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1세기의 한글】

세계의 여러 문자와 한글

송기중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I. 서 설

  한글이 인류의 문자사상 달리 유례가 없는,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문자라는 사실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소상히 밝힌 책 “훈민정음”(訓民正音)이 1940년 발견된 이래 점차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 초ㆍ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글은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글이며, 우리 민족 문화 유산의 자랑거리”라는 상식을 누구나 지니고 있게 되었다. 또한 서양의 언어학자나 문자학자가 집필한 책에서도 한글의 제자(製字) 원리를 경탄과 더불어 소개한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훈민정음이 창제ㆍ반포된 이래 5백여 년간 수시로 제기되었던 한글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훈민정음”에 기술된 한글의 제자 원리는 학자들의 의문을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한 듯하다. 특히 우리 나라 학자들 중에는 “훈민정음” 제자해(製字解)의 설명을 의심하고 다른 의견을 표명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사실을 처음으로 전하는 “세종실록” 25년 12월의 기사로부터 시작하여, 정인지의 “훈민정음서”(訓民正音序), 최만리의 상소문 등에 한글의 글자 모양이 상고 시대의 한자(漢字)인 전서(篆書)를 모방한 것이라고 언급된 사실이 제자해의 상형설(象形說)을 의심하는 발단이 되었다.1) 아울러 가획(加劃)의 이론에 위배되는 일부 글자의 존재가 의심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어 왔다. 그리하여, 한글의 전서(篆書) 기원설을 위시하여,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 기원설, 13세기 원(元)나라 세조 때에 만들어진 팍바(八思巴)문자 기원설, 주역(周易)의 하도(河圖) 기원설, 특정 한자(漢字)의 일부 획(劃)의 채택설 등 다양한 설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이론도 ‘제자해’의 설명보다 합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는 것은 없었다. 그 결과, 한글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설은 잠시 화젯거리가 되었다가 잊혀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글의 ‘특성’은 물론 한글을 다른 문자와 비교했을 때 한글에서만 관찰되는 특별한 성격이다. ‘제자해’의 설명은 세계의 다른 문자에서는 볼 수 없는 한글의 ‘특성’임에 틀림 없고, 지금까지 그 ‘특성’은 소상히 연구되어 왔다. 초ㆍ종성자(初終聲字)는 발음 기관, 중성자(中聲字)는 삼재(三才)를 형상하여 기본 글자를 만들고, 그 외의 글자들은 국어의 음운 대립 체계(音韻對立體系)에 따라서 기본 글자에 획을 가하거나 기본 글자를 규칙적으로 합성하여 만든 점은 지금까지 알려진 동서고금의 모든 문자 중에서 오직 한글만이 가진 고유한 성격임에 틀림 없다. 학자들은 그와 같은 ‘분명한 특성’의 설명만으로도 한글의 특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게 느꼈던듯, 한글과 다른 문자들의 체계적 비교 연구는 별로 시도하지 않은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제자해’의 설명을 의심하고 한글 자형의 기원을 다른 문자에서 찾으려 노력한 학자들은 한글과 팍바 문자, 혹은 산스크리트 문자, 혹은 한자와 비교하여 자형이 유사한 글자를 찾는데만 집착하였을 뿐, 다른 여러 문자들과 비교함으로써 일반화할 수 있는 ‘특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세계의 여러 문자와 한글을 비교하였을 때 관찰되는 한글의 ‘특성’을 찾기 위하여 준비되었다.
  

II. 세계의 문자

      1. 언어와 문자, 세계의 문자

  ‘문자’는 언어의 기능 과정에서 음성으로 표현되어 청각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시각(視覺)으로 전달하는 기호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의사를 소통할 때 ‘음성→청각’의 단계를 ‘표기 문자→시각’으로 대치되고, 시각으로 감지된 기호는 다시 문장, 단어(의미 단위), 형태소, 음소 등 음성 언어 단위로 복원되어 청자에게 이해된다. 이와 같이 문자는 본원적으로 음성 언어를 ‘표기’하는 시각 기호이지만, 실제로는 음성 언어(구어, 口語)와 문자로 기술된 언어(문어, 文語)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2) 여하간 모든 문자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등장하였고, 언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언어를 전제하지 않는 문자란 존재할 수 없다.
  인류가 사용하여 온 언어는 약 3천 종류로 오랫동안 각종 사전류나 언어학 개설서에 기술되었었으나, 근래 발간된 연구서들에는 약 5천, 혹은 약 7천으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한 때 사용되었다가 소멸된 언어들도 확인할 수 있는 것만 140여 종이라지만, 그 밖에도 상당수가 더 있었을 것이다. 현재 약 45억에 달하는 인류가 사용하는 수천 가지 언어들 중에서 1백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138종에 불과하다.3) 모국어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로 약 10억, 범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로 약 14억이다. 남북한 및 해외 동포, 약 7천만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 국어는 세계에서 14-15번째로 사용자가 많은 대언어이다.
  역사적으로나 현재나 문자로 표기된 적이 있는 언어는 전체 언어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약 4백 종의 문자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한다.4) 그러나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는 30종 내외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되는 문자들이다. 남ㆍ북아메리카 주와 오세니아 주에서는 라틴(로마) 문자만이 사용되고, 유럽에도 희랍어의 표기에 희랍 문자, 구 소비에트 연방에 속하는 지역의 몇 가지 언어들과 세르비아 어의 표기에 씨릴 문자가 사용될 뿐, 나머지 언어들은 모두 라틴 문자이다. 수백 년간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룬(Runic) 문자, 오감(Ogham) 문자 등은 라틴 문자에 밀려 모두 소멸되었다. 아프리카 주에서는 이집트ㆍ수단ㆍ리비아ㆍ알제리아ㆍ모로코 등 북쪽의 회교 국가에서 아랍 문자, 에디오피아에서 암하르(Amharic) 문자가 사용될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역시 라틴 문자이다.
  반면에 아시아 주에서는 우리의 한글ㆍ한자ㆍ일본 문자ㆍ위그르몽고 문자ㆍ티베트 문자ㆍ라오(Lao) 문자ㆍ크메르 문자ㆍ타이 문자ㆍ미얀마 문자ㆍ아랍 문자ㆍ우르두 문자 등 거의 나라마다 다른 문자들을 사용하고 있고, 15개의 공용어가 있는 인도에서만 데바나가리(Devanagari)ㆍ벵갈ㆍ타밀ㆍ오리야(Oriya) 등 10여 가지 문자가 사용된다. 독립국연합의 아르메니아와 구르지아(죠지아)에는 각각 고유의 문자가 있고, 우즈벡ㆍ카자흐 등에서는 씨릴(러시아) 문자이다. 아시아 주에서도 월남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ㆍ튀르크 등에서는 라틴 문자로 그 나라 말을 표기한다.
  

      2. 문자의 기원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기원적인 문자의 창제는 신화와 전설로 전해진다. 인도의 전설에는 코끼리 모습을 가졌던 지혜의 신(神) 가네시(Ganesh)가 문자를 발명하였다. 가네시는 자신의 치아(상아[象牙]와 같은) 하나를 부러뜨려 글씨 쓰는 펜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토트(Thoth)신이 글자를 발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이슬람교에서도 신(神)이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는 신화 시대인 황제씨(皇帝氏) 시대의 관리로서 눈을 넷 가졌던 창힐(蒼頡)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한자를 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신화나 전설에서 고대로부터 문자를 중하고 신성하게 여겼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확인되는 사실에 의하면, 문자는 대상물의 형체나 행위를 연상할 수 있는 단순한 그림으로 그린 회화문(繪畵文, picture-writing)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발달하여 왔다. 회화문은 선사 시대 유적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아메리카 인디언, 시베리아 원주민, 아프리카 토인 등 아직 문자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여러 민족들이 사용하는 실례들이 문자학서에 소개되고 있다. 회화문과 유사한 기능을 발휘하는 단순 도형은 오늘날 다수 사람들(특히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간단한 정보를 쉽게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국제 공항에서 흔히 볼수 있는 각종 장소 표시 그림, 종목별 운동 경기장 표시 그림, 화장실 입구의 남녀 구분 표시 그림 등이다.
  초기의 문자는 회화문과 같이 대상물의 형체나 행위를 파악할 수 있는 상형 도형과 의미를 표현하는 도형으로 구성되었었다. 앞의 것을 ‘상형 문자’(象形文字, pictograph/pictogram) 뒤의 것을 ‘표의 문자’(表意文字, ideograph/ideogram)라고 부른다.5)
  지금까지 고고학적 유물에서 발견된 초기 문자들은 기원전 3100년경에 현재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등장한 수메르(Sumerian) 문자, 그보다 조금 뒤인 기원전 3000년경의 이집트 문자, 기원전 3000년 경으로부터 2200년 사이에 오늘날 이란 지역에 나라를 세웠던 엘람 인의 문자 (Proto-Elamite), 기원전 2000년경으로부터 1200년경까지 크레타 섬에서 사용된 몇 가지 선사 문자, 기원전 1500년경으로부터 기원전 700년 사이에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에 나라를 건설하였던 히타이트(Hittite) 인들의 문자, 인도의 인두스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기원전 2200년경의 여러 가지 선사인도 문자(Proto-Indic), 그리고 기원전 1300년경 중국의 갑골 문자(甲骨) 및 중ㆍ남미 마야 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상형 문자들이다.6)
  문자 사용의 단초가 되는 ‘언어 음성의 시각 기호화’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 때 일부 학자들은 문자 역시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 등장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단일 기원설(單一起源說)을 주장하였다. ‘언어 음성의 시각 기호화’와 같은 인류의 대발명이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믿기 어렵다는 막연한 추측에서 그와 같이 주장한 학자들이 있었고, 또 고고학적 발굴에서 확인되는 선사 문화 상호 간의 유사성으로 미루어 문자를 이용하는 문화도 틀림 없이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의한 추정이었다. 특히 원시 문자 중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중국의 갑골 문자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음성 기호 단계를 시현하는 사실은 선행 문자의 영향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추정하게 하였다.7) 그러나 단일 기원설을 증명하는 설득력 있는 단서를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은 대개 복수 기원설 쪽으로 정착되고 있다.8) 아래 수메르ㆍ이집트ㆍ히타이트ㆍ갑골문의 상형 문자 몇 가지를 비교한 표를 참고로 보인다. 동일한 대상물의 상형자들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표 1> 수메르ㆍ이집트ㆍ히타이트ㆍ갑골 상형 문자 비교(Gelb 1963:98)



      3. 문자의 변천과 새 문자의 출현

  선사(先史)엘람 문자ㆍ히타이트 문자ㆍ크레타 문자는 7-8백 년 동안씩 사용되다가 소멸되었고, 선사인도 문자와 마야 문명권의 상형 문자들도 역시 후세에 전해지지 않고 소멸되었다. 수메르의 상형 문자는 설형 문자(楔形 ‘쐐기모양’)로 바뀌고, 복잡한 자형이 단순화되며 글자의 수효가 점차 줄어들었다. 설형 문자는 인접 지역의 여러 언어들의 표기 문자로 수용되며 기원후 75년경까지 3천여 년간 사용되었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는 기원전 1세기경까지 근 3천년 동안 성전(聖殿)이나 무덤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겨질 때는 원래의 자형이 거의 변함 없이 사용되었으나, 같은 기간 중에 실용적인 목적으로는 자형이 단순화되었다. 아래 <표 2>에서 이집트의 상형 문자의 자획이 단순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표 2>: 이집트 상형 문자의 자형이 변화한 모습(Gelb 1963:76)

  글자 모양의 변화와 더불어 표어 음절 문자에서 순수한 표음 문자로 변환되어 갔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 표음 문자는 기원전 1700년경에 팔레스티나와 시리아에서 발달한 북세미트(North Semitic) 혹은 선사세미트(Proto-Semitic) 음절 문자이다. 이 문자는 이집트 문자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추정한다.
  일단 정착된 문자가 같은 언어를 표기하는 한, 문자의 변화는 완만하다. 문자에 큰 변화는 주로 다른 언어의 표기에 채택될 때 발생하였다. 수메르와 이집트의 표어 음절 문자가 표음 음절 문자로 변화된 것은 모두 인접 민족들에 의하여 문자가 습득되고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9) 음운 구조를 비롯한 언어 구조의 상이성과 상형 문자의 경우 문자가 상형하는 사물과 문자가 대표하는 음성이 다른 언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그와 유사한 현상은 우리 조상들이 표어 문자인 한자를 도입하여 국어를 표기하면서 발전시킨 ‘차자표기’(借字表記)에서도 관찰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새 문자’는 문자로 표기되어 본 일이 없는 언어를 처음으로 표기할 때와 문자로 표기되어 온 언어이지만 어떤 이유에서 표기 문자를 바꿀 때 등장하였다. 어느 경우에나 이미 존재하는 문자는 어떤 형태로든 새 문자에 영향을 주었다. 자형ㆍ표기 음성의 단위ㆍ문자 조직 방법 등, 문자의 구성 요소와 개별 문자의 특성 등을 기존의 문자에서 모두 그대로 채택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 중 일부만을 채택하는 경우가 보다 보편적이었다.
  북세미트 문자로부터 기원전 1100년경에 페니키아(Phoenician) 음절 문자가 유래하였고, 그로부터 기원전 1000년경에 희랍 문자와 아람 문자(Aramaic)가 등장하였다. 아람 문자는 후에 헤브류ㆍ아랍ㆍ시리아ㆍ인도 등, 여러 문자의 기원이 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소그드ㆍ위구르ㆍ티베트ㆍ버마ㆍ타이 등등 중앙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의 여러 문자들이 유래하게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음소 문자(alphabet)는 희랍 문자로부터 기원하였다. 희랍 문자는 기원전 800년경에 등장한 에트루스칸(Etruscan) 문자의 모형이되었다. 그로부터 기원전 7세기경에 유래한 것이 라틴 문자(로마 문자)이다. 그리고, 기원후 9세기에 성ㆍ씨릴(St. Cyril)이 희랍 문자를 기본으로 만든 것이 씨릴 문자이다.
  라틴 문자는 기독교와 더불어 로마 제국의 각지에 전파되었고, 종교개혁 이후 유럽의 여러 민족어로 성경이 번역됨에 따라 유럽 여러 언어의 표기 문자로 채택되었다. 이어서 16세기로부터 19세기까지는 스페인ㆍ포르투갈ㆍ영국 등 유럽 민족의 식민지 진출로 라틴 문자는 전 세계에 보급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언어의 표기 문자로 채택되었다.
  
<표 3> 서양의 고대 문자들(Crystal 1987:202)
  
  <표3>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상고 라틴 문자는 본래 20자였으나 후에 6자가 추가되어 26자가 되었다. 라틴 문자로 여러 언어들을 표기하면서, 글자의 증감과 부가 기호의 사용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중세에 영어가 라틴 문자로 처음 표기될 때, 영어의 고유 음운을 표기하기 위하여 몇 가지 룬 문자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라틴자 26자만 사용한다. 현대 독일어는 ä ö ü 등, 프랑스 어는 é è ù 등, 덴마크 어는 æ å ø 등, 스페인 어는 ñ ó í 등과 같이 부가 기호가 첨가된 글자들과 간혹 다른 모양의 글자들이 추가되고, 또 핀란드어ㆍ항가리 어ㆍ체코 어ㆍ루마니아 어 등의 표기에는 라틴자 중에서 q w y 등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문자의 발달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근거로 ‘자형의 유사성’이 지적되지만, 자형상으로는 현격한 차이가 있으나, 개별 문자가 표기하는 음성 단위, 모음의 표기 방법 등의 공통점도 같은 계통의 언어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아래 <표3>에서 페니키아 문자로부터 현대 라틴 문자까지 여러 문자 간에는 자형의 유사성을 관찰할 수 있는 글자도 몇 있으나, 전혀 다른 모습의 글자도 존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도 문자 계통으로 인정하는 타이 문자ㆍ버마 문자ㆍ캄보디아 문자 등 동남아 제국의 문자들을 상호 비교해 보고, 그것들과 인도의 제문자들을 비교해 보면 자형상의 유사성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선행 문자와 그것의 영향을 받고 등장한 후행 문자가 자형상의 유사성을 시현하는 것은 페니키아-희랍계 문자들의 한 가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4. 동북 아시아의 문자 발달사

  기원전 1300년경의 갑골 문자로부터 시작되는 동북 아시아권의 문자사는 위에 약술한 중동 기원의 문자사와 자못 다르다. 우선 이 지역에 다양한 문자들이 등장한 시대가 중동-지중해 지방보다 늦다. 기원전 1700년경의 페니키아 음절 문자로부터 기원한 다양한 표음 문자들이 대부분 6-7세기 이전에 이루어져 현재까지 글자의 증감만 있었을 뿐, 자형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사용된 데 비하여, 우리가 속하는 동북 아시아권에서는 한자를 제외한 다른 문자들은 7-8세기 이후의 것들만 알려져 왔다.
  갑골 문자는 그와 흡사한 자형이 다수 발견되는, 주(周) 나라 시대의 금문(金文)으로 발전되었는데 이 문자가 훈민정음의 창제시부터 자형의 근원으로 언급된 전서(篆書)이다. 한자는 그후 예서(隷書)-행서(行書)-초서(草書)-해서(諧書) 등 자체(字體)의 변화형들이 출현하면서 현재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한자는 한문과 함께 우리 민족, 일본족, 월남족 등 인접 민족들에게 전파되었다. 한자는 이민족들에게 수용된 후 기본적으로는 한문의 표기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개별 글자의 음 (音) 혹은 석(釋)에 의하여 고유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우리 나라의 구결(口訣)문자나 일본의 카타카나(片假名)ㆍ히라카나(平假名)와 같이, 한자의 약체자(略體字)로 고유어의 문법 요소들을 표시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 중원(中原)에 제국을 수립하였던 거란족(遼, 907-1124)과 여진족(金, 1115-1234)은 한자를 변개하여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여 자민족어를 표기하였다. 990-1227년 간에 중국의 서북방에 왕조를 수립하여 금조(金朝) 및 송조(宋朝)와 대립하던 서하(西夏, 탕구트 唐古特 Tangut) 민족도 한자를 모방하여 자체의 문자를 창조하였다. 이 문자들은 아직까지 정확히 해독되지는 않았으나, 대략 한자와 같이 의미 단위 표기자와 음절 혹은 음운 단위 표기자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민족과 부단한 접촉을 가지면서도, 중국 문명의 도입을 거부하였던 일부 인접 민족들은 한자의 사용을 기피하였고, 그 대신 중동 지역에서 기원한 문자들을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도입하였다.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오늘날 외몽고 지방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던 돌궐(突厥)―오늘날 터키족의 선조―은 서양의 룬(runic script) 문자와 흡사하지만 정확한 근원이 알려지지 않은 음절 문자를 사용하였고, 7세기부터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던 티베트(西藏)에서는 인도 문자를 모방한 티베트 문자를 제정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8-10세기 간에 중국의 서북지방에서 고도의 문화를 누렸던 위구르(Uighur, 回紇)는 중동의 시리아 문자에서 유래한 소그드(Sogdian, 栗特) 문자를 변개하여 사용하였다. 13세기 초 칭기스칸의 등장과 더불어 흥기하여 세계 제국을 수립하였던 몽고족은 위구르 문자를 받아들여 일부 변개하여 몽고 문자를 표기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문자를 16세기 말 만주족이 채택하여 만주 문자를 만들어 20세기 초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공식 문자로 썼다.
  1269년 원세조(元世祖)대에 티베트의 라마에 명하여 창제된 문자가 팍바(Pags-pa, 八思巴) 문자로서 티베트 문자를 모방한 것이었다. 이 문자는 1세기도 채 사용되지 않다가 소멸되었지만, 조선조에서는 15세기 중엽 세종대까지 습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의 기원이 이 문자였다는 설은 실학 시대 이후 수시로 거론되어 왔었다.10)
  15세기 중엽에 등장한 훈민정음은 이러한 동북 아시아 문자사를 배경으로 창제된 것이다.
  

III. 세계의 문자와 한글

      1. 새 문자 제정의 일반 방식과 훈민정음의 창제

  “서설”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1940년에 “훈민정음”이 발견된 이후에도 한글의 기원에 대한 구구한 견해들이 여럿 발표되었다. 그러한 견해들은 아래와 같은 2가지 사항을 절대적 진리(?)로 전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원시 문자가 등장한 이후 완전 독창적인 문자의 창제는 없었다.
  둘째, 새 문자는 선행 문자의 자형(字形)을 반드시(?) 채택하였다.
  
  첫째 사항은 대략 옳다고 보겠다. 위 II-2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원시 문자들이 단일 기원인가 복수 기원인가는 문제가 되었으나, 후에 등장한 문자들이 선행 문자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 받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둘째 사항은 옳다고 볼 수 없다. 위 II-3과 4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새 문자로 선행 문자의 개별 자형 전부 혹은 일부를 그대로 채택하는 전통은 상고 희랍문자로부터 유래하는 라틴 문자와 그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라틴 문자를 수용한 ‘새 문자’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아랍 문자를 수용한 경우에도 공통적인 자형은 존재한다. 그러나, 인도 문자 계통인 인도 및 동남아 여러 나라의 문자들 간에는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형상의 유사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가 속하는 동북 아시아 지역의 전통으로는 새 문자의 자형은 모델이 된 선행 문자의 자형을 원칙적으로 그대로 채택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한자를 모델로 제작된 우리 나라의 이두/구결 문자, 일본 문자, 글안 문자, 서하 문자, 여진 문자의 기본 자형은 모두 한자와 구별되게 제작되었다(일반적으로 획의 가감으로 원래 한자와 구별하였다.). 중동과 유럽의 전통과 같이, 선행 문자의 자형을 그대로 취한 경우는 없었다. 물론 한자를 도입한 초기에는 고유어의 표기에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동북아 문화권의 국제 공통 문어였던 한문의 표기에는 한자가 사용되었으나, 이 경우는 ‘새 문자’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 문자에서 유래하는 티베트 문자 (7세기), 티베트 문자에서 유래하는 팍바 문자(13세기)의 경우 선행 문자와 외형적인 유사성을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위구르몽고 문자(12세기?) - 만주 문자(17세기)는 라틴 문자를 채택한 경우와 같이 기본 자형은 그대로 채택하고 부가 기호를 추가하였다. ‘새 문자’들이 선행 문자와 자형상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가 여부는 자획의 단순성과 관계 있는 듯한데, 보다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글안 문자, 서하 문자, 여진 문자, 팍바 문자 등 한글보다 앞선 시대에 동북아 지역에서 제작된 문자들은 나름대로 제작자의 언어학적 지식을 반영한다.11) 한글도 그러한 전통의 연장 선상에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성(자음) 글자의 경우, 인도 음성학에 기원이 있는 중국 음운학의 이론에 따라 음성이 분류되고, 그 분류 체계에 따라 글자가 제작되었음은 “훈민정음” 제자해에 명백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불청불탁’(不淸不濁) 계열―/ㅇ,ㄴ,ㅁ/―의 공통 변별 자질을 논하는 것은 웃음꺼리밖에 되지 않는다.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는 이미 알려진 기본 틀에 국어의 초성을 확인ㆍ배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ㆆ’와 같이 국어음의 표기에는 불필요한 글자가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국어의 표기음이 불분명하고 기본 28(혹은 27)자에도 포함되지 못한 전탁 계열의 각자병서자(各自竝書字) ‘ㄲ,ㄸ,ㅃ,ㅆ,ㅉ’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훈민정음의 체계처럼 [k,kh,g,(gh),ng], [t,th,d,(dh),n], [p, ph, b, (bh), m] 등 음속(音束)들을 표시하는 문자들을 같은 계열로 분류하는 방식은 티베트 문자를 포함하여 인도계에 속하는 인도와 동남아 여러 나라의 문자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중성(모음)의 경우, 훈민정음의 체계와 유사한 분류 체계가 선행하는 문자 체계에서 발견되지 않는 한, 국어의 모음 체계를 명확히 인식한 훈민정음 창제자들의 독창적 분류 방식에 의거한 제자였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아래 참고.) 훈민정음은 선행 문자의 자형을 취한 문자는 아니지만, 한자를 포함한 선행 문자들과 관련된 ‘이론’에 입각하여 고안된 문자이다.12)
  “세종실록”과 정인지의 ‘훈민정음서’ 등에 기록되어 5백여 년간 논란되어 온 “倣古篆”은 기본적으로 획의 모양과 그것이 구성하는 글자의 총체적 모양을 지칭하는 것 같다. “훈민정음”이나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한글의 획은 한자의 예서ㆍ행서ㆍ해서ㆍ초서 등의 모필체가 아니라, 금문(金文)의 전서체와 같이, 획의 머리와 끝이 균일하다.
  

      2. 문자의 분류와 한글

  세계의 모든 문자들은 우선 ‘글자의 모양’, 즉, 자형(字形)이 있고, 그 글자가 대표하는 ‘음성’이 있다. 그 음성은 한 단어의 음성일 수도 있고, 한 음절의 음성일 수도 있고, 한 음소의 음성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구(句)의 음성 혹은 문장의 음성을 단위 문자로 표기하는 문자 체계도 있을 수 있지만, 인류가 사용하여 온 모든 ‘완전 문자 체계’에서는13) 개별 글자가 단어, 혹은 음절, 혹은 음소를 표기한다. 단위 문자가 단어의 음성을 대표하는 문자를 표어 문자(表語 logographic writing), 음절음을 대표하는 문자를 음절 문자(syllabic writing/syllabary), 음소음을 대표하는 문자를 음운 문자 (alphabetic wriing/alphabet)라고 부른다. 개별 글자에 의미가 있는 상형 문자나 표의 문자는 표어 문자이고, 음절 문자와 음소 문자는 개별 글자가 대표하는 의미가 없이 오직 음성만을 대표하는 표음 문자(phonographic writing)이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표의 문자

표음 문자

표어 문자

음절 문자

음소 문자


  문자는 단위 문자의 표기 음성의 언어 단위에 따라 이상과 같이 분류되지만, 현재는 물론 이미 상고 시대로부터 완전한 표어 문자, 완전한 표음 문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듯하다. 원시 문자로부터 의미와 상관 없이 순수한 음성의 시각 기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수메르와 이집트의 상형 문자 및 중국의 갑골 문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보편적인 방법은, 의미를 무시하고 대상물의 발음만 취하여, 즉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의 기호로 표기하는 방법이다. 한자의 육서(六書) 중에서 가차(假借)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본래 ‘곡식의 이삭’을 의미하던 | (來)자가 동음이의어였던 ‘오다’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나, 산스크리트어의 [buddha]를 글자의 본래 뜻과 상관 없이 발음만 취하여 ‘佛陀’(부처)로 표기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이집트의 성각 문자나 수메르의 설형 문자에서도 발견된다.14) 현대 국어 맞춤법상 동음인 ‘낟’ㆍ‘낱’ㆍ‘낫’ㆍ‘낮’ㆍ‘낯’은 표의적인 표기이고, 영어 철자법의 knight, know, though 등도 모두 표의적인 표기이다.
  역사적으로 표어 음절 문자와 표음 음절 문자가 몇 가지씩 존재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표어 음절 문자는 한자이며, 유일한 표음 음절 문자는 일본 문자이다. 현재 사용되는 그 외의 문자들은 모두가 음소 문자이다.
  한글의 창제자들이 국어의 음운 구조를 명확히 파악하여, 음운 자질에 따라서 자형을 규칙적으로 제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의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창제 이론은 크게 관계되지 않는다. ‘ㄱ’ㆍ‘ㅋ’ㆍ‘ㄲ’ 등은 각각 개별 글자로서 표시하는 음성을 기억할 뿐, <ㄱ-ㅋ-ㄲ> <ㄷ-ㅌ-ㄸ>, 더욱이 <ㅏ - ㅗ> < ㅡ - ㅓ - ㅜ> <ㅗ - ㅜ>와 같은 음운론적 상관속을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평소 의식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한글은 기본적으로 표음-음소 문자일뿐, 글자의 창제 이론을 따라 ‘자질 문자’(featuralwriting system)라고 구태여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15) 한글의 경우 창제 이론에 따라 분류하고, 희랍 문자ㆍ아랍 문자 등은 현실적인 대표 표기 음성에 따라서 분류하는 태도는 균형있게 보이지 않는다.
  

  3. 모음자(母音字)와 어두 ‘o’자의 존재

  표음 음소 문자(alphabet)는 모음을 표기하는 방식에 따라서 3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1) 별도의 모음자가 있는 문자―예. 라틴, 희랍 등의
   2) 별도의 부가 기호로 모음을 표기하는 문자―아람, 아랍, 헤브류 등의 문자
   3) 자음자와 결합된 부가 기호로 모음을 표시하는 문자―인도, 에티오피아 등
  
  한글은 물론 1)에 속한다. 별도의 모음자를 사용한 전통은 기원전 1000년경에 등장한 희랍 문자로 부터 시작되어, 희랍-로마계의 후세 문자 체계에 계승되어 왔다. 아랍-헤브류계, 인도계 및 동북 아시아의 여러 문자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전통이다. 동북 아시아에서 사용된 문자 체계에서 별도의 모음자가 존재하는 문자는 아람 문자―소그드 문자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해 온 위구르-몽고 문자이다. 그러나, 자음자와 완전 분리된 모음자를 모음의 상관속(相關束) 체계에 따라서 일정하게 고안한 문자는 한글이 유일한 것 같다.
  위 III-1 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훈민정음의 초성(자음) 체계는 기존의 패러다임 속에 국어의 자음을 확인ㆍ배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국어음에 존재하지 않는, 순전히 이론적인, 후음 전청(喉音全淸) ‘ㆆ’과 같은 글자가 제정되었다. 후음 불청 불탁 ‘ㅇ’의 경우도 유사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이 글자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글자는 팍바 문자ㆍ위구르몽고 문자ㆍ아랍 문자ㆍ헤브루 문자 등에도 존재하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발음 가능한 음성’의 최소 구성 성분에 대한 인식은 언어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현대 국어 화자들은, 최현배 선생님의 용어와 설명과 같이, 모음은 단독으로 발음할 수 있어서 ‘홀소리’, 자음은 모음과 결합되어야만 발음할 수 있다고 ‘닿소리’ (‘닿아서 나는 소리’라는 뜻)로 인식한다고 볼 수 있다. 영어의 화자들은 모음은 물론이려니와 자음도 단독으로 발음될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strong이라는 영어 단어를 영어 화자들은 [strong] 1 음절로 인식하는데, 우리들은 [스트롱] 3음절로 인식한다.
  15세기의 한글 창제자들은 자음(초성ㆍ종성)이건 모음(중성)이건 단독적으로는 발음될 수 없다고 인식하였고, 현대적 관점에서, 단독 모음 음절의 어두에 자음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자음의 표기자가 ‘ㅇ’이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글자는 위구르몽고 문자ㆍ아랍 문자ㆍ헤브루 문자에도 존재하는데, 한글과 달리 단어 단위로 붙여 쓰기 때문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단어의 초두에만 사용된다. 국어에서는 음절 단위로 표기하기 때문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모든 음절의 초두에 쓰인다.
  

IV. 결 어

  이상에서 세계 문자들의 변천 과정에 입각하여 볼 때 관찰되는 한글의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하였다. 그 밖에도 한글의 특징은 몇 가지 추가할 수 있지만 후고로 미룬다.
  문자는 인류의 문명과 더불어 기원전 3천 년경으로부터 등장하여 변천되어 왔다. 기존의 문자는 ‘새 문자’ 고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 영향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자형(字形)의 채택과 모방만은 아니었다. 새 문자에 선행 문자의 자형을 그대로 채택하는 전통은 기원전 1천여 년전으로부터 현대까지 주로 희랍-로마계의 음소 문자(대부분 자획이 단순하다)에 가장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었고, 기타 소수의 문자들에서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속한 동북아시아 전통으로는 모형으로 삼은 문자와 상이한 자형을 고안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한글보다 앞서 11-13세기에 제작된 글안 문자ㆍ서하 문자ㆍ여진 문자ㆍ팍바 문자가 모두 그러하다. 한글의 창제는 동북 아시아 문자사에서 확인되는 그러한 이형(異形) 문자 전통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새 문자’가 기존의 문자를 바탕으로 전혀 다른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제작될 때, 흔히 기존 문자의 표기 단위나 표기 원리가 변경되었다. 수메르ㆍ이집트의 표어 음절 문자의 영향하에 다른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표음 음절 문자가 등장하였고, 역시 표어 음절 문자인 한자를 도입하여 고유어를 표기하다가 발전시킨 구결 문자나 일본의 음절 문자들이 그러하였다. 한글의 경우, 기존의 문자(언어) 지식을 한층 더 발전시킨 이론에 입각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것이 모음자(초성)와 자음자(중성)의 체계적 분리, 초성과 종성의 표기에 동일한 글자 사용 등, 현대 언어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탁월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도 음성학에서 기원하였고 중국 운학(韻學)에서 수립된 자음의 분류 체계를 그대로 도입함으로써, 국어의 표기에는 불필요한 글자나, 국어에서 표기음의 음운론적 가치가 불분명한 전탁(全濁) 계열 각자병서자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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