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산책】

영한사전의 번역어 문제

황찬호 / 서울 대학교 명예 교수


  국립 국어 연구원의 큰 관심거리의 하나가 외국 작품들을 우리말로 옮길 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즉 오역·중역·졸역 등이어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벌써 여러 번 번역 문제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왔다.
  필자도 ‘중역(重譯)’ 문제를 중심으로 여기에 참여하여 소견을 진솔한 바 있다. 여기에서 논의되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본고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번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오역’이다. 번역 스타일이 어떻고 우리말의 세련도가 어떻고 하기에 앞서 오역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러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오역이 하나도 안 나온다는 것은 거의 바랄 수가 없을 것 같다.
  필자는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심정의 하나가 이 ‘오역’을, 다시 말하면 ‘거짓말’을 학생들한테 지껄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50년 동안을 교단에서 지껄여 댔으니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나왔겠는가.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등골이 오싹해진 ‘거짓말들’이 생각나는데 그중의 하나를 소개해야 겠다. 한국 외국어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작품명도 잊었지만 대화에 “Mud in your eye!”라는 말이 나왔다. 남자가 마누라하고 한바탕 싸우고 사나흘쯤 뒤에 집에 들어와서 결국은 헤어지기로 합의하고 한 잔씩 나누는 장면에서 여자가 남자보고 하는 말이었다. 강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무리 추리를 해도 앞뒤가 딱 맞지를 않았다. 그래서 기상천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너무 마셔서 눈이 게슴츠레하군요’라고 번역을 해 주었다. 사날이나 홧김에 퍼마시고 돌아왔으나 눈에 mud(진흙)이 끼어 있듯이 게슴츠레하게 흐려 있다는 추리에서였다. 다행히 그대로 넘어갔다. 뒤에 알고 보니 건배할 때 하는 우리말 ‘위하여’ 같은 말이었다. 또 하나 ‘Say when!’은 술은 따르면서 상대가 자기 주량에 따라 ‘그만(when)’이라고 말을 해 달라는 뜻, 즉 ‘Say when you have had enough’라는 뜻이다. 이것을 어떤 대가가 기상천외한 추리를 벌려 오역을 해 놓은 것을 보고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느낀 일이었다.
  “Mud in your eye!”나 “Say when”이나 영어로 대화하며 술을 마셔 버릇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오역’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한 ‘2개 국어 통’(bilingual)이 아니고는 이런 오역은 면할 길이 없다.
  일제 시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2개 국어 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연령층에 따라 그 정확도가 조금씩 다르다. 해방 후 특히 6·25 후부터는 영어 열이 고조되어 미국 유학생들이 늘고 미국인하고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3개 국어 통’(trilingual)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이즈음해서 세계 문학 전집 등의 번역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여 중역이란 문제가 나오게 되었다. 여기서의 중역이란 외국 작품의 일본역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어 자기가 번역한 것으로 내놓은 것이다. ‘3개 국어 통’이면 영어 원작을 번역하며 일본역을 참고로 할 수 있을텐데 아예 영어 원본은 집어치워 놓고 일본역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난센스가 수없이 벌어졌다.
  한두 예를 들면 “Rebecca”라는 소설 번역 중에서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어 코를 깨물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かむ(嚙む, 咬む, 嚼む) 깨물다’와 ‘かむ(嚙む) 코를 풀다’가 혼돈되어서 나온 중역이고 또 ‘그녀는 무용장을 거쳐서 자기방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踊場(おどりば), landing’의 踊場을 무도장이라고 번역한 것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물론 landing은 일어로는 踊場, 우리말로는 층계참이다.
  또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에 “나는 평기다”, “一이냐 八이냐 해보자”라는 것이 있는데 “평기”는 일어의 “平氣”는 태연하다, 아무렇지도 않다“라는 뜻이다. “一이냐 八이냐”는 일어의 “一か八かやってみろう”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이런 우리말은 물론 없다. 이것은 “흥하든 망하든, 죽기 아니면 살기로”라는 뜻이다.
  1945년, 즉 해방되던 해에 중학교 1년생이 지금 대체로 64~65세이다. 따라서 한·일의 ‘2개 국어 통’이라는 세대도 이미 노년층이다. 또 중1년까지의 일어 습득으로는 정확한 번역을 기대할 수 없다. 70을 넘은 세대도 어떤 공부를 했느냐 또 해방 후 일어와 접하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느냐에 따라 일어 습득 내용에 큰 차이가 난다. 앞에서 언급한 ‘一이냐 八이냐’, ‘나는 平氣다’ 같은 번역에는 이런 연령차, 개인차에서 온 것이다.
  앞으로 10~15년 후에는 한·일어의 ‘2개 국어 통’들이 거의 없어질 것이고 일어를 각별히 공부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2개 국어 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전에 그렇게 성행했던 중역 문제도 일단 해소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중역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한사전이다. 수많은 영한 콘사이스 사전이 쏟아져 나왔고 최근에는 대사전만 해도 5종이 나왔다.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을는지 몰라도 거의 대부분의 사전이 영일(英日)사전을 대본으로 삼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오역, 졸역뿐만이 아니라 중역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부터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어의 소유격 ‘の’가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져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와 벨기에의 국경에’의 ‘의’ 같은 것이다. 이 ‘의’는 우리말에서는 부자연하다. ‘우리 학교 캠퍼스’지 ‘우리 학교의 캠퍼스’가 아니다. 이것이 일본에서는 반대이다. ‘我が學校の キャムパス’지 ‘我が學校 キャムパス’가 아니다. ‘Liverpool kiss’가 ‘입에의 일격’으로 되어 있는데 일어의 ‘口ヘの 一擧’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입에 가한 일격’ 쯤이면 될텐데. 또 ‘a matter of money’가 ‘금전의 문제’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도 ‘금전 문제’가 자연스럽다. 물론 일어에서는 ‘金錢の問題’이다.
  다음에 눈에 띄는 것은 일어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영어 자체의 구조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것들인데 ‘on, about, as, to’ 등의 전치사와 수동태의 ‘by~’ 구문이 지독히 충실하게 옮겨진다는 것이다. immune from(to) smallpox가 ‘천연두에 대해 면역성이 있는’으로 되어 있는데 이때도 ‘대해’는 필요 없을 것 같다. The mob was kept back by the police. ‘폭도는 경찰에 의해서 제압되었다’로 되어 있는데 이때에도 ‘의해서’는 필요 없다. ‘He hired out as a photographer.’ ‘그는 사진 기자로서 취직했다.’ 일어에서는 ‘寫眞家として就職した’로 되어 있어 이 불필요한 ‘-서’가 붙은 것 같다. ‘informed consent’는 ‘(醫)고지(告知)에 의거한 동의(同意)≪수술이나 실험적 치료를 받을 경우 그 상세한 것을 알고 난 후에 환자가 하는 동의≫’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뒤의 설명과 같이 수술에 따르는 있을 수 있는 위험을 의사가 설명해 준 다음 환자가 그 수술에 동의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꼭 맞는 우리말 찾기가 힘들다. 영일사전에는 ‘[醫]先知に基づく同意≪手術や實驗的療をうける場合, その詳細を知らされたうえ之で患者が與える同意≫’로 되어 있다. 어차피 說明調로 할 수밖에 없을 바에는 차라리 ‘告知後同意’라는 말을 만들어 놓고 뒤에 괄호를 치고 설명하는 것이 어떨까. 실지로 병원에서는 어떤 용어를 쓰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동의를 나도 수술할 때 해 본 일은 있지만.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전문 용어를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도 ‘基づく’가 ‘의거한’이 되고 ‘實驗的 治療’가 ‘실험적 치료’로 된 것들이다. ‘고지에 의거한 동의’라는 우리말과 ‘실험적 치료’라는 우리말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중역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다음은 일본에서 만들어 쓰는 말을 그대로 옮겨서 쓰는 것들이 많은데 이것은 비단 번역에서만 문제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우리글의 문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horse collar’는 ‘競技’ ‘영패(零敗):≪야구俗≫ 무득점’이라 풀이되어 있고 ‘horse-collar’는 ‘vt.≪야구俗≫ 영봉(零封)[완봉]하다’로 되어 있는데 이 ‘零封’이란 말은 실제로 야구 경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일본에서 직수입한 말이 아닐까 궁금하다. 기껏 ‘horse collar’에서 ‘영패’라고 했으면 horse-collar도 ‘영패시키다’면 안 될까.
  가격파괴(價格破壞)’니 ‘사별남(死別男)…홀아비’ ‘도세(盜稅)…세금도둑’ ‘식견국(食犬國)…개고기 먹는 나라’ ‘초극세(超極細)…매우 세밀한’ 등의 신조 한자구는 저항감을 줄 정도를 넘어서 실소를 일으킬 정도다. 이런 문구들이 영한사전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비슷한 신조어들이 영한사전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말이다.
  우리 낱말은 70~80퍼센트가 한자어로 되어 있고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고유한 우리말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문장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영한사전에도 이런 고유한 우리말들이 번역어로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uneasy’는 ‘불안(不安)한, 근심되는, 불안에서 생기는, 편하지 않은’ 등으로 되어 있고 예문으로 나와 있는 ‘uneasy dreams’는 ‘불안한 꿈’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꿈자리가 불안하다’라고 하기보다는 흔히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라 한다. 그런데 ‘uneasy’의 번역어로는 ‘뒤숭숭하다’가 나와 있지 않다. 또 ‘resolute’는 ‘a. 굳게 결심한, 단호한(determined)’이라고 되어 있지 우리말 ‘어기찬’은 들어 있지 않다. ‘They presented resolute objections against his appointment’. ‘그들은 그를 임명하는 것에 어기차게 반대했다’를 ‘어기차게’ 대신 ‘단호하게 ’, ‘결정적으로’로 하면 글의 맛이 어떻게 달라질까. 또 ‘wretched’는 ‘a. 비참한, 불행한, 참으로 불쾌한, 아주 싫은, 누추한, 초라한’으로 번역되어 있고 그 예문으로 ‘What wretched weather!’가 ‘아주 고약한 날씨로군!’으로 번역되어 있다. ‘고약한 날씨’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라고 새길 수도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을씨년스러운’이 번역어 중에 들어가야 한다. 또 ‘loose translation’은 뭐라고 번역할 것인가. 사전에는 ‘loose’에 ‘마음이 해이한, 산만한, 부정확한’이라는 역어밖에 없다. 그러면 ‘loose translation’은 ‘산만한 번역’ 또는 ‘부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엉성한 번역’이라고 하면 어떨까. 우리는 어떻게 사전의 영향을 받아서 ‘endeavor’는 ‘노력하다’, ‘ambiguous’는 ‘애매한’, ‘associate’는 ‘교제하다’, ‘devotedly’는 ‘헌신적으로’, ‘thoroughly’는 ‘철저하게, 완전하게’ 식으로 머리속에 넣고 있기 때문에 이 낱말만 나오면 거의 자동적으로 이 번역어를 떠올린다. 이것을 ‘노력하다’는 ‘애쓰다’로, ‘애매한’은 ‘아리송한, 알쏭달쏭한’으로, ‘교제하다’는 ‘어울리다’로, ‘헌신적으로’는 ‘애오라지’로, ‘철저하게’는 ‘속속들이, 깡그리’로 하면 훨씬 우리말다워질 수가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은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몰라서 넣지 못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late bloomer’는 ‘n. 만성형(晩成型)의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늦깎이’라는 고유한 우리말을 넣어야 할 것이다. ‘what-do-you-call-it[-them, -her, -him]’이 ‘n. 뭐라든가 하는 것[사람]≪이름을 모르든가, 잊었든가, 사용하고 싶지 않을 때 따위에 대용하는 말≫’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거시키’라는 우리말을 넣어 주어야 한다. “The vessel lies sunk in dozens of fathoms.”가 “그 배는 수십 패덤 밑에 가라앉아 있다.”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그 배는 수십 길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다.’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우리의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의 길이고 fathom은 6feet니까 길이의 절대 단위로서는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라는 말에서처럼 ‘길’은 수심을 나타내는 말로 위의 예문의 ‘dozens of fathoms’처럼 정확한 길이를 나타내지 않은 경우에는 ‘수십 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well-balanced, well-matched ‘걸맞다’, too often, easily ‘걸핏하면’, compare ‘견주다’, wench ‘계집질하다’, persistent ‘끈덕지다’, abrupt ‘느닷없다’, important ‘대수롭다’, a matter of no importance ‘대수롭지 않은 일’, repeatedly ‘두고두고’, smolder ‘(원한이) 맺히다’, shape ‘모양새’, figure ‘몸매’, draft ‘실바람’, scratch ‘생채기’ 등의 보다 우리말다운 우리말들이 사전에 들어가야 한다. 필자는 2년 이상 걸려서 의당 번역어로 들어가야 할 텐데 들어가 있지 않은 우리말들을 찾아보았는데 지금 까지 12,000단어 정도가 수집되었다. 앞으로 더 찾아 나가겠지만 이런 우리말들이 사전에 나오고 그 말들이 번역에 씌어진다면 그 번역은 자연스러운 명역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영한사전에는 앞으로 시정해야 될 여러 문제들이 많지만 우선 본고에서는 적절한 우리말을 찾아서 넣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번역하는 사람들도 한자에서 온 우리말을 가급적 고유한 우리말로 다듬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고치거나 따로 넣고 싶은 말들을 사전에서 추려내서 참고로 제시한다.
wall-poster n.[중국]벽신문 → 대자보
evacuate vt.(대변을) 배설하다 → (대소변을) 누다
fathom vt.(사람의 마음 따위를) 추량(推量)하다 → 떠보다
make ducks and drakes of … 물처럼 낭비하다 → 물 쓰 듯하다.
rage vi.사납게 날뛰다 → 미쳐 날뛰다
let up (비가) 덜해지다 → 뜨음해지다
He felt himself at home. 편히 쉬었다 → 마음이 편했다.
Please make yourself at home. 편히 쉬십시오. → 편히 하세요
nip and tuck 막상막하로, 비등하게 → 아슬아슬하게
neck and neck game 아슬아슬한 승부
snarl vi.딱딱거리며 말하다 → 딱딱거리다
lose in the telling 사실은 이야기보다 적다 → 이야기는 사실보다 줄어들기 마련이다.
The night was far advanced. 밤이 깊어 갔다. → 밤이 아주 이슥해졌다.
compulsion: by compulsion 강제적으로 → 강제로, 우격(다짐)으로
upon[under] compulsion 강제 당하여 → 강제로,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He sipped (up) his coffee. 커피를 조금씩(음미하며) 마셨다. →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sauce n. 소스:(비유) 맛을 내는 것 → 맛난이
swagger vi. 뽐내며 걷다, 허풍 떤다
The bully swaggered about. 그 개구쟁이가 어깨에 힘을 주고 뽐내며 돌아다녔다. → 그 망나니가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녔다.
dangle: He is always dangling after [round, about] her. 언제나 그녀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주위에 붙어 다니고 있다]. → 언제나 그녀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다.
ladies’man 여자와 사귀기 좋아하는 남자 → 난봉꾼, 바람둥이
lose one’s temper 울화통을 떠뜨리다 → 성깔을 부리다.
ill-omened 불길한, 재수 나쁜, 불운한
  ex. Don’t talk such an ill-omened thing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말아. → 그런 방정맞은 소리를 하면 못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