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석 /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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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언어학은 우리의 머리 속에 문법과는 별도로 단어들을 모아 놓은 사전(lexicon)이 들어 있다고 가정한다. 이 머리 속의 사전에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자 할 때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단어들의 목록이 들어 있고, 각 단어마다 의미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발음에 대한 정보, 통사범주 따위의 문법에 관한 정보도 필요한 만큼 충분히 들어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사전, 또는 그것과 똑같다고 가정하고 기술한 사전을 이론적 사전이라고 한다면, 사전에는 이러한 이론적 사전 외에도 실용적 목적으로 편찬된 사전도 있다.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낯선 단어와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 단어의 의미나 용법에 대한 정보를 얻고 때로는 맞춤법을 확인해 보는 따위의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전이 그것이다. 실용적 사전에는 찾아보기 편리하게 일정한 배열 원칙에 의해 어휘들이 배열되어 있고 각 단어마다 발음, 통사범주, 의미, 용법 따위가 기술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용적 사전의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이론적 사전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론적 사전과 실용적 사전은 그들의 존재 의의가, 근본적으로 다른 가정에 입각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곧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알고 있는 단어를 알고 있는 의미로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론적 사전은 표제어 및 관련 정보를 이용자(곧, 화자)가 알고 있는 것이어야만 존재 의의를 가진다. 이에 비해 실용적 사전의 경우는 사전에서 제공되는 표제어 및 정보를 사전 이용자가 모르고 있을 때, 또는 모르고 있다고 가정될 때 그 존재 의의를 가진다. 우리가 알고 있고, 그래서 사전에서 그 의미나 용법 따위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단어라면 구태여 사전을 펼쳐 그 단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론적 사전과 실용적 사전의 이러한 차이는 제공되는 정보의 종류, 정보에 대한 기술 방식 등에서 차이를 유발할 수도 있다. 가령 어원이나 단어의 역사에 대한 정보는 머리 속의 이론적 사전에는 들어 있지도 않으며 들어 있을 필요도 없다. 어원이나 단어의 역사는 실제의 언어 생활에서 단어를 선택하고 그것을 문법에 맞게 조직하여 언어 행위를 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화자는 모르고 있고 또한 몰라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자가 단어의 어원이나 역사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어원이나 단어의 역사는 실용적 사전에서는 제공할 만한 가치 있는 정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용적 사전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사전 이용자가 모르는 것, 모른다고 가정되는 것만 그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사와 같은 문법 형태소를 실용적 사전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문법 형태소들은 일반적으로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데, 문법적 관계는 토박이 화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법 지식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 따위의 문법 형태소들에 대해 그 기능을 구태여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고 사전에 싣는 것이 어떤 실질적 이득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어 사전의 예상 이용자가 토박이 국어 화자가 아닌 외국인일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또는 국어 사전에는 민족의 언어 문화를 빠짐 없이 체계적으로 수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이유로 문법 형태소들도 사전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조사에 대한 문법 지식을 배우고자 한다면 사전보다는 국어 문법서를 펼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고 문법서 또한 언어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가 조사 따위의 문법 형태소를 실용적 사전에 실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글에서는 사전에 조사를 왜 표제어로 올려야 하는가. 표제어로 올린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 올려야 할 것인가. 뜻풀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사에 대한 사전에서의 뜻풀이가 문법서에서의 그것과 같아야만 하는가, 아니면 달라야 하는가 하는 등등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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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 기술 대상(곧 표제어)이 되는 언어 형식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의미를 가진 것이어야 할 것인데, 전통적으로 그 기본이 되어 온 것은 단어이다. 흔히 단어는 최소의 자립 형식이라 일컬어진다. 단어가 가지는 자립성의 의미를 우리가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단어는 우리가 일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언어 형식 가운데 최소의 것이다. 따라서 실용성을 목적으로 편찬되는 사전에서 그 기술 대상이 단어가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언어 형식 가운데 단어보다 더 큰 형식, 이를테면 구나 문장은 현대 언어학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그 수효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 형식 전체를 기술 대상으로 하는 사전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다만 관용어 사전, 속담 사전 같은 특정 표현만을 모은 사전의 경우는 구, 또는 문장도 사전 기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미 있는 언어 단위 가운데 단어보다 더 작은 형식인 형태소의 경우는 어떨까. 최소의 유의적 단위로 정의되는 형태소는 우리가 실제의 언어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언어 형식이라기보다는 단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론적인 언어 단위로서, 일반인들이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형태소만을 따로 떼어 인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학자를 위한 형태소 사전 같은 특수한 목적의 사전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에서는 단어 자격이 없는 형태소를 표제어로 올리는 일은 실용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제 어느 정도 큰 규모의 국어 사전들에서는 단어보다 더 작은 요소들인 일부 생산성 있는 파생접사, 활용어미, 조사 따위의 문법 형태소는 표제어로 올리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우선 조사를 중심으로 이들을 표제어로 올려야 하는 이유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전이 기본적으로 단어를 표제어로 하는 것은 단어는 실제의 언어 생활에서 단독으로 경험이 가능한 것 가운데 가장 작은 형식, 곧 최소의 자립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는 그 자체로는 자립성이 없고 반드시 자립성 있는 말에 붙어서만 사용될 수 있는 접사 성격의 언어 형식이다. 조사가 가지는 이러한 접사적 성격은 실용적 사전의 거시 구조와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를 야기시킨다. 조사를 비롯한 접사는 반드시 다른 말에 붙어 실현되는 언어 형식이기 때문에 실제의 언어 생활에서 그 단독으로 경험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음성 언어에서 접사 앞에는 쉼을 두지 않으며 문자 언어에서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고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의 표제어와 관련하여 조사 그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조사가 통합되는 말의 경우도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다. 조사가 통합되는 대표적인 범주인 명사의 경우로써 이를 생각해 보자. 가령 명사 ‘바람’이라는 단어는 실재의 언어 생활에서 조사가 통합되지 않은 채로 실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바람이, 바람을, 바람의, 바람에, …’와 같이 조사가 통합된 어형(편의상 곡용형으로 부르겠음)으로 실현된다. 곧 사전 이용자가 실재의 언어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어형은 대부분의 경우 곡용형인 것이다. 따라서 사전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들 곡용형은 어떤 식으로든 사전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이상적이기로는 곡용하는 단어마다 곡용형 모두를 표제어로 올리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수용 용량이 무한정인 사전(가령, 전자 사전)에서라면 모를까 출판을 전제로하는 사전의 경우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조사의 수에서 단독형만 하여도 수십이 넘을 뿐만 아니라 ‘(진리)에로의 (길)’와 같은 복합형까지 고려하면 그 수효는 실로 엄청난 것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의 출판된 사전들에서는 명사와 조사를 분리하여 각각을 표제어로 올린다.
물론 조사의 경우 혹시 학교문법에서 단어로 처리하기 때문에 조사 단독으로 표제어로 올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 사전들에서는 학교문법이 단어 자격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용언의 활용어미들도 단독으로 표제어로 올리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설사 학교문법이 조사를 단어 아닌 곡용어미로 기술하였다 하더라도 표제어로 올렸을 것이다. 또 달리 명사와 조사를 분리하여 각각 표제어로 올리는 것이 국어의 특성에도 부합되며 언어학적 가정에도 더 합치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곧 국어는 유형론적으로 교착어에 속하는데, 교착어로서 국어는 활용형이나 곡용형의 수는 많은 반면 굴절어와는 달리 어간과 어미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어 활용과 곡용이 상당히 규칙적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국어의 화자들은 그들의 머리(사전) 속에 ‘바람이’와 같은 곡용형을 하나하나 암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이’를 따로따로 암기하고 있으면서 필요할 경우 곡용 규칙에 의해 곡용형 ‘바람이’를 산출해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실제로 현대 언어학에서 하고 있거니와 문법의 경제성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아마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실용적 사전의 경우는 모르는 것, 혹은 그렇게 가정되는 것일 때만 표제어로서, 또 제공되는 정보로서 존재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바람이’를 ‘바람’과 ‘이’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바람’ 또는 ‘이’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는 표제어를 ‘바람이’ 하나로 싣든 ‘바람’과 ‘이’로 나누어 싣든, 그것들은 표제어로서의 존재 의의가 없다. 그러나 실용적 사전은 가능하다면 극단적으로 ‘바람’과 ‘이’가 나누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경우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가 단독으로 경험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가 단독으로 표제어로 되어 있다면 그것에는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표제어가 되어 역시 존재 의의가 없는 표제어가 될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조사만을 따로 떼어내어 표제어로 올린다고 하더라도 다시 표제어가 되는 대상의 범위에서 문제가 생겨난다. 특히 복합형의 경우가 문제되는데 기존의 사전들에서 조사 복합형의 처리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찾아볼 수 없으나 대체로 ‘전체 기능이 구성 성분의 총합이 아니거나, 재구조화한 것만 표제어로 올리는(국립국어연구원 1996, 1-1-2-12)’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기준은 문법에서 합성어와 구를 구분할 때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상당히 일반성 있는 기준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어휘적 요소들 사이의 합성에서도 그리 자명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더군다나 접사 성격의 문법 형태소인 조사들에 적용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사전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1) | 가. 자유로부터의 도피 |
나. 자유로부터 도피하다 |
국어 사전들은 (1나)의 ‘로부터’는 표제어로 등재하고 있으나 (1가)의 ‘로부터의’는 표제어로 등재하지 않는다. ‘로부터의’를 사전에 등재하지 않는 것은 그것의 구성이 ‘로부터+의’로 되어 있고 그 전체 의미(/기능)는 ‘로부터’의 의미와 ‘의’의 의미의 단순한 총합으로서 이들 성분의 의미로부터 충분히 예측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아마 머리 속의 이론적 사전을 기술한다면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로부터의’가 ‘로+부터의’가 아닌 ‘로부터+의’로 구성되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로부터의’에 대한 정보를 실용적 사전에서 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로부터의’에 대한 기능(/의미)을 알고 있지 못하여 실용적 사전을 참조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그것의 구조가 ‘로부터+의’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2) | 가. 승리에로의 길 |
나. ??승리에로 이르는/가는 길 cf. 영수에게로 온 편지 | |
다. 승리에 이르는 길 | |
라. 승리로 가는 길 |
(2가)에서 볼 수 있는 조사들의 복합형 ‘에로의’도 물론 기존의 사전들에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것도 ‘에로+의’의 구성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런데 기존의 사전들에 ‘에게로’는 표제어에 올라 있으나 ‘에로’는 올라 있지 않다. 기존의 사전들이 조사를 포함하여 문법 형태소들의 복합형을 표제어로 올리는 일에서 일관성을 결하고 있다는 지적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성광수 1992:95~6), 이것은 일관성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나)에서 볼 수 있듯이 ‘에게로’는 실재하나 ‘에로’는 ‘의’와 함께 쓰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국어 사전을 이용하여 ‘에로의’의 기능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에’와 ‘로’와 ‘의’를 각각 찾아서 유추해 내어야 할 것인데,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3) | 가. 세상은 빵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
나. 그는 빵만으로 살아간다 | |
(4) | 가. 손으로 뿔을 잡아도(-아+도) 보았다 |
나. 저 소는 손으로 뿔을 잡아도 가만히 있다 |
(3가)에서 볼 수 있는 ‘으로만’과 (3나)에서 볼 수 있는 ‘만으로’는 조사의 통합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인데 기존 사전들에서 이들도 표제어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들의 의미 차이는 조사들이 통합되는 계층적 순서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만’과 ‘로’의 의미의 합으로부터 이 둘의 의미 차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의 ‘-아+도’는 어미에 조사가 통합된 것으로서 국어 화자라면 (4나)의 어미 ‘-아도’와 구별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실용 사전은 아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아+도’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과연 이것을 어미 ‘-아’와 조사 ‘도’로 분석하여 그 각각을 사전에서 찾아 전체의 의미를 유추해 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지금까지 조사 복합형의 표제어 선정과 관련하여 사전의 이용자들의 입장에서 그 문제점들을 생각하여 보았다. 실용적 사전의 이용자들은 그들이 찾아보고자 하는 항목의 의미는 물론 구조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조사 복합형의 표제어 문제도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옳다면 이것은 마치 이두(吏讀)의 표제어 선정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두의 경우 가령 ‘이다’와 ‘하거든’이 각각의 표제어로 등재될 뿐만 아니라 그 둘의 단순 복합형에 불과한 ‘이다하거든’ 또한 독립된 표제어로 등재한다는 점을 참고할 일이다. 전산 언어학 쪽에서 활용 어미와 조사의 복합형을, 방언, 오류 따위를 포함하여 11,000여개 정도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50만 이상의 표제어 수를 목표로 하고 있는 <표준종합국어대사전> 규모의 큰 사전에서라면 그 정도의 복합형을 수록하는 일은 그렇게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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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와 같은 문법형태소가 가지는 의미를 문법적 의미, 혹은 문법적 기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조사가 가지는 문법적 의미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흔히 조사를 격조사, 접속조사, 보조사로 나누는 것은 문법적 의미에 의한 분류이다. 곧 격조사는 주어 목적어 따위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고, 접속조사는 체언과 체언을 이어주는 기능을, 그리고 보조사는 일정한 의미를 덧보태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또한 격조사는 다시 ‘가, 를’ 따위의 구조격조사와 ‘에, 로, 와’ 따위의 어휘격조사로 나누어지는데 구조격조사는 순수하게 말과 말 사이의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관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고 어휘격조사는 말과 말 사이의 의미 관계까지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이외에도 조사들은 ‘가’와 ‘는’, 또는 ‘까지, 마저, 조차’들의 용법 차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화용론적인 함축도 나타내기도 한다.
조사들이 가지는 이러한 문법적 의미들은 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법적 지식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문법적 지식을 기술하는 것은 문법(또는 ‘문법서’)이다. 문법은 화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러나 대부분의 화자들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문법적 지식을 엄격하게 정의된 문법 용어들을 써서 구상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법이 말(단어)과 말 사이의 관계와 같은 문법 지식을 다루는 것임에 비해 사전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단어가 가지는 어휘적 속성을 다룬다. 사전이 통사 범주와 같은 문법에 속하는 사항을 기술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휘의 문법적 속성에 국한된다. 이런 점에서 문법과 사전은 그 기술 대상을 달리하고, 따라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사와 같은 문법 형태소의 경우는 문법의 주요한 기술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전에도 등재되어 뜻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법에서의 조사에 대한 기술과 사전에서의 뜻풀이 사이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물론 조사라는 동일 대상에 대한 기술인 이상 그것이 문법에서이건 사전에서이건 그 본질적인 내용이 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법과 사전(실용적 사전)은 기술하는 대상에 대해 취하는 가정이 다르기 때문에 기술하는 태도나 방식에서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다음의 예로써 생각해 보기로 하자.
(5) | 가. 을 【조】받침 있는 명사·대명사의 다음에 쓰이어, 그 말을 목적격(目的格)으로 되게 하는 조사.…(생략)…. |
나. 에 【토】 임자씨에 붙어, 어떤 곳, 때, 대상 따위를 나타내는 자리토. …(생략)…. | |
다. 만 【조】어느것에만 한정됨을 나타내는 보조사. …(생략)…. |
위의 (5)는 기존의 사전에서 임의로 몇 예를 골라 본 것인데 뜻풀이의 대상인 표제어가 뜻풀이 속에 되풀이되고 있는 것들이다. 내용의 정확성은 논외로 하고 (5)와 같이 기술 대상이 되는 조사가 설명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문법서에서는 문제가 생겨나지 않는다. 문법서는 화자가 이미 알고 있는 문법적 지식을 대상으로 기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 대상이 되는 조사들이 (5)에서처럼 설명 속에 포함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5)가 사전의 기술일 때는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다. 대개의 경우, 사전의 미시구조 속에 제공되는, 발음, 통사 범주, 의미, 용법 따위의 모든 정보는 기본적으로 사전의 이용자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는 점에서 (5)에서처럼 뜻풀이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가 뜻풀이 속에 포함되어 있으면 그것은 사전의 이용자에게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문법에서든 사전에서든 기술되는 내용이 정확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문법의 기술이 일반적으로 엄격하게 개념이 정의된 문법의 전문 용어들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정확한 기술을 위한 것이다. 사전의 뜻풀이에서도 불가피하게 문법의 전문 용어를 써서 기술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의 기술은 정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쉬워야 한다는 점에서 가능한 한 사전의 뜻풀이 속에는 전문 용어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기존의 국어 사전들에서 조사에 대한 뜻풀이를 찾아보면 거의 대부분이 문법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뜻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한 예로써 관형격 조사 ‘의’에 대한 국어 사전에서의 뜻풀이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6) 의 |
[의/에] 【조】체언과 체언 사이에 나타나 앞의 체언으로 하여금 뒤의 체언을 꾸미게 하는 구실을 갖는 관형격 조사. 두 체언을 보다 큰 명사구로 묶어 줌. 우리말에서는 이 조사 없이 다른 조사만으로는 체언이 결합하기 어려움. |
①뒤의 체언이 앞의 체언에 소속되거나 소유됨을 나타냄. ¶나의 가방 (용례는 일부만 보임. 이하 마찬가지) |
문법가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이 위의 (6)과 같이 기술된 사전을 통해 과연 ‘의’에 대한 기능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6)에서 ‘의’에 대한 정의(定義)에 해당하는 부분은 ‘의’에 의해 표시되는 말의 형식적인 관계를 기술하고 있으므로 이곳에 ‘체언, 관형격 조사, 꾸미다, 명사구’ 따위의 문법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물론 이들 용어는 같은 사전 안에 문법 용어로서의 뜻풀이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앞말과 뒤의 말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를 토대로 ‘의’의 용법을 기술한 부분까지도 문법 용어를 포함시켜 뜻풀이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일반 사전에서 문법 용어로 정의되지 않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령 ①에서 ‘(뒤의 체언이 앞의 체언에) 소속되다/소유되다’는 일상어로서의 용법은 분명히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용어는 같은 사전 안에서 문법 용어로서 뜻풀이되어 있지도 않다. 따라서 ①과 같은 형식의 뜻풀이는 문법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거의 이해될 수 없는 뜻풀이가 될 것이다. (6)에서 제시하고 있는 ‘의’의 용법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만약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러한 내용이 문법서가 아닌 사전에서도 기술되어야 하는 것인지 따위는 별도의 검토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6)에서 제시하고 있는 ‘의’의 용법들 가운데 ⑭, , 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앞말과 뒤의 말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를 토대로 한 것이어서 다음과 같이 문법 용어의 사용없이도 충분히 그러한 문맥적인 용법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기로 한다.
(6') | 의 [의/에] 【조】… (생략) … |
①…가 가진. …에게 있는. …에게 소속된. …에게 소유된. ¶나의 가방 |
(6')는 ‘의’의 문맥적 의미를 해당 문맥에서 대체할 수 있도록 ‘조사+용언의 관형사형’으로 고쳐본 것이다. 이러한 문맥적 의미에 기초한 ‘의’ 용법을 사전의 뜻풀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일반의 사전 이용자들에게는 문법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6')가 (6)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6')처럼 나타내면 문맥적 의미의 유형을 훨씬 단순화할 수도 있다. 조사에 따라 ‘…가 가진, …가 하는’, ‘…를 하는’, ‘… 에(/에게) 있는, …에 대한, …에서 생산되는’, ‘…와 같은,…와 관계된’, ‘…로 된, …로 만든’, ‘…인, …이라는’ 등으로 간단하게 유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전은 기본적으로 표기 형태가 다르면 표제어로 올려야 하고 또한 표제어로 올린 것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지 뜻풀이를 해야 한다. 단순한 이형태 관계에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조사들 가운데 몇몇은 받침있는 말 다음에 붙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가, 을/를, 과/와, 은/는, 으로/로’들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이형태 관계를 가지는데 뜻풀이와 관련하여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기존의 국어 사전들에서 조사를 비롯한 문법 형태들의 이형태는 모두 표제어로 올린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뜻풀이는 이형태 관계로서가 아니라 참고 어휘로 다루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 있다.
가【조】①((주로,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에 붙어)) 그 말이 주격(主格)이 되게 하는 격조사. 존칭에는 ‘께서’, ‘께옵서’가 쓰임. (용례 생략. 이하 마찬가지) ②어떤 것이 변하여 그것이 됨을 나타내는 격조사. ‘되다’ 앞에 쓰여 앞의 체언을 보어(補語)로 만듦. ③그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격조사. ‘아니다’ 앞에 쓰여 앞의 체언을 보어(補語)로 만듦. ④주로 보조적 연결어미 ‘-지’에 붙어, 그 뜻을 강조하는 보조사. ‘않다’, ‘못하다’ 등의 부정어와 호응함. ▷이. ▶는. |
위의 ‘가’와 ‘이’에 대한 뜻풀이는 둘 다 한 사전에서 뽑은 것이다. 각각 뜻풀이를 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참고 어휘 앞에 두는 부호(‘▷’)로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들 사이에 의미 차이가 없다. 마치 ‘가’에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④의 보조사적 용법도 용언의 어말어미가 주로 모음으로 끝난다는 우연성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와 ‘이’는 이론적으로든 실제로든 한 형태소라 할 것인데 이것은 이들의 뜻풀이에도 반영하는 것이 좋다. 곧 하나를 대표형으로 정하여 용법을 기술하고 나머지는 그것의 이형태임을 분포 환경과 함께 기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령 주격조사의 경우라면 ④적인 용법이 더 있는 ‘가’를 대표형으로 하여 용법을 기술하고 ‘이’에 대해서는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에 붙는 주격 조사 ‘가’의 이형태”임을 밝히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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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조사와 같은 접사적 성격의 문법 요소는 문법의 기술 대상이지, 단어의 뜻풀이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일반 어휘 사전의 기술 대상은 원칙적으로 아니라는 입장에서 조사에 대한 사전적 처리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조사는 접사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그 단독으로 표제어로 선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론적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조사가 통합된 모든 어형을 다 제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사를 체언과 분리하여 그 단독으로 사전에서 다루어야 한다면 일반 어휘들과는 달리 조사의 경우는 단순 복합형까지도 표제어로 올려야 할 것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문법은 일반적으로 화자가 알고 있는 문법적 지식을 기술하는 것임에 비해 사전은 비록 문법적 지식에 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용자가 모르고 있다고 가정하고 기술(뜻풀이)해야 한다는 점도 몇 가지 예를 통해 논의하였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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