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외래 어휘
들머리
이 글은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외래 어휘의 실태를 조사 분석하여 일본 말이 우리말에 끼친 영향의 한 가닥을 밝혀 보는 데에 목표를 두었다. 여기 말하는 “외래 어휘”는 외래어, 외국어 및 외래풍의 일본식 조어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곧 외래 어휘란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1) 외래어: | 우리말의 일부로 여길 만한 외래 귀화어이다. 이런 말은 우리말에 그 대응어가 없어서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외래어는 우리말에 버금가는 말로 인정된다. |
(2) 외국어: | 비록 일부에서 쓰고 있는 외국말이고 또 한글로 표기는 하지만 아직은 우리말의 일부로 여겨질 수 없는 어휘이다. 이런 말은 되도록 삼가고 우리말을 가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
(3) 외래풍의 일본식 조어: | 주로 서구에서 들어온 외국어에 일본 사람들이 첨작을 하여 만들어 쓰는 독특한 트기말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델레비”, “에어곤”, “오도바이” 따위 말들이 그것이다. 이런 얼치기말은 비록 일부에서 지각 없이 쓰고들 있지만 외래어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서구어도 아니고 일본 말도 아닌 트기말이므로 언어로서의 품위를 잃은 말이기 때문이다. |
1. 외래 어휘의 일본식 변조어
1) 일본식 변조 어휘의 무비판적 차용 사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외래 어휘 중에 다소 길거나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앞뒤의 일부 형태를 잘라서 쓰는 일이 많다. 말하자면 외래 어휘를 거두절미하여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발음하는 경향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언어학적으로나 언어 차용상의 일반 관례를 무시하는 일로서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외래 어휘 차용 방식이다. 그런데도 이런 비정상적인 언어 변조 차용 행위가 일본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제한이 없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여겨지고 있다.2) 일본식 변조 어휘 차용의 실태
일본식 변조 어휘들은 거의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어 쓰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할 만하다. 언어 표현을 간편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대중의 언어 심리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마땅하다. 무릇 남의 것을 빌려 쓰는 행위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듯이 남의 나라말을 차용하여 쓰는 데에도 지켜야 할 통상 관례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일본 사람들은 그런 법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편의주의에 따라 남의 말을 마음대로 바꾸어 쓰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비정상적인 일본의 차용어 행위를 편하다는 것만으로 적극적으로 모방하여 쓰는 것이다.(1) 일본식 발음과 유사하게 쓰는 변조 어휘
이 부류에 드는 변조 어휘로서 우리나라에도 흔히 쓰이는 것들을 예시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표제어는 우리말 발음으로 적었는데 이는 일본식 발음과 같거나 약간 다르다. 또 일본식 발음과 유사한 것으로서 거의 공존하는 변이음이 있는 것은 “/” 표를 하여 병기했다. 괄호 안에는 원어를 적어 놓았으며 일본어 표기는 생략하였다. 우리말 발음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가) | 공구리(concrete), 다이야(diagram), 다이아(diamond), 데모(demonstration), 데푸레 (deflation), 도란스(transformer), 메모(memorandum), 미스(mistake), 세멘(cement), 쎈치-하다 (sentimental), 시네마(cinematograph), 아마(amateur), 에로(erotic/eroticism), 인푸레(inflation), 파스(callipers), 푸로/프로(program), 푸로/프로(professional), 푸로(percent), 푸로/프로(proletaria), 푸로(propaganda), 하스/허스(husband), 호모(homosexuality) |
(나) | 미리(millimeter), 센찌/센지(centimeter), 키로/기로(kirogram/kiometer) |
(다) | 니스/리스(varnish), 밋숀(transmission), 호무(platform) |
(라) | 모랄(moral sense), 세비로(cevil clothes), 세루(cell motor), 오바(over coat), 체인(chain store), 파마/빠마(permanent wave), 파스(pas ball) |
(마) | 미싱(sewing machine), 파스(free pass) |
(바) | 리모곤(remote control), 스프([영]staple fiber 인조 섬유), 구레파스(cryon pastel:크레용과 파스텔의 특징을 따서 만든 일본식 조어) |
(사) | 레지(casher register: 다방 “레지” 등을 가리킨다) |
(아) | 데후(differential gear: 자동차 부속의 한 가지로 흔히 쓰인다), 하이야(hired taxi) |
(자) | (가라) 오께(から orchestra) |
(2) 일본식 발음을 일부 고쳐 쓰는 변조 어휘
이 부류는 일본식 변조 어휘들의 일부 발음을 고쳐서 쓰는 것들이다. 일본 사람들이 변조 단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 음운 체계의 제약 때문에 영어 등의 발음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한 것을 일부 기워서 발음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발음의 개칭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본에서 변조된 것임에는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이들도 물론 일본식 외래 어휘가 국어에 미친 영향인 것이다.(가) | 노트([일]노-도, notebook), 데바트([일]데바-도, department), 마이크([일]마이구, microphone), 빽([일]밧구, background), 빵꾸([일]팡구, puncture), 아파트([일]아바-도, apartment), 인테리([일]인데리, [로] intelligentsia), 콘도([일]곤도, condominium), 콤비([일] 곤비, combination), 텔리비/테레비([일]데레비, television), 항케치([일]한가지, handkerchief) |
(나) | 세일([일]세이루, bargain sale), 스탠드([일]스단도, lamp stand), 스피커([일]스피가, loud speaker), 스트로([일]스도로-, drinking straw), 카바/카버([일]가-바, book cover, seat cover), 콤프랙스([일]곤푸렛구스, inferiority complex), 포인토/포인트([일]포인도-, contact point:자동차 부속) |
(다) | 도큐멘타리([일]도규멘다리-, documentary drama/film), 뮤지칼([일]뮤지갈, musical comedy/play), 모닝([일]모닝구, morning coat), 벤치([일]벤지, bench coacher), 스탐프([일]스암푸, stamp ink), 스텐레스([일]스덴레스, stainless steel: 우리말에서는 “스텐 밥그릇”에서처럼 “스텐”으로만 줄여서 말하는 일이 있다), 스프링([일]스프링구, speing coat), 씽글([일]싱구루, single-breasted), 프론트([일]후론도, front desk), 콘사이스([일]곤사이스, concise dictionary), 크랏치([일]구랏지, clutch pedal), 후라시([일]후랏슈, flash bulb/light) |
(라) | 레미콘([일]레미곤, ready mixed concrete), 매스콤([일]마스고미, mass communication), 에어콘([일]에아곤, air conditioner), 크레파스([일]구레파스, creyon+pastel: 두 가지를 합해서 만든 일본 조어), 사이카([일]사이도 가, side car) |
(마) | 스파이크([일]스파이구, spiked shoes), 아이스 티([일]코피, iced tea/coffee), 하이힐([일]하이히루, highhilled shoes) |
(바) | 댄스파티([일]단스파디, dancing party), 스펠([일]스페루, spelling), 스케트([일]스케-도, skating), 스키([일]스기-, skiing), 프라이팬([일]후라이 판, frying pan), 해피엔드([일]핫피엔도, happy ending) |
(사) | 스테이트맨쉽([일]스데-도만십, statesmanship)에서 처럼 복수 표지 “-s”를 생략하는 수도 있다.). 테이블 맨너([일]데-부루 마나-, table manners), 함엔에그([일]하무엣구, ham and eggs) |
(아) | 가래 라이스([일]라이스 가래, curry and rice), 아프터 써비스([일]아후다-싸비스, after-sale service) |
2. 일본식 발음으로 굳어진 외래 어휘
위에서 일본식으로 변조된 낱말이나 표현에 관하여 살폈는데 그런 비정상적인 외래 어휘 이외에도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 중에는 발음상 문제가 있는 어휘들이 있다. 곧 원어를 줄이거나 변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는 외래 어휘들인데도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동안에 그 음운 체계의 모자람 때문에 발음상 문제가 많은 것이다. 그런 어휘들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식 발음으로 굳어진 것들이다.3. 일본식 발음과 고친 발음이 공존하는 것
이 부류는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경우와 원음에 가깝도록 고쳐서 발음을 하는 경우가 공존하는 것들이다. 곧 동일한 외래 어휘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원음에 가깝도록 고쳐서 발음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식 발음을 원음에 가깝도록 바꾸어 가는 과도적 현상이라 할 것이다. “/” 앞의 표제어는 고친 발음이고 그 뒤의 것은 일본식 발음의 잔존형이다.4. 원음에 가깝도록 고쳐 발음하는 어휘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외래 어휘 중에는 원음에 가깝도록 고쳐서 적는 것들이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본디 일본 사람들을 거쳐 들어왔음이 분명한 것인데 일본식의 불완전한 발음을 원음에 가깝도록 고쳐서 쓰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 사람들이 “도아”로 발음하는 것을 “도어”로 고쳐서 말하는 경우처럼 모음 “아”를 “어”로 고쳐 발음한다든지, “무-도”를 “무드”로 하는 경우처럼 “오”를 “으”로 고쳐 발음하는 따위이다. 또 자음의 경우에도 일본 말에는 “ㅋ”이나 “ㅌ” 소리가 없어서 거센 소리를 못 적는 데서 오는 현상을 한글로 적어서 바로 잡는 따위이다. 이렇게 원음에 가깝도록 하려는 노력은 일본식 발음이 원어에서 너무 멀고 어색하므로 특히 젊은층에서 저항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 말을 모르는 신세대들은 원어의 발음을 찾아서 외래어 표기법에 맞다고 적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한 결과로 다음과 같이 일본식 발음을 고쳐 쓰고 있는 것이다.1) 일본 말 외래어 표기의 모음 일부를 고쳐 발음하는 경우
(1) <어 ← 아>2) 일본 말 외래어 표기의 자음 일부를 고쳐서 발음하는 경우
(1) <ㄹ ← 루>5. 일본식의 독특한 용례로 굳어진 어휘
일본어에서 외래 어휘로 여겨지는 것들 중에는 그 의미나 쓰임이 원어와 다른 것들이 있음은 앞에서 지적하였다. 이를테면, 간닝구(컨닝, cunning)와 같은 말은 그 본래 뜻과 달리 일본어에서 통용되는 외래성 어휘인 것이다. 이런 일본식 독특한 의미나 용례를 가진 말들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져 쓰이는 일이 있다. 이것도 일본식으로 굴절된 언어문화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경우라 할 것이다.1) 일본 통용 의미가 영미어 등 동일 형태의 원어와 다른 것
다음 보기에서 표제어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표기를 나타내며 괄호 안에는 일본식 표기가 나타나 있다.2)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에서 서로 달리 쓰이는 것
다음의 예들은 일본어에서 통용되는 외래어이고 그것이 한국에도 유입되어 있는데 미국 영어나 영국 영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들 말이 일본에 유입된 것은 주로 영국 영어이므로 미국 영어에서는 그 쓰임이 없게 된 경우가 있다고 여겨진다.6. 원어와 무관한 일본식 외래풍의 조어
영어 등의 외국어를 가지고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쓴 것들이 꽤 있다. 곧 영어 등에는 그런 표현이나 복합어가 없는데도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써서 외래어처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식 외래풍의 조어도 거의 한국에 전래되어 쓰인다.마무리
위에서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외래 어휘 또는 외래풍의 어휘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서구 외래 어휘는 대부분 일본을 거쳐서 왔으며 또 많은 경우 일본식으로 굴절되고 변조된 것이다. 그 발음 면에서도 일본식 불완전한 발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이 많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런 일본식 외래 어휘들이 우리 외래 문화에 끼친 영향은 아직도 심각하며 우리는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