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한 /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국어사전에 발음 표시를 하는 목적은 표제어와 그에 관련된 음운론적 정보를 필요충분하게 제공함으로써 언중들의 표준적인 언어생활에 이바지함은 물론 사전에 의거하여 관련 언어학적인 정보를 찾고자 하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함에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전학자나 사전 편찬 관계자들이 국어음운론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활용하여 편찬하고자 하는 사전의 성격이나 편찬 목적에 맞추어 체계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발음 표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국어사전들은 발음 표시에 있어서 체계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공되는 음운 정보의 내용면에 있어서도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기존 사전들의 발음 표시를 검토한 논의들이(1) 등장하면서부터 우리 사전들의 발음 표시가 과거에 비하여 상당히 개선되었음은 사실이나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발음 표시의 기준과 한계를 보다 분명히 함으로써 발음 표시에 있어서의 체계성, 통일성 및 명확성을 기해야 하는 문제, 장단음의 처리를 둘러싼 문제, 표제항 중심의 발음 표시가 이루어짐으로써 체언과 용언의 발음 변화에 대하여 제대로 정보를 주고 있지 못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어학자와 사전 편찬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앞으로 ‘새 사전’으로 줄임)의 편찬 사업은 기존의 국어사전들에 나타난 여러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표준 발음의 사전적 처리를 위하여 기존 사전들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2) 당시 필자는 주로 발음 부분의 지침을 마련하는 작업에 참여한 바 있는데,(3)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기존 사전에 제시된 발음 표시의 문제점과 새 사전의 발음 처리 방향을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되돌아봄으로써 필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면하고자 한다. 다만, 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지면상의 제약으로 발음 표시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표준 발음법의 내용을 중심으로 체언과 조사가 결합할 때나 용언 활용시의 발음 변화에 대한 처리 문제이다. 범위를 이렇게 한정하는 것은 이 문제가 다시금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나머지의 문제들은 기존의 논의들에서 이미 충분히 검토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한 세 논의의 내용을 참조하기 바란다.
2
기존 사전들에 나타난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바로 표제항 중심으로 발음 표시가 이루어져 있음으로써 이들이 실제 발화나 문장 속에서 후행 요소와 결합할 때의 발음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착어적인 성격이 강한 국어의 경우, 실제 발화나 문장 속에서 체언이나 용언이 표제항의 형태로 쓰이기도 하나 대개는 체언은 조사와, 용언은 활용어미와 결합하여 쓰이는 일이 많다. 이 경우 다양한 발음 변화를 수반하므로 이에 대한 정보 제공이 필수적이나, 기존의 사전들에서는 이에 대한 처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1) | ㄱ. |
흙[흑(흘기)], 값[갑(갑시)] |
<북한> |
ㄴ. |
값[갑] ―이[갑씨], ―도[갑또/갑뚜], ―만[감만](5) |
<정문연> |
|
ㄷ. |
날[날] ~이[나리], ~로[날로](6) |
<코스모스> |
(1ㄱ)은 <북한> 사전에서 겹받침을 가진 체언에 한하여 주격조사 ‘-이’와 결합할 때의 발음을 단독형의 발음 표시 뒤에 덧붙인 방식인데,(8) 겹받침을 가진 체언에 한정된 처리라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처리는 아니다. (1ㄴ)은 기술적인 발음 사전의 성격을 지닌 <정문연> 사전의 처리 방식이다. <북한> 사전에 비하여 조사 ‘-이, -도, -만’ 등과 결합할 때의 체언의 발음 변화를 표시함으로써 상당히 진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다만 체언 표제항마다 특수조사 ‘-도’와의 결합형을 보인 것에는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뒤에서 볼 것처럼 체언이 ‘-도’와 결합할 때에는 실제적인 발음 변화를 보이는 예가 없이 표제항의 발음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발음을 일일이 보인다는 것은 사전 편찬상의 경제성에 어긋나는 문제점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조사 ‘-도’의 발음이 [-도/두]로 변이됨을 보이기 위함인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이것은 다시 일반적으로 [-의/에]의 발음 변화가 나타나는 관형격조사 ‘-의’의 발음을 보이지 않은 것과 불균형을 이루는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체언 자체의 발음 변화라기보다는 결합되는 조사의 발음 변화에 대해서는 해당 조사의 항목이나 일러두기에서 설명되어도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 (1ㄷ)은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 대역사전의 성격을 지니는 <코스모스> 사전의 처리 방식이다. 이 사전에서는 체언 어간말자음의 종류에 따라서 조사 ‘-은, -이, -에, -만, -로’ 등과 결합할 때의 발음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사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발음 변화를 보여 줌으로써 아마도 가장 친절한 발음 표시를 한 사전의 하나인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이 사전에는 위에서 보듯이 ‘날이[nari], 날로[nallo], 책이[ʧhɛgi], 옷이[oʃi], 낮에[naʤe]’ 등과 같이 자음의 변이음적 변화까지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9) 이러한 방식의 처리에는 큰 문제점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사전에 다 이런 방식의 발음 표시를 적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남는 것으로 판단된다. 발음 표시의 친절함과 사전 편찬의 경제성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사전 편찬 과정에서의 큰 고민거리의 하나가 되는데, 사전의 크기가 커질수록 위와 같은 처리 방식은 편찬자에게 상당한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사전의 발음 표시가 지니는 친절함에 대하여 문제 삼을 바 못되지만, 이러한 처리를 대사전의 편찬에까지 적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검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 기존 사전의 문제점에 대한 검토를 종합하자면 사전 편찬에 있어서의 경제성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중복 또는 낭비됨이 없이 체언의 발음 변화를 보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문제 해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 | ㄱ. 밥[밥]:밥이[바비], 밥을[바블], 밥에[바베], 밥도[밥또], 밥만[밤만] ㄴ. 꽃[꼳]:꽃이[꼬치], 꽃을[꼬츨], 꽃에[꼬체], 꽃도[꼳또], 꽃만[꼰만] ㄴ'. ㄷ[디귿]:ㄷ이[디그시], ㄷ을[디그슬], ㄷ에[디그세], ㄷ도[디귿또], ㄷ만[디근만] ㄷ. 닭[닥]:닭이[달기], 닭을[달글], 닭에[달게], 닭도[닥또], 닭만[당만] ㄹ. 넋[넉]:넋이[넉씨], 넋을[넉쓸], 넋에[넉쎄], 넋도[넉또], 넋만[넝만] ㅁ. 밭[받]:밭이[바치], 밭을[바틀], 밭에[바테], 밭도[받또], 밭만[반만] |
(2ㄱ)은 특수조사 ‘-만’과 결합할 때에만 비음동화(鼻音同化)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표제어의 발음 표시와 달라지는 예이다.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결합할 때에는 연음화 현상만 적용되고 방언에 따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ㄱ ㅂ ㅅ/으로 끝나는 체언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2ㄴ~ㄹ)은 특수조사 ‘-만’과 결합할 때에만 비음동화 현상이 일어남은 (2ㄱ)의 예와 같으나,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결합할 때의 발음이 방언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예들이다. (2ㄴ)은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결합할 때 일부 방언에서 마찰음화나 유추 변화(11) 가 실현되는 경우이다. /ㅈ ㅊ ㅋ ㅍ/으로 끝나는 체언들이 여기에 속한다. (예) “젖이[저시], 젖을[저슬], 젖에[저세]//꽃이[꼬시], 꽃을[꼬슬], 꽃에[꼬세~꼬테]//부엌이[부어기], 부엌을[부어글], 부엌에[부어게]//무릎이[무르비], 무릎을[무르블], 무릎에[무르베]” 등. (2ㄴ')는 이와는 달리 마찰음화나 유추 변화가 일어난 발음이 표준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경우이다. ‘디귿, 지읒, 치읓, 키읔, 피읖, 히읗’ 등 한글 자모의 이름이 여기에 속한다. (2ㄷ)은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결합할 때 일부 방언에서 자음군단순화가 후행 받침 쪽으로 실현되는 경우이다. /ㄺ ㄻ/으로 끝나는 체언들이 여기에 속한다. (예) “닭이[다기], 닭을[다글], 닭에[다게]//삶이[사ː미], 삶을[사ː믈], 삶에[사ː메]” 등.
(2ㄹ)은 이와는 반대로 일부 방언에서 자음군단순화가 선행 받침 쪽으로 실현되는 경우이다. /ㄳ ㄼ ㅄ/으로 끝나는 체언들이 여기에 속한다. “넋이[너기], 넋을[너글], 넋에[너게]//여덟이[여더리], 여덟을[여더를], 여덟에[여더레]//값이[가비], 값을[가블], 값에[가베]” 등.
(2ㅁ)은 특수조사 ‘-만’과 결합할 때의 비음동화 현상뿐만 아니라 주격조사 ‘-이’와 결합할 때에 구개음화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표제어의 발음 표시와 달라지는 예이다. 또한 방언에 따라 (2ㄴ)에 준하는 마찰음화가 실현되기도 한다. (예) “밭이[바시], 밭을[바슬~바츨], 밭에[바세] 등.
첫째는 이병근(1989:302~7)에서 제안된 것으로 체언 중심의 곡용표를 작성하여 분류한 다음 사전의 부록으로 실으면서 해당 표제항에 그 분류번호를 명시하여 주는 방안이다. 둘째는 <코스모스> 사전이나 새 사전의 집필 지침에서 시도된 것으로 체언의 발음 변화를 보일 수 있는 별도의 발음란을 설정하고 여기에 직접 조사와의 결합형과 그 발음 변화의 내용을 제시하는 방안이다.
두 가지 방안 모두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니는 것으로 보이나, 전자의 경우 사전 편찬자에게는 체언 곡용표를 정밀하게 작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분류도 체계적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부담을, 사전 이용자에게는 표제항마다 일일이 부록을 참조하여 발음 변화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 수 있다. 사전 이용자의 불편함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처리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후자의 방안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후자의 방안을 앞에서 검토된 각 유형의 체언들에 적용시키면, “①/ㄱ ㅂ ㅅ/으로 끝나는 체언들⇒ 조사 ‘-만’과 결합시의 발음 변화를 표시, ②/(ㅈ ㅊ ㅋ ㅍ) (ㄺ ㄻ) (ㄳ ㄼ ㅄ)/으로 끝나는 체언들⇒ 조사 ‘-이, -만’과 결합시의 발음 변화를 표시, ③/ㅌ/으로 끝나는 체언⇒ 조사 ‘-이, -을, -만’과 결합시의 발음 변화를 표시, ④기타⇒ 무표시”로 처리될 것이다. 이는 새 사전의 처리 방안과 일치하는데, 이것을 (2)의 예들에 적용하여 보이면 다음과 같다.
(2') | ㄱ. 밥![]() ㄴ. 꽃[꼳] ![]() ㄴ'. ㄷ[디귿] ![]() ㄷ. 닭[닥] ![]() ㄹ. 넋[넉] ![]() ㅁ. 밭[받] ![]() |
(3) | ㄱ. | 남다[남ː따] 〔―고[남ː꼬/남ː꾸], ―지[남ː찌], ―아[나마/나머]〕 걷다[걷ː따]((ㄷ변))〔―고[걷ː꼬/걷ː꾸], ―는[건ː는], 걸어[거러]〕 |
<정문연> |
ㄴ. | 가다[가다], 〔가[가]〕 심다[심ː따], 〔심어[시머]〕 알다[알ː다], 〔알아[아라], 아는[아ː는]〕 짓다[짇ː따], 〔지어[지어/저ː((話))], 지은[지은/진ː((話))], 짓는[진ː는]〕 입다[입따], 〔입어[이버], 입는[임는]〕 좁다[좁따], 〔좁아[조바], 좁네[좀네]〕 덥다[덥ː따], 〔더워[더워], 더운[더운], 덥네[덤ː네]〕 읽다[익따], 〔읽어[일거], 읽는[잉는], 읽고[일꼬]〕 |
<코스모스> |
위에 소개된 두 사전의 처리 방식은 외견상의 차이는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활용상의 발음 변화를 보일 수 있는 발음란을 따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처리의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상으로는 다소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3ㄱ)의 <정문연> 사전의 처리는 표제항의 발음과 차이나는 경우가 거의 없는(12) 어미 ‘-고, -지’와 결합할 때의 발음까지 보임으로써 체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경제적인 발음 표시의 문제점이 있다. 어미 ‘-고’의 발음이 [-고/구]로 변이됨을 보이는 것도 2.1.1.에서 지적한 조사 ‘-도’의 경우와 동일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반면, (3ㄴ)의 <코스모스> 사전의 처리는 있어야 할 정보가 부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알다, 멀다’의 경우 ‘아오, 머오’와 같이 표면상 모음으로 시작되면서도 /ㄹ/ 탈락이 실현되는 경우를 보이지 않았고, ‘읽다’의 경우 ‘읽고[일꼬]’와 혼동되기 쉬운 ‘읽지[익찌]’의 발음을 보이지 않는 등 체언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 | ㄱ. 먹다[먹따]![]() ㄱ'. 작다[작ː따] ![]() ㄴ. 곱다[곱ː따] ![]() ㄷ. 묻다[얻ː따] ![]() ㄹ. 긋다[귿ː따] ![]() ㅁ. 밀다[밀ː따] ![]() ㅂ. 놓다[노타] ![]() ㅂ'. 많다[만ː타] ![]() ㅅ. 읽다[익따] ![]() ㅇ. 넓다[널따] ![]() ㅇ'. 밟다[밥ː따] ![]() |
(4ㄱ, ㄱ')는 /ㄴ/계 어미 앞에서 어간말 받침의 비음동화가 일어나는 동사와 형용사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관형형 어미만으로는 형용사의 비음동화를 반영할 길이 없으므로 종결어미 ‘-네’를 보충한 것이 새 사전 집필 지침과 달라진 점이다.(14) /(ㄱ ㄲ) (ㅂ ㅄ) (ㄷ ㅅ ㅆ ㅈ ㅊ ㅌ)/으로 끝나는 용언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단, 불규칙용언들은 제외). (예) ‘깎는[깡는]// 입는[임는], 없는[엄ː는]// 얻는[언ː는], 웃는[운ː는], 있는[인는], 잊는[인는], 쫓는[쫀는], 붙는[분는]’ 등.
(4ㄴ~ㄹ)은 불규칙용언의 대표적인 예들로서 /ㄴ/계 어미 앞에서의 비음동화와 함께 모음어미 앞에서 어간말 받침 /ㅂ, ㄷ, ㅅ/이 각각 /우(또는 w), ㄹ, (零)/으로 교체되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음장의 변화도 뒤따르나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4ㅁ)은 /ㄹ/로 끝나는 용언들로서 /ㄴ/계 어미와 문어체에 주로 쓰이는 종결어미 ‘-오’ 앞에서 어간말 받침 /ㄹ/이 탈락하는 경우이다. (4ㅂ, ㅂ')는 /ㅎ ㄶ ㅀ/으로 끝나는 용언들로서 모음어미 앞에서 /ㅎ/이 탈락할 뿐만 아니라, 어미 ‘-소’와 결합할 때는 /ㅅ/을 경음화시키는 경우이다. 또한 /ㅎ/으로 끝나는 용언의 경우 /ㄴ/계 어미 앞에서 [ㅎ→(ㄷ→)ㄴ]의 비음동화도 일어나는데, /ㄶ ㅀ/으로 끝나는 용언들은 이 경우에 /ㅎ/이 탈락하는 차이를 보인다. (예) ‘많네[만ː네], 싫네[실레]’ 등.
(4ㅅ~ㅇ')는 겹받침을 가진 용언들로서 자음군단순화와 비음동화가 실현되는 대표적인 예들인데, 자음군단순화에는 방언적인 차이도 나타나는 경우이다. (4ㅅ)은 /ㄺ/으로 끝나는 용언이 /ㄱ/계 어미 앞에서는 /ㄹ/로 자음군단순화가 일어나고, 나머지 자음어미 앞에서는 /ㄱ/으로 자음군단순화가 일어남으로써 /ㄴ/계 어미 앞에서는 [ㄱ→ㅇ]의 비음동화가 실현되는 경우이다. /ㄻ ㄿ/으로 끝나는 용언들도 이 유형에 속하나, /ㄱ/계 어미 앞에서의 변동은 없다. (예) ‘젊고[점ː꼬], 젊네[점ː네]// 읊고[읍꼬], 읊는[음는]’ 등. 또한 이들은 방언적인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예) ‘읽지[일지], 읽는[일른]// 읊고[을꼬], 읊는[을른]’ 등. (4ㅇ, ㅇ')는 /ㄼ/으로 끝나는 용언들인데, 방언에 따른 자음군단순화의 양상에 차이가 나타나므로 (4ㅅ)의 예들과 함께 상당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경우이다. (4ㅇ)은 자음어미 앞에서 겹받침 중 선행 받침으로 자음군단순화가 실현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발음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ㄾ/으로 끝나는 용언들도 이 유형에 속한다. (예) ‘핥고[할꼬], 핥지[할지], 핥는[할른]’ 등. (4ㅇ')는 ‘밟다’의 경우인데, (4ㅇ)과 동일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음어미 앞에서 후행 받침으로 자음군단순화가 실현되는 예외가 된다. 일부 방언에서는 (4ㅇ')의 활용을 (4ㅇ)과 동일하게 실현시키기도 한다. (예) ‘밟고[발ː꼬], 밟지[발ː찌], 밟는[발ː른]’ 등.
(5) | ㄱ. 주다![]() ㄱ'. 오다 ![]() ㄱ". 가다 ![]() ㄴ. 안다[안ː따] ![]() ㄴ'. 되다[되ː다/뒈ː다] ![]() ㄴ". 끌다[끌ː다] ![]() |
(5ㄱ)은 장모음화, (5ㄴ)은 단모음화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5ㄱ)은 단모음을 가진 단음절 용언 어간에 어미 ‘-아/어’(또는 ‘-아/어’로 시작되는 어미, 이하 ‘-어’로 대표함)가 결합되는 경우 다시 그 두 음절이 한 음절로 축약될 때에 장모음화가 실현되는 경우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예로는 ‘하여→해[해ː], 개어→개[개ː], 베어→베[베ː], 보아→봐[봐ː], 되어→돼[돼ː], 놓아→놔[놔ː]’ 등이 있다. (5ㄱ', ㄱ")는 이에 대한 예외로서 모음축약이나 모음탈락이 필수적이고 장모음화도 실현되지 않는 경우이다. (예) ‘*오아→와, *지어→져[저], *찌어→쪄[쩌], *치어→쳐[처]//*가아→가, *서어→서, *켜어→켜’ 등. 또한 예로 든 ‘오다, 가다’의 경우에는 명령형에서 ‘-너라, -거라’와 같이 특수 활용형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5ㄴ)은 장모음을 가진 단음절 용언 어간이 모음어미와 결합되는 경우에 단모음화가 실현되는 경우이다. 앞의 (4ㄴ~ㄹ)에 예시한 불규칙용언들도 이와 같은 단모음화를 실현시킨다. (5ㄴ')는 단모음화의 실현 양상은 (5ㄴ)에 준하나, 어미 ‘-어’와 결합하여 두 음절이 축약되는 경우에 (5ㄱ)에 준하는 장모음화가 실현되는 한편, 어미 ‘-오’와 결합할 때에는 모음어미임에도 불구하고 단모음화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이다.(15) 끝으로 (5ㄴ")는 단모음화에 대한 예외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예로는 ‘끌다[끌ː다]―끌어[끄ː러], 떫다[떨ː따]―떫어[떨ː버], 멀다[멀ː다]―멀어[머ː러], 벌다[벌ː다]―벌어[버ː러], 썰다[썰ː다]―썰어[써ː러], 얻다[얻ː따]―얻어[어ː더], 없다[업ː따]―없어[업ː써], 엷다[열ː따]―엷어[열ː버], 웃다[욷ː따]―웃어[우ː서],(16) 작다[작ː따]―작아[자ː가], 적다[적ː따]―적어[저ː거]’ 등이 있다.
다만, 용언의 경우는 발음 변화를 보이는 것과는 별도로 기본적인 활용형까지도 제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 고려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사전들에서 ‘곱ː다[-따]
(ㅂ불) <고우니, 고와>, 살ː다
ꂿ(ㄹ불) <사니, 사오>(이상 <금성> 사전의 예)’ 등과 같이 일부 불규칙용언들에 한해서 활용형을 제시하던 방식을 지양하여, ‘(ㅂ불), (여불)’ 등과 같은 활용 약호를 없애는 대신 모든 용언의 활용형에 모음어미, 매개모음어미, 자음어미를 대표할 수 있는 기본 활용형을 제시함으로써 활용 약호를 줄임과 동시에 불규칙용언들만을 특별 대우하던 모순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음어미 앞에서의 발음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표제항의 발음과 일치하므로 기본 활용형은 새 사전의 처리 방안과 같이 모음어미의 대표로서 ‘-어’, 매개모음어미의 대표로서 ‘-으니’의 활용형을 보이면 될 것이다.
요컨대 모든 용언에 ‘-어, -으니’의 기본 활용형을 제시하되, 발음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나 방언적인 차이로 인해 정확한 표준 발음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경우, 활용 양상이 특수한 경우에는 해당 어미와의 결합형을 제시한 뒤에 여기에 직접 발음 표시를 하는 방안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는 의미에서 (4), (5)에 제시된 예들 외에 몇 가지를 추가하여 제시되는 활용형의 종류에 따라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밑줄 친 곳은 집필 지침과 달라진 부분임).
(6) | ㄱ. | ‘-어, -으니’ 활용형이 제시되는 경우 주다 ![]() 하다 ![]() 가지다 ![]() 안다[안ː따] ![]() |
ㄴ. | ‘-어, -으니, -오’ 활용형이 제시되는 경우 밀다[밀ː다] ![]() 끌다[끌ː다] ![]() 되다[되ː다/뒈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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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 ‘-어, -으니, -는(동사)/-네(형용사)’ 활용형이 제시되는 경우 먹다 ![]() 작다 ![]() 곱다 ![]() 없다 ![]() 묻다 ![]() 긋다 ![]()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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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 ‘-어, -으니, -는(동사)/-네(형용사), -소’ 활용형이 제시되는 경우 놓다 ![]() 많다 ![]() |
|
ㅁ. | ‘-어, -으니, -고, -지, -는(동사)/-네(형용사)’ 활용형이 제시되는 경우 읽다 ![]() 굶다 ![]() 넓다 ![]() 밟다 ![]() 핥다 ![]() 읊다 ![]() |
|
ㅂ. | ‘-어, -으니’ 활용형과 특수 활용형이 제시되는 경우 가다 ![]() 오다 ![]() |
3
지금까지 필자는 체언과 용언이 조사와 활용어미와 결합할 때의 발음 변화에 대한 국어사전에서의 처리 문제를 중심으로 기존 사전들에 드러난 문제점을 검토함과 동시에 실제 체언과 용언의 발음 변화 양상을 살핌으로써 그 합리적인 처리 방안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기존 사전들의 대부분은 이 문제에 대한 처리가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함을 보았다. 그리하여 체언과 용언의 발음 변화를 제대로 보이기 위해서는 표제항의 발음 표시란 외에 별도의 발음란을 두고, 여기에 음소적인 발음 변화나 음장의 변화가 나타나는 체언과 조사의 결합형 또는 용언의 활용형을 제시한 후에 여기에 직접 발음 표시를 하는 방식의 처리가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러한 처리 방안은 전체적으로 새 사전의 집필 지침과도 일치하는 것임을 확인한 바 있다. 다만 용언 활용형의 발음 변화를 처리함에 있어서 ①어간말음이 자음인 형용사의 경우 비음동화 등의 발음 변화를 보이기 위하여 어미 ‘-네’와의 결합형(예:‘작네[장ː네], 곱네[곰ː네], 많네[만ː네], 넓네[널레]’ 등)을 추가할 필요가 있고, ②장모음을 가진 단음절 용언 어간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 단모음화에 대한 예외를 보이기 위하여 어미 ‘-오’와의 결합형(예:‘되오[되ː오/뒈ː오], 호오[호ː오]’ 등)을 추가할 필요가 있음을 들어 새 사전의 처리 방안에 대한 약간의 보완도 꾀해 보았다. 새 사전의 출간을 얼마 두고 있지 않은 시점이라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이에 대한 보완을 간곡히 제언하는 바이다. 이 밖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새 사전의 집필 지침이나 교열 지침에 맞추어 발음 처리 작업을 진행한다면 기존 사전들에 비하여 여러 가지로 진전된 모습의 발음 표시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간노 히로오미(1992). 「외국인 편찬 한국어 대역 사전의 현황과 문제점」.
『새국어생활』 2-4.
고영근·남기심(1987). 『표준 국어문법론』. 서울:탑출판사.
곽충구(1984). 「체언어간말 설단자음의 마찰음화에 대하여」.
『국어국문학』 91.
국립국어연구원 사전편찬실(1994). 『「종합국어대사전」 집필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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