그거를 억지로 지어내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알게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단순히 언어의 음향에서부터 오는 느낌을 그냥 저 나름대로 한번 조립도 해 보고 꾸며도 보고 그러면서 저절로 언어에 굉장히 친화감을 가졌던 그것이 사실은 우리말을 제 마음 속에 늘 받아들이고 담고 그 말의 씨앗들이 또 씨앗을 퍼뜨리는 어떤 그러한 촉매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이 『혼불』을 쓰기 시작한 거는 1980년 봄 4월이었습니다. 날짜도 기억 나는데 4월 5일이었어요. 그런데 물론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제가 『혼불』을 쓴 건 아니고 그때 비로소 착수를 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착수는 그때 했지만 제가 사실은 그때가 우리나라 셈 나이로 서른네 살이었거든요. 그런데 서른네 살 어느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혼불』의 첫 줄을 쓸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 벌써 청년기 때부터도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 제가 저 나름대로 알게 모르게 메모를 많이 해 두었지요, 이 『혼불』의 소재에 대해서. 제목을 그때 『혼불』이라고 붙이지는 않았어요. 그냥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느끼고 또 쓰고 싶었던 욕망을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제 나름대로 마음의 상자에 담아 두었던 그것들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메모하고 또 저 나름대로 자료를 모으고 했던 시간이 사실은 상당한 몇 년 동안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것만으로 다가 아닌 것이 제가 아주 어려서 멋도 모르고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서 큰집(이나) 외갓집의 할머니 장롱의 두루마리 가사집(歌詞集) 같은 것들이 저한테는 이미 그때 하나의 태동(胎動)이 되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감히 말씀드리기를, 저보고 『혼불』을 쓰는 데 십칠 년 걸렸다고 많이들 얘기해 주시는데, 사실은 저는 십칠 년 걸렸고 오십 년 걸렸어요. 제가 이제 47년생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쉰한 살이거든요. 그런데 만으로 하면 딱 50년이지요. 그러면 십칠 년 걸렸고 오십 년 걸렸다. 그러나 감히 또 말씀드리건대 저와 같은 사람이, 그 어떤 사람은 음악의 음(音)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실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림의 색채에 대해서 아주 또 감도(感度)가 높으실텐데 저는 왜 유난히 이렇게 언어에 그렇게 민감하고 그 언어에 감격하고 언어에 황홀하고 언어에 절망할까. 이러한 인자(因子)로 태어나기까지는 또 이와 같은 성품을 가지고 이와 같은 인자를 가지고 있었던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가 부모로 모신 덕분일 거예요. 그러면 그 부모님은 또 그와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게 하신 또 부모님이 계실 것이고…. 그래서 저는 또 생각하기에 저 윗대 윗대 윗대를 거슬러올라간 저의 조상들이 그 마음에 품고 있었던 염원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루셨고 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명희를 낳으셨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하나 이렇게 여기에 서 있다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또 몇 백 년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 단순히 그렇게 또 몇 백 년이 걸렸다고만 생각할 수 없는 게 제가 이 『혼불』을 쓰면서 사실은 단군(檀君)에 대해서도 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공부를 단군에 대해서 한 일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단군 신화 얘기가 저는 오십이 다 된 지금 이렇게 구체적으로 저를 살게 하는 큰 힘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것은 그냥 하나의 옛날 얘기, 아니면 어떤 개국 설화 정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제가 이 글을 처음 쓰게 된 동기를 생각해 보면 저의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선각 지식인이었지만 참 불우하셨어요. 그래서 마흔여섯에 일찍 돌아가셨는데 제가 그때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미처 알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사실은 아버지 찾아서 가는 길고 긴 도전이 바로 이 『혼불』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사실 스무 살 때까지 아버지와의 대화란 뭐 숙제했냐, 밥 먹었냐, 크게 웃지 마라, 뚱땅거리며 걸어다니지 마라 이런 말씀들, 안 그러면 학교 갔다 왔어요, 이런 아주 어렵고 한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라고 하는 존재와 저라고 하는 존재가 정말 긴밀하게 만나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구성원으로 서로 그냥 공동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저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거꾸로 이제부터라도 아버지를 찾아보고 싶다 해서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 이 『혼불』이었는데 그러면 왜 내가 아버지 찾는 길로 이 『혼불』을 생각했을까.
  제가 아홉 살 때의 기억이에요. 제가 아버지를 따라서 추석에 큰집에를 갔어요. 큰집에를 갔는데 저의 아버지와 저하고 스물다섯 살 차이이기 때문에 아홉 살 먹은 저의 아버지는 서른네 살이셨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서른네 살은 너무도 예쁘고 젊은 나이인데 아홉 살 때 서른네 살은 정말 아주 어른이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큰딸인데 어머니는 추석빔으로 아주 예쁜 옷을 사 주셨어요. 플레어 스커트에다 그 초록색 덧옷을 다 해서 입혀 가지고 큰집 동네에 보냈는데 추석 전날쯤해서 비가 좀 왔었어요. 저의 아버지는 좀 어려우셨어요. 지금 살아 계시면은 (사이) 일흔여섯이시네요. 그런데 그렇게 그때 어른들은 어려우셨어요. 딸 손자 봐 주지도 않으셨어요. 아버지 따라서 이렇게 큰집에를 가는데 길이 이제 논길인데 아주 미끄러워 가지고 제가 새로 사 신은 운동화 위로 흙이 톡톡 튀면서 신발 버리는 게 영 신경이 쓰였어요. 깨끗한 새 신발인데…. 그래 가지고 단발머리 제가 걸어가면서 “아유, 아유” 그러면서 가는 거예요. 아버지는 한 말씀도 않고 옆에 가시는데요. 제가 드디어 운동화 짝이 하나가 벗겨졌어요. 왜 시골길이라는 게 차지잖아요. 짝 들어붙으면서 제 발만 빠지고 운동화가 ― 옛날에 신발도 크게 사 주시잖아요, 딱 맞게 안 사 주시고 ― 발이 벗겨져 가지고 그만 ‘절퍽’하고 논바닥 길을 밟으니까 제가 저도 모르게 도회(都會)내기 티를 내면서 “아유, 무슨 길이 이렇게 생겼느냐”고 제가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투정이었을텐데 그 순간에 아버지가 그냥 딱 서시는 거예요, 거기. 그러면서 탁 이렇게 보시고 너무나 엄숙하고 너무 엄격한 모습으로 “이 길이 어때서 그러냐”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저는 일단 운동화 버린 것부터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는데 발까지 빠져 가지고 이건 엉망이 됐잖아요. 그런데 그것 버린 것만 아까워 가지고 “어그” 이렇게 서 있는데 딱 저를 냉정하게 바라보시면서 “이 길이 어때서 그러느냐” 그 모습도 지금 선해요. 아마 지금 저의 아버지께선 돌아가셨지만 제가 이렇게 서서 얘기하는 걸 보신다면 미소를 지으실 거 같아요. 그런데 손까지 딱 이렇게 하시면서 “이 길이 어때서 그러냐고”. 저는 굉장히 당황했어요. 그랬더니 저의 집 큰집 동네가 ‘노적봉’이라는 산이 하나 있고 『혼불』에서는 ‘서산’이라고 표현됐죠. 또 ‘벼슬봉’이 있어요. 새카만 산인데 무섭게 생긴 산인데 그걸 이렇게 가리키시면서 이 동네를 한번 보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조선 천지 다 다녀도 이렇게 좋은 동네는 없다고. 저게 노적봉이고 이게 벼슬봉이고 그리고 저 마을은 아버지가 나서 자랐고 이 길은 아버지도 학굘 다녔고 할아버지도 이 길을 다니셨고 증조부도 다니셨고 이 길로 우리 조상들이 다 다니신 길이라고…. 이 얼마나 좋은 길인데 그러냐고 그러시는데…. 그때 저는 너무 엄숙했어요. 그때의 그 엄숙함이 지금도 제게 남아 있어요, 사실은.
  그리고 제가 그때 느낀 건 뭐냐 하면 ‘아, 아버지의 고향을 함부로 말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거구나, 또 아버지 고향은 굉장히 좋은 거구나’ 저는 그걸 느꼈어요. 그런데 혹시 여러분께서 이렇게 들으시면은 “얼마나 좋은 고향인지 답사를 한번 가 보자” 하신다면 너무 실망을 하실 거예요. 너무 평범한 동네예요. 초가집 몇 채 있고 돌담이 있고 고샅길이 있고 노적봉·벼슬봉 어디 가나 동네 뒤엔 산이 있잖아요. 또 돼지막도 있고…. 호박넝쿨도 있고 무슨 꽃 몇 송이 피어 있고….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동네를 그렇게 조선 천지 다 다녀도 이렇게 좋은 동네는 없다고 얘기하신 그 음성이 지금도 역력하고 정말 그래서 그때 제 마음에 ‘아, 큰집은 굉장히 소중한 곳이구나!’ 이런 거를 제가 느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인제 큰집·작은집에서 작은어머니 큰어머니들이 하시는 말씀들을 굉장히 제가 소중하게 담아 듣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마을이 너무나 저한테 소중하고 마을이 소중한 만큼 그 마을에 살고 계신 분들이 소중하고 살고 계신 분이 소중한 만큼 그분들이 하신 말씀이 제겐 소중했어요. 
  지금도 역력한 게 이 『혼불』에 나오는 인월댁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젊어서 혼자되셔 가지고, 상부(喪夫)한 것도 아니면서 그냥 혼자돼서 일생 흰옷을 입고 베만 짜는 그 인월댁으로 나오는 그분이 사실은 제 마음 속의 모델인 저의 큰어머니세요. 큰어머니가 스물 몇 살 안 되는 초반에 저의 큰아버지를 여의셨어요. 그리고는 칠십이 넘어 돌아가셨는데 일생 그렇게 베를 짜셨어요. 그런데 많이도 안 짜고 꼭 그냥 한두 필 조금 짜 가지고 머슴이 장에 갖다 팔아 오겠다고 주시라고 하면 남들은 이만큼씩 갖고 나오는데 그렇게 조금씩만 갖고 오셨대요. 그래 남들이 “아니, 많이씩 베를 짜면은 조금 생활이 넉넉할텐데”라고 하셨다지만 일생에 그렇게 소리도 소문도 없이 그 북향으로 난 방에 혼자 베 짜다가 돌아가신 우리 큰어머니에 대한 그 화두(話頭)가 이상하게 ‘왜 그랬을까, 그분은’ 그 생각을 저에게 하게 했는데 그분의 음성 중의 역력한 게 제가 “큰어머니” 그러면 그 조그마한 창 장지문을 열면서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 그러세요. 그게 남원 사투리거든요? 남원에서는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하고 그 ‘호랭이’를 가지고 음정을 조정하면서 뜻을 다 전해요. “아이고, 호랭이” 그러면 또 “웃기네” 이런 뜻이고요, “호랭이” 이러면 “웃기지만 귀엽다” 이런 뜻이고요, (웃음)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 그러면 또 “어서 와라”고요. 그 음조를 가지고 상대방의 뜻을 우리가 얼마든지 알아들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창문을 이렇게 문장지를 여시면서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 하면 반갑다는 얘기예요. 어서 오라고. 그게 그만큼 그 동네에 호랑이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역력한 게 저의 큰어머니가 홀로 외롭게 베를 짜시다가 일생에 자녀도 없고 또 큰 집을 지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똑같이 홀로 되신 분이었지만 『혼불』에 나오는 중요한 주인공이 ‘청암부인’이라는 분인데 종가집의 종부시죠? 그분도 저의 할머니십니다, 사실은. 그런데 ‘강골 할머니’라고 택호가 그러셨는데 제가 여기서는 ‘청암부인’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저의 강골 할머니는 열아홉에 혼자되셨어요, 정말. 결혼하신 지 사흘 만에. 그랬는데 그렇게 홀로의 몸으로 정말 당신의 가문을 일으키고 재산을 크게 불리시고 온 남원군 내에서 ‘여중군자’(女中君子)라고 그렇게 칭호를 들으시고 그리고 당신의 도량으로 정말 그 고을의 빛이 되셨죠.
  그러면 전 항상 왜 똑같이 혼자되셨는데 한 분은 저렇게 큰 사업을 일으키시고 한 분은 당신 자신의 몸을 가릴 베 정도 짜다가 돌아가셨을까. 무능해서 그랬을까, 유능해서 그랬을까. 그런데 그 두 분의 삶이 저한테 얼마나 큰 그 숙제를 주셨는지…. 사실은, 이제 읽으신 분은 혹시 그 장면이 기억이 나시죠. ‘젖은 옷소매’라고 그래 가지고 청암부인하고 인월댁하고 둘이, 청암부인 임종 직전에 둘이 말씀을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저로서는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써 본 장면인데 청암부인 같으면은 “나는 나를 내 뼈를 내 홀로 일으키리라”하고 크게 이루고자 살다 간 분이고 인월댁 같은 분은 “나를 소멸시키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다 가신 분들이거든요. ‘성취’와 ‘소멸’ 사이는 도대체 이 생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저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청암부인이라든가 인월댁을 저렇게 구구절절이 제가 추적하고 그리워하고 또 써 나가고 하는 그 힘이 바로 그 “호랭이 물어가네” 했던 그 음성, 그 음성이 제게 깊이 심지 박으면서 거기서 씨앗들이 퍼져 가지고 이러한 무궁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거든요. 그래서 그 소중한 고향에 살고 계신 소중한 분들의 소중한 말씀, 그걸 하나라도 캐서 건지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도 제가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되면은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말을 써 보고 싶다, 그것이 저의 염원이었어요. 저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스토리를 써 보고 싶다는 것도 염원이었지만 말을 써 보고 싶다 이것이 저의 염원이었어요.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말이라는 거는 사실은 정신의 지문(指紋)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말을 쓰느냐가 그 사람의 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보통 왜 그 사람 증명할 때 지문을 찍잖아요. 그리고 어떠한 횡사를 당하더라도 지문 검사를 하면 그 사람 신분이라든가 어떤 존재를 추적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최종적인 그 기초 단위가 뭘까. 저는 그걸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언어는 정신의 지문일 뿐 아니라 한 나라의 모국애 정신은 그 나라의 모국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모국애 정신을 잘 담아 놓고 모국어를 제대로 잘 쓰고 모국어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그러한 나라야말로 정말 그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정신이 살아 있어야 몸이 움직이지 않겠어요? 이 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통 요즘은 그 쓰임새를 주로 많이 생각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엇에 쓰겠느냐 쓸모가 있으면 좋은 것이고 쓸모가 없으면 별로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쓸모가 있다 없다라고 하는 몸집, 어떤 드러난 그 용도 이전에, 요새 정치적으로도 많이 쓰지만 ‘몸통’ 있잖아요, 몸통. 그런데 이 몸통이 과연 뭘까, 그런 생각을 해 볼 때 우리들이 어떤 그 쓸모·몸짓을 있게 하는 이 몸통이라는 건 정신인 것 같아요. 저는, 정신. 그런데 정신을, 물론 언어라는 것도 하나의 쓸모겠지만, 정신을 가장 근접하게 드러내서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하는 게 저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자체가 정신 자체는 아니죠. 하지만 정신이라고 하는 거를 어떤 하나의 모양을 갖추어서 드러내 보여 주는 거는 저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은 『혼불』을 쓸 적에 사람들은 풍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또는 무슨 다른 말씀으로 역사 또는 다른 말씀을 많이 해 주시죠. 그런데 저는 지난번 어떤 신문에서 인터뷰할 때 그랬어요. 그 많은 말씀 중에서도 저는 “저의 소설이 모국어로 읽히길 원한다”라고 얘기했어요. 정말.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저의 이 조그마한 소설이 우리 모국의 모국어로 바쳐지길 원해요. 그리고 제가 살아 있는 한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모국어에 저를 바칠 생각이에요, 정말. 그런데 그런 말씀들을 하나하나 제가 그렇게 건져 올리고 캐 올린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결국에는 그 사람 사람살이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와 그 사람들의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건지게 되었는데, 사실 『혼불』이라는 제목도요 실은 국어사전에는 안 나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기대를 해 봅니다. 오늘 이렇게 소중한 자리에 저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이 기념으로라도 이 다음에 ‘혼불’이 사전 편찬이 될 때에는 혹시 ‘혼불’이라는 단어가 한 귀퉁이 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는데 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혼불’이라는 말도요,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 큰집에 가서 할머니랑 또 외갓집에 갔을 때 또 저의 이모들과 앉아 있을 때 일상적으로 그냥 ‘혼불’이라는 말을 해요. 그런데 막상 이 책이 나온 다음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혼불’이라는 말이 정말 있느냐, 그리고 조어(造語)가 아니냐, 그리고 참 뜻은 좋고 상징적인데 얼른 실감이 안 된다, 무슨 뜻이냐 이렇게 물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질문에 놀랐어요. 왜냐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냥 ‘혼불’이라는 말이 몸에 익어 있었거든요. 그리고 심지어는 저희들이 국민학교 다닐 때는 ‘혼불’ 장난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했냐하면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속에는 누구한테나 ‘혼불’이 있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게 되면 죽기 사흘 전에 몸에서 ‘혼불’이 먼저 나간대요, 사람은 살아 있지만. 그러면 혼불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혼불’이 나간 다음에는 반드시 사흘 안에 초상이 난대요. 그리고 길게 봐도 석 달 안에 초상이 난답니다.
  그러면은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징적으로 생각할 때 혼불은 사실은 분류해서 한두 마디로 할 수는 없지만 정신의 불, 생명의 불, 존재의 불, 혹은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느끼고 살 수 있게 하는 어떤 감성이라든가 바탕이 되는, 어떤 생명소의 불, 또는 무슨 그 사람을 어둡고 미련하게 하지 않고 밝고 환하게 해 주는 어떤 힘의 불, 무슨 그런 많은 생각들을 할 수가 있었죠.

연구원들에게 『혼불』에 사인을 해 주는 작가

  그런데 사실은 혼불이 몸 속에 살아 있다는 것도 너무나 소중한 일이지만 그 혼불이 나가 버리고도 사흘은 산다는 게 저한테는 충격적이었어요. 불은 나가 버렸는데, 불 나가면 죽은 사람인데, 사실 아주 숨이 떨어지지 않고 심장도 뛰고 손도 만져 주면 거기 형체가 있고 하니까 산 줄 알 것 아닌가. 이미 가장 소중한 혼불은 나가 버렸는데 껍데기만 살아 남아 가지고 눈 뜨고 껌벅껌벅하고 미음 주면 먹고 이러니까 살아 있다고 믿는 그 형체, 그것이 저를 붙들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산 줄 알고 이렇게, 예를 들면요, 어젯밤에 제 혼불이 나가 버렸는데 제가 이렇게 서 가지고 산 줄 알고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얼마나 무서워요. 그리고 또 얼마나 충격적인 일일까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서서 얘기를 한다고 해서 정말 제 목숨에 지금 혼불이 들어 있을까요? 빈 껍데기 말만 열심히 하고 있다면 이미 혼불이 나가 버린 불 꺼진 창문이 이렇게 서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한 개인이나 집안 간이나 가문이나 지역사회나, 혹은 역사 속에서 문명 속에서 한 시대 속에서 혼불은 나가 버렸는데 형체는 남아 가지고 산 줄 아는 것만 같은 어떤 그런 자연인이라든가 혹은 집안이라든가 혹은 나라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됐어요. 혹은 작업도 마찬가지지요. 혹은 출퇴근하는 근무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혼불이 나가 버린 상태가 되어 있는 그 몸에 대해서 참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이 소설을 쓸 때 사실은 『혼불』이 밝고 환한 세상을 꿈꾸면서 거꾸로 가장 어둡고 그 암울한 어떤 불 나가 버린 상태를 제가 이제 무대로 삼게 된 것이지요. 그랬을 때 일제 36년도 사실은 우리 역사 속에서는 혼불이 나가 버린 어떤 그런 한 시기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러한 그 시대를 쓰고 싶은데 그러한 상상도 어렸을 때 그 ‘혼불’이란 말을 듣고 컸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장난을 어떻게 했느냐면은 누구랑 막 놀다가 “야, 우리 혼불 보자. ” 그래요, 진짜. 그러면 어떻게 했냐면 눈을 감고 이 눈두덩 들어간 데 있잖아요. 여기를 손가락으로 검지로 꼭 누르면서 감은 상태에서 이 눈을 뒤꼭지까지 흘길 수 있는 한 흘기면 여기 파란 불빛이 보여요.(일동 웃음) 그럼 그걸 ‘혼불’이라고 했어요, 저 어렸을 때. 그럼 막 누르면서 “야, 보인다, 보인다” 막 이러다가 왜 어린애들이니까 또 안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어마, 안 보여!” 하면 “너 죽었다” 막 이러고 그랬던 것이 몸에 아주 익숙했어요. 그래서 특별하게 ‘혼불’이라는 말을 따로 배우거나 ‘혼불’이라는 말을 무슨 경험을 하거나 해서보다 그냥 익숙하게 체화(體化)가 돼 가지고 저도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혼불이 환한 상태와 혼불이 나가 버린 상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이 혼불이 나가버리고도 사는 사흘이라는 게 단순히 24×3의 사흘이 아니라, 그것이 석 달일 수도 있고 삼 년일 수도 있고 삼십 년일 수도 있고 삼백 년일 수도 있고 혹은 삼천 년일 수도 있고…. 그러면 역사 속에서 혼불이 환한 역사와 혼불이 나가 버린 역사 그것도 생각하게 되고 존재에 대해서 마찬가지가 되고…. 그렇게 저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다 가는 한 삶의 바구니에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일생 저의 가슴을 꿰뚫게 했던 그런 언어를 저는 사실 혼불로 삼고 있는데 그것도 낱말 한 마디가 저에게 이렇게 큰 세상을 던져 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와 같은 말 중의 또 하나가 ‘꽃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꽃심’이라는 말이 사전에 물론 없어요. 그런데 저는 굉장히 그 말도 좋아요. 그러고 저희는 흔히 그 말을 쓰고 있거든요. 그런데 참 그 말씀드리기 전에 묘한 게 그 혼불이라는 말이 이렇게 체화(體化)돼서 육화(肉化)돼서 익숙하게 쓰는 곳은 전라남북도가 가장 크고요, 경상도만 가더라도 조금…. 혹시 경상도 분 계신가요? 경상도에서 익숙하게 쓰셨는지 모르겠어요. 경상도가 고향이신 분 저의 책 낸 출판사 한길사 사장님도 경상도이신데 듣긴 들으셨다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처럼 막 꼬마들이 혼불 장난하자고 할 정도로 그렇게 밥이나 물같이 일상적으로 익숙하지는 않으시고 들은 일은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그런데 또 같은 출판 쪽에 계시는 사장님이신데 충청도 보은(報恩)이 고향이신 분인데 집안도 아주 벌족(閥族)하시고 학문이 있으신 집안인데요, 저보고 그러세요. “‘혼불’이란 말이 실제 쓰입니까, 이렇게.” 그런 걸 보니까 충청도에서도 그 말을 활여(豁如)하게 안 쓰는가 봐요. 경기 지역은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경기 지역도 그렇게 많이 쓰이진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전라남북도 가면 혼불에 아주 그냥 흥건히 잠겨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요즘엔 그런 생각도 해 봐요. 저는 혼불을 모른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이상하다 그 참 ‘혼불’이란 말이 전라남북도에서만 이렇게 밀도 있게 쓰이나, 그렇다면 역사하고도 이 단어가 상관이 있을까, 전라남북도는 참 불우하고 서러운 그런 억압을 당한 일도 많고 또 지금도 사실 제가 전주라서가 아니라 좀 대접을 못 받고 있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럼 또 설움과 더불어 무슨 이런 그 『혼불』이란 말이 훨씬 강하게 자중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와 같은 말로 ‘꽃심’이란 말이 있는데 제가 이제 『혼불』에 소제목으로 책 두 권에다가 “‘꽃심’을 지닌 땅”이라는 말을 붙였는데요, ‘꽃심’도 뭐냐면은 그건 물론 제가 그랬어요. 사전을 몇 번을 읽고, 꼭 있을 텐데 왜 이 말이 없을까 안타깝고 아까워 가지고 사실은 여러 번을 찾아봤고 이 꽃을 가지고 제가 뽑아 가지고 들여다보고 생물도감을 봐도 ‘꽃심’이란 말은 없어요. 뭐 ‘꽃받침’, 무슨 ‘꽃잎’ 이런 말은 있지만 그런데 ‘꽃심’이라고 했을 때 모르시겠어요? 그냥 사전에는 없지만 여기서 제가 “‘꽃심’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했을 때 “그런 말은 참 이상하고 낯설다” 이거보다도 있을 법하지 않으세요? 연필도 심이 있잖아요, 연필심. (일동 웃음) 그게 뭐가 어려운가요, 연필심이 있잖아요. 그러면 이 꽃에도 반드시 심이 있지요. 그것이 꼭 구체적으로 이거 제가 꽃밭을 보여줄 수 없지만 무슨 머리카락이다 잎사귀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구분이 안 되더라도 이 꽃을 꽃답게 하는 힘, 꽃심이니까 ‘심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양복을 입어도 어깨에다 심 넣는다고 하잖아요. ‘심’이라는 말 우리가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왜 꽃이라고 심이 없겠어요. 연필도 심이 있고…. ‘꽃심’은 물론 한자말은 아니에요. ‘꽃심’ 그냥. 그리고 또 “힘 좋다” 이 말을 사투리는 ‘심’이라고 하잖아요. “심 쓰지 마” 이러고. “아, 심이 장사다” 그럴 때도 ‘심’, ‘힘줄’도 ‘심줄’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걸 저는요 많이 말할 수 있어요. 꼭 연필심 같은 “꽃의 중심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또 “꽃 마음, 꽃을 꽃답게 하는 꽃스러운 어떤 그 꽃의 마음” 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또 그 “꽃이 가지고 있는 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 ‘꽃심’이라는 말도 사실은 물리적으로 외형적으로 어떤 모양새를 구체적으로 이것이라고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지만, 그 말뜻이 얼마든지 우리 가슴에 호소력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얼마든지 쓰일 수 있는 말이 저는 ‘꽃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어떠한 환난이나 압박이나 설움이나 무너짐이나 부서짐이나 혹은 어둠이나 이러한 것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어떤 씨앗처럼 자기 마음을 밝히고 있는 그런 마음, 또는 그런 힘” 그러니까 그 사람은 꽃심이 있는가 보다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등심에도 ‘꽃등심’이 있는데(일동 웃음) 그렇잖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 왜 ‘꽃심’이란 말이 없을까 그냥 너무나 애가 타요. 에, 있든지 말든지, 난 있으니까….(일동 웃음) 사전에 없으면 없나요, 뭐. 그러니까 그냥 저는 써 버린 거예요, ‘꽃심’.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한 예화가 뭐냐면 제가 어디 가나 연(鳶) 이야기하기를 참 좋아해요. 그래서 전 연 전도사가 되고 싶은 그런 심정까지도 가지고 있는데 이 꽃심과도 관계가 있고 혼불과도 관계가 있는데 우리 민속 중에 우리가 어렸을 때 연 참 많이 날렸고 또 연 모르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 연은 꼭지연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방패연, 방패연” 그랬는데 그거는 우리나라 연을 연구하시는 분의 말씀이 우리나라 연은 ‘방패연’이 아니라고 그러데요. ‘꼭지연’이라고 해야 된대요. 그런데 저는 또 성격이 원고를 쓸 적에는 꼭 만들어 봐야 돼요.(웃음) 또 실제로 제가 둘러메고 거기를 가 보거나, 혹은 또 손으로 만들어 보거나, 무슨 이렇게 좀 유물론적으로 제가 뭔가 감지(感知)가 돼야 거기서 감응이 생겨 가지고 이제 그거를 실감 나게 쓸 수가 있는데 제가 『혼불』에서 ‘액막이연’이라는 말을 이제 쓰게 됐어요.
  강실이라고 하는 불우한 여인이 정말 그 운명의 불길한 어떤 예감 때문에 무당이 저 사람 강실이 작은아씨 이렇게 이제 그 액막이 해 주라고. 그러니까 액막이연을 만드는 장면인데, 그때가…. 제가 밤에 원고를 써요, 지금도. 그래서 꼭 시간표가 있어요. 한 열한 시쯤 되면은 좀 커피도 마시고 이제 막 책상도 치워 놓고 그리고 열두 시 자정이 되면 그러니까 참 이상하죠. 그런데 이 밤에 제가 이 ‘액막이연’을 쓰게 됐는데 사실 이제 연 만드는 방법이 아주 건조체로 몇 자 쓰여져 있어요. 1. 어떻게 해라, 2. 어떻게 해라, 3. 어떻게 해라. 그런데 그 중의 1번이 뭐냐면 1번이 뭐겠어요, 연 만들 때 1번요? 종이를 준비해야죠. 너무 간단하죠? 근데 가로 2, 세로 3의 비율로 종이를 준비한다. 그러면 저는 물론 창호지를 준비를 하죠. 그런데 깨끗하고 하얀, 아무도 때 묻히지 않은 그 종이를 갖다가 놓을 때 저는 그 순간에 이렇게 사람으로 나서 소설을 쓰고 있는 최명희하고 그냥 한 장 종이로 종이 한 장으로 제 책상 앞에 와서 놓여 있는 이 종이하고 그 순간에 전 존재(全存在)로 딱 만나는 그런 전율을 느껴요.
  지금도 저는 커피 마실 때 사람들이 혹시 선생님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보통 저는 커피라고 하는 게 콩 알맹이가 하나 땅에 떨어져 가지고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기 어둠을 견디다가 싹이 나 가지고 비바람 부는데 자라나서 꽃 피워 가지고 열매 맺어서 그걸 빻아서 볶아 가지고 커피라는 게 하나 생기잖아요. 몸에 좋다 나쁘다는 나중 얘기고요. 그럼 그 커피가 어떤 한 사람 앞에 이렇게 빚어져 가지고 제 앞에 놓여져 있을 때 저는 참 이상하게 커피라고 하는 게 생겨나서 여기 오기까지 그 길고 긴 과정을 참 이렇게 전 느끼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차 마시면서 커피를 만나는 느낌을 사랑하거든요. 그런데 대체로 커피가 탁 놓이면 맛도 볼 것도 없이 그냥 막 이렇게 프림 숟가락으로 넣고 설탕 넣고 막 젓잖아요. 아까워요. 더 큰 결례가 되지 않는 한 심지어 어떤 때는 어른한테도 “어머, 잠깐만요.” 이렇게 해 가지고 두고두고 제가 후회한 일이 있어요. 참 버릇없이 각자의 취향이니까 어떻게 마시든지 가만 두지 왜 나는 이렇게 이상한 사람일까. 그런데 왜냐하면 어떻게 저 커피를 그냥 어떻게 생겼나 단 한 모금만 좀 한 방울만 고 생긴 고대로 딱 맛보고 프림 넣고 설탕 넣고 해도 안 늦겠는데 어떻게 앞에 왔는데 그냥 그 본맛은 하나도 느끼기도 전에 마구 섞어 가지고…. 어, 참 아까워요, 지금도 진짜. 혹시 나중이라도 제 생각이 나시면 커피 마실 때 한 번쯤은 커피대로 한 번 이렇게 좀 맛을 봐 주신다면 커피도 저 생겨난 보람을 할 거예요.(일동 웃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말씀도 있잖아요? 입장을 바꿔서 내 자신이 커피 콩알이라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 길고 긴 세월을 커피라고 살아왔는데(일동 웃음) 드디어 자기가 생겨난 이제 그 하나의 미학적 완성의 순간에 찻잔 속에서 그 맛이 제대로 보여지기도 전에 막 뒤섞여 가지고 뭐가 뭔지도 모르게 섞여져 넘어간다면 전 아깝고 애석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왠지 제 책상 앞에 놓여 있는 그 종이 한 장, 그것도 물론 손으로 떠서 제 책상 앞에 온 한지(韓紙)일 수도 있고 또 양지(洋紙)를 떠낸 것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하얀 종이 한 장이 제 책상 앞에 딱 놓일 때 종이라고 하는 전(全) 존재가 제 책상 앞에 놓인 걸 전 느꼈어요. 꼭같은 존재죠. 그런데 연 만드는 방법에 2번이 뭐냐면은 이 깨끗한, 흠도 티도 없는 종이를 반절로 접으라는 거예요. 반절로 접으라는 거죠. 그런데 얼마나 그 순간에 이 종이를 접는 게 아까운지…. 그러면 저보고 “아유, 소설 쓰는 티 낸다. 그 종이 한 장 접는 게 뭐가 아까워” 할 수도 있겠지만 만 원짜리 새 돈, 은행에서 막 찾은 신권(新券), 그거를 그냥 아무렇지 않게 구겨 넣는 사람이 있을까요? 혹은 괜히 반절로 접는 사람이 있을까요? 적어도 만 원짜리 종이 한 장 새 돈은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라도 그냥 만 원짜리로 넣고 다니고 싶을 거예요. 그리고 그거를 처음으로 반절로 꺾지 않으면 안 될 때는 아마 아까운 맘이 들 겁니다. 저는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순하고 선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종이를 반절로 턱 꺾어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두는 게 아니라 정말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참 저는 본심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걸 반절로 딱 접으면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은 ‘최초의 좌절’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종이라고 하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하는 좌절, 예를 들면 우리 사람으로 말한다면 고등학교에 떨어진다든가 대학교에 떨어진다든가 아니면 일생 모은 돈을 갑자기 잃어버리게 된다든가 부모를 여읜다든가 어떤 그 운명에게 폭행당하는 뜻밖의 순간이 있지 않겠어요? 그 순간에 정말 이 허리가 꺾이는 절망을 느끼겠죠. 그런데 여기까지가 아니고 한 번 더 접으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똑같은 일을 두 번 당한다는 건데 사람은 한 번은 당하지만 두 번 당하라고 하면 억울하고 그건 정말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죠. 그러면 저는 여기서 무한대로 저의 상상력을 확산시키는 거예요. 똑같은 일을 여러 번 당하는 어떠한 경우.
  그런데 거기까지가 다가 아니에요. 이 종이는 제가 이 소중한 질문지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접을 수가 없는데 사실은 그거를 흰 종이가 있다면 해 보여 드리고 싶은데…. 두 번 접었죠? 그 다음에는 가운데를 도려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한 번 꺾여, 두 번 절망해, 세 번째 도려내는 경우를 생각을 해 보세요, 자기의 삶에 한 번 대입(代入)을 해서. 사람이 같은 일 두 번만 당하고 세 번만 당하면 다 늙는대요. 그런데 이거는 이 종이가 한 존재라면 심장을 그대로 도려내서 심장이 빠져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등학교·대학교 떨어진 것 혹은 뭐 집이 불이 나고 이런 거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사건이죠. 그래서 심장을 도려내 버린 그 동그라미를, 요걸로 대신해서 예를 들죠. 이렇게 동그랗게 도려냈어요.
  이 도려낸 것이 상처일 수도 있고 상실일 수도 있고 절망이고 비밀이고 비극이겠죠. 그런데 보통 요새는 상사병이 없대요. 왜냐하면은 너무나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실연하면은 바로 너무나 순식간에 똑같은, 더 멋진 사람을 구해다가 본드로 붙여 가지고 상처가 표가 안 난대요. 그렇게 농담을 할 정도의 세상에 이거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처요, 상실이요, 정말 이건 비극인데 혹은 어떤 수치, 절대로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소중한 걸 잃어버린 이 순간을 이거를 갖다가 얼른 감추거나 혹은 버리는 게 아니고 그 연 만드는 방법에 보면 잘 두라고 되어 있어요. 잘 두라고 되어 있는데 잘 두는 법도 책상 밑이나 양말 속이나 안 보이는 겨드랑이에다 숨기는 게 아니라 잘 두라, 그담에 거기다 색칠을 하라고 되어 있어요. 물론 만드는 방법이죠.
  그런데 저는 그걸 하나하나 하면서 점점점 전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나의 상처를 감쪽같이 메꿔 버리는 게 아니라 잘 두고 거기다가 색칠을 하는데 그 색칠이 빨간 칠, 파란 칠, 까만 칠, 무지개, 반달, 뭐든지 할 수 있는데요, 색칠해 가지고도 숨겨 둘 수 있다면 나 혼자서 이따금 꺼내 볼 수 있는 색종이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잘 둔 동그라미 종이가 이름이 ‘꼭지’래요. 그런데 이 잘 둔 동그라미를 이마에다가 붙이라는 거예요. 이 연의 이마에 갖다가 여기다가 붙이래요. 그렇다면 ‘주홍글씨’라는 소설 생각도 나시죠? 그래서 빨리 지워 버려야 되는 상처와 상실을 사실은 색칠해 가지고 이마에다 붙였는데 거기까지라면은 얼마나 그 연은 수모(受侮)겠어요?
  그런데 또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 색칠한 종이 붙은 그 이마에 따라서 연의 이름이 정해져요. 그래서 빨간 동그라미를 붙이면은 ‘홍꼭지’, 파란 동그라미를 붙이면은 ‘청꼭지’, 까만 동그라미를 붙였으면 ‘먹꼭지’, 반달로 오려 붙였으면 ‘반달연’, 태극 모양을 했으면 ‘태극연’. 그래서 내가 잃어버린 상처에 물들여 가지고 그걸 이마빼기에다 붙인 것이 나의 이름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내가 여기 서 있으니까 ‘저’라고 하는 몸뚱이의 이마빼기에 어떤 상처를 무슨 물을 들여 가지고 붙여 놓았는지 한번 지금 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라면은 얼마나 불행하고 서럽고 원망스럽겠어요?
  그 다음부터가 이 연의 비밀이에요. 그렇게 그 꼭지에다가 아미꼭지에다가 색깔을 물들인 종이를 붙였는데 사실은 연이라는 거는 이렇게 뜨거나 이렇게 뜨지 않고 사선(斜線)으로 이렇게 뜨지 않겠어요, 이렇게? 그러기 때문에 이 연의 이마가 가장 강한 바람을 받는 부분이래요, 최초로. 그래서 찢어지기가 제일 쉬운 부분이랍니다. 그런데 사실은 지금 꼭지에 물들여서 이마빼기에 붙이고 날아오르는 이 연은 이 이마가 이 연의 몸뚱이에서 제일 강한 부분이 된 거예요. 연의 몸이 한 겹, 그 다음 동그라미 한 겹, 색칠 한 겹, 풀칠 한 겹 해서 가장 찢어지기 쉬운 전방(前方)의 이마가 가장 강한 부분이 돼 가지고 어떠한 바람이 불어도 활개 치면서 날아오르는 그런 센 부분이 된 거예요. 또 절대 잘 찢어지지 않는대요. 
  그담에 여기 가운데 구멍 뚫린 부분은 사실 두 번째 바람이 와서 부딪히는데 그 부딪힘 때문에 찢어질 수 있는데 뚫려 있기 때문에 빠져 나가 버리니까 아주 굉장히 유연한 물결을 이룬대요, 바람이. 그 다음에 여기는 탁 부딪혀 가지고 바람이 못 나갔으니까 순간적으로 여기가 진동이 되지 않겠어요? 그 다음에 요 가슴으로 나가 버린 바람은 물결을 이루면서 이 이마를 채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멋있게 춤을 춘답니다. 그래서 비어 버린 가슴으로는 유연한 그런 물결 같은 춤을 출 수 있게 하고 상처를 물들여 붙인 이마는 강한 힘을 갖게 하고 그리고 높이높이 뜰 때 이 연에 뚫린 가슴으로는 하늘이 비치지요. 영원 무궁이 비쳐서 영원과 이 연이 한 몸이 되게 하는 그 놀라운 섭리가 이 우리나라 우리 늘 어려서부터 띄우던 방패연의 꼭지연에 들어 있는 거를 저는 발견하고서는 정말 그때 감격했어요.
  그때 새벽 4시쯤이었는데 원고를 거기까지 쓰면서 저도 모르게 막 막 울면서 쓰는 거예요. “상처가 우리에게 이렇게 엄청난 힘을 준다니 사람의 생애도 그러할까. 내가 잃어버린 것,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 영원히 비워 버린 그것이 사실은 내 이마에 큰 힘이 되어 주는가”하고 정말 『혼불』에 사람의 생애도 그러하랴 막 쓰고 있는데 이런 피부 살갗으로 이슬이 진흙처럼 맺혀 가지고 눈물이 눈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온 세포로 눈물이 막 배어 나오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새벽 한 4시 조금 넘었는데 그때 제가 이 세상에 제가 어떠한 일이 닥쳐도 저는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부적 같은 큰 힘을 얻었어요. 연이 있는 한 난 살 수 있겠다. 그렇다면은 이 최명희의 『혼불』은 사실은 최명희가 잃어버린 정말 결코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물들여서 이마에다가 붙이고 높이높이 날아가는 어떤 그런 꽃 같은, 새 같은 그런 연이 될까 정말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서는 참을 수가 없어서 저의 집이 아파트인데 계단을 내려왔어요. 내려와 가지고 정원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있는 신새벽이니까 막 어둡지요. 그때 봄에 네다섯 시니까 아주 어둡잖아요? 저의 아파트가 15층인데 캄캄한 절벽같이 세 동(棟)이 서 있는데 거기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막 울음이 목까지 차 올라 가지고, 제가 지금까지 원고 쓰는 데가 14층이거든요? 암자 꼭대기 같죠. 그런데 올려다 보니까 금방까지 이마에 진액이 맺히게 막 한 자 한 자 쓰고 있었던 제 창문이 커다란 붉은 연처럼 거기 떠 있는 거예요. 너무 가슴이 벅차 가지고 하염없이 오랫동안 울었어요. 그리고 너는 어디로 날아가려고 그 절벽 꼭대기에 이렇게 매달려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고 정말 그때 그 순간에는 제 자신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그리운 나’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게 이렇게 내 몸뚱이를 내가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내가 다가 아니고 정말 한 자라도 써 보고 싶었던 원고 쓰던, 글 쓰던 최명희가 저기 무슨 넋이 하나 불빛으로 어려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순결하게 자기를 바치면서 뭐 한 자 써 보고 싶어했던 그 사람을 여기 이 껍데기가 앉아서 그리워하는 그 절실한 경험을 저는 했었어요.
  그러면서 보통 그냥 『혼불』을 민속학의 민속학책 같다, 박물지 같다, 쉽게 말해 버리는 ― 뭐 쉽게는 아니지만 ― 그냥 간단히 한두 자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제가 정말 말씀 드리고 싶은 건 물론 연을 저는 저대로 그린다, 이렇게 띄운다 했지만 실제로는 연을 어떻게 만든다든가, 어떻게 띄운다든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연이라고 하는 그 모양 하나를 통해서 저의 삶을 건지고 싶었던 거예요. 심지어는 그것이 우리 역사하고도 연결이 되는 게 외침(外侵)도 많고 남북 분단이 되고, 지금도 정말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정말 혼란 속에서 이 와중에 살고 있는 이 나라 심장 빠진 것 같은, 일제 때 우리나라 심장 빠져 버렸었잖아요. 하지만 정말 우리나라의 이 상처가 우리 힘이 돼 가지고 높이높이 나는[飛] 앞날에 대한 그런 그 저의 간절한 염원까지도 그 연이 해원(解怨)시켜 줬죠, 사실은 그 날. 그런데 그 연의 꼭지, 그 붉은, 파란, 까만 물들인 그 꼭지, 또 연의 심장 빠져 버린 고 자리, 그런 것들이 꽃으로 말하자면 ‘꽃심’이겠죠, 사실은. 그러면 그러한 그 연의 혼불이라면 어떤 부분일까요? 우리 사람의 생애나 이런 연이나 혹은 이런 그 꽃이나 저는 반드시 그 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이란 다른 말로 하면 『혼불』이겠고 그러면 아, ‘꽃심’이라는 말을 정말 좀 사람들이 우리가 많이 좀 서로 이렇게 나눠서 알면서 노나서 알면서 우리 어떤 존재를 확인하고 또 발전시키는 어떤 그런 핵 그 씨앗이 됐으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저는 이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그 놀라운 힘들이 사실은 국어사전 같은 경우에는 그 그대로 그러니까 저는 지금 이렇게 참 서툰 말씀으로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이렇게 좀 몇 말씀드렸지만 국어사전은 이러한 낱말들을… ‘옴시래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네, 사전에 있나요? 이 전라도 사투리인데요, ‘옴시래기’, 얼마나 이뻐요. 이게 ‘모조리’라는 거하고는 좀 다르잖아요? ‘모조리’는 뭔가 ‘깡그리’ 이런 뜻이 있지만 ‘옴시래기’, “아유, 옴시래기 애기 왔구나!” “모두 다, 가득” 이런 뜻인데 얼마나 정감이 있어요. ‘옴시래기’, 그럼 귀엽잖아요. 우리 늘 쓰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사전에는 없어요. 네, 그래서 좀 우리의 그 넋이 담긴, 우리의 생활이 담긴, 우리의 그리움이나 꿈이나 혹은 그 삶에 대한 해석이 담긴, 이러한 낱말들이 좀 우리 국어사전에 ‘옴시래기’ 들어와 가지고 좀 이렇게 한 소쿠리 가득 옥돌같이 담긴다면 시대의 강물은 거세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이 국어사전의 징검다리가 우리들이, 또 우리 후손들이, 또 대대로 어디론가 자기 걸음을 가는 그런 걸음이 물에 빠지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고 그렇게 제자리로 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소중한 어떤 그 건널목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정말 사실은 오늘 얘기를 참 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습도 많이 하고 궁리도 많이 했는데 실은 여기 딱 서니까 한 분 한 분이 다 지금 국어사전이 앉아 계신 것 같으니까 어떻게 어휘력도 뜻 같지가 않고 부족한 점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애석함을 출발로 삼고 요 다음에 한 번 더 불러 주시면 그때는 진짜 한 번 잘 해 볼게요. (웃음) 여기까지 말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박수)
원 장:좋은 연주를 듣고 나면 사실은 박수도 빨리 치지 말라는 건데, 그 감격을 그대로 감상을 하면서…. 사실은 제 기분으로는 지금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이 감격 그대로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은데 (웃음) 처음 약속이 있으니 시간을 조금 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글을 잘 쓰는 분은 말은 잘 못하고 말을 잘하는 분은 글은 잘 못 쓴다, 뭐 그러는데 뭐 예외적인 분도 있다, 이래서 흔히 이어령 장관을 드는데 오늘 또 한 분의 예외를 만난 듯합니다. 요 다음에 오시면 더 잘해 주신다는데 오늘보다 더 잘하는 상태가 어떤 것일까 상상이 잘 안 가는데 말씀 아주 고맙습니다.
  몇 가지 당장 우리 어록으로 삼아야 할, 사전실에 뭐 써 붙이기라도 해야 할 좋은 말씀도 들었습니다. “사전을 시(詩)처럼 읽어라” 사전편찬실에 하나 좀 (웃음) 써 붙이면 좋을 듯하고 뭐 여러가지 좋은 말씀 감명 깊게 남습니다. 
  그리고 들으면서 제가 아까 풀리지 않던 궁금증이 하나 풀린 것이 있습니다. 왜 제가 몇 마디 안 되는 취임사에서 최명희 선생을 거론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법정 스님하고 묶였는가 하는 것이 지금 풀렸습니다. 법정 스님 어떤 글에 당신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모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법정 스님을 왜 모시고 싶은가 하는 얘기에 잠깐 이것은 제가 곁들였던 것 같은데, 그분이 이민 가는 분들한테는 꼭 국어사전을 하나씩 선사를 한다.(웃음)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혼불』이 모국어로 읽히기를 원한다든가 모국어에 나를 바치고 싶다든가 또 이민 가는 분들에게 (웃음) 국어사전을 선사한다든가 하는 게 둘이 딱 맞아떨어져서 “야, 그거였구나! ”하고 숙제가 풀렸습니다. 
  저도 틈틈이 이 『혼불』에 대해서 사실 글을 하나 준비를 해 왔는데 (웃음) 원장 자리가 하도 바빠 가지고 중단된 상태입니다만 그 첫머리가 “나의 평소의 불만은 우리나라 소설을 사전 없이 읽어 간다는 점이다” 입니다. 대부분의 소설은 사전 없이 그냥 쉽게 쉽게 읽힙니다. 근데 『혼불』은 여러분들이 우선 보통 소설과 달리 한자가 괄호 속에 참 많이 들어간다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자를 넣지 않고는 안 되는 그런 고급스런 어휘들이 무척 많이 동원되어 있고, 그리고 또 한자가 들어가 있지 않는 말도 사전을 찾지 않고는 ― 제가 아까 한 예를 든 것도 있지만 ― 사전을 찾지 않고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결국 사전을 찾으면서 읽게 되는 그런 소설인데, 그래서 자연히, 지난번 여러분들한테 제가 숙제로다가 질문을 하나씩 써 내라고 해서 그것을 제가 제 기준으로다가 뽑아서 선생님한테 보내드렸는데, 거기에서도 먼저 어휘 구사 문제를 여쭤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것은 말씀 중에 해답이 이미 나온 것 같습니다. 언어에 대한 친화력, 그것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는 것, 그리고 평소에 계속 개인 사전을 만들어 가셨다는 것, 그걸로 이제 많이 풀렸습니다. 
  그래도 이제 질문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김세중 외 몇몇 분, 이현우, 저기 우리 이승재 부장이 낸 질문을 중심으로다가 보내드리고 제가 어느분도 질문 안 한 부분을 보충해서 보내 드렸는데, 그래서 그때 질문했던 분한테 질문을 하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질 않고 이래서 그때 질문했던 걸 중심으로 해서 조금만 더 보충 질문을 했으면 싶습니다. 
  선생님 책에 보면은 특히 의성의태어들이 많이 구사돼 있습니다. 꽃이 ‘봉울봉울’ 어우러졌다든가 까치가 ‘까작까작’ 운다든가 소리가 ‘나훌나훌’ 흔들린다든가 물고기가 ‘드글드글’ 어쩐다든가 피를 ‘덩클덩클’ 토했다든가 무슨 봉오리가 ‘우줄우줄’ (웃음) 한다든가 뭐 남원군 내를 ‘우렁우렁’ 울렸다든가 눈썹이 ‘쑤실쑤실’ 했다든가. 이런 계열들의 어휘들을 그쪽에서 들어서 쓰셨는지 아니면 아까 ‘꽃심’ 하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느냐 해서, ‘우렁우렁’ 그러면 뭐가 떠오르지 않느냐 해서 뭐 그런 식으로 좀 그런 기분으로 만드신 것인지 한 말씀 좀 해 주시고, 그리고 아까 사전을 찾으면서 자꾸 어휘를 익혀 갔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가령 “지견(知見)이 풍연(豊衍)함” 같은 거, ‘지견’이나 ‘풍연함’ 상당히 고급스런 어휘들인데 그것을 그냥 혼자서 그렇게 공부한 것인지 아니면 주위에 그런 것들을 쓰던 분들이 있어서였는지 이런 그 고급스러운, 가령 ‘성첩(城堞)을 쌓고’, ‘성가퀴 위에서’ ‘성첩’이나 ‘성가퀴’나 같은 뜻이더라고요, 저도 사전을 찾아보고 알았는데, 그리고 “‘접심’(接心)이 된 탓”이라든가 하여튼 이 국어원장이 얼마나 무식했는가를 여러 장면에서 드러내 주는 이런 어휘들이 아주 많았는데, 그런 것들이 평소에 공부하신 것인지 어떤지 우선 그 말씀을 좀 듣고 싶습니다.
최명희:네, 아유.(웃음) 사실 저는요, 우리나라 어휘 중에서도 무엇보다 저는 정말 법정 스님께서도 그 말씀을 하셨지만 정말 저는요, 죽어서 다시 나도 여자로 나고 싶고, 죽어서 다시 나도 대한민국에 나고 싶고, 죽어서 다시 나도 전주에 나고 싶고…. 그러니까 참 저는 정말 지금 현재 있는 요대로, 제가 행복해서가 아니라, 그냥 요대로 다시 고대로 나고 싶어요. 근데 정말 우리말이 저는 좋아요. 그냥 마치 연인의 이름처럼, 그리운 고향처럼, 우리말이 주는 음향과 그 음향에서 오는 상상력과 상상력이 실제 힘을 갖는, 그러한 그 변화의 과정 같은 게 진짜 좋아요.
  그래서 아까 여러 예문을 들어 주신 그런 형용사 혹은 부사, 이런 경우에 그게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인 경우가 참 많아요. “우줄우줄 어딜 갔다 왔다 그러냐” 이제 이렇게 모두 형제들이 죽 들어오면 그럴 때 ‘우줄우줄’이 주는 그 느낌, 또는 이 꽃송이 같은 것도 어떤 건 활짝 펴 있고 어떤 건 요염하게 펴 있지만 어떤 거는 시계꽃 같은 건 봉울봉울 펴 있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 몸에 밴 것도 있고, 또 하나는 저의 감각으로 ‘아, 이건 꼭 요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하는 게 또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봄날 얼어붙은 강물이 풀리는 밤의 강물 소리예요. 제가 그런 글을 쓸 일이 하나 있어서, 4월호에 뭘 쓸 게 있어서 일부러 북한강가로 갔어요, 날 저무는데…. 친구보고 좀 태워다 달라고 그래 가지고. 저는 운전할 줄 모르거든요. 그 친구가 이제 자꾸 뭘 쓰려고 그러냐면서 강가에 절 풀어놨어요. 강가에 가서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그 강물 소리를 듣는 거예요. 이 물소리가 여름 강물, 가을 강물, 봄 강물, 혹은 봄 중에서도 살얼음이 녹으면서 흐르는 강물 소리가 다 다른 것만 같았어요, 제 생각에. 그러면 이제 봄의 강물 소리는 어떻게 들리는지 가서 가만히 듣는데 이거는 ‘졸졸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콸콸콸콸’은 물론 아니고…. 가만히 듣고 있는데 그게 ‘소살소살’ 이렇게 들려요. 이렇게 “소살소살 소살소살” 이렇게. 하, 이게 꼭…. 제가 친구보고 “얘, 저 소리가 ‘소살소살’ 들리지 않니?” 했더니, “넌 천재다, 천재!” (웃음) “어떻게 저 소리가 ‘소살소살’이라니.”, 그 낱말이 어떻게 ‘ㅅ’과 ‘오’와 ‘아’를 어떻게 했냐고 저를 놀리면서도 칭찬을 해 주었는데, 그래서 제가 “소살소살 돌아오는 봄의 밤 강물이여”라고 이제 제목을 했는데, 그런 것처럼 진짜 우리나라 산천에 불고 있는 바람이나 냇물 소리나 기침 소리나 이걸 고대로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혼불』에 보면 또 저녁의 종소리, 절에서 들리는 종소리, 그걸 보통 종소리는 ‘땡그랑 땡그랑’ 아니면 ‘댕댕’ 아녜요? 제가 중 3때 들은 종소리인데요, 이걸 쓰기는 『혼불』에 썼지만 중 3때 들었는데, 그땐 입시가 있을 때라 새벽 공부를 하는데요,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조그마한 암자에서 그때가 이제 잔설이 좀 남아 있고 어떻게 스산한 새벽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꼭 ‘강~강~’ 이렇게 들려요, 꼭. 근데 그때 제가 아주 우주가 흔들리는 걸 느꼈어요. 막 너무 흥분해 가지고 마당에 나와서 막 돌아다녔어요, 그 소리 때문에, 정말. 그리고 그 소리가 그렇게 지워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제가 『혼불』에다 ‘강~강~’ 이렇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어떻게 그 소리가 ‘강강’으로 들리냐고 그래요. 근데 제 귀에는 그렇게 들렸고 실제로 제가, 아니, 한번 들어보세요. 새벽 종소리가, 그 절간의 범종소리가 ‘댕댕’은 아니죠. (웃음) ‘뎅그렁뎅그렁’은 물론 아니고. 제가 흥분했나 봐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 조국의 강토에서, 산천에서 나는 소리를 가나다라, ㄱ, ㄴ으로 어떻게 옮겨 놓을까, 그리고 제가 국어 선생을 할 때는 이상한 숙제도 냈어요. ‘ㄱ’에서 ‘ㅎ’까지 쓰라고 그러고 음표를 그리라고 그랬어요, 제가. 높은 음을 골라내라, 그러면 ‘크트프흐’ 고르고요, 낮은 음을 골라라, 그러면 ‘그드브즈’ 고르고요. 그러면 슬픈 얘기를 할 때에는 ‘ㄱ·ㄷ·ㅂ·ㅈ’이 많이 들어가게 얘기하라고 해요. 슬픈데 눈물이 쿡쿡 나오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슬픈 얘기를 할 때에는 낮은 음으로 얘기를 하고, 기쁘거나 벅찰 적에는 높은 음을 많이 써라, 기왕에 말을 할 적에도 음악처럼 조립을 해 가지고 “하늘이 파랗다” 할 때에도 음을 높게 얘기하지, (낮은 음으로) “하늘이 파랗다” 이렇게 안 되잖느냐.(웃음) 그래서 우리 국어는 음악이라고 제가 늘 얘기를 하죠. 그래서 아마 아까 말씀하신 그런 그 묘사들이 어떻게 하면 고대로 좀 이렇게 눈에 보인 듯이 할 수 있을까, 귀에 들린 듯이 할 수 있을까, 그런 저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가 노력하기 이전에 이미 제게 입력된 모국어의 음률과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말들, 저는 아홉 살까지의 기억이 구십까지 간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 어휘가 풍부한 집에서 크는 아이들은 크면서도 말을 잘하고 커서도 언어에 대해서 아주 친화감을 갖는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마도 저의 환경과 저의 어떤 성향이 이렇게 이루어 내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이 들고…. 
  여기 몇 가지 질문을 주셨는데요, 간단하게나마 대답을 드려야 되지 않을까요? 

원 장:질문을 그 중에서 제가 지금 드리면 답하는 식으로 할까요?

최명희:예.

원 장:사전에 이제 오르지 않은 단어들이 꽤 있는데 어떤 건 사전에 올랐지만 용례가 달리 돼 있는 게 있고요, 그런데 그 가령 “점을 치고 해왈을 듣기도 전에” 하는 그 ‘해석한다는 해’(解)자와 ‘가로 왈(曰)’의 ‘해왈(解曰)’ 이런 건 사전에 없고 “한글로 글씨를 쓰는 데 향체 언문 글씨”, ‘시골’이라는 ‘향’(鄕)하고 무슨 체(體) 무슨 체 하는 ‘향체 언문 글씨’의 ‘향체’는 한자까지 들어가 있는데도 나타나질 않거든요, 국어사전에. 이런 거는 어떤 데 근거를….

최명희:‘해왈’은요, 저 어렸을 때 저희 집에 「토정비결」(土亭秘訣)이 있었어요. 근데 이제 지금은 좀 이렇게 신식(新式)으로, 활자도 좀 신식으로 이렇게 돼 있는데…. 저의 어렸을 때 보던 토정비결은 이렇게 할머니가 보시던 게 저의 집으로 내려와 가지고 이게 손때 묻은 누런 그런 종이인데 초창기 때 무슨 그 굵은 글씨를 해 가지고 언문 얘기책처럼 된 「토정비결」인데 거기 보면 꼭 머리에 ‘해왈’ 해 가지고 이제 열두 달 운수를 간단히 줄여 가지고 그게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거기 본 대로 제가 ‘해왈’이라고…. 

원 장:‘향체’는 만드신…. 

최명희:아니에요. 그 서예하시는 분한테 들었는데요, 궁체 글씨는 같은 한문체라도 궁에서 쓰시던 분들 글씨이기 때문에 아주 기품이 있고 빼어난 글씨인데, 향체 언문 글씨는 조금 이렇게 글자가 좀 못났어요. 그래서 실제로 부녀자들이 어디 얘기 보낼 때 언문으로 쓰긴 쓰되 단정하게 잘 배운 언문 글씨는 ‘궁체 글씨’이고, 그냥 이제 지방에서 집안 간에 부녀자들이 쓰던 조금 못난 글씨, 그건 ‘향체 글씨’라고 한다고 들었어요. 

원 장:그럼, “기러기는 수양조다. 볕을 따라서 가는 조” 이런데 ‘수양조’ 같은 건 그냥 만드신 건가요, 어디서 인용한 건가요?

최명희:그것도 문헌에 그렇게…. “혼례할 때 왜 기러기를 바치는가?” 하면서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이렇게 “왜 기러기를 하는가” 하는 그 해석이 있는데 ‘수양조’라고 그렇게 나와 있더구만요.

원 장:우리 국어사전에서 이제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웃음)
“자미원(紫微垣)을 에워싼 백칠십여 개 은빛 별들이 자미원 혹은 자미궁(紫微宮)을 이루고 있는데 그 주성(主星)은 자미성으로 영원히 변함 없는 북극성을 말한다.” 그런데 사전에 ‘자미원’이라는 게 나오고 ‘자미궁’도 나오고, 그리고 ‘자미성’도 나옵니다. 그리고 ‘주성’도 나오는데 여기에서 보면은 ‘주성’이라는 것은 지금 “백칠십여 개 별 중에 가장 으뜸 되는 별”이 주성이거든요. 근데 국어사전에 보면 주성은 “쌍별 중에 더 밝은 별” 이렇게밖에 풀이가 안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자미성’이라는 게 사전에 풀이가 돼 있지마는 “자미원에 있는 별” 이래서 그게 좀 애매한데 자미원에 있는 어떤 특정한 한 별인지 아니면 자미원의 별 백칠십 개 중에 있는 별은 다 자미성인지 사전 풀이는 지금 아주 애매합니다. 아주 애매한데 어떻든 자미성이 북극성이라면, 사전에서 적어도 ‘자미성’ 이러고서 ‘북극성’ 뭔가 하나 해 놨을텐데 지금 사전에 그게 전혀 없는데 ‘자미성’을 이렇게 북극성이라고 한 근거 같은 것이….(웃음)

최명희:(웃음) 아이고, (웃음) 저도 사실은 그건 제가 이쪽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 유추해서 그러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원 장:그리고 그 담에는 방언에 대해서 질문들을 특히 이 이승재 부장이 구례가 고향이어서 방언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리고 우리 저기 뭐야 이현우 사전실 실장도 그런 질문을 했는데요, 몇 사람들이 또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정희원도 그렇고…. 양반층은 표준어를 쓰게 하고 천민들은 사투리를 쓰게 했는데 그건 어디나 구별이 있다, 안동 같은 데서도 반촌말 다르고 민촌말 다르다는 것은 지적을 하는데, 아까 그 큰댁에 가셔서, 청암부인은 할머니가 모델이라고 하시고 인월부인은 또 큰어머니가 된다고 하셨는데 그런 분들이 과연 지금 소설에 구사된 것처럼 그렇게 표준어를 잘 썼는가, 말하자면 그런 차이는 있는데, 반촌과 민촌들의 언어 차이는 있는데,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는가? 그런 질문들을…. 

최명희:사실은 이런 질문 참 많이 받아요. 그런데 이제 제가 이 대화를 어떻게 할까 참 고심을 했지요. 그런데 저는 사실은 두 말을 다 사랑해요. 저는 대한민국 표준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자기 마을의 사투리를 또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아주 사랑하는 이 두 말을 어떻게 이 글 속에 제대로 잘 해 볼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원래 했었어요. 그래서 물론 이 지문 속에 나오는 말이야 그 표준어가 아주 기본이죠. 아주 특별한 경우에 ― 이 질문지에도 있지만 ― 일부러 정취를 위해서 사투리를 그냥 끼워서 섞어 놓은 경우도 있어요. 그런 한두 차례는 있지만 대체로 저는 정확한 표준어를 쓰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실생활에서 저희들이 쓸 때, 특히나 남원 사투리는 전라남북도와 경상도 접경 지역이어서 아주 이 말이 특이해 가지고 참 매력적이에요. 이 말을 어떻게 좀 이렇게 글 속에 살려 내서 그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소리를 내고 싶은 심정을 갖게 할까, 그런 생각을 가졌었죠. 그래서 두 말을 다 살려 보고 싶은 그런 열망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실제로 여기 청암부인이 쓰는 것과 같은, 혹은 이 반촌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것과 같은 그런 깍듯한 서울 표준말, 거의 서울 표준말에 가까운, 이렇게까지 언어 생활을 안 한다 하더라도 그 생활과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문자가 들어간 사람과 그 문자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냥 그 뭐라고 할까, 육화된 말, 일상어만 쓰는 사람은 확실히 달라요, 그거는. 그래서 직접 제가 많이 경험을 했는데, 저의 외할아버지도 보성(寶城) 분이시거든요. 전라남도 보성 분이시신데, TV에 보면 전라남도 사투리가 얼마나 쓰이고 “나아가” 막 이런 식으로, 한 번도 이렇게 안 하세요. 그 어조가 약간 느려서 그렇지, 정확한 표준어를 쓰시거든요. 그럼 할아버지는 지금 구십이신데, 지금 팔십구 세시거든요. 그리고 신식 학문을 전혀 안 하신 분이고 한학(漢學)을 한 분이에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사투리를 쓰시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전라남도 보성 분이신데…. 저희 어머니도 보성 간치내가 고향이신데 거의 사투리를 안 쓰세요. 아버지도 물론 남원 분이신데 거의 사투리 안 쓰시고….
  그런데 이런 경우는 있어요. 어렸을 때 저보고 ‘요상하다’는 말을 한 번 하세요. 저는 이제 표준어로 학교 다니니까, ‘요상’이 뭔가, 한 3, 4학년 때 “아버지, ‘요상’이 뭐예요?” 그러니까 “넌 요상을 모르냐?” 하셔서 “‘요상’이 뭔가” 했더니, “‘요상하다’는 말을 모르냐”고 그러세요.(웃음) 아이, 모르겠는데, 그래서 거기서 또 “야 좀 봐라, ‘요상하다’는 말을 모르냐”고 그러세요. 그런 경우는 있었어요. ‘요상’, ‘이상’(異常) 이런 정도의 약간의 차이말고 『혼불』에 나오는 민촌 사람들이 쓰는 그 센 사투리들 있죠. 실제로 문자가 생활화된 동네에서는 좀 잘 안 쓰는 것 같았어요. 언어가 많이 다듬어져 있고…. 저만 해도 제가 전주 태생이고 큰집이 남원인데 거의 사투리는 안 하거든요. 특별하게 재미나게 막 할 때에는 또 사투리를 아주 잘 해요. 근데 어떤 경우에 가면은 거의 전혀 안 쓰죠. 그러니까 언어 생활에 일단 분리가 돼 있고….
  또 첫째로 저는 두 말을 다 잘 써 보고 싶었어요, 생동감 있게. 그러니까 양반이 사투리가 섞여 버리면 표준어의 맛이 없고, 또 사투리 쓰는 동네를 저는 무시해서 사투리를 쓴 게 아니라, 요렇게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토박이말, 본디말이 있다는 걸 오히려 더 열심히 쓰고 싶었기 때문에 사투리에 대한 애정도 표준어보다도 더 강하면 강했지, 모자라진 않은데, 혹시 어떤 분들은 사투리와 표준어에 대해서 제가 사대적(事大的)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이런 분도 계셨어요. 그래서 양반이고 깨끗한 멋쟁이들은 표준어를 쓰고, 막 민촌에서 함부로 사는 사람들은 사투리를 썼다, 저는 지방말을 제가 낮추어 봤다고 그렇게 말하는 분도 계신데, 그건 전혀 오해예요. 사투리가 더 재밌다고, 좋다고 하는 분도 많이 계시거든요. (웃음) 그런 점이 있고요.
  또 하나, 아까 사실은 저 여기 들어오기 전에 한 선생님께서 제게 질문하셨던 것인데 그 대답을 잠깐 드리고 싶은 건 어떻게 이렇게 어휘를 많이 알았느냐고 저한테 물으셨는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언어에 대해서 친화력이 있고 제가 유난히 언어를 좋아하고 또 그런 말을 쓸 기회가 제가 많이 있었고, 하지만 한 가지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아까 “지견이 풍연하다” 같은 말씀요, 저는 마치 숙제를 하거나 좋은 차를 입 안에 넣고 계속 음미하듯이 어떤 글자가 하나 떠올라도 하루종일 그 생각을 해요. 가령 청암부인이, 옛날 부인들도 왜 잠깐 앉았다 일어나도 둘레에 향기가 오래 남는 부인들 저는 많이 뵈었어요, 연세 드신 분들. 그리고 옛날 부인들 절대로 그렇게 무지하지 않으시고, 우리 외할머니 두루마리 편지가 지금도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외할머니가 한문 공부 하신 분도 아니거든요, 옛날 분이니까. 그런데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아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한 분이나 알 그런 언어들이 언문으로 녹아 있어요. 
  그런데 “지견이 풍연하다” 이런 것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체격이 크고 종가집 부인으로서 작은 아녀자 같지 않고 선비 같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이 부인을 어떻게 할까, 그러면 분명히 그분이 아는 분이기 때문에 ‘지(知)’자(字)는 들어갈 거 아녜요? “지(知)?” 그러면 아주 사전을 놓고 ‘지’자가 들어간 것은 다 읽어요, ‘지’자 들어간 거 끝까지. 그러면 “지?” ‘지식’, ‘지혜’, ‘지성’ 다 있지만 다 아니죠. 그런데 “지견(知見)?” 와, 이거 참 괜찮다.” ‘지견’이라는 말이 딱 발견되는 순간 굉장히 여성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견문’(見聞)이라는 말 우리가 하잖아요. 그럼 뭔가 정적(靜的)이면서도 뭔가 속이 턱 트인 느낌을 줘요. 그러면 제가 사전에 ‘지견’을 써 넣죠. 그 다음에 ‘풍연하다’ 같은 것도, ‘풍’자가 들어가는 걸 죄 읽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으면은 그 중에 뭐 ‘풍요롭다’, ‘풍성하다’, ‘풍부하다’ 많이 있지만 ‘풍연’(豊衍)이 딱 떠오르면 “와, 이건 지견과 풍연과 그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해서 ‘지견’, ‘풍연’, 이거 너무 좋다. 그리고 또 쓰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단어만 막 주워다 모아 놓으면 글이 생경하고 뼈와 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단어와 단어를 제가 몰랐던 말이지만 캐낸 말인데 이게 마치 아주 굉장히 익숙하게 저희들끼리 오래 살아온 말처럼 접속시키는 그것이 이제 저의 역할이죠. 그래서 거기 어떻게 조사를 뭐라고 뭐라고 붙이면 이게 굉장히 이렇게 자연스럽게 한몸을 이룰까,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하나는 ‘박모’(薄暮)라고 하는 그 땅거미 질 무렵의 ‘박모’ 있잖아요? 그 챕터(chapter)가 따로 하나 있는데 그거를 쓸 적에 제가 공기(空氣)를 사흘을 노려봤어요, 진짜. 제가 그래서 참으로 독하구나, 이러고 말았는데 여름인데다가 마감은 닥쳐 가지고 ꡔ신동아(新東亞)ꡕ에 그때 연재를 하고 있었을 땐데 매일 전화가 오는 거예요, 마감이 늦어지니까. “이제 원고가 오면 노태우 대통령 원고라도 못 들어갑니다” 계속 그러고 오는 거예요. 근데 원고가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건 나중 문제고 이 원고를 제가 써야 넘길 거 아녜요. 근데 딱 저는 무슨 심보로 그 무더운 여름에 꼭 동짓달 날 저무는 그 스산하면서도 그립고 그냥 단순히 스산하지만은 않은 그 회색의 하늘이 뭔지 이렇게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 같은 숯물의 습자지(習字紙) 같은, 어떻게 써 볼까, 왜 여름에 겨울이 그렇게 쓰고 싶은지. 사실은 여름에 겨울을 쓴다는 게 도저히 체감이 안 돼 가지고. 다른 그 스토리 중심으로 춘복이라고 하는 그 총각이 이제 그 옹그네라고 하는 부인하고 말을 주고받는 걸로 제가 쓰기 시작했어요. 한 30매쯤 썼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왜냐면 쓰고 싶은 걸 두고 다른 것으로 이렇게 옮겨졌기 때문에 이게 아교질이 생기지 않아 가지고 할 수 없이 포기를 하고 도로 그 ‘박모’로 덤벼들었어요. 그런데 이 모습을 쓰려니 상상만 가지곤 안 되죠. 그래서 제가 창문을 열어 놓고 이 아파트촌에 있는 그 삭막한 공기를 하염없이 사흘을 노려봤어요. 아무것도 않고, 꼼짝도 안 하고.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사람의 기운은 무서운가 봐요. 그 사흘을 노려보는데 이 공기가 그 탁한 여름 공기가 어느 저녁에 회색과 보라로 뒤섞이면서 옅은 푸른 비늘이 공기에서 일어나는 걸 진짜 봤어요. 그리고는 확 황홀해져요. 그리고 이 공기가 제게 밀밀하게 넘쳐들면서 제가 이제 쓰기 시작했는데 “날이 저문다”하고 시작했거든요. 근데 먼 산에 동짓달 날 저무는 그 흐린 시간에 회색 하늘과 이 산의 등성의 능선이 이렇게 씻기면서 ‘비백의 능선’이라는 말까지는 제가 했어요. 근데 그 ‘비백의 능선’이 ‘어찌하다’라고 끝내야 되는데 ‘비백의 능선이…’, ‘비백의 능선이… ’ 계속 그러고 있는 거예요. 마치 옛날에 우리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었는데, “까맣게 점 찍은 듯 산, 산, 산…”이라고밖에 못 하고 붓을 꺾은 그 시인처럼 “비백의 능선이…”, “비백의 능선이…” 그러고 커피 타며 “비백의 능선이…”하고 또 쭈그리고 앉아서 “비백의 능선이…”.
  아주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거기다가 제가 그럼 겨울이니까 “삭막한가?” “삭막?” 아, ‘삭막’은 아니고 그건 너무나 이렇게 좀 싸늘하잖아요. 그러면 “적막?” ‘적막’하기는 한데 ‘적막’만은 아니고 ‘막막’한 것도 아니고 ‘광막’, ‘박막’, ‘막’자(字) 쫙…. 이제 칠판이 없어서 제가 써 놓질 못하겠는데 ‘삭막’, ‘광막’, ‘박막’ 온갖 ‘막’을 다 쓰는 거예요, 한쪽에다가. 아니에요. 그러면 움직임이 없이 그냥 이렇게 이렇게 능선이 비백이 있고 날이 저물고 지금 점점점점 어두워지고 스며들고 이거를 어떻게 할까 하고, 그러면 이렇게 저러한 이런 것들이 가만히 있는 건 어쩌어찌 ‘연(然)하다’라고 하잖아요. ‘자연스럽다’ 혹은 ‘어찌하다’처럼. “처연(凄然)인가? 아이, ‘처연’은 좀 축축해요.” ‘처연하다’ 이러면 ‘처연’은 아니잖아요, 겨울이니까. “삭막하다? 아유, 무슨 ‘연’(然)할까?” ‘처연하다’, ‘묵연하다’, ‘적연하다’…. 온갖 ‘연’을 또 다 써 봤어요. ‘연’자(字)가 맘에 들어 가지고…. 그러다 열댓 개를 양쪽에다 막 써 넣다가 왜 시험 볼 때 줄 긋기 하는 거 있잖아요. 그것처럼 다 갖다 맞춰 보는 거예요. 그냥 이 글자에 이 글자 조립을 수십 개 해 보고 그러다가, 야, 그러면 혹시 ‘삭연’(索然)이라는 말이 있을까, 이게 있으면 참 좋겠는데, 그래 “삭막하게 그러하게 있는 어떤…, 아유, ‘삭연’이라는 말이 있으면 참 좋겠다.” 사전을 찾아보면 ‘삭연’이 있어요. 막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너무 좋아 가지고. 뭐, 사전이 너무 고마운 거 있죠. 왜냐하면 저의 느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보증해 주기 때문에. 선대(先代) 누구인가도 이렇게 느껴서 이 말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제가 그렇게 어느 경우에는 제 몸 속에 고여 있던 말이 음악처럼 넘치기도 하지만, 또는 정말 금광의 금싸라기처럼 캐내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수학 문제를 풀듯이 수십 개를 늘어놓고 조립을 하기도 하고 맞아떨어질 때는 정말 황홀하고 아름답고 감사하고…. 이 말을 막 소문 내고 싶고…. 그래서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 캐내는 게 결코 저는 쉽지 않았어요. 
  그러고 전편(全篇) 열 권 중에 택호(宅號)를 딱 한 번 아니면 두 번 쓴 ‘아느실’이라는 택호가 있어요, ‘아느실.’ 네, 그거를 제가 인제 사촌을 사랑하다 불행하게 된 이강실이와 이미지가 맞는 진예라고 하는 한 여인이 있어요. 운명이 비슷한데 그 여인은 미치거든요. 그래서 그 진예가 마을로 흘러들어오는데 택호가 제가 처음에 『혼불』을 쓸 적에는 그렇게까지 자세히 공부를 안 했기 떄문에 어려서 듣던 말로 그냥 최씨 문중으로 시집 갔다 해 가지고 그냥 ‘최실’(崔室)이라고 붙였어요, ‘최실’(崔室). 뭐 ‘김실’(金室), ‘이실’(李室) 하잖아요? 저도 사실은 최씨 성(姓) 좀 『혼불』에 좀 쓰고 싶었는데, 아이, 그냥 참 좀 아까웠어요. ‘최’(崔) 하기엔 제가 좀 가책이 돼서 이씨(李氏)로 했는데, 그래서 그냥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최씨를 하나 살짝 끼워 넣었는데 그것도 아주 못되게 썼어요. 막 성격이 아주 강해 가지고 용서 않는 그런 장면으로 써서 조금 좀 멋지게 못 써서 참 섭섭해요. 그런데 그 최씨 문중으로 시집 간 이 진예가 결국에는 심정적인 괴로움을 못 이겨서 그냥 떠돌면서 미친 여인이 된, 그 택혼데 ‘최실아’, 이렇게 했어요. 둔대기로 시집 갔다고 해서 ‘둔대기 최실’ 이렇게 했는데 나중에 이번에 교정을 보면서, 교정지를 미처 못 가져왔는데, 저는 책 옆구리에다 묘해요, 붙여가면서 쓰거든요, 원고를. 계속해서 날개 붙이고 꼬리 붙이고 해서. 이 책의 원본이 하나 있으면 책 옆구리에 붙인 게 3미터, 5미터, 8미터, 어, 막 몇십 미터 가는지 모르겠어요. 오려 붙이고 찢어 붙이고 심 봉사 두루마기처럼 해 가지고 불빛에 비쳐 보면 볼 만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교정을 보면서 알게 된 게 뭐냐면은 손윗분이 자기 집안의 처녀가 다른 데로 시집을 갔으면 아무개 실(室)이라고 붙여서 “김실(金室)아, 이실(李室)아” 그러고, 손아래인 제가 우리 언니가 최씨 문중으로 시집 갔다고 그러면 ‘최 서방댁 언니’ 그렇게 하는 거래요. 그러니까 손아랫동생이 “최실 형님 오셨어요.” 하면 틀린 거지요, 그러니까.
  기왕에 틀렸으면 택호를 하나 잘 붙이고 싶어 가지고 제가 민음사에서 나오는 『전국지명총람』이라는, 이렇게 두꺼운 책인데 글씨는 깨알 반절만씩 해요. 전라북도에 나오는 온갖 동네의 지명이 다 나오고 그 유래가 약간씩 나오는 건데, 그걸 제가 사흘, 나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뒤져서 봤어요. 왜냐하면 이 진예에 가장 알맞은 택호를 하나 붙여 주고 싶어서. 근데 보면은 이제 무슨 ‘솔안이댁’ 같은 것도 있어요. 그러면 뜻은 좋잖아요. “소나무가 있는 그 마을의 동네 안쪽”, 솔안이댁. 그런데 이런 서러운 운명을 가진, 애달픈 여인의 이름으로 ‘솔안이댁’은 안 어울리잖아요, 소란스러워서.(웃음) 이렇게 해 가지고, 무슨 또 예를 들어서 ‘안동댁’ 뭐 오를 만하지만 너무 안정된 귀부인 같아서 떠도는 여인한테는 안 맞고. 그걸 보는데 딱 보니까 ‘안으실’이라는 이름이 나와요, 안의실, 안의실. “안의 동네”라는 이런 말이죠. 그런데 이 ‘실’이라는 말이 옛날말로 ‘동네’라는 말이잖아요? 그걸 그냥 발음대로 하니까 ‘아느실’이에요. 그게 발견되니까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해서 뭔지 어쩐지 안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애련하기도 하고 여성적이기도 하고 또 제가 그렇게 해 가지고 몇 청년한테 물었어요, 전화로. 혹시 동네 이름이 ‘아느실’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그랬더니 대체로 그런 얘기를 해요. 어이구, 애달프다고 하고 굉장히 이렇게 뭔지 좀 육감적인 이름도 된다고 그런 말도 하고. 그래서 아, 참 좋다. 그래서 전(全) 열 권의 만 삼천 매(枚) 중에 ‘아느실’이라는 말은 두 번 나와요. 첨엔 한 번 나왔는데 하도 아까워서 한 번만 더 썼어요.(웃음)
  이렇게 해 가면서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우리말다운, 우리가 정말 정감을 나눌 수 있는, 그 말 한 마디만 듣고도 어떤 마음의 고향이나 혹은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말들을 얻으려고 사실은 저는 그 없는 재주에 정말 저의 정성을 다하고 싶어했어요. 혹시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원 장:어떡할까요? 예정 시간이 좀 넘었는데 이왕 늦었는데 질문 하나만 더 하고 끝을 낼까요?(웃음)

민현식:아, 참 선생님께서 우리말을 참 눈물겹도록 사랑하시는 거 아, 참 많은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데…. 사실 전 다 못 읽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으시면 될 것 같은데…. 혹시 오자(誤字)라도 하나 나오면 고치실 용의가 있으신지? 

최명희:그럼요. 아, 저는 백 번이라도 고치고 천 번이라도 고치고, 저는 저의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고 천필 만필 십만필이라도 정말 지금도, 지금도 사실 교정을 몽땅 봐 놨어요. 오자도 많이 나오고…. 

민현식:직접 다 보시는군요?

최명희:그럼요.

민현식:혹시 한길사에 맡겨 놓으셨나 하고….

최명희:아니예요. 저기 한길사에서 오셨지만, 저기 저 편집부하고 함께 제가 한길사에서 딱딱한 의자에서 2박 3일을 똑같이 샜어요. 그리고 거기서 다 교정 보고, 저는 정말 이 오자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저의 전심 전력을 다해서 그걸 고치고 싶고, 또 오자만이 아니라 실제 제가 잘 몰라서 틀리게 쓴 것들도 있을 수 있거든요, 또 있고요. 그건 앞으로 이제 6부, 7부 해서 다섯 권 정도 더 써서 마칠 생각인데, 그 책 나올 때, 또 제가 한 일 년 잡고 정말 성심 성의를 다해서 한 번 또 고칠 거고요, 또 중간중간에도 틀린 게 있으면 언제라도 가르쳐 주시면 제가 그것을 꼭 시정을 하겠습니다. 

민현식:저는 첫 편을 보면서 혹시 최초의 오자가 어디서 나올까 하고 이렇게(웃음) 제1권의 제목을 보니까 “심정이 연두로 물들은들”이 있습니다. ‘물들은들’ 같은 것도 그냥 ‘물든들’ 이렇게 해야 이제 표준어일 것 같은데, 사실 여기서 정리하신 걸 보면 ‘데불고’ 같은 방언형을 잘 쓰셨기 때문에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최명희: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해서 ‘물든들’ 그러면 표준어는 맞는데, 문법상으로는. 그런데 어쩐지 “물들은들”이라고 하고 싶어요, 괜히. 아이, 그냥 틀려도 할 수 없다. 이렇게 한 게 사실은 몇 개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게 또 저는요, ‘앙증맞다’와 ‘앙징맞다’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여기 ‘앙징’으로 썼거든요? 그런데 또 왠지 ‘앙증’ 그러면 ‘올라앉은 것 같아요, 이렇게 테이블 같은 데 이렇게 ‘앙증’ 올라앉은 것 같고, 그래서 ‘앙징’으로 썼는데, 이건 저는 시험 보면 틀렸죠. 그런데 느낌으로 그냥 어쩐지 ‘앙징’ 그래야 이렇게 좀 요렇게 생긴 거 같은 생각이 들어 가지고, 그건 또 저의 고정관념이죠. 그런데 또 다시 한번 제가 많이 이거를 묵혀서 꼭 한번 또 생각을 해 볼게요.

원 장:교정 국어연구원서 봐 놓은 것들이 있을텐데….

최명희:네. 그걸 절 좀 꼭 주시면….

원 장:네.(사이) 선생님께 보내 드린 질문은 사실은 몇 개 더 있습니다. 구두점(句讀點)이 여러 번 들어가는데 가운뎃점이 많이 찍혔습니다. 소설에선 보기 어려운 그 가운뎃점이 많이 보였는데 어떤 데는 가운뎃점을 찍을 법한 자리에다 쉼표로 된 것도 있어서 이것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하는 거라든가, 그리고 ‘그리고’ 다음에 쉼표를 찍은 데도 있고 안 찍은 데도 있고…. 그야말로 교정을 보시면서 “아, 이거는 이걸로 바꾸자, 빼자, 가만 놔두자”하고 생각이 자꾸 바뀌실 부분도 아마 많이 있을 거예요.(웃음) 그런 거며, 그 다음에 단락 바꾸는 방법이, 단락 바꾸는 것뿐 아니라 인용문, 이렇게 하고서 사람 대화 같은 걸 이렇게 해 가는 방식이 아주 특이한 방식을 새로 개발하신 것 같은데 뭐 그런 거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 종결어미를 ‘하였다’ 그러질 않고 ‘하였으니, 하였으나’라고 한 것, 그래서 그것이 흔히 지적하는 판소리의 어떤 가락과 관련지어서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질문 같은 것도 있고…. 그런데 이런 걸 종합해서 간단히 한 2~3분에 좀…. 한 번 더 불러 주셨으면 했는데 혹시 오시기만 한다면야 뭐 부르는 거는…. (웃음) 

최명희:(웃음) 요 다음에 그렇게…. 

원 장:그럼 나중 기회에 좀더 구체적인 걸 가지고, 뭐 ‘물들은’ 것 같은 것도 그렇지만 ‘맵고’ 하는 걸 ‘매웁고’ 같은 거로 한다든지 하는, 좀더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최명희:이 다음에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오기를 제가 바라고요. 그런데 단락을 두 개 이상의 단락으로 나누려고 할 적에 그냥 이렇게 문장으로 풀지 않고 그거를 따로 이제 대화처럼 끌어내어 강조하고 싶었죠. 그러니까 그냥 섞여서 넘어가 버리지 않고 글자 딱 한 자(字), 어느 때는 ‘아’하고 그냥 죽 비워 버리는 경우도, 그 ‘아’가 사람 가슴에 오래 울렸으면 할 때에, 그러니까 그 글자는 하나지만 그러니까 그 글자에 남아 있는 여운(餘韻), 여백(餘白)을 소리지르는 것처럼, 가슴을 울려 주는 것처럼 강조하고 싶을 때, 또 저는 한 열 줄이나 스무 줄짜리 한 단락도 될 수 있지만 어느 경우에는 그냥 탄성(歎聲) 한 마디도 스무 줄, 서른 줄 못지 않은 어떤 운명적인 한 사건의 변화에 중요한 중심점이 되는 경우에는 한 단락이 되고요. 그리고 가운뎃점의 경우에는 제가 나름대로 지적(知的)이고 싶을 적엔 (웃음) 가운뎃점을 찍고요, 조금 부드럽게 숨쉬고 싶을 때에는 쉼표를 찍고, 그래 사실은 (웃음) 그 모양에 대해서 제가 굉장히 생각을 많이 했는데 ‘쉼표’는 좀 부드럽고요, 제가 또 그것도 문법책을 봤어요. 그랬더니 “병렬식으로 죽 나눌 때는 가운뎃점을 찍는다.” 쉼표도 또 비슷한 용법으로 쓰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원시적이게 남성적으로 이제 딱딱딱딱 이렇게 간추려 놓고 이렇게 전달하는 때는 가운뎃점을 찍고, 같이 늘어놓아도 부드럽게 하고 싶으면 쉼표를 찍었어요. 그래서 저는 쉼표조차도 그냥 쉼표 하나였지만 그 모양을 하나의 글자로 보고 그것도 좀 더 얘기를 나누면서 사람들이 읽어 줬으면 이런 맘이 있어서 ‘그러나’ 다음에도 ‘그러나’가 하도 기가 막힌 ‘그러나’일 경우에는 ‘그러나’하고 좀 쉬어 가고, (웃음) 그냥 어쨌든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넘기고 쉼표를 빼고, 저 나름대로는 암호처럼, 그러니까 그 부호를 기호로 이렇게 좀 그냥 썼거든요. 그리고 이제 가령, 쉼표가 없어도 말의 뜻에 지장은 없으나 쉼표를 꼭 여러 번 끊어서 숨의 길이를 이렇게 턱턱 쉬어 가게끔 하는 것도 빨리 가지 말고 이렇게 좀 같이 들으면서 넘어가자고 장애물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런 방법을 썼어요. (웃음)

이익섭 원장이 애장(愛藏)하던 만년필을 선물하는 장면


정말 제가 여기서 얘기를 마치게 되니까 전 몹시 섭섭하고 또 이렇게 불러 주셔서 정말 저한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정리:김영옥·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