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 / 영남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아동은 태어나서 1년 정도가 지나면 하나의 단어를 말하기 시작한다. 이 때 이들이 생성해 내는 단어에 대한 발음은 부정확하여 알아듣기 어렵지만 또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단어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다. 아동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접하는 사물 또는 현상 등에서 이토록 정확하고 빠르게 단어의 의미를 추출하여 대상물과 연결할 수 있는가? 최근의 언어 발달 연구들은 아동이 어떻게 단어의 의미 구조를 형성하게 되는가에 관심을 갖고 단어 의미 추론에 관여하는 다양한 제약(constraint)을 제안한다. 本稿에서는 제약을 제안하게 된 배경이 되는 단어 의미 습득에서의 논리적 문제를 살펴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안된 여러 종류의 제약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단어 습득에서의 귀납적 문제
아동의 언어 습득 과정은 매우 경이롭다. 대부분의 아동들은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한 단어를 발화하기 시작한다. 아동이 말을 시작하고 나서 6개월 정도가 지나면,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양은 놀라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증가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 현상을 어휘 폭발(naming explosion)이라 한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어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언어 습득 연구에서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어휘 습득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어느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단순한 가설 검증 과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이 단어 의미 습득에서의 귀납적 문제(inductive problem)이다(Quine, 1960). 예를 들어 어떤 아동이 토끼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토끼를 ‘gavagai’라로 지칭하는 것을 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상황에서 아동이 ‘gavagai’라는 단어 의미를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토끼의 모습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화할 수도 있고, 토끼의 다리, 귀, 꼬리와 같은 일부분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토끼의 털이나 뼈 등의 해부학적인 요소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토끼가 하얀지 더러운지 등의 토끼의 상태에 대한 것으로 추론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아동이 단어 의미에 대해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일일이 고려하여 하나씩 검증한 결과로 그 의미를 추론하는 것이라면 1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일어나는 어휘 폭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와 같은 귀납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근의 연구들은 단어 의미 추론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제약(constraint) 또는 암묵적인 편향성(implicit bias)이 있다고 가정한다. 아동들은 새로운 단어를 들을 때 일정한 방향이 없이 그 의미의 가능성들을 모두 추측하여 검증하기보다는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정한 제약에 의해 적절한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촘스키의 본유적 제약
단어 의미 추론을 제약을 가정하면서 설명하는 접근 방법은 촘스키의 통사 습득에 대한 이론으로부터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 촘스키는 아동의 언어 습득 과정을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전제로 설명한다. 첫째, 아동의 언어 습득은 매우 독창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이다. 이 말은 아동의 언어 습득이 자기가 들었던 문장을 단순히 기억하여 재생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의 문법 체계는 매우 복잡한 규칙을 내포하는데 아동의 언어 습득은 이러한 문법 체계를 습득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동은 자기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문장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증거는 성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비문법적인 문장을 산출하는 아동의 언어적 오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아동의 산출 자료에서 ‘곰가 낸네해’와 같은 표현이 나타난다. 이 문장은 한국어에서 비문법적인 것이기에 어른이 이러한 표현을 했을 가능성이 없다. 아동의 언어 습득이 모국어의 규칙 체계를 배우는 과정으로 가정한다면 이 같은 오류는 아동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규칙을 잘못 적용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아동이 접하는 언어 자극은 ‘빈곤’하다(impoverished). 아동에게 주어지는 언어 자극이 빈곤하다는 것은 몇 가지 면에서 논의될 수 있다. 첫째, 아동이 접하는 문장은 양적으로(quantitatively)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아동이 모국어가 허용하는 모든 문장을 듣고 자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제한된 언어 환경에서 자라지만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었던 문장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무한한 언어 능력을 가진다. 둘째, 언어 자극이 빈곤하다는 의미는 양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qualitative) 면에서도 논의된다. 아이들이 듣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말이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의미가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불완전한 언어 환경 속에서도 자기 모국어에 대한 정확한 문법을 추상화하여 정확한 언어 규칙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촘스키(1986)는 아동이 제한적인 언어 자극에서 복잡하고 풍부한 언어 지식을 갖게 되는 언어 습득에서의 비대칭성을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이라는 생득적인 언어 능력을 가정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보편 문법은 일종의 생물학적인 기제로서 다양하게 구별되어 있는 본유적인 언어적 제약(linguistic constraint)들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적인 기제라는 말은 보편 문법이 대뇌 구조의 일부라고 가정하기에 이러한 보편 문법은 생득적이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이다. 또한 본유적인 언어적 제약은 원리(principle)와 매개 변인(parameter)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촘스키, 1981). 원리와 매개 변인을 내재화하고 있는 보편 문법은 주어지는 언어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하나의 구체적인 언어의 형태로 구현화되는데 각 나라 언어의 특수성은 보편 문법의 매개 변인의 값이 다르게 매겨짐으로써 결정된다.
아동이 단어의 의미를 통사를 구성하는 것만큼 빠르게 습득한다는 사실은 촘스키의 분석을 의미 발달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Brynes & Gelman, 1991). 또한 아동이 통사를 습득해 가는 과정이 본유적인 능력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동은 선험적인 능력에 의해 의미적 체계를 습득한다. 이러한 제약 조건이 어떤 것들인지, 또는 어느 정도 본유적으로 특수화되어 있는지는 아직 잘 알 수 없지만 최근에 몇 가지 제약 조건들이 제안되었다. Markman(1991)은 온전한 대상물 가정(Whole-Object Assumption), 분류적 가정(Taxonomic Assumption), 상호 배타성 가정(Mutually Exclusivity Assumption) 등을 주장하였다. Soja, Carey, & Spelke(1991)는 단단한 고체 대상물(solid object)과 무형의 물질(non-solid substance)을 구별해 주는 존재론적 범주(Ontological Category)에 대한 개념이 단어 의미 추론을 이끈다고 주장하였다. Landau, Smith & Jones(1988)는 단어 의미 추론이 지각적 특성 중 형태(Shape)에 근거하여 진행된다고 주장하였다.
3. 단어 의미 추론에서의 제약 조건
앞에서 언급했듯이 단어 의미 추론에서 제약을 가정하게 되는 주요한 동기 중 하나는 아동의 어휘 폭발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이번 장에서는 단어 의미 추론을 이끄는 제약으로 제안된 가정과 그에 대한 실증적 증거들을 소개한다. 특히 이 가정들이 아동의 어휘 폭발 시기에 작용한다는 영아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적 증거들을 제시한다.
1) 분류적 가정
분류적 가정은 하나의 단어는 같은 종류의 물체를 지칭한다는 가정이다. 사용된 단어가 물체에 대한 용어라면 같은 종류의 물체를, 색깔에 대한 용어라면 같은 종류의 색깔을, 행동에 대한 용어라면 같은 종류의 행동을 지칭한다. 성인들의 경우 단어를 이러한 방식으로 분류하여 적용한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린 아동들의 경우에도 그러한지는 의문시되어 왔다. 그 한 가지 이유로 아동에게 이 세상의 물체들은 주제적으로(thematically)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젖소’하면 ‘우유’가 떠오르고 ‘아기’와 ‘우유병’, ‘엄마’ 와 ‘바늘’ 등이 연결되어 생각된다. 따라서 아동들이 사물을 분류할 때 이와 같은 주제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단어를 들려 주고 물체들을 분류하게 했을 때 이러한 주제적 선호성은 사라지고 대신 분류적(taxonimic)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Markman과 Hutchinson, 1984). Markman과 Hutchinson(1984)는 아동에게 ‘소’, ‘우유’, ‘돼지’가 그려진 그림을 보여 주었다. ‘소’ 그림을 가리키면서 이것과 같은 것을 골라 보라고 지시하였다. 이 때 아동은 ‘우유’ 그림을 골랐는데 이것은 ‘소’와 ‘우유’를 주제적으로 연결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 그림에 ‘dax’라는 무의미 단어를 붙여 주고 또 다른 dax를 찾아 보라고 했더니 이 경우에는 ‘돼지’ 그림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아동이 ‘소’와 ‘돼지’를 분류적으로 범주화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이런 분류화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단어의 역할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요약한다면 아동이 세상을 구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주제적으로 연결하는 것이지만 단어가 제시됨으로써 세상을 범주적으로 분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어휘 폭발 시기의 영아들이 분류적 가정에 민감하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Markman, 1994). Backscheider와 Markman (Markman, 1995에서 재인용)은 18개월에서 25개월 사이의 영아에게 다음과 같은 실험 자극을 제시하였다. 실험 자극은 한 장의 표본 자극과 두 장의 검사 자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검사 자극 중 하나는 표본 자극(앉아 있는 아기)과 주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주제적 자극: 스트롤러) 다른 하나는 표본 자극과 분류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분류적 자극: 누워 있는 아기). 피험 아동은 ‘단어 조건’과 ‘비단어 조건’의 두 가지 실험 조건 중 한 조건에 할당되었다. 비단어 조건에서는 주제적 자극을 선호하였지만(68%), 단어 조건에서는 분류적 자극을 선택하는 경향성을 보였다(77%). Wasow와 Markman(Markman, 1995에서 재인용)은 Backscheider와 Markman이 사용한 절차를 보다 어린 영아에 맞도록 수정하여 1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영아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18개월 영아들은 비단어 조건에서 주제적 자극을 선호하였고(72%) 단어 조건에서 분류적 자극을 선택하는 경향을 증가시켰다(54%). 하지만 16개월의 영아들에게서는 이러한 단어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이들은 16개월 영아들에게서 단어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이 실험에 사용된 자극이 친숙한 것이기에 이 영아들이 이미 그 친숙한 자극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수 있고 만약 그렇다면 상호배타성 가정(1)을 위배하기에 단어 효과를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친숙하지 않은 새로운 물체를 이용하여 다른 실험을 해 보았지만 비친숙 자극에서도 단어 효과를 찾는 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 결과가 16개월 된 영아들이 분류적 가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해 주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사용된 과제가 생소하여서 영아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제대로 잴 수 없었을 수도 있기에 어린 영아의 능력을 보다 잘 측정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자기들의 설명에 대한 증거로 습관화 절차(habituation procedure)를 이용한 다른 연구 결과를 제시하였다.
Waxman 등(Markman, 1995에서 재인용)은 습관화 절차를 이용하여 12개월 된 영아들이 단어를 제시하지 않았을 때보다 단어가 제시되었을 때 대상물을 범주적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을 증가시켰다고 보고하였다. 명사 뿐만 아니라 형용사를 제시하였을 때에도 이러한 단어 효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영아들이 형용사나 명사를 문법적으로 구별할 수 없지만 명칭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요약한다면 대상물을 범주적으로 분류하여 단어 의미를 일반화시키게 하는 분류적 가정은 어휘 폭발이 일어나는 1세와 2세 사이에 이미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온전한 대상물 가정
온전한 대상물 가정은 아동이 새로운 단어를 들었을 때 그 단어를 부분, 물질, 색깔, 움직임 등보다는 온전한 대상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동이 일반화시키는 새로운 단어가 온전한 대상물을 지칭하는지 또는 대상물의 형태(shape)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어린 아동들이 같은 색깔이나 재질보다는 같은 형태를 가진 물체에 이름을 적용한다고 보고하고 있다(Au & Markman, 1987; Landau et al, 1988). 하지만 형태에 의존하여 단어 의미를 추론한다는 결과가 반드시 온전한 대상물 가정과 대치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이 새로운 단어를 들을 때 그 단어를 같은 종류의 온전한 대상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이 때 대상물들을 범주화하는 주요한 단서 중 하나가 형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Soja, Carey & Spelke(1991) 의 결과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아동이 새로운 단어를 적용시키는 기준이 고체의 대상물인가 비고체의 물질인가와 같은 범주적 분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고체의 대상물에서는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대상물의 조건을 만족시키는가가 단어 의미 추론의 근거가 된다. 반면에 비고체의 물질에서는 온전한 대상물인지보다는 같은 종류의 물질인가에 따라 단어 의미를 일반화시킨다.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개념을 근거로 단어 의미 습득이 이루어진다는 Soja 등(1991)의 제안은 온전한 대상물 가정을 포괄적으로 내포한다고 이해된다. Baldwin(출판 중)은 분명한 분류적 범주가 없을 경우에는 형태를 근거로 반응하지만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경우에는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분류적 범주를 근거로 명칭을 일반화한다는 것을 발견했다(Markman, 1994에서 재인용). Landau(1994)는 벌레와 같은 동물이 꼬여서 다른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같은 명칭을 부여하는 것을 근거로 아동이 새로운 단어를 부여할 때 형태보다는 대상물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밝혔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다면 아동은 대상물들을 어떤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 때 새로운 단어를 형태보다는 온전한 대상물 가정에 우선적으로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어휘 폭발 시기에 있는 영아들이 온전한 대상물에 대한 선호를 보인다는 증거가 있다. Woodward(1992)는 18개월 된 영아들에게 흘러내리는 용암과 같이 움직이는 물질과 고체로 된 움직임이 없이 고정되어 있는 대상물을 비디오로 보여 주었다. 이 때 영아들은 고정된 고체 대상물보다 움직이는 물질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어를 들려 주면 영아의 시선이 움직이는 물질보다는 고체 대상물에 더 오래 머무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Markman, 1994에서 재인용).
3) 상호배타성 가정
상호배타성 가정은 하나의 사물은 오직 하나의 이름만을 가진다는 가정이다. 아동들이 듣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상호배타적인 범주들을 지칭하고 있기에 상호배타성 가정은 아동들이 단어 의미를 추론하는데 유용한 제약이 될 것이다(Markman 1991). 예를 들어 의자, 책상, 컵, 등은 모두 상호배타적인 범주들을 가리키고 있다. 상호배타성 가정이 단어 의미 습득에서 default assumption이라는 증거는 많은 실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Au와 Glusman(1990)은 3세에서 5세 사이의 아동들에게 네 마리의 포유동물(여우원숭이 두 마리와 바다 표범 두 마리) 모양을 한 장난감 동물을 이용하여 실험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장난감 동물들은 뿔이나 털을 달아 성인들도 그것들이 무슨 동물인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형시켰다. 네 마리 동물 중 하나를 가리키며 ‘mido’라는 무의미 단어를 학습시켰다. 아동이 무의미 단어인 ‘mido’가 두 마리의 여우원숭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충분히 학습하였다고 판단되면 이 아동에게 또 다른 새로운 이름인 ‘theri’를 들려 주며 ‘theri’를 찾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이 때 아동들은 ‘theri’라는 새로운 이름을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여우원숭이에게 적용하기보다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동물의 이름(예, 바다표범)으로 추론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어에서도 입증되었다. 김혜리(1994)는 3세의 한국 아동들에게 가상의 포유동물 그림 3장, 가상의 연체류 그림 3장, 무생물 자극인 배 그림 2장을 보여주고 포유동물 자극 중 하나를 지적하며 ‘헤비’라는 무의미 단어를 학습시켰다. ‘헤비’에 대해 가능한 자극을 모두 선택하게 한 후 또 다른 새로운 단어인 ‘네꼬’가 지칭할 수 있는 자극을 고르게 하였다. 영어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한국 아동들도 새로운 이름을 들을 때 그 이름을 기존에 알고 있는 대상물보다는 새로운 대상물에 적용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경향성은 어휘 폭발 시기에 있는 어린 영아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Markman과 Wasow는 15개월 된 영아들에게 이름을 알고 있는 친숙한 물체를 보여 주면서 새로운 이름을 말해 주었을 때 이 영아들은 적절한 참조물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방이나 마루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행동을 보고하였다(Markman, 1994에서 재인용). Littschwager와 Markman(1991)이 18개월 된 영아들에게 한 물체에 대해 하나의 단어를 학습시킨 후 다시 새로운 단어를 학습시키고자 했을 때 두 번째 단어를 가르치는 것이 첫번째 단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 보고하고 있다(Markman, 1994에서 재인용). 이러한 결과들은 상호배타성 가정을 아주 어린 영아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4) 제약들 간의 관계
하지만 이상의 가정들은 경우에 따라서 하나의 가정이 다른 가정을 제압하기도 하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적용이 보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호배타성 가정이 전체 대상 가정과 갈등을 일으킬 때 상호배타성 가정은 아동들이 새로운 단어에 대해 전체 대상이 아닌 그 대상물에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부분이나 특성 또는 그 대상물을 만들고 있는 물질 등을 찾도록 해 준다. 또는 상호배타성 가정이 분류적 가정의 적용을 보류하게 하기도 한다. 친숙한 대상물에 대해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을 때 그 이름을 고유명사로 이해하는 것이 그 예이다.
상호배타성 가정은 아동이 처음 단어를 습득할 때 작용되는 매우 강력한 가정이지만 이 가정이 유보되는 경우가 있다. 첫째, 두 개의 이름이 위계적 관계에 있을 때 상호배타성 가정을 따르지 않는다. 어떤 동물을 ‘개’라고 부르기도 하고 ‘치와와’라고 부르기도 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대상에 두 개의 이름을 허용하는 경우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름 붙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치와와’는 ‘개’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치와와’는 ‘개’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관계를 형성한다. 아동들이 사물의 위계적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또는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대상물에 또 다른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준다면 그것은 다른 위계 수준에서 그 대상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Au와 Glusman (1990)은 네 마리의 동물 장난감(예, 잡종개, 사냥개, 낙타, 플라밍고)를 3세와 5세 아동에게 제시하였다. 이 자극 중 잡종개와 사냥개는 ‘개’라는 기본 범주의 하위 범주에 해당되는 것이다. ‘사냥개’를 보여주며 ‘mido’라는 새로운 이름을 들려 주었다. 그리고 나서 네 개의 동물 장난감에서 ‘mido’를 골라 보게 하였는데 85% 정도의 아동들이 ‘mido’라는 이름에 대해 ‘사냥개’ 장난감만을 선택하였다.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또 다른 새로운 이름인 ‘theri’를 골라 보게 했을 때 대부분의 아동이 앞서 이름 붙여진 장난감(사냥개)를 선택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아동들이 사냥개 장난감이 ‘mido’도 되고 ‘개’도 된다고 반응하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범주 수준 내에서는 상호배타성을 따르지만 범주 수준이 달라질 때는 상호배타성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하위 범주인 ‘사냥개’와 ‘잡종개’ 사이에서는 상호배타성이 유지되지만 ‘사냥개’와 기본 범주인 ‘개’ 사이에서는 상호배타성을 보류하고 위계적 관계로 이해하기에 두 개의 이름을 허용하는 것이다. 두 개의 단어가 위계적 관계로 이해될 수 있을 때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한다는 증거는 한국어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김혜리, 1994; Hong과 Lee, 1995).
둘째, 상호배타성이 유보되는 또 다른 경우는 다른 언어로 이름을 붙일 때이다. 하나의 대상물에 대해 두 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런 경우에는 상호배타성을 따르지 않고 두 가지 이름을 모두 허용한다. Au와 Glusman(1990)은 영어와 스페인어가 가능한 이중언어 아동들에게 하나의 대상물에 대해 첫번째 단어(예, mido)는 영어를 구사하는 실험자가 들어와서 말해 주었다. 두 번째 단어(예, theri)는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다른 피험자가 들어와서 들려 주었다. 이 때 아동들은 하나의 대상물에 대해 이 두 가지 단어를 모두 허용하였다. 아동들은 하나의 대상물을 두 개의 다른 언어로 지칭하였다고 이해하고 상호배타성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5) 존재론적 범주의 역할
존재론적 범주란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사물들을 가장 기본적으로 묶을 수 있는 범위를 지칭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범주가 단어 의미 습득에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는 논쟁이 되고 있다. Quine(1960)은 어린 아동의 경우 물질과 대상물에 대한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 개념과 관련된 통사적 지식이 습득된 후에 이 개념들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Quine (1960)은 ‘Mama’, ‘Red’, ‘Water’의 세 종류의 단어에 대해 아동이 가지는 표상을 예로 든다. ‘Mama’는 명사이고 ‘red’는 형용사이고 ‘water’는 셀 수 없는 물질 명사이다. 영어로 표현할 때 이들 명사들은 각기 다른 표현 양식을 갖는다. 예를 들어 ‘Mama’에 대해서는 ‘Hello, Mama again’, ‘red’에 대해서는 ‘Hello, another red thing’, ‘water’에 대해서는 ‘Hello, more water’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아동이 처음 이 세 종류의 단어를 표현할 때 이것들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Hello, more Mama, more red, more water’(Quine, 1960:p92). 엄마에 대해서 간헐적으로 가졌던 경험, 붉다라는 표현이 주어졌을 때 가졌던 간헐적 경험, 물에 대해서 가졌던 경험에 대한 표상이 아동의 개념을 구성하는데 이것들은 처음에는 같은 양식의 언어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분리된 참조(divided reference)’에 대한 개념을 알고나서야 ‘사과’와 같은 대상물을 ‘물’과 같은 물질과 구별하여 다루게 된다. ‘분리된 참조’는 개별화(individuation)와 수 개념을 가능하게 해 준다. Quine(1960)에 따르면 어린 영아들은 ‘분리된 참조(divided reference)’의 개념도 없고, 개별화와 수 개념을 가능하게 해 주는 개념도 없다. 따라서 이 아동들은 ‘사과’와 같이 개별화가 가능한 대상물도 ‘물’과 같은 불가산 용어와 마찬가지로 취급한다. 대상물과 물질에 대한 구별은 이 개념적 구분에 상응하는 통사적 지식이 습득되고 나서야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영어의 경우는 대상물과 물질을 구별하는 통사적 지표가 뚜렷하다. 예를 들어 대상물에 대한 가산 명사(Count Noun)에는 부정관사 ‘a’, 복수형 접미사 ‘s’가 사용되는 반면에 물질을 표현하는 불가산 명사(Mass Noun)에는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 이 두 종류의 명사는 양화적 수식어의 사용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가산 명사의 경우에는 ‘one’, ‘two’, ‘three’ 등의 수량적 표현이 가능한 반면에 불가산 명사에는 ‘some’과 같은 양화적 표현을 사용한다. Quine(1969)은 이러한 통사적 지표가 습득되기 전에는 아동은 ‘책상’과 같은 대상물과 ‘모래더미’ 등과 같은 물질에 대한 개념을 구별하지 않고 단어 의미를 자신의 가장 특징적인 지각적 경험에 근거하여 추론한다고 가정한다. Soja 등(1991)은 Quine(1960)의 제안을 단어 의미 추론에 적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절차 0: 단어가 지칭하는 것은 그 단어가 사용될 때 일어나는 지각적 경험 중 가장 현저한 특성에 대한 것이라고 결론지어라.
절차 0에 따르면 아동은 존재론적 구별은 고려하지 않고 가장 현저한 지각적 경험에 근거하여 단어를 일반화시킨다. 그렇다면 현저한 지각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지각적 경험의 현저성을 정의하는 하나의 가능성은 지각적 유사성이다. 이러한 견해는 심리학 영역에서 비교적 많이 받아들여져 왔는데 Clark(1973)은 아동이 발화하는 초기의 단어가 가장 특징적인 지각적 속성을 지칭한다고 주장하였다. Landau 등(1988)에서도 단어 의미 추론에서 지각적 속성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형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제안하였다. Landau 등(1988)은 크기(size), 재질(texture), 형태(shape)의 3가지 지각적 차원에서 변형된 도형을 가지고 단어 과제와 비단어 과제에서의 추론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크기나 재질에서의 변화보다는 형태에서의 변화가 있을 때 다른 종류의 자극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형태에 근거한 반응 경향성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또한 비단어 과제에서보다 단어 과제에서 더욱 뚜렷하였다. 이들의 결과는 새로운 단어에 대한 의미가 크기나 재질보다는 형태에 근거하여 일반화되고 있고 있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Quine의 주장을 Soja 등(1991)은 실증적 증거를 근거로 반박한다. Soja 등(1991)은 고체의 대상물과 비고체의 물질을 구별하는 존재론적 개념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며 이러한 개념이 아동의 단어 의미 추론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Soja 등(1991)은 절차 0에 대한 대안으로 다음의 두 가지 절차를 제안한다.
절차 1: 단단한 고체의 대상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단어는 개별적인 대상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론한다.
절차 2: 단단하지 않는 비고체의 물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단어는 같은 종류의 물질의 일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론한다.
Soja, Carey & Spelke(1991)는 위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두 개의 단어 학습 과제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단단한 대상물에 대해 새로운 단어를 가르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질에 대해 새로운 단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단어를 학습한 후에 아동들은 두 가지 자극에 대해 반응하여야 하였다. 하나의 자극은 원 자극과 형태는 같으나 재료가 달라졌고 다른 하나는 원자극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으나 형태가 달라진 것이었다(그림 1 참조). 이렇게 두 가지 차원에서 변형된 자극들 중에서 어느 것에 새로 학습한 단어를 일반화시키는가를 살펴 보았다. 결과는 자극이 단단한 대상물인 경우에는 자극의 재료와는 상관없이 같은 형태의 대상물에, 비고체의 물질 자극에는 형태와는 상관없이 같은 종류의 재료에 근거하여 추론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다시 말해 대상물 시행에서는 형태와 수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지만 물질 시행에서는 형태와 수를 무시하였다.
Soja 등(1991)에서 아동이 대상물 시행에서 수를 고려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동이 ‘분리된 참조’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분리된 참조’에 대한 개념은 개별화와 수 개념을 가능하게 하여 고체의 대상물을 비고체의 물질과 구별하게 해 줄 것이다. 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체의 대상물과 비고체의 물질을 구별하고 있다는 Soja 등(1991)의 결과는 ‘분리된 참조’의 개념이 통사적 지식이 습득되고 나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1) 어린 영아에서의 개별화 원리
Carey(1995)는 4개월 된 영아도 대상물에 대한 개념을 표상할 때 개별화와 수 개념에 대한 기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영아들은 개별화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대상물을 표상하는데 이 때 대상물은 응집성이 있고 경계가 있고 공간에서 움직일 때 이러한 응집성과 경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표상된다. 예를 들어 영아들은 하나의 대상물이 다른 대상물이 놓여 있는 장소를 통과할 수 없다는 원리에 근거하여 대상물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또 다른 증거는 수 세기(counting) 능력이다. 영아가 한 개와 두 개와 같이 작은 수의 크기를 구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수 세기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영아에게 두 개의 컵, 두 개의 병, 두 개의 모자, 두 개의 펜 등 두 개의 대상물을 계속 보여 주면 영아의 주의가 사라져서 바라보는 시간이 점차 감소한다.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원래 수준보다 반 정도 감소했을 때 한 개의 대상물이나 세 개의 대상물을 보여 주면 주의 집중 시간이 다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영아들이 두 개와 세 개 또는 두 개와 한 개 사이를 구별한다고 해석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신생아에게서도 얻을 수 있었다(Antell과 Keating, 1983, Carey, 1994에서 재인용). Carey(1995)는 어린 영아들이 개별화와 수 개념을 보여 준다는 사실은 Soja 등(1991)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증거가 되고 또한 이러한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구별이 어휘 폭발 현상과 연관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가정은 언어 보편적인가?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가정이 다른 언어에서도 적용되는 언어 보편적인 현상인가? Soja 등은(1991) 이러한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개념이 선험적이라고 주장하지만 Quine(1960)은 이에 상응하는 통사적 지식이 습득된 후에 형성되는 문화적 구성(cultural construction)이라고 주장한다. 단어 의미 습득에서 Soja 등이 주장하는 존재론적 범주가 언어 보편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존재론적 범주 구별에 상응하는 통사적 지표가 없는 언어에서도 영어에서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가산 명사와 불가산 명사를 구별하는 통사적 단서가 미약한 한국어를 분석하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한국어는 영어와는 달리 ‘a’ 나 ‘the’와 같은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복수형의 표현에 있어서도 한국어의 경우에는 영어에서와 같이 복수형 접미어를 붙이는 것이 절대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사과들이 많다.’라는 표현보다는 ‘사과가 많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 마지막으로 분류사(classifier)가 한국어에서 가산 명사와 불가산 명사를 구별해 줄 수 있는 통사적 지표라는 가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에서 수량을 표현할 때 반드시 분류사를 사용한다. 따라서 대상물과 물질을 양적으로 표현할 때 별개의 분류사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분류사가 사용된다는 것이 물질과 대상물을 구별해 주는 단서가 되지 않는다. 한국어에서 분류사는 대상물과 물질을 대별하여 사용된다기 보다는 다양한 의미 자질에 근거하여 구별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셀 수 있는 대상물에 사용되는 분류사도 물건의 경우에는 ‘개’, 사람에는 ‘명’, 동물에는 ‘마리’, 연필에는 ‘자루’ 등 매우 다양하다. 물질의 경우에도 종이는 ‘장’, 물 종류는 ‘잔’, 음료수는 ‘병’ 등 많은 분류사가 사용된다. 따라서 분류사가 대상물과 물질을 구별해 주는 통사적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단어 의미 추론에서 존재론적 범주가 선험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대상물과 물질을 구별하는 통사적 지표가 없는 한국어에서도 영어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Lee(1996a, 1996b)는 한국어 단어 의미 습득에서 존재론적 범주의 개념이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영어에서와는 달리 한국 아동들은 고체의 대상물과 비고체의 물질을 구별하지 않고 형태에 근거하여 단어 의미를 일반화하였다. 특히 검사 자극이 표본 자극과 형태가 같았지만 하나의 대상물이 아닌 조각으로 구성된 경우에 대해서도 단어를 일반화시킨 것은 Soja 등(1991)의 주장과는 상반된 결과이다(Lee, 1996b). 한국어에서의 결과는 Quine(1960)의 주장처럼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개념을 가지기 전에는 형태와 같은 지각적 유사성에 근거하여 단어 의미를 추론하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반된 결과는 언어적 차이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실험 절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밝혀 내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하지만 Soja 등(1991)의 연구에서 지적되어야 할 한 가지 문제점은 실험에 참여한 아동들이 이와 같은 통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이다. 실험에 참여한 아동이 대상물과 물질에 대한 통사적 단서를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Soja 등(1991)은 본 실험이 실시되기 전 또는 실시하는 과정에서 아동이 발화하는 언어적 표현을 녹음하여 분석하였다. 이 산출 데이터는 대부분의 아동이 발화한 명사가 가산 명사였고 가산 명사와 불가산 명사를 구별하는 통사는 아직 습득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Soja 등(1991)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이들의 본 실험에서는 단어 이해를 측정하고 있는데 반해 통사적 지식이 없다는 사실은 산출 자료를 통해 검증하였다는 점이다. 아동의 언어 습득 과정에서 이해는 산출보다 앞서 나타난다(deVilliers & deVilliers, 1978).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가산 명사와 불가산 명사를 구별하는 통사적 표현이 산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통사적 지식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을 보다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는 통사적 지표를 가지지 않는 여러 언어를 대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4. 결 론
최근의 언어 발달 연구들은 아동의 단어 의미 습득 과정을 단어 의미 추론을 일정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제약을 가정함으로써 설명한다. 단어 의미 추론을 제약으로 설명하는 접근 방법은 촘스키의 통사 습득에 대한 이론에서 출발하였다. 촘스키는 아동의 언어 습득을 보편 문법이라는 생득적인 언어 능력을 가정하면서 설명한다. 보편 문법은 일종의 생물학적인 기제로서 원리와 매개 변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원리와 매개 변인이 언어적 제약이라 할 수 있다.
단어 의미 습득에 관여하는 제약들이 제시되었다. Markman(1991)은 온전한 대상물 가정, 분류적 가정, 상호배타성 가정을 단어 의미 습득에 대한 제약 조건으로 제안하였다. Soja 등(1991)은 고체의 대상물과 비고체의 물질을 구별하는 존재론적 범주가 단어 의미 추론을 이끈다고 주장하였다. Landau 등(1988)은 단어 의미 추론에서 형태와 같은 지각적 속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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