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언어와 문학】

텍스트 언어학과 현대문학
− 문학적 커뮤니케이션의 대체성 원리를 중심으로 −

김태옥 /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1. 들어가기

  문학 텍스트를 언어학의 테두리 안에서 탐색하는 일은 별로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언어학이 그 동안 인지심리학, 사회학, 철학 그리고 인공지능 등과 같은 인접 학문과의 연계 속에서 텍스트와 담화의 과학을 성숙시켜 왔기 때문이며, 또한 20세기 후반은 인문과학의 지적 관심이 모든 지적 현상에 대한 담화·언어학적 탐색으로 집중되는 시대적 요청이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 언어학이란 텍스트의 과학으로서 종래의 문장을 중심으로 하는 언어 체계 규명만이 아니라 문장 단위를 넘어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한 담론 또는 텍스트라는 다이나믹한 사상(事象, event)의 언어학으로서, 사회, 심리, 인지적 요인들이 개입되고,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서 다루는 지식 패턴의 활용이 논의되는 광범한 장이다.
  텍스트 언어학은 고전적 ‘수사학’에서 비롯하여 ‘텍스트 문법’ 단계를 거쳐 텍스트성 및 텍스트 산출과 수용을 다루는 ‘텍스트 언어학’으로 발전했고 결국은 언어와 관련된 이성적 인간 행위의 모든 측면을 종합해 다루고자 하는 ‘텍스트성(性) 언어학’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종래 일반 언어학 이론들을 기능적으로 수용하되 그 상위에서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한 인간 행위로서의 담화 행위의 특질과 성격을 기술·규명하고자 하며 통화 목적이 있는 어떤 한 발상에서 비롯해, 우리 경험에 비축되어 있는 배경 지식을 활용하는 추론적 의미 작용을 포함한 정보 처리 절차를 거쳐 언어의 어휘·통사층, 그리고 소리·문자 층위에서의 발화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그 인지적 효과와 기능 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텍스트 언어학은 궁극적으로 ‘텍스트’여부를 판정하는 ‘텍스트성’의 기준들을 규명하고자 하는데, 이들은 곧 결속 구조, 결속성, 의도성, 용인성, 상황성, 정보성, 그리고 상호텍스트성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문학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 자체의 내적 접근이나 사회 이념적 접근보다는 문학적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인지 작용과 그 효과라는 관점에서 텍스트 언어학의 이론적 틀을 중심으로 문학 텍스트를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다.
  

2. 현대문학의 텍스트 언어학적 고찰

    2.1. 현대문학 텍스트의 특성

  현대의 중요한 지적 관심사는 뿔뿔이 흩어진 인간사의 단편들을 어떻게 하나의 총체로 상호 관련시키는가 하는 문제다. 각 부분들을 감싸 안고 그 전체의 의미를 결정하는 총체성의 상실이 현대의 위기이며 또한 현대 담론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 담론의 잠세(潛勢)’라는 저서에서 핀레이(1990)는 현대 담론의 특징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고 있다:종래의 습관적 사고 패턴의 교란(habit disturbance), 모든 제약에서 풀려난 무한히 자유로운 상호개입 작용, 그리고 모든 의미, 진리, 실재성의 상대성, 맥락 의존성, 불확정성 등이다. 즉 이 모든 특징들은 전체성의 결여를 의미하며, 이러한 현대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은 오로지 언어적, 특히 텍스트와 담화론적 규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현대에서 지식이란 특정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행위 또는 특수 분야에서 각기 행해지는 언어 놀이(language game)로 보며, 지식과 진리에 대해서 분야마다 각기 다른 조리(條理)공간을 마련하여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핵심적 위기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수많은 삶의 단편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있을 뿐 그 총체적 의의가 상실돼 있다는 뜻이다. 현대에서 이러한 담론의 중요성은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가 담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파카는 그의 “담론의 역동성”(Parker 1992: 70)에서 담론 이외의 진정한 탐색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담화 분석만이 우리가 가지는 진리의 유일한 탐색 방법이되, 그러한 담론의 비평적 관점의 근거는 오로지 자체의 표현 방식에 대한 메타 언어적 성찰(reflexivity)일 뿐이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세상 모든 대상을 광범한 추론의 대상으로 보고자 하는 시각이다.
  작가는 이러한 관련성 부재의 흩어진 현상 속에서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총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또는 완성된 인간과 인간 조건을 재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해결책, 새로운 상관 관계, 새로운 상념들의 성좌(星座), 새로운 변항, 새로운 원형들을 창조해야 한다. 우리를 얽매어 온 기존의 모든 불가피한 상호개입이나 연결망에서 벗어나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문학이다. 사람이란 언제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며 텍스트는 그러한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장이 되고, 우리는 그러한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를 즐기는 존재이다.
  문학은 하나의 무한히 열려 있는 영속적 의미 작용이며, 문학성은 따라서 텍스트 자체의 속성이기보다는 텍스트 사용자의 성향과 그들의 끊임없는 정신 작업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텍스트 언어학자 보그란데(1988: 3)에 의하면 텍스트는 우리의 내면 세계와 외계를 중재하는 기능을 가지며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바와 우리가 줄 수 있는 바를 관련 지어 주는 계기라고 갈파한다. 텍스트를 사용해서 상호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각자들이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여러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텍스트 과학은 상호텍스트성(본문 4.6)의 개념이나 의도성, 용인성(본문 4.3) 등을 자연스럽게 도입할 수 있다.
  언어는 우리의 실제 경험을 논의하고 체계화하고, 실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조정 가능케 한다. 여기서 텍스트의 대체 조건들이 가능해지며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비교와 새로운 문제 제기, 그리고 그 해결책의 새로운 타협을 모색케 한다.
  담화는 심각한 의미에서 인간 정신의 반영이며, 정신이 우리의 성찰의 대상이라면 담화 역시 성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담화에 대한 가장 폭 넓은, 정식으로 인가된 성찰의 장이야말로 곧 문학이며 또한 문학 비평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텍스트는 따라서 다양하고 사적(私的)인 ‘의미 행사’의 장을 원리적으로 열어 주며,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텍스트성의 교직(交織)이 가능한 것이 곧 문학 텍스트 유형이다.
  현대문학 담론에서는 그러므로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 새로운 유추 관계, 은유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합리성을 넘어선, 아니 합리성을 초월한 가설 설정(abduction)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챨스 퍼스(Charles Peirce)의 화용론의 진수를 이루는 이 개념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도입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논리 작용이며, 습관적 합리성이나 낡은 논리의 마당에서 벗어나는 길인데, 종래의 귀납(induction)에서 가설 설정으로 옮겨 감은 곧 사실의 존재를 기존의 관찰과는 상이한 측면에서 파악하고, 직접 관찰되지 않은 바를 논리에 관여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새로운 이로(理路)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며, 미래 예측 또는 잠재적 가능성의 암시에 이르는 길이라 하겠다(핀레이 1990: 154 참조). 이로써 소위 지식의 지시적 담론(referential discourse)에 대한 대안이 가능해진다.
  이 모든 언어적 대체성과 가능성, 잠재성은 의사 소통의 유토피아적 개념과 통한다. 모든 현실적 집착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신화나 유토피아는 다름 아닌 완벽한 의사 소통에서 찾아지고 그러한 완벽한 의사 소통의 존재론적 자리는 핀레이가 지적했듯이 새로운 담론, 즉 문학 텍스트가 안고 있는 대체적 가능성과 잠재성에 있는 것이다(1990: 138).
  

    2.2. 문학 텍스트의 대체성 원리와 시적 효과

  문학 텍스트는 그러므로 텍스트 언어학적으로 대체성 원리(principle of alternativity)에 입각한 텍스트 행위다.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또 다른 하나의 대체적 세계를 구상하든지 통찰하고자 한다. 즉 텍스트에 재현된 세계 표상은 사회적으로 이미 구축된 현실 세계 모델의 대안을 의미하거나 표상한다(보그란데 1983: 83). 현실 세계는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인지 작용, 상호 작용, 절충 작용으로부터 전개된 것으로 파악하며, 텍스트가 표상하는 대체적 세계는 현실 세계나 마찬가지로 일련의 대상과 사상(事象)의 구성체이되, 이는 구체적 현실의 기록물에서 비롯해 공상물에 이르는 하나의 지속대의 어느 중간에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 텍스트가 도출하는 그러한 세계는 정보성 차원에서 현실과 흥미롭게 관련되어 있고(놀라움이나 참신성을 지님으로써) 또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게 한다. 문학 텍스트 세계는 이처럼 흔히 생각되는 바처럼 전적인 픽션만도 아니요, 언어 형식의 일탈로만 설명될 수도 없으며, 더욱 내용의 문제만도 아니다. 이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수용된 바 세계란 실은 여러 잠재적 관련 국면이나 가능한 관점들이 선택되지 않거나 거부된 결과이며, 현실 세계에서 도외시된, 그리고 텍스트에 미처 실현되지 않은 그러한 여타 국면들을 제시하고 전개시키는 하나의 제도적 장치가 곧 문학적 행위인 것이다.
  문학은 그리하여 인간의 고정적 습관적 지각(知覺)을 심미적으로 갱신해 주고 대체적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현실에서 풀려나, 스스로 해방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수단이며 작품을 읽음으로써 삶의 익숙함과 편견과 예측된 바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대체성 원리가 텍스트 자체에 확장 적용되는 것이 시(詩)인데, 이는 우리의 언어 감각을 자극하고 현실과 담화·텍스트에 대한 재 타협이나 조정을 거쳐 시적 표현으로 하여금 다양한 심의(深意)를 누릴 수 있게 한다. 즉 시적 표현에 영원성을 부여한다. 이는 텍스트의 결속 구조(연속체로서의 형식적 연관 관계)라는 관계의 원리에다 대체성 원리를 확장 적용해서 문학적 대체 세계와 텍스트상의 시형식적 대체성이 이중적으로 병행·재구성되어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성립시킨다(보그란데 1983: 92). 시적 표현의 일탈 현상은 시의 증후이지 그 전제 조건이 아님은 분명하며, 일탈 현상을 보이는 표현이 있으면, 이는 곧 대체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신호로서, 통상적이며 자동적인 텍스트 처리를 방해하는 기능을 갖는다.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심미적 효과는 표현들의 이러한 복합적 다기능성에서 온다. 이들 여러 기능들이 하나의 통합된 작업체를 이룸으로써 시적 효과가 성취되는데, 문학 텍스트라는 하나의 사상(event)은 그 어떠한 텍스트적 요소라도 대체적 사용의 설명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통합체라고 하겠다. 일반 텍스트의 정보 처리 과정은 불확정성과 정보성의 정도에 따라 인지적 제약이 다양하게 부과되고 이에 따라서 언어 행위의 패턴이 결정되는데, 시적 통화에서는 이에 더하여 필연적으로 첨가, 확대, 심화, 수정, 대비, 등가, 부정 등 기능의 다중화라는 인지 작용이 개입되며(보그란데 1983: 92), 이로써 새로운 의의(sense)의 형상들(configurations)이 태어나는 것이다.
  대체성은 그러므로 텍스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있는 여러 다양한 정도의 불일치에서 전개되는 구성적 원리(constitutive principle)이며 이를 의도적으로 의식하는 데서 문학성이 찾아진다. 문학 텍스트는 재독(再讀)할 때마다 그 시적효과가 증대되는 특징을 갖는데, 일반적인 기대나 예측성에 의존했던 첫번째 읽기와는 달리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텍스트 체계가 재구성되고 그 역동성을 심미적으로 체험케 해 준다. 이러한 인지 작용의 역동성은 언제나 정보의 불안정한 흐름을 창출하고 거듭 그 안정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재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학 텍스트는 하나의 행위이며 이벤트이다.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감지, 새로운 인지 작업을 거듭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텍스트 요소들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며 곧 대체성의 발견 요인이 되겠으나 그들의 처리 결과는 같지 않을 수 있다. 크리스와 카플란(1965)에 의하면 처리 결과 즉 해석은 독자마다 다르게 투사되며(projective) 이들은 서로 배타적일 수도 있고(disjunctive) 부가적일 수도 있으며(additive), 그러나 이 모든 처리 결과는 다 쓸모 있게 상호 접합해서(conjunctive) 하나의 탄력성 있는 통합적(integrative) 패턴을 구축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텍스트가 하나의 체계로서 이와 같은 역동적 문학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 근거는 여러 상반된 원리들의 공존에서 온다. 즉 정보 처리상의 안정성과 불안정성, 관례성과 혁신성, 그리고 확정성과 재고찰이 교차되는 텍스트 이벤트적 성격에서 온다고 하겠다.
  문학 텍스트이기 이전에 텍스트란 본래 어떤 통화체이며 우리의 경험 지식과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 살펴보자.
  

3. 텍스트와 배경 지식

  텍스트는 표현들이 이루는 언어적 구성체라기보다는 통화자가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인지적 구성체다. 텍스트는 언제나 추론을 통해서만 이해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고 정보의 흐름이 안정성을 회복한다. 즉, 텍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미완성체이며 수용자의 머리에 비축된 경험 내용 및 배경 지식과의 상호관련 속에서만 처리되고 이해된다.
  

    3.1. 텍스트 대 문장

  ‘텍스트’의 성격은 ‘문장’과의 대비 속에서 가장 쉽게 포착된다. 추상적으로 대비되는 그들의 대표적 국면은 다음과 같다.

텍스트 문 장
1. 구체적인 실현 체계인 글이나 말 앞으로 실현 또는 동원될 잠재 체계
2. 문법성은 기준치일 뿐 필수요건이 아니고 용인성(acceptability)이 중요함 순수한 문법성에 의존하며 용인성은 논외의 문제임
3. 발화 상황에서 적합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야함 상황에 무관하며 따라서 화용과 무관한 이론적 단위
4. 하나의 의도와 목표를 지닌 언어행위 행위가 아닌 추상적 단위
5. 지식, 감정, 사회적 상태의 변화를 도모 하는 과정적 요인 정(靜)적 공시성을 지니는 언어 체계적 요소
6. 전제(前提)가 되는 것은 공적, 개인적 경험 안에 있는 여타 텍스트 텍스트가 아닌 여타 문장을 전제로 함
7. 문법 지식과 경험 지식 모두에 의존함 문법 지식에만 의존
8. 학제적 종합적 성격 순수한 언어 체계에 국한
9. 구체적인 유형을 띠고 이에 상응하는 기능을 실현함 텍스트 유형과 무관하며 화행과 문장 유형이 있음
  
  다시 말해 문장은 문법적 개념으로서, 동적 언어 행위가 아닌 정적 언어 체계를 이루는 추상적 이론의 단위이며 장차 담화에 동원되어야 할 가능 체계에 속할 뿐, 구체적 상황에서 화자가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수행하는 의사 소통 행위의 매재(媒材)로서의 언어는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사적 요소인 구체적 시간, 장소, 동기가 배제되고, 화·청자의 구별마저 없는 중립적, 비자연적 언어 단위이다.
  이에 비하여 텍스트는 구체적으로 발화된 자연 언어로서의 의사 소통 매재이며 문법성보다는 적합성, 용인성 등이 더 문제된다. 담화·텍스트란 발화시의 상황과 맥락에 알맞은 언어 행위로서 텍스트로 인해 발화의 상황과 상태가 바뀌거나 다른 단계로 옮겨 가는 역동성이 있다. 본질적으로 이는 하나의 행위이되 신비스러울 만큼 수많은 가닥으로 엮어진 대상(objects)과 사상(events)의 복잡한 연결망으로 하나의 구성체를 이루니, 어느 한 국면의 규명만으로 텍스트의 역동성을 파악하기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담화·텍스트란 이 세상의 단순한 반영이나 표상만은 아니며, 개인의 사적 상념을 전달하는 매개체(vehicle)만도 아닌 삶의 여러 상황과 국면의 조정·관리 수단이라는 점을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담화·텍스트를 통해서 우리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하고 조직화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직접 경험한 바 없는 삶의 여러 국면의 언어적 조정·관리도 가능해진다. 대안적 상황도 이를 통해 구성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타협이나 재평가 등이 텍스트 행위를 통해 가능해진다(보그란데 1988:3, 프코 1972: 49, 샤터 1995: 96). 다시 말해서 담화·텍스트는 이미 존재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인간 형태를 가능케 하는 시도와 연계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언어의 새로운 사용이 삶의 새로운 형태를 낳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문학 텍스트의 대체성 원리를 이미 논의한 바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하는, 즉 언어의 탄력성과 창조성을 낳게 하는 언어와 배경 지식의 상호작용을 논해야 할 차례다.
  

    3.2. 텍스트의 언어와 배경 지식의 상호작용

  텍스트 어사(語辭)들의 개념 및 개념 관계들은 활동 기억 장치(active storage)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정신 작업 공간 안에서 어사들에 의해 활성화된다. 여기에 활용되는 우리의 지식은 전국적(global) 인지 패턴의 모습을 띠고 맥락에서 적절히 동원되는데, 즉 발화체(말·글)는 다만 단서가 되어 필요한 인지 패턴들을 당면 과제에 따라 동원, 통합, 수용하면서 주제나 텍스트 세계의 구성을 성립시킨다. 더욱 우리 지식의 어떤 항목이 활성화되면 기억 장치 안에서 그 항목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 다른 항목들도 활성화되는데(확대 활성화) 이들은 모두 전국적 인지 패턴들의 여러 유형들로서 동일한 기본 지식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공유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밝히는 위와 같은 지식 모델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의 저장과 탐색에 경제성을 기해 주고 그들 상호 간의 타협관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우리 배경 지식의 전형적 인지 패턴들을 가려 준다:
  
  프레임(frame) : 어떤 중심 개념에 관한 상식적 지식의 기술
  스키마(schema) : 프레임에 포함되는 어떤 항목들이 전형적으로 어떤 순서로 실행되거나 언급되는가, 즉 시간적 인접성과 인과관계로 맺어진 사상과 상태의 배열 순서
  플 랜(plan) : 의도된 목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사상과 상태
  스크립트(script) : 참여자들의 역할과 기대로 그들의 행위를 명시하기 위해 빈번히 호출되는 전형적 플랜(사전에 전형화된 절차가 있음)

  주제는 어떻게 전개되는가(프레임), 일련의 사상들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스키마), 텍스트 사용자와 텍스트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목표를 추구하는가(플랜), 적절한 시기에 특정(언술) 텍스트를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은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스크립트). 이러한 전국적 인지 패턴을 사용하면 국지적 패턴을 사용할 때 있을 복잡성을 격감시킬 수 있으며, 특정 시점에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활동 기억 장치에 보유할 수 있게 된다(보그란데·드레슬러 1995: 139). 이들은 동일한 기본 지식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며, 가령 ‘집-프레임’과 ‘집짓기 플랜’은 동일 지식의 상이한 관점을 다룰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다.
  텍스트의 생산과 이해는 이러한 전형적 인지 패턴의 사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텍스트 사용자의 배경 지식은 어사와의 패턴 일치화(pattern matching)를 통해서 텍스트 세계 구축에 참여한다. 이는 곧 추론의 메카니즘이며 이미 습득된 배경 지식들은 어떤 경우에서나 그 이상의 지식을 덧붙이기 위한 교량으로서 끊임없이 동원된다.
  이미 우리 기억에 저장된 일반 배경 지식과 텍스트가 제시하는 지식 간의 상호작용은 여러 체계적 경향을 띠고 나타날 수 있다. 보그란데·드레슬러가 지적하는 경향은 1) 텍스트 제공 지식이 저장된 지식 패턴과 일치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이해되거나 상기(recall)되며 2) 배경 지식인 프레임, 스키마, 플랜, 스크립트와 같은 전국적 인지 패턴의 어떤 주요 항목과 일치될 수 있을 때 우선적으로 처리(이해)된다. 3) 텍스트 제공 지식은 배경 지식 패턴과 일치하기 위해 처리 중 변경 가능하며 4) 텍스트 제공 지식의 특유한 요소라 해도 배경 지식과 연관성이 긴밀한 경우에는 서로 혼합되어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5) 텍스트 제공 지식은 이에 대응되는 세상사 지식이 우발적이거나 가변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소멸되고 복원 불가능해진다. 6) 확대 활성화나 추론을 통해 부가·수정·변경된 내용은 텍스트 제공 지식과 구별이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경향은 배경 지식의 다이나믹한 영향이 작용하는 인간의 의사 소통 행위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며 문학 커뮤니케이션의 구성적 대체 원리라는 상위의 처리 스키마 개념을 낳게 한다.
  텍스트성은 이러한 요인들의 교직(交織)으로 이루어지며 다음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 문학 텍스트성을 이루어 내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4. 텍스트성과 문학 텍스트

  보그란데·드레슬러가 제시하는 인지적 구성체로서의 텍스트, 즉 사고의 언어(표현의 언어만이 아닌)로서 지니는 텍스트를 이루는 요인들은 표층의 순차적 연결성을 이루는 결속 구조(cohesion), 심리적 요인으로서의 화자가 지향하는 의도성(intention), 청자 측의 텍스트 수용 태도인 용인성(acceptability), 사회적 요인으로서의 상황성(situationality), 정보의 예측성에 관여하는 정보성(informativity), 그리고 총체적으로 모든 텍스트에 전제되는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과 이 모든 기준의 주도적 요인으로서 텍스트 내용의 개념적 연결성을 기하는 결속성(coherence)이 있다.
  대체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문학 텍스트 세계 모델을 구축함에 있어 위 기준들은 더욱 역동적으로 교향(交響)하여 통합성과 작품의 문학성을 기하게 되는데 실은 이들이 텍스트 자체의 자질이기보다는 이를 처리하는 수용자의 성향에서 찾아진다. 즉 배경 지식의 어떤 인지 패턴들이 활용되는가, 이들이 어떤 연결 관계들을 자아내는가에 달려 있다.
  

    4.1. 결속 구조와 도상성

  결속 구조는 발화체의 연속 기능을 실현하는 표층적 요인으로서 통사 구조를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 포착하되, 여타 기준들과 상호작용하는 인지적 측면이 강조된다. 결속 구조에는 1) 구, 절, 문장 각 내부의 문법적 의존 관계와 2) 이들 사이에서 긴 폭의 텍스트 표층에 걸쳐 텍스트 세계를 이루는 사상(事象)과 상황의 내적 상호관계를 명시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이미 사용된 구조나 패턴을 재활용하고 수정·생략·압축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후자의 결속 관계는 정보 처리상 안정성과 경제성,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수법이며, 문법성의 경우와 달리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회기법, 부분 회기법, 병행구문, 환언(paraphrases: 내용 반복)과 대용형의 사용 등이 이에 속하며 기타 생략법, 접속법, 시제, 상, 억양 등의 뒷받침 역시 텍스트 세계를 구성하는 사상과 상황 간의 연속 관계를 나타내는 결속 구조다. 이는 프리도(Prideaux 1991)가 말하는 텍스트적 수사 원리(Textual Rhetoric)라는 보편적 인지적 원리에 해당하는데, 정보의 인지적 처리와 관련된 여러 제약에서 적절히 유도된 화용적 원리들(사회적 원리가 아닌)로서 1) 구체적인 시간상의 처리 가능성, 2) 형식과 내용의 투명성, 3) 신속하게 용이한 처리가 가능한가의 경제성, 그리고 4) 미적 가치를 표출하는 관점에서 담화의 결속 구조와 문장의 통사 구조가 인지적으로 작용하는 원리들이다.
  이와 같이 표층의 효과적 연결성을 기하기 위한 명시적 표지들인 결속 구조 장치는 하나의 지침일 뿐이며 무엇을 제시하고 지적하기 위한 텍스트 형상(text topography)을 보여 주는 어떤 인지적 조정을 위한 표지일 뿐이다(프롤리 Frawley 1987: 133). 그것은 텍스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조정된 기호적 체계이기 때문이다.
  결속 구조는 또한 언어의 도상성(iconic use)과도 관련이 깊다. 매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전달 방법 자체가 주제일 수 있기 때문인데(큐어튼 Cureton 1981: 183), 어떤 가치 또는 가치의 어떤 국면은 어떤 식으로든 언어 형식에 담겨질 수 있는 것이다. 형식을 통해서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게 되고 이런 면에서 내용을 능가할 수 있는 형식은 하나의 문체적 요소(trope)일 뿐만이 아니라 바로 문체 자체이며(타멘 Tamen 1995: 483), 가장 성공적인 작품에서는 내용보다 형식이 더 큰 기능을 갖는다. 아름다운 표상이야말로 형식을 통한 표상이요, 시적, 구성적 표상의 성격을 강조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다.
  따라서 우리는 형식에서 결여된 바를 형식을 통해 짜내야 한다는 역설을 대하게 되며 형식에서 짜낸 바가 곧 형식으로 하여금 의미를 갖게 한 바로 그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심미적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이러한 형식의 중요성에 의존하게 되며 시학은 형식으로서의 언어적 方法에 의한 전체의 표상 방안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어의 부각 작용(foregrounding)은 텍스트의 선형 구조에서 관찰되는 일련의 주의 집중 기법을 말하며 주로 결속 구조와 그 밀도(density)를 운위(云謂)하되, 결속 구조에서도 특히 밴 피어는 일탈(deviation)과 병행구문(parallelism)을 주목하고 있다(van Peer 1986: 20). 표층적 부각 현상은 음성, 어휘, 통사, 의미의 모든 층위에서 찾아지며, 주의 집중을 받은 텍스트 자질이 부각되는 것은 반드시 전체 의미 세계와 상관성을 지닐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 때 그 효과는 우선 오래 기억되고, 낯설음, 비자동성, 전체 해석에 기여하는 바, 의외성, 기이성 등을 보이는 현저성(prominence)과, 설명과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등에 있다.
  신경림(1993)의 ‘목계장터’에서 보이는 병행구문은 통사 조직이 시적 운(韻) 자체를 형성하며 시 전체를 담아 내고 있다. 이것은 T.S. 엘리엇의 ‘Ash Wednesday’에서 보이는 구문적 운(syntax as rhyme)과도 닮았다. 총 16행 가운데 ‘…은 (날더러) … 되라 하고/네’로 결속된 구문은 모두 10행이다. 어휘적 결속 구조로서 반복되는 ‘하늘, 땅, 산, 강’의 자연상과 그들이 권하는 바 ‘나’의 변신의 표상인 ‘구름, 바람, 들꽃, 잔돌’, 그리고, ‘천치, 방물장수, 떠돌이’의 환언 등이 있다.
  
   1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2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3 청룡 흑룡 흩어진 비 개인 나루
   4 잡초나 일깨우는 잔 바람이 되라네
   5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6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7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8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9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10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11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12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13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14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15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16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4.2. 결속성과 맥락 함축

        4.2.1. 결속성

  결속 구조(cohesion)가 텍스트 표층의 순차적 연결성을 다루는 기준이라면 결속성(coherence)은 텍스트 사용자의 마음 속에서 타협적으로 전개되는 의미와 의의(sense)의 개념적 연결성을 가리킨다. 국부적, 또는 전국적인 결속성이 어울려 주제 실현을 이루게 되는데, 이 때 의미와 의의(sense)는 폭넓은 과제들 속에서 지식을 활용하는 절차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지며, 의의의 연속성, 활성화, 의의 간의 연결 관계의 강도, 관련 의의의 상속, 확대 활성화 등이 결속성을 가져 오는 기제들이다. 여기서 의의라 함은 하나의 텍스트에서 표현들에 의해서 실현적으로 전달되는 지식을 말한다(보그란데·드레슬러 1995: 128). 보통 “의미가 있다”거나 “무의미한” 텍스트라면 활성화된 지식 간에 아무 연속성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말하며, 텍스트의 결속성은 여러 지식 개념들과 그들 간의 관계들이 발화체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적합하게, 일관성 있게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129). 이러한 결속성의 발견은 새로운 자아 발견을 통한 미적 경험을 맛보이게 한다(레이코프·죤슨 1980:35, 235). 이 때 그 텍스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표층 표현들이 끌어들이는 의의 이상이 포함되는 인지 세계로서 우리의 인지 과정에서 기대나 경험을 바탕으로 동원되는 전국적 인지 패턴(본문 3.2 참조)들의 관여가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개념적 의의들은 어떻게 지정되고, 그 의의들은 텍스트 세계라는 하나의 인지적 구성체로 어떻게 조합해 들어가는가. 한 표현의 의의나 개념은 현재 처리되고 있는 패턴 안에서 인지적 요소들을 유발하고 활성화하는, 일정 순서로 배열된 일련의 가설들이라고 볼 수 있다(보그란데·드레슬러 1995: 133). 이들은 정신적 작업 공간인 활동 기억 장치(active storage) 안에서 각 표현에 의해 활성화된 것이다. 이 공간 속에서 전국적 인지 패턴들의 모습을 띤 지식들이 적절히 대응하고 세분화되어 출력(쓰기) 또는 입력(읽기)된다. 이 지식 패턴들은 당면한 처리 과제의 요구에 따라, 즉 주제의 방향에 따라 적합한 인지 패턴을 선택하여 하나의 텍스트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우리 지식의 어떤 항목이 활성화되면 기억 안에서 그 항목과 밀접히 연결된 다른 항목들도 따라서 활성화된다. 이러한 확대 활성화 작용(spreading activation)은 텍스트 세계의 풍부한 세부 항목 사이를 중개할 수 있고 따라서 텍스트 이해 과정에서 여러 가설을 창출하고 여러 심상의 전개를 가능케 한다(135).
  이와 같이 인간의 인지 속에 내재하는 추론 능력과 경험 내용은 텍스트 사용에서 큰 역할을 한다. 텍스트를 활용한다는 것은 결코 비체계적이지 않은 어떤 조건하에서, 제시된 텍스트 자료와 참여자들의 성향 사이에 꾸준한 상호작용과 타협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137). 확실히 전통적 논리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복잡한 추론 과정, 즉 가설 설정(abduction)에 의해서 지식과 의미는 맥락에 지극히 민감하게, 즉 사람들의 사전 지식, 성향, 표층 문체, 사용자의 기대 내용 등의 변수에 민감히 대응하면서 개념의 지속성을 꾀하게 된다.
  개념들이 의의의 연속성을 구축하는 단계는 주의 집중의 방향, 즉 제어 중심(control center) 개념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는 액세스 및 정보 처리가 요령 있게 수행될 수 있는 제1차 개념들 즉 대상물, 상황, 사상(event), 행위 개념이 그 후보가 된다. 이들 1차 개념들을 연결해 주는 제2차 개념들은 격 문법 개념들과 유사한 상태, 동작주, 피동 객체, 관계, 속성, 장소, 시간, 운동, 수단 개념들이 있고, 지식의 분류와 구성을 이루는 형태, 부분, 실질, 포함 관계, 원인, 실행 가능화, 이유, 목적 개념들, 그리고 정신 작용과 관련된 지각, 인지, 감정, 의욕, 인식, 의사 소통, 소유 개념이 있으며, 의의 체계에 내재하는 법, 의미상, 가치, 등가성, 대립, 공지시성, 회기 작용이라는 개념들이 있다. 이 모든 개념들은 하나의 텍스트 세계를 구축하는 ‘망표기’를 생성시키며, 이때 주제를 나타내는 연결 관계의 밀도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여러 다양한 층위와 종류의 개념들의 지속적 타협과 발전 과정을 의미하는 결속성은 따라서 텍스트 자체보다는 이를 산출하고 수용하는 마음의 자질에 있다. 각 담화 영역 특유한 어휘 지식과 문법 처리 단서의 도움으로 인지적으로 구축되되 국부적, 전국적, 두 단계에서 전개된다.
  문학 커뮤니케이션에서 결속성은 우리가 언어 예술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통일성, 새로운 자아 발견을 경험할 때 가능하다. 가령 은유 작용은 어떤 한 경험을 다른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며 상위에서 구조화된 스키마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통일성, 결속성을 창출한다. 그래서 새로운 은유는 새로운 의의의 결속성과 일관성의 성립을 뜻하며, 이는 또한 새로운 현실 경험의 새로운 구조화를 경험케 한다(레이코프·죤슨 1980: 235 참조). 쿡(Cook 1994: 191)은 다음과 같은 나무 꼴로 담화에 개재하는 스키마와 그 새로운 구조화를 가려내고 있는데 이는 문학 커뮤니케이션의 스키마 갱신의 성격도 아울러 제시해 준다.
  

  

        4.2.2. 맥락 함축과 해석

  문학 텍스트에서 결속성은 이와 같이 중의적이며 다차원적이고, 지시성이 불명확하다. 읽기 과정에 있어 1) 우선은 텍스트 자체가 제공하는 명제들을 지각해서 담화 처리한 다음 2) 독자의 배경 지식에서 오는 맥락 정보 속에서 새로운 명제들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텍스트 자체가 제공하는 명시 의미(explicature)와 독자가 제공하는 맥락 정보와의 합성은 새로운 맥락 함축(implicature)을 낳고 이들은 작품 해석에 당연히 동원되어 새로운 작품의 결속성을 탐색·경험케 한다. ‘목계장터’의 두 시행에서 얻어지는 명시 의미와 맥락 함축을 가려 보자.
  
  본문 명제(=명시 의미)
  (전제1)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맥락 정보 : (독자 제공)
  (전제2)
구름과 자연은 무위자연의
정처없이 떠도는 거리칠 데 없는 자연물이다.
  맥락 함축 :
  (결론)
그러므로 우주는 날더러 이 세상 모든
인연에서 풀려나 집착을 버리고
무애(無碍)의 경지에 들라 한다.
  
  슈미트(Schmit 1983: 255)가 작품의 해석 과정을 가리켜 하나의 구성적 과정이라고 일컬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의미는 텍스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독자)의 능력과 의지에 입각한 하나의 구축 과정에서 참여자가 텍스트에 부여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문학성이 곧 텍스트의 속성이라기보다 텍스트 처리자의 성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텍스트의 이해란 곧 텍스트에 대한 의미 부여이며, 해석 과정은 텍스트가 제공하는 개념 구조와 참여자의 경험 세계로 이루는 개념망, 그리고 어떤 프레임들이 상호 어떤 관련성을 지니느냐를 결정해 주는 개인의 전기적, 사회적, 문화적 경험에 의존하는 하나의 의미 구축 과정이다.
  맥락 함축이야말로 새로운 의미나 명제의 탄생이며 독자 자신이 텍스트와 컨텍스트에서 논리적 관계를 거쳐 합성적으로 도출하는 새 정보다. 과거 문학 연구모델들은 발화의 의미내용과 그 논리적 결과, 즉 함축 의미의 생성으로 가미된 의미 내용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바로 이 점이 문학의 합리적 연구 모델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이유라 하겠다.
  추론을 통한 텍스트의 수용 과정을 다음과 같은 맥락 함축의 생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작자의 명제
(텍스트 제공)

+

독자 제공 명제
(맥락 정보)

맥락 함축
(합성적 신정보)

  
  스퍼버·윌슨은 비록 언어의 부정확성과 무한수의 맥락 정보라는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 체계적, 원리적 해결 방법이 가능함을 그들의 적합성 이론으로 규명하고 있다. 즉 한 언술의 맥락 함축은 전단계 이해 행위 결과인 새로운 컨텍스트에서 또 다시 창출되는 신정보이며, 이는 바로 작품의 해석에 기여하는데, 해석이란 한 묶음의 이미 처리된 정보에다 또 하나의 새로운 텍스트 언술과 관련 맥락 정보가 첨가됨으로써 다시금 새로운 맥락 함축을 얻어 내는 작업이다.
  ‘목계장터’의 결속성을 살펴보면 우선 시제 ‘목계장터’에서 나루터 프레임, 장터 프레임 그리고 ‘목계’라는 시인의 아호로서 떠올리는 그의 원망(願望), 생의 굴곡, 마음의 풍경 등이 떠올려진다. 이 시의 주되는 제어 중심 개념은 하늘, 땅, 산, 강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이 권고하는 바 ‘나’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애(無碍)의 경지를 자유로이 떠도는 구름, 바람, 들꽃, 잔돌들처럼 저 낮은 곳에서 항심(恒心)을 가지고 오래 오래 견딜 수 있는 모진 생명력을 상징하는 지극히 평온한 것들이고 이를 인간계의 직능이나 정신 세계로 다시 표현하자면 정처없이 떠도는 장사치인 빛 바랜 방물장수나 천치(진)스러운 떠돌이가 될 것이다. 결구인 15, 16행에서는 하늘의 바램(구름)을 땅의 바램인 바람으로 대치하고 산의 바램(들꽃)을 강의 바램인 잔돌로 환치함으로써 반복과 생략과 환언의 절묘한 일치를 자아내며 ‘나’와 자연의 합일을 절실한 바램으로 휩싸며 목계나루 장터의 낭만을 피워 낸다.
  
  권고 주체와 바람직한 <나>의 변모 :
                           <나>의 변모
  권고 주체
자연계 인간계 (환언)
하늘 구름(1) 방물장사(7) 바람
바람(2)
잔바람(4)
들꽃(8)  천치(13)
떠돌이(14)
잔돌
잔돌(9)

  각 행에서 어느 정도의 불연속성, 애매성을 보이는 표현들은 그 명시 의미(explicature)를 쉽게 복원할 수 있다:
청룡(같은 청회색 구름) 흑룡(같은 먹구름)들이 말끔히 가신 비 개인 나루
(하찮은) 잡초나 (흔들어) 일(으켜)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⑤ 뱃길이라 서울({ 부터
에서
}) 사흘(이나 걸려 온) 목계나루에
⑥ 아흐레({
}묵어 가며) 나흘(째나 고객을) 찾아(다니며) 박가(가 만들어 파는 화장품)분(을) 파는
⑦ { 희미한
따가운
} 가을볕(마저)도 (나로 하여금) 서러운 (신세타령이 나오게 하는) 방물장사(가) 되라네
산(속) 서리(가) 맵(고 몹시) 차거든 풀 속에 얼굴(을) 묻고
물(이) 여울(목에서) 모질(게 구비쳐 흐르)거든 바위 뒤에 붙(어 의지해 있)으라네.
민물새우(찌개가) 끓어 넘는 (냄비를 놓고 둘러앉은 기와집 대청마루가 아닌 좁은) 토방 툇마루(에서)
  총체적인 병행 구조인 ‘날더러 · · · 이 되라 하네’는 내 마음은 실상 지금 그렇지 않(못 하)다는 아쉬움의 토로가 여운으로 남는다.
  텍스트와 독자가 합성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맥락 함축을 가려 보면
  ③~④ 나루터의 폭풍우 휘몰아치듯 심각한 사태가 가라앉은 바로 뒤에 날더러 평온한 잔바람이 되 보라 하니 어려운 또는 의외의 주문이라네   ⑤~⑦ 긴 시간이 걸려 지쳐서 찾아 든 목계나루 장터에서 또다시 서러운 신세의 빛바랜, 유행에 뒤지고 시대에 뒤진 (한 가지를 전문으로 파는 이가 아닌) 방물장사가 되라네.   ⑧ 야생의 소박한 그러나 생명력이 강한 고고한 존재 가치를 누려 보려나.   ⑨ 강에서는 크기가 문제되지 않는 물을 맑혀 주는 잔 돌맹이가 더욱 중요하다   ⑬~⑭ 주기적으로 3년에 한 일 주일쯤은 멍청히 쉴 수 있게 마음을 비워 보라네
  그밖에 개념들의 확대 활성화가 보이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혼란스러운 사회상이나 어떤 심각한 사건이 진정된 후
하찮은 인생의 자디잔 일거리나 직능을 가져 보라지만 그것 역시 매우 가치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가을볕이 서러운 것은 이제 곧 겨울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계절이기 때문인가; 엷은 햇볕이 으스스 추운, 아니면 따가운 가을볕 때문인가
  스퍼버·윌슨의 인지적 화용론은 맥락 함축과 관련된 이러한 해석 과정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텍스트 언어학의 결속성 문제를 다루면서 적합성 이론을 도입해 해석 문제를 아울러 고찰해 보았다.
  

    4.3. 의도성과 용인성

  의도성과 용인성은 화자와 청자의 태도와 관련된 텍스트 기준이다.
  

        4.3.1. 의도성

  말이란 어떤 목표를 지닌 화자의 의도 표명이다. 의사 소통에는 반드시 의도와 관련된 화자의 태도가 비쳐지게 마련이며, 이는 두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우선은 모든 요건을 최소한 다 갖춘 텍스트를 성립시키겠다는 의도로서, 표층 차원에서나 내용 면에서 발화의 일관성이 기해진 텍스트를 의도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의도성은 텍스트 전체가 화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모든 방식에서 찾아진다.
  담화 행위는 상황과 참여자들의 지식 상태, 사회 상태, 감정 상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각 참여자들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플랜(plan)에 대하여 담화가 도구로서 사용됨을 뜻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플랜 작성자의 입장에서 상황 점검이나 상황 관리를 도모해 플랜을 실행하는데, 대화 참여자 쌍방 간의 상호 협동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에서 대화의 플랜은 상호적 플랜 작성(interactive planning)이 된다.
  본래 말에는 청·화자가 기본적으로 서로 지키려는 협동의 원리(Grice 1975)가 작용한다:
협동의 원리: 당신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지금 그 상태에서 지향한다고 인정되는 목적이나 방향의 요청에 기여하도록 만들라(Grice 1975: 45).
  필요한 만큼의 정보량만 제공한다는 양(量)의 격률, 진실한 내용만을 제공한다는 질(質)의 격률, 목적·주제·상황에 적합한 것만을 다룬다는 관계의 격률, 그리고 텍스트 내용을 배치하고 전달하는데 있어 의도가 명쾌히 드러나게 애매성, 중의성을 피하고 간결하게 순서대로 표현한다는 표현 방법의 격률 등이 협동의 원리를 이룬다. 의도적으로 이들 중 어느 한 격률을 어긴다는 것은 곧 새로운 함축 의미를 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담화를 하나의 계획된 ‘플랜 행위’로 보고 ‘플랜 구조’와 ‘플랜 인정’의 개념들을 활용하고 있다. 더욱 집단적 사회행위로서의 공동 플랜, 즉 집단적 지향성의 성격도 규명하려 한다. 문학에서 특히 집단적 지향성은 중요하다. 집단적 담화 행위가 비록 개인의 담화 행위의 집합이기는 하나 그 지향성은 개인 의도로 축소될 수 없으니 문학에서 원초 개념은 어디까지나 집단적 지향성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향성 또는 의도성은 인간의 논리적 사고의 입력인 동시에 곧 출력이며 실질적 추론 행위의 방향을 조정하는 강력한 텍스트성 기준이다.
  단편소설 “고욤나무”(정지아 1996)에서 화자가 어릴 때 다니던 ‘봉산약방’ 아줌마를 회고하는 대목이 있다. 아래와 같은 상황 점검 또는 상황 관리(본문 4.4 참조)를 위한 언술은 모두 약방 아줌마 자신의 의도를 성취하기 위한 플랜에서 나온 것이며, 이 단편의 화자 또한 이러한 텍스트 재료를 통해 약제사의 도덕성이나 책임감 등의 차원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약국과 대비시키고자 한다.

[의도/플랜]
약방 아줌마: 워디가 워치게 아픈디? (상황 점검)
[환자들의 끝없는 주절거림] (약을 지어 받기 위한 환자들의 플랜)
약방 아줌마: i) 이거 갖다 먹어 봐  (환자의 주절거림을 한마디로 끝내기 위한 상황 관리)
환자:

ii) 병원에 가 봐야 쓰겠구만
아이고 아줌씨, 존일로
우리 쪼까 살려주새오이.
(조제를 거절하는 상황 관리)
(병원 출입을 피하기 위한 상황 점검)
  
  한편 시 ‘목계장터’의 의도성은 전통문화의 재창조 및 기층민에 다가서는 진솔한 삶과 무위자연을 지향하는 시인의 자아탐색에서 아울러 찾아진다. 물론 이 시에 깔려 있는 저항 의식은 반복되는 ‘날더러…… 되라 하네’의 통사 구조와 더불어 텍스트의 모든 명제들이 이를 명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실로 의도성 또는 지향성은 논리적 사고의 입력소인 동시에 더욱 그 출력소로서 꾸준한 화자의 태도 표명이다.
  

        4.3.2. 용인성

  어떤 말이나 글이 외적으로 불충분한 형식을 취했거나, 내용의 명확성이 없을지라도 청·독자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텍스트로 용인코자 하는 긍정적 마음가짐이 작용한다. 텍스트 이해에 있어 사소한 불연속성이나 장애 요소가 있어도 문제해결 능력 또는 추론 능력을 동원해 비문법성, 생략 부분, 불합리성 등을 해결하고 정상으로 회복하려는 수용자의 측면이 있다. 텍스트의 생산과 수용은 하나의 개연적 조작이며 문법이란 퍼지(fuzzy)한 일련의 지침일 뿐, 문법성도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이니, 실제로 중요한 것은 어떤 한 문장을 성립시키게 되는 그 맥락이다. 따라서 ‘문법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요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립시키는 용인성의 한 부분일 뿐이다. 문장을 넘어서 구체적 상황 맥락 안에서 생산되는 텍스트에서 용인성은 더욱 그 개념이 명확해진다.
  더욱 문학 담론의 복합적 구조나 다성성(多聲性)과 관련해서 적합한 맥락을 독자 스스로 선택하여 텍스트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용인성이 그 기반이 된다. 스퍼버·윌슨의 적합성 이론은 담화에서 적합성이란 이미 주어진 것이며, 청·독자의 몫은 무한히 열려 있는 맥락에서 가장 적합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가령 ‘목계장터 5, 6행’을 성립시키는 맥락은 독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용인성은 다름 아닌 텍스트 각 어사들의 맥락적 적합성의 인정이요, 어떤 담화도 이미 자체의 적합성의 준거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해 준다. 이는 바로 ‘적합성 원리’와 일치하며 시텍스트에서 특히 가장 두드러진 불연속성에 대한 독자들의 탄력적인 수용 태도야 말로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4.4. 상황성 및 상황 점검과 상황 관리

   상황성은 하나의 텍스트를 현재의 담화 상황 또는 복원 가능한 상황에 적절히 관련지어 주는 요인을 말한다(보그란데·드레슬러 1995: 243). 담화자들은 텍스트를 사용해서 중간 조정(상황 점검 또는 관리)을 함으로써 담화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데 목적을 위해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술을 할 수도 있고 또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답함으로써 상황이나 사태를 점검하는 것을 상황 점검이라 한다(situation monitoring). 가령 “고욤나무”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 점검으로 시작된다:
그는 언제나처럼 서서히 밀려나는 어둠의 뒷자락을 보고 있었다. 창문 쪽의 가구들부터 지난 밤의 어둠을 털고 하나둘씩 되살아났다. 마침내 구석진 책상 위에 놓인 시든 국화꽃에도 희미한 빛이 내려앉았다. “고욤나무” 첫머리에서
  또한 김동기(1996)의 희곡 “꿈꾸는 연습”에서는 여주인공이 세상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그저 어린아이의 종잡을 수 없는 심술 같은 것이었어요”라고 점검하고 있으며 삶이란 하나의 “꿈꾸는 연습”장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요. 어쩌다 절망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붙잡을 어떤 희망의 부스러기도 없을 때 차라리 악이라도 써야 했어요. 그러나 이젠 기다리는 것이 끝내 오지 않는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꿈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꿈이 없는 세상은 더 살 수 없으니까요. 후후후하하하.(반복한다)
  화자와 청자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개념을 지닐 때 빈번히 일어나는 것은 상황 점검이지만 텍스트 생산자가 자신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상황을 바꾸고 조정해 나가기 위해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은 상황 관리(situation management)라 한다. 실제로는 상황 관리가 목적이면서도 단순한 점검을 가장할 수도 있다. 이는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특정 플랜을 세워 이를 시도하는 것인데 가령 희곡 “꿈꾸는 연습”에서 작자는 하나의 극적 사건과 그 진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생이야말로 하나의 꿈꾸는 연습장이라는 실감을 갖도록 텍스트를 통해 유도해 간다. 즉 치밀한 플랜으로 산출된 이 희곡은 등장 인물, 특정한 때와 무대 상황을 설정하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극적 사건과 일련의 대화(상황 점검)를 통하여 독자로 하여금 마침내 인간의 삶이란 무채색 풍경에서 벌리는 꿈꾸는 연습일 뿐,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는 몫은 언제나 그 2차원 무채색 풍경일 뿐”임을 절감케 한다.
  상황 관리의 예는 또한 일정한 목표를 위해 상황을 바꾸려고 에피소드적 텍스트를 사용하는 데에서도 볼 수 있다. “꿈꾸는 연습”에서 ‘나’가 끌어들이는 공원의 떠돌이 개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로 하여금 ‘나’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지면 관계로 예문 생략)
  

    4.5. 정보성의 격하와 격상

  수용자에게 제시된 텍스트 정보는 매우 새롭거나 의외의 신정보일 수도 있고, 이미 알려진 구정보이거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내용 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언어 체계의 모든 층위에서 정보성을 논의할 수 있으니 어떤 표현이 음운이나 통사·어휘층에서 수용자에게 얼마만한 주의 집중 대상이 되는가에 따라 정보성의 부차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고욤나무”에서 ‘아줌씨, 아줌씨’는 동리 약방에서 약을 조제해 주는 여인에 대한 통칭으로 그 격과 전문성의 부실함을 잘 나타내 준다. 통사·어휘층의 의외의 만남은 참신성을 더해 주면서 흥미를 유발한다: “시든 햇살을 등에 지고,” “305호의 뒷모습” 등(“고욤나무”에서).
  발화체의 일반적 개연성(probability)을 놓고 높고 낮은 정도의 3단계 정보성을 가려 볼 수 있는데 제1차 정보성은 결속 구조나 결속성 그리고 플랜 측면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예측 가능한 자료일 때를 말한다:
방에서 약국으로 연결되는 문에 서서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흰색 블라인드가 가려진 창이었다. 왼편 벽면에는 다섯 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진열대가 천장 바로 밑까지 닿아 있었고 “고욤나무”에서
  위 묘사는 약국 안의 사물들의 위치를 나열한 자명한 내용들이며 각별한 주의 대상이 안 되는 평범한 내용과 어순과 기능을 갖는다. 이와 대비되는 다음 묘사는 주의를 요하는, 개연성이 그리 높지 않은 발화체로서 즉 제2차 정보성을 얻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다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여전히 약국 유리문 안, 그 안의 약제실 창안에 갇힌 채였다. 어떤 물고기도 저 창을 뛰어넘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칠흙같은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대륙붕의 낮은 압력과 햇살을 견딜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연안의 물고기들이 심해로 내려가면 압력 때문에 터져 죽고 만다. 결국 물고기도 사람처럼 제가 사는 곳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약국은 그의 바다였다. “고욤나무”에서
  위 글은 약국 조제실 안에서 심해의 물고기처럼 외계와의 차단 속에서 안정을 누리는 약제사를 묘사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제2차 정보성을 보인다. 심해어와 약제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약제사를 비교함으로써 이해의 지속성을 꾀하고 있다.
  의사 소통의 저해를 가져올 수 있는 정도로 연결 관계가 낮은 발화체를 제3차 정보성 텍스트라 하는데, 이는 규정적 지식에 어긋나는 발화체로서 이러한 텍스트는 그 동기 탐색을 거쳐 2차 정보성으로 격하하여 이해의 연속성을 기해야 한다.
그는 305호의 시선을 받은 고욤나무가 어느 순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305호는 오래도록 나무의자에 기대앉아 고욤나무를 보고 있었다. 그는 305호가 바다 속 깊이 내려앉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헝클어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그 순간 심해에 사는 물고기 치고 빛을 내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찰나일지라도 단 한 순간쯤은 모든 물고기가 지금까지의 어둠 전체를 밝히고도 남을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고욤나무”에서
  305호 아파트 남자는 무심코 서 있는 고욤나무를 눈여겨보면서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밝히고도 남을 찬란한 빛을 발견한다. 즉 어떤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의 포착이다.
  3차 정보성 글의 동기를 탐색함에 있어 전향적, 후향적 격하(downgrading) 또는 격상(upgrading)이 가능하다. 다음 글은 바로 위 글의 정보성의 후향적 격하를 가능케 한다. 즉 텍스트의 앞선 부분으로 되돌아가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는 이파리도 열매도 볼품이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아도 고욤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잔바람을 이기며 누구보다 두툼하고 싱싱한 잎사귀를 피워 올렸다. 햇빛 때문이었을까. “고욤나무”에서
  고욤나무의 흔들리지 않는 존재에 시선을 집중시킨 305호 남자의 내면은 한순간 심해어를 닮아 빛을 발하게 됨을 화자인 약제사는 감지한다. 텍스트의 훨씬 더 앞부분에서 약제실 속에 갇혀 사는 약제사 자신을 심해어에 비교한 대목 역시 정보성의 후향적 격하를 가능케 한다(예문 생략). 이렇듯 화자인 약제사 자신과 고욤나무, 그리고 305호 남자는 삶의 조건으로서, 아니 한 존재의 특권으로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메시지를 얻게 된다.
  우리의 일반적인 기대나 개연성의 근거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에서 온다. 현실 세계의 보편적 경험이 기준치가 되고 이에 따라 정보성 차원이 가려진다. 또한 언어의 구성적 측면에서는 적격성(well-formedness)이 기준이 되며, 인지적 측면에서는 억양, 어순에 따라 정보성이 좌우된다. 정보성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요인은 텍스트 유형이다. 가령 시텍스트에서의 유별난 언어형식은 오히려 예측되는 바로서 여타 텍스트에서보다는 정보성이 높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다.
  코텍스트(cotext: 앞선 글) 역시 기대와 관련되어 정보성을 좌우하게 되는데, 어느 한 유형의 문체가 일관성 있게 쓰이다가 갑자기 다른 문체가 도입됐을 경우 정보성의 격상을 의미할 수 있다. 가령 “고욤나무”에서 다음 말투는 1차원에서 2차원 정보성으로의 격상을 가져온다:
  
    손님: 아줌씨, 아줌씨
    약방 아줌마: 워디가 워치게 아픈디?
  
  즉 상대를 불문하고 “찍어누르는 듯한 반 말”을 사용하는 약국 여인의 말씨야말로 환자에 대한 그녀의 무차별하고 만용에 가까운 조제 행위와 무책임성, 양심의 부재, 정서적 불감증 등을 엿보이게 한다.
  

    4.6. 상호텍스트성 및 텍스트 유형과 구성 스키마

        4.6.1. 상호텍스트성

  모든 텍스트는 이를 생산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텍스트 사용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사전 지식에 의존한다. 이는 에피소드어(語)처럼 사연이 있는 어휘 한 마디와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고 텍스트 인유(引諭)처럼 잘 알려진 기존 텍스트 전체를 통해 당면 과제를 산출·처리할 수도 있다. 또한 여러 텍스트가 일정한 전형적 특성을 공동으로 지니고 있으면 하나의 텍스트 유형을 이루면서 동일한 생산·수용 책략에 관여한다.
  상호텍스트 관계에 있는 텍스트들은 중간 조정을 거쳐서 현재 처리 중인 텍스트에 지식을 주입시킬 수 있다. 더욱 현재 처리 시점과 과거 이를 수용했던 텍스트 처리 시점의 처리 행위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중간 조정의 폭도 커진다.
  에피소드어(episodic word)는 현재 처리 중인 텍스트에 다채로운 의미 내용을 들여올 수 있으니 “고욤나무”에서 ‘칸트’선생이나 “목계장터”에서의 ‘박가분’ 등은 우리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 텍스트를 현재 처리 중인 텍스트에 들여옴으로써 작품의 부피와 분위기에 기여한다(예문 생략). 시계와 같이 정확히 산책시간을 지켰다는 철학자 "칸트"의 일화는 널리 알려진 바이고 ‘목계장터’의 “박가분”(朴家粉)은 박씨 가문(현재 두산그룹의 전신)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가가호호 방물장사로 하여금 팔게 한 근대 화장품의 효시인 고형 분이다. 지금은 사라진 우리 전통문화의 한 면모를 텍스트 세계로 들여오는 단서이다. “목계장터” 역시 시의 제목이자 시인 신경림의 아호임을 기억할 때, 그리고 조선조 영남으로 세곡을 쌓고 나르는 가흥창(可興倉) 터의 건너편 나루임을 기억할 때, 시인이 그리는 고향의 여운이 남아 있는 나룻가 장터라는 시텍스트 자체의 장으로 중요해지며, 더욱 시인 자신의 궁극적인 자아 탐색의 장임을 제목으로서 제시한 셈이다.
  원리적으로는 텍스트 생산자가 기존의 어떤 텍스트라도 인유(text allusion)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처리 노력을 줄이며, 쉽게 이해되기 위해서 잘 알려진 텍스트가 흔히 활용된다. 한 예로써 1600년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정열적인 시 ‘목동이 그의 연인에게’는 월터 롤리경의 ‘목동에게 주는 님프의 화답’이라는 반박의 시를 낳았고 이는 1912년 죤 단이 쓴 풍자시, 그리고 세실 데이 루이스가 1935년에 쓴 파괴적인 또 하나의 시를 낳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을 뒷받침하는 텍스트 인유의 예들이다(보그란데·드레슬러 1995: 282). 우리의 고전 ‘춘향전’이 여러 시각에서 뿐 아니라 시대 변천에 맞추어 여러 장르에서 재구성되는 예도 바로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에 연유한다.
  

        4.6.2. 텍스트 유형

  일정한 전형적 특성을 공유하면서 동일한 생산·수용 책략에 관여하는 텍스트 유형들은 기능적 노선에서 규정되는 바, 기술적 텍스트(descriptive text)는 대상물이나 상황의 지식 공간을 풍부하게 하는데 기여하며, 속성, 상태, 사례, 특정화의 개념 관계가 활발하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인지 패턴은 프레임이 우세하다. 화술 텍스트(narrative text)는 행위와 사건이 각별한 순서로 배열된 텍스트로서 원인, 이유, 목적, 실행 가능화, 시간의 인접성 등의 개념 관계가 주가 되며, 지식패턴은 스키마가 활발한 경향을 보인다. 쟁론 텍스트(argumentative text)는 어떤 신념이나 아이디어의 진위성 또는 긍정·부정적 수용·평가에 주로 관여하되 이유, 의미, 의욕, 가치, 대립 등의 개념 관계와 플랜과 같은 지식 패턴이 활발히 사용된다(보그란데·드레슬러 1995: 278).
  이와 같이 텍스트 유형은 일련의 정신적 기제로서 우리의 인지 작용에 깊숙이 관여하며, 일정 방향에서 작용하도록 미리 마련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적응 기법이다. 언제나 일관성 있게 상황 맥락을 다루도록 지침을 제공하는데 유형이 바뀌면 적용 기법이 달라지고 반응도 달라져야 하며 언어외적 현실 상황도 달리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장르를 통해 우리는 예정된 반응을 보임으로써 처리 노력을 줄일 수 있고 쑤르(1992: 10)가 지적하듯이 우리의 적응 방법이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4.6.3. 문학 텍스트와 구성 스키마

  문학 텍스트는 이상의 여러 텍스트 유형이 혼합된 특수 장르로서 제2장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현실 세계와 일정한 원리를 바탕으로 대체성 관계에 있는 텍스트 세계를 가지며, 여타 스키마의 상위에서 작용하는 구성 스키마(constitutive schema)의 통어를 받는다. 보그란데에 의하면(1987: 56) 문학은 1) 상위의 구성 스키마가 하위 스키마의 선택, 활성화 및 그 구성을 좌우하는 하나의 의사 소통 이벤트이며, 2) 이러한 상위 구성 스키마는 인간의 의사 소통에서 핵심 기능을 갖는 정보처리 스키마로서, 문학에서 가장 강력한 상위 스키마는 대체성 원리(principle of alternativity)라고 말한다. 즉 독자는 텍스트를 통해, 이미 수용된 현실이 아닌 또 하나의 대체 세계를 자유로이 또는 기꺼이 연상하고 구축한다. 더욱 시텍스트는 텍스트 언어 자체의 타협성, 대체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문학 텍스트의 하위 장르로서 면밀한 표층 텍스트 구성을 통하여 대체성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심미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문학적 글쓰기는 시공을 초월해 매개 조정될 수 있는 상당한 자율성을 지니며, 미리 커뮤니케이션이 숙고된 텍스트로서 대체성 원리를 기반으로 텍스트성이 증폭되는 것 외에도, 그 기능에 새로운 차원을 도입해 의미의 객관화를 기할 수 있고, 더욱 우리의 이성과 논리의 증폭마저 가능케 한다(밴 피어 1991: 130 참조). 이 때 그 형식은 각별히 부각된 것으로서 한 사회를 이어 주는 결속력과 성찰의 조직을 낳게 하고 심미적 즐거움을 체험케 하는 문학성의 준거를 마련한다.
  

5. 맺는 말

  문학 매재로서의 언어 연구에 필요한 것은 텍스트 이론과 추론 이론의 종합이다. 언어의 연구는 통화의 연구로, 텍스트 자체만의 연구에서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상관성의 연구로, 그리고 좁은 의미의 언어 능력이 아닌 인간의 총체적 능력을 의미하는 텍스트 사용 능력을 규명하는 학제적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하여 원초적, 사회적, 공적 경험이 어떻게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술(description) 속에 융합되는가, 그리고 시대 정신과 더불어 갱신되는 심미적 기준은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
  문학 텍스트의 가장 포괄적인 정의는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수용하는 바에 대하여 대체성 관계에 놓여 있는 세계를 갖는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대체적 세계 모델은 일반적으로 수용된 바 현실이 제외시킨, 제한시킨, 아니면 부정해 버린 삶의 어떤 국면이나 가능성, 잠재성을 언어 매재를 통해 제시하고 규명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문학이 심미적으로 우리의 지각을 갱신하고 그 새로이 지각된 경험을 통해 고정적 관념, 편견, 예측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담론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강요하고 참신한 욕구와 목표를 위해 우리의 의식 공간을 확충시킨다. 여기서 상업주의 문학이 다른 점은 고정적 관념이나 기대를 충족시키려 하고 이에 친숙해 있는 미적 욕구를 만족시킬 뿐이며, 익숙한 노선에서 감흥을 재확인하던가 오직 예측된 바 물음들을 제기하고 해답을 줄 뿐이라는 점이다.
  경험의 인지적 혁신을 꾀하는 문학적 통화에서는 어떤 사실이나 사상의 진위 문제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무한히 많은 의미를 개진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보그란데 1988: 365). 일련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함으로써 하나의 정립된 의미에 이들을 통합케 하며 텍스트 언어학에서 주장하는 대체성 원리를 바탕으로 실제의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사물과 사상의 구성을 가진 또 다른 세계를 예측하고 구상하기 위해 텍스트를 사용한다.
  구체적 기록물에서 비롯해 가공의 공상물에 이르는 하나의 지속대 어느 중간에 자리하는 문학 텍스트는 일상의 현실 세계와 어떤 면으로든 관련성이 열려 있고 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는 기능을 갖는다.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현실 세계란 실은 어떤 잠재적 국면이나 관점이 도외시되고 거부된 바로서, 그 제외되고 거부된 또 다른 세계가 제시되고 전개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특히 시텍스트는 우수하면 할수록 하나의 결정적 해석을 방해하고, 자연스러운 한 가지 이해를 성공적으로 지연시킴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방향 전환으로 새로운 일치성(패턴 일치화)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 즉 상위의 구성 스키마 작용으로 대체적 세계 모델을 실현케 한다.
  이는 마치 새로운 지도(地圖)를 문화 속에 투사하는 노력에 비길 수 있다. 독자 스스로 새로운 지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기 위한 인지적 도구가 문학 텍스트다. 이러한 노력은 독자로 하여금 달리는 표현될 수 없이 지나쳐 버렸을 새로운 정신적 지도 읽기를 감행케 한다. 이는 독자 측의 적극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그러나 단연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문학 텍스트는 지닌다.
  인지적 화용론에 속하는 ‘적합성 이론’에서는 시적 표상이란 하나의 복잡한 상념으로, 동시에 액세스 가능한 폭 넓은 일련의 약한 맥락 함축들로 이루어진다고 해명한다. 시적 표상 과정은 여러 차원의 맥락 탐색을 통해서 전형적 일상의 상정을 초월하거나 피하며(대체성 원리와 통하는) 거의 익숙지 않은 새로운 상정에 이르는 탐색 과정이며, 바로 이것이 심미적 경험의 핵심을 이룬다(필킹튼 1992: 49). 스퍼버·윌슨에 의하면 시적 효과란 한 언술이 폭넓은 약성 함축(weak implicature)을 통해서 적합성을 기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효과라고 정의한다(1995: 310 참조). 화자가 의도하는 강성 함축(strong implicature)과는 달리 독자는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맥락을 상정해서 화자가 의도하지 못했을 여러 함축 내용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약성 함축이다. 적합성 원리(principle of relevance)와 일치하는 방향에서, 즉 최소의 노력과 최대의 효과라는 인지적 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맥락은 서서히 적합한 일정 방향에서 찾아지며, 선택되고 확정된다. 이는 작품 전체를 통합적으로 탐색하는 가운데 기해진다.
  가령 ‘목계장터’의 한 시행을 바탕으로 우리 경험과 배경 지식에서 도출되는 강성 함축과 약성 함축을 가려 보자: ⑫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강성 함축:
1) 대청마루와는 달리 툇마루는 옹색한 자리다.
2) 그러나 오히려 다정하기 짝이 없는 자리이며 비싸지 않은 민물새우찌개 냄새가 구수하게 난다.
3) 툇마루는 우리 모두가 즐겨 앉았던 전통 가옥의 열려 있는 자리다.

  그러나 여러 맥락을 떠올려 다음과 같은 독자 스스로가 만드는 약성 함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약성 함축:
4) 이는 자연계와 인간계를 접속시키는 연결 공간이다.
5) 이는 좁은 공간을 심리적으로 넓게 지각케 하는 집안 공간이다.
6) 즉 자연을 수렴할 수 있는 공간이다.
7) 툇마루의 색깔은 왠지 회색의 으스럼이요 으스럼 정서를 자아낸다.
7ㄱ) 그 으스럼 속에서 근심, 걱정, 한(恨) 따위 정념을 투영·승화시키는 공간이 툇마루다.
7ㄴ) 고로 가정생활에서 말다툼이 손찌검으로 잘못 발전하는 것은 승화 공간인 툇마루가 없기 때문이다.
8) 툇마루는 한 마을에서 이웃간에 정을 다지는 인간적 연결 공간이다.
8ㄱ) 지금 우리가 이웃과 친할 수 없는 것은 툇마루 같은 연결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등등.
(이규태 코너: ‘툇마루’ 조선일보 1996. 2. 9. 참조)
  
  적합성 이론의 약성 함축의 기능과 보그란데가 주장하는 대체성 원리와 상위 구성 스키마의 개념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쑤르(1992: 51)가 지적하는 ‘인지 작용의 조직적 반란으로서’의 시적 표현도 같은 성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적 방법이란 쑤르에 의하면 비자동적(의식적)으로 의식에 떠올리는 방법으로서 일반 인지 과정에 주어지는 하나의 조직적 반란 행위다. 생각이 아직 재코드화(recodify)되지 않은 불완전한 의식의 지연 상태에서는 흔히 간과하기 쉬운 하위 차원의 신체적, 생리적, 심리적 관점이 의식되는데, 바로 그러한 인지적 방법을 말하며 재코드화(이해)의 실패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의식적 자질이 된다. 하위 체계에서의 좌절은 체계 자체의 붕괴보다는 각 요소들에 대한 또렷한 지각을 촉구해서 새로운 심미적 효과를 위해 그들을 재편성하게 한다.
  문학은 그러므로 인지적 시학에서 정상적인 인지 과정의 수정이나 이에 대한 조직적 반란이요, 시적 효과의 핵심은 인지 과정에 대한 방해와 지연,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심미적 목적에 동원케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정상적인 것과는 상이한 원리로 재조직화해서(대체 원리) 대체적 세계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상위에서의 구성적 심리적 처리 기제가 보그란데가 칭하는 구성 스키마이며 이는 심리적 통찰을 촉구하는 하나의 도전이며 문학으로 하여금 문화적 보편소(cultural universal)가 되게 하는 강력한 기제다.
  인간이 창조해 내는 문학 작품의 연구는 그 작품을 창조하고 사용하는 인간적 과정에 대한 연구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인지 작용이라는 시각에서 경험의 혁신, 의식의 해방, 참신한 욕구, 새로운 목표 등 우리의 의식 공간을 확충해 나가는 데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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