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출장 보고】
사할린 동포 한국어 교사 연수
강인선 /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1. 머리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수행하여 온 국외 동포 한국어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동덕여대 채완 교수와 필자는 7월 12일부터 7월 26일까지 사할린주에 있는 한글학교 교사들의 한국어 연수를 위한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몇 가지 사항을 간단히 보고하고자 한다.
2. 내용
(1) 사할린의 지리적 위치와 여건 등
(위치) 사할린 섬은 인구 70만 명이 살고 있는, 러연방의 섬으로 된 유일한 주이며, 동경 141도 38분 - 144도 55분, 북위 54도 25분 - 45도 54분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길이 948㎞, 폭 최대 160㎞ 최소 26㎞(포야소크 목)이며, 본토와 타타르만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곳은 네벨스키 해협으로 7.5㎞ 떨어져 있다.
(지형) 산악 지형이며, 동쪽에 워스토크노-사할린스키 산맥, 서쪽 자파드노-사할린스키 산맥이 남서쪽의 쉬렝크, 유즈노-카미쇼비, 미찰리스키 등으로 뻗어 있다. 남부 저지대는 늪과 강이 많이 있으며, 최대의 호수는 두나이차 호로 담수면 면적이 174㎢에 달한다.
(기후) 몬순 기후이나, 본토보다 겨울철에 다습하고 추위가 덜하며, 여름은 시원하고 비가 많다. 일 년 중 100개의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비가 많으며 늦여름과 가을에 섬 남서쪽은 태풍의 영향을 받는다. 8월의 해수온이 가장 높으며, 남서해안이 가장 따뜻하다. 바람은 유즈노-사할린스크(유즈니)의 경우 강풍이 일 년에 20일정도 불고 2월에 가장 많다. 사할린의 따뜻한 기간은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이다(김장이나 저장용 작물의 파종을 7월 중순에 하여야 한다고 함). 유즈노-사할린스크의 경우 여름은 8월 월평균 17℃정도이며 가끔 30-35℃되는 날도 있다. 구름 낀 날이 많으며 습도 86-87% 정도이다. 안개일수는 일년에 70일 정도이며, 가장 추운 달은 1월로 평균 -13.5℃이며 최저 기온 -36℃이다.
(역사) 사할린 섬은 1640년 발견 당시는 본토와 타타르만을 사이에 둔 반도인 줄 알았으나, 1846년 네벨스키가 섬을 일주하여 섬임을 밝혔다. 1870년 경부터 혁명가를 포함한 범죄자의 유배지가 되어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한인의 이주는 1860년부터 남쪽지방에서 북쪽으로 이루어졌으며,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사할린섬이 남북으로 나뉘어 남쪽이 일본의 통치로 넘어가서 일인 약 30만 명이 광복 때까지 살았고, 징용으로 끌려온 사람과 가족을 포함하여 한인도 당시 약 2만 3천 명이 살고 있었다. 1946년 겨울에 일인 292,590명이 귀국했고 1956년 러일 국교 회복 때까지 전원이 일본으로 돌아갔다. 전쟁 직후에 한인들은 코르사코프(유즈노-사할린스크의 외항)에 모여 몇 달 동안 귀환선을 기다리다가 강제 해산되었다고 하는데, 코르사코프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통곡의 언덕) 일대가 한인들로 가득하였었다고 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애칭 유즈니) 섬 남쪽의 중앙에서 약간 남서쪽에 있으며, 비행장이 있고, 문화 행정의 중심지이며, 일본명은 유타카하라(禮ヶ原)이었고, 인구 약 17만이 거주한다. 이 중 한인이 약 12,000명(사할린 거주 한인 4만 3천 명의 약 30퍼센트) 있다.
(항공 교통) 유즈노-사할린스크까지 서울에서 비행기로 3시간 30분간 걸린다. 직항기는 매주 화요일(러시아 연방, 아에로플로트), 수요일(대한항공 전세기)에 있다. 본토의 하바로프스크에서 약 1시간 45분 거리이며 비행기는 매일 한 편씩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하바로스크-서울의 전세기가 있다.
유즈노-사할린스크는 1880년에 건설되었고, 지진. 지질. 동물 등의 연구소가 있다.
사할린 섬은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바다와 산에서 나는 자연 생산물도 많아서 ‘보석의 섬’이라 일컬어져 왔다고 한다. 일제 때 제지공장을 9개 도시에 10개를 세웠고, 비행장을 13곳에 건설하였으며, 탄광 개발을 하였다(일제 때 있었던 도시들은 일본명이 지금도 민간에서는 불리고 있음). 철도 또한 남쪽에만 연결되어 있고 북부는 노글니키지까지만 놓여 있다. 현재 자동타 도로는 유즈노-사할린스크 일원만 포장되어 있고 다른 지방로는 거의 포장이 안 되어 있다고 하며, 비교적 먼지가 많다.
시장 경제가 도입된 지 5, 6년이 된 사할린주 사람들은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개방 전에는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었지만 지금은 물건은 있으나 값이 너무 비싸졌다고 한다. 시내버스 요금의 경우 89년에는 6코페이카(루블의 100분의 일)였던 것이 95년 7월 현재 1,000루블로 올라 무려 만 6천여 배가 되었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 있는 시장에는 야채류와 식품을 파는 한인이 많았고, 공산품이나 가공식품류에 한국산이 아주 많았다(가게마다 페트병에 든 오렌지쥬스, 한국 옷가지 보임). 그 결과 새우깡류, 쥬스 포장팩, 맥주캔류 등 한국어가 쓰인 쓰레기가 많이 굴러다니고 있다(한국 무역업자의 진출과 교역이 많은 듯함). 또한 국가 기업이었던 공장이 경쟁력을 잃어 거의가 문을 닫아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고, 연금 생활자들은 생활 보장이 안 되게 되었다고 한다.
(2) 사할린 한인의 언어와 생활 그리고 한국어 교육
사할린 주의 한인은 현재 약 4만 3천여 명이라 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 12,000명, 토마리: 900명, 샤초르스크: 1,500명, 마카로프: 약 1,500명, 그라스노고르스크: 약 300명 등등)
사할린 교포 사회의 언어 문제는 역사적 여건에 의해서 이루어진 언어의 간섭과 접촉이라는 면에서도 매우 특이하다. 일제 시대 때 사용하던 일본어가 한국어와 러시아 어 사이에 끼어들어 있다. 한인 1세들의 언어 사용을 추적 기록하는 작업을 하면, 언어학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연구 가치가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이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인1세는 모국어인 한국어, 생활어였던 일본어, 그리고 러시아를 구사한다. 이들의 한국어 읽기 쓰기 능력은 떨어지며, 러시아 어도 정확한 구사는 어려운 듯 보였다.
한인 2세 가운데 대략 1940년 이전 출생자는 부모에게서 배우고 들은 한국어를 구사하며, 학창 시절을 일본어로 보냈고, 러시아 어를 정식으로 교육받기 시작한 세대이다. 이들 가운데 대략 1941년 이후 출생자는 공식 언어생활을 러시아 어로 한 세대이다. 가정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쓰기도 하였고 투철한 민족 의식을 갖지 않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생활하지 않은 사람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 단, 조선학교가 있었던 1946년부터 1963년 사이에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국어를 잘한다. 그러나 1964년부터 25년 간 한국어 공백 기간에 청소년기를 보낸 3, 40대들은 한국어를 잘 구사할 수가 없지만, 작년에 비해 능숙해진 사람이 많이 들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한인 3세는 공식적인 언어생활을 러시아 어로 하여 모든 생활이나 사고 방식이 러시아 인과 같다. 한국어를 잘 쓰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당연히 한국어를 할 수 없다. 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외국인(러시아 인)에게 하는 한국어 교육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교사로 양성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인 1세들은 근면한 기질로 야채 재배나 꽃 재배로 부를 이루고, 자식 교육에 힘써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듯하다. 구러시아의 체제에서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있다고 권리 의식을 키워 온 이들은 러시아가 망한 다음에는 잘 살게 된 한국이 자신들의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2, 3세에게 한국은 자신들이 부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의 나라일 뿐이다.
사할린 주의 한국어 교육은 일제 해방 후 1946년부터 1963년까지 조선학교가 맡았으며 주행정부의 결정으로 폐지, 1964년부터 러시아 학교로 전환하여 중단되었다가 1988년에 재개되었다. 1988년 3월에 주교육부 주최로 한국어 교육자 연수(처음 20명)를 시작으로, 9월 1일부터 9개 구역 13학교에서 선택 과목으로 채택하여 총 438명이 배우게 되었다. 1988년 9월 유즈노사할린스크 사범대학 역사부에
역사-한국어과 가 설치되어, 1991년에 동양학부 한국어-영어과 로 독립, 1994년 6월 17일에 8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특히, 유즈노사할린스크 제9학교는 옛 조선학교의 자리에 있는 러시아 학교였으나, 1992년 9월 1일 동양어문학교로 되었다. 95년 현재 전체 학생 수 980명 중 365명이 한인 학생인데,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 수는 407명이다. 92년에 3학급, 93년에 7학급, 94년에 9학급의 실험반이 있다. 이 학급의 담임교사들 및 교장 교감의 한국어 교육에 관한 열성은 놀라우며 머리가 저절로 숙여질 만큼 진지하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또한 한국어를 한인뿐만아니라 러시아 다른 민족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곧 한국의 세계화 정책과도 맞는 일이며 자신들의 주요한 사명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3) 한국어 교사 문제와 교재 문제
(교사 문제: 현황) 사할린 주 전체에 작년에는 27개 한글학교가 있었으나 교사의 사임으로 현재 20개 정도의 학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글학교의 존폐가 교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으며, 한편으로 교사의 자질이나 교육 내용과 교재의 문제가 따른다. 전자는 러연방의 사회 경제적 혼란기에 교사의 처우가 보장이 안 되고 있고 (다른 전문직인 의사도 마찬가지이나), 한국계 기업이나 상사의 진출, 개인 장사를 벌이거나, 통역 일 등이 교사의 급여의 수십 배가 되기 때문에 기존의 한국어 교사가 이직을 하고, 사범학교 졸업생이 교사로 취업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한국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교직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자의 문제로, 사범대학의 교수 5명(러시아 인 1명 포함)의 경우 대학 졸업자일 뿐 대학원 수학 경험이 없어, 한국어의 체계적 연구와 그에 따른 강의가 어렵다. 이번 연수에 참가한 한글학교 교사 중 한인 3세가 3명 있었는데 한국에 9개월간 연수를 다녀간 1명을 빼고는 한국어로 의사소통도 어렵고 그들의 한국어 발음은 부정확했다. 본인들도 우리 강사와 대화를 기피하였다.
사할린 주 교원대학에서 해마다 자체 교원 연수가 있으며, 1993년 12월에 개원한 유즈노사할린스크 한국교육원에서, 국립국어연구원의 강사 파견(우리 원의 사업)으로 연수가 있다. 1990년 1월에 평양에서 10명이 연수받은 바 있고, 91년부터 94년까지 재외국민교육원에서 도합 20명이 연수받았다.
대책으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한글 교사에게 정기적인 연구 수당을 지급하는 일이다. 1인당 월 50달러(우리 돈 4만 원) 정도만 보조해도 훌륭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으로 교사를 초청하여 훈련을 시키는 일이다. 다만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교사를 위한 훈련 연수 프로그램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비판의 소리가 있다. 개별 학습자를 위한 것뿐이라고, 그리고, 한국 교육원에 한국어 전문가를 파견하는 일이다.
(교재 문제: 현황 및 문제점) 한글학교 교사들의 모임인 한글 교사협회(1991년 결성, 회장: 공노원)가 주축이 되어 교재 연구 및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제9학교의 실험반 교사들은 94년에 초급 1년, 2년 과정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과 교사용 지침서를 개발하였다. 이미 1989년 10월 북한에서 주교육부에 기증한 교재
조선어 와 5천 권의 학습장을 받았다고 하며, 서점을 통하여 아동서 540권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정부로부터는 1990년 한러수교가 이루어진 후 1991년 5월-6월의 2주간 재외국민교육원의 초청 연수에 사할린 대표로 참석하였고, 1991년 10월에 알마아타와 1992년 3월에 설립된 타슈켄트의 한국어교육원에서 교재(러시아 어 판, 영어 판)를 5권씩 복사본을 받았고, 92, 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 KBS사회교육방송국 고국소식 편집부에서 보내 준 책과 잡지를 이용하였다.
일선 교사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 초급 단계를 지난 중급 정도의 교재가 필요하며, 대학의 고학년용 교재도 없다.
◦ 듣기용 교재가 없어서 힘이 들다. 사회 교육 방송 프로인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테이프와 대본이 도움이 되겠다. 녹음을 풀어 써서 교재로 사용했는데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 초급학교 어린이를 위한 노래 교재, 그림책, 낱말카드, 종이접기 자료, 율동 지도 교본 등이 필요하다. (학교에 VTR이 비치된 곳이 있음. 단, 우리와 다른 세캄방식)
◦ 교사용 지도서가 필요하며, 평가를 위한 표준화된 지침이 필요하다.
◦ 대학 교수들의 한국 연수 및 학위 취득 협조를 구한다.
◦ 사할린 현지에 맞는 교과서 개발이 필요하다. 이곳 7년 프로그램이 한국의 4. 5년 정도의 수준이 되도록. 현지 교사들만의 힘으로는 벅차다.
◦ 한국어를 제2언어로 초급학교에서 가르칠 때, 문자 교육 개시 시점이 1학년이 적당한지 2학년이 적당한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
◦ 이중언어학회, 국제한국어교육학회 등과 지속적인 교류를 원한다.
(대책) 한국어 교재 개발과 교육 프로그램 전반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러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제2언어로서 교육을 하는 경우를 대비한 전체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강사가 한국어 사용자가 아닌 경우도 따로 고려해야 한다.
사할린 지역 교사들의 교육적 정열로 보나, 현실적 여건으로 보아 현지의 사정에 맞는 교재와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인적 자원을 파견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거나 한다. 이러한 지원의 창구는 한국교육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93년 말에 설립된 사할린의 한국교육원이 그에 걸맞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 교육 및 한국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은 내용적으로 보다 알차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꾸준히 연구되어야 한다. 특히 사할린 지역이나 러시아연합 지역의 한국어 교육은 철저히 이중언어 사용(bilingual)자를 위한 것이거나, 러시아 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을 위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 되어야 한다(북한에서는 이미 노어 사용자를 위한 교재를 만들어 배포하였다. 참조: 수집 도서. 내용 본문 48과, 조사 어미 대비표, 한-러, 러-한 대조 어휘 색인, 문법 사항 색인 파함 총 1,080페이지). 또한 한국어 교사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현지 교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현지 교재 개발, 학습 교구의 지원, 학습용 러-한 사전 제작 등의 요구). 전문적인 한국어 교육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국교육원에 파견되어, 한국어 교육을 담당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현재는 사회 교육 위주임).
(4) 기타 문제
∘1949년부터 하바로프스크에서 발간되기 시작한 [새고려신문]은 사할린에서 러시아 정부의 지원으로 계속 발간되어 왔으나, 개방 이후 재정의 고갈로 직원들이 많이 떠나 기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줄고 독자 확보도 어려워 현재의 8면 타블렛판 주간 2천 부 발간에도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일보의 컴퓨터와 용지 지원, 한국교육원을 통한 연 24,000달러 지원으로 겨우 발간을 하고 있을 뿐 직원의 처우 개선이나 월급 인상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 금년 초에 시작한 인데컴(러시아 텔레비전 방송을 빌어 밤 9시-11시 방영)은 계약 기간이 2년 간이라고 한다. 원래 광고 수입을 예상하였으나 광고 의뢰가 없어 운영에 고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인뿐만 아니라 한국에 관심을 가진 타민족 사람들도 방송을 보면서 노어 자막 처리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그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 한인 1세 징용자 관련 유적지가 보존되지 않고 있다. 비코프에 있는 징용자 숙소 건물 일부가 현재 남아 있으나 그대로 방치하면 2, 3년 내에 흔적도 없어질 지 모른다. 이에 대한 대책과 지원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3. 수집 자료 및 참고 문헌
- - Yuzhno-Sakhalinsk and its suburbs (영문 안내 지도).
- - Guide to the Sakhalin Museum (박문관 안내 책자).
- - Yuzhno-Sakhalinsk (1995, 시 선전 화보).
- - 새고려신문 (3일분: 1995년 6월 30일자, 7월 7일자, 7월 21일자).
- - 이쿠진(1995)“원동의 한인들: 생활과 운명의 비극”, 새고려신문 연재 8회분.
- - 공노원(1995) 1945-1995년 러시아 사할린주의 한국어 교육 실정, 제6차 국제 한국어 교육 학술 대회(8. 15.-8.17.) 발표 요지.
- - 공노원 외(1995) 한국어 학습 프로그램(유인물)
- - 공익현(1994) 혼자서 배울 수 있는 조선말(Самоучитель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a), 외국문도서출판사, 평양.
- - 로조주제사전(Краткий тематитский русско-корейский словарь), 1992, 알마타 카자흐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