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습득의 책략과 발달 과정

이승복   /  충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근대의 언어 발달 연구는 통사 구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단어 조합의 규칙을 찾으려는 의도가 그 주된 연구 목표이었다. 나아가서 이러한 규칙을 습득하게 되는 내면적인 심리적 기제를 찾아내려는 것이 어린이 언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언어 발달의 과정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심리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인지적인 표상이 언어로 드러나는 방식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언어 습득의 책략(strategy)에 관한 연구이다. 
  어린이 말의 발달 규칙을 찾는 일은 밖으로 드러나는 언어 현상에서 그 밑바탕의 인지 기제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통사 구조에 대한 분석에서 그러한 구조가 생겨나게 되는 과정을 책략이라는 이름으로 종합하여 볼 수 있다. 책략이란 밑바탕의 인지 기제가 언어 현상으로 드러날 때 거치는 심적 조작(mental operation)이다. 어린이의 언어 습득 과정에 대한 책략 이론은 Bever(1970), Slobin(1973)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언어 습득의 전 과정에 대한 이론이 되지 못하고 일부 과정에 대한 이론으로 그치고 있다. Slobin은 전 세계의 여러 언어를 수집하여 그 습득 책략을 이론화하는 방대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자료가 방대한 만큼 깨끗하게 설명하는 데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그의 책략 이론은 문법적 형태소의 습득에 대한 조작 원리를 설명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이 글의 목표는 한국어의 언어 습득 과정을 소개하고 이를 책략으로 간추려 보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말에서의 책략 이론을 어린이 습득 자료를 자세히 분석하여 제시한 조명한(1982, 1985)의 책략 모형을 중심으로 개관한다. 그는 언어 발달 과정을 언어 이전의 시기부터 시작하여 복문을 구성해 내는 시기까지 살펴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단일 단어 시기부터 문법적 형태소의 습득 시기까지 보도록 하겠다. 언어 이전의 시기는 아직 언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략을 말하기 힘들며, 복문의 구성은 이미 너무 어른 말에 가까운 것이므로 어린이 말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으며, 그 구성 책략은 성인의 문법 이론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이의 초기 언어를 소통의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단일 단어 시기, 의미론적 의도가 표현되는 단어 조합 시기, 그리고 문법적 의도를 습득하는 시기의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이 세 단계에서 어린이가 습득하는 발달 과정이 질적으로 구분되는 만큼 그 책략을 따로 구분하여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해를 돕기 위한 어린이 언어의 실례는 이승복(1994)에서 인용할 것이다.



1. 단계 I:소통의 의도

  어린이가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소통을 위한 것이다. 그만큼 소통의 의도가 초기 언어습득의 기본 책략이 되는데, 이는 아직 언어 형태의 소통 방식이 생겨나기 이전에도 관찰된다(이승복, 1994). 어린이가 언어 형식의 표현을 시작하여, 한 단어로만 자신의 의도를 표현할 수 없는 단일 단어 시기의 언어 습득 책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책략 I. 새로운 정보를 선택하여 언어로 부호화하라

  여기서 새로운 정보라 함은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라는 말로 바꾸어도 될 것이다. 
  이러한 단어 선택 책략은 어린이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한 두 개 뿐인 가장 초기의 단일 단어 시기는 지나서 적어도 몇 개의 단어는 사용할 수 있는 시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어린이는 자신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인 단일 단어 표현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데, 선택하는 단일 단어는 그 당시 언어 상황에서 가장 분명하지 않은 단어이다. 아이가 엄마에게 물을 주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만일 엄마가 아이를 쳐다보지 않는다면, 주는 행위는 지금 분명히 행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 자신이라는 행위자도 분명하므로 가장 새로운 정보인 “엄마”를 말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엄마가 자신을 보고 있으면 엄마와 자신의 의미관계가 분명히 드러나 있으므로, 그 상황에서 가장 새롭고 중요한 정보인 “물”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략이 쓰이는 방식을 실제 관찰 예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예1. 

아이(1;3) 

엄마

마루에 있다가 엄마를 보고 가면서 
“어부우바” 포대기를 잡고는 “어바 어부우바” 
엄마에게 내밀며 “엄마 엄마” 


  “엄마가 어부바해 달라”는 요구 사항을 표현하는데, 엄마와 마주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엄마'보다는 더 새로운 정보인 ‘어부바’를 말하고, 이미 '어부바'를 말하고 난 상황에서는 엄마가 업어 달라는 의도를 확실히 소통하기 위해서 ‘엄마’를 말하는 것이다.

예2.
아이(1:6)

엄마

신문을 엄마에게 가져오며 
“이거 이거” 

엄마가 보니까 

“아빠 꺼다” 
신문을 보며 
“아빠 꺼야” 하며 놓고 가버림. 


  신문을 들고 가져 오면서 엄마의 주의를 끌기 위해 신문이라는 대상을 지칭하는 “이거”라는 말로 주의를 끌고 나서, 그 대상에 대해 “아빠 꺼야” 라는 언급을 한다. ‘이거 아빠 꺼야’ 라는 명제 개념을 상황에 맞도록 한 단어씩을 적절히 표현한 예라고 하겠다. 
  이러한 새로운 정보를 언어화하기라는 책략은 어린이의 어휘가 늘어나, 단일 단어 시기의 후기, 두 단어 조합으로의 과도기에 가면 더욱 잘 드러난다. 
  단일 단어로의 의미표현에 익숙해지면서, 어린이는 어휘의 수를 점차로 늘여 나간다. 예를 들면, 먹을 것을 요구하는 모든 상황에서 “맘마”라는 어휘 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어린이는 밥이든, 물이든 먹는 대상이나 먹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맘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구하는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 예컨대, “줘”를 말할 수 있으면 요구하는 대상과 그 행위를 구분하여 다른 단어로 표현해 내게 된다. 또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엄마’)과 받는 사람을 참조하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이 단어들을 적절한 의미 기능으로 좀더 분명히 표현하고자 하게 된다. 
  자신이 언어로 표현하려는 바를 분명하게 분화시켜 나가면서 동시에 상황의 특정한 측면을 분화하여 표현하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엄마에게 과자를 달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 “엄마”라고 불러 놓고 “까까”라고 잇대어 말한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TV를 켜 보려고 애를 쓰다가 잘 안 되니까 옆에 있던 아빠의 손을 TV 단추 위에 올려 놓으며, “아빠”라고 하는 예를 들 수 있다. ‘아빠가 TV를 켜 주세요’라는 의미로 “아빠”를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린이가 단어들의 의미기능, 즉 ‘행위자-행위’의 명제적 의미관계를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어린이는 이 명제에서의 ‘행위자’로서의 아빠를 말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어린이는 이렇게 익히기 시작한 언어의 명제적 의미관계를 점차 하나 이상의 단어 조합으로 표현해 내기 시작하는데, 이런 단어 조합의 시기가 되면 어떤 단어와 어떤 단어를 조합해 낼 것인가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새로운 정보의 표현이라는 의사 소통 책략을 넘어서는 또다른 언어 습득 책략이 요구된다.



2. 단계 II:의미론적 의도

  단일 단어 시기의 어린이는 한 번에 하나의 단어만을 말할 수 있었으므로,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정보인 새로운 정보를 언어로 부호화하고, 이를 언어적, 비언어적 맥락에서 주어지는 정보와 연결하여 자신의 소통 의도를 효율적으로 표현해 내는 책략을 사용하였다. 어린이의 언어 표현 능력이 늘어나면서 어린이는 두 단어를 조합하여 표현해 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두 개 단어를 조합해 낼 때는 새로운 정보 하나만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표상하고 있는 명제 관계를 제한된 조합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어린이는 이를 ‘의미관계의 어순 배열’이라는 책략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 말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어 조합 형식의 통사적 규칙을 찾아보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조합 규칙에 대한 탐구는 두 단어가 어떤 의미관계로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고, 이러한 의미관계를 분석하는데 가장 좋은 틀이 Fillmore(1968)의 격 문법(case grammer)이다. 격 문법의 틀로 어린이 말을 분석하여 집대성한 것이 Brown(1973)의 이정표적인 연구다. 이후 Slobin(1973, 1979)은 여러 언어에서 격 문법의 틀로 어린이 말을 분석하여, 어린이가 초기 단어 조합으로 표현하는 의미관계가 보편적인 것이어서, 세계의 어린이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언어를 습득한다고 주장하였다. 초기 단어 조합 방식은 인간의 선천적이고 보편적인 언어 능력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Brown(1973)은 초기 단어 조합의 의미관계 중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형식으로 다음 8가지를 들고 있다. 각 형식에 해당되는 예와 함께 정리해 본 것이 <표 1>이다. 


표 1. R. Brown이 제시한 2어 조합 문장의 의미관계

의미관계 예문*
  Agent and action(행위자-행위)   Bambi go
  Action and object(행위-대상)   Hit ball
  Agent and object(행위자-대상)   Mama bread
  Action and locative(행위-장소)   Sit here
  Entity and locative(실체-장소)   Lady home
  Possessor and possession(소유자-소유)   Mommy chair
  Entity and attributive(실체-수식)   Yellow block
  Demonstrative and entity(지시-실체)   There candy

*예문은 Brown(1973)과 Slobin(1979)에서 필자가 뽑은 것이다.                              


  이외에도 초기 2어 조합의 형태로 Nomination (Here truck), Recurrence (More noise), Nonexistence (Allgone egg)을 나타내는 조합을 들고 있지만,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2어 의미관계라고 보기는 힘들다. 
  조명한(1982)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는 어린이들의 언어 관찰 자료를 격 문법의 틀로 분석하여, 이러한 보편성을 확인하였다. 동시에 그는 기본적인 두 단어 조합의 의미론적 관계를 어순으로 배열하는 책략을 밝혀 내고자 하였다. 한국어 자료를 영어 자료와 비교하여 두 언어에 보편적인 의미관계가 무엇인지, 또 어순의 습득 책략은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한 것이다. 의미관계를 어순으로 배열한다는 것은 두 단어 조합으로 어린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론적인 의도를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한 전략이다. 
  한국어와 영어는 그 기본 어순에서 상당히 다르다. 영어는 어순으로 단어의 격(의미 기능)을 나타내는 방식을 채택하므로 상당히 어순이 고정적인데 비하여, 한국어는 단어의 어미에 붙는 격조사로 그 의미 기능을 드러낼 수 있으므로 어순이 자유롭다. 이러한 한국어의 특성은 이 시기의 의미관계에서 드러나는데, 어순이 상당히 고정되는 의미관계와 어순의 변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의미관계의 표현을 구분하여 볼 수 있다. 
  행위 참조의 표현이란 변화하는 사건에 대한 표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반면에 상태 참조의 표현은 비교적 정적인 상태에 대한 표현이다. 행위 참조의 표현에서는 행위의 인과관계와 그 방향이 표현된다. 상태 참조의 표현에서는 현 상황에서 현저한 정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가지 표현 방식의 심리적 과정이 다르다는 점은 동사에 내재한 원인성에 대한 인지심리학 연구에서도 확인된다(Brown & Fish, 1983; 윤훈희, 1984).
  어린이의 초기 단어 조합 방식을 정리해 보면 행위 참조의 표현과 상태 참조의 표현은 어순의 배열 책략에서 서로 다르다. 행위 참조의 표현은 상당히 고정된 어순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상태 참조의 표현의 경우에는 어순의 변동이 가능하다.
  조명한(1982)에 의거하여 이 두 가지 표현을 중심으로 이 시기의 단어 조합 방식의 특징과 습득 과정을 어린이 말의 예문과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2.1. 두 단어 조합의 행위 중심 표현

  언어적으로 표현되든 비언어적인 맥락으로 내포되어 있든 행위를 중심으로 어떤 변화하는 사건을 참조하는 두 단어 조합의 언어표현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1.1. 행위자-행위

아빠 어부바
엄마 맴매
해피 간다
아빠 줘

  행위자로 사용되는 어휘는 거의 생명체를 지칭하는 어휘이다. 하지만 행위자를 뜻하는 생명체 어휘 중에서도 말하는 자신에 대해서는 행위자로 언급하는 예가 드물다. 말하는 자기 자신은 이미 대화 상황에서 알려진 주어진 정보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2.1.2. 대상-행위

빵 줘
까까 줘
쉬 했다
엄마 우유 줘

  ‘대상’이라는 용어를 Brown(1973)은 “상태의 변화를 겪거나 단순히 행위의 작용을 받는 어떤 사람 또는 사물”이라고 그 개념을 정리하여 어린이 말에 적용하고 있다. 어린이의 감각과 동작의 정신적 체계는 행위 중심이므로 행위와의 관계를 표현할 때의 대상이라는 개념은 행위의 목적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대상-행위’의 어순은 기본적으로 우리말의 어순을 따르는 것이다. 영어를 획득하는 어린이의 자료에서는 같은 두 단어 조합의 의미관계가 ‘행위-대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어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언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어순을 바꾸어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린이 말에서 보면 이러한 기본적인 어순은 상당히 고정되어 지켜진다. 

2.1.3. 행위자-대상

엄마 밥
엄마 꼭지
아야 똥
아빠 밥

  자신이 아닌 다른 행위자의 행동을 서술하거나 요구하는 표현 방식으로 대상은 행위를 대표하는 표현 방식으로 사용된다. 대상은 대상 자체만으로서가 아니라 행위라는 관계에서 행위자와 함께 사용되는 것이다. 

2.1.4. 장소-행위

오토바이 타
바까 쪼쪼
빠방 가
배 타
여기 앉어

  어린이에게 공간 개념은 비교적 일찍 발달한다. 감각 운동기의 아이들에게 장소 개념은 대상 개념만큼 일찍 발달하는 인지이다. 장소 개념은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장소 개념은 행위, 또는 행위자와 함께 조합된다. 영어 자료에서는 ‘행위-장소’의 어순으로, 우리말에서는 ‘장소-행위’의 어순으로 표현되는데, 역시 어른 말의 어순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어순 역시 어린이의 두 단어 조합에서 상당히 고정되어 나타난다.

2.1.5. 행위자-장소

아빠 학교
아빠야 일루
아빠 빠방
아야 차
언니 이리와

  일반적으로 생명체인 행위자는 장소 앞에 고정된 어순으로 나오고, 무생물인 실체는 그 위치가 변동되어 쓰인다. ‘행위자-장소’의 조합은 행위자의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행위가 생략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 말의 두 단어 조합에서 행위를 참조하는 표현을 분석하여 보면 이상의 다섯 가지 의미관계 조합으로 요약된다. 이들 의미관계 조합에서는 상당히 고정된 어순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특징으로 보인다. 영어는 단어의 어순으로 의미기능을 표현하는 언어이므로 어린이 말의 조합도 고정된 어순이라는 점이 별로 놀라울 바 없으나, 우리말처럼 어순이 자유로운 언어에서도 어른 말과는 달리 상당히 고정된 어순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행위 중심의 초기 단어 조합은 그 의미관계를 어순으로 표현하는 책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섯 가지 의미관계 조합을 놓고 볼 때 생체 어휘인 행위자를 문장의 가장 앞에 말하고, 행위를 표현하는 어휘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 행위의 목적이나 행위가 이루어지는 위치를 표현하는 어휘와 가능한한 가까이 위치시킨다는 책략을 확인할 수 있다. 

2.2. 두 단어 조합의 상태 참조 표현

  개체 발생에 있어 어린이는 가장 기본적으로 사물과 사물의 상태를 분화한다(Werner & Kaplan, 1963). 사물에 대한 이름하기(naming)의 언어 발달이 단일 단어 시기에 먼저 이루어지고, Brown이 이야기하는 Nomination이라는 범주도 이에 해당하는 단어 조합일 것이다. 한편 사물의 상태에서 ‘하는 것(doing)’과 ‘속하는 것(belonging)’이 구별되고, 이것이 행위 참조의 표현과 상태 참조의 표현을 구분하여 표상하는 근거가 된다. 두 단어 조합의 의미관계에서 굳이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행위 참조의 표현과는 달리 상태 참조의 표현에서는 어순이 상당히 자유롭기 때문이다. 어순의 고정과 변동이라는 표현 방식의 차이는 곧 표상 방식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는 두 표현 방식에서 어린이가 서로 다른 단어 조합의 책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2.2.1. 장소-실체

샘에 물
바까 달
저기 새

  무생물인 실체의 장소에 대한 표현은 예에서 보듯이 그 어순이 고정되지 않고 변동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실체의 경우, 행위자와는 달리 행위가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사인 “있다”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후기에 이르게 되면 다음과 같이,

엄마 앞에
꽃에 물
아찌한테

  기능어인 장소격의 문법적 형태소가 사용되면서 어순에서는 한결 자유롭게 된다.

2.2.2. 소유자-소유

아빠 책
엄마 아빠 책
고모 꺼
내 꺼
엄마 신

  소유 관계의 표현은 어린이에게서 상당히 일찍부터 나타나고, 또 꽤 자주 사용된다. 어린이에게는 소유 의식이 상당히 강한 것 같다. ‘소유자-소유’의 2어 관계는 그것 자체가 명사구를 이루는 독특한 표현이 되어, 행위자나 실체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에 그대로 대입되어 초기의 세 마디 말로 확장된다. 

2.2.3. 실체-수식 또는 수식-실체

또 통
은냐 통
무서운 아찌
엄마 소
우리 언니야
엄마야 아퍼
주사 아야
이거 큰 거
고모 이뻐
물 줄줄

  앞에 든 다섯 개의 예는 실체를 먼저 말하고 그 실체를 수식하는 표현이며, 나중의 다섯 예는 수식어가 먼저 나온 두 단어 조합이다. 우리 말에서나 영어에서나 수식어는 한정사로 수식하는 대상 앞에 나오기도 하고 술어로 뒤에 나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수식어의 자유로운 어순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유자-소유’의 표현과 ‘수식-실체’의 표현은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중에 세 단어 이상의 언어 표현으로 확장되는 경우에도 ‘수식-실체’의 표현은 ‘소유자-소유’와 마찬가지 방식의 세 마디 말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수식어가 술어로 사용되는 ‘실체-수식’ 과는 구별되는 것 같다.

2.2.4. 지시하기-실체, 또는 동일성

이거 뭔데
요거 불
강냉이 이거

  어린이가 주의해 보고 있는 대상에 대해 어떤 이름으로 확인하는 기능이며, 어른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도 한다. 그 구조로 보아 ‘실체-수식’, 또는 ‘수식-실체’와 비슷하게 보인다.

2.3. 의미론적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 조합 책략

  어린이의 초기 단어 조합 방식을 정리해 보면 행위 참조의 표현과 상태 참조의 표현은 어순의 배열 책략에서 서로 다르다. 행위 참조의 표현은 상당히 고정된 어순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상태 참조의 표현의 경우에는 어순의 변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두 종류의 책략을 구분하여 정리한 것이 단계 II에서의 의미론적 의도에 대한 두 가지 책략이다.

책략 II 가. 의미관계를 어순으로 배열한다.
실행조작 1. 행위자를 표현의 앞에 놓아라.
실행조작 2. 행위를 되도록 목적에 가까이 놓아라.

책략 II 나. 기존 정보를 새로운 정보에서 분리시킨다.
실행조작. 새로운 정보를 집중적으로 처리하도록 그것을 어순에서 동사에 가까이 위치시켜라.

  두 가지 책략 중에서 ‘가’로 표시된 것이 행위 참조의 표현 방식에 관한 것이고, ‘나’는 상태 참조의 표현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책략으로 두 단어만을 가지고 가장 효율적으로 의미론적 의도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전보를 칠 때 가장 중요한 내용어만을 추려서 의사소통하는 방식과 같다. 따라서 전보식 문장(telegraphic speech)이라는 적절한 이름이 붙었다.
  두 단어 조합에서 보이는 이러한 어순 책략의 차이는 세 단어 이상의 단어 조합으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해 낼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통합된다.

2.4. 세 단어 이상의 단어 조합 표현

  두 단어 조합으로 말하기 시작한 후 2,3 개월이 지나면, 세 단어 조합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두 단어 시기에 어린이는 문장의 기본적인 의미관계를 깨닫게 되며, 좀더 표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의 단어를 더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끼게 된다. “엄마 물”이나 “엄마 줘”, 혹은 “물 줘”로 표현하던 것을 “엄마 물 줘”라고 좀더 완전한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하게 된다. ‘행위자-행위’나 ‘대상-행위’의 형식으로 표현하던 것을 그 어순을 그대로 지키면서 ‘행위자-대상-행위’로, ‘행위자-장소’나 ‘장소-행위’로 표현하던 것을 ‘행위자-장소-행위’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 세 살 정도만 되면 어른의 문장에 가까운 거의 완전한 형식을 갖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세 개 이상의 단어가 서로 독립적인 의미관계를 표현해 내는 어른의 언어와 좀더 가까운 문장 형식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어린이의 말을 보면 2어 관계의 어린이 말이 3어 내지 4어의 의미 관계로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예3.  
아이(1;11) 엄마
엄마가 “아빠 떽지
해” 
아빠에게 때리는 흉내 
“떽지 가 ! 가 !” 
 
  “누구 한테 그랬어?” 
 “응?”   
  “누구 한테 떽지 했어?” 
“아빠” 
“아빠 떽지 긌다” 
“누가 그랬어?” 
“내가 아빠 떽지 긌다”. 


  예3은 두 단어 조합에서 하나씩 확장해 나가 네 단어 조합으로 표현하게 되는 방식을 잘 드러내어 보여준다. “떽지 가!” 는 아빠에게 하는 두 단어 말이고, 엄마의 질문으로 ‘누구에게’ 라는 수여자의 개념을 확인하고 나서, 이 수여자를 부호화하여 “아빠 떽지 긌다”로 확장해 내고, 다시 엄마의 행위자에 대한 질문에 행위자까지 부호화하여 “내가 아빠 떽지 긌다” 라는 거의 완벽한 네 단어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때 쯤이면 어린이는 벌써 두 단어 조합에서 충분히 연습하여 온 단어들의 의미적 역할을 명제로 표상할 수 있고 이들을 적당히 연결만 한다면, 두 단어 조합이 쉽사리 세 단어, 네 단어 조합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단어 이상의 말이면,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들어도 소통에 별 손색이 없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문장을 이루는 것이다.

2.4.1. 행위 참조 표현의 확장 
  두 단어 조합에서 행위 참조의 표현은 행위자-행위, 대상-행위, 행위자-대상, 장소-행위, 행위자-장소의 구성으로 볼 수 있었고, 이들 표현은 상당히 고정된 어순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다섯 가지 조합은 행위자-행위라는 공통 요소와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의미관계, 그리고 장소에 대한 두 가지 의미관계로 묶인다. 곧 행위자-대상-행위의 형식에서 두 가지씩을 순서대로 조합한 형식과 행위자-장소-행위에서 두 가지씩을 순서대로 조합한 형식이다. 이 기본 어순이 선천적인 것이든 아니든 두 단어 조합에서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이 세 단어 조합의 순서를 익힌다. 이내 세 단어 조합으로 대상이나 장소에 대한 행위를 3어 관계로 표현하게 되는 기반을 닦아 놓은 셈이다.
  조명한(1982)은 기본적인 2어 관계에서 3어 관계로의 발달 형식을 어린이 말 관찰 자료의 예를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로 정리하였다.


표 2. 2어 관계가 3어 및 4어 관계로 확장된 구성

2어 관계 확장된 관계 사례의 보기
행위자-행위
대상-행위
행위자-대상
행위자-대상-행위* 아찌 흙 파
장소-행위
행위자-장소
행위자-장소-행위*
장소-대상-행위
아빠 학교 가
아빠 전화 하야?
공존자-행위 행위자-공존자-행위
공존자-대상-행위
공존자-장소-행위
엄마 야 같이 가
애기야 호미 찾자
아빠 요 가자
수여자-행위 행위자-수여자-대상
수여자-대상-행위*
행위자-수여자-대상-행위*
행위자-장소-대상-행위
엄마 아야 하나
엄마 물 주까?
엄마 아가 종이 줘
고모 요기 코피 놔

  

  여기서 *표를 붙인 의미 관계는 Brown(1973)이 관찰 보고한 관계와 일치한다. 이러한 3어 내지 4어 관계의 조합 방식이 우리말에서 뿐 아니라 영어에서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표에 제시되는 3어 이상의 관계 표현에서 보면, 2어 관계의 표현과는 달리 행위에 대한 표현이 거의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가 상당히 드문 편인 “행위자-수여자-대상” 관계의 표현을 제외하고는 행위에 대한 표현이 빠지는 예가 거의 없다. 두 단어 조합의 2어 관계에서는 그 맥락에 따라 어린이 말을 “풍부히 해석”하지 않으면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예컨대, “엄마 양말” 이라는 말이 ‘엄마가 양말을 신는다’는 ‘행위자-행위’의 관계인지, ‘엄마의 양말’이라는 소유 관계의 표현인지는 그 말이 나온 맥락을 고려하여야만 정확한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3어 이상의 표현에서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아마도 행위에 대한 표현, 즉 동사가 사용되면서부터 명사들의 의미관계가 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동사를 사용하는 세 단어 이상의 조합에서부터 어린이 말은 그 맥락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2.4.2. 상태 참조 표현의 확장
  우선 어린이 말의 예문부터 들어보기로 하자.

병 예쁜 거 없네
아빠 까만 빽

  의미관계로 말한다면 ‘실체-수식’이라고 보이는 형식에 실체에 해당되는 어휘를 다시 수식하여 늘인 것이다. /병 예쁜 거/ /없네/의 ‘실체-수식’ 의미관계 속에 /병/ /예쁜 거/라는 ‘실체-수식’이 안겨 든 구성이다. ‘아빠 까만 빽’은 /아빠/ /까만 빽/의 ‘소유자-소유’의 의미관계 속에 /까만/ /빽/이라는 ‘수식-실체’가 안겨 든 구성으로 된 문장이다.
  2어 조합에서 상태 참조 표현으로 분석되었던 소유자-소유, 실체-수식, 지시-실체의 의미관계는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의미관계 속에 안겨 드는 형식으로 3어 이상의 언어표현으로 확장되는 예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의 확장은 상태 참조의 표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빠 어디 갔어
아야 우유 줘
엄마 무릎 앉어
큰 거 가지려구
상도동 아파트 가요

  앞에 나온 세 예는 행위자(우리 아빠), 대상(아야 우유), 장소(엄마 무릎)를 소유하기 구성으로 확장한 예이며, 그 다음의 두 예는 대상(큰 거)이나 장소(상도동 아파트)를 수식하기 구성으로 확장한 예이다. 다섯 문장 모두가 전체적으로는 행위자-행위, 대상-행위, 장소-행위라는 행위 참조의 2어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면서, 한 요소를 상태 참조의 2어 관계로 확장한 것이다.
  3어 이상의 표현에서는 어순이 고정되는 행위 참조의 표현과 어순의 변동이 가능한 상태 참조의 표현이 따로 쓰이지 않고 함께 통합된다. 행위 참조의 어순을 지키면서 어순을 변동하여 새로운 정보를 집중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동사에 가까이 위치시키는 책략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어 이상의 표현은 이미 어른의 문장 형식에 가까운 말이다. 다시 말하면 맥락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주부-술부의 기본 문장 형식이 사용되면서 명사들의 의미관계가 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단어 이상의 조합에서부터 어린이 말은 그 맥락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로움을 더욱 확실히 해 주는 것이 바로 문법적 형태소, 즉 격조사나 동사 형태소의 사용이다. 



3. 단계 Ⅲ:문법적 의도:문법적 형태소의 습득

  초기 어린이 말의 특징은 전보식 문장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가 전보를 칠 때 압축하여 말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은 두 세 개의 내용어로 그 의미를 전달한다. 따라서 단어의 배열 순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차츰 어린이는 내용어의 배열 순서만으로는 부족한 의미의 전달을 더욱 확실하게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문법적 형태소라는 기능어를 습득하게 되는 시기에 도달한 것이다. 기본적인 의미 전달 체계는 이미 습득하였다 하더라도 좀더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문법적 장치를 습득하는 시기로 넘어간 것이다.
  거의 성인의 문장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 단어 이상의 언어 표현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전까지는 그 언어 상황에서 가장 정보적인 단어만을 추려 말하던 전보식 문장에서 벗어나 문장의 문법에 잘 들어맞는 언어의 형태소를 배우기 시작한다. 즉 과거나 미래형 보조 어간을 사용한다든지, 주격 조사를 붙이기 시작한다. 이들 문법적 형태소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바로 아이들이 언어의 문법적 범주를 분명히 깨닫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법적 형태소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를 매우 일관성있게, 또한 매우 적절하게 사용한다. 이때, 문법 규칙에 지나치게 얽매어져서 오히려 잘못된 표현을 하게 되는 수도 있다. 예컨대, 처음에는 불규칙 동사 go의 과거형인 went를 적절히 사용하다가, 과거형 규칙에 지나치게 얽매어서 goed라고 문법을 잘못 적용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문법 규칙의 과잉 일반화 현상을 우리말에서는 주격 조사의 쓰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4.

아이(1;11) 엄마

곰인형에게 잠옷을 덮어씌우고 웃으며
“낸내 낸내”

“누가 낸내해?”
“내가 낸내” “곰이 낸내하지”
“곰 낸내” “누가 낸내해?”
“곰가” “누가?”
“곰 낸내”


  예에서 보듯이 주어(행위자)를 나타내는 조사로 “가”가 사용된다는 규칙을 깨달은 아이들은 어떤 명사에 대해서든지 이 규칙을 일반화하여 사용하므로, 어른들 말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말을(예, “곰가 낸내”)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문법 규칙을 깨달은 아이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얼마나 일관성있게 지키려고 하는지는 어른이 잘못된 말을 고쳐 주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는 다음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5.

아이(2;1) 엄마
“나도는 똑똑”  아빠 “준규도 똑똑” 
“나도는 똑똑”  아빠 “아니야, 나는 똑똑” 
“나도는 똑똑” 
“나는 똑똑” 
(* 억양만 따라하고 말을 고치지 않는다.)


  이러한 과잉일반화 현상으로 미루어 보아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은 참으로 능동적이고 가설검증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는 자기가 알아낸 규칙, 곧 “행위자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가’라는 조사를 행위자 뒤에 덧붙인다”는 규칙을 자신이 하는 말에 사용하는데, 이에 익숙하게 될 때까지 충분히 연습을 하다가 이 규칙에서 자유로워질 만큼 되었으면 이제 새로운 규칙을 여기 덧붙여 어떤 경우에는 ‘가’를 붙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를 붙이는지를 스스로 익혀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적절한 조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예를 같은 아이가 반 년쯤 후에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6.

아이(2;8) 엄마
“내가 귀신이 올까봐 여기 엄마방에 왔어”  엄마 “귀신이 올까봐?” 
“응, 귀신이 올까봐 왔어”

엄마가 책을 읽듯이,
“준규가 넘어뜨린 토끼를 
엄마가 안아줬습니다” 

 “나, 나도 안아 줘” 

 

3.1. 격조사의 습득

  한국어의 격조사는 명사의 말미에서 그 명사가 하는 의미기능을 표시해 준다. 따라서 격조사를 적절히 사용하면 단어의 순서와는 관계없이 그 명사가 행위자를 나타내는 것인지, 행위의 목적이나 장소를 의미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조명한(1982)은 한국어를 획득하는 다섯 어린이의 언어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서 이 격조사들의 습득 순서를 살펴보고 격조사를 습득하게 하는 결정 요인을 논의하였다. 한국어 습득 어린이의 경우, 가장 먼저 사용하는 격조사는 공존격(도, 같이, 랑)이며, 그 다음이 장소격(에, 한테), 주격(가[이], 는), 목적격(을, 를), 도구격(로)의 순서로 습득한다. 
  격조사의 습득 연령은 1;9에서 2;5 사이에 시작하는데, 이는 영어와 비교하여 상당히 이른 연령이다(Brown의 자료에 의하면 영어에서는 2;8에서 2;11 정도이다). 이는 언어구조상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현상으로, 명사의 뒤에 자리하는 표지는 명사의 앞에 자리하는 표지보다 획득하기 쉽기 때문이다. 주의와 기억의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이는 단어와 표현의 초두나 중간보다 말미를 더욱 현저하게 부각시킨다(Slobin, 1979). 
  격조사를 습득하고 나면 어린이는 어순에서 자유로워진다. 문장의 표준 어순을 지키지 않고도 심리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정보를 앞세운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다음과 같이 어순에서 해방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엄마 빨리 감춰 이거
귤 가져갔어 상희
내가 할게 이거
내가 입혀줄게 엄마를


3.2. 동사 형태소의 습득

  동사의 형태소 중에서 가장 먼저 습득되는 것은 문장의 어미 형태이다. 상황에 따라서 ‘--야’, ‘--라’, ‘--자’와 같은 어미 형태를 사용할 수 있다. 그 다음, 동사의 형태소로 습득되는 것이 과거형(었)이며, 미래형(ㄹ)과 수동형(이, 히)은 주격 조사가 나타나고 난 다음 습득된다. 가장 나중에 나타나는 동사의 형태소에 속하는 것이 진행형(ㄴ, ㄴ다)이다. 이는 Brown이 관찰한 영어자료에서는 진행형 어미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영어에서는 다른 형태소와는 달리 진행형 어미가 가장 단순한 형태를 취하여 동사의 말미에 ing만 갖다 붙이면 된다. 반면에 우리말의 진행형인 ‘ㄴ’은 진행형 시제 이외에도 의문 종결 어미, 연결 어미, 주격이나 대조 조사 등의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그 의미 사용이 아주 복잡한 형태소이다. 이 때문에 한국어에서의 진행형 형태소는 가장 나중에 습득된다(조명한, 1982).

3.3. 문법적 형태소의 습득 책략

  Slobin(1979)는 여러 언어(14개 어족에서 40 여 가지 언어)에서의 어린이 언어 습득 자료를 분석하면서 문법 구성에 대한 조작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어에서 문법 표지의 습득 과정은 그의 조작 원리로 매우 적절하게 설명된다.

Slobin

A. 단어 말미에 주목하라.
B. 단어들 간의 관계를 부호화하는 언어적 요소가 있다.
C. 예외를 피하라.
D. 내면의 의미관계는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시되어야 한다.
E. 문법 표지는 의미론적 의미가 나타나도록 사용하여야 한다.

 
  Slobin의 책략은 모두 문법 표지의 습득을 기술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원리 A와 B는 문법 표지의 습득에 대한 지각적 책략이다. 특히 이것은 한국어에 잘 적용된다. 한국어의 거의 모든 문법적 형태소가 단어 어미, 연결 어미와 문장 어미이기 때문이다. C의 ‘예외를 피하라’는 하나의 규칙을 알고 나면 모든 경우에 이를 적용시키려 하는 과잉일반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나머지 D와 E는 문법적 형태소를 실제 언어에 드러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법적 형태소를 습득하기 위한 책략을 조명한의 책략 III으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책략 III. 의미관계에서 그것에 해당하는 문법 표지를 분명히 한다.
     실행조작. 단어와 표현의 말미에 주목하라.


4. 종합 논의

  촘스키의 변형 생성 문법은 ‘언어를 생성하는 내면화된 지식’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 때 심리학자들을 흥분시켰다. 그리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어린이 말의 발달 규칙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언어의 바탕은 인지다. 그러나 인지가 곧 언어는 아니다. 인지가 언어적 상징으로 표상화되려면 어떤 심적 조작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연구 접근이 바로 책략 이론이다. 책략은 지각과 기억의 과정이며 구조이다(조명한,1982). 이 글에서 우리는 어린이의 언어 발달 과정을 훑어 보면서, 어린이가 어떤 책략으로 언어 정보를 처리하고 산출하는지를 밝혀 보고자 시도하였다. 
  어린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어떤 의도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소통의 의도가 드러나는 단일 단어 시기의 책략은 어떤 단어를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이다. 한 번에 한 단어씩만을 말할 수 있던 단일 단어 시기를 지나 두 개의 단어 이상을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어린이는 자신의 의미론적 의도를 좀더 잘 전달하는 방식을 고려하게 된다. 전보식 문장이라고도 하는, 중요한 내용어만을 선택하여 말하는 단어 조합 시기의 습득 책략이란 그 단어들을 어떤 순서로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린이의 두 단어 조합 방식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책략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정리해 보았다. 의미론적 의도를 어순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어린이는 모국어의 문법 장치를 습득해 간다. 두 단어 조합 시기의 어린이 언어가 언어의 보편성을 잘 드러내 주는 반면에, 그 이후의 문법적 장치의 습득 시기에는 각 언어의 특수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모든 언어에 공통적인 습득 책략을 추려내기 힘들다. 우리는 Slobin의 다섯 가지 조작 원리를 요약하여, ‘단어와 표현의 말미에 주목하라’라는 조작 방식으로 문법적 표지를 분명히 하려는 어린이의 습득 책략을 설명하였다. 
  어린이의 언어 발달을 몇 개의 단어로 말하는가 하는 그 형식의 변화에서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형식의 변화는 밖으로 드러나는 어린이의 언어 능력을 표면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친다. 언어 형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내면적인 기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책략이란 하나 하나의 형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관계를 표면에 실현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언어 습득의 과정이라 본다면(Schlesinger, 1975) 어린이의 언어 발달은 의미 관계의 체제화를 배우는 것이다. 의미 관계는 본질적으로 기능의 성질이다.
  소통의 의도, 의미의 의도, 그리고 문법의 의도는 언어 기능의 변화이다. 책략은 이 기능의 변화를 규정하는 것이다. 각 단계에서 어린이가 언어를 표현하는 책략은 그 단계에서의 인지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 단계에서 충분히 습득하여 내면화된 책략은 다음 단계에서는 자동적으로 처리되고 어린이는 그 다음에 필요한 습득 책략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린이의 언어 지식으로 구조화되어가는 책략이 바로 어린이의 언어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참 고 문 헌

윤훈희(1984), “동사의 원인성이 문장의 읽기 속도와 대명사 파악에 미치는 효과”,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이승복(1994), 어린이를 위한 언어획득과 발달, 정민사.
조명한(1982), 한국 아동의 언어 획득 연구:책략 모형, 서울대학교 출판부.
조명한(1985), 언어심리학, 민음사.
Bever, T.G. (1970), "The cognitive basis for linguistic structures", In J.R. Hayes(Ed.), Cognition and the development of language. New York:Wiley.
Brown, R. (1973), A first language:The early stages. Cambridge, Mass.:Harvard University Press.
Brown, R & D. Fish (1983), "The psychological causality implicit in language", Cognition, 14, 237-273.
Fillmore, C.J. (1968), "The case for case", In E. Bach & R.T. Harms (Eds.), Universals of linguistic theory, New York:Holt.
Schlesinger, I.M. (1975), "Grammatical development-The first steps". In E.H. Lennenberg & E. Lennenberg (Eds.), Foundations of language development:a multidisciplinary approach (Vol. 1), New York:Academic Press.
Slobin, D.I. (1973), "Cognitive prerequisites for the acquisition of grammar", In C.A. Ferguson & D.I. Slobin (Eds.), Studies of child language development, New York:Holt.
Slobin, D.I. (1979), Psycholinguistics (2nd ed.). Glenview, Ill.:Scott.
Werner, H. & B. Kaplan (1963), Symbol formation:An organismic- developmental approach to language and the expression of thought, New York:Wi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