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敏洙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말의 어휘를 정리할 것인가 묻는다면 아마도 어휘 선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대부분 정책적 규제를 원치 않는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1936년 조선어학회의 「표준말 모음」으로 방언이나 와어(訛語)의 제한을 받아 왔고, 해방 후 1948년 문교부의 「우리말 도로찾기」를 비롯한 일제 잔재 일소와 국어순화의 차원에서 일본어와 외래어 및 한자어의 사용이 제약되어 왔다. 이런 어휘의 제한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특히 각종 교과서에서는 이런 제약이 하나의 규범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1. 일본 한자어의 정체
위에서 언급한 「우리말 도로찾기」는 문교부 편수국에서 1946년 6월에 일본말을 우리말로, 일어식 한자어를 우리식 한자어로 정화할 방침을 세우고 초안을 작성하여 국어정화위원회에서 토의하고, 1947년 2~10월에 다시 18명의 심사위원회에서 심사안을 만들어 발표, 또 수정, 1948년 1월에 전체 위원회에서 통과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938개의 일본어를 일소하기 위한 정화안인데, 그 한자어는 과연 다 일본어인지 중국의 「漢語大詞典」 13권(1990~93)을 근거로 하여 자세히 검토해 보려 한다.
1) 「우리말 도로찾기」(1948) 훈독어
일본어:明渡→내 주기, 編上靴→목다리 양화, 受付(口)→접수(처), 內譯→속가름, 裏書→뒷다짐, 追越→쫓넘다, 係→빋 등
한어(出典):色色(素問)→여러 가지, 上衣(南中紀聞)→웃매기, 土産(東南行七校書)→선물, 型(淮南子)→골, 小使(醒世恒言)→심부름꾼 등
동자이의(出典):打合(朱子語類:※融合)→의논, 賣渡(我昔五首效袁景文:※收錢渡人)→팔아 넘김, 切手(西遊記:※絶招)→우표 등
외래한어(*일어):赤字→결손, *入口→들목, 組→반, *組合→도중(都中), *但書→그렇지만, *立場→처지, *手續→절차, *取消→무름 등
2) 「도로찾기」(1948) 음독어
일본어:安價→헐값, 案出→생각해 내다, 案內→인도, 一旦→한번, 押收→몰수, 碍子→뚱딴지,看過→눈지내 보기, 還曆→환갑 등.
한어(出典):曖昧(釋海)→모호, 一應(淮南子)→대체, 一品(料理)(周禮)→단찬, 依賴(敦煌燮文滙錄)→부탁, 往往(史記)→이따금 등
동자이의(出典):大勢(山居賦 自注:※大槪)→여럿, 勘定(舊唐書:※核定, 校正)→셈, 看板(塔:※方言, 指招待服務)→보람판 등
외래한어(*일어):暗溝→은구, 圓周→돌이, *遠足→먼거님, 階段→층대, *觀点→보는 점, *氣分→심기, *景氣→세월, 下宿→사관 등
위의 검토에서 놀랄 것은 일본어라는 속단을 뒤엎고 음독어와 마찬가지로 훈독어에 전거가 뚜렷한 한어계 한자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한, 놀랄 것은 한어에 수용된 일어계 한자어가 의외로 많고, 그것이 거의 근대화에 관한 어휘일 것이라는 종래의 인식도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어에 대한 처리로 「漢語外來詞詞典」(1984)에서 중국측이 일본 한자어(日語的 漢語)를 외래어(*표)로 밝혀 놓은 것도 거리끼지 않고 수용한 것은 배경이 어떻든 우리 태도와 다르다고 하겠다.
국어 순화는 일본어 잔재의 일소를 통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키 위한 몸부림이다. 마치 임진왜란에 환도하자 만연된 왜어의 금지를 명한 것과 같은 시대적 과업이다. 따라서, 「우리말 도로찾기」는 광복 직후 긴급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고, 이것은 그 시기로 보아 끼친 영향도 매우 컸다. 당시 많은 사람은 민족적 자주성을 회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최초의 이 정부안을 믿고 추종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잘못 일본어로 선별된 그 한어는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가?
3) 「도로찾기」(1948)의 한어계 한자어
교단에서는 그 사이 왜색일소를 ‘애매’는 일본말이다, 우리말로 ‘모호’라고 하라는 식으로 목청을 높여 가르쳤고, 이런 신념은 확호히 자리잡아 갔다. 그러나 위의 전거와 같이 일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가르침이 거짓이었다는 자괴심으로 등에 흐르는 식은 땀을 느꼈다. 더욱 알고도 모를 일은 긴박한 시기에도 2년이나 걸린 최현배 국장을 비롯한 많은 위원의 참여가 허위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한자어에 그토록 소원했거나 무성의하게 아무렇게나 만들었다는 말인가?
생각컨대, 이런 한자어는 일찍부터 중국에서 전파되어 사용하다가 국어에서는 소원해지게 된 어휘일 것이다. 소원하다는 점에서 희구어(稀覯語)라고 하겠으나, 전거가 분명한 한어계 한자어를 엉뚱하게도 일어계로 오인하여 없애자는 과오를 범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위에 비추어, 일어계 한자어의 정리는 그 이론과 방법이 다 중요하다. 즉 그것은 첫째 어휘의 계보를 전거에 따라 옳게 선별할 것, 둘째 버려야 할 대상을 선명하게 할 것, 셋째 버릴 것은 규범적 대처로 명백하게 할 것 등이다.
2. 규제할 국어 한자어
현재 한자어에 대한 국어사전의 처리는 그 계보를 불문하고 규범적으로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 양상이다. 사전의 표제어에 대한 관련어로 어원적 원말(假家:② 가게), 동의어(加加阿樹:=카카오나무), 순화어(街角:길모퉁이), 유의어(佳客:佳賓) 등을 밝히고, 원말도 성구에서 ‘假家柱立春’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특히 권장하는 순화어는 대상의 기준이 혼란하고, 어려운 한자어를 순화한다는 원칙도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어 한자어에 대한 방만한 정책은 재고의 여지를 느끼게 한다.
오늘날 국어의 어휘는 대략 본래어 32%에 한자어 65%라고 한다. 어휘가 풍부하다는 영어의 14% 대 60%에 비하면 다 높은 비율이다. 그런데 영어의 라틴계 외래어는 규제하지 않지만, 국어에서는 역사적 오욕을 씻기 위하여 순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 대상은 일어계 한자어인데, 이와 무관한 한어계 한자어도 한자 폐지의 계략을 어렵다는 명목으로 덧붙이는 상황이다. 그러면 한자어의 정리는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어 ‘人’자를 대상으로 실상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4) 「漢語大詞典」(1990~93) 국어적 어휘
한자어:人力, 人士, 人才, 人口, 人山人海, 人之常情, 人夫, 人中, 人心, 人生, 人民, 人形, 人材, 人身, 人事, 人事不省, 人物, 人和, 人命 등
희구어:人丁, 人人, 人日, 人戶, 人主, 人地, 人臣, 人吏, 人我, 人言, 人君, 人妖, 人表, 人牧, 人定, 人鬼, 人後, 人風, 人馬, 人時, 人師 등
문(고)어:人上, 人王, 人元, 人木, 人危, 人手, 人瓜, 人公, 人氏, 人丹, 人火, 人功, 人市, 人匠, 人色, 人次, 人宇, 人兵, 人使, 人治 등
5) 「漢語大詞典」(1990~93) 외래적 어휘
한어:人大, 人大會堂, 人口弼, 人平, 人民公社, 人民幣, 人伕, 人伙, 人行道, 人均, 人芽, 人伴, 人味, 人保, 人們, 人堆, 人款, 人樣, 人潮, 人縫 등
일본어(*한어):*人人, 人力車, *人工, 人工呼吸, 人生觀, *人形, *人柄, 人格, *人員, *人氣, *人種, 人稱, *人質, 人選, 人證, *人類, 人權 등
외래번역어(*한어):人才內閣, 人之子, *人子, *人天, 人文主義, 人文科學, *人我, *人性, 人洋, 人格, 人道主義, 人頭稅, 人權 등
우선 한자어는 우리의 관점에서 국어적 어휘와 외래적 어휘로 구분된다. 이러한 인식은 그 계보의 전거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결정되지만, 국어적 어휘는 정리할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순화를 지양하고 자연도태에 맡길 것이다. 그리고 순화할 것은 일본어이나, 거기서도 한어계 한자어, 중국에서 수용한 외래한어, 귀화어와 근대용어 등은 원칙적으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한중 및 한일의 국제적 공통성을 잘 살려 보자는 전향적 시각이다.
6) 한어의 일어계 한자어
고유한어:1) 色色, 上衣, 土産, 型, 小使,(打合, 賣渡, 切手), 2) 曖昧, 一應, 一品, 依賴, 往往, (大勢, 勘定, 看板), 3) 出口, 出迎, 結婚 등
외래한어:1) 赤字, 入口, 組, 組合, 但書, 立場, 手續, 取消, 2) 暗溝, 圓周, (遠足), 階段, 觀點, 氣分, 景氣, 下宿, 5) 人力車, 人工, (人柄) 등
7) 귀화한 일어계 한자어
귀화어:1) 明渡,(受付, 口), 內譯, 組立, 小賣, 差出, 殘高, 品切, 2) (安價), 案出, (案內), 一旦, 看過, 還歷, 元利, 寓話, 具申, 罫紙, 化粧 등
근대용어:1) 赤字, 鑄型, 係,(書留), (貸切, 車), 株, 株式, 假刷, 假縫, 菊版, 2) 暗溝, 圓周, 押收, 碍子, 下宿, 回覽, 決裁, 缺席, 現金 등
8) 일어계 한자어의 대체어(요표준어화)
6) 打合→議論, 協議, 相議, 切手→(표), 郵票, 大勢→(여럿), 多數, 勘定→(셈), 計算, 計定, 遠足→(먼거님), 消風, 人柄→品格, 人品 등
7) 受付(口)→接受(處), 安價→(헐값), 低價, 案內→(인도, 알림), 引導, 書留→(등기, 올림), 登記, 貸切(車)→(독세, 一차, 독차), 專貰(車) 등
9) 대용자의 환원
일본:決起→蹶起, 廣報→弘報, 死體→屍體, 先端→尖端, 雙書→叢書, 手帳→手帖, 放棄→抛棄, 了解→諒解, 總合→綜合, 包帶→繃帶
중국:确認→確認, 干材→乾材, 几何→幾何, 斗爭→鬪爭, 胜利→勝利, 危机→危機, 征兆→徵兆, 丑聞→醜聞, 叶書→葉書, 吃煙→喫煙 등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국어 순화는 훨씬 산뜻해질 것이다. 즉 대체할 일어계 한자어는 한어와의 동자이의어, 일어계 외래한어, 귀화어, 근대용어 등을 대상으로 위 8)과 같이 다시 선별되고, 그 대체어는 8)의 괄호 한글과 같은 한자 폐지의 의도를 분리하여 가장 적합한 어휘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반드시 표준어 사정으로 정리하고, 대상은 비표준어로 규제할 것이다. 물론 개별적 사정에서 친숙한 말(매각, 간판 등), 한어식 조어(환력, 결석 등) 등은 선호할 요건이다.
요컨대, 한자어의 순화를 첫째 그 대상을 축소하고 구체화하여 명시하며, 둘째 순화어와 대상어는 표준어와 비표준어의 관계로 규범화하여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에서는 먼저 구체적인 규정을 작성하되, 사정의 기준을 선명하게 규칙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사정의 결과는 「표준어 규정」의 복수 표준어에 의거한 처리도 생각할 수 있다. 종당에는 남북의 언어통일과 관련하여 이런 복수 표준어가 더욱 절실해지겠는데, 어휘는 원래 주기적인 실태조사를 통하여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 한자어 순화의 전환
일제 잔재의 일소를 목적한 국어순화는 시작한 지 반 세기가 지났다. 이제 50년의 경과를 종합하고, 새로운 전환에 대처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국어순화의 규범화에 의한 발전적 종결을 그 전환의 한 방안으로 제기해 보았으나, 이 방안은 비약할 21세기 국어정책의 한 대책일 것으로 기대된다. 조국 통일의 일환으로 남측의 순화어와 북측의 다듬은 말을 통합하는 문제가 현실적 과제로 크게 부각되겠고, 남북의 언어는 당분간 복수로 설정하는 방안으로 절충하는 것이 불가피하겠기 때문이다.
비약할 21세기 국어정책이라면, 누구도 선뜻 나서서 말하기 어렵겠으나, 다만 한자어의 국제화는 부상될 것으로 보인다. 즉 동양권의 단합과 함께 미구에 한자어의 국제어 확대 및 국별어(國別語)의 축소로 지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흔히 미래학자가 말하는 21세기의 동양시대를 의식한 것은 아니며, 필연적인 블록경제의 성장에 수반한 추세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화가 비록 논리에 치우친 추상이라도 예측 가능한 시대적 이슈라면 음미할 가치를 인정하고 싶다.(1997. 2. 23)
참 고 문 헌
조선어학회(1936. 10),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서울:조선어학회.
문교부(1948. 6), 「우리말 도로찾기」, 서울: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劉正埮 외3(1984. 12), 「漢語外來詞詞典」, 上海:上海辭書出版社.
編輯委員會(1990~93), 「漢語大詞典」 13권, 上海:漢語大詞典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