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신문·방송 언어】

방송과 신문에 나타난 일본식 말 순화
-일본식 용어 사용을 삼가자―

최규일 / 제주 대학교 국어 교육과 교수


1. 서론(序諭)

  1.1. 광복 50년인 올해까지 정부, 학교, 언론, 민간 단체는 그 나름대로 국어 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도 오늘의 우리 말과 글은 너무도 오염되어 혼탁하다. 말의 남용과 오용으로 국어가 매우 어지럽다. 방송과 신문에는 일본식 말 사용과 그릇된 표현이 많이 보인다. 일본식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쓰는가 하면, 외래어와 외국어를 지나치게 사용한다. 그러므로 방송과 신문에 종사하는 언론인이 무엇보다 국어 순화를 위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1.2. 방송과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말과 글을 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국어 순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하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은 국어 순화의 지름길이다. 올바른 표현은 쉽게 뜻(의미)이 잘 통한다. 의미가 잘 통하지 않고 어색한 표현은 올바른 표현이 될 수 없다. 하나의 표현이 온전하려면 낱말의 뜻과 그 용법이 적절해야 한다. 언론인은 우리말의 어법과 말의 의미를 터득해야 한다. 그리고 국어에 관한 지식과 언어 감각을 지녀야 한다.
  1.3. 방송과 신문에는 순화된 언어를 가장 이상(理想)으로 삼는다. 국어 순화는 어색하거나 그릇된 표현을 올바른 표현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한자 말과 심한 외래어를 다듬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온통 외래어가 쏟아지면서, 우리 국어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오히려 방송과 신문이 외래어 쓰기를 더 부추기고 있는 인상이 짙다. 현재 국제화와 세계화는 우리 국어를 버리고 외국말과 외국 문화를 그냥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다.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에 우리 말과 글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2천 년과 지난 격변의 1세기를 중국 사대 (事大)와 구미 (歐美) 사대에 억눌리고 찌들어 보냈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과 고유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바른 시각을 갖지 못했다. 세계 인류에 기여할 우리의 국어와 고유문화가 사장(死藏)되었다. 이러한 때에 우리말의 국제어화가 요청된다.
  영어, 프랑스 어, 독일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어가 된 데에는 다 그 나라 국민들의 각별한 애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제 회의는 점점 더 많은 언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추세이다. 그에 따라 우리 한국어도 국제어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국어를 아끼고 다듬는, 즉 국어를 순화하는 길밖에 없다. 세련되지 못한, 거칠고 혼탁한 언어를 세계 국제어로 인정하여 줄 리가 없다. 우리 국어가 세계 국제어로 통용되기 위해서는 오염되어 혼탁한 우리말에 대한 국어 순화와 올바른 국어 사용이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국어 순화가 더 요청되며, 더욱 절실하다.


2. 국어 순화의 이유, 오염 실태, 대상 범위

  2.1. 순화(醇化, 純化)란 불순하고 잡스러운 것을 걸러서 순수하고 깨끗하게 하는 일이요,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을 바르게, 쉽게 하는 일이다.1)
  따라서 국어 순화는 국어 속에 오염되고 혼탁한 말들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바로잡아 국어를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淨化)하는 일이다. 그래서 신문·방송에서 일본식 말 사용을 삼가고, 외래어와 외국어를 가능한 우리말로 다듬으며, 거칠고 상스러운 말을 고운 말로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릇된 표현(오용 표현)을 올바른 말로 쓰자는 것이다.
  2.2. 왜 우리는 국어 순화를 해야 하는가? 그 이유와 필요성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근원적인 이유와 현실적인 이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근원적인 이유로는 1) 짧은 국어 교육의 역사와 국어 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2) 언론에서의 그릇된 표현이 국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3) 올바른 국어(표준어) 사용에 대한 국민의 언어 인식 부족이다. 4) 낱말의 장단을 구별하지 못하는 발음의 혼란이다. 5) 지식층과 언론에서 맹목적인 일본식 말 사용과 심한 외래어와 외국어 남용이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오염된 언어 혼란의 실태이다. 언어 현실에서 언어 혼란이 생기는 데는 1) 언어 규범에서 벗어나 의미상 혼란을 빚는 것이요, 2) 낱말의 뜻과 용법을 잘 모르고 낱말을 쓰는 경우요, 3) 문법에 어긋나고 그릇된 표현(비문법적 표현)을 하는 경우요, 4) 낱말의 오용과 남용 경우요, 5) 우리말에 외래어와 외국어를 남용하는 경우 따위이다.

  2.3. 어떻게 국어가 오염되고, 심한 혼란을 빚고 있는가? 국어의 오염 실태를 보자.
  국어에는 약 32여 개국의 외국말이 들어와 뒤섞여 쓰이고 있다. 외래어를 필요에 따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거짓 지식인이 거드름을 부리기 위해 마구 사용한다. 이 외래어 남용으로 국어의 오염이 심각하다. 특히 방송과 신문에서 일본식 용어를 함부로 많이 쓴다. 그로 인하여 국어가 오염되어 혼탁하다. 그리고 국어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혼탁한가는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고유어와 외래어 낱말의 비율로 짐작할 수 있다.

<국어사전 어종별 낱말 수록 비율>2)

어 종 큰사전(한글 학회, 1957) 국어 대사전(이희승, 1961)
고유어 74,612(45.46%) 62,912(24.40%)
한자어 85,527(52.11%) 178,745(69.32%)
외래어 3,986(2.43%) 16,196(6.28%)
합  계 164,125             257,853           

  여기 ‘큰사전’은 1957년에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으로는 외래어 수는 그때보다 훨씬 더 많다.
  이 밖에 국어를 오염시키는 것으로는 비속어(비어, 속어, 은어, 욕설 따위가 포함됨)이다. 그리고 우리 문법 체계에 어긋나는 외국어식 표현,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자극적인 발음과 상스러운 말들이 수없이 많다.

  2.4. 국어 순화의 대상 범위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곱고 아름다운 말과 올바른 말을 쓰려는 것과 외래어나 외국어를 제한하여 국어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다. 곱고 올바른 말을 위해서는 비속어나 상소리와 그릇된 표현을 없애야 하고, 국어 순수성을 찾으려면 일본식 말 표현과 외래어 남용을 삼가야 한다. 즉 국어 순화 대상은 그릇된 말, 비속어, 저속한 방송 유행어, 외래어 남용 등등이다. 한마디로 잡스럽고, 그릇된 표현(오용 표현)들이 국어 순화의 대상이다.,
  이 중에서 나는 방송과 신문에서 찾은 사례들을 특히 일본식 말 표현과 그릇된 표현(오용 표현)들을 국어 의미 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3. 방송· 신문에 나타난 일본식 용어 사용 문제

  나는 평소 우리의 교육 현장이나 방송·신문에서 용어의 뜻과 개념을 이해하는 데 문제시되거나 곤란한 말들이 많음에 관심을 가져 왔다. 이 장에서는 언론과 교육 현장에 나타난 용어 중에서도 특히, 일본 군국주의 시대(소위 일제 시대)에 일본이 이 땅을 통치·지배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그네들의 언어 의식 구조에 맞추어 말을 왜곡·은폐·미화·날조한 일본식 용어 사용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살피기로 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일본식 용어는 이른바 일제 식민지 시대 산물의 잔재(殘滓)인 용어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 잔재들을 불식(拂拭)하기 위해서, 이런 일본식 용어들은 현재 우리 교육 현장과 언론에서 하루빨리 추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와 국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우리의 과거 역사에서 이 같이 왜곡·은폐·날조된 일본식 용어들은 마땅히 우리식 말로 바로잡아 우리말로 순화해야 한다. 그 이유는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지키지 못하면 그 나라 민족의 국어와 역사 뿌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 나라 민족의 긍지와 민족혼(民族魂)은 바로 자기 나라 말과 글에 담겨 있다.
  한 나라의 언어(말과 글)는 국민의 의식과 역사의 방향 좌우한다. 우리는 민족의 뿌리를 잃고, 주체성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비극인가를 지난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잘 안다. 역사에서 주체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민족성을 상실함과 같다. 과거 한때 우리나라는 일본의 통치 지배 아래 “너희 역사는 압록강 이남에만 한정돼 있다.”고 왜곡한 일본 군국주의 사관에 빠져 버린 일부 선학들의 교육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지난 일정(日政) 시대(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줄여 일제(日帝)시대라 했음)에 역사 인식이 결여된 채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그저 받아들인 일본식 용어들이 지금 우리 언어 현실에 수없이 많다. 광복 50주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아직까지 왜색(倭色)에 물든 일본식 용어들을 버리지 못하고 관행에 따라 그냥 맹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어를 국어로 써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계율과 압박으로 우리말을 못 쓰게 하며 일본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던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러한 일본식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와 일본식 용어가 우리 국민과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지금의 우리들은 우리 교육과 특히 방송과 신문인 언론 측면에서 성찰(省察)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정 시대(왜정 시대) 일본인들이 은폐· 왜곡· 미화· 날조한 용어 속에 그네들의 교활한 속셈이 들어 있는 일본식 용어를 우리들은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검토하며 반성하여 언론 현장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과 올바른 국어 교육을 계승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래에 일본식 용어 사용 문제를 논하면서, 왜, 이런 일본식 용어들을 써서는 안 되는지 각기 그 용어의 내력과 이유를 밝히면서, 나 개인의 소견을 밝혀 보고자 한다. 국어의 올바른 표현을 위해 그릇된 표현을 바로잡으면서 필요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겠다. 각기 해당하는 말들의 오른쪽 화살표 (→)방향으로 고친 것은 글쓴이의 의견이다. 물론 이보다 더 나은 좋은 표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 경우 앞뒤 문맥에 따라 적절히 바꾸면 된다.


      1) ‘한반도(韓半島)’ 용어 문제

  ‘韓半島’란 용어의 개념은 ‘한반도의 절반’ 곧 ‘반 섬’이라는 한정된 지정학적 위치를 뜻한다. 이러한 뜻을 갖는 ‘韓半島’란 용어는 일본인이 우리 국토를 광활한 만주 벌판(中原 지역)을 빼 버린 하나의 半島(peninsula)로 보아, “北半部는 異民族인 燕나라 衛滿이 한때 지배하다가 漢武帝가 정복한 후에는 중국의 지배를 받아 왔고 南半部는 신라, 백제, 가야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가야에 근거를 둔 任那日本部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식으로 우리의 上古史 부분을 왜곡 날조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이러한 역사 기술은 한국인은 예나 지금이나 분열된 민족이며 항상 남의 나라에 지배받아 왔고 통일된 나라를 가질 능력이 없으니 일본이 한국을 植民地化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일본인의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다. 즉 이에는 우리의 광활한 국토를 좁혀 축소시키고 섬나라인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소속된 하나의 속도(屬島) 내지 속국(屬國)으로 삼으려고 했던 저의가 깔려 있다. 이른바 日帝植民地時代에 일본인은 우리나라 사람을 ‘조센징(朝鮮入)’. ‘한또진(半島人)’이라 輕蔑하면서, 우리나라를 감정적으로 卑俗化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上古史는 ‘중국대륙+몽고대륙+만주대륙+시베리아대륙+朝鮮+日本列島’에서 전개된 역사이지 결코 한반도만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上古 時代 우리나라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淸·日 간의 국경 협정일 뿐이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계선일 뿐이다. 한국과 청나라 양국 간에 1712년 5윌 15일 백두산에 세워진 정계비대로 ‘압록강→토문강→송화강→흑룡강’이 국경선이었으니, ‘삼천리 반도’라 하는 말조차 우리 국토의 경계 개념을 흐리게 하는 것들이다. ‘압록강-두만강’을 국경선이라고 하는 견해나, 헌법 전문의 ‘韓半島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규정까지도 日帝 植民地 時代 日本人에 의해 왜곡·날조된 倭色 용어이다.3) 사실상 우리의 국경선이 ‘두만강-압록강’이 아닌 ‘송화강―흑룡강’이라는 지리적 감각을 갖고 있는 국민은 드물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두만강-압록강’의 국경선까지도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유관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712년 숙종 38년 5윌 15일에 淸나라의 鳥喇總管 穆克登과 우리나라 접반사 朴權, 군관 李義復, 통역관 金應憲 등이 백두산 꼭대기의 압록강과 토문강의 분수령에서 백두산 꼭대기 동남쪽 4㎞ 해발 2,000m 되는 지점에서 합의하여 세운 백두산 정계비가 韓·中 양국의 최초이자 최후의 국경 협정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제멋대로 남의 나라 국경을 ‘압록강→石乙水→두만강’으로 정했으니 이 얼마나 파렴치한 만행인가? 게다가 기막힌 사실은 이렇게 국경선을 정해 주는 반대급부로서 남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을 따냈다는 것이다. 이 철도 부설권은 露·日 전쟁 때 1941년 포츠머드 조약에서 승인된 것이다. 이리하여 억울하게도 우리의 북방 疆域인 두만강 북쪽의 땅이 일본인들에 의하여 잘려 나갔던 것이다.4) 그 이후 약 80년간 ‘압록강-두만강’이 우리의 국경선 구실을 하고 있었다.
  원래 우리의 국토는 上古時代에는 저 넓은 만주 벌판(中原 地域)이 중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중심이었던 만주 벌판을 기준으로 할 때는 결코 우리의 국토를 ‘半島’에 한정시켜 부르는 ‘韓半島’라는 용어는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 또 그렇게 부르거나 적어서도 안 된다.5) 이와 같은 맥락으로 洪以燮 교수는 ‘民族 自主 史觀의 確立-한국사의 새 觀點’이란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일찌기 遼河, Altai 山脈, 與安嶺山脈으로 선을 긋는 동쪽 지역, 즉 만주벌에서 활동했고 다시 남으로 따뜻한 半島로 옮겨 와서 살게 된 경로를 전체적으로 보지 앓고 ‘韓國史’하면 그 활동 지역을 꼭 半島에만 한정지으려는 데서 한국사 본연의 모습을 잃기 쉬웠고, 어딘지 반도에만 집착하려는 소극적인 면이 지배적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국토 현실을 놓고 생각할 때, 한국의 南北 分斷은 궁극적으로는 일제 침략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南·北韓이 分斷되어 있는 현실을 이용하여 등거리 외교를 펴 오고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南北韓이 分斷되어 우리 국토가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한국 분단의 원인과 그 책임에 대해서 愼鏞廈 교수는 ‘解放 前後 韓國人의 歷史 意識’이란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 한국 분단의 제1차적 원인과 책임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처리 과정에서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하여 점령하기로 하고 일단 38°선으로 분단했으며, 戰&後에는 분단된 반쪽씩의 한국을 그들의 지배하에 두려고 한 美·蘇 列强의 분단 정책에 있다.
  ② 한국은 1945. 8. 13. 38°선 확정으로 사실상 분단이 된 것이다. 이 38°선의 확정에 대해서는 종래 두 가기 설이 있는데, ㉠ 군사적 편의주의설 ㉡ 얄타밀약설이다. 이에 대해 신용하 교수는 한국 분단의 원인을 美·蘇 列强의 정치 야합설과 그 하나로 포츠담 밀약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近代史가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면서 바로 南北 分斷 時代로 빠져 들게 된 간접적 원인은 일본의 극악한 식민지 통치에 있고, 직접적 원인은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에 있었다.
  그런데, 나는 ‘韓半島’란 용어가 일본인이 만들어 낸 말임을 1987. 2. 28 (토). 동아일보 9면 기사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그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국내의 1주년 기념 움직임을 보도한 신문이 半島新聞이었다. 한국 장서가 협회 辛永吉씨가 고서점에서 입수, 28일 공개한 半島新聞은 모두 6면으로 가로 26㎝, 세로 38㎝ 크기에 국한문 혼용의 기사가 실려 있다.(中略) 이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인 島村猛猪, 인쇄인 阿部節治 등 모두 일본인으로 돼 있으며, 발행소는 <東京市赤板區 町三番地 半鳥新聞社> 발매소는 <京域府光化門通 二白十番地 半島新聞社>로 각각 적혀 있어, 발행은 일본 東京에서 되지만 판매는 서울에서도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을 위해 1917년 국한문 혼용의 월간지 <半島時論> 등을 東京에시 창간해 발간했던 일본인 竹內綠之助가 이 신문의 실질적인 수인으로 1919년 3·1운동 직후 이 신문을 창간한 것으로 보인다.”(고딕 글자는 필자가 표시한 것임)
  이처럼 ‘韓半島’란 용어는 극악한 日帝植民地 통치하에서 日本人이 만들어 낸 말이다. 그런데 日本人이 ‘韓半島’란 말을 만든 그들의 속셈(음모, 저의)은 원래 광활한 우리의 국토를 남북 분단으로 둘로 갈라 놓으려는 데다가 우리 국토를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깃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문화적 우수성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우선 ‘國力’이라 함은 일차적으로 그 나라의 영토, 인구, 그리고 국민의 우수한 두뇌이다. 세계사에서는 ‘강대국’이라 함은 ‘조밀하지도 않은 인구 밀도로서 1억의 국민을 보유한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이 세 요소 중 첫 번째인 영토를 잃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식민지 정책에서 나온 탓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국토의 경계선은 세 번 바뀌었다. ① 송화강 흑룡강에서, ② 압록강 두만강으로 되고, ③ 1945. 8. 13에 38°선으로 갈라진 셈이 된다. 원래의 광활한 우리 국토가 오늘날 38°선으로 갈라진 좁은 국토로 되었으니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는 38°선 대신 휴전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

  ○ 반도(半島)
  영어 페닌슐러(peninsula)를 일본서 옮긴 말이 ‘반도’다. 일본 “대한화사전 1956”을 보면
  “반도(半島): ① 바다 가운데로 내밀어 섬 모양인 뭍. 세 쪽이 바다와 닿은 뭍. ② 특히 조선을 말함.” 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 사람을 깔보고 욕할 때 한토진(半島人)이라고 했다. 위 풀이 ②가 그것이다.
  ‘반도’라는 말은 일본 한자 말이고, 치욕스러운 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반도는 우리말로는 ‘곶’이다.
  중국 한자 말이나 일본 한자 말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가 거의 다 쓰지만 우리 한자 말은 중국과 일본서 거의 쓰지 않는다.
  현재 우리들이 우리의 국토 疆域을 ‘半島’라고 생각하는 것도 엄청난 잘못이지만, 우리는 결코 ‘半島人’이 아니라고 하는 自我 인식이나 역사 의식과 민족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와 아울러 우리 국토는 결코 ‘삼천리 반도’가 아니며, ‘韓半島’라는 용어가 우리 국토 영역의 대명사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國土 領域을 무어라 지칭해야 옳은가?
  1948년 7월 국회에서 ‘대한민국’이란 國號가 처음으로 정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韓半島’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大韓民國’이라는 國號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南北韓이 分斷된 현실을 꼭 구별하여 지칭하고자 할 경우는 ‘南韓’ 또는 ‘北韓’으로 부를 것이지 ‘南北韓 分斷’, ‘韓半島 分斷’ 등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6)
  그래서, 나는 앞으로 ‘韓半島’란 말은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며, ‘한반도’란 語辭가 들어가는 다음의 말들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韓半島 정책 ·韓半島 分斷 ·韓半島 침략
·大韓半島 정책 · 朝鮮半島 ·朝鮮半島 지도

  ○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 기구) → 한국 에너지 개발 기구
  * K(korea)를 ‘한반도’라 번역함은 옳지 않음.

  ○ KOREA: 장래에 남·북한 통일을 대비한 우리나라 國各의 영자 표기 재고(再考)7)

  ○ 韓半島, 朝鮮半島(Korean Peninsula) → 大韓民國(Korea), 남북한


      2) ‘일제(日帶)’와 ‘식민지(權民地)’ 용어 문제

  ‘日本帝國主義’의 준말인 ‘일제(日帝)’란 말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자.
  일본은 建元稱帝를 한번도 못해 본 민족이면서 예로부터 天子國(皇帝國)임을 자처해 온 나라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역사에 그 例證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경기도 금곡에 있는 洪陵·裕陵이 그것이다. 이 두 陸은 高宗과 純宗의 王陸이다. 이 두 陵은 1987년 建元稱帝 이후의 것이기에 재래의 陵이 中國皇帝에 예속된 諸候國의 君의 격식임에 반하여, 이 두 능은 皇帝(天子)의 격식에 준하여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그 규모가 유례 없이 거대하다. 高宗보다 純宗의 陵이 더 크고, 재실, 침전, 문무, 동물들의 석상이 모두 엄청난 규모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사의 한 비애로운 장면을 볼 수 있다. 建元稱帝8) 를 한번도 못했으면서도 皇帝國을 자처해 온 日本人들 손에 의해 억지로 建元稱帝를 당하고, 그 허울 좋은 무덤 속에다 우리 조선 민족의 마지막 아기를 다 파묻었던 것이다. <김용옥(1985:244-245)> 그리고 이때에 우리나라를 ‘대한제국(大韓帝國)’9) 으로 부르기도 했다.
  흔히 사람들은 ‘일제(日帝) 36년’으로 말하는데, 이것도 실은 조선 총독부 시대의 강점(强占) 기간만을 본 것이므로, 실제로 따진다면 우리나라는 약 69년 동안 일본 식민지의 억압을 받은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 69년 동안에 있었던 과거 일정 시대 침략의 역사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말(韓末)의 역사에서 일본이 침략한 기간을 일제 시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뜻있는 史家들의 定論임도 알아야 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日帝 植民地 時代 政策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10)
제1기(1876 1895): 侵入友邦國時代, 참여 정책(약 20년) 
제2기(1895 1906): 侵略同盟國時代, 간섭 정책(약 10년)
제3기(1906 1810): 侵略統監府時代, 유린 정책(약 4년)
제4기(191O 1945): 侵略總督府時代, 植民 정책(약 35년)
合計 69年
  여기 ‘식민(植民)’이란 낱말은 자기 나라 사람을 남의 나라 땅에다 살게 한다는 뜻으로, 일본이 이 땅에 이주(移住)·이민(移民)시킨 일본인을 뜻한다. 즉 남의 나라에 자기 나라 사람을 옮겨 심는다는 뜻이다. 거기에다가 ‘식민지’(植民地)는 자기 나라 사람을 남의 나라 땅에다 이주·이민시켜서 자기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남의 땅을 많이 차지하기를 바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이 식민지를 확보해 놓은 다음에 서두른 것이 식민지 통치에서 식민지 사관을 펴고, 식민지 교육을 하여 이 땅에 일본 말을 심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1876. 7. 6.(고종 19)에 일본 말을 강요하는 約條를 만들었다. 소위 ‘일본 말 강요 약조’이다. 이 약조는 ⓛ 외교 문서는 모두 일본 말을 쓸 것이며 그것을 漢文으로 번역하지 않는다. ② 일본 정부의 배는 항구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고종실록 上: 고종 13년 7월 6일)
  한마디로 ‘식민지’란 이 땅의 주인인 한국인의 존재를 말살하고, 우리를 일본 식민으로 뒤집어 씌운 말이다. 그래서 ‘식민지 사관’, ‘식민지 교육’, ‘식민 통치’란 말은 ‘일본 침략 사관’, ‘일본 침략 교육’, ‘일본 침략 학정(虐政)’, ‘조선 통치’로 바꾸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역사 인식을 지닌 자주민(自主民)의 태도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이른바 일제 식민지 정책은 우리나라를 통치·지배하여 우리 민족을 세계에서 소멸시켜 그들에게 천대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는 일본의 예속 천민(隸屬賤民)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일본은 무력으로 우리 국토를 빼앗고, 주권을 빼앗고, 정치· 경제· 문화를 예속시켜 착취하였으니, ‘식민지’라는 말은 다시 한번 재고할 일이다.
  일본이 이 땅에 일본 사람을 옮겨 심은 땅이 ‘植民地’이다. 이 植民地를 확보해 놓은 다음에 서두른 것이 조선에다 일본 말을 심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日帝는 武力으로 우리의 국토를 빼앗고, 주권을 빼앗고, 경제를 예속시켜 착취하였다. 이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정책은 우리 민족을 이 지구상에서 영구히 소멸시켜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은 ① 조선 민족 말살 정책과, ② 사회·경제적 수탈 정책에 중점을 두었다. 그중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이 日帝가 자행한 가장 악랄한 정책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하여 同根同祖, 內鮮一體를 구실로 내세워 ‘同化’라는 名目으로 同化 政策을 써서 조선 민족을 이 지구상에서 완전 소멸시켜 그들에게 천대를 받으며 헐값으로 노예처럼 일하는 소위 일본의 예속(隸屬) 천민(賤民)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 군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은 우리 민족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조선어 말살과 조선 문자 말살 정책을 강행하였다. 1910년부터 시작하여 일본어를 국어로 삼도록 하고, 1930년대에는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과 조선어 사용을 엄금하였고, 1937년부터는 일상생활에서의 조선어 사용을 금하였다.
◦ 식민지(植民地), 식민지 사관, 식민지 교육→침략(정복) 사관, 침략(정복) 교육

      3) ‘모국어(母國語)’ 용어 문제

  일정 시대에 일본이 이 땅을 강점(强占)하여 조선을 통치·지배하기 위하여 일본은 이른바 일제 식민지 정책을 펼쳤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하여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을 자행했다. 그 하나로 우리말을 못 쓰게 하는 조선어 말살 정책을 강행했었다.
  1910년부터 일본어를 국어로 상용(常用)하도록 강요하고, 1930년대에는 학교에서 우리말(조선어) 교육과 조선말 사용을 엄금하였고, 1937년부터는 일상생활에서 우리말 사용을 금하고 일본어를 모국어(母國語)로 사용하도록 강요했었다. 그 당시 조선어는 ‘언문(諺文)’이라 하여 일본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여기도록 하였다. 그러니까 ‘모국어’에서 ‘국어’란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를 뜻한다. 그리고 ‘모국어’란 개념 자체가 뜻하는 것은 말을 규정하는 것은 국가이지 어머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권리를 우리 국가가 아닌 일본국이 장악하던 그 당시의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는 ‘모국어’란 말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그 누구도 말을 처음 배울 적에는 어머니한테서 배우지 국가로부터 배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모어(母語)’란 자기 어머니한테서 배운 엄마 말이란 뜻이다. 한마디로 ‘모국어’란 일본어를 미화시켜 만든 말이다. 참고로 영어 ‘Mother Tongue’과 독일어 ‘Mutter Sprache’에는 國의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영어나 독일어를 ‘모국어’로 번역하여 사용함은 잘못이다. 굳이 자기 나라 말임을 부르고자 할 적에는 ‘자국어(自國語)’라 한다. 아울러 외국 동포가 고국의 말을 부를 때는 ‘고국어(故國語)’ 또는 ‘조국어’라 하면 된다.
  ‘모국어'란 말은 일본인이 미화(美化)·은폐시킨 용어이다. 우리들은 이제 과거 일정 시대 일본식 교육(소위 일제 식민지 교육)에서 배운 일본식 말을 하루빨리 버리고, 참된 국어 교육을 통하여 제대로 된 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 말의 뜻(語義)이나 語感上 좋지 못한 일본식의 말을 굳이 고수할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거나 좋지 않은 말은 삼가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4) ‘개화기(開化期)’ 용어 문제

  ‘開化’11) 라는 말은 큰 쪽이 작은 쪽을 흡수해 버리는 경우, 큰 쪽이 작은 쪽을 속이기 위하여 또는 큰 쪽의 침략 행위를 합리화해서 부르는 침략 용어다. 이 ‘開化’란 말은 두 나라 가운데 침략하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침략 용어이기 때문에 침략을 당하고 있는 억울한 쪽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침략을 당한 쪽에서 그 말을 쓰게 되면 그것은 자기 멸망을 재촉하면서 야만임을 자치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開化’라는 말에는 ‘야만’을 전제로 하고 과거와 현재를 일체 부정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과거와 현재를 야만으로 돌려서 그것을 일체 부정하는 파괴 의식을 가지게끔 만든다. 그러기에 이 ‘開化’라는 말은 ① 역사 의식에 대한 단절과, ② 현재 모습을 허물어뜨리는 파괴 의식과, ③ 파괴된 곳(허물어진 곳)에 무엇인가를 새로 받아들이도록 同化 意識을 강요하게 되는, 세 가지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침략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 ‘開化’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日本人 公使 大鳥圭介였다. 1894년(갑오)년 6월 21일 새벽에 일본 군대를 이끌고 우리 대궐을 침입한 大鳥圭介 公使는 김홍집을 영의정으로 삼고 함께 데리고 온 친일파 10여인을 요직에 앉히는 작업을 했다. 그때(1989. 6. 22.), 大鳥圭介는 고종 임금에게 “지금부터 開化하면 두 나라 사이는 이웃으로서 더욱 친하게 될 것이요. 그것은 지난날에 견줄 바가 못될 만큼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고종실록 2권 p.492.) “일본식으로 나라의 법률 제도를 바꾸는 것을 ‘開化’라 하고, 그렇게 하면 조선 나라는 억만 년 뻗어 나가게 된다”는 식으로 간교한 속임수를 썼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말은 곧 “너희들의 나라는 야만이기 때문에 그 “야만스러운 나라를 버리고 일본으로 들어오라”는 뜻이 된다. 또한 한국이면서 “우리들이 개화하자”라고 하는 것은 곧 “야만스런 우리 조국을 버리고 일본으로 들어가자”라는 뜻이 된다. “개화하라”는 말은 왜놈들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했던 것이고, “개화하자”는 말은 당시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말이다.
  사실 일본은 1894. 6. 21. ‘聞化’라는 허울 좋은 말로 해괴한 軍國器務處에서 조선법을 없애고 일본법으로 바꾸는 일을 했다. 甲午改革 소위 甲午更張 단행이 그것이다. 이는 1894. 7.(고종31)~ 1896. 2.(고종32)의 약 19개월 동안 추진되었던 일련의 政變이다. 이때 군국기무처 주도하에 일본은 내정 개혁안을 제시하여 궁중에 난입하여 閔氏 정권을 타도하고 흥선대원군을 영입하여 新政權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하여 일본은 69년간의 긴 세월 동안 우리나라를 묶어 놓고, 우리 민족을 文盲人 취급을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開化’란 用語는 일본인들에 의하여 철저히 강요되었던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開化期’라 하여, 이 開化 이전의 수백 년을 통해 이루어진 찬란한 우리의 문화적 성취는 몹쓸 것으로 단절시켜 버리고, 일본은 開化 이후의 역사만 보려고 한 것이다. 張志淵은 周易의 ‘自强不息’을 빌어 ‘是日也放聲大哭’을 써서 自强論을 역설했고, 1903년 8월 12일 張錫龍은 ‘自强不息’에 대한 疏를 올린 적도 있다.(고종실록 3권 p.292)
  그런데, 우리말에는 자기 발전을 위해서 좀 더 잘 해보자는 뜻으로 ‘自强(自彊)’(스스로 힘써서 마음을 가다듬음)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이 ‘自强’이란 말을 살려서 1894년(甲年)년 이후의 해당 시기를 일컬을 때는 ‘開化期’란 말을 버리고, ‘自强期’ 또는 ‘근세’란 말로 바꾸어야 한다. 즉, “開化期→自强期, 또는 近世(代) 轉煥期, 19세기”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開化’가 들어간 ‘開化期, 開化派, 開化期 小說’ 등의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 되겠다.


      5) 8. 15. ‘해방(解放)’ 용어 문제

  우리들은 1945. 8·15(乙酉年)의 ‘解放’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解放’이란 말은 일본 군국주의의 植民地 政策에서 朝鮮(한국)을 묶어 놓고(구속했다가) 1945년 8월 15일이 되자 마지못해 朝鮮人(한국인)을 풀어준다는 데서, 즉 解放시켜 주었다는 데서 日本人이 미화·은폐한 용어이다. 이는 마치 죄수를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석방시켜 준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은 마지못해 우리를 구속의 몸에서 자유롭게 풀어 준다는 것이다. 마치 죄인이나 노예를 풀어 준다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解放’이라는 용어를 만든 주체는 일본인이다. 그러기에 ‘8·15 解故’이라는 용어는 우리 쪽에서 볼 때 매우 못마땅한 것이다. 우리 측에서 볼 때는 ‘解放’이 아니라 ‘光復’이 되는 셈이다. ‘光復’이란 말은 得光於國土恢復(잃었던 국토를 되찾게 되어서 캄캄했던 세상에 빛을 얻게 되었다)의 뜻이다. 이 ‘광복’이란 용어는 上海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1836. 6. 8.-1944. 3.)에 소속된 ‘光復軍’에서 시작되었다. 이 광복군의 승리로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이 된 셈이다. ‘解放’이라는 용어는 우리 민족을 無力化시킬 뿐이며, 잠시 그 순간의 기쁨밖에 주지 않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어찌 ‘해방’을 피동적으로만 받아들였는가? 우리나라는 그 당시 떳떳하게 光復運動을 벌였고, 일본에 대해 끈질긴 민족 저항 운동도 벌였다. 좀 더 힘있고 당당하게 주장한다면 한국은 日本의 戰勝國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解放시켰다는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일본에 빼앗겼던 나라 땅을 되찾게 된 영광이 왔다는 뜻에서 ‘光復 節’로 기념하지만, 일본인들은 이 날을 ‘敗戰差恥日’로 여겨 슬퍼한다고 한다.12) 이렇게 볼 때 ‘解放節’이란 말은 어색하며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유의할 것은, 1985년 8월 15일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말할 때는 반드시 ‘光復’이라 해야 하고, ‘解放’이라고 말함은 곤란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개념의 뜻으로 쓸 때는, ‘解放’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1985년 8월 15일을 흔히 ‘8·15 解放’으로 말하는데 이는 마땅히 ‘8·15 光復’으로 일컬어야 한다.


      6) 6·25 동란(動亂)/사변 (事變) 용어 문제

  우리는 1950년(庚寅年) 6월 25일의 역사적 사건을 일러 흔히들 ‘6·25 事變’이니 ‘6·25 動亂’으로 불러 왔다.
  ‘事變’이란 ‘조그마한 變動’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1950. 6. 25.에 북한 괴뢰군이 남침하여 사람을 죽이는 동족상쟁의 전쟁을 일으켰다. 이 같은 중대한 사건을 두고 ‘事變’이라 하면 격에 맞지 않는다. 유엔(UN)군이 참전한 전쟁을 조그만한 ‘사변’이니 ‘동란’으로 보려는 것은 일본인이 축소시킨 용어이다. 이 중대한 사건을 흔히 우리는 일본식 용어인 ‘6·25 動亂’ 이니 ‘6·25 事變’으로 써 왔다. 이는 잘못이다. 역사적 사건을 이름 짓는데 그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놓고 그에 맞추어 주체자 중심의 용어를 지어야 하고, 또 그렇게 불러야 하는 것이 올바른 이치다.
  이 날은 실은 북한이 남한을 침입한 것으로 北韓 南侵日이 된다. 그리하여 전쟁이 되었다. 그러니 1950. 6. 25.는 ‘6·25 전쟁’- 또는 제3자 측에서는 ‘한국 전쟁’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動亂’은 日本式 한자어이며, 韓國式 한자어는 ‘亂動’이 된다.
  앞으로는 ‘6·25 動薍’, ‘6·25 事變’이란 말은 ‘6·25 전쟁’ 또는 ‘한국 전쟁’으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


      7) ‘경찰(警察)’, ‘파출소(派出所)’ 용어 문제

  ◦ 경찰(警察)
  우리나라 경찰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고려 중기 이후 순군만호부(순라꾼들의 총 본부)를 설치하고 감옥 사무도 겸하게 했고 조선 시대에는 의금부가 좌우포도청으로 하여금 역적이나 도둑들을 잡아들이게 했다. 그뒤 갑오개혁 때 포도청을 폐지하고 일본 경시청을 본뜬 경무청으로 통합됐다. 그때 일본인 경무청 고문은 한국인 경무청장으로 하여금 대원군과 명성황후 등 주로 반일적 주요 인물들의 동태를 감시하게 했다. 또한 전국 23개 관찰부의 경무관들도 하나같이 일본의 주구가 돼 우리 국민들을 괴롭혔다.
  일본군은 이보다 훨씬 전인 1875년 운양호 사건과 강화도 불평등 조약 이후 부산 인천 원산 등 각 개항지마다 영사(領事) 경찰을 설치했고 뒤이어 이사(理事)청경찰, 고문경찰, 헌병경찰 등을 설치했다.
  특히 1904년 노일 전쟁 이후에는 조선통감이 일본 헌병대에 군사 행정 사법권을 주어 우리 농민과 의병들을 닥치는 대로 즉결할 수 있는 처분권을 자행케 했다. 특히 전쟁 막바지 징병, 징용, 정신대 등 소위 ‘국민 총 동원령’에 날뛰던 당시 경찰들의 소행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경찰이나 경무는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몸서리치던 공포의 대명사였을 뿐만 아니라 간악한 일제 주구들의 호칭으로 시작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 후 우리는 경찰서란 간판을 그대로 걸어 놓은 채 그 기구와 기능 또한 대부분 존속됐다.
  그동안 우리 경찰이 그 숱한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아 건국의 기초를 다지고 공산 침략에 맞서 싸운 호국의 명예를 살리고 새 시대에 걸맞은 깨끗한 경찰, 봉사하는 경찰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명칭을 바꿔야겠다.

  ◦ 파출소(派出所)
  ‘파출소(派出所)’란 말의 뜻은 “경찰서 소재지 안의 지정된 관할 구역의 치안을 맡아보는 巡警이 파견되어 있는 곳(이희승, 국어대사전)”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뜻으로 굳어져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고, 또 그렇게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파출소’란 이름도 실은 일본 군국주의가 우리에게 남겨준 산물이다. 倭政 時代 일본 군국주의가 軍國機務處를 두어 이 땅에 왜군 헌병들을 파견하여 파견하여 전국 곳곳의 정보망을 보호 감시하며, 일본 본국에 諸般 사항을 보고 받기 위하여 설치한 것이 ‘派出所’이었다. 현재 일본에서도 ‘◦ ◦派出所’란 간판이 적혀 있고, 또 그렇게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1987. 2. 26.(토)자 동아일보의 ‘독립운동 새 자료 찾아’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면 ‘派住所’란 말이 나오고 있다.
당시 만주 安東에는 임시정부(상해)의 연락 책임을 맡은 交通局과 財務派住所가 설치돼 있어 국내로부터 자금의 모금과 애국지사 규합 등을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만주 안동의 임시정부 財務派住所 宋참사에게 맡겨 놓았다.
  이 용어는 그 당시 광복군인 우리 한국인이 사용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군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파출소’란 용어 대신에 우리 한국인이 쓴 ‘派住所’, ‘駐在所’ 또는 ‘民生所’란 말로 바꾸어 사용했으면 어떨까 한다.


      8) ‘이씨 조선(李氏朝鮮)’, ‘이조(李朝)’ 용어 문제

  일본은 1910년(순종3) 8월 22일에 한국 땅을 짓밟았다. 그 뒤부터 일본인들이 ‘李氏朝鮮’이란 용어는 李氏가 나라를 세운 일종의 部族國家로 보아 하나의 당당한 국가 형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卑下시킨 말이다. 그리하여 ‘朝鮮’이라는 나라 이름마저 없애 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일본인의 숨은 뜻을 모르고 우리가 ‘李氏朝鮮, 李氏王朝, 李朝’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제 나라 역사에 무관심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제 역사를 부정하는 격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 ‘朝鮮’이냐 ‘李朝’냐 할 때, 우리의 國號는 ‘李朝’가 아니라 ‘朝鮮’이다. 일본은 ‘李氏王朝, 李氏朝鮮, 李朝, 李朝時代’란 말을 쓰게 함으로써 은연중에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도록 만들어, 끝내는 자기 나라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데 그 숨은 意圖가 있었던 것이다.
  ‘李朝’란 이 용어를 부르면 부를수록 제 나라를 스스로 업신여기게 된다는 효과를 노렸고, 그 꾀에 말려 들어가서 마침내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왜로들이 1910년(경술) 8월 22일에 조선 궁궐을 ‘李王宮’이라 하여 고종 임금을 ‘李太祖’라 부르고, 순종 임금을 ‘李王’이라 불러서 일본 귀족으로 흡수했다. 그리고 조선 총독부 안에 있던 도서검열과에서 문집, 초고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때 왜로들 고치라고 한 것 중에 으뜸이 ‘我朝 朝鮮’을 ‘李朝’로 바꾸면 허가해 주겠다는 것이었다.13) 이런 논리대로 한다면 ‘高麗’도 ‘王氏高麗’ 또는 ‘王高時代’라 불러야 할 것이다.


      9) ‘신정(新正)’, ‘구정(舊正)’ 용어 문제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으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설’, ‘설날’이라 하여 우리의 고유 명절로 삼아 왔다. 한자어로는 신일(愼日) 또는, 달도일(恒忉日)이라고도 한다. 그 밖에 原旦, 元正, 元朝, 正月, 正初, 年始, 年頭, 歲首, 歲時, 歲初, 新元의 어휘들이 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았다.

설날:

정월초하룻날. 예로부터 우리의 첫 명절로서 설빔을 입고, 조상에게 차례 지내며, 윗사람에게 세배함. 준말로 <설>, ‘국어대사전(이희승)’
신정(新正): 1. 양력설, 2. 새해의 정월↔구정
구정(舊正): 1. 음력설, 2. 음력 정월↔신정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이 한때 ‘1959년 무렵’은 이중과세(二重過歲)라 하여 금하였다. 음력을 못 지내게 하고 양력을 쇠게 했다.
  高宗 32년(1895) ‘始用太陽曆’하기로 정하고 ‘以開國 504년 11월 18일 爲五百年 1월 1일’로 정한 이래로 양력을 써 왔다. 이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고유의 전통이면서 고유 명절인 우리 ‘설날’은 양력설과 음력설의 두 갈래에서 한땐 설날이 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게다가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여 설날 명절을 갈라놓으려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 내막을 똑바로 알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이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을 못 지내게 하려는 저의(속셈)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설날인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께 차례 지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인다. 한마당 잔치에는 온 마을 사람들의 단합이 이루어진다. 크게는 온 국민의 단결이 모아진다. 온 마을과 온 국민의 단합과 단결을 막으려는 것이었고, 미풍양속인 우리 고유의 전통인 설을 단절하려는 저의가 들어 있었다. 이른바 일정/왜정 시대 조선 총독부에서 일본인들이 전개한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 위정자들 음력설이니, 양력설이니,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이중과세의 빌미를 잡아 선량한 우리 국민들의 정신, 즉 민족혼을 흐리게 하여 편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그 여파로 지역에 따라, 종교에 따라 양력설 지내는 쪽과 음력설 지내는 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때는 국민의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었다. 그 점을 왜정 시대 일본인들은 노렸던 것이다. 하마터면 우리 고유 명절인 설날을 일본인들에 의해 잃을 뻔했다. 그나마 우리 고유의 전통인 명절을 찾겠다는 뼈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 고유 설날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때는 정부에서 ‘민속의 날’로 정했으나, 지금은 설날을 공휴일로 정해 명절을 지내게 하니 잘한 일이다. 전에는 신정/양력설을 지내던 쪽도 지금은 우리 본래의 설날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형편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그 용어 사용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고유의 4대 명절 중 첫 번째 ‘설날’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름이 ‘설날’/‘설’이면 되었지, ‘신정’이니, ‘구정’이니,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 하면서 둘로 갈라 부를 필요가 없다. 추석처럼 온 국민이 우리의 고유 명절인 우리 ‘설날’을 지내야 한다.
  일본인이 우리 고유 ‘설’을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여 둘로 갈라놓은 것은 우리 국민의 단결과 화합을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저의가 숨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두 개의 용어 사용으로 국민의 마음을 둘로 갈라놓으려 한 것이다.
  그리고, 연말 연초의 달력과 사무용 책자 제작에도 ‘신정’과 ‘구정’이란 말을 새기지 말아야 한다. 국어사전에서 ‘신정’, ‘구정’, ‘양력설’, ‘음력설’, ‘이중과세’란 말들은 버려야 한다.


      10) ‘부락(部落)’ 용어 문제

  전국 곳곳에는 자기 동네를 알리는 간판이나 회관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표기가 ‘○○ 부락(部落)’으로 적혀 있다. ‘부락’이란 용어는 일본식 말이다. 이 ‘부락(部落)’이란 용어는 일본어의 맥락에서는 일종의 천민(賤民)들이 사는 마을을 통칭하고 있다. 소위 일정 시대 조선 총독부의 촉탁으로 온 식민 정부의 善生永助 같은 어용학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의 마을을 지칭하여 ‘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를 비하(卑下)한 용어이다. 그 용어가 일본 내에서는 어떤 뜻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잘 아는 학자들이 그 용어를 선정한 데에는 식민주의적 계급적 지배 논리의 정당화를 위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마을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흔히 ‘부락’이라는 말을 사용함에 나는 우선 거부감을 갖는다. 우리말로 ‘마을’이면 족하다. 만약에 마을을 漢字로 적고 싶으면 ‘촌(村)’ 또는, 촌락‘村落’이란 말을 쓸 수 있다. 일본어의 ‘부락’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족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부락’이란 말 대신에 순 우리말 ‘마을’ 또는 ‘촌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면 한다. 이는 소위 일제 시대 일본 식민주의의 탈식민화(脫植民化)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 부락’, ‘○○ 부락 회관’이란 간판이나 표지는 ‘○○ 마을’, ‘○○ 마을 회관’으로 고쳐야 한다.


      11)‘교포(僑胞)’ 용어 문제

  ‘해외 교포(僑胞)’란 말도 엄밀히는 ‘외국 동포’로 바꾸어야 한다. ‘교포(僑胞)‘의 ’僑‘는 남의 나라에 붙어서 살거나, 타향이나 타국에서 임시로 빌붙어 산다는 뜻이다. 수백만 명을 헤아리는 우리 동포가 외국 곳곳에서 영주권을 얻어 당당히 살고 있는데, 임시로 빌붙어서 산다는 ‘교포’란 말은 우습지 않은가? 이 지구촌 어디에서 사는지를 가릴 것 없이 한 나라 한 핏줄임을 인식할 때 ‘교포’란 말은 어색하다. ‘동포’란 말을 못하고 남의 나라에 빌붙어 살던 시절의 ‘僑胞’란 말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해외 여행’이란 말이 일본인의 의식에서 나온 말이듯이 ‘해외 교포’란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語意나 語感上 당당하지 못한 말들을 굳이 고수할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거나 좋지 않은 말이라면 쓰지 말아야 한다. 한 예로 들면, “在美 僑胞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 “재미 동포 고국에 왔습니다.”로 표현해야 올바르다.
  일본은 이상과 같은 용어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학살 사건, 강제 징용 등에 관한 인력 수탈 문제의 왜곡, 신사참배, 여자 정신대 징발, 징용, 공출 헌납, 토지 약탈, 일본어 강제 교육, 조선어 사용 금지 등 30여 개의 크고 작은 항목에 걸쳐 우리의 역사를 왜곡, 은폐, 날조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日本 軍國主襄 植民地 政策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때 일본은 우리 한국 역사에 대해 意圖的으로 우리 역사를 날조, 은폐, 誇張, 美化, 歪曲시켜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900여 회의 國艱(外侵)이 있었는데 그 반수 이상이 일본의 침략 위협의 분탕질에 의한 것임을 생각할 때,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본질은 ‘征韓論’(‘征’字는 옳은 것을 위해서 나아가서 친다는 뜻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 전후에 일본은 한국의 각 방면에 걸쳐 간교하게 침략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保護, 監督, 後楥, 改革, 更張, 開化 등의 간접적인 표현 방식의 용어를 썼다. 이 밖에도 많은 용어들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日帝 植民地 政策의 특징은 ‘조선 민족 말살 정책’에 있다. 民族이란 “인간의 언어, 지역, 혈연, 문화, 정치, 경제, 역사를 공통으로하여 그 기초 위에서 공고히 결합되어 민족 의식이 형성됨으로써 더욱 굳게 결합된 역사적 범주의 인간 공동체이다.” 이들은 민족 구성의 요소들이다. 일제는 1910년 무력으로 한국을 침략하여 强占하고, 韓民族의 民族 구성 요소를 소멸시킴으로서 한국 민족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日帝는 무력으로 韓民族의 국토(지역)를 빼앗고 주권(정치)를 빼앗아 소멸시켰으며 경제를 예속시켜 빼앗고 착취하였다.14)
  Cooper & Ross(1975)는 사람이 말을 할 때, 話者에게 더 가까운 것을 먼저 들고, 먼 것을 나중에 든다는 ‘나 먼저 원칙(Me first Principle)’을 세웠다. 말(글) 사용의 이러한 원칙에서 나는 말(글)을 사용할 적에는 ‘자기 중심의 원리’가 작용한다는 점을 말해 둔다.
  그 쉬운 보기가 ‘韓·中·日·러’란 말의 순서를 들 수 있다. 우리 측에서 가까운 것처럼 먼저 말하는 것이 화용상(話用上)의 보편적인 원리이다. 그래서 우리 측에서는 ‘韓·日 회담’이며, 일본 측에서는 ‘日·韓 회담’으로 말하거나 적고 있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로 적을 때는, 나한테서 가까운 것을 먼저 말하고(적고) 먼 것은 뒤에 말하는(적는) 법이다. 사람이 말을 할 때(글을 쓸 때) 이 원리가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더구나 국가에 관한 중대한 문서 표기에는 어느 나라든 자국(自國)의 권익·권리 또는, 국익을 우선하는 내쪽의 언어(말과 글)를 사용하는 것이다.

  용어 사용은 그 말을 쓰는 주인/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구별된다. 문제는 같은 뜻의 말이라도 각기 나라마다 자기식의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의 쓰임이 다르다. 말에 대한 의미와 인식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런 말들은 정복자, 침략 국가가 만들어 낸 말이다. 일본 측에서는 이 말들이 맞을지 몰라도 한국 측에서는 맞지 않다.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다. 이런 말들은 바꾸거나 아예 버려야 한다. 국어 순화 면에서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
  지금까지 다룬 용어들은 일본인 측에서 본 일본식 말들이니, 우리 한국인 측에서 볼 때에는 맞지 않다. 바로 이 점이 언어 의식에서 본 말의 독자성/주체성 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로 위에서 다룬 용어들은 누구를 위한 말인가 묻고 싶다. 위에서 다른 용어들은 모두가 우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을 위해 생겨난 말들이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거나, 그냥 따라서 맹목적으로 이런 말들을 써 왔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위에 지적한 일본식 말들을 쓰고 있다. 우리의 국어 교육과 우리의 민족 精氣와 국어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위의 일본식 말들은 고쳐 바로잡아 쓰거나, 아니면 버리거나, 적어도 국어사전에서는 바로잡아야 한다. 이제 그런 시대도 지났으니 위에서 다룬 일본식 말들은 바꾸거나 아예 버려야 한다. 그것은 다만 잘못된 언어 유산으로 남을 뿐이다. 이런 말들은 역사의 증거어(證據語, Móts, Themouns)15) 로 남을 뿐이다.


4. 순화해야 할 일본식 말

  이 장에서는 우리말이 아닌 특히 일본식 한자 말의 무분별한 사용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이 글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글에서 우리말이라고 알고 있는 일본 말이나, 이른바 일정 시대에 비롯된 잘못된 말 버릇과 글 버릇을 고쳐 바로잡아 보자는 데 있다. 국어사전에서 일본 말 찌꺼기를 몰아내고, 우리말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다. 그리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함부로 쓰지 말고, 가려 써야 할 말과 글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어에는 알게 모르게 일본 말과 일본 말투가 많이 스며들어 있다. 일정/왜정 시대에서 비롯된 일본 말의 찌꺼기와, 일본 글을 잘못 옮기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없었던 이상한 말투가 생겨나 일상의 글에서 뜻밖에 자주 쓰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 낱말의 사용은 적절한 우리말로 바꿔 쓰면 되지만, 일본식 문장 표현은 우리말을 비뚤어지게 하므로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일본 말은 우리말과 어순이 같아 일본 글에 따라 마구잡이식 일본어 번역은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주범의 하나이다. 이제 그 구체적 실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반인들 특히, 언론에 종사하는 여러분들이 우리 식의 말(글)이 아닌 일본식 말(글)을 검토 없이 마구 사용하는 점을 지적하여 그 시정을 촉구하고자 한다.
  아래에 우리 식 말이 아닌 일본식 말의 예를 들어, 각기 그 말들의 내력을 밝히면서, 해당하는 말의 오른쪽 화살표(→) 방향으로 우리 식 말로 바꾸어 놓았다.
  바람직한 국어 교육과 국어 순화를 위하여 필요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겠다. 앞으로는 잘못된 왼쪽의 일본식 말을 버리고 오른쪽의 우리 식 말을 사용해 주기 바란다.
해외 (海外) → 외국(外國)/국외(國外), 재외(在外)
해외 여행(海外 旅行) → 외국 여행(外國 旅行)
  ‘해외(海外)’란 말은 우리 식 말이 아닌 일본식 말이다. ‘해외 여행’은 말 그대로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 즉 외국을 여행하는 뜻이다. ‘해외’란 말 사용에서 문제는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의 언어 의식에서 나온 ‘해외’란 말을 검토 없이 그냥 맹목적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다른 나라(외국)를 가려면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외국에 여행하는 것을 海外 여행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대륙에 닿아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국외 여행이 꼭 바다를 건너야 하는 해외 여행이 아닐 수도 있다. 즉 ‘해외 여행’이란 말은 섬나라 일본인들의 언어 의식 구조에서 나온 일본식 한자어이다.
  지금부터는 우리들이 ‘해외’란 말은 ‘외국’이란 우리 식 말로 고쳐 바로잡아 사용했으면 한다. 여기서 하나 유의할 점은 국내와 국외를 구별하고자 할 적에는 ‘외국’ 대신 ‘國外’로 말해도 된다. ‘외국’이란 뜻에 해당하는 말을 굳이 ‘해외’란 말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런 뜻에서 ‘해외’란 말이 들어간 표현들은 다음과 같이 고쳐 사용해야 한다.
1. 해외 교포→외국 동포, 해외 연수→외국 연수, 해외 뉴스→외국 뉴스, 해외 스포츠→외국 스포츠.
2. 해외개발공사→외국개발공사, 해외 공관(장)→외국 공관(장), 재외 공관장.
  그리고, 이번 기회에 ‘해외’란 명칭이 들어간 정부의 기관 명칭들은 고쳐야 한다. 이를테면 “해외개발공사→외국개발공사, 해외공관(장)→외국공관(장), 재외공관(장), 해외문화원→재외문화원, 외국문화원” 따위다.
  한편 ‘해녀(海女)’란 이름도 일제 시대 일본인이 부른 말이다. 제주에서는 원래 ‘잠수(潛嫂)’로 불렀다. 지금도 나이 드신 어른들의 말씀을 빌리면 ‘잠수’라 했지 ‘해녀’란 말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해녀’란 말은 일제 시대 일본이 부르던 말을 일본인의 언어 의식화 경향에 따라 불려진 말이다. 그래서 ‘해녀’라는 일본식의 말을 쓸 것이 아니라 원래 제주 말인 ‘강수’란 말을 되찾아야 한다. 국어사전에 ‘잠수(潛嫂)’를 ‘해녀의 딴 이름’이라고 풀이한 것도 고쳐져야 한다.
3. 해녀(海女)→잠네, 잠수(潛嫂)
외지인(外地人)/내지인(內地人)→외국인, 내국인.
일본(에) 들어간다/일본(서) 나온다.→일본에 간다.
  이 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말씨이다. 왜, 남의 나라(외국)에 가는 것을 ‘들어간다’하며, 제 나라(우리나라)에 돌아오는 것을 ‘나온다’고 하는가? 지난날 일본이 이 땅을 침략하여 통치 지배하던 시대에 조선 총독부 관리와 그 一族들이 조선은 ‘外地’인 식민지이고, 저희네 본토인 일본은 ‘內地’라 하여, 일본 사람은 ‘內地人’이요, 우리 조선 사람은 ‘外地人’으로 불러 구별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內鮮一體’라 하여 一視同仁이니 뭐니 하면서 韓日 同根說까지 주장하려 했었다. 여기 ‘내선일체’란 말도 內는 일본이고 鮮은 조선을 지칭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의 언어 의식 구조에 따라 “일본 들어간다”, “일본서 나온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제 고장 제 집에 갈 적엔 ‘들어간다’ 함이 저들로서는 당연히 옳은 말이었겠으되, 우리나라 사람이 덩달아 “일본 들어간다” 함은 주객전도이다. 이는 과거 일본인들이 內地人 ↔ 外地人하던 말을 따라 하던 殘影이다. 이는 주객전도된 의식이요, 정신 倒錯이다. 지금 우리로서는 이런 주체성 없고 업신여기는 무분별한 말씨를 삼가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자어로 渡曰, 渡美니 하는 표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말들은 좋지 않으니 쓰지 말아야 한다.
본인(本人)→나/저
본고(本稿)→이 글, 이 원고, 이 논문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本人)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한 일본 왕의 언어 속임의 인사말이 기억난다.
  이 표현을 놓고 한때 논란이 많았다. 여기 인용한 말 중 ‘본인(本人)’을 비롯한 ‘본부(本府)’, ‘본도(本島)’, ‘본고(本稿)’ 따위의 말들은 모두 일본투의 영향을 받아 일본식 표현대로 따라 쓰려다가 그런 꼴이 되었다. ‘본부(本府)’는 일정 시대 조선 총독부를 지칭했다. 이 같은 말들에서 ‘본(本)’은 ‘日本’이라는 뜻이 담긴 조어이다. ‘본(本)’이 들어간 이러한 말들은 일정 시대 일본식 교육 현장에서 생긴 어휘들이다. 그 당시 일본인과 일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의 일인(日人) [니뽕(Nippon)] 정신이 담긴 말들이다. 日人들은 겉으로는 다테마에(健前)로 말하고 있지만 속셈은 실리를 찾는 혼네(本音) 정신이 강하다. 일정 시대 京城師範學校니 京域語니 하는 식의 ‘京域’은 일본 동경(東京)의 京을 우리 首都名에까지 붙였다. 지금 정부가 광화문에 있는 중앙청(구 조선 총독부)과 서울 시청의 건물이 日本 글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하여 중앙청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일본 정신이 들어 있어 우리의 민족혼이 흐려지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말 사용에도 이러한 나라 정신이 들어 있다. 이 기회에 이러한 일본 정신(소위 일제 식민지 교육)이 담겨 있는 일본식 말들은 버리고 올바른 우리 식 말로 살려 사용하자는 것이다. 한 예로 “본인도 모르는 혼인 신고”는 “자신도 모르는 혼인 신고”로 “本稿의 목적은”, “이 글/원고의 목적은”으로, “한반도에 있어서 제주도의 위치”는 “우리나라(대한민국)에서 제주도의 위치”로 표현하면 훨씬 우리말이 살아난다. 좀 더 덧붙이면 나는 ‘본인’은 우리 식의 ‘나’로 하되, 자신을 낮출 때는 ‘저’로 말하는 게 좋다고 본다.
  어찌 보면 위에서 지적한 일본식 말들은 한 시대의 ‘증거어(證據語). Mótos Temouns’로 남을 뿐이다. 이 기회에 일본 정신이 들어 있는 이런 말들을 버리고 좋은 우리 식 말로 살리자는 것이다.
망년회(忘年會)→송년회(送年會), 해보내기
  망년회(忘年會)란 말은 원래 우리의 언어 사회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다. 일본의 한자 말에 침투되어 쓰인 것이다. 忘年의 올바른 뜻은 ‘忘年之交’라 하여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맺어진 우정 또는 친구란 뜻으로 쓰인 말인데, 뒤에 일본에서 그 뜻을 왜곡해 ‘忘年會’로 만들어 쓴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그 말을 아무런 검토 없이 맹목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망년회’라는 말 사용은 그 뜻으로 보아도 시대에 맞지 않는 퇴폐풍이 깔린 말이어서 함부로 써서는 안 될 일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반성과 새로운 각오의 뜻으로 가까운 친구나 직장 동료 간에 모이는 자리에서 퇴폐적인 뜻이 담긴 ‘망년회’란 일본식 말을 쓸 것이 아니라, 뜻도 맞고 어울리는 ‘송년회(送年會)’, ‘송년 모임’이나 순 우리말 식인 ‘해보내기’로 고쳐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금년 연말부터는 제발 ‘망년회’란 말은 쓰지 말았으면 한다. 이 말과 관련지어 ‘망중(忘中)’, ‘기일(忌日)’ 따위의 일본식 말도 우리 식의 ‘상중(喪中)’과 ‘제일(祭日)’ 또는 ‘제사(祭祀)’란 말로 사용하면 좋겠다.
장본인(張本人)→괴수(魁首), 주모자
  ‘장본인’(張本人)은 중국식 한자 말로서 그 뜻이 우리에게는 천와(舛訛)된 것이다.
  이 말의 출전은 ① 傳貝其事 爲復晉事張本(左氏春秋傳), ② 爲來世張本(白居易 詩)에 나오는 것이다. ①의 경우는 ‘본래 주장함, 근본적으로 베풂’이란 뜻이고, ②의 경우는 ‘본래의 주장’인 좋은 뜻으로 쓰이었다. 그 이후 ‘장본’(張本)이란 말을 우리나라와 일본이 차용하여 쓰면서, 그 뜻이 글자나 말의 뜻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 ‘장본인’은 ‘나쁜 짓의 괴수(魁&首)’라는 뜻으로 한정돼 있다. 그래서 ‘장본인’이란 말은 나쁜 일에 바탕을 베푼 사람이다. 즉 주동자, 주모자, 괴수(魁首)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말이 흔히 잘못 쓰인다.
ㄱ. 3·1운동의 배후 주도 세력을 이룬 장본인 중에는
ㄴ. 인도 사람의 머리에 독립 정신의 기틀을 내린 장본인이 간디라 한다.
  그리고 흔히 ‘장본인’과 ‘주인공’의 두 낱말을 사용함에 혼동을 하고 있다.
ㄷ. 그 미담(美談)이나 화제의 장본인이 누구인가?
ㄹ. 그 화제와 미담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ㄷ과 같은 표현은 잘못된 것이고, ㄹ의 표현은 바르다. ‘장본인’이란 낱말은 좋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좋은 의미로 쓸 수 없는 말이다. 두 낱말의 사용에 유의했으면 한다.
(의견을) 수렴(收斂)하여→모아, 얻어, 수합하여
  ‘수렴(收斂)’의 뜻이 ‘모을 수, 거둘 수’에 ‘모을 렴, 거둘 렴(斂)’이다. 원래 ‘수렴’이란 말은 돈이나 물품을 거둬 모으거나, 세금을 징수한다는 뜻이다. 禮記의 命百官收斂(백관에게 명하여 거둬들이기 시작했다)를 보아도 세금이나 공물(貢物)을 거둬들인다는 뜻이다.
  국어사전도 이와 비슷한 뜻풀이에 ‘방탕한 사람이 반성하여 오므라듦’이란 뜻까지 추가하고 있다. 따라서 ‘民意나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여’의 표현은 민의나 의견을 돈이나 세금처럼 거두어들인다는 강제성을 띤 말이 된다. 어찌 민의/의견을 거둬들인단 말인가? 그리고 ‘收斂’이란 글자도 어렵다. 收斂을 收斂으로 적기도 하고 斂을 ‘검’으로 읽기도 한다. 아무튼 뜻도 좋지 않고, 글자도 틀리기 쉬운 낱말이다. 그냥 쉬운 우리말로 “민의를 모은다.” 아니면 “민의를 얻는다.”가 한결 점잖고 쉬운 표현이다.
입장(立場)→처지(處地), 태도, 견해, 쪽
  무슨 성명서 같은 글 제목에 “우리의 입장(入場)……”이니 “나의 입장(立場)”이니 하는 ‘입장(立場)’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 말이다. 광복 뒤 이 말이 일본 말이라 해서 문교부에서 낸 “우리말 도로 찾기”(1955) 책에서 ‘처지(處地)’란 말로 쓰자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입장’이란 말을 쓰고 있는가? 이 말을 대신할 우리말은 없는가? 아래 몇 경우를 생각해 보자.
ㄱ. 제 입장에서는 이러이러하다.
ㄴ. 아버지 입장에서는……
ㄷ. 부시는 L.A. 혹인 폭동에 즉각 입장을 밝히다.
ㄹ. 현 교육 풍토에 관한 교육부의 입장
  이와 같은 표현에서 ㄱ과 ㄴ은 ‘처지’나 ‘쪽’으로 쓰면 되고, ㄷ과 ㄹ은 ‘태도’로 쓰면 바른 우리말 표현이 된다. 이렇게 경우에 따라 다른 말로 써야 할 것을 똑같이 ‘입장’으로만 쓰고 있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일본 말을 따라 쓰는 언어 의식 문제도 있거니와 굳어진 말의 틀에 갇혀 있는 말 버릇이 문제이다. 좋지 않은 언어 관습에서 빨리 벗어나 우리말을 살리도록 하자.
역할(役割)→구실, 할 일, 노릇, 소임(所任), 역(役).
  이 ‘역할(役割)’이란 낱말도 일본식 한자 말이다.
ㄱ. 대학의 역할
ㄴ. 부모의 역할
ㄷ. 대학생이 해야 할 역할
ㄹ. 춘향의 역할을 맡아 → 역(役)을 맡아
  이러한 표현에서 ㄱ은 ‘소임(所任)’, ㄴ은 ‘구실’, 또는 ‘노릇’, ㄷ은 구실 아니면 소임으로, ㄹ은 역(役)으로 쓰면 좋은 우리말 표현이 된다. 앞뒤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말을 찾아 쓰면 될 것이다. 굳이 ‘역할(役割)’이란 일본식 한자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상담(相談)→면담(面談), 상의(相議)
  ‘상담(相談)’은 학교의 ‘교육 상담’이나 ‘상담실’ 등의 말에 보편화되어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말도 실은 일본식 한자 말이다. 원래 전통적 한국 한자 말이 있으니 되도록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한다. 원래 우리말로는 相議, 議論, 協議, 問議 들의 낱말이 있으며, 面談이란 말도 좋을 듯하다. 광복 이후 일본식 한자어에 대한 퇴치 운동이 고조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일본식 한자 어휘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기왕에 있었던 고유 한자어를 누르고 일본식 한자어가 통용되는 예를 남기는 경우이다[심재기(1982:46 47)].
혜존(惠存)→님, 님께, 청람(淸覽), 질정(叱正)
  국어사전에는 ‘혜존(惠存)’을 저서나 작품을 남에게 줄 때 ‘받아 간직해 주십사’의 뜻으로 ‘받는이의 이름 밑에 쓰는 말’로 풀이해 놓았다. 그런데 일본 말에 惠存(게이손)이란 말이 있다. 일본 廣辭典에는 “제발 손 가까이에 놓아 주십시오.”이다. 이는 “삼가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받아서 서가에 꽂아 주십시오.”란 뜻으로 ‘삽가(揷架)’란 말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한편 누구누구 선생 아감(雅鑑)이란 말을 쓰지만 글자가 풍기는 뜻이 정확하지가 않다. 아무튼 “○○○ 선생 惠存”이니, “○○○ 군 惠存”은 아둔하고 멍청한 제자나 어리석기 그지없는 바보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惠存, 惠鑑(높은 분께 드릴 때 썼음)보다는 “청람(淸覽), 질정(叱正), 님께”들로 적기를 권장한다.
(목적을) 도모(圖謀)하고자→꾀하고자, 이루고자
(~라고) 사료(思料)됩니다.→생각합니다., 여깁니다.
  나이 드신 식자층 사람들이 이 말을 즐겨 쓰는데 이 분들은 일본식 교육에 젖은 탓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분들은 ‘생각합니다’란 말보다 ‘사료됩니다’란 표현을 점잖은 높임말로 여기는 모양인데, 이는 한마디로 잘못된 생각이다.
학부(學部)와 대학원→대학과 대학원,
학부제 중심→대학 중심
  대학교 4년과 대학원을 구별하여 말할 때 흔히 대학 4년을 ‘학부(學部)’로 말하는데, 이 또한 일본식 표현이다. 그냥 ‘대학’과 ‘대학원’으로 말하면 된다. 이는 기성인들이 퍼뜨린 영향이다. 기성인들의 언어 사용에 철저한 국어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학부형(學父兄)→학부모(學父母)
원고지 ○○ 매(枚)→원고지 ○○ 장(張)
촌지(寸志)→촌성(寸誠),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 ‘비자금(祕資金)’도 일본식 말이다. 조선조 시대 임금이 쓴 돈을 ‘내탕금(內帑金)’, ‘내탕전(內帑錢)’ 이라 하였음.

기타 일본식 표현
  그밖에도 지적할 일본식 말이 많지만 지면 사정상 하나하나 설명을 다 하지 못하며, 일반 언론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일본식 말들을 몇 가지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조사 ‘의’, ‘와의(과의)’, ‘에의’, ‘로의(으로의)’, ‘에서의’, ‘로서의(으로서의)’, ‘로부터의’, ‘에로의’ 등을 남용하는 것도 일본 말투의 영향으로 보인다.
ⓛ 가을 바람→가을 바람
② 처가 집→처갓집
③ 당부 말씀→당부 말씀
④ 서로 안부를 묻고 난 후→서로
⑤ 통일에의 염원을 담고→통일에 대한
⑥ 우등생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길잡이로서 구실
⑦ 나로부터의→나부터
  둘째, ‘-에 있어서’ 표현도 또한 일본 말투를 그대로 따라 쓰는 말이다. ‘에서’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①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인간에게
② 급변하는 사회에 있어서의 문학의 영원성과 가변성→사회 속에 있는
③ 문학에 있어서의 언어의 기능→문학에서
  셋째, ‘지다’, ‘되다’, ‘되어지다’, ‘불리다’와 같은 피동 보조사의 사용을 들 수 있다.
①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밝혀야
② 세계의 관심이 한국에 모아지고 있다.→모이고
③ 국정 교과서 제도는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폐지해야
④ 구덩이에 매장되어진 채 발견되었다.→매장된
⑤ 이러한 점은 극복되어져야만 한다.→극복되어야만
⑥ 황금시간대라고 불리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말하는, 부르는
  이 밖에도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우리말 속에 파고들어 온 수많은 일본 말과 일본식 용어와 외국말과 외국말투를 볼 수 있다. 외국말의 홍수 속에서 더럽혀진 우리말과 우리 정신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말다운 글을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5. 방송·신문의 오용 표현과 순화

  언어는 하나의 상징적 수단이며, 의사소통의 매체이다. 나라나 사회가 혼란스럽거나 어지러우면 언어도 혼란스럽고 어지러워진다. 그에 따라 국민들의 언어생활에도 잡스럽고 그릇된 표현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언어 오용의 유형에는 1) 발음(음운)의 오용, 2) 어형의 오용, 3) 어휘 사용의 오용, 4) 통사 구조의 오용, 5) 의미의 오용, 6) 표기법의 잘못, 7) 외국말 번역투의 오용 등이 있다. 그 밖에 8) 誤分析, 9) 와전(訛傳), 10) 엉뚱한 말뜻의 넘나듦, 11) 말의 실수, 12) 오해나 오판에서 오는 잘못들이 포함될 수 있다.16) 이러한 언어의 오용들이 우리의 언어생활과 방송·신문에 나타난 국어 오용 표현을 일일이 지적하려면 끝이 없지만, 그동안 TV 방송과 신문에서 조사한 것들을 골라 탓해 보고자 한다.


      1) 공기 관계-단어 선택의 오용

  이 장에서는 주로 낱말 의미 면에서 본 낱말 공기 관계의 오용 표현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그냥 단어를 나열한다 해서 말과 글이 되는 게 아니다. 앞뒤 말과 글의 뜻이 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기 관계에 맞아야 한다. 언어학에서 공기 관계(共起 關係, Cooccurrence Relation)에는 ① 단어나 문장의 호응, ② 단어나 문장의 일치, ③ 어휘 선택의 제한/제약들이 있다. 이를테면,
ㄱ. 그는 그녀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ㄴ. *그는 내일 회의가 있다고 잊었다.
  이 두 문장은 특정한 보문소(Complementizer)와 특정한 동사의 공기 관계나 선택상 제한의 한 예이다. 두 요소 간에 나타나는 선택상의 제한은 공기 제한(Restriction)에 놓인다. 그래서 ㄴ은 비문이 된다.
  우리가 글을 쓸 때는 이러한 어휘의 공기 관계를 늘 고려해서 앞뒤 문장의 관계를 살펴서 올바른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한다.
ㄷ. 새벽 한 시에 화재가 발생하다.
ㄹ. 안전 사고 예방에 주의하자.
ㅁ. 주택지로서는 면적이 가장 많다고 한다.
  ㄷ은 ‘새벽’과 ‘한 시’가 시간 ‘개념’이 맞지 않다. ㄹ은 ‘안전’과 ‘사고’가 ㅁ은 ‘면적’과 ‘많다’는 두 어휘의 뜻이 어울리지 않기에 틀린 문장이 된다.
  이처럼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이러한 어휘의 공기 관계를 고려하여 말과 글을 사용해야 한다. 말과 글의 앞뒤 관계를 살펴서 적절한 어휘 선택을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1) 새벽 한 시에 화재가 발생한다.→새벽에/한 시에
    * 새벽과 한 시가 시간 개념이 맞지 않음.
2) 안전 사고 예방에 주의하자.→사고 예방에
3) 주택지로서는 면적이 가장 많다고 한다.→넓다고
4) 이 달 말일까지 원서를 접수받고 있다.→접수하고/받고
5) 참으로 대단한 미모를 가지셨군요.→미모이군요
6) 지금 제주의 날씨는 맑고 있습니다.→맑습니다
7) 내일은 비나 소나기가 오겠다.→소나기가 오겠다.
8) 여러 가지 다양한 품목을 갖추다.→여러 가지 품목/다양한 품목
9)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석하다.→대다수의
10) 한줌의 여유도 없이 살아 왔다.→잠시의
11)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따돌리고 8강에 합류하다.→제끼고/밀어내고
12)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족을 돌보다.→위로하고
13) 부족한 주차난을 해결하고자→부족한 주차장을/주차난을
14) 그녀의 모습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다.→뇌리에서
15) 매학기마다 신청한다.→매학기/학기마다
  이상은 의미 면에서 잘못 쓰인 표현들이다. 말과 글은 의미 호응이 이루어지도록 써야 한다.
바라겠습니다.→바랍니다.
  “○○를 제출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즐거운 휴일이 되시기 바라겠습니다.”식의 말을 자주 듣는다. ‘바라겠습니다’에서 ‘겠’은 희망의 뜻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라다’는 말 속에 ‘겠’이 들어가면 같은 의미의 말이 중복되어 의미 중복으로 어색한 느낌을 준다. 이는 마치 ‘희망하겠습니다’, ‘원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어색함과 같은 이치이다. ‘희망하다’, ‘원하다’라는 말 속에 ‘겠’이 지니는 의미가 중복되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바라겠습니다’는 ‘바랍니다’로 아니면 “제출해 주십시오”로 바로잡아야 한다. 자주 쓰이는 우리말에서 혼동하여 말들을 잘못 쓰는 경향이 많다. 정확한 언어 습관을 갖도록 하자.


      2) 뜻이 겹치는 그릇된 표현-언어 잉여 현상

  낱말이나 문장이 앞뒤 뜻이 겹치는 한자어 표현들을 흔히 보게 된다. 불필요하게 군더더기식의 뜻이 겹치는 표현을 ‘언어 잉여 현상’이라 한다.
  예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가) 10월달, 토요일날, 당일날, 역전앞, 약수물, 해변가, 처가집, 여가시간, 현안 문제……
(나) 10월, 토요일, 당일, 역전, 약수, 바닷가/해변, 처가, 여가, 현안……
  (가)와 같은 표현에서 한자어와 우리말의 뜻이 겹쳐 있어 어색할 뿐 아니라 비경제적 표현이어서 이들을 깔끔한 우리말로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표현은 언어의 잉여 현상에 속한다.
  (가)는 (나)로 표현함이 훨씬 깔끔하다. 이러한 의미의 중복이 단어에 국한되지 않고 구나 절로 자꾸 확산되어 간다. 그러한 실례는 다음 (다)와 같이 나타난다.
(다) 넓은 광장, 밝은 명월, 남은 여생, 같은 동포, 가까운 측근, 마지막 종점, 더러운 오물, 따뜻한 온정, 사랑하는 애인, 어려운 난관, 들에 핀 야생화, 밀고 나가는 추진력……
(라) 결실을 맺다, 소득을 얻다, 과정을 거치다, 시범을 보이다, 피해를 입다. 계속 이어지다. 공감을 느끼다, 무수히 많다, 부드럽고 유연하다, 수확을 거두다, 여백이 남다, 향락을 즐기다, 과반수를 넘다, 포로로 잡히다, 복병이 숨어 있다……
  (다)는 명사구로 된 구성이다. “넓은 광장, 따뜻한 온정” 속에 나타나는 “광장(廣場), 온정(溫情)”은 각기 “넓은 마당, 따뜻한 정”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앞에 “넓은”이나 “따뜻한”을 덧붙여 쓴다면 뜻이 겹쳐져 군더더기식 표현이 된다. 나머지 표현들도 한결같이 잘못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그 안에 붙은 말을 떼어 버린 “낙엽, 명월, 여생, 동포, 측근, 종점, 온정, 애인, 난관, 야생화, 추진력”으로 써야 깔끔하다.
  (라)는 동사구로 된 구성이다. 가령, “결실을 맺다, 과정을 거치다” 속에 쓰인 “결실, 과정(過程)”의 뜻은 각기 “열매를 맺음, 절차를 거침”이 깔끔하다. 여기에 각기 “맺다, 거치다”를 또 쓴다면 그 뜻이 겹친다. 이러한 말들이 우리말에 쓰인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명사구와 동사구를 써야 할 때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가령 “향락을 즐기다, 복병이 숨어 있다”는 “향락에 빠지다, 복병이 있다”로 써야 한다.


      3) 태(態) 표시 - 이중 피동형

그 일이 쉽게 잘 되어지겠습니까?→되겠습니까?
나무가 고사되거나 뿌리째 뽑혀져 나가 멸종 위기에 놓이다.→고사하거나/뽑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씌어져야 한다.→ 씌여야
그것이 요청되어진/수용되어진 지 오래다.→요청된/수용된
그녀는 빨간 옷에 비해 훨씬 온순하게 보여졌다.→보였다
제주대학교에서 조사된 자료는 충격적이다.→조사한
* “하다/되다” 사용 주의


      4) 맞춤법에 어긋난 경우

우리의 바램은 오직 통일이다. 그것은 저의 바램입니다.→바람
출생 년월일, 결혼 년월일→연월일
최고의 합격율→합격률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서만 “열/율”로 적는다. * 가열, 선율)
푸드덕거리며 날으는 새를 보다→나는(飛)
두 사람이 술잔을 부딪히며→부딪치며
푸르름의 오월→푸름의 오월, 푸른 오월
어문 정책 주무부서로써 올바른 국어 사용을→주무부서로서
하나님 (말씀)→하느님 (말씀)
  “말을 쓰는 사람이 임자다.”라고는 하지만, “오,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에 우리 모두가 무감각이거나 언어 不感症에 걸린 모양이다. ‘하나님’이란 말 자체가 문법에 어긋나고, 종교적인 신앙 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우리말에는 두 단어가 결합할 적에 일련의 법칙이 따른다. 이를테면,

아들+님→아드님, 딸+님→따님, 솔+나무→소나무 따위다.

  이것은 선행어의 받침 ㄹ이 탈락한 음운 변화이다.
  마찬가지로 “하늘+님→하느님”이 된다. 여기 하늘은 天을 뜻한다. 그런데 “하나+님→하나님”이란 단어 형성을 예외로 친다 하더라도 우리 국어에서 ‘하나’란 數詞에 ‘님’이 붙는 경우는 ‘하나님’뿐이다. 수사에 ‘님’이 붙을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고수하는 것은 종교 신앙 면에서도 독선적인 점이 강하게 풍긴다. 오직 하나라는 唯一神의 개념으로 자기 종교(신앙)만이 최고요, 다른 종교(신앙)는 異端神으로 보는 인상이 짙다. 어떤 종교(신앙)이든지 신앙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고 똑같은 것이다. 지나친 주장은 독선을 낳는다.
  ‘하느님’이 아닌 ‘하나님’은 국어 어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분명 잘못된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보다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이 깊은 진리의 말씀에 더 적합한 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이 기회에 한번쯤 고려해 보기 바란다.
  바른 문장을 쓴다는 것은 국어의 통사 구조에 맞는 문장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표준어를 사용하고 맞춤법에 맞게 적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발음이 유사한 낱말이나 어미들을 잘못 표기하여 의미에 혼란을 가져와서도 안 된다. 특히 국어의 어미에는 ‘든지’와 ‘던지’, ‘므로’와 ‘음으로’, ‘로서’와 ‘로써’ 등과 같이 유사한 형태가 공존하고 있는데, 이들 어미를 표기할 때 주의해야 한다.


      5) 단어 남용

“적(的)” 남용
  ‘적(的)’은 본디 중국서는 ‘디’나 ‘더’라고 하여
    것: 귀한 것 (貴的)
    의: 나의 책 (我的書)
    (으)ㅁ: 달림이 빠름 (走的快)
    꾼, 이: 우편 배달꾼/이 (送信的).
    게, (으)로: 똑바르게, 곧바로 (一直的)
  따위로 쓰인다. 그것을 일본서는 ‘테키’라고 하여 -의, -다움, -스러움 따위 뜻으로 “귀족적, 논리적, 문학적, 비극적, 소극적, 영적, 질적, 철학적, 평화적”들처럼 숱한 일본식 한자 말을 만들어 쓴다. 다음 예문에는 ‘적’을 너무 남용하여 좋지 않다.
  모더니스트적 역사관이 거시적이며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주의적이라면, 포스트모더니스트적 역사관은 미시적이며 단편적이고 실증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이다.
‘및’ 남용
  주간 업무 계획 조사 복서 연구 계획서
  ‘및’ <及 미치다→및>에서 온 말인데, ‘및’을 남용하면 거슬린다.
‘것’ 남용
장관 지시 사항을 별첨과 같이 알려드리니 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라며,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유입된 외래어나 외국어를 순화함으로써 이들 어휘들이 국어 속에 정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함.→있을 것임.
불교 사찰 탱화 도난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다 심각한 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별도의 대책을 신속히 강구하고 비지정 현황 파악을 철저히 하여 지정이 필요한 은 지정토록 할 것.
* ‘것’을 너무 많이 사용하여 좋지 않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순화함으로써 이들 어휘들이 국어 속에 정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방지하게 됩니다.
이제 전 인류에게는 멸망의 종말이 오게 된 것이다. 인간이 행한 악으로 얻게 된 질병(에이즈)이니 이를 천형(天刑)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여기서는 ‘것’이 잘못 쓰인 경우이다. ‘것’ 사용에 유의하도록.
‘문화’ 단어 남용: 폭력 문화, 퇴폐 문화, 향락 문화, 안전 문화, …
  어째서 폭력, 퇴폐, 향락, 안전이 문화란 말인가?

  우리는 언어생활에서 말의 남용, 단어의 남용을 삼가야 한다. 말은 필요에 따라 절도가 있어야 한다. 말이 헤프면 좋지 않다. 말은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요즈음 방송과 신문사가 앞장서서 온갖 외래어와 외국어를 그 어원도 뜻도 잘 모른 채 모호한 외래어를 닥치는 대로 쓰는 버릇이 극에 치닫고 있다. 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슈퍼선데이, 스포츠뉴스, 논픽션 30, 앙코르 베스트극장, 헤드라인 뉴스, 와이드뉴스……“
  이상의 일본식 말 사용과 그릇된 표현들 [국어 오용 표현]은 국어 순화 면에서 정화(淨化)해야 한다.


6. 언어와 사고(思考), 말과 정신

  언어와 사고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 상호 연관성이 있다.
  칸트는 “인식이 대상을 결정한다.”고 했지만, “말은 인식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말은 사람의 생각(정신)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단순한 기호(도구)가 아니라, 사물과 사람의 의식 중간에서 사물의 성격을 규정하고 사람의 의식(생각)을 지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말은 마치 색안경과 같다. 색안경의 색깔에 따라 보이는 사물의 색깔이 달라지듯이 말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달라진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다. 또한 말은 쓰는 사람의 의식 구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말씨가 일그러지면 생각이 빗나가고, 그러다 보면 행동마저 올바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언어를 갖고 있어서, 즉 언어 사용 능력이 있어서 ① 인간이 모든 정의를 내릴 수 있고, ②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③ 인류 문화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고, ④ 자기의 의사(감정)를 표현할 수 있고, ⑤ 기억이나 지식을 축적하고 복잡한 事像을 추상화할 수도 있다. 언어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들은 앞에서 다룬 일본식 한자 말들과 언어 오용들이 우리말에 끼치는 영향과 그 말들을 쓰는 사람들의 정신(사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했고, 심리학자 올슨(Olson)은 “말의 사용으로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글의 사용으로 인간은 文明化된다.”고 하여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말했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로써 문명을 발전시키며, 언어 사용 능력은 모든 동물 종에서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것이다.   사람은 언어로 표현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언어와 생각/思考의 상호 관련은 어떠한가? 다시 말하면 사람은 언어 없이도 생각/사고할 수 있는가? 사람과 언어의 관련은 어떤 것인가?
  이 점에 관해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있었다. 사람과 언어의 관계, 언어와 사고/생각의 관계에서 언어관(言語觀)과 사고관(思考觀)에 관한 관점을 보기로 한다. 먼저 언어관에 관한 이론에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언어가 사회적 교섭을 위한 사고의 도구(道具)라는, 즉 언어는 사람의 意思 전달의 도구(매체)라는 언어 도구관이다. 이와는 달리 사람의 생각/사고가 언어를 반영한다는, 즉 사고가 언어라는 언어 일체관(言語 一禮觀)이다. 그리고 이 견해와는 반대인 언어가 생각/사고를 반영한다는, 곧 언어가 사고라는 언어 형성관(言語 形咸觀)이다. 여기서 언어 도구관은 언어를 사람의 意思(사상·감정 등) 전달의 수단인 하나의 도구(Instrument)로 보는 것이고, 언어 일체관은 사고가 언어를 반영한다는 사고 중심의 견해이며, 언어 형성관은 언어가 사고를 반영한다는 사고보다 언어를 우선하는 언어 중심의 태도이다.
  언어와 사고에 관한 이론에는 다음의 세 가지 견해가 있다.
  ① 언어 결정설: 관념론, 강한 가설, 언어 상대성 이론 Sapir-Whorf 주장
  ② 언어 영향설: 실재론, 반영설, 약한 가설, 언어 보편성 이론; Chomsky 주장
  ③ 상호 작용설: ①과 ②의 중간적 태도에서 본 절충설; Schaffe 주장
  이 세 가지 견해가 있으나, 대체로 오늘날 개개의 언어는 인지와 사고 과정을 결정한다는 Sapir-Whorf의 언어 상대성 이론인 언어 결정설은 덜 인정되고, 개개의 언어는 인지와 사고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Chomsky의 언어 보편성 이론인 언어 영향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어에는 언제나 보편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인 면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와 사고는 서로 비례한다는 원리이다.
  앞에서 다룬 일본식 말 사용에서 오는 국민의 정신은 일본식 용어 중 “한반도, 모국어, 한일합방, 일제, 식민지, 8·15 해방, 신정, 구정” 따위 말들은 ① 언어 결정설과 관련되며, “해외, 본고, 망년회, 수렴하여, 역할, 도모, 사료.” 따위 말들은 ② 언어 영향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7. 결론(結論)

  7.1. 앞에서 살펴본 ① 한반도(韓半島), ② 이씨조선(李氏朝鮮), ③ 일제 식민지(日帝 植民地), ④ 개화기(開化期), ⑤ 8·15 해방(解放), ⑥ 6·25 사변(事變)/동란(動亂), ⑦ 한일합방(韓日合邦), ⑧ 모국어(母國語) ⑥ 신정(新正), 구정(舊正), ⑩ 부락(部落) 등등의 용어들이 우리 식의 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 용어들을 우리가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런 말들이 일본식 용어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식 용어들을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해 온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 [소위 일제 식민지]가 남긴 잔재(殘滓)이며, 일제 식민지 교육의 탓이기도 하다.
  일본은 가급적 한국인의 역사 속에서 왜곡·은폐·날조하며 때로는 美化하여 우리 국민을 속여 왔고, 또 그런 역사들을 잊게끔 만들었다.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일본인의 그 간사한 계략에 말려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古朝鮮의 연구와 우리 국어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국어 교육은 일제의 침략과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한때 단절되기도 했다. 우리 국어 교육의 역사가 짧고 국어 교육 부재의 탓은 바로 이 때문이다.

  7.2. 우리 역사에서는 자주적이고 독자(주체) 정신이 요구될 때마다 국어[우리말, 우리글]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새로 왔다. 세종 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도 일정 시대에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려다 옥고(獄苦)를 치른 분들도 모두 민족 자주정신이 바탕이었다. 우리는 지난날 우리 민족이 겪은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며 잔찌꺼기 말들을 씻어 내야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들은 투철한 국어관과 민족정신을 갖고 독자적으로 우리 국어와 역사를 재조명하고 다시 평가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본식 말들을 버리고 우리 식 말로 고쳐 써야 한다. 그런 뜻에서 앞에서 다룬 일본식 말들은 고쳐 바로잡거나 버려야 한다. 우리말로 순화해서 사용해야 한다.
1) 한반도(韓半島)→대한민국, 남·북한, 우리나라
2) 모국어(母國語)→모어(母語), 자국어, 고국어
3) 이씨조선(李氏朝鮮), 이조(李朝)→조선 시대, 조선
4) 일제(日帝) 식민지(植民地) 시대→일정(日政) 시대, 일본 군국주의 시대, 일본 강점기(强占期)
5) 개화기(開化期)→자강기(自强期), 근세(近世)
6) 한일합방(韓日合邦)→경술국치(庚戍國恥)
7) 8·15 해방(解放)→8·15. 광복(光復) * 得光恢於國士恢復→光復
8) 6·25 동란(動亂)/사변(事變)→6·25전쟁, 한국전쟁
9) 신정(新正)/구정(舊正)→설, 설날
10) 부락(部落)→마을
11) 교포(僑胞)→동포
12) 해외(海外)→외국, 국외, 재외(在外)
13) 본인(本人)→나, 저
본고(本稿)→이 글, 이 원고, 이 논문
14) 망년회(忘年會)→송년회(送年會), 해보내기
15) 수렴(收斂)하여→모아, 얻어
16) 사료(思料)됩니다→생각합니다, 여깁니다.
17) 도모(圖謀)코자→꾀하고자, 이루고자
18) 역할(役割)→구실, 소임(所任), 역(役)
19) 입장(立場)→처지, 태도, 견해, 쪽
20) 학부(學部), 학부제(學部制)→대학 *대학과 대학원
21) 촌지(寸志)→촌성(寸誡),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2) 혜존(惠存)→님께, 청람(淸贊), 질정(叱正)
* 비자금(秘資金)→내탕금(內帑金), 감춘 돈, 숨긴 돈
  잘못된 우리말을 바로잡자는 뜻에서, 특히 일본식 말을 순화하자는 뜻에서 그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이는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탈식민화(脫植民化)의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이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언어 의식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7.3. 말을 사용하는 사람/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말이 다를 수가 있다. 안에서 다룬 일본식의 용어들은 그 말이 일본 측에서는 맞을지 몰라도 우리 한국 측에서는 맞지 않다. 이는 언어의 주체성/독자성 면에서 보아도 그렇고, 국어 순화 면에 보아서도 고쳐 바로잡아야 한다. 한때 정복자(征服者) 일본은 우리 조선인에게 처음은 폭력으로 위압하고, 그 다음은 교육으로 희롱(戱弄)하고, 다음은 법률로써 강압(强壓)하였다. 정복자는 피정복자의 언어와 풍속을 경멸하고 배척하며, 그에게 정복자의 언어와 신앙을 강요한다. 게다가 피정복자의 언어와 풍속과 제도를 유린하고 그 위에 정복자의 언어, 풍속, 습관, 제도를 수립한다. 한때 신정이니 구정이니,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 하여 이중과세라는 명목으로 우리 고유 전통 명절인 설을 못 지내게 하고, 한국인의 단합과 단결력을 해체하려 한 침략자 일본인들의 저의(底意)와 숨은 뜻을 알아야 한다.
  앞에서 다룬 일본식 말들은 일본 군국주의 침략 정책의 상흔(傷痕)을 일깨워 주는 역사적 증거어(證據語)로 남을 뿐이다. 아직도 일본 군국주의 정신이 숨어 있는 말들과 일본인들의 ‘말 속임수’에 우리는 속지 말고 자각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언어 주인 의식을 가져 국어를 살려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 말고도 곳곳에서 국어의 그릇된 표현과 혼란스러움이 발견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우리 국어를 갈고 다듬어 나가야 한다. 특히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혼탁한 국어에 대한 순화가 더욱 절실하다. 지금까지 앞에서 다룬 말들 특히 일본식 말 사용에 대한 국어 순화야말로 우리들이 앞장서서 떠맡아야 할 과제이다.
  국어 순화 면에서 방송과 신문이 앞장서야 한다. 방송·신문에 쓰는 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시청자와 독자들은 모두가 바른 말로 알고 있다. 언론이 한 번 오류와 오용을 하면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언론 종사자는 낱말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 말의 뜻을 별로 생각해 보지 않고, 검토 없이 맹목적으로 사용해 온 과거 인식이 결여된 일본식 용어와 일본식 한자 말의 무분별한 사용과 낱말 공기 관계에서 오는 오용 표현들을 주로 살펴보았다.

  7.4. 우리가 무의식중에 늘 쓰는 이러한 일본식 말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웬만큼 신경을 쓰지 않으면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쓰게 되며, 그것은 쓸데없는 말버릇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갖가지 오류를 낳는다.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혼란을 초래한다. 언중들이 맹목적으로 쓰는 이런 그릇된 말들은 국어를 오염시키고 나아가서는 국어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일본 말에 오염되어 병든 우리 국어를 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국민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방송과 신문에서 잘못 쓰이는 표현 중에서 특히 일본식 용어 사용과 그릇된 표현들에 대하여 그 말의 뜻과 내력을 밝히면서 주로 국어 의미 면에서 살펴보았다.
  말과 글을 올바르게, 정확하게 사용하려면 그 말의 뜻과 용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말과 글은 그 뜻이 통해야 한다. 뜻이 통하지 않는 표현은 알맹이 없는 죽은 언어다.
  말과 글을 조금도 흠(잘못) 없이 안전하게 쓰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릇된 표현을 바로잡아 올바른 국어 생활을 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글을 쓸 적에 올바른 글과 그릇된 글에 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명문(名文)이나 미문(美文)이라 해서 모두 올바른 글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말의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문장과 어색하고 그릇되게 쓰인 글은 올바른 글이 될 수 없다. 하나의 글이 온전한 것이 되려면 낱말의 뜻과 용법이 적절해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내용을 그냥 전달할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정확하게 담을 수 있도록 글을 다듬고 가꾸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품위 있고 올바른 글을 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올바르고 좋은 글이란 ① 쉬운 말로, ② 보기 쉽게, ③ 읽기 쉽게, 표현의 삼이(三易)를 갖춘 글이다. 올바르고 좋은 글은 문장이 쉽게 잘 통하는 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어에 관한 지식과 언어 감각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낱말의 정확한 의미와 용법을 바로 알고, 언어 법칙을 알아, 말과 글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도록 해야 한다. 어색하거나 그릇된 표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은 필요에 따라 절도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은 올바르고 효과적인, 품위 있는 언어생활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방송과 신문에 흔히 쓰이는 일본식 말들과 오용 표현을 바로잡아 국어를 순화하자고 논한 이 글이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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