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외래어 표기법】

外國語를 歸化시켜 국어다운 外來語로!
―現地原音式/音素對應式은 言語學的 沒常識―

兪萬根 /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실마리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이번에 다시 한 번 논평하는 것이 나로서는 아주 쉬운 일이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나는 외래어 문제에 줄곧 관심을 가지고 현행 ‘외국어’ 표기법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번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 글을 쓰려고 하니 그 동안 이미 같은 소리를 하도 많이 되풀이해서 새로운 주장을 추가하기도 어렵고, 혹시 같은 주장이라도 더 나은 표현을 써서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쉽지 않아, 고민 속에 한 동안 起筆이 지연되었다. 결국 이 글은 끝머리 <참고문헌>에 나오는 拙稿 ‘外來語와 外國語 差異를 알자’(유만근 1992) 또는 ‘東京은 동경이요, 北京은 북경이로다’(유만근 1996a) 등, 내가 그 동안 맨날 하던 같은 소리에 고작 한두 가지 새로운 제안을 보탠 것에 불과하니 독자들께서는 그리 아시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1. 表記 以前 問題

  우리 겨레의 기구한 역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나라, 우리 국어보다 외국, 외국어를 마음 속 깊은 데서 더 존중하도록 몰아쳐 왔다. 아주 먼 옛날은 그만 두고 19세기부터 지금까지 200년 미만 기간만 보아도, 우리말보다는 漢文을, 우리말보다는 日本말을, 우리말보다는 英語를 잘 해야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어 온 것이다. 지금도 가령 고관이나 장군이나 대학 교수나 재벌회사 직원이 되는데 국어보다 외국어, 특히 영어를 더 잘 해야 훨씬 더 유리하니 이런 형편에 영어 발음보다 제 나라 표준어 발음을 제대로 먼저 배워야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이런 형편을 너무나 잘 아는 ‘엄마들’이 아이들 국어는 안중에 없고 早期 英語 敎育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을 ‘엄마들’ 잘못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조기 영어 교육은 實效없이 국어 속에 공연히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폐단만 크게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나라말은 나라사람들의 넋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언어 생활 속에서 오직 ‘외래어’ 부문에서만 자주 독립 국민의 어엿한 모습이 나타날 리가 없다. 안 써도 될 외국어를 공연히 남용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가령 날마다 신문에 나는 텔레비전/테레비 프로에 나타나는 외래어/외국어만 보아도(1996. 10. 31. 하루 例로) 다음과 같다.
  뉴스네트워크, 뉴스라인, 뉴스비전 (이상 KBS);
  굿모닝 코리아, 뉴스센터, 뉴스브리핑, 다큐스페셜 (이상 MBC);
  모닝와이드, 뉴스퍼레이드, 폭소 하이스쿨, 나이트라인 (이상 SBS);
  타이틀 17, 다이렉트히트, m.net투데이, 듀얼, 에어헤드, 러브어페어, 패션판타지아, 월드컬렉션, I♡다이어트, 포엠콘서트, 오픈스튜디오, 굿모닝 하이쇼핑, 패션 트렌드, 패션코디네이션 (이상 여러 유선방송)
  1996년 10월 7일부터 13일까지 1주일간 딴 사람들을 통하여 유선방송 외국어 제호 프로그람을 조사한 것을 훑어보면, 본래어(고유어)나 漢字語에 외래어/외국어를 섞어 만든 혼성어 제호는 거진 다 제외하고도 순전한 외국어 제호가 무려 50가지나 된다. 그것을 방송국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유선방송국  프로그람 외국어 제호
  연합TV뉴스   코리아 리포트 뉴스메모 YTN스페셜 
  월드뉴스매거진  YTN프라임 뉴스  월드 24
  토픽월드  네트워크
  매일경제TV   MBN쇼핑가이드 TV컨설팅  오토플라자
  ABN퓨처파일  코리아 비지니스 투데이
  ABN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Q채널   뮤직다큐 스페셜 노바 우먼캠퍼스
  그레이트 헌터  캅스
  센추리TV   워킹우먼  에퀴녹스 시리즈  아트매거진
  스미소니언 월드  CTN 다큐매거진 GASLIGHT 클럽
  리차드시몬스의 슬림쿠킹
  두산수퍼네트워크   케이블 스쿨 하이 잉글리쉬 하우 두 유 두?
  마이TV    슈퍼 스포츠 Follies  잉글리쉬 hop  패밀리앨범 USA
  월드넷 리스닝  마이컴 마이넷  미들스쿨 잉글리쉬
  다솜방송   어메리컨 잉글리쉬  TALK TIP'S  리스닝 스페셜
  포커스 토익  테마토크 WHAT IS UP?
  글로벌 비지니스 잉글리쉬  어메리칸 스트리트 토크
  어린이TV    잉글리쉬 FUN FUN
  평화방송  
  불교TV   32 스페셜
  기독교TV   KCTS 하이라이트 아가페 스튜디오  굿뉴스 잉글리쉬
  KCTS 뉴스와이드  크리스천 콘서트

  이런 방송 프로 편성자들에게 쓸개가 있느냐고 힐문할 분이 많겠지만 그들은 시청자 취향에 영합하느라고 그런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
  외국어를 국어에 무제한으로 그냥 섞어 쓰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지만 그것은 표기 以前 문제이므로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2. 現地 原音 表記의 問題點

  우리는 우리 나라 地名도 현지 원음을 못 살리고 ‘한밭’을 ‘대전(大田)’으로, ‘무너미’를 ‘수유리(水踰里)’로, ‘너더리’를 ‘판교(板橋)’로 번역해서 漢字音을 쓰는 형편에 너무 엉뚱하게도 남의 나라 현지 원음을 살린다고 ‘동경’을 ‘도쿄’로, ‘이등박문’을 ‘이토히로부미’로, ‘일본경제’신문을 ‘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고 앵무새처럼 지껄여야 하다니 어이없고 창피한 노릇이다. 일본 사람들조차 한국말 할 때는 동경을 [동경]이라 하지, [도쿄]라 하지 않는다. 서울 시청 뒤 東京銀行 서울지점 한글 간판이 수십 년 전 개점 이래 언제나 번듯하게 ‘동경은행’이다. 1988년 6월 7일 조선일보에 서울-동경을 왕래하는 일본 全日空(ANA) 비행편 광고가 실렸는데 거기에도 주먹만한 글씨로 ‘서울-동경’이라 했다. 그런데 그 후 달포쯤 지나 같은 신문에 大韓航空이 서울-동경 간 비행편 광고를 낸 것을 보면 더 큰 글자로 ‘서울-도꾜’라 적었다. 글쎄, 일본 사람도 동경을 ‘동경’이라는데 한국 사람이 ‘도꾜/도쿄’라 하니 이만저만 꼴불견이 아니다. 최근 1996년 10월 25일 나는 서울大에서 열린 제1회 서울 국제 음성학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한국어에 능한 일본 동경외국어대학 조교수(겸 서울대 특별연구원) 野間秀樹 씨와 인사하고 그의 명함을 받았다. 그 명함 한 면은 신기하게도 에스뻬란또(Esperanto)로 적혀 있고 딴 면은 漢字와 한글로 쓰여 있는데 주소에 ‘동경외대 연구실: 日本 114 東京都 北區…’ 그리고 ‘동경 집주소: 日本 114 東京都 北區…’로 되어 있다. 한글로 줄줄이 ‘동경’, ‘동경’인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이제부터라도 제발 ‘동경’이나 ‘일본경제신문’ 대신 ‘도쿄’나 ‘니혼게이자이신문’ 좀 그만 쓰기 바란다. 국어 속 외국漢字音 사용은 정신 빠진 앵무새 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과거에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에 한국인은 일본말에 친숙하다는 것을 ‘제 밑 들어 남 보이기’식으로 널리 광고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이것은 나라, 겨레 망신감이다.
  그러면 우리 나라에서 옛날부터 ‘동경·이등박문…’하던 것을 언제, 어떤 경위로 ‘도쿄, 이토히로부미…’식 일본어 발음으로 바꿨는지 그 기막힌 내력이나 알고들 그렇게 쓰는가? 우리가 세상에 다시 없는 현지 원음 표기주의를 옳은 것으로 잘못 알게 된 것은 1939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준비를 하면서 조선인을 한껏 억누르며 조선을 日本化하려고 최후 발악적 억지를 쓸 때 조선총독부가 당시 경성방송국 조선어방송에 대해 일방적으로(조선 현지 원음은 일본말에 섞지 않으면서) 일본 고유 명사는 일본 현지음으로 읽으라고 어느 날 느닷없이 강제 명령을 내리고1) 또 한편으로는 학교 교육을 통해 마땅히 그래야 옳은 듯이 잘못 가르쳐 놓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 교육 영향은 크고 끈질긴 것이다. 그 교육을 받고 자라 일찌기 세뇌된 우리 나라 60대 이상 노인들은 99% 이상이 아직도 일본 현지음 사용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차용 원리를 벗어난 것이며 한글 표음력을 악용하는 언어학적 넌센스일 뿐이다. 그리고 백 걸음 양보해도, 과거 식민지 시대에 일본말을 배워(중국 현지음은 모르고) 일본 현지음을 아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드러내려 하는가? 우리는 하루 바삐 불합리하고 굴욕적인 조선총독부 강제명령 ‘현지 원음’식에서 벗어나, 어느 나라나 자국어가 된 외래어를 쓰는 보편적 언어학 상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日本漢字音이나 中國漢字音을 앵무새처럼 지껄이자면 우선 발음하기 불편하고 기억하기 어려운 데에다가, 그런다고 남의 칭찬을 받기는커녕, 우리가 한글 표음력을 악용하여 주책없이 유난스러운 짓을 한다고 국제적 조소를 당할 뿐 그 밖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다.
  현지 원음 표기법이 결코 이 세상 보편적 표기법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 英語, 佛語에서 ‘버마’를 어떻게 표기하는지 조사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버마’를 조선조 시대에 ‘면전(緬甸)’이라 했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버마’라 했는데 지금은 言必稱 ‘현지 원음’을 외치며 ‘미얀마’라 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선진 문명어 英語, 佛語에서는 결코 이런 ‘남따리’ 變改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고려→조선→한국’이라는 이름 변천과 전혀 상관없이 우리 나라가 언제나 영어로는 Korea/Corea요, 불어로는 Corée이듯이, ‘버마’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어로는 Burma요, 불어로는 Birmanie인 것이다. 서울 세종로에서 제일 큰 서점 洋書部에 지금 영어로 된 최신 세계지도책(Atlas)이 열 가지쯤 들어와 팔리고 있는데 어디에도 ‘미얀마’는 없고 모두 Burma라 표기되어 있다. 영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1992년에 初版이 나온 최신 佛語 세계지도책 Larousse ATLAS MONDIAL에도 ‘버마’는 옛날처럼 Birmanie로 되어 있고, 최신 이태리 학교용 지리부도 ATLANTE GEOGRAFICO(S.E.I./Graffito 1994년 版)에도 ‘버마’는 옛날처럼 Birmania로 되어 있다.
  현지 원음주의 표기라는 것은 지구상에서 오직 朝鮮總督府 지배 아래 있던 남한·북한 두 군데 사람들만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력이 창피하고 실로 보기 딱한 허망한 꿈이다. 朝鮮總督府가 우리 땅에서 쫓겨난 지 이미 50년이 넘었고, 朝鮮總督府 작품‘仁旺山’표기도 늦게나마 두어 해 전에 폐기되어 ‘仁王山’이 復元되었고, 단단하기 천 년 가고도 남을 그 총독부 건물조차 마침내 1996년 11월에 말끔히 헐어 버렸는데, 우리가 그 朝鮮總督府 1939년 망발 명령 現地 原音 表記法은 도대체 언제까지 받들어 모실 작정인가?
  

3. 音素對應式 表記法의 問題點

  우리 나라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은 전부터 이름만 그렇지, 실상은 결코 ‘외래어’ 표기법이 아니라 한글을 발음 기호로 삼고 ‘외국어’ 자체를 표기하는 법이다. 그런 표기는 다만 言衆이 아직 모르는 新入 외래어 原料用일 뿐, 결코 實用 외래어 製品이 아니다(그 原料를 製品으로 만드는 언어학적 처리과정/製造 工法은 불란서 한림원 방식 등 각국 외래어 수용 방식을 참고할 것이다. 유만근 1980a 참조.). 그 음소대응식 표기법은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borrowing이나 loan-word 어느 개념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恣意的 음성 기호 체계’ (a system of arbitrary vocal symbols)라는 言語 定義에까지 도전하는 無謀한 표기법이다.
  이를테면 1986년 1월 7일 문교부 고시 제85-11호 외래어 표기법 기본 원칙에도 “외래어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하는 음운학 상식에 안 맞는 규정이 있는데 이것은 국어와 딴 언어, 즉 두 언어 간 음성 대비 관계를 마치 한 언어 내부에서 음소와 변이음 관계인 듯 착각하지 않았다면 참으로 이상한 규정이고 근본적으로 잘못된 규정이다. 아니, 미국인들이 ‘외래어’ 표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학을 연구하기 위해 ‘외국어’ 표기를 표방하고 만든 한국어 표기용 M-R체계에서조차, /ㄱ, ㄷ, ㅂ/을 그들 귀에 들리는 인상에 따라 각각 k/g, t/d, p/b처럼 두 글자로 대응시키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결코 미국학이나 외국학을 할 목적으로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 국어에 섞어 쓰자고 고안한 외래어 표기에서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 인상을 무시하고 1 : 1 음소대응 방식을 생각했다니 자기 무시·남 본위 태도가 지나쳤다고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어이없는 규정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말처럼 된소리와 거센 소리를 꼭 구별해야 하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쪽 언어를 완전히 무시했을 뿐 아니라 거센 소리가 없다시피한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로만스 諸語(라틴어에서 갈라져 내려온 말) 또는 희랍어, 러시아어, 일본어 소리를 공연히 거센 소리 투성이로 망쳐 놓게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거센 소리가 많은 언어로는 내쉬는 숨을 허비하는 바람에 노랫소리를 망쳐 좀 더 아름다운 오페라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소리가 모두 한 음소로 묶이느냐, 두 음소로 나뉘느냐, 세 음소나 그 이상으로 갈리느냐 하는 문제는 언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래서 한 나라 말소리가 딴 나라 말 속으로 들어갈 때 두 언어 간에 1 : 1 음소대응이 되지 않고 보통 한 음소가 둘 이상으로 나뉘기도 하고 두 음소가 하나로 묶이기도 한다. 스페인 말 마찰음 /ˣ/가 佛語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무려 네 가지로 갈라지기도 했다.
  

/x/ 

┌  ʒ - jonquille(junquilla)
├  ʃ - Quichotte(Quixote)
├  k - Kérès(Jerez)
└  R - Rota(Jota)
(Ewert 1969: 303)

  이런 사실을 막무가내 외면하고 우리 나라 일부 답답한 어학자들이 명색 외래어 표기에 1 : 1 음소대응식을 고집해서 표기 원칙을 세웠으니 거기에 따라 적은 외래어 표기 상당수는 보통 사람들이 납득·승복하기 어려운 이상한 소리를 적어 놓게 된 것이다. 가령 ‘쏘세지’나 ‘티켓’같은 것을 ‘소시지’나 ‘티킷’으로 표기하라 하니 이 때문에 소리감각이 있는 일반인들한테 학자라는 사람들이 오죽 우습고 한심하게 보이겠는가?
  

4. 올바른 外來語 受容方式 摸索

  올바른 외래어 수용방식은 외국어 음소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단어별로 외국어 발음이 우리한테 들리는 인상을 한글로 적어야 되는 것이다. 굳이 외국어 음소를 따질 경우에는 외국어 한 음소에 우리말 음소 둘이나 셋을 대응시키는 것이 가능한 (1:1, 1:2 또는 1:3……) 대응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외국어 음소 /p/는 ㅂ, ㅃ, ㅍ 소리; /t/는 ㄷ, ㄸ, ㅌ, ㅊ 소리; /k/는 ㄱ, ㄲ, ㅋ 소리로 단어에 따라 어느 것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대응표는 연역적(演繹的, deductive)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귀납적(歸納的, inductive)으로 작성되는 것이다. 죽은 듯 경직된 고정불변표가 아니라 言衆의 산 언어(living language) 생명 현상을 관찰하여 적어 넣는 언어 生動變容 기록표다. 이런 순리적, 과학적 방식으로, 가령 영어 모음 12개 국어화 실태를 관찰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단순모음 12개만 예시했지만 이중모음이나 자음도 같은 식으로 ‘하나에 여럿’(1 : 多衆) 대응표를 만들게 된다.
  
영어 모음 국어화 예 참 고
i:   이:seal-씰
  에:(英語以前) Mekong-메콩,
   Egypt - 에집트(애귑또스),
   metre-메타, penis-페니스
영어모음 /i:/는 소리 자체만 생각하면 우리말 ‘이’에 대응시키는 것으로 족하지만 英語以前 원음을 생각하면 [에]로 적어야 할 경우가 많다.
ˡ   이:(강세 있을 때나 철자가 i, y, ee일 때)
   Billy-빌리, centi-센치, coffee-커피
  에:(기타 강세 없을 때)
   cabinet-캐비넷, image-이메지,
   Kennedy-케네디, ticket-티켓
   orchestra-오케스트라,
   sausage-쏘세지
영어 /ɪ/는 우리말 ‘이’와 ‘에’ 중간 소리인데 강세가 없을 때에는 開口度가 더 커져서 ‘에’에 가깝다.
e   에:pen 펜 영어 /e/는 ‘에’와 ‘애’ 중간 소리지만 관례적으로 ‘에’로 적어 왔다.
æ   아:accent-악센트, Alaska-알라스카,
   alkali-알카리, Canada-카나다, Atlanta-아틀란타
  애:family-홰미리, snack-스낵
/æ/는 [애]와 [아] 중간 소리인데, Paris, ballet, Kang(姜, 康), Canada에서 보듯이 어원적으로 ‘아’에 가까운 것이 대부분이다.
ɑ:   아:car-카 /ɑ:/는 우리말 ‘아’보다 입을 더 크게 벌리고 혀 뒤에서 내는 소리다.
ɒ   오:boxing-복싱, Pop-eye-뽀빠이, robot-로봇
  아:box-박스
  어:coffee-커피, nonsense-넌센스
/ɒ/는 입을 거진 /ɑ/만큼 크게 벌리고 입술을 둥글게 하여 내는 소리인데 ‘오’는 그보다 입술을 훨씬 좁히고 내기 때문에 이 소리와 많이 다르다.
ɔ:   오:ball-뽈
  아:Marlborough-말보로, Nepal-네팔
/ɔ:/는 ‘오’보다 입을 조금 더 벌리는 것이지만 ‘오’로 적는다.
Ʊ    우:book-북
  오:hook-호꾸
/ʊ/는 ‘오’와 ‘우’ 중간 소리이므로‘우’ 보다 입을 더 크게 벌려야 되는 것인데 한글로 적기가 마땅치 않다. 미국영어로는 원순성이 풀려 ‘으’ 비슷하게 된다. ‘외래어’ 아닌 ‘외국어’(영어)발음 구별 표기용으로 여기에 ‘으’를 쓰면 pull-플, pool-풀, wood-우으드, woed-우우드…처럼 구별된다.
u:   우:pool-풀  
ʌ   아:buckle-빠클, butter-빠다, cut-캇
  어:bus-뻐스, gum-껌, London-런던
  오:(英語以前) compass-콤파스,  sponge-스폰지
/ʌ/는 BBC영어(RP)로 ‘아’에 가깝지만 미국 영어로는 ‘어’에 가까우므로 言衆한테 익은 대로 단어별로 ‘아’나 ‘어’로 판정해서 적으면 된다. 다만 英語以前 유롭 대륙 어형을 적을 때는 여기 보인 예처럼 ‘오’가 많다. copo (cup)-고뿌, pompe(pump)-뽐뿌, tonne(ton) -톤 등 참고할 것.
ɜ:   어:journal-저늘 /ɜ:/는 중설모음이고 서울말/표준말 ‘어1’(반개모음 ɒ)와 ‘어2’(반폐모음 ɤ)는 둘 다 후설모음이므로 셋이 각각 다른 소리지만 보통 /어/로 적으며, 그것을 ‘아’로 적으면 일본식으로 들린다.
ə   어:maker-메이커
  아:apartment-아파트
  오:Europe-유롭, melody-멜로디, 
   harmony-하모니, lemon-레몬
  으:channel-채늘, journal-저늘, 
   tunnel-터늘,(de Gaulle-드골)
  에:item-아이템(Goethe 괴테)
특별히 긴 설명이 필요하므로 항목을 따로 세우고 논하기로 한다.
  

    영어 쭉정모음 /ə/의 變動自在性 

/ə/는 영어 음성학/음운학 전문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가장 잘못 처리하기 쉬운 소리다. 이것은 이른바 ‘쭉정모음’(schwa)인데 일정한 음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글로 무엇이라 하나로 못박지 말고 철자를 참고하면서 신축성 있게 단어별로 처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어 /ə/는 그 소속 음절이 강세 그늘에서 약세를 유지할 때에만 존재하다가 그 소속 단어에 접사(affix) 등 딴 음절이 첨삭되거나 딴 나라 말로 넘어가거나 하여 약세를 면하면 그 자리에 알맹이 모음(철자 본음)이 자동 소생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 쭉정모음 [ə]는 약한 음절에서 흐릿하게 가까스로 드러나는 아주 짧은 소리다. 따라서 영어식 강세가 없는 언어에는 엄밀히 말하면 그 소리에 꼭 맞는 소리가 없다. 가령 희랍어 ‘드라마’(drama)에 모음 [a]가 두 개 있지만 이 말이 영어화하면 어느 한 음절에 반드시 강세가 있어야 하므로 그늘진 나머지 딴 음절 모음은 필연적으로 쭉정이 [ə]가 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명사 drama [drɑ:mə]에서는 둘째 음절에 쭉정모음이 나타나고 강세 위치가 달라진 형용사 drama- tic[drə̍mætɪk]에서는 첫 음절이 강세 그늘에 들어 쭉정모음을 띠게 된다. 영어 ‘Europe’의 경우 첫 음절에 강세가 있어 둘째 음절 o字가 불가불 쭉정모음으로 발음될 수밖에 없지만 독어·불어·스페인어·이태리어·한국어 등 어느 언어에도 영어식 강세가 없어 그 o字가 쭉정모음으로 약화되지 않고 제 음가대로 발음된다. 따라서 ‘유롭’을 우리말에서까지 영어 강세 그늘 속 쭉정모음식으로 ‘유어럽/유럽’이라 하는 것은, 마치 멀쩡한 사람이 불구자를 본으로 알고 흉내내는 것과 같이 효빈적(效顰的)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말 ‘쌍가마’를 영어에 넣으면 첫 음절에 강세를 받아 둘째, 셋째 음절 모음은 쭉정이로 약화해서 [sæŋgəmə] 쯤 되는데 ‘유롭’을 ‘유럽/유어럽’이라 하는 것은 마치 ‘쌍가마’를 우리말 속에서 강세도 없이 ‘쌩거머’라 하는 것과 같다. 또는 ‘코리아’(Korea /Corea)나 ‘멜로디’(melody)를 영어 틀에 넣어 각각 ‘커리아’나 ‘멜러디’라 하는 것과 같다. [유롭]은 원순 prosody를 타서 발음이 [유럽]보다 순탄할 뿐 아니라 어원 ‘유로파’에 가깝기도 하다. 우리는 영어 쭉정모음 이해 부족으로 ‘유롭’ 등 여러 단어에서 저지른 효빈적(效顰的) 과오를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外來語表記 統一妙方은 歸化表記 뿐

  자연과 순리를 즐기며, 언중(言衆)의 외래어 사용 실태를 있는 대로 음성학적으로 관찰하여 정리하고 보면, 일견 어수선하고 지리멸렬하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실은 오직 이 길만이 외래어 표기 統一을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왜냐하면 외래어 어형은 단어별로 국어 표준 발음 심의하듯 “교양인들이 실제로 쓰는 語形”을 표준으로 삼아야만 통일이 가능하지, 산 너머, 바다 건너 외국어 원음을 표준으로 삼으면, 마치 세계 각국 개 짖는 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 같은 의성어가 수십 가지로 달라지듯 그 표기는 마냥 달라지게 마련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나라 교양인의 실제 발음(歸化語) ‘테레비’ 대신 영어 발음을 표기하러 드니까 저마다 자기가 더 영어에 가깝게 적는다고 주장한다. 우리 나라 대학교수 글에서만 ‘텔레비전’을 비롯해서 13가지 다른 표기가 수집되었고, ‘쪼꼬렛’ 경우는 제과회사마다 표기가 다를 뿐 아니라 심지어 한 회사 한 제품에 두 가지씩 표기가 나와 해태, 롯데, 동양 제과 세 회사 표기만도(해태 ‘초콜렛’, 롯데 ‘쵸코렡/쵸코렛’, 오리온 ‘초코렡/초컬릿’처럼) 다섯 가지가 저마다 群雄割據的 딴 모습으로 角逐을 하고 있다고 지적되었다(유만근 1992 참조). 그리고 ‘빠떼리’(건전지)경우는 더욱 심해서 서울 거리 간판에서 20여 가지가 만화경(萬華鏡, kaleido- scope) 속같이 번갈아 눈에 띈다. 우선 첫음절에서 ‘빠-. 빳-, 바-, 밧, 빼-, 뺏- 배-, 뱃-’ 8종 외에도 ㅌ받침, ㅆ받침까지 등장하고 요즈음에는 심지어 모음이 오그라들어 ‘베-, 벳-’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둘째 음절 표기가 ‘떼, 데, 테, 떠, 터’ 같이 너덧 가지로 달라지니 음절 조합상으로 20여 가지는 커녕 금방 50가지가 되고도 남는다. 우리가 사용할 외래어 발음 표준을(불란서 한림원에서 하듯) 우리 나라 교양인의 실제 발음에 두지 않고, 딴 나라 사람의 외국어 발음에 두자는 사람들은 정신적 국적이 딴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마음 속으로 표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구체적 또는 추상적) 국적을 분명히 갈라 놓기 때문이다. 실제 예로 스웨덴과 노르웨2) 국경지대 사람들끼리는 서로 말이 어지간히 통하지만 각각 다른 언어를 말한다고 하고, 서인도 자마이카 농부와 스코틀랜드 산골 사람이 만나면 방언 차이 때문에 서로 말이 안 통하지만 같은 언어, 즉, 영어 사용자라 한다. 그러면 같은 언어냐, 다른 언어냐를 판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언어 사용자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표준’ 말이 어느 언어냐에 달린 것이다. 가령 접경지대 방언 사용자가 자기의 표준말은 스웨덴 표준말이라고 생각하면 그가 노르웨 사람과 말로 통해도 그는 스웨덴 말을 쓰는 것이고, 노르웨 표준말이 자기 방언의 표준말인 것으로 의식하는 사람은 노르웨 말을 사용한다고 언어학에서 판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 속에서 표준을 두는 쪽으로 국적이 소속된다. 그러니 우리의 實用 외래어 발음 표준을 외국인의 외국어 발음에 두자는 사람들은, 무슨 알량한 理念에 따라서라기보다 그저 전부터 학교에서 그러라 했으니까 별 생각 없이 그리 주장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신적 국적을 그쪽으로 바꾸는 결과가 된다는 무서운 사실을 장차 깨닫고 昨非 후회 속에 몸을 떨 날이 있을 것이다.
  英語학자, 佛語학자, 中語학자, 기타 외국어 학자가 외래어 문제로 자문을 받으면 고작 소박하게 외국어 發音만 꼼꼼히 알려주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현지원음식/음소대응식’은 어느 외국에도 없다는 것, 그리고 영어, 불어, 중어, 기타 외국어에서는 외래어를 어떻게 수용하는지, 그 바로 된 각국별 外來語 受容方式을 먼저 소개했어야 했다.
  

    우리말 名詞 音節形과 音節數 調整

  지금부터 사십여 년 전에 어린이들이 많이 부른 동요 한 가지가 있는데 그 제목이 ‘리字로 끝나는 말’이다. 그 가사가 지금도 기억 나는데,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2.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유리 항아리.

3.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개구리 대가리, 너구리 아가리, 우리 종아리.
  
  이 가사를 지은 분은 틀림없이 우리말 어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분이다. 만약 이 동요 가사를 ‘리’字 대신 딴 字를 가지고 지으려 했다면 몹시 힘들었을 것이고, 더구나 ‘그·느·드·르……’字중 어느 것으로 바꿔 지으려 했다면 동요 3절은커녕 1절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순 우리말 명사 중 모음으로 끝나는 것은 ‘ㅣ’(i)로 끝나는 것(그중에도 ‘-리’로 끝나는 것)이 가장 많고 ‘ㅡ’(ɯ)로 끝나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우리 漢字音에도 모음 ‘ㅡ’ 로 끝나는 것은 없다.). 참고로 필자가 여러 해 전에 작은 국어사전에서 조사한 순 우리말 명사 總 5,594 개 語末(開音節) 모음별 빈도를 소개하면 다음 표와 같다(유만근1988: 434 참조).
  
빈도순위 1 2 3 4 5 6 7 8
어말모음 ㅣ(i) ㅐ(ɛ) ㅜ(u) ㅔ(e) ㅏ(a) ㅗ(o) ㅓ(ɒ) ㅓ(ɤ)/ㅡ(ɯ)
빈도율(%) 64.3 13.8 7.7 5.5 3.7 3.0 2.0 0.0

  이 표를 여기 놓고 우리가 외래어 표기에서 어말 모음으로 ‘ㅡ’를 마냥 써도 괜찮을까 생각해 보자.
   우리 나라 서울말/표준말은 모음 길이가 뜻구별에 관여하는 장운언어(長韻言語, chrone language)이기 때문에 그 길이(chroneme)로 뜻이 달라지는 ‘새집’(新屋)과 ‘새집’(鳥巢)을 같이 적고, ‘사는 법’(how to buy)과 ‘사는 법’(how to live)을 구별 못 하는 현행 한글 맞춤법은 큰 결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영어에서 fill과 feel을 같이 적고 pull과 pool을 철자로 구별 안 하는 것과 같다. 맞춤법이 개선되어 본래어나 외래어나 장운소(長韻素, chroneme) 표기가 완전히 되어야 한다. 그건 그렇지만 지금 우리말 모음에서 2.5:1 비율로 차이나는 장단음 구별도 안 하면서 1.8:1 비율에 불과한 영어 모음 장단을 구별 표기하려는 섣부른 생각에서 마련된 표기 세칙이 있는 것은 정말 공연한 것이다. 즉 외래어 표기법(1986) 제3장 제1절 영어표기 제1항에, 짧은 모음 다음에 오는 어말 무성파열음([p], [t], [k])은 받침으로 적는다 하고 긴 모음 다음에는 모음 ‘ㅡ’를 붙여 적는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 이에 따라 gap, cat, book은 각각 ‘갭, 캣, 북’이 되지만 긴 모음이 들어 있는 jeep(‘general purpose’의 약자 g.p.가 변한 말), shoot, Iraq은 각각 ‘찝차, 슛, 이락’이 아니라 ‘지프, 슈트, 이라크’가 된다. 이런 표기는 이미 죽은 어형 ‘뉴우요오크’를 환생시키려는 안간힘/헛수고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외래어가 우리말 속에 편안히 자리를 잡자면 우리말(특히 名詞) 語形에 맞아야 되는데 우리말 명사에 모음 ‘ㅡ’로 끝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모음 ‘ㅡ’로 끝나는 외국어/외래어는 언제나 異物感이 있고 발음이 불편하여 言衆에게 거부감을 주기 때문이다. 無理가 없는 범위 안에서 같은 값이면, 무슨 외래어든지 모음 ‘ㅡ’대신 받침으로 끝나도록 어형을 다듬을 수 있는 데까지 다듬는 것이 좋다. 예컨대:
  
이라크(Iraq)→이락, 함부르크(Hamburg)→함벅
올보르그(Ålborg)→올복, 케이크(cake)→케익
자코브(Jacob)→자콥/야곱, 스쿠프(scoop)→스쿱
수프(soap)→쑵, 피라미드(pyramid)→피라밋(-믿)
베이루트(Beirut)→베이룻(-룯), 스케이트(skate)→스켓(켇)
스푸트니크(Sputnik)→스푸트닉/스뿌뜨닉
  
  이렇게 모음 ‘ㅡ’를 줄이고 받침 글자를 쓰면 훨씬 더 우리말답게 들릴 뿐 아니라 음절수도 하나 줄어 편리하다. 서양 외국어를 수용할 때 우리가 인식부족으로 저지른 큰 실수 하나는 음절수 문제를 도외시하고 단어를 마냥 길게 늘여놓은 것이다. 가령 Marx는 독어로나 영어로나 1음절인데 우리가 ‘마르크스’ 4음절로 적는 것은 실용상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다. ‘맋’이 너무 줄인 것이라면 ‘막스’처럼 2음절이 넘지 않게 해야 한다. 외래어라 해서 적어 놓고 눈으로 읽기만 하는 언어 생활뿐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바에는 말하거나 낭독하는 경우 또는 음성언어와 뗄 수 없는 생활을 하는 방송인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공연히 외국어 음소에 충실하다가 국어에 도저히 쓰기 어려운 어형을 만들어 자승자박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 名詞 音節形과 관련해서 한두가지 예만 더 들기로 하자. 가령 영어로 ‘바이늘’(vinyl [[vaɪnəl])은 우리 외래어 표기법상 어쩌다 ‘비닐’로 적게 되어 있으나 이 어형은 우리말 명사로 뿌리 내리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단일형태소 명사로 ‘-닐’로 끝나는 것은 우리말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대신 ‘비니루’가 널리 쓰이는데 이것이 일본말 어형과 같건, 안 같건 상관없이 우선 우리말 명사 ‘가루, 거루, 나루, 노루, 머루, 모루, 벼루, 시루, 자루, 하루’ 같은 말과 語末음절이 일치하는 점에서 확고하게 국어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사진 ‘휠림’은 영어 발음상 film 한 음절이지만 그 소리를 우리말 속에 도저히 그대로 사용할 수 없고 두 음절로 고쳐야 되는데 지금 외래어 표기법상 ‘필름’으로 적으라 하지만 그 어형은 명사로서 국어에 자리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름’으로 끝나는 명사가 ‘기름, 보름, 씨름, 여름, 이름, 고드름……’처럼 많이 있지만 그 앞 음절이 모두 모음으로 끝나며, ㄹ받침으로 끝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명사 아닌 첨부사만이 ‘날름날름, 절름절름…’처럼 몇 개 있을 뿐이다. 그래서 첨부사 아닌 명사 ‘필름’이라는 어형은 국어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반면에 ‘휠림’은 ‘살림, 물림, 어울림, 틀림…’ 같은 명사와 척척 잘 어울려 쉽게 국어가 된다.
  외래어 수용은 이런 식으로 국어 음소배열론(phonotactics)을 연구한 후 국어다운 어형을 채택하여 표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다. 1:1 음소대응식 표기법이라는 것은 외국어 어형 임시보관/냉동저장用이 아닌 限, 實用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언어학적으로 상식 이하, 최악의 방식인 것이다.
  

5. 휘 갑

  우리 나라 외래어 표기 방식이 지금까지 수십년간 줄곧 잘못되어 온 데는 일차적으로 學界 책임이 크지만 아울러 言論界도 한 몫 거들었기에, 이제 이 문제로 다시 한번 言論界에 적극적 협조를 부탁하며 이 글을 맺을까 한다. 우리말을 한국 사람처럼 잘 하는 불란서 출신 르베리에(우리말 이름: 여동찬) 씨는 20여 년 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즉 불란서에서는 언론기관이 불어 醇化기관인데 한국에서는 언론기관이 국어 汚染化기관인 것 같다. 자기가 아는 짧은 한국어 지식만 가지고도 한국어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언론기관에서 번역하지 않고 공연히 외국어를 그대로 쓴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다. 또한 日本漢字音 앵무새 흉내는 언론계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해 온 일이므로 크게 반성해야 한다. 외래어 수용 태도는 단순히 어학적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국민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自己否定 또는 自己肯定의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자기 확립 없는 남 본위·自己否定의 자세로는 국제화, 세계화는 커녕 국제 경쟁, 세계 경기 출전 팀에 낄 자격조차 없다.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러 번에 걸쳐 이 문제로 학술 토론회도 하고 당국에 시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가령 1978년 7월 한국언어학회는 외래어 표기를 공동 연구 제목으로 잡고 이틀에 걸쳐 대토론회를 했고, 1980년 5월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학술 연찬 모임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연구발표와 토의가 있었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년 학술대회 어문분과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토의했는데, 언제나 현지 원음 표기방식이 잘못임을 지적하였다. 일찍이 1976년에는 金聖培, 朴魯春, 南廣祐, 金一根, 李應百, 허웅, 李能雨…(署名順) 등 958인이 外國 漢字音 대신 우리 漢字音을 채택하도록 당국에 건의했지만 馬耳東風으로,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제 언론기관이 협조(또는 主導)하지 않으면 현지 원음 표기라는 자승자박적 불편 내지 굴욕적 自己亡失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으므로, 누구보다도 신문, 방송이 이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우선 外國漢字音 아닌 ‘우리 漢字音’ 사용을 결의하여, 50년 고질병이 된 언어학적 과오 시정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거듭 당부하는 바이다.

〈편집자 註〉 이 원고에 나오는 외래어 표기는 글 내용 성격상 필자의 표기를 그대로 존중하여 달리 고치지 않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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