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생여고 제자 좌담회 ―
때 : | 1998년 8월 14일(금) 14:00~16:00 |
곳 : |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실 |
사 회: | 이익섭(국립국어연구원 원장) |
참석자: | 최금옥(영생여고 21회 졸업생) 김옥실(영생여고 21회 졸업생) 한춘학(영생여고 21회 졸업생) 김철숙(영생여고 21회 졸업생) 박영희(영생여고 23회 졸업생) 김옥순(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
함흥 영생여고와 정태진 선생
사 회:안녕하십니까? 더운 날에 이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사님을 회고하는 일로 이처럼 동창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의가 21회 동기분들이신데 많이들 남쪽으로 나오신 모양이지요?
김옥실:예. 지금도 정기적으로 동창회를 하고 있는데 많이들 모여요.
사 회:그때가 21회면은 지금 졸업하면 몇 회가 되나요?
김철숙:글쎄요… 우리가 27회까지 있나?
최금옥:아니, 그 후에 명칭을 바꿔 가지고, 해방된 후에 또 바꿨어요.
한춘학:30회도 있지? 명칭은 바꿨지만도….
사 회:이름을 바꾼 것은 미션하고 관계해서 바꾼건가요?
박영희:그때 아마 관계없이 일제에서 한 거지요.
최금옥:창씨를 시키고, 히노대라고 하고.
한춘학:그리고 선교사 맥일홍 교장 선생님도 미국으로 보내고, 한국 사람을 교장으로 세우고, 그 다음에 다 창씨를 시켰잖아요.
사 회:21회시면 영생학교에 몇 년도에 들어가셨죠?
김옥실:36년인가, 7년인가.
사 회:36년에 들어가셨으면 그때 이미 정태진 선생께서 부임해 계셨을 때겠군요. 그 분이 25년에도 2년간 계셨다고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다시 미국에 가셨다가 31년에 다시 부임하셨으니까 그 분이 이미 계실 때에 입학들 하셨네요…. 요사이 같으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온 분들이 고등학교 취직은 안 할텐데… 그때는 정말….
김옥실:뜻이 있으셨으니까….
최금옥:그때 선생님들 다 제국대학 출신이었습니다. 구주제대, 동북제대, 센다이대고…, 북해도 제대 출신 선생도 있고… 그렇게 제대 출신 선생님이 4, 5분 계셨어요. 그런데 뭐 그때는 뜻이 계셔서 그런 학교에 오셨는지 모르지요.
김옥실:김하득 선생은 창씨 다 시키고 일본말 막 시키는데, “이름은 고유명사다” 그래 가지고 다른 말은 일본말 하면서도 이름만은 ‘김옥실’ 하고 꼭 우리말로 불러주셨어요.
사 회:그렇게 우리말로 이름을 불러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떠셨어요?
김옥실:그땐 철이 없어서 뭘 아나….
사 회:괜히 겁도 나고?
김옥실:겁난 것도 모르겠는데 철이 없어서 웃었어요… 흉만 보고… (웃음).
사 회:일본 이름이 좀더 그럴듯하게 생각된 면도 있기는 있었겠죠? 사람을 좀 우쭐하게 해 주는….
김철숙: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안 받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우리는 받았지요.
사 회:정태진 선생이 정말 무슨 뜻이 있어서 거기로 가셨겠지만 서울서 보면은 꽤 먼 곳이었을텐데… 거기로 왜 오셨다… 그런 말씀을 들어보신 일은 없었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노라, 이런 말씀. 간접적으로라도 들어보신 적이….
최금옥:그런 것은 못 들어 보고, 은연중에 우리 나라 애국적인 것을 우리한테 직접적으로는 말씀을 안 하시고 옛 역사를 통해서라든지 간접적으로 코치를 한 것은 생각이 나요, 직접적으로는… 그냥 좀 경계하는 태세를 저희가 느꼈습니다.
김철숙:말이 별로 없으셨어요….
한춘학:말씀이 없으시지….
김옥실:우리 나라의 애국자 얘기를 하시려면 다른 나라 애국자 얘기를 하셨어요. 도산 안창호 선생 얘기도 들었는데, 딴 독립운동 얘기는 다 빼시고 약속은 꼭 지키시는 분이다. 아이하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나가셨다가 체포되셨다. 그런 얘기를 하시고….
사 회:감시가 계속 있었을테니까.
최금옥:감시라는 태세인 것은 저희도 직감했습니다. 전공과목은 별로 가르치지 않고 교양과목이나 성경 그런….
한춘학:우리 때는 조선어도 다 없앴고요.
사 회:이미 입학했을 때는 없어졌을 때입니까?
김옥실:1학년 때는 조선어 독본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철자법 다 틀린 거… 그리고 문예독본이라고 부독본이 하나 있는데, 그건 학교에서 사사로이 책정해 주신 것, 우리 나라 문예 작품이 조금씩 나온 거… 그거를 읽곤 했는데, 2학년부터는 없어졌어요.
사 회:1학년 때라는 것은 중학교 1학년인 거죠? 국민학교 때 한글을 익힌 다음에 그 독본을 읽으셨으니까 한글은 상당히 자유롭게 읽는 단계였겠네요?
김옥실:그렇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교지가 나왔어요… 「생명」이라고… 「생명」이라는 교지가 나와서 우리 그 잘나게 쓴 글이라도 선생님이 잘못된 데 다 교정, 정정해 가지고 그걸 실어 주시곤 했습니다.
사 회:그 글을 실릴 때에는 이미 일본말 세상이 다 되지 않았습니까?
김옥실:일본말로 해도 「생명」이 우리말로 나오는 데는 괜찮았어요. 그 후에는 아마 못 나왔을거예요. 우리 입학하고 한 번 냈어요.
일제시대의 이중언어 사용 현실
사 회:정태진 선생 일본말 하시는 거 들어 보셨어요?
한춘학:한 번도 못 들어 봤어… 기억이 안 나.
김철숙:꼭 한국말 쓰시고….
사 회:그래도 감시가 있었을 텐데….
김철숙:그때까지만 해도 보통 말하는 거는 일본말 쓰라는 소리 좀 하다가…
김옥실:상용은 안 했어요. 3, 4학년 때까지….
김철숙:3-4학년 되니까 심해졌죠. 전쟁이 나니까 자꾸… 심해졌죠.
한춘학:4학년 때 우리가 다 창씨를 했잖아요.
김철숙:그래도 어쨌든지 하루가 다르게 자꾸 제지, 제지, 제지 했거든요.
김옥실:심지어 집에 가서 한국말 쓴 것도 와서 적으래요.
사 회:조선어 독본을 가르치지만 못하도록 하고, 시간에 말은 그대로 사용하셨군요. 어쨌든 그 선생님들이 시간에 조선말을 썼으면은 학생들도 학교에 가서 조선말을 마음대로 썼겠네요?
김옥실:네, 그랬어요.
사 회:그런데, 그것을 완전히 못 하게 한 것은 졸업할 때까지는 아니었나요?
한춘학:우리 4학년 때 창씨를 하고, 그때부터 교실에서 선생님이 한국말로 가르치지 마라. 이 명령이 내린 것 같애요. 그러다가 일본말 못 하는 선생님들은 시간에 들어와서 굉장히 당황해하시던 기억이 나요.
사 회:그 4학년 때라는 게 1940여 년쯤이 되나요? 해방되기 몇 년 전인가요?
한춘학:전쟁 일어나기 일 년 전이니까… 전전해였지?
박영희:40년 전이예요. 언니들 졸업하기 전이면 40년이예요.
김옥실:39년인가?
사 회:졸업을 39년에 하셨어요?
최금옥:네.
김옥실:졸업은 40년에 했어요. 40년 봄에 했거든, 그리고 40년 12월에 일본 전쟁 터졌어요.
사 회:1940년부터 조선말 못 쓰게 했군요?
김옥실:아니, 39년부터 못 쓰게 했어요.
사 회:39년부터 못 쓰게… 그럼 출석부에는 전부 일본 이름을 올리셨나요?
한춘학:졸업 앨범이 있는데요. 거기 보면…뭐…하나도…너만 창씨를 안 했지? 이 친구만 아버지가 아주 강경하셔서 창씨를 안 하고 그냥….
사 회:학교에서 그래도 창씨 안 한 이름을 올려주나요?
김옥실:출석부에 오르기는 올랐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교장 선생님도 이해는 가요. 그때는 아주 지독한 친일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면 진짜 친일파였더라면 날 그냥 안 뒀을거다 싶은 생각이 나요.
사 회:그렇죠. 출석부에 이름을 올려줬다는 게….
김옥실:수신이라는 과목이 있거든요, 수신 과목이 지금 말하면 도덕인데, 그때는 자기네 나라 정신을 강요하고 그러는 건데, 제가 1번이예요. 1번 출석부를 보고 창씨 안 했구나, 왜 안 했어, 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셔서 그런다고… 그럼 집에 가서 아버지께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라는 이야기를 1시간 동안 장시간 하십니다. 그럼 그 다음 종이 나서 아무것도 못 하고 헤어지거든요…그 다음 월요일 첫시간에 또 와서 똑같은 소리를 그대로 해요. 그래서 4학년 1년 수신 한 페이지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 선생님도, 본심은 다른데, 그래도 교장으로서 아이들을 설득시키라는 걸 안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셨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 회:정태진 선생님한테 배운 건 몇 학년….
김옥실:1학년부터…
한춘학:3, 4학년 5월인가 아마 한글학회로 올라오신 것 같애요. 그래서 졸업 앨범에는 정태진 선생님의 사진이 없는 걸 보니까 그해 5월에 한글학회 왔다는 기록이거든요. 그러니까 정태진 선생님이 일본어를 쓰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4학년 때 억지로 해라 했으면 혹시 한두 마디 했을지도 모르는데,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그런 걸 보면 그 전에 학교를 떠나셨을 거예요.
사 회:박 선생님은 정태진 선생님께 몇 학년 때 배우셨는지요?
박영희:1학년, 2학년 때까지 배웠나?
한춘학:이 사람이 일기장을 뒤지다가 국어를 쓰지 마라, 쓰는 사람은 벌 준다고 그랬다고… 이 친구예요.
박영희:오래 돼서 다 잊어버렸어요(웃음).
조선어학회 사건의 실상
사 회:그때의 그 국어라는 것은 어느 걸 국어라고 하는 겁니까?
한춘학:일본말이 국어죠.
박영희:그게 신문에 난 걸 보면 말이 또 달라요. 저희가 겪은 것하곤. 그땐 우린 국어 상용이라고, 일본말을 상용하라고 이걸 해서 벽에다 붙이거든요? 복도에, 그랬죠? 우리 땐 그랬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그게 거꾸로 되어 있었어요. 그게 문제가 되었어요. 거꾸로 했으니까 국어 사용을 반대했다는 거야. 그래서 문제가 되었지.
사 회:일기장에 썼다는 건 뭐예요?
박영희:그러니까 그때 2학년 때 쓴 걸 글쎄 그런 이야기를 썼나봐요, 내가.
한춘학:1학년 때 쓴 걸 삼촌인가, 경찰이 주목했다가 발견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더라고… 신문에….
박영희:그거는 이희승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그게 비단 우리를 목표로 한게 아니라 서울서 원래 어학회라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답니다. 그 우리 선생님들이 하시는 어학회하고 일본정부에서 하는 어학회하고… 두 곳이 있었는데, 그것이 편지도 오락가락 한대요, 이쪽 편지 저리로 가고 저쪽 편지 이리 오고… 그랬는데, 그걸 맨날 우리 선생님들 어학회를 어떻게 잡아야 되는데 꼬투리를 못 잡아서 늘 애타게 그랬다고… 그러면서 이희승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목표가 원래 어학회였다. 그래서 그런 거지….
최금옥:그때 어학회에서 잡혀간 인원이 16명이라고요…. 16명인지 확실히 모르겠어요. 50년 좀 더 된 일인데, 그때 제가 영생중학교 그 사택에 있을 때 그 학교 바로 대문 앞에서 한참 더 쭉 가면 함흥 형무소입니다. 거기 어학회 사건에 걸린 분들이 계시다는데, 하루는 갑자기 저기서 죄수들이 올라온다고 그래서 막 대문 열고 나가니까 그때 어학회 사건에 걸린 분들하고 또다른 분들이 계세요, 그렇게 숫자는 많지 않은데… 수갑은 안 채우고요, 이렇게 밧줄로 연결식으로 매고 고깔을 씌워서… 그게 이렇게 가는데, 아마 8·15해방 고 전, 한달 전 더운 때예요. 이북에서 반팔 적삼이라고 그러는대요, 그거 입고 바지 이런 거 입었는데, 줄을 쭉 세워 놓아 가지고 양쪽에서 간수들이 지키고 올라오는데 보니까, 옴이 올랐어요, 팔이고 다 피투성이 되었어요. 그런데 난 정태진 선생님 찾으려고 보니까 선생님이 저만큼 갔어요. 그래서 선생님 선생님 하니까 말 말라고 큰일 난다고 말 말라고….
사 회:고깔은 씌웠는데….
최금옥:고깔은 씌웠는데 그렇게 깊지는 않았습니다. 고깔을 씌웠는데 발이고 뭐고 피투성이 되었어요. 너무 긁어서요. 그래서 선생님 선생님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라고 그래요. 집에 들어가서 봉지에다 이렇게 사과를 넣었는데, 빨간 사과 아니예요, 파란사과예요. 그때 배급 준 거예요. 봉지에 넣어 가지고 빨리 뛰어서 또 선생님께 따라 갔어요. 들어가라니까 왜 따라오느냐고… 괜찮다고 살금살금 따라 가니까요. 함흥 그 운웅리라는 어떤 냉면집에 들어갑디다. 그래서 죄수들을 다 꿇어 앉혔는데, 그게 아마 재판받으려는 건지, 그렇게 가는데 많은 수는 아니길래 이렇게 쭉 한 방에 앉혔는데, 냉면이라고 드리는데 그 바다풀이예요. 이북에서 ‘간들기’라고 하는 그거하고 콩 조금 섞어서 냉면 만들어서 새카맙디다. 그걸 한 그릇씩 잡쉈는데, 사과를 무릎밑에다 이거 잡수세요 하니까, 가라는데 왜 여기 있냐, 빨리 가라, 큰일난다 가라 해서 그냥 울면서 집에 들어왔는데, 그게 마지막인데, 그후 8·15해방이 금방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은 서울 올라가셨다… 그런 소리 듣고요.
사 회:석방돼서 서울로 갔다?
최금옥:예, 그때 해방이 금방 되었으니까, 그때 아마 이때보단 조금 전인거 같애요. 그리고 선생님은 서울에 올라가셨다는 소리를 듣고요. 몇 분은 이북에 가셨다 그러대요. 그 어학회 사건에서 몇 분 이북에 가셨다 그러고… 6·25때 식량 구하러 시골로 가셨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러는데, 그 아드님이 중앙대학교 교수라는 소리를 7, 8년 전에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연락해 가지고 중앙대학교에다가 여러 번 물었는데, 정씨가 40명인데 그거 왜 여기 와 찾느냐고 보훈처에 가 찾지. 그래서 제가 유명한 애국자시고요, 정태진 선생님 아드님을 모를 리 없는데… 저도 중앙대학교에 좀 관계있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바쁜데 여기 와서 찾지 말라고, 왜정 때 애국지사 그걸 왜 여기와 찾느냐고… 그날 어떻게 기분이 나쁜지….
한춘학:그 얘기 듣고서 아드님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제 정해동 씨를 찾아 가지고 아는 분 찾아서 전화를 해 가지고 이번에 얘기도 하고 자료도 좀 보내 주고….
사 회:연구원에도 다녀가셨어요. 아주 열심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도 내고, 이건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받은 건데….
최금옥:그 선생님 자제분인데 어련하셔… 그래서 정말 그때 대단히 기뻤습니다. 그 선생님 자제분이 교수로 계시고 또 알아보니까 또 따님도 약대를 나왔고….
정태진 선생의 인품과 강의 모습
한춘학:저희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이셨거든요, 구체적으로 우리한테 민족사상 넣어주거나 그런 거는 없어도 어딘가 저 분은 그런 정신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이야기도 열심히 듣고 어느 제자없이 다 존경했지요… 그 선생님은….
최금옥:얼굴이 정말 자비하시고, 인자하시고, 성내는 것도 못 보고요, 정말….
한춘학:애들이 떠들어도 떠들지 말란 소리 안 해요. 꼭 입에다가 손 대고… 선배들한테 내가 물어봤지요. 정선생하면 입에다 손 대던 게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박영희:저희 때도 한 번도 제대로 수업은 한 거 같지 않아요. 항상 들어오시면 얘기… 그러거든요… 늘 역사니….
사 회:얘기란 뭐죠?
박영희:얘기해 달라고, 역사 얘기 해달라고 조르는 거죠. 학생들이….
사 회:그럼 4년동안 어떤 특정한 과목을 가르치신 건 아니고요?
최금옥:없어요. 그저 성경시간에 들어오시고… 수학도 가르치시고, 기하도 가르치시고….
사 회:나중에 수학 가르치신 걸로 나오는데….
박영희:저희 때는 수학 가르치시고, 수신도 가르치시고….
한춘학:그게 학년마다 다른 거 같애.
박영희:수신 시간에는 주로 역사 얘기….
사 회:역사는 뭐… 세계 역사….
박영희:네, 우리 나라 역사요… 마의태자라든가… 이차돈의 사….
김옥실:체계적으로 가르치시지는 못하시고, 세계위인전을 다 얘기 하시면서… 사이사이 조금씩….
한춘학:세계문학전집도 우리한테 소개 많이 해 줬어요. 그 선생님 영향으로 우리가 독서력이 강해졌어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난 한국 역사소설 하나도 안 읽은 게 없어요. 소설만 읽으면 정태진 선생(웃음)… 밤 새워 가며 읽고 그랬는데….
사 회:그때 읽을 역사소설이 그렇게 있었습니까?
한춘학:있었습니다. 마의태자… 이광수작, 박종화작… 참 많았어요. 그래도 그때는 도서실에 비치되어 있는 걸 반대를 안 했던 것 같애요. 제가 4학년 때 도서부를 맡았는데 다른 사람은 이름 쓰고 받아 가지만 난 마음대로 갖다 보잖아요…. 그러니 또 어느 장면에서 울었는지 밤에 막 울던 생각이 나는데, 어쩐지 60년 전에 「젊은 그들」이라는 것을 읽은 것 같애… 낮에는 문살에 해가 비치면 차차차차 내려오는 그 장면들이,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도 아름답게 그렸을까. 그래서 그 영향으로 제가 소설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세계문학전집은 한국어로 번역된 게 없었어요. 일본어로 되어 있고, 그거도 많이 읽고, 그 영향이 참 많고….
사 회:그러니까 정태진 선생님이 아까 우리 나라 역사소설들을 다 읽으셨던 모양이죠?
한춘학:무궁무진했죠. 들어올 때마다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얘도 그러잖아… 얘기해 달라고(웃음)… 애들이 할머니한테 얘기해 달라는 형식으로 너무 재미있었어요…
박영희:‘해주세요’도 아니예요… ‘얘기’, ‘얘기’ 그래요(웃음)….
사 회:그런데 아까, 국어 상용하자는 걸 거꾸로 붙였다는 것은 무엇을… 그 국어를 조선어로 말을… 거꾸로 생각했다는 겁니까?
박영희:그게 아니죠, 국어 상용하라는 것은 일본말 상용하라고 한 건데, 그게 어떻게 돼서 거꾸로 되었다구요. 그래서 어느 학생이 거꾸로 해놓은 거지요. 이제, 그러니까 학교측에서는 어느 학생이 반대를 해서 그러나보다 그거죠.
사 회:그러니까 이미 그때는 책도 조선어 독본이고, 이름이 조선어죠. 그때는 국어라고 안 했죠?
김철숙:일본말을 국어라고 했죠.
사 회:그러면 일기장에 국어를 쓰다가 혼났다는 것은 일본어를 쓰다 혼났다는 말이….
한춘학:그 말이죠. 그때는 일본어를 국어라고 했다니까….
사 회:아무리 학교가 조금 그런 분위기였어도, 일본말 썼다고 야단을 칠 선생은 없을 법한데… 당연히 일본말 쓰던 세상인데, 그런데 일기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요?
박영희:그 사람들 얘기는 그거죠. 신문측에서 잘못 전달한 거죠….
한춘학:일본어 쓰는 사람은 벌 준다…그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한 거예요.
박영희:그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한 거지만 원래는 일기에도 그렇게 있는 게 아니고 신문에도 그렇게 잘못 났어요.
사 회:국어를 쓰다가 야단을 맞았다는 표현조차도 일기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이죠? 대개 어떤 식이었을까요?
박영희:그 국어 상용을 거꾸로 해놨기 때문에 우리가 야단 맞았다는 얘기였던 것 같아요. 오래된 얘기라서….
사 회:거꾸로 붙인 거야 정태진 선생과는 관계없는….
박영희:일본말 쓰지 말라고 한 거는 정태진 선생은 말하지도 않았고, 정태진 선생에게 뒤집어 씌운 거죠… 정태진 선생하고 저희하고는 관계 하나도 없이 그래요. 저는 원래 친구도 많지 않거든요. 일기장에는 친구 이름 하나밖에 없어요. 저야 뭐 할말이 있어야죠. 없으니까 친구를 뒤져서 함흥 나갔나봐요. 함흥 아이니까… 거기 있는 신문 보니까 뭐 누구, 누구… 그런데 그 애들 하나도 전 친한 아이 아니예요. 별로 놀던 아이들도 아니고….
사 회:거꾸로 해놨다는 그건데, 그 일기장을 그 삼촌이신가 그 분이 거리에서 심문을 당해 가지고 와서 가택수색 하다가 가져간 거는 맞아요? 홍원서 그랬다구요? 홍원이 함흥에서 몇 리나 됩니까?
김철숙:제법 가죠.
한춘학:몇 백리 되겠지요.
박영희:그래서 정인승 선생님인가… 신문에 낸 데는 홍원서 통학을 했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홍원이 멀어요. 거기서 통학을 할 수가 없어요. 그것도 신문이 틀렸어요. 김상필 선생님도 어디 쓴 게 거기에도 틀린 말이 많더라구요.
사 회:그럼 통학을 하신 게 아니라 방학 때여서 가 계신 거였어요?
한춘학:그렇죠. 방학 때나 가죠. 통학 못 해요. 그전에 통학하는 건 흥남, 소호 거기서나 통학했지….
사 회:그때 함흥에 여학교가… 또 다른 건….
김철숙:4년제는 영생밖에 없었어요.
김옥실:셋이… 일본학교 하나, 공립학교 하나… 미션학교….
사 회:기독교가 만주에서 평안도쪽으로 먼저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함경도 쪽도 일찍 들어왔나요?
한춘학:함경도가 제일 먼저입니다. 캐나다선교회에서 함경도쪽으로 많이 왔습니다. 캐나다선교회에서 ‘영생’을 세웠죠. 장로교 감리교가 평안도쪽으로 왔고 캐나다선교회에서는 함경도쪽으로 들어왔죠.
사 회:정태진 선생님도 기독교신가요?
최금옥:개신교입니다.
한춘학:그런데 기록에 보니까 함흥에 온 이유가 한글 사전 만드는데, 방언을 연구하기 위해서 왔는데 나중에 방언에 대한 책도 내셨다면서요. 그때 와서 많이 수집을 했대요. 함경도 그때 방언도….
사 회:그때 선생님들 댁으로도 좀 찾아다니고 그러지는 않으셨나요?
한춘학:저는 별로 기억이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김철숙:별로 없습니다.
한춘학:네, 우리 때야 선생님의 그림자도 어려워하는 이런 시대니까 감히 선생님 집을 찾아다닐 여가가….
박영희:담임 선생님은 혹시 연락하고 만날 수 있지만 정 선생님은 담임 하신 것 같지 않아요. 담임을 안 하신 이유가 그때, 그 선생님은 언제든지 다시 가신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담임을 안 하신다는…. 외국에 가신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래서 담임을 안 하신 것 같애요.
한춘학:담임을 했으면 개인 접촉이 좀 있었을텐데….
사 회:그런데 신문에는 박영희 선생님 2학년 때 담임이 정태진 선생님으로 일기장에 담임 도장이 찍혔다고 되어 있는데 잘못된 건가요?
김철숙:최봉렬 선생님이 담임이어 가지고 최봉렬 선생님이 도장을 찍어줬다고 했지.
사 회:일기장을 의무로 쓰게 했나 보죠?
일기장 발단의 허구성
박영희:예,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내죠. 그러니까 그렇게 자유스럽게 일기장을 쓸 수도 없어요. 학교에 내는 거니까….
김옥실:한번 자기 마음 털어놓고 써 본 일이없어요. 작문을해도… 일기를써도… 학교에서 감독받는거니까… 마음의 소리를 못 하죠.
한춘학:작문도 다 일본말로 써야 하니까….
김옥실:일본말로 쓰니까 우리 의사를 제대로 표현을 못 했지….
사 회:이성희, 정인자 그런 분들이 같이 고문받고 그러셨다는데, 친한 분들은 아니셨는데 그냥….
박영희:이성희가 친하죠.
사 회:이순자, 최순남.
박영희:걔네들은 별로 친한 아이들은 아니었어요.
사 회:일기장 때문에 결국은 경찰서까지 불려 가셨댔어요? 불려가서 집에 못 들어가고 며칠 있었나요?
박영희:거기 처음에는 있지 않았어요. 저희 집도 고향에서는 좀….
김철숙:유지라….
박영희:막 함부로 못 하고 그러니까 낮에 갔다가 저녁에 오고… 그렇게 했는데, 하루 가니까 친구들이 있어요, 몰랐죠. 그래서 웬일인가 했더니 끌려 왔다고 그래요. 나 집에 안 간다고 친구들도 와 있는데 나도 여기 있겠다고… 그래서 그때부터 있었어요, 같이.
사 회:그 친구들은 아예 처음부터 집에 못 가고….
박영희:그 애들은 다 함흥 아이들이니까 함흥쪽에서 불러왔어요.
사 회:그 친구들은 뭔가 다른 걸로 해서….
박영희:어떻게 왔는지도 저는 모르겠어요. 기차는… 저희가 통학하지도 않았는데…. 저는 기숙사에 있었는데요.
김철숙:그때는 고등계 형사들이 기차 안을 누비고 다니고… 수상한 거 없나… 뭐 꼬투리 잡을 거 없나… 그래서 캐기 시작하면 뭣인가 나오거든….
박영희:정인승 선생님은 몇 번이나 통학한 일이 없다고 그래도 자꾸 그러시는 거야… 모임 있을 때마다 통학했다는 얘기를 하신다고….
사 회:정인승 선생은 사석에서 만나뵈었던가요? 지금 이 사건 때문에, 증인으로….
박영희:한 번은 방송국에서… 이희승 선생님은 몇 번 만나고….
김철숙:그 때는 남자들도 중학교 학생들이 사상문제로 많이 걸렸거든요. 그러니까 방학 때 같은 때 오고가고 할 때는 찻간에서 계속 형사들이 탐지를 하죠.
박영희:우리 고향에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많았어요.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고… 본거지예요…. 그러니까 형사들이, 그 고등계 형사가… 일본 사람이 한 반 더 될 거예요… 한국 사람 몇 사람 없어요. 안씨라는 사람이 아주 지독한 사람이예요. 생각해 보면 나쁜 형사… 일본 사람 앞잡이….
한춘학:안정묵이가….
박영희:그 사람이 물고 늘어진 거예요. 자기 공 세우려고 그래서 고등계 주임이 날보고 그러더라고요. 아이들 일이니까 방학동안에 끝내자고 그런데 그 안정묵이 물고 늘어져가지고 저렇게 된 거예요.
김철숙:그런데 그때 참 많았어, 그런 앞잡이들이… 그런 것들이 더 못되게….
사 회:결국은 같이 있던 그 친구들은 다 같은 학년 같은 반 친구들이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정태진 선생한테 뭔가 누명을 씌우는 쪽으로 작용을 했나요?
박영희:그럴지도 모르죠. 그저 정태진 선생님은 책이나 소개해 주고 옛날얘기 해 주는 거 가지고 꼬투리 잡은 거죠….
김철숙:그 놈들은 한 마디만 나오면, 꼬투리만 나오면 자꾸 만드니까….
사 회: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조선역사 얘기는 왜 해줬느냐… 하라는 수업은 안 하고… 그런 게 벌써 나쁜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 뭐 얼마든지 갖다 붙일 수 있을 텐테… 대개 그 친구들이 거기에 며칠이나 붙잡혀 있었을까요?
박영희:그 친구들 우리 개학할 때까지는 있었으니까… 나하고 성희만 나왔지, 개학 전에. 그러다가 함흥으로 데리고 나갔나봐요. 어학회 선생님들 나가실 적에 같이 모두 데리고 나갔나봐요.
사 회:여학생들이야 죄가 없었을 거 아니예요. 왜 그렇게 오래 붙잡혀 있었는지?
박영희:머리 속에는 독립 생각하고… 민족 그게 있겠지만… 학교에서 사실 그런 거 할 수가 없잖아요. 괜히 그러는 거예요….
사 회:그 중 둘은 후유증으로 작고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박영희:두 사람 다 좀 병이 있었어요. 최순남이도 본래 약해서…. 그랬는데 나와 있다가 갔고… 이순자는 결혼해서 갔어요. 애기 낳아 가지고….
사 회:그런 것이 아니고서는 그 일본놈들 참 못됐다… 그렇게 느끼는 일은 별로 없었나요?
한춘학:많았죠. 헌병대 지나서 우리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시내쪽으로 군영통인가 봐… 그쪽으로 가는데… 헌병들이 한국 사람 세워놓고 발길로 뒤를 탁 차는데, 평생 잊어지지 않아. 그렇게 악랄하고 못된 놈들 있을까하고 그때 몸이 막 떨리더라고… 지금도 일본하면 그 헌병들….
사 회:누구를 찼다고요?
한춘학:한국 사람들… 잘못도 안 하고 길에서 만난 사람인데 그냥 세워놓고 발길로 뒤로 탁 차니까 뒤로 나가 자빠지는 거예요. 그럼 또 일어나고 또 한 번 또 하고 그래서 마지막에 난 보지도 못하고 너무 끔찍스러워서… 헌병들이 한국 사람들을 개 취급 하듯이 그렇게 했다고….
박영희:한국 형사들도 마찬가지… 나는 매일 불려가서 앉아 있는데, 촌사람들 데려다 놓고 한국 형사들이 그렇게 닥달질을 하더라고… 그저 무슨 말을 만들어서 조서를 꾸미드라고요… 우리도 매일 가서 조서를 쓰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야말로… 쓸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매일 가는 거예요 왜 안 쓰냐구 일본 형사가 그래요. 너는 아무리 그래도 소용 없대요. 니가 안 쓰더라도 다 써져 나온다고… 그러니까 난 쓸 말이 없어서 못 쓴다고… 난 한국 선생님하고 뭐 그런 거 없고… 적을 게 없다고… 그래서 한 일 주일 불려다녔어요. 매일 같이. 아침에 갔다 저녁에 오고… 그러고는 막 기압을 넣는 거예요. 너 무슨 너희 할아버지 믿고 그러냐… 누구를 믿고 그러냐… 너도 취조 못 할 줄 아느냐… 이러고 쓰라고 막 협박해요.
사 회:쓰라는 게 정태진 선생 쪽으로 쓰라는….
박영희:모르겠어요. 막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쓰래요. 학교에서 있을 일이 있습니까, 어디 선생님들도 내어놓고 민족 사상을 불어넣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잖아요.
사 회:함흥에도 경찰서가 있었을 텐데 왜 홍원에서 취조를…
한춘학:그러니까 홍원 경찰서에서 자기네 그거 하려고… 함흥에 넘겨주지 않고 그리고 아까 그 못 된 놈이 그렇게….
박영희:서울에서도 서울에 보내라, 함흥에서는 함흥에 보내라 그러는데, 안정묵이가 붙잡고 늘어지는 거지. 자기 이름 날리려고….
최금옥:저희는 어쨌든지, 여학교 시절에 최고 선생님들로부터 학문을 배웠지만도 여러 가지 사상적으로도 최고 특별한 은사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학교가 드물었을 겁니다.
한춘학:하나도 아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 두서없는 말만… 선생님 귀한 시간만….
박영희:도움이 못 됐어요. 별로….
사 회:귀한 걸음들을 하셨는데… 생생한 증언들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