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국어에 나타난 일본어의 언어적 간섭】
생활 속에 남은 일본 말
정재도 / 한말글 연구회 회장
1. 한국말과 일본 말의 역사 고리
“일본서기, 720”에는 오진(應神) 16년(서기 285년)에
- “2월에 백제 와니(왕인) 박사가 왔다. 태자 우지노와카이라쓰코가 스승을 삼아 여러 가지 글을 배워 통달하지 않는 데가 없었다. 왕인은 후미노오후토(書首)들의 시조다.”
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고사기, 712” 오진 20년에
- “이 해 백제 초고왕이 ……논어 10권, 천자문 1권, 합하여 11권을 이 사람에게 주어 보냈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그냥 보아 남겨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왕인 무리가 일본 사람들에게 글과 기술을 가르쳐 우리 문화를 전달할 때 쓴 말이 어디 말이겠느냐는 점이다. 그것이 백제 말과 일본 말이 섞인 것이었으리라는 짐작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일본 말에 한국말이 섞이게 된 것인데, 그와 같은 흔적은
-
あまつくに(아마쓰쿠니) |
うみつかぜ(우미쓰카제) |
하늘ㅅ나라 |
바다ㅅ바람 |
의 ‘つ’와 ‘ㅅ’이 사이시옷 구실을 한다는 데에서 꼭 들어맞고 요즘 얼떨결에나 장난말로 하는
- 가깝くで 내리て 왔たり갔たり 했たんだ
에도 남아 있다. 이 말은 우리말 “가까이에서 내려서 오락가락 했단다”와 일본 말 “近くで降りて來たり往つたりしたんだ”의 비빔말인데, 그중 ‘왔다리갔다리’가 우리말인지 일본 말인지 잘 모르는 층이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이 배운 한문은 중국 것이 아니었다. 한국말과 일본 말이 섞인 비빔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는 중국식은 통하지 않고, 우리와 일본의 말 차례가 같은 우리 이두식이 제격이다. 그래서 “고사기”, “일본서기”, “만엽집”, “풍토기” 따위 일본 옛 책에 이두식 표현이 많은 것이다. 그 뿌리는 지금도 남아 있다.
(1) ‘바’라는 말
일본 국어사전의 대표 격인 “광사원, 1955”에서 ‘바(場)’라는 낱말을 찾아서 한국말로 옮겨 본다.
- “바(場) : ① 곳, 마당, 자리, 위치, ② 경우, 형편, ③ 연극의 한 장면, ④ 거래하는 곳, ⑤ 일이 벌어지는 곳, ⑥ 힘이 작용하는 범위 …….”
이 ‘바(場)’라는 낱말을 우리나 일본 사람이나 다 일본 말로 알고 있다. 다시 일본의 “카토기와 외래어 사전, 1967”에서 ‘바’를 찾아 보자.
- “바[…朝 pa]《몽골말 ba, 렙차 말 ba ……. 場, 所의 뜻》곳, 자리, (보기 말) 바아이, 바스에, 바치가이, 아시바, 고바, 데이샤바, 노리바, 모치바, 야쿠바, [우에다 가즈토시 “일본외래어사전, 1915]”
‘바’는 일본 말이 아니라 외래말인데, 몽골 말이나 렙차 말에도 있지만, 조선말 pa가 ‘바’의 말밑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우에다 가즈토시(1867~1937)의 “일본외래어사전, 1915”를 들었다. 우에다는 도이칠란트에 가서 유럽 말을 연구하고, 옛 일본 말의 h음은 p음이었다고 주장해서 학계에 큰 반향을 부른 학자다. 일본 학자는 ‘바’가 한국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쓰는 ‘바’는 어떤가. “우리말 큰사전, 1992”에
- “바 : ① …… 앞옛말의 내용이나 일 따위를 나타내는 말.(내가 본 -를 말하겠다. 말하는 -에 따라. 우리의 할 -가 무엇이냐? 내가 생각하던 -와는 다르다.) ② ‘방법’을 나타낸다.(어찌할 -를 모르겠다.) ③ …… ‘기회, 경우’ 따위를 나타낸다.(여기까지 온 -에 그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고생을 하는 -에 좀 더 견딥시다. 이왕 늦은 -에 더 놀다 가렴. 거기에 간 -에는 이것을 가지고 가지. 어차피 매를 맞을 -에는 먼저 맞겠다.)”
처럼 되어 있다. 일본 사람은 ‘바’가 우리말이라는데, 그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는 ‘바’가 피어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완전하게 홀로 쓰이는 말이 아니고 완전하지 못한 병신말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바’를 아주 포기해 버린 흔적도 있다. 우리 국어사전들을 종합해 보면
- “장(場) : ① 연극의 한 토막. ② 어떤 물리의 양이 전해진 공간에 걸쳐, 그 공간 안 위치의 함수로서 주어진 영역 …….”
처럼 되어 있어. ‘바’를 ‘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하여 진행 중인 연극 한 토막의 ‘바’도, 힘의 성질을 띠는 중력 ‘바’, 전자 ‘바’, 핵력 ‘바’, 그 밖의 여러 ‘바’를 모두 일본 말에 뺏겨 버리고, ‘장’으로 둔갑시켜 쓰고 있는 것이다.
참말로 ‘바’가 일본 말일까? 앞에 든 일본 “가토가와 외래어 사전, 1967”에 있는 ‘바’의 뜻풀이인 ‘場’과 ‘所’를 우리 옥편과 자전 들에서 찾아서 정리해 보자.
- “場[장]: ① 마당. ……. ② 제사하는 곳. ③ 싸움터.”
뜻은 일본 말 ‘바’와 통하는 데가 있으나, 음은 ‘장’으로서 ‘바’와 다르다.
- “所[소]: ① 바. 것. ② 곳. ③ 쯤. ④ 까닭, 때문. ⑤ 가짐. ⑥ 얼마.”
뜻풀이는 종합한 것인데, 우리가 ‘所’를 새게 읽을 때에는 흔히 ‘바 소’라고 한다. 그리고 ‘所’는 거의 ‘바’로 풀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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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느낀 바. |
소견: 본 바. |
소기: 기대한 바. |
소득: 얻은 바. |
소론: 논하는 바. |
소망: 바라는 바. |
소신: 믿는 바. |
소원: 원하는 바. |
소위: 이른바. |
소임: 맡은 바. |
소정: 정한 바. |
소행: 행한 바. |
들과 같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바이없다’의 ‘바’도 ‘방법’과 비슷하게 쓰이는 경우다.
1) ‘바쇼’
일본에 ‘바쇼(場所)’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우리는 ‘곳’이라고 하다가 ‘처소’라고 했고, 중국서는 ‘디디엔(地點)’ ‘디팡(地方)’, ‘추수오(處所)’ 들로 썼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도 ‘장소’라고 쓰게 되었고, 중국서도 ‘창수오’라고 받아들여 쓴다.
일본서는 ‘場所’의 ‘場’는 ‘바’라고 새김으로 읽고, ‘所’는 ‘쇼’라고 음으로 읽는다. ‘場’의 일본 음은 ‘조’고, ‘所’의 일본 새김은 ‘도코로’다. 새김과 음을 섞어 읽는 것은 우리 이두 방식이다. 일본서는 우리 이두를 왕인 무리에게서 배워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場所’를 ‘바쇼’라고 읽는 것은 ‘바’가 우리말이고, ‘쇼’가 한자음과 가까운 음이니까 ‘바쇼’는 일본 말이라기보다는 우리말과 가까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말 역시 일본 말로 쳐 버리고, 우리는 그 껍데기인 ‘장소’를 쓰고 있다. 그럴 바에야 그러지 말고 ‘곳’이라는 우리말을 살려서 떳떳하게 써야 한다.
2) ‘다치바’
‘다치바(立長)’이라는 말도 ‘다치’라는 일본 말과 ‘바’라는 우리말과 어울린, 우리 이두식 말이다. 이 말도 일본 말로 치고 있다. 우리말로는 ‘처지’라 하고, 중국 말로는 ‘추징(處境)’이라고 한다. ‘처지’라는 말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다. 한자로 ‘處地’라고 쓰지마는 한자 말이 아니다.(중국과 일본에 ‘역지사지’라는 말이 없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한국식 한자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안 쓰고, 우리가 껍데기말인 ‘입장’만 써 쌓으니까 ‘처지’라는 말은 움츠러들어서 제 구실을 못 한다. 이제는 ‘태도’나 ‘주장’ 따위 말까지 끌어대야 할 판이다.
그들이 잘 쓰는 한자 말로라도 우리가 만든 “인공물(人工物:만든 것), 일공(日工:날품팔이)” 따위 말은 중국이나 일본 사전에는 없고, 우리 “한국 한자어 사전”에만 있다.
(2) 구두, 남비, 아망위
우리가 지난날 ‘구두, 남비, 아망위’라는 말의 말밑이 일본 말 ‘구쓰, 나베, 아마구’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토가와 외래어 사전, 1967”을 보면
- “구쓰[靴]《구쓰를 조선말로 gutu, 몽골말로 gutul, 만주말로 gulxa라고 한다》발에 신는 물건. ……”
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 말 ‘구쓰’가 몽고 말이나 만주 말보다는 조선말 ‘구두’와 가깝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두’가 ‘쓰’로 되는 것은 ‘두루마기’를 ‘쓰루마키’라고 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 “나베[朝 nampi] 나베. ……” 도,
일본 말 ‘나베’는 순전히 조선말 ‘남비’가 그 말밑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망위’도 일본 말 ‘아마구(雨具)’가 말밑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 국어사전들을 종합하여 보면
- “아망위(←アマグ·아마구·amagu): 외투나 비옷 따위의 깃에 달리어 머리에 뒤집어 쓰는 물건.”
처럼 하나같이 일본 말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구’가 우리말이랄 수도 있다.
전북 익산군 함열의 백제 때 이름이 ‘감물아’다. 감물(금강) 가에 있는 땅이란 뜻이다. 곧 ‘아’는 ‘가’다. ‘가’는 끝이다. ‘끝’은 하늘 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경기도 수원의 고구려 때 이름이 ‘매홀’이다. 물골이라는 뜻이다. 곧 ‘매’는 물이다.
아(가)에서 내리는 매(물)는 ‘아매’다. 아매는 ‘비’다. 비는 ‘아메(雨)’다. 아메는 ‘아마(雨)’다.
‘구(具)’는 우리와 일본의 공통음이다.
그러므로, ‘아마구’는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구’의 ‘구’가 흐린소리이므로 ‘아망구’라고도 했지마는, 그 ‘구’는 ‘응우’와 가까운 소리이므로 ‘아망우’로 소리 내다가 ‘아망위’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앞에 든 ‘바, 구두, 남비, 아망위’ 들에 한국말과 일본 말이 섞여 있고, 어떤 것은 서로 상대방 말이라고 미루기도 한다. 어쨌거나, 일본의 ‘오노야스마로’의 ‘마로’, 홋카이도 ‘가무이부리’의 ‘부리’처럼 사람 이름에나 땅 이름에 우리말이 섞여 있으니, 한국말과 일본 말은 뿌리부터 깊은 고리에 얽혀 있는 것이다.
2. 일본식 한자 말
(1) 일본식으로 쓰는 한자 말
본디 중국에서 쓰이는 말에다가 따로 일본식 뜻을 붙여 쓰는 말이 있다.
1) 국민학교
‘국민’이라는 말과 ‘학교’라는 말은 한자 말이다. 그러나, ‘국민학교’라는 말은 도이치 말 폴크스슐레(Volkschule)를 일본서 옮긴 말이다. 그 말이 생긴 경위는 다음과 같다.
1876년에 메이지 유신, 1889년에 대일본 제국 헌법, 1890년에 교육 칙어 발표가 있었고, 1940년에는 미국·영국·프랑스와 맞서기 위해 도이치·이탈리아·일본이 군사 동맹을 맺었는데, 1941년 2월 28일에는
- “황국의 도를 따라 초등 보통 교육을 베풀고, 국민의 기초를 연성한다.”
고 하여, 그때의 일본 왕 히로히토가 칙령 제148호로 ‘국민학교령’을 공포했다.
1941년 3월 31일에는 조선 총독부 관보 제4254호에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가 조선 총독부령 제90호로 ‘국린학교령’을 공포했다. ‘소학교 규정’을 ‘국민학교 규정’으로 고친 것인데, 그 제2조 1항에는
- “…… 황국 시민이라는 자각에 철저하도록 힘써야 함.”
이라고 되어 있고, 2항에는
- “일시동인의 성지를 받들어 충량한 황국 신민다운 자질을 얻게 하고, 내선 일체, 신애, 협력의 미풍을 기르도록 힘쓰게 하고 ……”
라고 하는 식으로, 식민지 아래 일본이 우리 겨레와 대만 겨레를 전쟁 소모품으로 끌어내려고 세뇌 교육 기관으로 국민학교를 출발시켰다.
그래 놓고,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영국·네덜란드와 싸우다가 1945년 8월 15일에 항복하고 말았다.
1946년에는 세계 침략의 뿌리인 대일본 제국 헌법을 없애고, 1947년에는 아시아 침략 수단으로 출발시켰던 ‘국민학교’를 ‘소학교’로 되돌리고, 1948년에는 교육 칙어마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국민학교’라는 말이 1941년 이래 일본·우리나라 ·중국에서 쓰이다가,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마자 일본과 중국서는 없어졌는데, 워낙 친일파의 뿌리가 깊이 박힌 우리나라는 그 향수를 못 버리고 지금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과 중국서는 소학교라 하고, 도이치에서는 기초 학교,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영국서는 기본 학교, 북한서는 인민학교 들로 하여, 일본 잔재인 ‘국민학교’라는 말은 우리밖에 쓰는 데가 없다.
본디 우리는 1894년부터 ‘소학교’, 1906년부터 ‘보통학교’라고 했다. 광복과 더불어 ‘국민학교’를 ‘보통 학교’라든지 다른 말로 바꾸어야 했었다.
2) 단말기
‘단말기’라는 말은 영어 터미널(terminal)을 일본서 옮긴 말이다. 컴퓨터에 자료를 넣어 보내고, 처리된 자료를 받는 장치의 이름이다. 컴퓨터의 중앙부와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끝 부분인데, 입력과 출력 장치를 갖춘 타자기가 그 노릇을 한다.
‘단말’이란 말은 ‘말단’과 같은 말로 ‘끝’이나 ‘끄트머리’라는 뜻인데, ‘말단’은 썼어도 ‘단말’은 잘 안 썼다. 일본서 ‘말단기’라고 할 것을 글자 차례를 바꾼 ‘단말기’라고 해 본 것이다. 이 말을 “국어 대사전, 1982”부터 허겁지겁
- “단말기(端末機): 전자계산기에 쓰이는 입출력 기기의 총칭 ……”
이라고, 일본식 한자 말 그대로 올렸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우리말 큰사전. 1992”와 “조선말 대사전. 1992”에는 각각 다음과 같이 걸러 실었다.
- “끝장치: 전자계산기에 자료를 넣어 보내고, 처리된 자료를 받는 장치. ……”
자칫, “우리말 큰사전”에 ‘단말기’라고 “국어 대사전”대로 실었더라면 북쪽에 뒤떨어져 창피할 뻔했다. 그러면 ‘단말기’라는 말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우리말 큰사전”대로
- “단말기:→끝장치.”
라고 ‘단말기’라는 말을 찾는 사람을 위해서 ‘끝장치’를 찾아 보라고 인도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쓸 것과 못 쓸 것을 구별해 주는 구실도 한다.
나아가서, ‘단말기’만으로는 무슨 말인지 구름 잡듯 너무 감감하여 감이 잡히지 않는다. ‘끝장치’라고 하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떤 부분의 끝에 있는 장치라고 어렴풋이나마 감이 잡히는 것 같다.
무턱대고 일본 것만 따를 것이 아니라, 거를 것은 걸러 내야 한다.
3) 고가교
‘고가(高架)’라는 말은 높은 시렁 또는 높은 선반이란 뜻의 한자 말이다. 일본서는 그 말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쓴다. “광사원”에
- “고가(高架): 높이 건너지르는 일.”
- “고가교(高架橋): 땅 위로 높이 놓은 다리.”
라고 되어 있다. 그런다고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 민중서림의 “국어 대사전”처럼
- “고가교: 땅 위로 높다랗게 놓은 다리.”
라고 고분고분 쓸 것은 없다. “새 우리말 큰사전”과 “우리말 큰사전”에
- “고가교: 구름다리.”
라고 되어 있고, “조선말 대사전”에도
- “고가교: (다듬은 말로) 구름다리.”
라고 되어 있으니, ‘구름다리’라고 우리말로 해야지, ‘고가교’라고 일본식 한자 말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4) 그 밖의 말들
흔히 쓰이는 말 중에서 중국서 쓰는 말을 일본식으로 쓰는 말 몇 개만 들어 본다.
-
도구(道具:도량에서 쓰는 기구) |
→ 연장, 수단. |
매물(賣物:물건의 팖) |
→ 팔 것. |
불어(佛語:부처님 말) |
→ 프랑스 말. |
요리(料理:처리) |
→ 음식, 조리. |
일수(一手:같은 수단) |
→ 독점. |
일응(一應:일체) |
→ 일단. |
입구(入口:입에 넣음) |
→ 어귀, 들목. |
출구(出口:입에서 말이 나옴) |
→ 나가는 곳. |
취하(取下:겸손히 순종함) |
→ 물건이나 일을 무름. |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사건이나 안건의 안”이란 뜻의 ‘안내(案內)’를 일본서 “알림, 인도함, 또는 그러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바꾸어 쓸 수 없는 딱한 사정도 있다. 알림장(안내장), 인도함(안내함) 따위는 되지마는 안내양을 알림양이나 인도양이라고 할 수는 없는 따위다.
(2) 일본서 만든 한자 말
한자로 한자 말을 만들기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로 한다. 다만, 중국 한자 말이나 일본 한자 말은 거의 세 나라가 다 쓰지마는, 우리 한자 말은 중국과 일본서는 절대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만큼 쓰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 한자 말뿐 아니라 일본 한자 말도 분별없이 쓴다.
1) 육교
중국에는 하늘다리가 있다. “중문대사전, 1973”에 보면
- “하늘다리: 옛적 군대가 성을 칠 때에 나무를 공중에 건너질러서 다리를 삼았는데, 이를 하늘다리라고 했다.(天橋:古時軍隊攻城, 以木架空爲&橋, 謂之天橋.)”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하늘다리라는 말이 요즘에는 달리 쓰인다. “현대한어사전, 1978”에
- “하늘다리: 정거장에서 손님이 철길을 가로 건너기 위하여 철길 위 공중에 건너지른 다리.(天橋: 火車站里爲了旅客橫過鐵路, 而在鐵路上空架設的橋.)”
라고 풀이가 달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말로 구름다리다. “우리말 큰사전, 1992”에
- “구름다리: 한길이나 철길 들을 건너질러 공중에 높이 놓은 다리……
- 고가교(高架橋), 교각(橋閣), 운교(雲橋), 운잔(雲棧).“
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구름다리라는 말은 중국에도 있기는 있다.(일본에는 없다.) “중문대사전, 1973”에
- “구름다리: ① 높은 데 놓인 다리. ② 은하수에 놓인 다리.(雲橋: ① 高處之橋也. ② 天河之橋也.)”
라고 되어 있는 것 중 ①의 “높은 데 놓인 다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현대한어사전, 1978”에는 올라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중국에서는 ‘구름다리’보다는 ‘하늘다리’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 된다. 물론, 중국의 하늘다리는 우리 구름다리다.
그럼, 우리 구름다리를 일본서는 뭐라고 할까.
일본 사이토 모키치(齊藤茂吉:1882~1953)가 1913년에 쓴 노래집 “적광(赤光)”에
- “뭍다리(陸橋)에 이르렀을 때 병정이 왔는데 ……”
라는 것이 있고,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1903~1951)가 “여인 예술”에 연재한 것을 1930년에 펴낸 “반랑기”에
- “신주쿠역의 뭍다리(陸橋)에 보랏빛 시그널이 빛나……”
라는 것도 있다. 그 글 대목 중 뭍다리를 “광사림, 1925”에서 찾아보면
- “뭍다리(陸橋): 철길 선로에 걸쳐 공중에 건너질러 놓은 다리.”
라고 되어 있고, “사원, 1935”에는
- “뭍다리(陸橋): 철길 선로에 걸쳐 건너질러 놓인 다리.”
라고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일본서는 우리 구름다리를 1900년대 초기부터 뭍다리(육교)라고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우리 “조선어 사전, 1946”에
- “육교(陸橋): 구름다리.”
- “구름다리: 길 위로 걸쳐 놓은 다리.”
라고 하여, 일본 육교는 우리 구름다리라고 제대로 밝혀 놓았다. 그 뒤에 나온 “큰사전, 1957”과 “조선말 대사전, 1992”에는 ‘육교’가 일본 한자 말이라서 싣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국어 대사전 5판, 1966”부터 무슨 필요가 있었는지
- “구름다리: 길 위로 공중 높이 놓은 다리, 운교(雲橋).”
- “육교(陸橋): 육상의 우묵한 곳이나 계곡을 건너기 위해 놓은 다리. 또는, 철로에 놓은 다리.”
라고 구름다리도 그대로 놓아 두고, 따로 일본식 한자 말 ‘육교’를 싣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어대사전”의 풀이가 앞의 일본 사전들의 것과 달라서, 어디서 베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사해, 1964”를 보니
- “뭍다리(陸橋): 뭍 위의 우묵한 곳이나 골짜기(谷間)를 가로지르기 위하여 놓인 다리.”
라고 되어 있어, 비슷하기는 하나 똑같지는 않아서, “광사원”을 찾았다. 지금은 3판까지 나와 있는데, 2판(1969)부터는
- “뭍다리(陸橋): 한길·철길 들을 가로지르기 위하여, 그 위에 놓인 다리.”
라고 되어 있다. 이것도 “국어 대사전”의 풀이와 다르다. 행여나 하고 거슬러 올라가 “광사원” 1판(1955)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 “뭍다리(陸橋): 뭍 위의 우묵한 곳이나 골짜기(溪谷)를 건너기 위해 놓은 다리, 또는, 철길 철로에 놓은 다리.”
라고, “국어 대사전”의 풀이와 똑같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구름다리라는 말이 있음에도 “국어 대사전”에 “광사원”의 뭍다리를 통째로 베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다른 사전들도 모두 그것을 옳다구나 하고 베껴 넣어, 일반 사람들도 ‘육교’를 쓰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말 ‘구름다리’는 사라져 가고,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게 되어 간다.
그러한 딱한 상황에도 그와는 딴판으로 흐뭇한 일이 있어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일본 “조선어 대사전, 1986”에
- “육교(陸橋): 陸橋. (類) 구름다리.”
라고 ‘육교’ 풀이를 뭍다리(陸橋)라고만 하고, 비슷한 말이라고 ‘구름다리’를 찾아서 맞대 놓은 것이다. 일본 한자 말 ‘육교’에다가는 따로 풀이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 “국어 대사전”은 너무나 창피하다.
본디, 다리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물 위(水上)에 놓는 다리고, 또 하나는 뭍 위(陸上)에 놓는 다리다. 물다리는 강다리, 섬다리, 바닷다리고, 뭍다리는 굴다리, 줄다리, 구름다리다.
물다리로는 한강다리처럼 강에 놓는 다리가 강다리, 진도다리처럼 섬과 뭍사이에 놓는 다리가 섬다리, 남해다리처럼 뭍과 뭍 사이의 바다에 놓는 다리가 바닷다리다.
뭍다리로는 굴로 된 길 위를 가로질러 놓는 다리가 굴다리, 깊은 골짜기 두쪽 언덕에 줄이나 사슬을 건너질러서 매다는 다리가 줄다리, 철길이나 한길 위에 높게 건너지른 다리가 구름다리다.(줄다리를 구름다리라고 하기도 한다.)
중국의 허황한 하늘다리나 일본의 좀스러운 뭍다리보다는 우리 구름다리가 알맞고 멋도 있는 이름이다.
2) 반도
영어 페닌슐러(peninsular)를 일본서 옮긴 말이 ‘반도’다. 일본 “대한화사전, 1956”을 보면
- “반도(半島): ① 바다 가운데로 내밀어 섬 모양인 뭍. 세 쪽이 바다와 닿은 뭍. ② 특히 조선을 말함.”
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 사람을 깔보고 욕할 때 “괘씸한 놈”이란 뜻으로 ‘한토진(半島人)’이라고 했다. 위 풀이 ②가 그 경우다.
‘반도’라는 말은 일본 한자 말이라고 좋아하기 전에 치욕스러운 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반도는 우리말로는 ‘곶’이다. 곶이 안 어울리면 ‘반섬’이라고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말로, 아키펠러고(archipelago)를 옮긴 군도(群島)는 ‘떼섬’, 체인 아일런즈(chain islands)를 옮긴 열도(列島)는 ‘줄섬’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써 오는 제도(諸島)도 그 뜻대로 ‘뭇섬’이라고 함이 바람직하다.)
3) 이자
‘이자’는 중국식 말 만들기를 본떠서 만든 ‘利+子’이기는 하나 일본식 한자 말이다. 중국서는 리시(利息)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길미’다. “큰사전, 1957”에
- “길미: 빚돈 얼마에 대하여 얼마 동안에 얼마씩 붙는 돈.”
- “이자(利子): =길미.”
처럼 되어 있는데, “국어 대사전, 1961”부터
- “길미: 빚돈에 대하여 덧붙이는 돈. 이식, 이자, 변리.”
- “이자(利子): ① 길미, 변리, 이식. ② 화폐의 이용의 대상으로서 지불되는 금액.”
처럼, 일본 사전 것을 일본식 표현 그대로 베껴 넣고, 두 말을 비슷하게 풀이 해 놓았다. 그러자, “새 우리말 큰사전, 1974”에서는 한술 더 떠서
- “길미: =이자(利子)”
- “이자(利子): 남에게서 돈을 빌어 쓴 대가로 치르는, 일정한 비례의 돈, 길미, 변리, 이식.”
처럼, 아주 일본식 한자 말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말 큰사전, 1992”에는
- “길미: 빚돈에 대하여 일정한 비율로 무는 돈. 변, 변리, 이금, 이문, 이식, 이자, 이전, 자전.”
- “이자(利子): =길미.”
라고, 한결같이 우리말 ‘길미’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4) 가(假)-
‘가(假)-’라는 말 조각이 있다. 일본서 ‘가리’라고 하여 어떤 말 앞에 붙여서 그 말의 내용이 ‘임시’로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 가건물, 가계약, 가교, 가궁, 가납부, 가봉, 가사용, 가석방, 가수용, 가숙, 가승계, 가시설, 가역, 가옥, 가위탁, 가정관, 가조약, 가주권, 가진급, 가집행, 가차압, 가처분, 가철, 가첩, 가청산, 가출소, 가출옥, 가퇴원, 가해제
우리는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쓰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런 일본식 한자 말과 찌꺼기 말을
- 가출옥 → 지아시(假釋)
- 가차압 → 지아코우야(假抇抻)
처럼 고쳐 쓰기도 한다. 그러나
- 가계약, 가조약, 가증권, 가집행, 가처분
따위 말들은 대개 그대로 들여다가 쓰기도 한다.
5) -적(的)
‘-적(的)’이라는 말 조각이 있다. 본디 중국서는 ‘-디’나 ‘-더’라고 하여
- 것: 귀한 것(貴的)
- 의: (나의 책(我的書)
- -(의)ㅁ: 달림이 빠름(走的快)
- -꾼, -이: 우편 배달꾼/이(送信的)
- -(으)ㄴ, -ㅆ 다: 졸업한/했다(畢的業)
- -게, -(으)로: 똑바르게, 곧바로(一直的)
따위 뜻으로 쓰인다. 그것을 일본서는 ‘-테키’라고 하여 어떤 말 뒤에 붙여서
- 의, 같은, -다움, -스러움
따위 뜻으로 ‘귀족적, 논리적, 문학적, 비극적, 소극적, 영적, 질적, 철학적, 평화적 ……“ 들처럼 숱한 일본식 한자 말을 만들어 쓴다.
그와 같이 뒤에 붙는 말조각에
- -고(高): 매상고, 매출고, 물가고, 어획고, 엔고, 잔고, 판매고
- -부(附): 경품부, 선물부, 며칠부, 조건부
- -선(先): 거래선, 구입선, 수입선, 행선
따위도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6) 그 밖의 말들
영어 리메인더(remainder)를 일본서 옮긴 ‘잉여’(剩餘→나머지)를 중국에서도 ‘성유’라고 쓰듯, 일본서 만든 한자 말을 중국에서도 거의 쓴다. 그것은 우리와는 처지가 다르다. 우리도 다른 나라에서 한글로 말을 만들어 쓴다면 그것을 우리가 마다할 까닭이 없다.
중국에 시위안(戱院), 지위안(劇院)이라는 말이 있는데도, 일본식 한자 말인 극장(劇場)을 ‘지창’이라고 받아들이고, 비싸이(比賽)가 있는데도 일본식 징지(競技)도 쓰듯, ‘간부, 강연, 개근, 개성, 결석, 과장, 과학 ……’들을 한없이 받아들이고, 우리도 즐겨 쓰는
- 금속(쇠붙이), 단백질(흰자질), 도료(칠감), 면적(넓이), 비료(거름), 섬유(올실), 속도(빠르기), 수지(나무진), 수영(헤엄), 연료(땔감), 연소(불탐), 유지(기름), 음료(마실것), 중량(무게), 체적(부피)
들까지 쓰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일본서라도 한자로 만들어 준 말이니까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도 일본식 한자 말에 걸맞은 우리말이 없으면, 아무리 이름씨라고 하자고 해도 명사가 쓰이듯 ‘검도, 격납고, 고객, 공연, 공장, 국장, 근기 ……’들을 한이 없이 쓰는데.
- 개소(군데), 매점(가게), 사료(먹이·모이), 애교(아양), 애자(뚱딴지), 운임(짐삯·찻삯), 음반(소리판), 임금(품삯·삯돈)
들 우리말이 있는 것까지 쓰고 있다. 우리로서는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3) 서양식 한자 말
일본은 한자만 쓰므로(가나도 한자다) 일본 말뿐 아니라 서양 말도 한자로 취음하여 쓰기도 한다. 그 취음한 한자를 한자 말인 줄 알고 우리 한자음으로 읽는 버릇이 있다.
1) 무력
서울 거리에서 양철 일 하는 집 간판에 ‘무력 공장’이라 쓴 것을 볼 수 있다. 그 ‘무력’이라는 말은 네덜란드 말 블릭(blik:생철)을 일본서 취음하여 한자로 ‘¿力’이라고 적기도 한다. 그 일본 한자음은 ‘부리키’다.
취음은 소리를 취하기 때문에 한자 뜻과는 상관없다. 그런데도 그 한자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무력’인 것이다. 그런 말은 없으니, 우리는 ‘양철 공장’이나 ‘함석집’이라고 해야 한다.
2) 낭만
‘낭만’이란 말은 프랑스 말 로망(roman)을 일본서 취음하여 적은 ‘浪漫’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그 한자는 일본 한자음으로는 로망(로만)이다. 우리도 개화기의 문인들은 로망을 우리 식으로 취음하여 魯漫이라고 했다.
‘낭만’은 그런 말이 없으니까, ‘로망’이라고 제대로 써야 한다.
3) 독일
이것도 이 세상에 없는 허깨비말이다.
‘도이치’를 일본서 ‘도이쓰’라 하고, 그것을 취음하여 獨逸나 獨乙로 적기도 한다. 중국서 더이즈(德意志)라 하는 것을 본뜬 것이다.
그중 獨逸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독일이다. 독일은 말이 아니고, 그런 나라도 없으니까 ‘도이칠란트’라고 하든지 줄여서 ‘도이치’라고 해야 한다.
4) 불란서
‘프랑스’를 일본서 취음하여 佛蘭西라고 적기도 하며 ‘후란스’라고 읽는데, 그 한자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불란서’다. 중국서는 파란스(法蘭西)라고 한다.
불란서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는 없으니, 우리는 제대로 ‘프랑스’라고 해야 한다.
(4) 일본에 없는 일본식 한자 말
일본식 한자 말을 좋아한 나머지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 일본식 한자 말을 만들어 쓰기 한다.
일본에서 러시아 말 툰드라(tundra)를 동원(凍原)이라고 옮겨 쓰는 것을 중국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떠서 “국어 대사전, 1961”부터
- “동병(凍餠): 언 떡.”
을 만들어 넣더니, 그 “수정판, 1982”에는 드디어
- “동합(凍合): 얼음이 얼어 붙음.”
까지 억지로 만들어 넣었다. 중국에서라면 몰라도 중국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서 어쩌겠다는 건가. 설마
- “얼음이 얼어 붙었다.”
라고 하지 않고, 그것 대신
- “동합했다.”
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도 “언 발에 오줌 누기”를 ‘凍足放尿’라고 장난하는 것은 모르되, 언 떡을 ‘동병’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사전마다
- “담후청(曇後晴): 그 날의 날씨가 흐렸다가 뒤에 갬.”
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낱말이 아니다. 일본서 “구모리 노치 하레”라고 간혹 일기장에 쓰는 날씨에 관한 설명 말이다. 그래서 일본 사전에는 없다. 우리도 그런 것은 쓰지 않는다. 우리 국어사전들에만 신주 모시듯 모시고 있는 것이다.
1) 아연인낭편판
‘골함석’을 일본 말로 옮길 필요가 없지마는, 옮긴다면 ‘아엔비키 나미히라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본식 한자로 적자면 ‘亞鉛引浪平板’이 될 것이다. 물론 일본에 그런 말도 글도 없다. 일본서는 ‘미조도탄’(←溝 tutanaga)이라고 한다. 그런 것을 “국어 대사전, 1961”에
- “아연인낭편판(亞鉛引浪平板): 골함석.”
이라고 실었다. 일본에도 없는 일본식 한자 말을 어쩌자고 억지로 만들어 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더니, 그 “수정판, 1982”에 빼지도 않고
- 아연도낭편판(亞鉛鍍浪平板): 골함석.“
이라고, 인(引)만 도(鍍)로 고쳤다. 물론, 그것도 우리도 아무도 쓰지 않는다.
2) 연륙교
우리 국어사전들에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연륙(連陸)’이라는 말이 올라 있다. 뭍이 잇닿아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연륙교’라는 말이 나타났다. ‘육교’와 연상하여 일본식 한자 말인 줄 알았던가, 아니면 일본식으로 만들었던지 “국어 대사전, 1982”부터
- “연륙교(連陸橋): 육지와 섬을 이은 다리.”
라고 싣기 시작했다. 뜻으로 보면 섬다리다.
경상남도 창원시 구산면 구복리 서남쪽에 돝섬이 있다. 섬 복판에 203m 높이의 용머리산도 있다. 구복리와 돝섬을 잇는 섬다리를 놓았다. 돝섬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돝섬다리’라고 부른다. 그것을 공무원들이 ‘저도연륙교’라고 한다고 돝섬 사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고 한다.
3)고수부지
“국어 대사전, 1982”에
- “고수부지(高水敷地): 고수위일 때에만 잠기는 하천 부지.”
라는 것이 있다. 이 말도 일본에는 없다. 일본서는 가와시카(川敷)라고 한다.
일본 사전에도 ‘고수(高水)’라는 말은 없고,
- “고수공사(高水工事): 하천을 개수하는 방식의 하나…… 둑잇기, 물트기 따위 공사.”
가 있을 뿐이다. 부지(敷地)가 우리말로 ‘터’라는 것은 다 안다. 일본에도 없는 일본식 한자 말을 만들어서 사전에까지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수부지’에 걸맞은 우리말을 찾아서 실어야 한다. “우리말 큰사전, 1992”와 “조선말 대사전, 1992”에는 각각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 “강턱: 큰물이 들거나 물높이가 높은 때에만 잠기는 강변의 턱진 땅. 강변턱.”
- “강턱: 강기슭의 턱이 진 곳.”
두 사전에서 찾아 실은 말이 일치한다. 그리고 ‘고수부지’는 “우리말 큰사전”에서만
- “고수부지: →강턱.”
이라고, ‘강턱’으로 이끌어 주있다. ‘고수부지’를 1987년에 지명 위원회에서 ‘한강 시민 공원’으로 하기로 했다가, 1991년에 국어 심의회 국어 순화 분과 위원회에서 ‘둔치’라고 하기로 했으나, ‘둔치’는 강이나 호수나 바닷가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니 딱 들어맞지 않다.
3. 일본 말
‘부’라는 일본 말이 있다. 길이나 두께를 잴 때, 무게를 달 때, 돈 거래할 때 따위에 쓰인다. 한자로 적으면 ‘分’이다. 그것을 중국서는 ‘펀’이라 하고, 우리는 ‘분’이라고 하고, 일본서 ‘부’라고 하는 것이다. ‘5부 판자’는 닷 푼 판자고, ‘3부 다이아’는 서 푼 다이아 반지고, ‘2부 길미’(‘이자’는 일본식 한자말)는 두 푼 길미다.
일본 말도 하도 써서 그것이 일본 말인 줄 모르는 수가 있다.
(1) 순 일본 말
일본 말의 형태가 일본식 한자 말이나 찌꺼기말 따위로 바뀌지 않고 원형 그대로 쓰이는 말을 순 일본 말이라고 해 본다.
순 일본 말도 일본서는 거의 한자로 적는다. 또 한자로 됐더라도 한자음으로 읽지 않고 일본 말로 새겨 읽는 것도 있다.
요즘 학교 둘레나 학원 거리에 ‘이지메루’라는 일본 말이 나돌고 있다. 귀찮게 몹시 굴거나 성가시고 못살게 군다는 뜻이다. 우리말에는 ‘이지메루’와 걸맞은 말이 없다. 그런데, 불량배들이 득실거리며 건드리고 집적거리는 모양이니, 그 말이 퍼지는 수밖에 없다.
지난날 쓰던 음식에 관한 말로
-
가마보코 |
→ 생선묵 |
가바야키 |
→ 장어구이 |
가케우동 |
→ 메밀국수 |
간즈메 |
→ 통조림 |
고노와타 |
→ 해삼창자 |
나라즈케 |
→ 오이절임 |
다마네기 |
→ 양파 |
다쿠앙 |
→ 단무지 |
템푸라(포 tempora) |
→ 튀김 |
돔부리 |
→덮밥 |
벤토 |
→ 도시락 |
사시미 |
→ 생선회 |
스시 |
→ 초밥 |
스키야키 |
→ 전골 |
아나고 |
→ 붕장어 |
아부라이게 |
→ 유부 |
아지 |
→(매가리) 전갱이 |
야키니쿠 |
→ 불고기 |
오뎅 |
→ 꼬치 |
와사비 |
→ 고추냉이 |
우동 |
→ 가락국수 |
젠자이 |
→ 단팥죽 |
하루나 |
→ 왜갓 |
들은 거의 바뀌었거나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음식 말이 아닌 것의
-
가라오케 |
→ 노래방 |
가타 |
→ 거푸집, 골, 본, 틀, 판 |
고테 |
→ 인두, 흙손 |
구로토 |
→ 익수 |
구루마 |
→ 수레, 달구지 |
기지 |
→ 옷감, 천 |
나라비 |
→ 줄서기 |
다라이 |
→ 큰대야, 함지 |
다타미 |
→ 짚자리 |
단도리 |
→ 준비, 채비 |
도리우치 |
→ 납작모자 |
사라 |
→ 접시 |
스리 |
→ 소매하기 |
시보리 |
→ 물수건, 조리개 |
시아게 |
→ 마무리 |
아카지 |
→ 교정지 |
아타라시 |
→ 새것 |
앗사리 |
→ 깨끗이, 산뜻이 |
에리 |
→ 깃 |
오봉 |
→ 쟁반 |
와리바시 |
→ 나무저, 소독저 |
하코비 |
→ 나르미(나름이) |
혼타테 |
→ 책꽂이 |
후미키리 |
→ 건널목 |
들도 바뀌는 중이다.
(2) 찌꺼기말
일본서는 일본 말을 거의 가나 아닌 한자로 적는다. 우리말로는 ‘빛’인 일본 말 ‘히카리’를 한자로 ‘光’라고 적고서도 그것을 ‘고’라고 음으로 읽지 않고 ‘히카리’라고 읽는다.
그런데, 그 일본 말을 적은 한자 ‘光’를 ‘빛’이라고 읽지 않고, 우리 한자음으로 ‘광’이라고 읽으면, 그것은 일본 말도 아니고 한자 말도 아니다 그런 따위를 찌꺼기말이라고 해 본다.
1) 일반 말
[역할]: 일본서 연극할 때, 각각 맡아서 하는 일을 ‘야쿠’라 하고, 그 야쿠를 나누어 맡기는 일을 ‘아쿠와리’라고 한다. ‘와리’라는 일본 말이 우리말로는 ‘나누기’이므로 ‘야쿠와리’는 ‘맡는 일 나누기’나 ‘나누어 맡는 일’이다.
그 말이 널리 쓰이다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저마다 해야 하는 일”이란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 야쿠와리를 일본서 한자로 ‘役割’라고 적는다. 그것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역할’이다. 그것을 우리가 즐겨 쓴다. 우리말로는 ‘구실’이라고 한다. 우리 국어사전들에
- “구실: 제가 해야 할 제 앞의 일.”
- “역할(役割): 구실.”
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예부터
-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하고, 물건도 다 제 구실을 한다.”
라고 써 왔다. “나라 구실, 정부 구실, 대통령 구실, 우리 구실, 유엔 구실……” 들로 쓰는데, ‘역할’을 많이 쓰고 ‘구실’을 쓰지 않으니까, ‘역할’은 강해지고 ‘구실’은 약해져서 없어져 가므로, 어떤 경우에는 ‘할 일’이라는 말을 대신 써서라도
- 우리 역할 → 우리 구실 = 우리 할 일
처럼 ‘구실’이나 ‘할 일’을 쓰고, ‘역할’이라는 찌꺼기말을 써서는 안 된다.
[춘희] ‘동백 부인’(프랑스 La Dame oux camélias)를 일본 말로 ‘쓰바키히메’라고 한다. 본디 참죽나무의 뜻인 椿에다가 일본서만 ‘쓰바키’(동백)라는 뜻을 붙여 쓴다. 그래서 ‘동백 부인’을 일본서 ‘쓰바키히메(椿姬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춘희’라고 하면 찌꺼기말이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국어대사전, 1982”에
- “춘희(椿姬) : 뒤마가 1848년에 지은 장편 연애 소설. 언제나 동백꽃을 달고 있는 마르그리트와 ……”
라고 실었다. 물론 “우리말 큰사전, 1992”에는 없다.
그런 따위 일본 말도 아니고 한자 말도 아니고 일본식 한자 말도 아니고, 일본 말을 한자로 적은 껍데기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찌꺼기말
-
대부(貸付: 가시쓰케 |
→ 뀌기, 빌림) |
대합실(待合室: 마치아이시쓰 |
→ 기다림방) |
매도(賣渡: 우리와타스 |
→ 팖) |
매물(買物: 가이모노 |
→ 살것) |
매상(賣上: 우리아게 |
→ 팔림) |
매입(買入: 가이이레 |
→ 사들이기) |
매장(賣場: 우리바 → |
가게, 파는 곳) |
부지(敷地: 시키치 |
→ 터) |
선임(船賃: 후나친 |
→ 뱃삯) |
선하(船荷: 후나니 |
→ 뱃짐) |
수당(手當: 데아테 |
→덤삯) |
수속(手續: 데쓰즈키 |
→ 절차) |
시합(試合: 시아이 |
→ 겨루기) |
연인(戀人: 고이비토 |
→ 애인) |
일부(日附: 히즈케 |
→ 날짜) |
적자(赤字: 아카지 |
→ 결손) |
중절모자(中折帽子: 나카오레보시 |
→ 우묵모자) |
지불(支佛: 시하라이 |
→ 치름, 지급) |
청부(請負: 우케오이 |
→ 도거리, 도급) |
하물(荷物: 니모쓰 |
→ 짐) |
할인(割引: 와리비키 |
→ 덜이) |
들이 숱하게 쓰이고, 특히 우리가 좋아하여 마지않는
-
대출(貸出: 가시다시 |
→ 빌림 |
매출(賣出: 우리다시 |
→ 내팔기) |
인상(引上: 히키아게 |
→ 올림) |
인하(引下: 히키사게 |
→ 내림) |
취급(取扱: 도리아쓰카이 |
→ 다룸) |
행선지(行先地: 유쿠사키치 |
→ 가는 곳) |
따위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일본 모로하시 “대한화사전, 1956”에도 올라 있지 않다.
이상과 같은 찌꺼기말은 말이 아니니까 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칙에는 예외가 따르듯, 찌꺼기말도 그것과 걸맞은 우리말이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쓸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 보기를 들면
- 건물(建物: 다테모노)
- 주식(株式: 가부시키)
따위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찌꺼기말
- 샤오마이(小賣: 고우리→ 산매)
- 하중(荷重: 니오모 → 진무게, 짐무게)
들을 쓰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찌꺼기말이지마는, 중국 쪽에게는 한자를 써 주니까 감지덕지 고마워 할 일이다.
2) 땅 이름
[선착장] 서울 여의도 놀잇배 나루 이름이 노들나루다. 1987년에 놀잇배를 띄우기 시작하면서 그 앞 강턱 가 섬둑에 높다랗게 NODLNARU라는 홍예문(아치문)을 세웠다. 그것을 1993년 여름에 서울시 공무원이 치워 버렸다.
마포다리 건너서 63빌딩으로 가는 버스길에서 강턱으로 내려가는 길목 어귀에 알림판이 서 있다. 거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한강 시민 공원 여의도 선착장’이라고 씌어 있다.
이 ‘선착장’이라는 말은 그런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서 ‘후나쓰키바’(배 닿는 곳)라는 말을 한자로 船着場라고 적는다. 그 한자를 우리 음으로 읽은 것이 ‘선착장’이라는 허깨비다.
그 나루에 가면 분명히 ‘노들나루’라는 알림판이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 공무원은 ‘노들나루’가 싫고 ‘선착장’이 좋은 것이다.
‘선착장’이라는 찌꺼기말을 쓰는 근거를 찾아보자. 물론 “큰사전, 1957”에는 그런 따위 말은 없다. “국어 대사전, 1961”부터 그나마 일본 “광사원, 1955”에서 베껴 넣은
- “착선(着船): 배가 닿음.”
이라는 일본식 한자 말을 실어 놓고도, 또 무엇이 모자랐는지
- “선착(船着): 배가 닿음.”
이라고, 일본 말 ‘후나쓰키’를 한자로 적은 찌꺼기말까지 베껴 넣기 시작했다. 일본 “사원, 1935”를 보면 “후나쓰키’ 같은 것은 없는데, “광사원, 1955”를 보면 그나마
- “후나쓰키(船着): 배가 머무르는 곳, 후나가카리, 하토바, 미나토, 船着場(바).”
만 있고, 다른 번짐말은 없다. 다시 말하면 ‘후나쓰키바’도 ‘후나쓰키’의 한뜻말로 되어 있는 뿐이고, ‘후나쓰키’가 표준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 우리말 큰사전, 1974”에는 한술 더 떠서 일본 사전에도 없는 ‘선착지(船着地)’라는 찌꺼기말을 만들어 넣었다. 그러더니 “국어 대사전, 1982”에 드디어
- “선착장(船着場): 배가 와서 닿는 곳.”
이라는 구역질 나는 찌꺼기말이 나타났다.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서울시에서 ‘누에나루’를 ‘잠실 선착장’이라고 하거나 말거나 “새 한국 도로 지도, 1992”에서 충주호 낚시터 이름을 찾아보면
- 종민동나루, 목벌나루, 화암리나루, 월악나루, 용곡나루, 황석리나루, 청풍나루, 괴곡나루, 중방리나루, 단양나루
들이 있다. 그 밖에 소양호의 ‘청평나루, 양구나루, 신남나루’; 의암호의 ‘삼천나루, 중도나루’; 안동호의 ‘배나루’; 진양호 충의사 앞의 ‘나루’들이 있다. 서울에서만 ‘선착장’이라고 하고, 시골에서는 ‘나루’라고 한다.
[윤중제] 1968년에 서울 여의도에 섬둑을 쌓았다. 그 둑은 ‘여의섬둑’인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윤중제’라고 이름을 붙였다. ‘윤중둑’이란 말인데, ‘윤중’이라는 말이 찌꺼기말이다. “광사원, 1955”에 보면
- “와주(輪中): 에도 시대, 물난리를 막으려고 하나 여러 마을이 둑으로 싸여 물막이 협동체를 이룬 것. 기후현 남부 기소강, 나가라강, 가이강의 세 강 하류에 있는 것이 유명하다.”
라는 것이 있고, 일본 사전에는 그것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말로는 방죽골이다. 우리나라에도 400군데가 넘는다. 방죽골의 둑이 방죽이다. 그러니까 윤중제는 ‘방죽’이다. 그럼에도, 일본 사전에도 없는 ‘윤중제’라는 찌꺼기를 만들어 쓴 것이다. 그런 것을 노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국어 대사전, 1982”에
- “윤중제(輪中堤): 강섬의 둘레를 둘러쳐서 쌓은 제방(여의도 -).”
이라고 실어서, 아예 ‘여의도 윤중제’라고 못을 박았다. 한심한 일이다.
[중도] 춘천통합시 중서부에 있는 의암호에 ‘중도’라는 긴 섬이 있다. 그 ‘중도’라는 말이 일본 말 찌꺼기다. “광사원, 1955”에
- “나카시마(中島): 못이나 강 가운데 있는 섬 ……”
이라는 것이 있다. ‘중도’라는 섬은 “한국 지명 사전, 1974”에도
- 전남 광양군 진월면 월길리
- 〃 신안군 안하면 ·암태면·지은면
들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찌꺼기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국어 대사전, 1982”부터 풀이는 없이 직접
- “중도(中島): ① 전남 광양군 진월리에 있는 섬.…… ② 평북 정주군 남쪽에 있는 섬.…… ③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 있는 섬.……”
이라고 아주 인정해 버렸다. 그러나 ‘중도’는
-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 → 가운데섬
- 〃 여천군 화정면 낭도리 → 간데섬
- 〃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 → 중섬
- 경남 진양군 이반성면 평촌리→ 중섬
-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 중섬
들처럼 그 고장에서는 대개 ‘가운데섬’이나 ‘중섬’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전남 여천군 화정면 여자리에서는 ‘샛섬’이라 하고, 또 강원도 통천군 임낭면 앞바다에 세 섬이 나란히 있는데, 그 개섬도와 남송도 사이 섬이 간도(샛섬)이다.
우리는 ‘가운데섬’이나 ‘샐섬’으로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중국에도 중다오(中島) 같은 말은 없고, 지엔다오(間島)는 만주 지린성 후오룽현에 있던 우리 간도(間島)를 가리킨다.
[중지도] 한강의 노량다리와 양화다리 중간에 섬이 있다. 그것을 ‘중지도’라고 한다.
‘중지도’라는 말은 일본서 ‘나카노시마’를 한자로 적은 中之島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찌꺼기다. 일본 사전에도 ‘나카노시마’라는 낱말은 없고, “광사원 1955”에
- “나카노시마공원(中之島公園): 오사카시 맨 처음 공원, 북부 도지마 강(堂島川)과 도사 강(土左川) 사이에 있어, 운동장, 공회당 따위 설비가 있다.”
만 있다. 그런데 우리가 ‘중지도’를 쓴다. 그것을 “국어 대사전, 1982”부터
- “중지도(中之島): ‘강섬’의 일본식 이름.”
이라고, 마치 그 찌꺼기를 써도 괜찮은 것처럼 소개한 것이다.
3) 남은 말
당연하고도 놀라운 일이 있다. 우리 “국어 대사전, 1982”에는 다 있는 ‘선착장, 윤중제, 중도, 중지도’라는 낱말이 일본 모로하시 “대한화사전, 1956”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1986년에 한국 땅 이름 학회에서 서울시에 의견을 내어 지명 위원회로 하여금
- 윤중제 (여의도)→ 여의방죽
- 제일중지도(노량다리)→ 노들섬
- 제이중지도(양화다리)→ 선유도
로 고쳐 부르게 했다.
다만, 1991년에 국어 심의회 국어 순화 분과 위원회에서 ‘노견’을 ‘갓길’로 하기로 했으나, ‘길섶’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선착장, 윤중제, 중지도’라는 말은 “우리말 큰사전, 1992”대로 다음과 같이 못 쓸 말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 “선착장: →나루.”
- “윤중제: ① → 방죽. ② → 섬둑.”
- “중지도: → 샛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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