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1세기의 한글】

한글의 제자 원리와 글자꼴

강창석 /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머 리 말

  한글은 아주 독특한(다른 문자들과 다른 점이 많은) 문자이다. 여기서 한글의 어떤 점이 독특하고, 그런 특성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연구와 해설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고, 그 결과로 지금은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글에 관해 논하다 보면, 누구나 아는 한글의 독특함을 재삼 언급하고 그 의미를 거듭하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한글의 특성을 잘 알고 또 항상 말하면서도, 실제로 한글을 논하고 기술하는 과정에서는 그것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로마자와 일본의 가나(假名)는 기존의 다른 문자에서 파생된 것이다. 비단 이들 두 문자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했던) 문자 대부분이 그렇게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그러나 한글만은 그렇지 않다. 한글은 15세기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이다. 그것도 대충이나 적당히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한글이 다른 문자에는 없는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된 것도 이처럼 탄생 과정이 남다른 데 기인한다.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용된 여러 가지 이론과 방법들을 통칭해서 보통 ‘제자 원리’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 주로 말하게 될 내용이 바로 그 ‘제자 원리’에 관해서이다. ‘글자꼴’도 이 글에서 다루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글자꼴을 결정한 원리나 글자꼴에 담겨진 내용이 곧 제자 원리이므로, 내용은 결국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제자 원리는 아무 문자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글에서만 논의가 가능하고 또 필요한 내용이다. 오랜 시일에 걸쳐, 기존의 문자가 변형되어 생겨난 다른 문자들의 경우에는 ‘제자 원리’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글자꼴’에 대해서는 다른 문자들의 경우에도 논의가 가능하고 또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역시 한글의 경우와 같을 수 없다. 한글의 ‘글자꼴’은 서로 간에 구별만 되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그 모양 속에 여러 가지 이론과 정보를 담고 있는 의미 있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제자 원리 즉 문자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여러 가지 이론과 방법들은 그 내용이 후대로 전해지지 못하였다.2) 제자 원리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조차도 거의 잊혀진 채로 오랫동안 내려왔다. 그래서 금세기 초반까지도 한글 역시 기존의 다른 문자에서 나왔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글의 기원이라는 제목 아래 제기되었던 여러 가지 설들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3) 지금도 유사한 견해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쨌든, 한글의 경우에도 창제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하면, 제자 원리라는 논제도 성립되지 않는다. 즉 제자 원리를 논하는 것은 과학적인 창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이 글에서도 그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현재로서는 창제 사실을 의심하거나 뒤집을 만한 근거가 거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글자꼴을 비롯한 한글의 제 특성은 독특한 제자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 원리가 제대로 구명되어야만 한글의 제 특성이 제대로 파악되고 기술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한글의 특성으로 ‘독창성’과 ‘과학성’을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제자 원리’의 내용이 어느 정도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 원리와 관련한 모든 궁금점이 다 풀린 것은 아니며, 이미 파악된 내용조차도 제대로 기술되고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정리, 기술하는 것은 약간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의 특성은 그것을 표현(설명)해 주는 수단(용어와 이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글의 제 특성도 그에 걸맞는 이론과 용어가 갖춰지지 않으면 그것이 제대로 설명되거나 기술될 수 없다. 한 가지 예로, 우리는 한글이 로마자처럼 음소 단위를 적는 문자이지만, 로마자와는 다른 점도 있음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질 문자라는 표현 수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것을 제대로 말하거나 기술하지 못했다. 즉 로마자와의 차이를 알면서도 기존의 용어인 음소 문자로만 한글을 기술해 왔던 것이다.4) 이것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어도 결과적으로는 한글의 특성을 왜곡하거나 무시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그런 부분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한글의 독특함을 지적하고 강조하는 논의는 아주 많았다. 그러나 그 독특한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별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글만의 특성도 일반 문자론의 경우와 같은 시각과 이론으로 다루어, 결과적으로 특성을 특성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글에서 살펴볼 ‘제자 원리’와 ‘글자꼴’의 경우도 그런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제자 원리’야말로 한글의 특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에 관한 논의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은 그 특성에 걸맞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 관련 용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을 꼽는다면 역시 ‘문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자(字)’와 ‘글자’라는 단어도 ‘문자’와 거의 같은 뜻으로 현재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함께 후보가 될 수 있다. ‘제자 원리’와 ‘글자꼴’에도 이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듯이, 지금으로서는 이 용어들을 쓰지 않고서 문자에 관해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사람’이나 ‘남자’ ‘여자’ 등의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사람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문자’ 등의 기본 용어들이 한글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 용어로는 한글의 특성을 제대로 기술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용어부터 그렇다면 문제는 아주 심각한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 그 이후는 보나마나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자’ 등의 용어는 한글에도 사용되고 다른 문자들을 대상으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다른 문자에 사용할 때는 용어의 의미가 비교적 명확한데, 한글에 사용하면 의미가 애매해진다. 한글 외의 다른 문자들은 문자가 곧 표기의 단위이다. 문자를 가로나 세로로 그냥 나열하여 단어와 문장을 표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문자와 구별되(어야 하)는 다른 표기 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문자’의 개념에 혼동의 소지가 애당초 없고, 그래서 그것을 ‘글자’나 ‘자’로 바꾸어 말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로마자를 뭐라고 하든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어차피 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들이 하나인 집에서는 그 아들을 부를 때, 이름을 불러도 되고, 그냥 ‘아들’이나 ‘애’ 해도 괜찮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로마자와 한자, 가나 등의 경우에는 그러하지만, 한글은 사정이 다르다.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기는 싫지만, 여기서 한글의 독특함을 또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은, 모두가 너무 잘 알듯이, 문자 단위(ㄱㄴㄷ 등의 자모)를 그냥 배열하지 않고 그것을 일정한 원칙에 의해 서로 결합시켜 단어와 문장을 표기하고 있다. 예컨대, ‘ㄱㅏㅇㅅㅏㄴ’이라고 적지 않고 ‘강산’으로 쓰는 것이다. 창제 당시부터 변하지 않은 그러한 원리 때문에, 한글의 경우에는 문자 단위와는 다른 별개의 표기 단위가 존재하게 된다.
  한글의 두 단위는, 음운론에서 음소와 음절이 구분되듯이, 엄격하게 구분될 수 있고 또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아직까지도 그 구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두 단위의 존재와 차이를 모르는 것은 분명 아닐 터인데도, 그것을 구분하는 용어도 없고, 애써 구분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들이 여럿인데도 각각의 이름을 짓지 않고 모두를 그냥 ‘아들’이나 ‘애’로 부르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혼동이 생기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ㄱ. 한글은 현재 스물넉 자이지만 본래는 스물여덟 자였다.
  ㄴ. ‘허 준’과 같이 한 글자로 된 이름을 외자 이름이라고 한다.
  ㄷ. 소리 글자를 다른 말로 표음 문자라고 하기도 한다.
  ㄹ. 빈 자리에 넉 자로 된 단어를 찾아 쓰라.
  ㄱ, ㄴ, ㄷ의 예에서 보듯이, ‘자’와 ‘글자’ 그리고 ‘문자’라는 용어는 서로 구분없이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문자(자모)를 뜻하기도 하고 그것이 합쳐진 다른 단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ㄹ과 같은 문장은 그 의미가 애매하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문자에 사용되는 용어와 개념들을 한글에도 그대로 쓰기 때문에 빚어진다. 즉 한글의 독특함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특성에 맞는 대접이나 조치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음소와 음절의 구분조차 제대로 안 된 음 이론이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글 이론도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두 단위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한글론의 기본이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부담이 현실적으로 엄청난 것인데,5) 지금까지 왜 그 문제를 방치하고, 그 부담을 어떻게 견뎌 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6)
  이 글에서 제자 원리와 글자꼴을 바로 논의하지 못하고 서론을 길게 늘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제자 원리’와 ‘글자꼴’이라는 논제 자체가 다소 애매한 것이다. 논제가 명확치 않은데 그에 대한 논의 내용이 분명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사용하게 될 ‘제자 원리’와 ‘글자꼴’이라는 용어의 개념부터 먼저 살펴보고 나서, 그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한다.
  다른 문자라면 ‘글자꼴’이라는 말이 한 가지 의미를 지니겠지만, 한글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두 가지 뜻을 가질 수 있다. 문자 단위의 모양을 뜻할 수도 있고 그것이 결합된 표기 단위의 모양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글자꼴’의 논의가, 한글의 경우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문자의 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결합된 표기 단위의 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내용이 용어상으로 구분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데, 현재는 문자와 표기 단위의 구분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것 역시 힘든 상태이다.
  현재 ‘글자꼴’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용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쓰이고 있다. 자형, 자체, 자양, 글꼴, 폰트, 서체 등이 그것인데, 이 중 어느 것도 완전한 용어라고는 보기 어렵다. 애당초 ‘자’나 ‘글’의 의미가 분명치 않은데, 거기에 다른 말이 더 붙은 ‘자형’ 등의 의미가 분명해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7)
  이 글에서는 ‘글자꼴’을 제자 원리와 관련하여 논의한다. ‘제자 원리’의 ‘자’는 “신제이십팔자(新制二十八字)”에서와 같이 문자 단위를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논의할 ‘글자꼴’의 ‘글자’도 일단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현실적인 의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글에서는 그 쪽으로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자 원리와 글자꼴에 관한 논의 내용이 본질적으로는 서로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논제가 두 가지처럼 되어 있으므로, 비슷한 내용이라도 단락을 둘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2. 제자 원리의 주요 특성과 배경

  한글(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밝히는 작업은 현대의 국어학자들에게 비중이 제일 큰 연구 과제였다. 한글이 고유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경시하고 방치했던 탓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로 잊혀졌던 많은 사실들이 다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심쩍은 면이 있거나 아예 논의의 단서조차 찾지 못한 부분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밝혀진 제자 원리의 내용과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서도 조금 언급해 보기로 한다.
  제자 원리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금세기 중반 즉 “訓民正音”의 발견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전까지는 한글이 창제되었다고 하는 사실조차도 잘 몰랐거나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에 연구되고 논의된 것은 ‘제자 원리’가 아니라 주로 ‘기원’이었다. 금세기 초까지 한글의 기원에 관한 십수 가지의 설들이 등장한 바 있는데, “훈민정음”이 발견되면서8)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 책에 그 동안의 오해와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한글을 누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었는지 등)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기원 대신에 제자 원리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대부분의 연구나 논의들이 “훈민정음”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훈민정음” 등의 문헌 기록과 그 동안의 연구들을 통해 확인된 한글의 제자 원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될 수 있다.
  ㄱ. 음(절)을 초성과 중성, 종성으로 분석하였다.
  ㄴ. 초성과 중성을 구분하여 각각의 문자를 별도로 만들었다.9)
  ㄷ. 종성에 대해서는 따로 문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자를 같이 쓰기로 하였다.
  ㄹ. 초성과 중성 모두 약간의 기본자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나머지 문자를 만들었다.
  ㅁ. 초성의 기본자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들고, 중성의 기본자는 천, 지, 인을 상형(象形)하였다.
  ㅂ. 초성의 경우, 각 발음 위치별로 가장 약한(最不厲) 소리를 기본자의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센 정도에 따라 거기에 획을 더하였다(加畫).10)
  ㅅ. 중성의 글자꼴 결정에는 음양오행설 등의 철학적 원리도 반영되었다.
  ㅇ. 실제로 글을 적을 때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합해 적기로 하였다.
  위의 내용은 지금까지 확인된 제자 원리의 대강을 적어 본 것이다.11) 제자 원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자세히 논하자면 한이 없지만, 이 정도의 내용만 가지고도 제자 원리의 특징과 배경 등을 어느 정도는 분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내용에서 확인되는 주요 특징은 역시 ‘독창성’과 ‘과학성’이다. 제자 방법이 이론적이고 그 이론이 새로운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지금까지 수없이 언급되어 온 것이므로 여기서 다시 지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과 수립 배경 등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위에서 보듯이, 제자 원리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음에 관한 분석과 이론 수립이었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 당시의 연구 방법과 과정 등을 소상히 알 수는 없지만, 완성된 문자 체계를 통해, 어떤 내용이 연구되고 결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대강 파악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음을 세 부분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목록과 체계 그리고 특징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내용을 제자(자형)에 그대로 반영했던 것이다.12) 그러한 작업은 분명히 550여 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음 분석의 수준은 현대의 그것에 못지 않은 것이었고, 그 방법이나 결론면에선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도 주저 없이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음에 대한 분석과 이론만이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글자꼴을 정하는 과정에서 적용된 상형과 가획 등의 원리도 똑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그와 같은 독창성과 과학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궁금해 했고, 우리도 그 점을 구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제자 원리 특히 현대 이론에 못지 않은 15세기의 음 분석이나 이론과 관련하여 그동안 많은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중국의 성운학이었다. 당시에 참고할 수 있었던 이론이 성운학뿐이라고 생각했고, “훈민정음”에서도 성운학의 용어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한자음 이론인 성운학을 도입하여 그것을 독자적으로 개량, 발전시킨 것이 곧 훈민정음 이론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고, 나중에는 그런 생각이 아예 다른 논의의 전제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13) 그러한 생각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상식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문자가 기존 문자에서 나왔다는 상식이 유독 한글에는 맞지 않듯이, 당연해 보이는 것도 특별한 경우에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그럴듯한 것일수록 더더욱 면밀한 확인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제자 원리와 관련한 그동안의 논의들에서 성운학이나 성리학의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오르내리다 보니, 한글의 제자 원리도 본래 굉장히 추상적이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어 온 감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제자 원리는 어렵거나 추상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소리의 특징을 문자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기본적인 발상과 상형과 가획 등의 구체적인 원리들은, 절묘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차원의 이론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즉 전문적이고 특별한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상식만으로도 생각해 낼 수 있는 발상들인 것이다. 따라서 제자 원리에 대한 분석도 일단은 쉽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쉽게 생각하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외국의 학술 이론을 제대로 익히고 이해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현대 학자들에게 구미 이론의 습득이 어렵게 느껴지듯이, 15세기에도 중국의 성운학을 제대로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래 이론을 수용하여 그것을 독자적으로 개량, 발전시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성운학을 수용, 개량하여 음(절)의 삼분법과 같은 이론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을 15세기에는 해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문제는 그 사실 여부의 증명 즉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냈는가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음의 삼분법이 나오게 된 바탕을 성운학의 반절법 쪽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를 너무 어렵게 만드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쉬운 문제도 어렵게 접근하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특히 전제가 잘못되면 답이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답이 잘 안 나오거나 어렵게만 느껴지는 문제의 경우에는 시각을 바꾸어 보거나 전제의 타당성 여부를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제자 원리의 핵심인 음의 삼분법 이론이 어디서, 어떻게 해서 나왔나 하는 문제의 경우에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삼분법 등의 음 이론과 관련하여, 그런 이론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가를 따져보기 이전에 더 근본적인 의문 하나를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새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왜 음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당장은 답이 나오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후자는 답이 뻔한 것이다. 즉 음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제자에 적용한 것은, 소리를 적는 문자(표음 문자)를 만들려고 했고, 소리의 특징을 문자(글자꼴)에 반영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두 가지 결론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 문자를 표음문자로 하고 거기에 소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을 반영한다고 하는 생각(발상)은, 앞에서 말했듯이, 고도의 이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며, 오히려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러한 생각이 아무에게서나 저절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국어 표기를 위해서는 표음문자가 필요(적합)하다고 하는 결론은 고차원의 이론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서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결론들은 경험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상식적인 내용에 불과한 것이지만, 비경험자들의 입장에서 어렵게 접근하면 좀체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은 고유 문자가 없었던 탓에 일찍부터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적어 왔다. 그것을 보통 차자표기(借字表記)라고 부르는데, 차자표기가 쓰인 것은 성운학이라는 중국의 이론이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의 일이었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어와 한자는 서로가 잘 맞지 않는 것이었다.14) 그러므로 한자로 국어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연구와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럼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는 끝내 얻기 어려웠다. 따라서 그 점을 절감한 세종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었고, 그것이 곧 곧 한글의 창제였던 것이다.15)
  세종은 불완전한 차자표기 대신에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 문자를 만들고자 했지만, 그 과정에서 차자표기의 경험과 교훈까지 몽땅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새 문자의 설계와 제정에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새로 만든 문자의 성격이 차자표기가 지향했던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의 것에 대한 불만 사항이 곧 새로운 것의 희망 사항이 된다는 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며, 특이한 일이 아니다.
  한자는 표의 문자이고 음절 문자이다. 그래서 글자 수가 많고 자획도 복잡하다. 한자의 그런 특성들이 국어 표기를 불완전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따라서 차자표기가 시작되면서 한자의 그런 특성을 국어에 맞게 변형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즉 한자의 획을 간소화하고 그것을 표음문자화 하는 등의 시도가 일찍부터 있었던 것이다.16) 그런 과정에서 국어의 음과 한자음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즉 성운학이라는 이론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우리 나름의 음 분석 전통이 있었던 것이고, 음의 삼분법에 해당하는 인식도 그런 전통 속에서 일찍부터 있어 온 것이다. 예컨대, ‘밤’에서 ㅁ이나 ‘간’에서의 ‘ㄴ’만을 따로 적은 신라 시대의 차자표기 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밤:夜音, 간:去隱).
  
  위와 같이 볼 때, 한글의 청사진이나 제자 원리 등은 외래 이론이나 세종 개인의 창의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어 표기의 오랜 경험과 교훈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본다고 해서 세종의 공과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모든 것을 쉽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제자 원리에서 확인되는 ‘과학성’과 ‘독창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에 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생각은 성운학과 성리학이라는 외래 이론의 수용과 그것의 개량, 발전이라는 쪽이었는데,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그 요점만 다시 말하자면, 제자 원리의 내용은 상식적인 것이고 그 상식은 국어 표기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글의 제자 원리는 현재 완벽하게 구명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연구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주로 “훈민정음” 등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대해서였고, 그 외의 경우에는 아직 문제 제기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리고 “훈민정음” 등의 기록을 대상으로 한 논의의 경우에도 기록의 해석이나 신뢰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훈민정음”에 나오는 ‘상형’과 ‘가획’이라는 제자 원리를 부정할 만한 근거와 그에 대한 대안이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상형’과 ‘가획’만으로 모든 것이 다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ㅁ과 ㅂ 그리고 ㅍ의 경우는 분명히 가획의 원리만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리고, 은 제자 원리에 아예 어긋나는 글자꼴이다. 원리대로라면 상형에 의해 아음의 기본자로 제자되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후음의 기본자에 변칙적으로 가획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그런 글자꼴을 지니게 된 까닭에 관해서는 “훈민정음”에 약간의 언급이 있다. 그러나, 그 언급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문제일 뿐더러,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위와 같은 문제들이 왜 생겨난 것이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확언하기 어렵다. 그것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에서는 한 가지 사항이 특히 유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한글의 창제 과정에서도 적잖은 시행 착오와 계획의 수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이 쓰여질 당시에는 을 아음의 불청불탁음으로 인식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라는 글자꼴이 정해질 당시에도 똑같은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아음을 왜 후음의 모양으로 제자했을까 하는 의문은 문제 자체가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제자 당시에는 아음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후음으로 잘못 판단했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상형과 가획이라는 제자 원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이들 원리에 의해 문자가 완성된 것임은 틀림없을 터이지만, 제자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 원리만으로 시종 일관 작업이 진행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 것이다.17)
  한글의 제자 과정에서 있었을 법한 시행착오나 방향 수정의 문제는 문헌 기록에 어떤 단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18) 문헌 기록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검토해 왔으므로, 새로운 돌파구는 이제 다른 곳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글의 성공적인 창제 비결이 고차원의 이론 추구가 아니라 상식과 경험의 존중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창제 원리의 올바른 이해도 같은 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한글의 글자꼴

  문자는 시각적인 부호이다. 즉 각 문자가 고유한 꼴을 지님으로써 상호 변별되고, 그 변별을 통해 언어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유지된다. 그러므로 말소리에 대한 연구가 모든 언어에서 가능하고 필요하듯이, 글자꼴에 대한 논의도 어떤 문자의 경우에나 가능하고 또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글자꼴에 대해 논의될 수 있는 내용은 문자마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각 문자의 성격과 기원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은 글자꼴이 다른 문자들과는 전혀 다른 과정으로 결정된 문자이다. 따라서 제자 원리가 유별난 만큼, 글자꼴에 관한 논의 주제와 내용 역시 유별날 수밖에 없다.
  글자꼴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글자꼴이 생겨난 유래나 역사(각 글자꼴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또 어떻게 변해 왔는가)도 논의될 수 있고, 글자꼴이 지닌 형태상의 특징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글의 글자꼴들이 어떻게 정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다 말한 셈이다. 제자 원리가 곧 글자꼴의 유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두번째 내용 즉 글자꼴의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이 부분도 제자 원리와 전혀 무관한 내용은 아니다.
  한글(자모)의 글자꼴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각각의 글자꼴이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고, 둘째는 각각의 글자꼴이 독립된 것이면서도 실제 표기에서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글자꼴이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독특한 제자 원리 때문이다. 글자의 모양을 정할 때 소리의 특징(자질)을 연구하여 그것을 글자꼴에 반영시켰기 때문에, 글자꼴이 여러 가지 정보를 지니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이름을 정할 때도 그냥 짓는 경우와 돌림자를 넣어 짓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두 가지 이름은 그것이 나타내는 정보와 기능면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의 기능은 단순히 한 개인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 주는 것 뿐이지만, 후자는 그 외에 다른 정보(돌림자에 입력되어 있는)도 나타내 준다. 한글의 글자꼴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글의 글자꼴에는 음운론적인 정보와 철학적인 정보 등이 본래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각 글자들이 나타내는 소리의 단위는 로마자와 같이 음소이지만, 로마자와는 구분되(어야 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두 번째 특징 즉 각각의 글자들이 고유의 꼴을 지니면서도 그것이 실제로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단위의 한 요소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모아쓰기라고 하는 표기 원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모아쓰기라는 표기 원리는 글자꼴이 결정되고 난 후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모아쓰는 것을 전제로 하여 각각의 글자꼴들이 결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모아쓰기라는 표기 원리는 각 글자꼴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한글을 풀어쓴다고 가정해 보면 자명해진다. 주시경 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한글의 풀어쓰기를 주장한 바 있는데,19) 그런 주장의 내용 중에는 글자꼴의 수정도 대개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점들이 곧 현재의 글자꼴이 모아쓰기를 전제로 해서 나온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초성과 중성의 글자꼴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구분되어 만들어진 것도 그것을 합쳐서 쓸 것임을 미리 염두에 두었기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 로마자의 경우처럼 표기하는 경우에는 자음과 모음이 형태상으로 특별히 구별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개개인이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가족 등의 집단을 구성할 경우에는 집단의 한 구성원 즉 부분이 되기도 한다. 가장이나 주부 그리고 자식 등의 신분은 개체로서보다는 집단의 구성 요소로서의 신분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초성이나 중성 등도 독립된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한 요소(부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초성을 적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 역시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한글의 글자꼴에 관한 논의는 문자(자모) 차원의 논의만으로는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같은 초성자라 하더라도 초성에 쓰일 때와 종성에 쓰일 때 서로 모양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글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한글의 글자꼴에 관해서는 논의될 수 있고 또 반드시 논의되어야 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한글의 경우에는 문자와 그것이 합쳐진 또하나의 표기 단위를 구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용어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어야만, 다른 특성들도 분명하게 논의되고 기술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한글의 제자 원리와 글자꼴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글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독특한 문자이고, 한글의 그런 특성들은 독특한 제자 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여기서의 논의 초점도 한글의 특성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독특한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술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독특한 시각과 이론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글의 경우에는 아주 독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이론과 용어들로 기술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글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술하기가 쉽지 않다. 한글이 본래 과학성을 지닌 문자라면, 그에 대한 기술과 운용도 그 과학성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한글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한글의 자모 순서 문제를 통해 그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조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현대의 “한글 맞춤법”에 규정되어 있는 자모 순서는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순서 즉 “훈민정음”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예컨대, 초성의 경우, 현재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의 순이지만, “훈민정음”에서는 ‘ㄱ ㅋ ㄷ ㅌ ㄴ ~’ 의 순서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에서의 자모 순서는 당시의 이론에 근거해서 정해진 것이다. 당시에는 초성을 조음 위치(아/설/순/치/후)와 조음 방법(전청/차청/불청불탁)으로 분류하였으므로, 그런 기준에 의해 순서도 결정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모 순서가 이론적이라는 점이다. 이론적인 자모 순서를 익히는 것은 단순히 순서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내재된 이론을 함께 익히는 것이다. 또 이론적인 것은 논리를 지니므로 가르치고 배우기가 쉽다.
  현대의 자모 순서는 특정 이론에 근거해서 정해진 것이 아니다. “훈몽자회”부터 나타나서 조금씩 변해 온 전통적인 순서를 그냥 따른 것이다. 문제는 표기 원리는 전통적인 것을 따르지 않고 바꾸면서,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모 순서는 그대로 두었다는 점이다. 즉 맞춤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자모 순서가 표기법과 관련하여 이론적 근거를 지니던 것이었는데, 맞춤법이 바뀜으로 해서 그 이론적 근거와 논리를 잃게 된 것이다.
  “훈몽자회”에서는 한글 자모를 세 부류로 나누었다. 초성과 종성에 함께 쓰는 여덟 자와 초성에만 쓰는 여덟 자 그리고 중성을 구분한 것이다. 그와 같은 분류는 종성에는 여덟 자만 써도 되는 당시의 표기법을 고려할 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세 부류의 내부 순서에서도 일정한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ㄱㄴㄷㄹㅁㅂ~’과 같은 초성의 순서는 조음위치와 제자 순서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훈몽자회”의 자모 순서 역시 지극히 이론적인 것이며, 그와 같은 순서를 익히면 제자 순서 및 표기법 그리고 당시의 음 이론 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현대맞춤법에서는 종성에 여덟 자만이 아니라 모든 초성자를 쓸 수 있다. 따라서 “훈몽자회”처럼 초성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순서를 정하는 것은 이제 이론적인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다. 현대의 자모 순서는 “훈몽자회”의 그것과도 조금 다른 것이다. “훈몽자회”에서는 ‘ㅋ ㅌ ㅍ ㅈ ( ㅇ) ㅊ ㅎ’의 순이었는데 지금은 ‘ㅈ ㅊ ㅋ ㅌ ㅍ ㅎ’으로 바뀌어 있다. 이제는 ‘아-설-순-치-후’라는 순서도 깨져 버린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자모 순서는 초심자나 전문가나 할 것 없이 모두 기억하기가 힘들다.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서 논리적으로 터득할 수 없고 무조건 외워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여 그 순서를 외워 봐야 그것은 순서 암기 이상의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글의 특성을 간과하고 무시한 데서 야기된 결과이다. 한글은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해 만들어진 문자로서, 글자꼴 하나하나에 이론적인 정보가 담겨져 있는데, 현재의 자모 순서는 그것을 거의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ㄴ ㄷ ㄸ ㅌ 등의 문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서로 공통점이 있다. 발음 위치가 모두 같다는 점이다. 한글은 그와 같은 내용을 미리 확인하고 그것을 반영하여 만든 문자이므로, 글자꼴에 그 점이 이미 나타나 있다. 따라서 자모 순서를 정할 때 이들 문자들을 나란히 배열하게 되면, 자형을 익히기도 쉽고, 일석 삼조의 부수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다. 한글의 제자 원리도 익히고, 음 이론도 저절로 배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글의 진면목은 제자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맞게 한글을 운용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한글의 제자 원리는 문자를 만든 원리로서 이미 생명이 끝난 것이 아니다. 한글이 사용되는 한, 그 운용의 기본 원리로서 계속 생명과 가치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제자 원리이다. 따라서 완전하고 올바른 이해를 위한 연구와 노력도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한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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