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와 고추

이기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


  語源을 연구하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다. 남의 연구에서도 이런 실수를 발견할 때가 가끔 있다. 조금만 더 주의깊게 살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후추'와 '고추'를 예로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2.

  「訓蒙字會」(初刊 上6, 改刊 上12)의 '椒'字를 보면 다음과 같다.

椒 고쵸쵸 胡椒又川椒秦椒蜀椒죠피又분디曰山椒

  註記에서 '椒'가 든 예들을 들었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고쵸 椒, 胡椒
죠피 川椒, 秦椒, 蜀椒
분디 山椒

   「救急簡易方」에서도 '고쵸'의 예를 볼 수 있다. 原文의 '椒'에 대응된 경우와 '胡椒'에 대응된 경우로 나뉜다.

椒 (2.13, 2.19)
胡椒 (1.32, 2.32, 2.56, 6.63)

  중세국어에서 '椒'의 새김이 언제나 '고쵸'가 아니었음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新增類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혔음을 본다.

椒 쳔쵸쵸 (上9)

  이 '쳔쵸'는 「訓蒙字會」의 註記에 보인 '川椒'임에 틀림없다. 「救急簡易方」(6.56)의 '쳔쵸'[生椒]에서도 이 말을 볼 수 있다.
  '고쵸'의 존재는 '訓蒙字會'의 예로 일찍부터 알려져 古語辭典들을 비롯한 여러 사전에 실렸는데 모두 현대국어의 '고추'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모든 책을 다 보았다고 장담을 할 수는 없으나 내가 본 책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고추'로 본 것들뿐이었다.
  여기에 「朝鮮館譯語」(花木門)에도 이 말이 나타남을 덧붙여 둔다.

楜椒 果綽 虎爵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한결같이 이 '果綽'을 '고쵸'로 읽고, 아무 설명도 없이, 현대국어의 '고추'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마도 중세국어의 '고쵸'에서 근대국어의 '고쵸'를 거쳐 현대국어의 '고추'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 분명하여 아무런 의문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한다.
  중세국어의 '고쵸'를 현대국어의 '고추'와 같은 것으로 본 지금까지의 해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첫째, 고추는 15·16세기의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았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後述 참고)
  둘째, '胡椒'는 고추가 아니라 '후추'를 가리킨 말이었다. 「本草綱目」을 비롯한 중국 책들을 들출 것도 없이, 이것이 후추(piper nigrum)을 가리킴은 한 점의 의문도 있을 수 없다. '胡椒'의 '胡'는 이것이 중국 原産이 아니요 塞外에서 온 것임을 말해 준다. '胡'는 秦漢 이전에는 匈奴를 가리켰으나 뒤에는 塞外民族의 汎稱으로 쓰였던 것이다. 후추의 原産地는 印度 남부로서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하여 紀元前에 유럽에 들어갔고 중국에 들어온 것은 이보다 뒤의 일이었다고 한다. 東西를 莫論하고 후추는 貴族만이 즐긴 매우 진귀한 香辛料였다. 이것이 언제쯤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麗末에 琉球 使臣이 바친 '胡椒'를 諸宮에 나누어 준 기록이 있고(「高麗史」 卷137, 列傳 卷50) 朝鮮朝에 들어와서는 日本이나 琉球 使臣의 方物 중에 '胡椒'가 들어 있는 기록(成宗實錄 卷189, 17年 3月 甲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후추가 매우 진귀한 물건이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셋째, 平安 方言에서는 후추를 '고추'라 하고 고추는 '댕가지, 당추, 댕추'라 한다. '고추'가 본래 후추를 가리킨 중세국어의 遺影이 거기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댕가지'와 '당추, 댕추'는 이 방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방언 조사를 종합해 보면 '댕가지'는 江原, 咸鏡 방언에서도 들을 수 있으며 '당추, 댕추'는 위의 두 방언과 黃海, 京畿 방언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그 分布가 자못 넓다. 忠淸 이남의 방언에서는 '당추'가 쓰이지 않는 듯하나,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이로써 중세국어 문헌의 '고쵸'가 후추를 가리킨 말이었음이 밝혀진 것으로 믿는다. 여기서 중세국어 문헌에서 諺解文에 '胡椒'가 쓰인 예가 있음을 지적해 둔다. 이들은 이 漢字語도 그 때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胡椒와 마와 生薑강과(胡椒 蒜薑) (救急方諺解 下80)
胡椒ㅅ조차 고(泥椒) (飜譯朴通事 上68)


3.

  그러면 '고쵸'가 언제 어떻게 해서 고추를 가리키게 되었을까.
  여기서 우선 고추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고추의 原産地는 南아메리카라고 하며 이것이 西洋을 통하여 日本으로 온 것이 16세기 후반이었고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전후의 일이었다. 17세기 초에 된 李晬光의 「芝峯類說」(卷20)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南蠻椒有大毒 始自倭國來 故俗謂倭芥子 今彳生彳生種之 酒家利其猛烈 或和燒酒以市之 飮者多死

  이 글에 나오는 '南蠻椒'나 '倭芥子'는 일본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들이다. '南蠻'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南海의 나라들을 가리킨 말이었다. 「芝峯類說」(卷19)에 '南蠻柿'(일년감, 토마토)에 대하여 "春生秋實 甘味似柿 本出南蠻 近有一使臣得種於中朝以來"라 한 "南蠻"이 그것이다. 그런데 16·17세기의 일본에서는 이것으로 주로 南洋諸島를 거쳐 들어온 포르투갈, 에스파냐 사람을 가리켰던 것이다. 고추가 이들을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일본에서는 이것을 nanban karasi(南蠻辛子) 또는 다만 nanban(南蠻)이라 일컬었었다. 현대 일본어로는 고추를 tōgarasi라 하며 '唐辛子, 唐芥子' 등으로 표기된다. '唐'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국을 가리켰지만, 일본에서는 모든 外來品에 '唐'을 붙이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국어의 일부 방언에 '댕가지' '당추, 댕추' 등이 있음을 위에서 보았는데 이들도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위에서 본 「芝峯類說」의 '南蠻椒'가 실제로 근대국어에서 쓰였음은 「山林經濟」(卷1)에 "南椒 或稱倭椒 남만초"라 있음을 보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7세기말의 「譯語類解」에 보이는 다음 語項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秦椒 예고쵸(上52)

  이것은 '고쵸' 앞에 '예'(倭)가 붙은 말이다. 「芝峯類說」의 '倭芥子', 「山林經濟」의 '倭椒' 등과 같은 계열에 드는 말이라 할 수 있다. 「星湖僿說」(萬物門, 番椒)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倭地에서 왔다고 하여 '倭椒'라 한다고 적혀 있음을 본다. 이것이 실제로는 '예고쵸'라 하였음을 「譯語類解」가 보여준 것이다. 이 '예고쵸'를 "고추의 일종"이라고 한 것(한글학회, 우리말 큰 사전, 권4;南廣祐, 敎學古語辭典)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 '秦椒'가 고추의 일종이 아니라 고추 일반을 가리킨 말로 쓰였음은 중국(淸代)과 우리나라의 여러 책에서 확인된다.
  「譯語類解」보다 조금 앞서 간행된 「朴通事諺解」(上60)에 '호쵸'(椒)가 보인다. 저 위에서 든 「飜譯朴通事」(上68)의 예에서 '胡椒'라고 漢字로 표기되었던 것이 여기에 한글로 '호쵸'라 표기된 것이다. 漢字 대신 한글로 쓴 것이라고 무심히 보아 넘기기 쉬우나 이것은 '호쵸'가 근대국어에서 후추를 가리킨 말로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16세기였다면 으례 '고쵸'라 표기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 해석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상 17세기의 諺解 문헌에 漢文의 '胡椒'를 '고쵸'로 옮긴 예는 보이지 않고 '호쵸'로 옮긴 예들만 보인다.

호쵸(胡椒) (諺解胎産集要 14)
호쵸물(椒湯) (馬經諺解 下113)

  이러한 예들은 17세기에 이미 '호쵸'가 후추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를 잡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17세기말의 근대국어에서는 '호쵸'와 '예고쵸'의 대립 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호쵸(胡椒 후추)
예고쵸(秦椒 고추)

  중세국어의 '고쵸'의 자리를 '호쵸'('胡椒'의 字音)가 차지하고 '고쵸'는 새로 들어온 고추에 그 몸을 의탁하였음은 매우 흥미 깊은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 변화가 고추의 새로운 등장으로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바, 고추를 '예고쵸'라 부르는 일이 널리 퍼지면서 후추를 '고쵸'라 부르기 보다는, 중세국어 말기에 이미 쓰이기 시작한 '胡椒'의 字音 '호쵸'를 쓰는 일이 잦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18세기에 들어서도 '예고쵸'가 쓰인 흔적이 보이지만(「方言類釋」 3.28), 이 때에 이미 '예'가 떨어져 '호쵸'와 '고쵸'의 대립 체계가 완성되었음을 「漢淸文鑑」(12, 41)은 보여준다.

胡椒 ── ◦ 할후리
秦椒 고쵸 ◦ 카키리 

  여기에 제시된 滿洲語의 halhūri와 kakiri는 각각 후추와 고추를 가리킨 단어였다. 참고로 「五體淸文鑑」(卷27)에도 halhūri에는 중국어 '胡椒', kakiri에는 중국어 '秦椒'가 제시되어 있음을 본다.
  19세기 전반에 편찬된 柳僖의 「物名考」(卷3)를 보면 '胡椒'에는 한글 표기가 없다. 이것은 「漢淸文鑑」에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南蠻椒'에는 倭國에서 온 것임을 지적하고 '고초'라는 한글 표기를 제시하였다. '고쵸'가 아닌 '고초'인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4.

  끝으로 중세국어에서 '胡椒'를 가리킨 '고쵸'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하는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고쵸'가 '胡椒'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명이 된다면 이 문제는 싱겁게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그렇게 풀릴 가망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고쵸'를 '苦椒'라 표기한 예들이 있어 주의를 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 '苦椒'의 예들은 18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英祖實錄」(卷111, 44年 8月 癸丑)에 '苦椒醬'이 있고 「進宴儀軌」 등에도 '苦椒'가 있다. 그리고 筆寫本 「國漢會語」에 '고쵸 苦椒'의 표기가 보인다. 이들은 '고쵸'의 의미가 이미 고추로 변한 뒤의 것들이다. 그러나 15·16세기 이래의 표기 관습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 '苦椒'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중세국어의 '고쵸'가 이 漢字語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苦'와 '椒'의 우리나라 字音이 '고', '쵸'였고 둘 다 平聲이었는데 '고쵸'(胡椒)의 聲調도 이와 일치하였던 것이다.
  지금 市中에 나와 있는 국어 사전들에는 '고추'의 語源 표시로 '苦草'가 적혀 있음을 본다. 이 표시는 1920년에 간행된 「朝鮮語辭典」(朝鮮總督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뒤의 국어 사전들이 이 어원 표시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여 온 것이다. 「朝鮮語辭典」의 편자가 '당초'는 '唐椒'라고 하면서 '고초, 고추'는 '苦草'에서 왔다고 한 것은 思慮 깊지 못한 처사였다고 아니할 수 없으며 이것을 그대로 따른 그 뒤의 사전 편찬자들의 처사는 더욱 한심스러웠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쵸'의 '쵸'가 '草'가 아니었음은 중세국어의 '草'의 字音을 알아보기만 하면 곧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다. 중세국어에서 '草'의 字音은 '초'였던 것이다.(六祖法寶壇經 中 51, 訓蒙字會 初刊 下2, 新增類合 上7, 石峯千字文 6) 중세국어에서 '쵸'와 '초'는 엄격히 구별되었었다. 그리고 聲調를 보아도 '고쵸'의 '쵸'는 平聲이었는데 '草'는 去聲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悲劇은 20세기에 들어 옛 傳統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로 말미암아 民族의 참모습을 되찾을 수 없게 되었음은 千秋의 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恨을 제대로 느끼지조차 못하니, 우리 民族 文化의 앞날이 더욱 암담하게 느껴진다. 1895년의 「國漢會語」에까지 이어진 '苦椒'가 그 뒤에 까맣게 잊혀지고 엉뚱하게도 '苦草'가 나타나 지금까지 국어 사전들에 버젓이 그 모습을 보여온 것은, 작다면 극히 작은 일인 듯하지만, 이것도 위에서 말한 크나큰 悲劇의 한 가닥임에 생각이 미칠 때, 가슴이 섬뜩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