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을 찾아서

이익섭   /  국립국어연구원장



1

  학생들의 논문을 심사하다 보면 ‘그동안’을 ‘그 동안’처럼 띄어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이런 것까지 띌 것은 없지 않느냐고 ‘그동안’으로 붙이기를 권고해 왔다. ‘살펴보다’를 ‘살펴 보다’처럼 띄어 쓰는 학생도 많아 그것도 일일이 고쳐 주곤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버릇인 셈이다.
  그러나 이 두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살펴보다’는 사전마다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어 자신있게 붙여 쓸 것을 명령(?)할 수가 있으나, ‘그동안’은 많은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학생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그 동안’으로 띄어 쓰겠다고 고집하여도 달리 뾰죽한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류에서는 으레 ‘그 동안’의 방식을 채택해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그동안’은 띄어 써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동안’을 복합어(compound)(1)로 인식하고, 따라서 붙여 써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은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어떤 확실한 근거가 있어서였던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 따져도 ‘그동안’은 복합어가 아니겠느냐는 판단에서였을 뿐이다. 가령 ‘그 동네, 이 동네, 저 동네’와 비교하여 ‘저 동안’이란 표현은 쓰이는 것 같지 않고, ‘이 동안’도 ‘이 동네’만큼 자유롭게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것만으로도 ‘그동안’은 복합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다가 ‘그동안’의 ‘그’는 ‘이’나 ‘저’에 대립된 무엇을 가리키는 기능도 있는 것 같지 않고, “응, 아까 말했던 그 동네 말이구나”에서와 같이 앞에 나타났던 무엇을 가리키는 기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결국 ‘그’가 그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간직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에 밀착하여 버린 것이며, 그로써 ‘그동안’은 숙어(idiom)화되고(2) 동시에 복합어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그동안’을 붙여 써야 한다는 생각의 근거였다.
  그러나 이 생각이 옳다 하여도 그것이 곧 국어사전, 또는 학교 교과서가 지키는 규범을 무시하여도 된다는 뜻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라도 일단 규범으로 선포되었으면 다함께 지켜 나가는 것이 국민된 도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을 붙여 쓰도록 지시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권고의 성격이라 할지라도 앞뒤가 안 맞는 처사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을 붙여 쓰라고 종용한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미리 엄격히 따져 보았던 것은 아니나 굳이 내세운다면, 첫째 국어사전 중에는 ‘그동안’을 표제어로 올린 것도 있어 결과적으로 ‘그동안’은 띄어 써도 맞고 붙여 써도 맞도록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법하다. 또하나의 명분으로는 국어 교과서의 띄어쓰기가 하나의 규범으로 삼기에는 불안한 상태라는 점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쓸 작정이지만, 가령 ‘고등학교’나 ‘고유명사’ 등을 어느 사전에서나 복합어로 처리하고 있는데도(3) 교과서에서는 철저히 띄어 쓰고 있다. 이런 예는 ‘고등학교, 고유명사’ 이외에도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런 버릇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리고 이런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안타까우나, 한마디로 교과서의 띄어쓰기는 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4) ‘그동안’을 붙여 쓰라는 주문은 그래서 지금껏 주저없이 이어져 왔을 것이다.



2

  그러던 중 최근 필자는 ‘그동안’을 붙여 쓸 좀더 확실한 근거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찾았다. 동시에 그동안 우리 국어사전들이 왜 그토록 엉뚱한 혼란을 겪어 왔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망연(茫然)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심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글은 말하자면 그러한 심경의 일단의 피력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먼저 김민수 교수의 『國語 핸드북』(1960)을 찾아보았다. 한동안 열심히 참조하던 책인데, 또 그때마다 알쏭달쏭한 맞춤법 문제를 명쾌히 해결해 주던 책인데 근래에는 직접 국어사전을 참조하여 해결하는 방식으로 버릇이 바뀌어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전히 좋은 안내서였다. ‘그동안’이 표준어임을 일러 줄 뿐만 아니라 그 근거가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3:76)인 것까지 밝혀 주었던 것이다. 
  다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하 『표준말모음』)으로 가 본다. 거기에는 ‘그동안’이 ‘그사이’와 짝이 되어 ‘비슷한 말’의 예로 올라 있다. ‘비슷한 말’의 예로는 ‘씨/씨앗, 잔디/떼, 쓰라리다/쓰리다, 맛있다/맛나다, 부슬부슬/보슬보슬’ 등 얼마간 이질적인 것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일종의 복수 표준어에 해당하는 예들이라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어떻든 여기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곧 그것들이 당당히 표준어로, 동시에 한 단어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함에는 틀림없다. 『國語 핸드북』의 처리도 그 뜻을 받아들인 것일 것이다.(5)
  그렇다면 ‘그동안’을 사전에 올리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빈번히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먼저 『큰사전』(1947)을 가 보기로 하자. ‘그동안’, 없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여기에서부터 싹트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표준말 모음』과 『큰사전』은 다같이 한글학회에서 주관한 사업이다. 그런데 왜 이런 차질이 생겼는지 우리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다. 더욱이 『큰사전』에 ‘그사이’는 올라 있다. 이 이상한 일은 한글학회의 1992년판 『우리말 큰사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큰사전』에서 ‘그동안’을 빠뜨린 사건이 이 이후 ‘그동안’의 띄어쓰기에 계속 혼란을 몰고 온 직접적 원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3

  그러면 ‘그동안’의 띄어쓰기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사전들이 보여 준 혼란상이 어떠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실태를 좀 더듬어 보기로 하자. 
  앞에서 『우리말 큰사전』(1992)에 ‘그동안’이 올라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금성판 국어대사전』(1991/1996)에도 ‘그동안’은 올라 있지 않다. 『동아 새국어사전』(1990/1994)에도 ‘그동안’은 없다. 그리고 후술할 신기철·신영철(1986)의 前身인 『표준국어사전』(을유, 1958)에도 ‘그동안’은 올라 있지 않았다. 
  반면 ‘그동안’이 표제어로 올라 있는 사전도 꽤 있다. 이희승의 『국어대사전』(민중, 1961/1994), 홍웅선·김민수의 『종합국어사전』(어문각, 1968) 등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기철·신영철의 『새우리말큰사전』(三省이데아, 1986)은 제7차 수정 증보 제1판이라 되어 있는데 앞에 말한 『표준국어사전』에 없던 ‘그동안’을 올려 놓고 있다. 
  특기할 것은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朝鮮語辭典』에 ‘그동안’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항을 보면 ‘그사이’와 같은 의미라 풀이하고, 역시 표제어로 올라 있는 ‘그사이’ 항에서 뜻풀이를 해 놓고 있는데 이로 보면 나중 『표준말 모음』에서 결정된 사항이 이미 이때 어떤 형식으로든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그동안’이 일찍이 『표준말 모음』보다 먼저 사전에 올라 있던 사실은 오늘날의 현실과 비교하면 기이한 느낌마저 준다. 일찍부터 호적에 올라 있던 몸이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그처럼 기구한 수난을 겪게 되었을까 하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4

  앞에서 보면 ‘그동안’에 대한 처리에서 우리 사전들은 크게 둘로 갈려 있다. 한마디로 혼란을 겪어 온 것이다.(6) 그런데 ‘그사이’에 대한 처리까지 묶어 보면 이 혼란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우리는 앞에서 ‘그동안’과 ‘그사이’가 일종의 복수 표준어로 『표준말 모음』에 올라 있음을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두 단어가 같은 (적어도 비슷한) 성격일 것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동안/그사이 별일 없겠지?”나 “그동안을/그사이를 못 참아서”에서 보듯이 적어도 두 단어의 통사적 쓰임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처리를 보면, 두 단어가 품사부터 다른 단어로 처리한 경우로부터 그 난맥상이 가히 가관이라 할 만하다. 아래에서 ‘그간’까지 묶어 이를 표로 보기로 한다. ‘그간’ 항을 보면 대개 ‘그동안’이나 ‘그사이’ 항으로 풀이를 돌리고 있어 三者는 서로 떼어 놓기 어려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사이 그간
『큰사전』
『우리말 큰사전』
『금성판 국어대사전』 명/부
『표준국어사전』
『朝鮮語辭典』 名/副 名/副
『국어대사전』 명/부 명/부
『동아 새국어사전』
『종합국어사전』
『새우리말큰사전』 명/부


  ‘그동안, 그사이, 그간’은 운명을 같이할 단어일 것이다. 하나가 사전의 표제어로 오르면 나머지도 다 오르고, 하나가 명사 및 부사로 분류되면 나머지도 그렇게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앞의 표에서와 같은 혼란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들과 관련된 또다른 혼란도 있다. ‘그동안’ 및 ‘그사이’를 사전에 올렸느냐 안 올렸느냐에 따라 뜻풀이 부분에서 이들의 띄어쓰기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뿐더러 어떤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그동안’을 (‘그사이’와 함께) 표제어로 올려 놓고 (그리고 거기에서는 붙여 썼으면서) 뜻풀이 부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지금까지 본 것으로는 『금성판 국어대사전』의 ‘그사이’ 한 예를 제외하고는) 띄어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그 반대로 ‘그동안’을 표제어로 올리지 않은 사전에서는, 아래의 『새국어사전』의 실례에서 보듯이 뜻풀이에서 ‘그동안’을 붙여 쓰고 있다. 

『큰사전』 그-간 <이> 그 사이
『국어대사전』 그-간 <명> 그 동안, 그 사이
그-동안 <명><부> 그 사이
그-사이 <명> 그 동안
『종합국어사전』  그-간 <명> 그 동안, 그 사이
그-동안 <부> 그 사이
그-사이 <명> 그 동안
『금성판 국어대사전』 그-간  <명> 그사이
『동아 국어사전』 그-간 <명> 그 동안, 그 사이
그-사이 <명> 그동안


5

  이상에서 우리는 ‘그동안’에 얽힌 여러 사전에서의 난맥상을 너무도 생생히 보았다. 연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별로 그럴 만한 원인도 없는데 이런 사태가 빚어졌음도 보았다. 그런데 ‘그동안’과 아주 비슷한 사정을 가진 단어로 ‘여러가지’가 하나 더 있다. 역시 일찍이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p.69)에 ‘여러가지’는 ‘각종’ 및 ‘각색’과 더불어 복수 표준어로 올라 있고, 그 품사가 명사임도 밝혀 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것 역시 『큰사전』에는 빠져 있고, 『우리말 큰사전』이나 『금성판 국어대사전』 등에도 빠져 있다. 다행히 『국어대사전』이나 『새국어사전』에는 ‘여러가지’가 명사로 올라 있는데 이제 ‘그동안’과 함께 바른 운명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상으로 그동안 우리의 사전이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해도 달리 변명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한다. 이제 정말 정성을 다한 국어사전들이 나와야 하겠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결론은 간단하다. ‘그동안’은 붙여 쓰도록 하자. 그리고 ‘여러가지’도 붙여 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