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언어와 문학】

고려가요의 문학적 해독

박노준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향가 이후 부침을 거듭한 시가의 여러 장르 중에서 현대인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갈래를 든다면 아마도 고려가요를 꼽지 않을 수 없으리라.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 점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어느 장르의 작품보다도 고려가요를 좋아한다. “動動”, “靑山別曲”, “鄭瓜亭曲”, “가시리” 등의 일부 대목은 외울 줄도 안다. 여러 유형의 여음구, 이를테면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아으 動動다리’ 등과 의미행(意味行)인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와 같은 것은 이 시대의 대중가요를 가창하듯 아주 쉽게 읊을 줄도 안다. 시대를 초월해서 정서와 정서끼리 서로 공명하고 있는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단언컨대 여러 면에 걸쳐서 고려가요와 초창기의 현대시는 많이 닮아 있다. 이 점 감각으로서도 느낄 수 있고 텍스트의 대비를 통해서도 확연하게 인지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고려가요는 과거의 노래가 아닌 현대의 노래라고 언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고는 이렇듯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고려가요의 문학적 특질을 살피는데 목적을 둔다. 이 일을 위하여 필자는 마치 현대시를 읽어내듯 그런 자세로 고려가요의 세계를 읽기로 하겠고, 그리하여 고려가요가 단지 문학사에서만 기록되는 사장된 고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마침 필자는 본고의 청탁을 받기 몇 달 전에 이미 이 글의 논제와 유사한 성격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속요의 내력과 시적 정서”, “現代詩學” 1995년 5월호. 151~165쪽). 그 글에서 개진한 필자의 견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따라서 본고는 예의 글을 대부분 살려서 전재하되 다만 속요의 형성과 전승과정을 더듬은 장은 삭제하고, 현대시와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일별한 장은 작품들끼리의 대비를 통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키로 한다(Ⅴ장). 거기에 더하여 앞서 발표한 글에서 거론하지 않았던 경기체가의 미의식과(Ⅳ장) 고려가요 전반에 나타나는 언술의 특성을(Ⅲ장) 새로 써서 각기 별도의 장을 통해서 보완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하겠다.
  

Ⅰ. 진기(眞機)가 유동하는 성정(性情)의 노래

  고려가요는 속요와 경기체가라는 두 개의 작은 갈래로 되어 있다. 전자는 여항의 민요가 궁궐로 들어가서 궁중 악가로 변형되어 자리를 잡은 것이고, 후자는 고려 말엽 신흥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고조된 흥취와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서 만들어낸 특이한 시의 형태다. 그러므로 비록 속요가 대궐의 연회에서 불려지는 양상으로 귀착되기는 하였으나 원천이 여항에 있으므로 그 저변에는 의연 민간적인 사유가 관류하고 있었고 경기체가는 그와는 전혀 다른 귀족 계층의 화려하고도 사치스런 정신 세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이렇듯 성향을 달리하는 두 개의 하위(下位) 갈래 중 고려가요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속요다.
  속요는 어떤 노래인가. 그 문학적 특성은 무엇인가. 여러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을 터이나 그 중에서 가장 근사한 시각으로 투시한다면 속요는 요컨대 ‘자연의 진기(眞機)’를 완벽하게 반영한 노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위항 시인과 가객(歌客)들은 시를 인격 형성과 수양의 도구로 인식해 온 사대부 계층에 대항하여 새로운 시론을 들고 나왔다. 그것이 곧 시의 진기론이다. 그들은 시의 본령을 더 이상 유가의 교의(敎義)인 이(理)나 존심양성(存心養性)과 온유돈후(溫柔敦厚)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은 시가 아니라 시의 형식을 빈 교술적 언술일 뿐이라고 매도하면서 진기론을 외쳤다. 이에 따라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던 파격적인 작품들이 한시와 시조에서 함께 나왔다. 그 중에는 음탕하고 비속한 노래(淫哇卑褻之詞)도 꽤 섞여 있었다. 시의 반란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수백년 묵수되어 온 교조적 시관에 일대 타격을 가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소리 높여 주창한 진기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꾸밈없는 감성과 참되고 굴절이 없는 성정(性情)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선 “靑丘永言”의 발문을 쓴 마악노초(磨嶽老樵. 최근 그가 李廷燮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대두되고 있음)의 설명에 따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자면 화평하고 즐거운 것, 애원하며 슬퍼하는 것, 유쾌하고 편안한 것(愉佚), 원망하고 한탄스러운 것(怨歎), 미칠 듯 날뛰고 싶은 것(猖狂), 조잡하고 거친 것(粗莽) 등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여러 형태의 심정, 바로 그것이 곧 진기의 세계요, 그 정체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반주자주의적(反朱子主義的) 인생관과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진기는 또한 삼라만상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문제와 관련이 깊고 그것도 남녀간의 미묘한 정감의 교류를 통해서 더욱 극명하게 표출된다. 집권층에서 소외된 양반의 신분으로서 불운한 일생을 살다 간 18세기의 문인인 이옥(李鈺)은 여러 계층의 여인들이 겪는 삶의 다양한 양상을 “俚諺”이라는 연작 한시로 읊었다. 그러면서 그는 “三難”이라는 글을 따로 지어서 그 옆에 놓고 말하기를 천지만물을 살피는 데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사람을 보는 데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살피는 데는 남녀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된 것이 없노라고 단언하였다.1) 소재의 측면에서 본 진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조선 후기의 일부 문인들은, 시는 이처럼 진기에 바탕을 둘 때만이 참된 시가 된다고 하였다. 진기가 결여된 시는 독자의 감동도 얻어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詩經”의 “國風”도 사실은 모두 여항 시정인의 거짓 없고 꾸밈 없는 진기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시경” 이후의 시 짓기는 이러한 “시경”의 본질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매우 잘못된 시작(詩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몰아세웠다.
  이렇듯 조선 후기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단에 신선한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언필칭 시의 혁명적 인자로 작용하여 마침내 신구의 시대를 갈라 놓았던 예의 진기론은 실인즉 그때 처음 나타난 시론은 아니었다. 그 싹은 이미 고려 속요에서 발아하였고 그 결실까지도 거기서 푸짐하게 거둬들인 것이었다. 당시에 진기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뿐 속요의 시정신은 바로 진기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확언커니와 속요는 이른바 진기의 원류에 놓여 있고 심성론적 시론에 오랜 세월 동안 억눌려 있다가 18세기 변환기 시가문학을 태동시키는 데 잠재적인 촉매역할을 한 들풀과도 같은 문학이었다. 현대시도 서구문학의 영향을 받아 닻을 올리기는 하였으나 그 저변에는 고려가요에서 마련된 우리 고유의 정서가 일정하게 운동하면서 완성된 것으로 판단하여도 무방하다.
  
  속요를 말할 때면 으레 ‘男女相悅之詞’라는 관용어를 떠올린다.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전왕조(前王朝)의 속악 가사를 폄하하기 위해서 명명된 이 관용어는 그런 사정과는 아랑곳 없이 진작부터 고려속요의 별칭으로 통하고 있다.
  깎아 내리기 위한 동기의 측면을 제거하고 글자 풀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속요 일반을 ‘남녀상열지사’로 규정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 대개의 노래들이 인간의 문제, 곧 남녀의 연정이나 이별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진기론에 입각하여 이제 새롭게 평가할 때 남녀상열지사로서의 속요는 더 이상 저급의 노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 시가문학사가 가장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기록하여야 할 문학의 자산으로 남게 된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나긴 기다림의 사연을 노래하면서 속요처럼 곰삭은 정한(情恨)을 그처럼 절절하게 토해 낸 시가도 아마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정한이 바로 속요의 진수며 진기다. 넋두리와 하소연을 빼놓고서 속요를 말할 수 없다. 넋나간 푸념에 얹혀 애잔하고 처연하게 흘러나오는 정한의 가락을 도외시하고는 속요를 말할 수 없다. 당연한 결과로 속요에는 환희에 들뜬 유일(愉佚)의 순간보다는 애원하며 슬퍼하는, 원망하며 한탄하는 장면이 주류를 이룬다.
  1) 二月 보로매/아으 노피 현/燈불 다호라/萬人 비취실 즈이샷다.//三月 나며 開/아으 滿春욋고지여/ 브롤 즈을/디녀 나샷다
  (“動動” 3·4연)
  
  2) 어름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망뎡/어름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망뎡/情둔 오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滿殿春別詞” 1연)
  
  3)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구은 밤 닷되를 심고이다/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有德신 님믈 여와지이다
  (“鄭石歌” 2연)
  
  4) 西京이 서울히 마르는/닷곤듸 쇼셩경 고마른/여므론 질삼뵈리시고/괴시란듸 우러곰 좃니노이다
  (“西京別曲” 1연)
  몇 편의 속요 일부를 발췌하여 하나의 노래로 합성해 보았다. 속요가 지닌 바 진기의 특질을 보편화해 보기 위함이다. 또한 이러한 합성은 속요가 불려지던 당대에도 흔히 이루어지던 방법이었음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즉 속요 중에는 “滿殿春別詞”처럼 여러 개의 노래가 조립되어 합성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노래가 있고 “西京別曲”의 둘째 연과 “鄭石歌”의 끝 연(구스리 바회예 디신/ 긴힛그츠리가/즈믄  외오곰 녀신/ 信잇그츠리가)에서처럼 당시 여항에서 유행하던 유형가사(類型歌詞)의 한 자락이 삽입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위의 합가는 이와 같은 당대의 기법과 발상을 십분 고려한 바탕 위에서 시도해 본 것이다.
  먼저 1)은 비유를 통해 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임은 등불처럼 만인을 비추실 존재,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처럼 남이 부러워하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자못 거룩하고 위대한 대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임은 자신만의 임일 수 없고 만인의 애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장차 다가올 이별과 이로 인한 화자의 불행은 이미 예비되어 있는 셈이다.
  미래야 어떻든 현재의 화자는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2)는 바로 그런 정황을 설명한다. 유일(愉佚)이라 함은 바로 이런 장면을 두고 말한 것이리라. 성애(性愛)의 뜨거움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작자는 ‘어름’과 ‘댓닙자리’를 끌어들였다. 숨막히는 열애의 격정은 ‘어름’과 만나는 순간 더욱 달아오른다. 다시 말하거니와 2)는 행복의 절정에서 터져나온 노래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다. ‘오늘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오면 정열적인 사랑도 싸늘히 식을 것이고 보면 2)의 열애는 정해진 시간에 쫓기는 절박한 갈증을 동반하고 있다. 장차 겪게 될 한스러운 삶의 역정이 이미 은밀하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3)에서 화자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이별을 거부하겠다는 강한 다짐을 미리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사실 다짐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면으로는 화자 자신의 다짐이나 기실은 임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애원에 더욱 가깝다. 만류도 허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만류가 아닌 것이다. 딴소리를 하듯 돌려 말하는 우회적 어법에서 속요의 다양한 목소리는 더욱 빛을 발한다. 또 실현 불가능한 일의 실현을 전제로 설정하는 언술은 이후 우리 고전 시가는 물론 현대시에 이어져서 시적 수사의 한 갈래로 자리잡게 된다. 이에 관해서는 다시 후설할 기회를 갖기로 하겠다.
  이러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시간은 현실로 다가왔다. 4)에서 화자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억제하면서 임이 자신을 사랑만 해 준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따라가겠노라고 적극적인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사실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은 따라가겠다가 아니라 가지 말라는 것에 비중이 실려 있다. 여인이 말하고 있는 ‘좃니노이다’의 언술을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보기는 어렵다. 임을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애원이 넘치는 허언(虛言)이요 트릭인 것이다.2)
  결국 임은 떠나고 만다. 이별 앞에 선 화자의 태도는 어떠한가. 속요는 두 가지 태도를 제시한다. 첫째는 “가시리”형이다. 원망하고 한탄하면서도(怨歎) 임을 향해 토로하지는 못하고, 다만 하루 빨리 되돌아와 줄 것을 당부하고 기원할 따름이다. 다른 하나는 “서경별곡”형이다. 4)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임의 떠남이 막상 현실로 다가서자, 그녀는 앞서 한 자신의 다짐도 까맣게 잊고 이렇게 말하기에 이른다.
  5) 大同江 너븐디 몰라셔/내여 노다 사공아/네가시 럼난디 몰라셔/녈에 연즌다 사공아/大同江 건넌편 고즐여/타들면 것고리이다.
  (“西京別曲” 끝 연)
  
  이는 파국 직전의 막말이다. 임과의 재회를 기대하는 다소곳한 기다림의 자세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수동적이고 체념적인 운명론의 자세에서 이 노래는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임에게는 물론 엉뚱하게도 뱃사공에게까지 시비를 거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원탄과 창광(猖狂), 그리고 조망(粗莽)의 복합적인 모습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전통 이별가의 패턴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서경별곡”의 문학적 가치가 낮아질 수는 없다. 드문 사례이기는 해도 이 또한 하나의 유형으로서 정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시리”형과 마찬가지로 이 노래 또한 진기(眞機)에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임과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속요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일별하였다. 그러나 정한에 관한 우리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속요는 또다른 국면으로 이어진다. 속요의 사설은 여간 끈질긴 것이 아니다. “서경별곡”형보다 “가시리”형에 편향된 정한의 속요는 그러므로 어차피 기나긴 인고의 세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음의 고통을 참아 내면서 한결같이, 하염없이 임을 기다리는 화자의 자세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거기에 끈기가 뒷받침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음을 보자.
  6) 구스리 바회예 디신/구스리 바회예 디신/긴힛그츠리잇가/즈믄  외오곰 녀신/즈믄  외오곰 녀신/信잇그츠리잇가
   (“鄭石歌” 끝 연) 
  
  7) 四月 아니 니저/아으 오실셔 곳고리새여/므슴다 錄事니/녯나닛고신뎌
   (“動動” 5연)
  임과 헤어져서 ‘즈믄 해’를 홀로 지낸다 해도 신의만은 결코 저버릴 수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6)에서의 정절, 그러한 단심이 있기 때문에 속요는 또한 기다림의 노래로서 우리 국문 시가사의 첫머리에 올려지게 된다.
  기다림의 노래라면 단연 “동동”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일 년 열두 달을 임과의 재회만을 꿈꾸면서 살아가는 화자의 슬픈 삶과 인고의 세월은 사랑을 소재로 한 속요가 도달한 최고의 정점이 아닐 수 없다. 인용한 7)은 그 중의 하나다. 제철을 잊지 않고 꾀꼬리는 찾아왔는데 어찌하여 나의 임은 소식조차 없느냐고 탄식하는 화자의 참담한 외침은 원탄의 극을 이룬다. 그렇게 원망하면서도 임을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하여 “동동”은 12월 노래로 끝나지 않고 다시 이듬해 정월 노래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로 이루어진 작품이다.3)   꾀꼬리가 찾아왔으니 임도 의당 돌아와야 된다고 믿는, 이른바 인간사를 자연 현상에다 연결시키는 이러한 시적 발상도 그후 우리 시조문학과 근·현대시에까지 전승되어서 한 유형으로 정착되었으니 이 점 “동동”을 읽으면서 얻은 분외의 소득이기도 하다.
  임의에 따라 새롭게 만든 합가를 통해서 이제까지 속요의 진기, 거기서 우러나온 여러 현상을 더듬어 보았다. 충분치는 못하나마 이상의 설명으로써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 중 일부를 대충 풀어본 셈이다. 그렇다면 남녀상열지사 계열의 속요는 정한의 애처로운 노래로만 이루어져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은 노래도 있다. 그것을 잠시 일별하고 이 장을 끝내기로 하자.
  8) 雙花店에 雙花사라 가고신/回回아비 내손모글 주여이다/이 말이 이店 밧긔 나명들명/다로러 거디러/죠고맛감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위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긔잔 거츠니 업다
   (“雙花店” 1연)
  색정적인 노래다. 이 “雙花店”은 작품 이전에 궁중에 이입된 내력이나 연행과정이 더욱 주목을 끈다. 음탕한 군주인 충렬왕(忠烈王)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아첨하는 측근 신하들이 여항에서 채집하여 바친 이 노래는 남장(男粧)이라는 창기(娼妓)집단에 의해서 연행되었다. 그 연행될 때의 광경이 또한 가관이다. 왕과 군신들이 창기들과 더불어 춤추며 노래하면서 갖은 외설스런 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적인 충동과 희열을 맛보고자 하였다.
  가사 내용도 역시 그런 성적 놀이를 유도하기에 걸맞은 것으로 짜여져 있다. 回回아비가 여인의 손목을 잡은 일, 그래서 육체 관계가 이루어진 일, 이 소문을 듣고 다른 여인이 나타나서 자신도 그 잠자리에 가고 싶다고 고백한 일, 그러자 처음의 여인이 겉으로는 말리는 듯 하면서 속으로는 시샘의 표정을 은밀히 짓는 일, 이런 모든 자극적인 요소들이 뒤엉켜서 이를 관람하고 있던 왕과 군신들의 성적 감정을 고조시키는데 이 노래는 기여했다.
  음사(淫詞) 계통에 속하는 사설시조의 뿌리가 이 노래에 있었다고 규정해도 좋은 이 “쌍화점”은 앞에서 살펴본 슬픈 사연의 노래들과는 달리 속요의 질탕하고 에로틱한 흥겨움이 별도로 존재해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이 또한 “서경별곡” 끝 연과는 성격이 다른 창광, 조망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유일이 새로 첨가 혼효된 노래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Ⅱ. 격정적 정서가 넘나는 노래

  속요의 정서 표출 양상은 앞 시대의 향가나 뒷 시대의 시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향가가 평담(平淡)을, 시조가 절제(節制)를 중심 축으로 하여 감정의 정서화를 꾀했다면, 속요는 그런 여과의 과정도 생략한 채 원초적인 격정(激情)의 상태를 그대로 토로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9) 내님을 그리와 우니다니/山접동새 난 이슷요이다/아니시며 거츠르신아으/殘月曉星이 아시리이다/넉시라도 님은  녀져라 아으/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過도 허믈도 千萬 업소이다/힛마러신뎌/읏브뎌 아으/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아소 님하 도드르샤 괴오쇼셔
   (“鄭瓜亭曲” 전문)
  널리 알려진 정서(鄭敍)의 “정과정곡”이다. 10구체의 변용 양식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창작 배경까지도 향가인 “怨歌”와 아주 흡사하다. 그러므로 양자의 대비는 향가와 속요의 상이한 정서를 파악하는 데 가장 대표적인 본보기가 된다.
  정서는 그의 노래에서 원통함, 억울함, 서러움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요컨대 그는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길을 택하지도 않았고 흥분된 감정을 통어하면서 조용히 진술하고 피력하는 방식도 외면하였다. 개구일성(開口一聲)이 곧 울음이었고 이어서 변명과 따지기 그리고 애원과 하소로 연결되는 숨가쁜 직핍의 방도를 선택하였다. “원가”와는 전혀 딴판의 양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과정곡”은 어차피 격정적인 노래로 시종될 수밖에 없었고 시적 화자의 쉴 사이 없는 언술로 인하여 작품 전체가 온통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렇듯 소란한 시적 분위기는 비단 “정과정곡”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속요가 감정의 분출과 함께 반복되는 여음의 작용 때문에 차분하고 안온한 환경을 깨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장(特長)은 발견된다.
  시에서 비유법의 사용은 자주 감정의 희석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과정곡”에서도 ‘山졉동새’, ‘殘月曉星’ 등의 비유가 나타난다. 그러나 전자는 울음으로, 후자는 시적 화자의 변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됨에 따라 이와 같은 빗대기의 수법이 오히려 정서의 폭발적인 분출에 일조를 가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감탄사의 빈번한 사용이 시의 분위기와 정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는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을 터이고 비유법의 하나로 활용된 예의 ‘山졉동새’가 바로 청각적 기능을 맡고 있음에 따라 이 노래는 초반에서부터 처비(悽悲)한 시적 환경과 아울러 격정적인 분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과정곡”의 정서는 일렁이는 격정이 일체 여과됨 없이 감정의 응어리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를 연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격정의 생경함이다.
  10) 南山에 자리 보와 玉山을 버여 누어/錦繡山 니블 안해 麝香각시를 아나누어/南山에 자리 보와 玉山을 버여 누어/錦繡山 니블 안해 麝香각시를 아나 누어/藥든 가을 맛초사이다 맛초사이다
   (“滿殿春別詞” 5연)
  속요 중에서 가장 에로틱한 부분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본능적인 세계, 색정적인 욕망의 세계가 전혀 여과되지 않은 채 원래의 상태 그대로 방사되어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잠자리 속의 성애(性愛)를 구체적이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냄에 있어서 작자는 부끄러워하거나 꺼리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니블 안해…아나누어…가을 맛초사이다’로 이어지는 문맥 연결을 통해서 독자는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의 진한 장면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작품의 첫머리에서부터 농밀한 음사(淫詞)로 시작된 이 노래는 이 부분에 이르러서 더욱 상승된 끝에 마침내 남녀의 육체가 뒤엉키는 성교의 현장을 숨김 없이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진술하는 화자의 어법은 정서라는 어휘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극대화된 원색적인 감정의 반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요 계열의 노래든 혹은 창작된 시가이든 속요의 정서는 인용한 2편의 작품적인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시리”나 “사모곡”과 같은 예외에 속하는 노래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와 같은 소수의 노래만으로는 속요의 전체적인 흐름을 역류시킬 수는 없다.
  속요는 왜 그처럼 감정적, 격정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을까? 왜 다듬어짐이 없이 또는 흥분을 누그러뜨림이 없이 직핍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을까? 그 원인을 규명키로 하자.
  우선 속요의 모태가 민요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요는 형식과 내용의 측면에서 많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감의 원초성, 언술의 직설성, 표현의 투박성 내지는 비세련성 등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특질로 꼽힌다. 속요의 감정적 표현과 격정성은 이와 같은 민요와의 관련성에서 찾아진다. “정과정곡”이나 “履霜曲” 등은 비록 창작 가요이지만 작품 내부에 민요의 일부와 또는 그런 속성이 삽입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런 유입 분자들이 그 속에서 교란 작용을 함에 따라 노래 전체가 격정적으로 흐른 점을 감안한다면 민요의 힘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무엇을 노래했는지도 문제 풀이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속요는 애정에 관련된 사연을 주로 노래한 장르다. 애정의 속성은 열정과 감성이다. 논리와 이성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며 뜨거운 심장과 정열이 부닥치면서 사랑을 성취시키기도 하고 깨뜨리기도 하는 것이 바로 애정이다. 애정을 다룬 시는 제삼자가 개입하는 예가 거의 없으며 나와 너만이 마주하는 구조를 띤다. 그런 단순 구조부터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시키기에 충분하다.
  속요에서 접하게 되는 열애의 장면, 안타까운 이별의 순간, 기진한 상태에서도 잊지 않고 기다리는 끈질김, 그럴 때마다 발하는 언어들의 모양들이 모두 정열의 과잉과 절박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를 바로 이런 면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만전춘별사”의 비속한 진술을 상기할 때 애정시가의 수사적 기법은 외부의 통제가 가해지지 않는 한 사실상 제한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 노래를 핵으로 해서 그보다 덜한 애정 계통의 속요의 염정과 그 격정성까지도 이해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삶의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전망에 따라 노래의 정서 또한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한다. 속요의 세계관과 인생관은 어떠한가. 요컨대 속요는 낙관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4) 그들의 노래가 평온할 수 없었던 연유가 여기에 있다. 본보기로서 “靑山別曲”에 투영되어 있는 비극성을 살피기로 하자.
  “청산별곡”만 해도 속요 중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온건한 정서를 내비치고 있는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의 첫 연은 일견 삶에 대한 낙관적 확신과 강한 의지의 표시로 시작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산과 바다로 쫒기거나 피하는 극한의 상태에서5) 터져 나온 ‘살어리 살어리 랏다’라는 외침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청산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의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식으로 출발한 “청산별곡”에서의 삶은 둘째 연 이하 계속 비극적인 상황에서 헤매다가 끝 연에 가서는 마침내 자아 해체와 참담한 좌절이라는 어두운 현실로 마감된다. 예상되었던 삶의 마무리다.
  회의적이거나 비관적인 삶의 태도와 관점,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감정의 통어에 실패라는 결과를 낳는다. “정과정곡”에서 읽은 감정의 폭발적인 과잉 분출이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 떠올리면서 “청산별곡”의 비극적인 인생관과 서로 연결시킬 때 속요에서 폭발되는 격정성의 원천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여성적 취향 속에 담긴 극단의 언술

  속요의 언어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다. 생활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일상어가 주류를 이룬다. 언어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노래 속에 들어가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역점을 두는 그런 언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속요의 언어는 생경성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혈맥의 언어로서 그 모습을 분명히 한다.
  언어와 언어끼리 서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진 여러 편의 노래는 고려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 시가문학사 전면에 부상되었다. 그것의 대종은 물론 남녀상열지사다. 낮추어 지칭하자면 ‘사랑타령’이 되겠고 좀더 고상한 말로 부르자면 ‘님의 노래’가 된다. 시적 화자는 여성으로 되는 것이 상례다.
  사정이 이런지라 속요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여성적인 취향이다. 애잔하고 구슬프며 섬세하고 가냘픈 정조(情操), 넋두리체의 구성진 가락과 하소하는 사연들이 모두 여성의 언어, 체취 그리고 정감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작자가 남성인 “정과정곡”에서도 여성의 음성과 감성을 읽을 정도라면 나머지 작품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청산별곡”과 “維鳩曲”을 제외한 모든 노래들이 다 “정과정곡”과 동질의 것이라고 규정하여도 무방하다.
  이렇듯 가냘프고 애절한 여성적 취향을 내비친다고 해서 속요를 단지 연약한 노래로만 치부하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앞의 장에서 우리는 속요의 격정적인 정서를 음미한 바 있다. 여과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출되는 시적 화자의 심리적 에너지를 확인하였다. 이런 국면을 다시 환기하면서 여성적인 것의 다른 측면을 간취할 필요가 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던가. 고운 말씨, 안으로 옴츠러드는 말투, 정숙함을 유지하면서 소극성을 지향하는 여인네의 언술이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테면 극도로 어려운 처지, 난감한 국면, 사생결단의 입지에 몰릴 때, 일순간에 급변하여 앙칼지거나 강인한 말투로 옮겨지는 사례를 우리는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리하여 속요는 격정적인 정서와 병행하여 극단적인 언술을 내뱉는 양상으로 옮겨가는 특성을 보여 준다. 이 둘은 실인즉 동전의 앞뒤 면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Ⅰ장에서 이미 인용한 2)의 “만전춘별사” 1연과 3)의 “정석가” 2연을 그대로 놓아둔 상태에서 여기에 다시 2편의 속요 중 그 일부 대목을 옮기기로 하자.
11) 十一月ㅅ 봉당 자리예
아으 汗衫 두퍼 누워
라온뎌
고우닐 스싀옴 녈셔
아으 動動다리
(“動動” 11월 노래)

12) 죵죵 霹靂 生 陷墮無間
고대셔 싀여딜 내모미
죵 霹靂 아 生 陷墮無間
고대셔 싀여딜 내모미
내님 두고 년뫼거로리
(“履霜曲” 6-10行)
  새로 인용한 이 2 편의 노래와 기왕에 읽은 바 있는 예의 2)·3)의 노래 ― 이 4편의 속요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여성적인 취향을 견지하면서 또한 극단적인 언술로 화자 자신의 의지를 표방하는 시적 기법을 접할 수 있다. 10여 편에 불과한 현전 작품 중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4편이나 되는 노래들이 이 범주에 속해 있다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 시가의 원류인 향가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굳이 찾는다면 “慕竹旨郞歌” 결사 부분을 들 수 있다. ‘郞여 그릴 녀올길/다봊굴허헤 잘밤 이시리’.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적 화자의 결연한 의지가 강인한 어법에 얹혀져서 표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낸 향가의 이러한 표현의 강도도 고려 속요에 비한다면 족히 거론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새로 인용한 노래부터 살피기로 하자. 님을 그리워하는 방식과 태도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동동”의 화자는 언필칭 동사(凍死)와 맞바로 이어지는 극한 상황을 선택한 뒤 극단적인 말로써 님의 형상을 떠올리고 있다.
  ‘霹靂―陷墮無間―싀여딜 내모미’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이상곡”의 시적 분위기는 요컨대 살벌하기 그지 없다. 화자는 퇴로마저 차단한 상태에서 마치 자진(自盡)이라도 마지 않겠다는 듯이 지극히 단호하고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상곡”의 화자도 “동동”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극단의 언술만을 고집하고 있다.
  3)의 “정석가”는 또 어떠한가. 화자가 바라는 것은 지금 만끽하고 있는 님과의 행복한 시간이 영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화자는 전혀 현실화될 수 없는 불가능의 것을 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억지와 다를 바 없다. 또한 그것은 극단의 언술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그런 표현 기법이다. 예사로운 말투가 아닌 것이다. 과장법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별스러운 진술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2)의 “만전춘별사”는 님과 함께 현재 누리고 있는 불덩이 같은 성애(性愛)가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한 상태에서 지속되기를 기원하는 화자의 열망을 옮겨 놓은 것이다. 사랑의 단절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석가”와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있는 노래다. 다만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에로티시즘이 분출하고 ‘오밤’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갇혀 있는 열애라는 점에서 “정석가”와 일단 구별된다.
  대비를 통해서 본 그런 차이점은 별로 문제시 되지도 않고 또한 이 자리에서 따질 성질의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대목은 단연 님과의 뜨거운 사랑을 화자가 어떤 방식으로 표출코자 하였는가 하는 점에 놓여 있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지만 해답은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다. ‘어름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망뎡’이라는 진술에서 모든 것은 풀린다. 똑같은 고백이 두 번씩이나 연속적으로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도 소홀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요켠대 여기서도 어김없이 읽을 수 있는 언술 자체의 극단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용한 노래들의 해석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속요에는 물론 예의 극단적인 언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가시리”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감내하기 어려운 이별의 슬픔을 삭이면서 온건한 언어로 심경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살펴본 바 그대로 과격하고도 강경한 말로 화자 자신의 심사와 의지를 밝히고자 하는 예가 한 묶음이 될 정도로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고려 속요의 한 특성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욱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와 같은 극단적인 강경일변도의 언술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내우외환이 거듭되던 고려 당시의 각박한 사회적 환경이 노래의 세계에도 조응되어서 그렇듯 절박한 말투가 생성되었으리라고 일차 예견할 수 있다.
  시대성과 언어와의 밀접한 연관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특정인물이 특수한 역사적인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그가 부른 노래가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살기마저 깃든 언술로 치닫고 있는 예가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나 성삼문(成三問)의 절의가(節義歌)가 그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렇듯 극단의 언술과 시대성 혹은 사회적인 환경 사이에 맥락 연결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속요에서 읽게 되는 예의 말투는 그런 경우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요컨대 속요의 극단적 언술은 노래 그 자체의 연가(戀歌)적인 성향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내우외환 운운으로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적 화자와 님과의 만남―이별―기다림의 전 과정은 폐일언컨대 고양된 정서, 감정의 고조, 엑스타시의 극점으로 요약된다. 기쁨의 순간이든 슬픔의 시간이든 시적 화자로서는 심리적 여유나 정신적인 평정을 견지할 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격정적인 정서가 불가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술 역시 과격함과 극단성을 띠게 된 까닭을 우리는 열병이라 일컫는 사랑의 본질과 이를 담아낸 시적 환경에서 찾는다.
  

Ⅳ. 체언(體言)의 나열이 주는 정서적 미감

  “한림별곡”의 두드러진 특질을 지적할 때마다 으레 거론되는 것이 있다. 한문 투성이의 어휘들이 엄격한 틀 속에 갇혀 있어서 답답할 정도의 인상을 주고 있는 특이한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13) 黃金酒 柏子酒 松酒醴酒/竹葉酒 梨花酒 五加皮酒/鸚鵡盞 琥珀盃예득 브어/위 勸上ㅅ景 긔 엇더니잇고/劉伶陶潛 兩仙翁의 劉伶陶潛 兩仙翁의/위 醉景 긔 엇더니잇고//
     阿陽琴 文卓笛 宗武中琴/帶御香 玉肌香 雙伽耶ㅅ고/金善琵琶 宗智稽琴 薛原杖鼓/위 過夜ㅅ景 긔 엇더니잇고/一枝紅의 빗근笛吹 一枝紅의 빗근笛吹/위 듣고야드러지라
  (“翰林別曲” 4·6 연)
  이처럼 체언의 나열로 일관하고 있는 별난 형식의 노래이지만 그것대로 규격화된 질서 속에서 감흥과 쾌락적인 미학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한다. 구조의 분석을 통해서 이 점은 명쾌하게 입증된 바 있다.6) 그러나 학술적인 시각에 의해서 이끌어낸 “한림별곡”의 흥취를 이 자리에서 상세하게 소개하는 일은 피하기로 한다. 아무리 명료한 학설일지라도 손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면 본고의 성격상 각주를 통해서 그 출전만 밝히고 그 이상의 것은 독자에게 일임하는 것이 좋을성 싶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우리 나름대로의 쉬운 방법을 통해서 이 노래가 어떻게 하여 작자층의 흥겨운 감흥을 옮겨 놓은 것인지를 밝히기로 한다. 위에서 우리는 ‘한문투성이의 어휘와 체언의 나열’ 운운한 바 있다. 이런 설명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좀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사물’과 ‘인명’의 열거라고 말하여야 된다.
  4연은 사물의 나열이다. 무슨 사물인가. 각종 명주와 희귀한 술잔의 열거다. 그렇게 늘어놓은 뒤 시적 화자는 자신을 주선(酒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유령(劉伶)과 도잠(陶潛)으로 치환시켜 놓는다. 신흥 사대부들은 무엇을 원망(願望)하고 있는가. 취락의 세계에 탐닉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인물들에게 명주와 술잔의 나열은 그것만으로도 취흥을 유발하기에 족하다. 가령 요즘 시대의 술꾼들에 비유하여 설명을 가하면 더욱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술노래를 짓는다고 치자. 여러 방식으로 읊을 수 있겠지만 ‘법주 안동소주 문배주/약주 막걸리 소곡주/ 조니워카 시버스 리갈 나폴레옹 꼬냑’ 식으로 이 시대의 술이름만을 열거하였다고 가상하자. 어떻게 될 것인가. 속된 말로 군침이 절로 돌것이리라. “한림별곡”의 이치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6연에서는 당대 이름을 떨친 예능인과 명기(名妓)의 이름을 열거해 놓았다. 그런 뒤 그들의 풍악소리에 취하여 밤을 새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4연의 취흥과 또다른 풍류의 세계를 시적 화자는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열거와 마찬가지로 이름만의 열거로도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흥겨움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 또한 요즘의 난봉꾼이 장황한 사설을 늘어 놓지 않고 단지 내로라하는 텔런트나 가희(歌姬)의 명칭만을 들어도 절로 신명이 나는 예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처사접물(處事接物)에서 우러나는 도도한 흥취와 감흥은 이런 비유적인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해설은 끝나지 않았다. 고려가요와 현대시와의 친연성에 관해서는 바로 다음 장(章)에서 후설할 터이지만 경기체가에 관련된 설명만은 앞당기는 것이 좋겠다. 아래의 현대시와 견줄 때 “한림별곡”의 함축적인 미학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흰달빛/紫霞門//달안개/물소리//大雄殿/靑雲橋//바람소리/솔소리//泛影樓/뜬그림자//흐는히/젖는데//흰달빛/紫霞門//바람소리/물소리
   ― 朴木月 “佛國寺”
  ‘흐는히/젖는데’라는 6연만을 제외하면 처음서부터 끝까지 명사의 열거다. 시인이 이런 시를 짓게 된 데에는 물론 의도성이 작용하였다. 따라서 위의 노래는 어희(語戱)도 아니고 암호나 낙서도 아니다. 분명코 시다. 어떤 시인가. 편의상 지칭한다면 ‘체언시·단어시’다.
  그러면 이런 류의 시에서도 정서와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미의식이 발현되고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시인 자신은 물론 수용자도 체언만의 행진과 그 행간 속에서 의미를 찾고 정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좀더 쉽게 이해가 되리라. 즉 불국사는 이 땅에서 서식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절집이기 이전에 시인의 고향인 경주(慶州)의 명찰이다. 누구보다도 그에게는 정이 든 친숙한 고찰이다. 유년시절부터 천년 고도의 역사가 몸에 배었을 터이고 특히 경주를 상징하는 불국사의 고색창연한 모습과 그 주변의 경관은 시인의 정신세계에 깊숙히 스며들어서 하나의 뚜렷한 영상으로 자리를 잡았을 터이다. 이런 절집을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 시로서 형상화하고자 할 때 시인은 분명코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불국사 그 자체는 물론, 오래전부터 거기에 투영된 시인의 느낌, 애정 등과 같은 정감을 다시 떠올려서 회상하고 싶은 충동도 억제하기 힘들었으리라. 이런 모든 잡다한 상념들을 효과적으로 걸러냄이 없이 시의 그릇에 담을 때 그것은 자칫 긴장이 이완된 느슨한 ‘글’이 되기 쉽다. 그것은 시인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리라.
  이런 숨은 사정을 고려하고 이 시를 다시 읽으면 왜 이와 같은 ‘체언시·단어시’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불국사를 상징하는 몇 개의 고유 명사와 ‘달-물소리-바람소리-솔소리’의 보통 명사의 나열만으로도 불국사에 관한 회상은 충분하다고 믿었고 그러한 압축된 시, 절제된 언어가 오히려 수다스럽게 읊은 시보다 정서와 감흥을 촉발시키는데 더욱 효과적이었으리라고 생각하였으리라. 이 시의 특성은 바로 이런 점에서 찾을 수 있다.7)
  장황한 설명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 이제 맞바로 묻거니와 “불국사”를 통해서 “한림별곡”을 이해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체언의 나열로 일관하고 있는 시의 형태에서 이 점 명쾌하게 판명된다. 박목월이 그러했듯이 고려시대에 경기체가 작가들도 꾸밈 말이나 서술부의 개입 없이도 완결된 한 편의 시, 간결함 속에 함의가 내재해 있는 시를 충분히 지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한 창작기법은 당대의 시문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한시 창작법과도 준별되는 것이었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기체가의 형태가 중국의 四六文이나 산곡(散曲)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으나 오히려 우리 고유의 국문시가의 전통 위에서 발원되었다는 설이 근자에 대두되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8) 경기체가의 작자들은 당시의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한자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를 구성하는 데는 이렇듯 한시의 기법과는 달리 그들에 의해서 변용된 우리 시가의 전통성을 계승하였다. 다시 묻거니와 한자어로 된 체언의 숨찬 행진만으로 서정성과 감흥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이 또한 박목월의 시를 읽으면서 확인된 바이라서 양언(揚言)이 부질 없다. 그러므로 “한림별곡” 등의 경기체가는 박목월이 시도한 ‘체언시·단어시’의 이른 시기의 장르, 바꿔 말하자면 그 원류에 해당되는 갈래라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한다.
  

Ⅴ. 현대시와의 친연성(親緣性)

  현대시에 속요적 성향이 내재해 있는가. 양자의 유관성·친연성을 인정해도 좋은가. 이러한 물음에 해답을 내놓을 차례가 되었다. 본고를 시작하면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요컨대 현대시와 속요와의 관계는 다른 어느 갈래들끼리의 관계보다 친숙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긴 설명이나 해명이 필요치 않다. 지금까지 성찰한 바를 새삼 상기하면 익히 알 수 있을 터이다. 속요의 진기며 정서, 의장(意匠), 시적 발상, 푸념, 넋두리들과 현대시 초창기의 그것과의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른 점을 굳이 찾는다면 농도의 심천 정도다. 그러므로 ‘속요→사설시조→현대시’의 도식을 제시하면서 우리 내부의 운동에 의한 자설적(自說的) 시정신의 전통이 계승되었다고 주장한 학설9) 에 우리는 동의한다.
  작품의 대비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증해 보기로 하자. 전체적인 것을 모두 드러내어서 견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상호 통할 수 있는 상징적인 몇 사례만 일별하는 것으로 만족키로 한다. 따로 순차를 정해 놓고 설명할 필요 없이 생각나는 대로 견주기로 하면서 우선 Ⅱ·Ⅲ장에서 논의한 고양된 격정성과 언술의 과격함부터 먼저 다루기로 하자. 그런 유형의 노래가 현대시에도 있는가? 있다. 다음의 시가 바로 그 좋은 예시(例詩)가 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중략)/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鍾路의 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頭蓋骨은 깨어져 散散조각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고 딩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드는 칼로 이 놈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메고는/여러분의 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하략)
  ― 沈薰, “그날이 오면”에서
  격정이니 고양된 정서니 혹은 처절한 외침이니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노래를 두고 말함일 것이다.
  두루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심훈(沈薰)은 님의 귀환, 곧 독립을 열망하면서 환희의 앞당긴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이때에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온 것은 요컨대 극단의 언술이다. 사람은 누구나 긴장되고 흥분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말이나 문자로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를 심훈은 마침내 극복하였다.
  ‘頭蓋骨은 깨어져 散散조각 나도 ―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메고는’의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삼엄한 정신과 함께 범상한 말씨를 훨씬 뛰어넘은, 그리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의 극단의 언술을 접하게 된다.
  다시 묻기로 하자. “그날이 오면”은 누구의 무엇인가. 심훈이 1930년에 노래한 현대시다. 이렇듯 지은이가 분명하고 갈래가 엄연히 다른 예의 노래는 그러나 편의상 굴절시켜서 이해한다면 이것이 바로 고려 속요라고 말할 수 있다. “만전춘별사” 1연과 “정석가” 2연 그리고 “동동” 11월 노래와 “이상곡” 6~10행에서 읽은 언술과 심훈의 격한 말씨, 격앙된 정서는 본질적으로 동궤의 것이다. 심훈의 언술은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고 속요는 시적 상황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의 문제는 족히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연원이 어디에 있든 표면에 나타난 언술 그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Ⅲ장에서는 또한 여성적 취향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거론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시적 분위기를 현대시에서도 느낄 수 있는가? 도처에서 느낄 수 있다. 1920년대 우리 시는 ‘님의 노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님의 정체가 무엇이든 시적 화자인 여성은 속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연하고 애잔한 목소리로 님을 향해 하소연하는 것으로 시종하다시피 하였다. 사정이 이러하였으므로 시적인 분위기가 여성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음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어떤 노래들이 있었나. 수다한 작품 중에서 임의에 따라 아래에 옮겨 놓는 일련의 시들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랍고 매끄럽던 얼굴이 왜 주름살이 접혀요/당신이 괴롭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테여요/맨 첨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 韓龍雲 “당신이 아니더면” 1연
  
  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하략)
  ― 韓龍雲 “나룻배와 行人”에서
  
  나보기가 역겨워/가실때에는/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寧邊에 藥山/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꽃을/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金素月 “진달래꽃” 전문
  
  왜 아니 오시나요/暎窓에는 달빛 梅花꽃이/그림자는 散亂히 휘젓는데/아이 눈 깍감고 요대로 잠을들쟈//(중략)/어둡은 가슴 속의 구석구석…/환연한 거울 속에 봄구름 잠긴 곳에/소솔비 나리며 달무리 둘려라/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 金素月 “愛慕” 1·3연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疲困하여 돌아가려는도다/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水蜜桃의 네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중략)/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아, 어린애 가슴처럼 歲月 모르는 나의 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하략)
  ― 李相和 “나의 寢室로”에서
  치밀한 분석이나 상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그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인용한 5편의 노래들이 모두 일관되게 여성적인 취향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속요의 정서와 상통하는 이러한 페미니즘의 현대시적 전개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처럼 다수의 작품을 나열해 놓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다른 화젯거리가 준비되어 있어서 이를 작품과 접맥시켜 설명할 차례가 되었으므로 미리 일괄하여 여러 편의 현대시를 소개한 것이다.
  먼저 한용운의 “당신이 아니더면”이다. 이 노래의 주지는 ‘나’의 운명이 ‘님’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나’와 ‘님’의 일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언급해도 좋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나룻배와 행인”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기나긴 기다림의 노래이되 한편으론 ‘나’와 ‘님’이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사실도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시적 화자의 이러한 기본적인 자세와 진술은 속요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특별히 어느 한 작품을 예시할 필요도 없이 남녀상열의 모든 속요는 이런 바탕 위에서 시작된다. 불덩이 같은 열애도, 아쉬운 이별도, 인고의 기다림도 모두 ‘님’과 ‘나’는 운명적으로 한 몸이라는 원초적인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현장에서 부른 노래다.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는 화자의 모습은 자못 처량하다. 진부한 물음이지만 서술상의 절차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새삼 묻기로 하자. 속요의 어느 노래와 상통하는가. “가시리”다. 여기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므로 부질없는 사설은 피하기로 하자. 다만 시의 정신면에서 뿐만 아니라 형태적인 측면에서 소월의 또다른 시“접동새”와 “가시리”는 ‘aaba’의 율격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재확인해 둔다.10)   그의 시 “愛慕”는 떠난 님을, 돌아오지 않는 님을 온몸으로 기다리며 부른 노래다. 이른바 ‘기다림의 노래’라면 단연 한용운을 꼽아야 한다. 그의 시집 “님의 沈黙”은 요컨대 ‘기다림의 노래’가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님’의 귀환을 확신하면서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림의 노래’를 부른 그는 확실히 우리의 천년 시사(詩史)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시인이요, 구도자다.
  그럼에도 그를 젖혀 두고 굳이 소월을 이 자리에 초빙한 까닭은 한용운은 이미 기다림의 달인이 되어서 새삼 거론하는 것조차 쑥스럽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서정시인으로서 한용운과 김소월은 많은 측면에서 유사한 점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기다림의 노래’만은 소월이 무엇보다도 양적인 면에서 뒤진다. 그런 시인의 노래를 인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愛慕”에서 읽게 되는 기다림의 울부짖음,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라고 한탄하며 기다리는 그 한스러움, 그것은 곧 “동동”의 화자가 일년 열두 달을 기다림으로 지새우면서 오직 님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는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부분에 관해서도 부연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속요 6)의 “정석가” 끝 연은 님과의 신의를 다지는 사연이다. 그것은 또한 지절(志節)의 정신과 맥락을 같이한다. 한용운과 더불어 김소월의 기다림은 변심을 단호히 거부한 지절의 바탕에서 싹이 텄다. 이렇듯 원천에 있어서도 속요의 세계와 현대시는 수평선상에 놓인다,
  이상화의 “나의 寢室로”도 본질적으로는 기다림의 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의 전체적인 측면을 전부 조감하지 않고 편의상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水蜜桃의 네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운운한 부분에만 눈길을 돌리기로 한다. 화자와 님과의 사랑은 새벽이 찾아오면 무산되는 그런 제한된 사랑이다. 작자는 이렇듯 화자로 하여금 절박한 국면에 처하도록 배치해 놓고 님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절절한 심경을 토로케 하였다.
  속요에서도 유사한 장면은 발견된다. 2)의 “만전춘별사” 1연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남녀 간의 열애의 순간을 포착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사랑도 제한적인 사랑임은 ‘情둔 오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라고 간절히 염원하는 진술에서 알 수 있다. “나의 寢室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상이한 부분을 굳이 지적한다면 속요의 경우는 행복한 시간에서의 원망(願望)을, 현대시의 경우는 결핍의 상태에서의 보전(補塡)의 갈망을 지향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성격상의 차이는 우리가 이 부분에서 논의하는 바와 무관한 것이므로 불문에 부쳐도 좋다.
  시에서 배경은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살핀 것은 시간적인 배경이다. 아래에 인용하는 대목은 시간적 배경과 함께 공간적 배경도 제시되어 있다. 후자에 관심을 두면서 읽기로 하자.
  14) 비오다가 개야 아 눈하 디신나래/서린 석석사리 조곱도신 길헤/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두너즈세 너우지/잠간 내니믈 너겨 /깃열명길헤 자라오리잇가 (하략)
  (“履霜曲”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둘째 줄과 끝 줄이다. 전자를 현대어로 바꾸면 ‘엉킨 수풀 휘돌아가는 좁은 길에’가 된다. 이것은 험악한 장소를 말한다. 후자‘그런 열명길’ 또한 공포감을 느낄만한 무서운 공간 곧 악조건의 처소를 뜻한다. 화자가 처해 있는 곳은 이렇듯 궁벽한 곳, 운신하기 어려운 극한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몰려 있는 상태에서 화자는 님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속요는 언술에서 뿐만 아니라 배경 설정에 있어서도 극단성과 절박성을 선호한다.
  극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와 같은 공간의 배치는 현대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서리빨 칼날진 그우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 李陸史 “絶頂” 2·3연
  
  “이상곡”은 사랑의 노래이고, “絶頂”은 저항시, 이른바 상황시다. 이런 점에서 두 노래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점으로 삼고 있는 극한의 공간 설정, 절박한 상황의 배치에는 상호 큰 차이가 없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절정”의 상황이 좀더 절박한 인상을 주고 있을 뿐, 본질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한다.
  이런 식으로 듬성듬성 따져 볼 때 속요와 현대시는 주제나 기법 또는 질료와 상황 설정 등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닮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대시와 전혀 연결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경기체가류의 작품까지도 희한하게 우리 시대의 한 시인의 작품에서 재현되고 있음은 이미 Ⅳ장에서 확인한 바 있다.
  고려가요를 ‘사람’에다 비유한다면 과연 어떤 인간형에 속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고려가요는 적어도 목적 의식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형도 아니고 외부의 요청에 순종하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봉사하고 기여하는 피동적인 인간형도 아니다. “정과정곡”과 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의도성이 없이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저 심경의 일단을 솔직히 털어놓는 순박한 인간형이고 시대적인 상황이나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무관한, 오히려 그런 것들에게 견인되기를 처음부터 거부한 무공해(?) 인간형이다.
  우리 고시가(古詩歌)의 큰 줄기가 ‘향가→고려가요→악장→시조·가사’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두루 알고 있는 바다. 그리고 역사적 장르로서의 각기 독립된 갈래는 그것들대로 특성과 장처가 있고 나아가 문학사에 크게 공헌하였다는 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느 장르가 문학적으로 가장 우월한지를 가리는 것은 가능한 일도, 또는 합당한 일도 아니다. 다만 장르 간의 이질성이랄지, 특성과 특성끼리의 변별성이랄지 하는 것을 구별하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고 또한 필요하다.
  그런 견줌의 길만은 열어 놓은 상태에서 속요의 가장 현저한 특성을 지적한다면 무엇일까. 동어 반복이지만 이물질이 끼어 있지 않은 시가, 남의 길을 가지 않고 제 갈 길만을 간 시가, 천지귀신을 움직여서 감동시키는 그런 거창한 노래가 아닌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가, 종교와 철학의 세계가 아닌 일상과 상식의 세계에 뿌리를 내린 시가 ― 이런 몇 가지 점으로 요약된다. 고려가요의 친근성은 이런 데서 비롯되었으리라.
  향가의 문학사적 의의와 가치에 대해서 누구인들 수긍치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향가의 아쉬운 국면은 그것의 적지 않은 작품이 무엇을 해결하는 도구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물로 활용되고 바쳐졌다는 점이다. 선초(鮮初)의 악장문학, 그것의 시대적 필요성과 전아(典雅)한 궁중문학적인 특성에 대해서 우리는 일정하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그것의 노골적인 목적성, 신화의 세계를 방불케 하는 황당한 과장성은 악장의 태생적인 한계요 단처로 지적된다. 시조를 젖혀 두고 우리의 고시가를 말할 수 없다. 학계 일부의 이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은 일반인의 뇌리 속에 시조는 민족문학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11) 그만큼 시조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장르다. 그러나 시조의 타설성(他說性)과12) 유가적 이념에 봉사하려는 지향은 그로 하여금 비자율적인 문학으로 남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모든 시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시조의 중심 축이 사대부적 이념에 놓여 있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서정·서사·교술의 모든 요소를 아우르고 있는 가사는 일종의 열린 문학으로서 특수한 일부 계층이 아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애호했던 갈래다. 이렇듯 넓은 작자층·수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가사가 오히려 시조보다 민족문학적인 요인을 더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르 복합성이 안고 있는 산만성, 특히 후기 가사에서 집중적으로 검출되는 교술성은 가사도 역시 무엇에 봉사하는 시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고려가요는 향가에서 가사에 이르기까지 산견되는 저러한 이물질을 용인치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순결성이 더욱 돋보이는 장르다. 시가문학사의 흐름 위에서 조감할 때 이 사실만은 고려가요만이 누릴 수 있는 미덕이자 영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