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몇 가지 언어문화적 특성과 그 교육(1)


김영기   /      죠지워싱턴대학교 동아시아 어문학과, 한국 언어·문화 및 국제 문제 교수



  모든 인류의 언어는 어느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을 보인다. 이것을 촘스키(1957, 1959)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언어학자는 인간이라는 특별한 생물체가 태어날 때 어떤 공통된 언어 능력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근래 수많은 언어 습득의 연구에서 발견된, 언어와 언어 사회가 어떠한가에 관계없이 다 언어 습득이 가능하고 또한 그 과정과 양상이 상당히 질서 정연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그럴듯하게 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언어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언어가 반드시 사회적 행동이라는 사실이다.(2) 즉, 언어란 그것이 존재하는 언어 사회의 문화와 그 안에서 씌여 온 그 언어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Hymes, 1974, Halliday, 1975). 언어의 끊임없는 변화와 다양성은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적인 언어 교육이란 이 두 가지 요소가 정확히 습득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국어 습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2 언어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교육이 얼마나 가능한가? 촘스키를 비롯하여 많은 저명한 언어학자들은 언어 교육에 미치는 언어학의 공헌에 대하여 비관적이거나 완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김영기, 1979). 이는 세상 사람이 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말의 밑에 깔린 원칙이 그렇게 뚜렷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을 연구하는 이들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그 원리에 대한 최선의 가정을 해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어린이들의 자연스런 언어 습득 과정에 있어서는 무의식중에 이루어지며, 관찰되는 언어의 사실에 비추어 계속 닦아져 결국 눈에 띄는 노력 없이 언어를 배우게 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런 언어 습득 능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성인이 되어서는 거의 예외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어도 물론 대부분의 규칙이 결국은 인간의 언어에 잠재하는 일정한 원리를 따른다. 예를 들어서, 그 종류에 관계없이 인간은 의사 소통을 위하여 대개 세 가지 원칙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1)

가.

경제성/효율성
이해가 가능한 만큼의 더 이상도 더 이하도 말하지 말라.

나. 

정확성
의사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남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뚜렷하여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다.

적절성
아무리 그럴 듯한 내용이라도 문맥과 상황에 맞아야 말이 된다.

  여러 언어학자들이 이 원칙들을 약간 다른 용어를 써서 논하였는데, 예를 들어 H. Paul Grice(1975)라는 학자는 인간의 대화는 내용이나 그 양에 있어 적당할 뿐 아니라 그 상황에 적합한 대화를 하려는 협조 정신이 전제가 된다는 소위 ‘협조 원칙’을 말하였는데, 이 원칙은 인간의 언어의 근본을 말해 주는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첫번 원칙은 우선 인간이 말을 할 때 알아들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되도록 힘을 너무 안 들이는 쪽으로 하는 경향을 이르러 하는 말이다. 그래서 언어에 있어 다른 여러 인간의 인지 사실에서 보는 것처럼 꼭 필요한 것만 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있다는 가정이다. 
  다음 원칙은 결국 아무리 쉽고 간단한 것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범주가 다른 범주와 분간이 안 되면 이해가 불가능하니 범주끼리 분별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다 해당되는 말만 하는 것은 또 부족한 것이 인간은 사회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할 때 전달하고 싶은 의사에는 남에게 존경, 인정,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면이 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엇보다 문화적 조건이 맞아 들어가야 한다는 가정이 제일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이러한 보편 타당성을 보이기는 하나 여러 가지 원칙이 서로 다른 우선권을 행사하여 여러 종류의 언어적 기반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한 언어의 특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현대 생성문법학자의 대부분의 가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개 언어적 특징은 제2 언어 습득에 있어 장애물이 될 수 도 있지만 그것이 올바로 이해될 때 그 말을 제2 언어로 배우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제2 언어습득론자들(예를 들어 Flynn, 1991)이 많게 되었다. 그러면 한국어의 경우 이러한 특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서 몇 가지만 논해 보겠다.
  언어마다 우주를 다르게 분류하는 것은 흔히 여러 인류학자, 언어학자들에게 주목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는 임의적인 것이고 구체적으로 그 이유가 설명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되어 왔다. 사실 사전의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그 의미 영역이 어떻게 다른 말과 다르게 뻗어나가나를 쉽게 볼 수가 있다. 문법적으로도 시간이나 장소의 개념이 말에 따라 방언에 따라 상당히 다를 수 있으며, 또 발화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 태도 등등의 언어학적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아무리 구체적인 언어가 어떠한 점에서 일반 언어들과 차이점을 보여도 그 점에서도 대부분은 보편 타당성을 보여 성인에게 그들의 일반 문법 지식과 인지 능력에 호소하면 이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있을 간단하고 질서 정연한 규칙, 그 완전한 7진리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특징 때문에 가려지고 그것을 제2 외국어로 배우기란 더없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도 이러한 특징이 많아 어떤 때는 보편 타당성을 완전히 탈피한 느낌도 준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있는 어떤 규칙성에 어떤 원칙이 잠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말에 보이는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다. 
  한국어의 음운론적 특징 중 제일 특이한 것으로 두 가지를 들 수가 있다. 첫째는 한국 언중 의식에서는 개개 음의 발음과 의미 사이에 밀접하고 체계적인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어 화자는 단지 모음 하나 또는 자음 하나를 어떤 규칙하에 변형시킴으로써 말의 의미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가 있으며 이는 다른 한국어 화자에게 정확히 전달된다. 이 현상이 의성의태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어의 각 변별자질적 음에는 의미 요소가 중요한 자질의 하나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졸, 줄줄, 질질, 잴잴, 쫄쫄, 쭐쭐, 찔찔, 쨀쨀, 촐촐, 출출, 찰찰, 철철’ 등에서 보다시피 어떤 조화의 법칙도 따른다. 즉 모음에서 볼 때 [오]나 [아], [애]는 밝고, 작고, 귀엽고, 명랑한 인상을 주는가 하면 [어], [우], [에], [으], [이] 등은 그 반대로 어둡고, 크고, 어색하고, 음흉한 인상을 준다. 또 자음에 있어서도 [ㄱ], [ㄷ], [ㅂ], [ㅈ], [ㅅ] 등이 보통 순한 데 비해 [ㅋ], [ㅌ], [ㅍ], [ㅊ] 등의 기음 또는 거센 소리는 어떤 힘차고, 폭발적으로 강하고, 박력적인 인상을 주는가 하면, [ㄲ], [ㄸ], [ㅃ], [ㅉ], [ㅆ] 등의 된소리는 빡빡하고, 뭉치고, 긴장된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외국어에서는 고작해야 의성음으로 청각적인 인상에 의하여 발음으로 흉내를 내는 것이나, 한국어에서는 위의 예에서 보듯이 물 흐르는 소리뿐 아니라 여러 가지 강도 등 미묘한 느낌을 나타내며 관련된 어휘를 상당히 생산적으로 만들어 내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어도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 가. 아버지가 깔깔 웃으셨다.
나. 애기가 껄껄 웃었다.


  위의 두 예는 좀 비정상적인 문장들이지만 거기에 고의로 전달되는 의미는 확실한 것이다. 즉 좀 방정맞고 위엄이 없는 아버지에 애늙은이 같은 애기의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한국어의 모음조화 현상은 아직까지는 적어도 피상적으로 볼 때, 어떤 음성학적으로 보편 타당한 논리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른 말에서도 흔히 그렇듯이 역사적으로 선천적이고 물리적인 자연 법칙에 의하여 변형하던 규칙이, 언어가 변천함에 따라 원래는 이차적 의미를 가졌던 의미 자질이 일차적 자질의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Kim-Renaud, 1976). 그러나 모음조화는 한국어 화자에게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들의 인지 속에 뚜렷하여, 한글은 이러한 음과 의미 간의 초상화적(Iconic) 관계를 직접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이러한 이중적인 시야에서 볼 수도 있다는 지식이 우선 배우는 이들을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모음의 조화 원칙은 의미가 관계되어 있지 않은 순수 문법적인 변형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동사, 형용사의 어미 변형에서 번번히 ‘-어요/-아요’, ‘-어서/-아서’, ‘ -어도/-아도‘ 등 할 것 없이 하나의 음성모음 어미만 주면 양성모음의 변형은 거의 자동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문법적 적용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 나타나 예를 들어 학생들이 ‘집어 먹다’, ‘꾸어 먹다’, ‘씹어 먹다’, ‘나누어 먹다’ 하다가 ‘잡아 먹다’, ‘삶아 먹다’, ‘볶아 먹다’ 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예는 한국어 음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한국어에서는 단어말, 음절말 자음을 미파(unreleasing) 한다는 것이다. 음절말 자음은 대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불어 같은 말의 경우는 단어의 끝에서 꼭 파열을 하고 영어, 독일어 등 많은 말에서는 미파는 수의적인 현상이 된다. 이 기본 현상은 한국어 음운론에 있어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와 여러 공시적인 형태음운론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여러 가지 변화를 초래했다. 개개 어휘들이 마지막 자음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뒤에 오는 다른 자음에 동화를 하거나 다른 더 간단한 관계음으로 바뀌는 현상이 허다했고 아직도 허다하다. 자음 탈락의 직접 이유는 음절말 자음이 발음 직후 터지지 않으면 그 청각성이 확 줄기 때문이다. 또 터지지 않은 자음은 따라오는 자음의 위치로 옮아가기가 더 쉬울 뿐더러 그 발음이 일찍 멈춤으로써 두뇌의 다음 발음의 준비에 더 일찍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미파된 자음은 따라오는 자음에 동화되는 것이 훨씬 발음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말]보다는 [항궁말]이 훨씬 발음하기 편하다. 그러면 왜 구태어 어말 자음의 본태를 없애게 하는 미파가 성했을까 하고 물을 수 있다. 그 대답은 한국어가 결국 다음절 언어이므로 어근 뒤에 대개 다른 형태소들이 따라오는데 모음이 따라올 때는 그 발음이 표현되니까 탈락이 잘 되는 자음도 언중의 의식에는 있기 때문에 좀 안 들려도 이해될 수 있고, 터뜨리지 않으면 그만큼 에너지가 절약이 되니 한국어의 경우 미파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두 음운 경향은 한글이라는 과학적인 글자를 이용해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자음동화나 자음의 미파 또는 약화에 있어 ‘가획’ 같은 정연히 있는 규칙으로, 글자 사이의 관계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모음조화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사실은 수학에서 쓰이는 추축(Cartesian axes)의 음양의 관념을 직접 한글의 형태에 적용시킬 수 있다. 즉 외국인들이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의미를 함축하는 이 발음 현상을 이해하기 쉬운 상징적 징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는 구문적으로도 특이한 문법적 특징이 또한 여러 가지 있음을 볼 수 있다. 최근 오그래디(O'Grady, 1996)라는 언어학자는 한국의 구문론적 문법 범주를 논하면서 Steven Pinker(1984)가 주장한 이론, 즉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언어 습득 장치’는 일정한 문법 범주의 개념뿐 아니라 그 구문론적 범주와 의미 개념에 상통하는 어떤 조응의 능력도 포함하고 있다는 가정을 우선 소개하는데, 그것은

(3) Category  Corresponding Semantic Prototype
(범주) (조응하는 의미론적 원형)
명사 사람이나 물건의 이름
동사 행동 및 상태의 변화
형용사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특성이나 속성
전치사 공간적 관계, 행로, 방향
     Table 1. Pinker(1984:41)에 준한 오그래디(1996:1025)의 언어의 대표적 구문 범주와 그에 해당하는 원형적 의미 


  이 이론에서는 언어 습득자가 어떤 단어의 뜻만 알면 그 문법 범주를 알 수 있다는 가정이다. 즉 누가 ‘사람’ 이나 ‘책’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가리키니 명사인 줄 당장 알게 되고, ‘잡다’ 하면 또 확실한 행동을 보이니 동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 이나 ‘알다’ 같은 많은 어휘들은 이런 정의에 맞지 않고도 우리가 명사며 동사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Pinker 교수는 문법 범주화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신앙’ 이나 ‘알다’ 같이 원형적 의미에 직접 연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언어 습득 장치가 ‘사람’이나 ‘잡다’와 같은 전형적 명사나 동사가 한 문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인식하여 그 정보를 이용하여 이차적으로 문법 범주화를 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f
  오그래디 교수는 이 이론을 좀더 발전시켜 한 품사의 구문론적 배치에 직결되어 있는 의미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한다. 이것은 (4)에 보인 바와 같다.

(4)

범주

의미

종류 배치적 특성

명사

개별화 가능한 것

관사, 지시사와 그 외 정확성을
표시하는 형태와 공존

동사

사건

시제와 상의 표현 형태와 공존

형용사

특성

정도의 표현 형태와 공존

Table 2. 구문적 범주와 의미적 종류(오그래디 1996:1031)


  즉 명사의 경우에는 개별화(individuate)할 수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본다. 그리고 한 단어가 다른 단어와 가장 잘 구별되게 하는 것은 그 말의 구체성(specificity)이고 명확성(definiteness)이라고 본다. 그래서 어떤 명사고 ‘이 책’, ‘그 물’, ‘저 미술’ 등에서 보듯이 지시사(deictics)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오그래디는 또 동사라는 것은 인간이 타고나는 어떤 ‘사건’의 개념과 직접 관계가 되어 있는 것이라 가정하고, 사건과 관계된 것은 항상 시제(tense)와 상(aspect)이 있는 법이라는 논증을 제시한다. 그래서 언어 습득 장치는 시제와 상이 있느냐만 보고 한 어휘가 동사인가 아닌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장점은 어린이들이 말을 배울 때 행동을 표시하는 동사보다 다른 동사들을 먼저 배운다는 Maratsos(1988:36)의 관찰이 Pinker의 이론에서는 문제가 되었는데 이 이론을 따르면 문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즉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행동에 관계된 동사라면 왜 어린이들이 행동에 관한 말만 우선 하지 않는가? 우리말에서도 어린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 중에는 ‘싫어’, ‘몰라’ 같은, 행동에 관계없는 동사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형용사에 있어서는 그 구문 배치적 특징이, ‘더 예쁜 아이’, ‘좀 나쁜 학교’, ‘매우 추운 날씨’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정도를 나타내는 표현과 같이 쓰일 수 있느냐는 데 있다고 본다. 
  오그래디 교수는 여러 말에 혼성적인(hybrid) 범주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어에서도 ‘동명사’, ‘형용명사’, ‘형용동사’ 등의 범주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혼성적 범주의 발견은 제2 언어 습득에 있어, 그 문법의 특이한 점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한국어에 있어 한 예만 들어 보면 ‘예쁘다,’ ‘좋다,’ ‘춥다’ 등은 ‘예뻤다’, ‘나쁘겠다’, ‘추웠겠다’ 등 시제와 상이 표시되어 확실히 동사적 성격을 띄었으나 정도를 보이는 ‘너무’, ‘아주’, ‘좀’ 같은 말과도 공존할 수 있으니 형용사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용 동사의 이중 성격은 문법에 직접 반영되어 예를 들어 다음 두 무리를 생각해 보자.

(5) 가. 먹는다, 간다
나. *좋는다, *나쁜다

  
  현재 직설법에서 (5가)에서 보다시피, ‘먹다’나 ‘가다’ 같은 전형적 동사에서는 -(느)ㄴ이 삽입되나 ‘좋다’, ‘나쁘다’ 같은 형용 동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느)ㄴ이 결국은 사건의 진행성이나 현장성과 직접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흔히 어렵게 느껴지는 관계절의 경우 다음의 예에서 보듯이, 동사는 모든 시제를 넣은 관형절을 만들 수 있어도 형용 동사는 무시제의 형밖에 허용이 안 되는 것이다. 

(6)  가. 읽은 책, 읽는 책, 읽을 책
나. 좋은 책

 
  또 다음의 예와 같이, 내용이 상당히 비슷하면서 문법적으로 그 배치가 상당히 다른 동사와 형용 동사의 경우를 흔히 본다.

(7)  가.  내가 미니스커트가 좋다.
나.  *내가 미니스커트를 좋다.


  오그래디 교수는 (7)의 두 문장의 차이를 오직 순수 동사만이 목적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여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생각해 보자.

(8) 가.  내가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나.  *내가 미니스커트가 좋아한다.

 
  이 두 예문에서 보면, (8가)의 문장은 하나도 어색한 것이 없는데, ‘좋아하다’라는 단어는 (4)에 제시한 오그래디의 정의를 따르면 확실히 형용 동사이어야 하는데 목적격 사용이 가능할 뿐더러, 오히려 주격을 쓴 (8나)는 비문법적인 문장이다. 똑똑한 학생들은 오그래디 선생의 정의에 당장 반증으로 이 문장을 내 세울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것은 똑같이 형용 동사라도 동사의 성격이 더 농후한 것이 행동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Pinker가 지적한 행동성은 제일 강한 동사성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
  위에서 든 몇 예들과 관계된 것으로 필자(Kim-Renaud 1992)가 좀 다른 각도에서 연구한 바 있는데, 거기에서는 한국어의 언어문화적 특징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즉 이들은 한국어 문법과 한국어적 세계관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예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예를 보자. 

(9)  가. 내가 미니스커트가 좋다.
나. *영호가 미니스커트가 좋다.
다. 내가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라. 영호가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이 예들 중에 (9나)는 화자가 작품의 저자 같은 경우를 빼고는 비문법적인 문장이다. 그러면 (9가)와 (9나)는 구문적으로 똑같은데 왜 하나는 되고 하나는 안 된다는 말인가? 한국 언중 의식에서는 형용어는 근본적으로 화자밖에 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청자에게 질문은 할 수 있지만 남이 주어가 될 때 자기 심리 영역 밖의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의 경우, 작중 인물을 창조하며 그 심리 영역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가능할 때는 이것이 문법적인 문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남의 경우 동사성이 농후한 -하다를 더함으로써 이것을 심리적인 것에서 행동적인 것으로 바꿈으로써 남을 묘사할 수 있는 형태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생산적인 문법현상으로서, ‘예쁘다/예뻐하다’, ‘슬프다/슬퍼하다’, ‘싫다/싫어하다’ 등 한국어에서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나, 한국어를 상당히 잘 하는 외국인도 흔히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는데 이는 아주 초기부터 이해시켜야 할 것을 소홀히 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비슷한 것으로 화자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소위 동사의 미래형 -겠을 생각해 보자.

(10) 가. 나는 지금 들어가겠어요.
나. 지금 들어가시겠어요?
다. *영호가 지금 들어가겠어요. [의지의 의미]
라. 지금부터 회장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10나)는 남의 심리 영역을 물어 보는 것으로는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문법적 문장이 되었으나, (10다)는 의지의 뜻으로는 안 되고 걱정이 섞인 예측 밖에 안 되는 것은 결국 남의 심리란 알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10라)의 문장에서는 부하가 될지도 모르는 사회자라도, 일단 사회를 맡은 경우, 그 사람의 명령을 따라야 하므로 회장의 행동은 사회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형태의 사용이 적합한 것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에 있어 한국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경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무리 간단한 말을 해도 한국 문장에는 화자와 청자, 그리고 지적자에 대한 인간 관계의 표현이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분석은 권세와 형식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거기에 적절한 형태가 선택되는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여기에 대하여도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한국어에는 원래 상대적 ‘힘’의 주축으로 경어체가 결정되었고 이것이 상황에 따라 형식적일수록 존대형을 썼으나, 사회의 변천을 따라, 또 본능적인 타인에 대한 대접으로, 상하 관계가 너무 노골적인 것을 피하려는 노력이 반말과 -어요 형을 탄생하게 하였고 이들의 등장은 한국어의 경어 체계에 큰 변동을 가져 왔을 뿐 아니라, 민주화되어 가는 사회의 가치관에 잘 어울려 오히려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Kim-Renaud, 1990a, b). 그리고 원래 ‘힘’의 관계를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나이다’ 체는 물론 소위 ‘예사 낮춤’과 ‘예사 높임’의 형도 차차 없어져 가는데, 이 두 ‘예사’ 형은 자기를 올리는 뜻이 있어 더욱이 현대 사회 가치관에 부적합하기 때문으로 본다(Kim-Renaud, 1996).
  경어법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어에서 또 하나 중요한 언어문화적 사실은 한국문화가 직설적인 것보다는 여운을 아름답게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딱 떨어지게 말하는 것보다는 항상 외국인이 보기에는 군소리 같지 않으면 우유부단한 인상을 주는, 마치 문장이 중간에 끊긴 듯한 예가 허다한 것이다. 몇 가지 예만 보더라도

(11) 가. 점심이나 하실까요?
나. 전화라도 주세요.
다. 안 계신데요.
라. 숙제는 하기는 했지만.

  많은 경우는 대개 화자가 최종의 선언을 하는 것보다는 청자에게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주는 데서 어딘지 공격적인 인상을 피해 보려는 노력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상 간단히 몇 가지 한국어의 구조적, 언어문화적 특징을 들어 보았는데, 비록 완벽한 진리가 의식적으로 발견되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이론과 분석이 나와,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에게 개운하고 효과 있는 지식이 안타깝게도 손에 안 잡힌다 해도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동안 많은 진전을 보았다. 결국 언어가 보이는 체계는 그렇게 완전히 관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결국은 의미심장한 언어 습득의 열쇠가 아닌가 한다. 이 체계에는 물론 여러 말에서 보편타당성을 보이는 선천적인 것과 지극히 제한된 언어에서만 보이는 환경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훨씬 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된다고 본다.
  그러나 진실로 어떤 방법이 제2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습득하는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일까 하는 데는 자신만만히 대답을 제의할 수가 없다. 단지 너무나 이질적인 언어와 그것이 반영하는 문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정도의 지식만 얻게 하여도 어느 정도 친밀성을 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무턱대고 규칙을 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한국어 문장을 암기만 하게 하는 방법보다는 그래도 어딘가 피상적으로 복잡해만 보이는 한국어 현상 아래에 상당히 단순한 이유가 깔려 있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좀 격려가 되고, 일단 거부감을 없애 주고 흥미를 돋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조심스러운 희망일 뿐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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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mes, Dell (1974), Foundations in Sociolinguistics:an Ethnographic Approach, Philadelphia: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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