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산책】

국어사전과 국어 순화

이수열 / 국어 순화 운동가


Ⅰ. 국어사전은 모름지기 국민이 언어생활에서 부딪치는 상식적인 문제에서부터 심오한 학문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문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풀어 주는 민족 문화의 보고이어야 하는데, 슬프게도 우리에겐 그런 것이 없고 지금 나도는 크고 작은 국어사전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이 왜곡된 지식을 망라해 놓고 뒤져 보는 사람에게 그릇된 지식을 제공해 국민의 지적 수준을 추락시키고 겨레의 슬기를 죽이고 있어, 마치 만 가지 병을 담은 주머니를 메고 다니면서 괴질을 인간 세계에 전파하는 마왕을 연상켜 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 많은 사전 중에서 방대한 규모나 편자의 명성 등 모든 점에서 국어사전을 대표하는 이희승 편저 “국어 대사전”(1982)에 들어 있는 일부 문제점을 밝히고 바르게 고쳐 보았다. 넓은 바닷가에서 주운 몇낱 조약돌만한 분량이지만, 국어사전을 새로 만들 사람이 필자가 낸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와 대조해 살펴보면 참된 사전을 만드는 길잡이가 되고, 이미 만든 사람에게는 그것을 재검토해서 오류를 고치는데 지침이 될 것이다.



          2.1. 변태 서술어

  공식 문법 용어가 아니고 국어 본래의 용법에 어긋나게 표현한 서술어에 붙인 필자의 표현.
모임 「명」 여러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한 곳에 모이는 일. 회(會). ㅖ) ① ~에 참석하다/② ~을 갖다
  예문 ②가 국어를 망치는 주범의 하나다. 우리말에서는 원래, 일, 사랑, 싸움, 놀음, 장난, 잔치, 회의, 의논, 의식, 세배, 절, 이별, 재회, 농사 등 온갖 것이 ‘하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었는데, 국어가 영어에 오염하면서 ‘갖는 것’이 되어 모임도 ‘갖는’ 우스운 꼴이 되었다.
  ‘자주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하자’, ‘동창생들이 모였다’고 하는 것보다 ‘자주 만남(모임)을 갖자’, ‘모임을 갖고 이야기하자’, ‘동창생들이 모임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 더 뜻깊고, 품위가 있고, 문화적인가?
  원래 탐욕이 없고 평화를 사랑한 우리 조상은 이 세상 온갖 것을 신이 창조한 신성한 것이어서 함부로 차지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 자신에게 속한 것조차도 가졌다고 하지 않고, ‘나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내게 땅 마지기나 있다’ ‘재산이 좀 있다’ ‘돈푼이나 있었는데 다 없어졌다’고 했는데, 이제는 탐욕스럽고 싸우기 좋아해서 세상 온갖 것을 다 차지해(take), 가지기(have)를 즐겨, 가족이나 재산 같은 유형적 존재나 정신으로 하는 온갖 행사도 갖고(have), 심지어 자연 현상(눈, 비, 바람 등)까지 ‘We had much rain last summer’라고 하는 족속들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며 그 앞에서 아첨하여,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겨레의 얼이 깃든 소중한 말을 쉰 떡처럼 버리고, 물질적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딸을 갖고, 잔치(party), 모임, 기자 회견, 정상 회담, 입학식, 졸업식, 기념식, 모내기 행사, 준공식, 직업, 지위, 벼슬자리, 권력 등 온갖 것을 갖고, 탐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야만족들이 생겨났다.
노출(露出) 「명」 밖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냄. ㅖ) 가슴이 ~되다. -하다 「자」「타」「여변」
  뜻풀이와 품사 규정 「자」「타」을 보면 예문은 ‘가슴이 노출한다(드러난다) 자동사’와 ‘가슴을 노출한다(드러낸다) 타동사’같이 표현해야 옳은데 영어의 물주구문(物主構文)을 직역한 피동문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만들어 놓아서 신문, 방송, 위정자, 교수, 작가, 대학생 등 모든 지식인들의 말에 철저히 오염해 본래의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피선거권(被選擧權): 「명」 「법」 선거에 의하여 당선될 수 있는 권리.
                                                                          ㉠
 당선(選擧): 선거에서 뽑힘 -하다. 「자」「여변」
                                        ㉡
  ㉡을 보면 ㉠을 ‘선거로(선거를 통해) 당선할 수 있는 권리’라고 고쳐야 한다. ‘선거에 의하여’는 ‘by election’을 직역한 병적 표현이다.
  대통령(大統領) 「명」 공화국의 원수.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되거나, 국회 또는 기타
기관에 의하여 간접으로 선출됨.
              ㉠
 선출(選出) 「명」 여럿 가운데로 골라 뽑아냄. -하다 「타」「여변」
                                                                                 ㉡
  ㉡에 비추어 ㉠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거나, 국회나 기타 기관에서 간접적으로 선출함.
 보호 관찰(保護觀察) 「명」 ③ 사회 보호법에 따라 보호 감호소의 출소자 또는 치료 감호소 이외의
장소에서 치료받기 위해 친족에게 위탁된 자에 대하여, 경찰이 실시하는 보호 처분의 하나.
                                            ㉠
 위탁(委託) 「명」 ① 맡기어 부탁함. -하다 「타」「여변」
                                                     ㉡
  표제어 설명문 ③이 하도 이상해서 잘못 베꼈나 하고 여러 번 대조해 봤으나, 슬픈 일이지만 사전에 이렇게 실려 있다. 내용을 고치는 일은 죄송하지만 독자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에 맞춰 ㉠을 ‘친족이 위탁한 자’로 고친다.
 보호관찰법(保護觀察法) ③ ……. 일정한 장소의 출입 금지, 특정 물품의 사용을 금지시킬 수 있음.
                                                                                                                    ㉠
 금지(禁止) 「명」 어떤 짓을 말려서 못하게 함. -하다 「타」「여변」
                                                           ㉡
  ㉡을 적용해 ㉠을 다음 같이 고쳐야 한다.
  일정한 장소에 출입을 금지하고 특정한 물품 사용을 금지할 수 있음.
  ※ ‘일정한 장소의’, ‘물품의’의 ‘의’는 일본 말의 속격 조사 ‘の’를 직역한 것임.
 보호 관찰(保護觀察) 「명」 「법」 …… 가정 법원 또는 지방 법원 소년부의 심판에서 보호 관찰에
                                                                     ①
부쳐진 소년에 대하여 행해짐.
   ②                            ③
  → ① 가정 법원이나, ‘또는’은 ‘or’를 흉내낸 표현
       ② 부친
       ③ 행함
    ‘부쳐진’, ‘행해짐’은 ‘되다’와 병렬하는 영어투 피동형.

변화(變化) 「명」 ① 사물의 형상, 성질 따위가 달라짐. ② (언) 동일한 말이 용법(用法)에 따라 어형(語形)를 바꾸는 일. - 하다 「자」「여변」
변하다(變一) 「一」「자」「여변」 ① 사물이 전과 다르게 되다. 바뀌다. 달라지다. ㅖ) 거리의 모습이 ~. ② 사람이 마음·성질·취미·습관· 따위가 달라지다. 바뀌다. ㅖ) 변하기 쉬운 세상 인심. ③ 세월이 달라지다. 세태가 바뀌다. ㅖ) 시대가 변한 탓. 「二」「타」 어떠한 것을 다르게 고치다. 새롭게 하다. 변경하다. ㅖ) 안색을~.
  표제어 ‘변(變)하다’의 풀이를 볼 때, 표제어 ‘변화(變化)’는 명사로만 쓰고, ‘變化한다’는 동사로 쓸 필요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조어법(造語法)에도 어긋나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 국어에서 ‘민주’, ‘도시’, ‘고속’, ‘미(美)’, ’악(惡)’처럼 ‘한다’를 붙여서 동사를 만들 수 없는 말은 ‘化한다’를 취해서 ‘민주化한다’, ‘도시化한다’, ‘고속化한다’, ‘미化한다’, ‘악化한다’ 등은 동사가 되지만 ‘가속(加速)’, ‘감속(減速)’, ‘개방(開放)’ 같이 ‘한다’를 취해 ‘가속한다’, ‘감속한다’,‘개방한다’처럼 동사가 될 수 있는 말이나 ‘비대(肥大)’, ‘황폐(荒廢)’처럼 ‘하다’를 취해 형용사가 되는 말에는 ‘化하다’를 붙이면 말이 안 되는 것인데 명사 ‘변(變)’에 ‘化한다’를 붙여 쓰는 법을 사전에다 실어 놓으니까 ‘변화한다’에서 ‘변화시키다’, ‘변화된다’, ‘변화되어진다’ 등 괴상망측한 말들이 쏟아져 나와 국어 생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앞에서 ‘變化’를 명사로만 써야 한다고 한 것도 원래 광범하게 쓰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허용하는 것이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변(變)’에 ‘化’를 붙이지 말고 ‘변이 생겼다’, ‘이 무슨 변이냐? 변은 무슨 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처럼 쓰는 게 더 자연스럽게 두 음절 대신, 한 음절만 쓰는 데서 오는 간결미가 현저하기 때문이다.


          2.2. 일본 말을 흉내낸 말

내란죄(內亂罪) 「명」 정부를 쳐서 뒤집어 엎으려 하거나, 국토의 한 지역을 함부로 차지하여 독립을
      ㉠
꾀하거나, 그 밖에 헌법을 문란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성립하는 죄.
외환(外患)의 죄 「명」「법」 국가의 대외적 지위를 침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
        ㉡
  성분 간의 주·종의 자리를 바꾼 일어투 표현인 ‘내란의 죄’, ‘외환의 죄’는 표제어 ‘내란죄’와 같이 ‘외환죄’라고 고쳐야 한다. 이런 표현은 일본 말 ‘內亂の罪’, ‘外患の罪’를 그대로 흉내 낸(직역한) 것이다.
 보호주의(保護主義) 「명」 ① 「경」 보호 무역 실현을 주장하는 사상 그 운동.
                                                                 ㉠                              ㉡
  널리 만연해서 고질이 된, 일본 말 닮은 글의 대표적인 예이다.
  ㉠은 일본 말에서 목적격 조사 を(국어 ‘을’에 해당)를 쓸 자리에 즐겨 쓰는 속격 조사 の(국어 ‘의’에 해당)를 흉내 낸 것이고 ㉡은 한문에 쓰는 접속사 及을 일본 사람들이 ‘および(及び)라고 번역해 쓰는 것을 흉내 낸 것으로, 글을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입으로 말할 때는 이렇게 못할 것이다. “독서와 영화를 즐긴다”는 말을 “독서 및 영화를 즐긴다”거나 ‘철수와 영남이를 데리고 간다’는 말을 “철수 및 영남이를 데리고 간다”고 하면 듣는 사람이 “돈 사람”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及이 過猶不及에서는 ‘미친다’는 동사지만 予及汝偕亡에서는 접속사니까 ‘와’로 해석해야 하는데, 일인(日人)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및’이라고 해석해서 언(言)과 문(文)을 괴리(乖離)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국어 어디에 동사의 어간을 축약해서 다른 품사를 만드는 법이 있나?
  ‘고치다→곷’, ‘가르치다→가릋’, ‘마치다→맟’, ‘기르다→길’이 하나도 성립할 수 없듯이, ‘미치다→및’도 성립하지 못한다.
  위 주제어 설명을 정상 국어로 고치면 다음과 같다.
    ●보호 무역 실현을 주장하는 사상과 그 운동
    ●보호 무역을 실현하자고 (실현할 것을) 주장하는 사상과 그 운동
보 은(報恩) 「명」「지」 충청북도 보은군의 군청소재지, 속담: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의 뜻 ㉠ 가을비는 농가로서는 반갑지 않다.
  이 서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격격 조사 ‘로서’는 일본 말‘……として’를 흉내 낸 말이다. 국어답게 말하려면 ‘가을비는 농가에 반갑지 않다’고 해야 한다. 이 표현도 널리 퍼져서 ‘나는 모르는 일이다’를 ‘나로서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를 ‘나로서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 도처에서 들린다.
  민족주의 문학(民族主義文學) 「명」「문」 사회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에 의거한 문학.
                                                                                ㉠
우리나라에서는 1908-19년에 최남선·이광수 등에 의하여 형성됨.
                                                                       ㉡
  ㉠은 일본말 ‘~としての’를, ㉡은 영어 ‘by/구문(句文)’을 직역한 기형어여서, 문장 전체가 기형문(畸形文)이 됐다. 각각 다음 같이 다시 써야 정상 국어가 된다.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삼은 사회 운동 문학
    ●최남선과 이광수가 형성함
  연출(演出) 「명」 「연」 각본(脚本)을 기초로 하여 연극 또는 영화를 조성하는 각 요소. 곧 배우의 연기·
                                                                               ㉠
무대 장치·세트·조명·음악·의음(擬音) 등을 종합 통일하여 무대 위에서의 상연이나 영화 제작을 지도 하는 일.
                                                                                         ㉡
또 그 사람. -하다 「타」「연변」
  ㉠은 영어 ‘or’를, ㉡은 일어 ‘……~の’를 직역해 모방한 것
    ●연극 또는 영화를 → 연극이나 영화를
    ●무대에서의 상연이나→무대 상연이나
    ●무대에서의 상연이나 영화 제작을 →무대에서 상연하는 일이나 영화 제작하는 일을
국방(國防) 「명」 ② 「외적의 침략에 대한 군사력에 의한 방어.」「근대 국가에 있어서는
                                                                   ㉠                                  ㉡
현실적인 위협의 유무에 불구하고 국가의 독립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과 체제를 말함.
  ㉠은 영어 ‘by 구(句)’를, ㉡은 일어 ‘……においては’를 흉내 낸 기형구
  「」→ ●외적의 침략을 군사력으로 방어하는 일
    ●근대 국가에서는, 근대 국가는
보호자(保護者) 「명」 ① 약한 입장에 있는 자를 보호하는 사람.
●약한 입장에 있는 자 → ① 약한 자. ②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
  ‘입장’은 ‘처지’를 뜻하는 일본 한자어인데, 우리 정부의 최고위 인사와 장관, 대학 교수, 학생, 작가, 언론인 등이 별의별 뜻으로 쓰고, 때로는 아무 뜻도 없이 공연히, 아무렇게나 쓰는데, 잘 살펴보면, 원칙, 정책, 주장, 방침, 태도, 자세, 견해 등으로 구별해 써야 할 경우에, 그런 말도 모를 만큼 무식한 것인지, 알면서도 구별하기 싫어서 편리하게 쓰는 것인지, 뿌리 깊은 친일사대주의(親日事大主義) 근성을 청산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피상적(皮相的) 「명」 진상까지를 추구하지 아니하고 표면만을 취급하는 모양.
ㅖ) ~인 관점(觀點)/~인 해석
  ‘취급(取扱)’은 ‘처리(處理)’를 뜻하는 일본 한자어인데 위 표제어 설명에서는 그런 뜻도 아닌, 흐리멍덩한 뜻으로 썼다. 한심하다.


          2.3. 영어에 예속(종속)한 말

교수 단계(敎授段階) 「명」「교」 교수 효과(效果)를 최대로 거두기 위하여 교육자가 필요로 하는 방법상의 순서.
  ‘필요로 하는’은 영어 ‘need’의 타동사적 뜻을 무식하게 옮긴 기형적 표현이다.
●교육자가 필요로 하는 → ① 교육자에게 필요한.
② 교육자가 써야 하는.
민주 정치(民主政治) 「명」「정」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운영되는 정치.
→ ① 국민의 의사대로 운영하는 정치.
  ② 국민의 의사에 따라 운영하는 정치 …… ‘에 의하여’: 영어 by 구문 직역형.
진화론(進化論) 「명」「생」<종(種)의 기원(起源)>에 의해 체계화(體系化)된 이론.
→ 종의 기원에 따라 체계화한 이론.
으로부터 「조」 ‘ㄹ받침’ 이외의 받침 있는 체언에 붙어 ‘에서부터’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 ㅖ) ① 동~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강/② 국민~ 불신을 받는 정권.
  예문 ①은 바르지만 ②는 틀렸다. ‘국민에게서(한테서) 불신을 받는 정권’이라고 해야 한다. 표제어 ‘에게서’ 참조할 것.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 「명」 ② 한 나라 안의 소수 민족이 「다수 민족에 의한 억압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구하는 운동」
  「」 부분에서 영어투 ‘에 의한’, 영어투와 일어투를 합친 ‘로부터의’를 다 없애 버리고 국어답게 고치면, 다음과 같이 된다.
  ① 다수 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운동
  ② 다수 민족의 억압을 물리치려는 운동
엄폐부(掩蔽部) 「명」「군」 군인과 무기를 적탄(敵彈)에서 막아 내기 위하여 마련한 설비.
  Facility to protect soldier and arms from enemy's bullet을 직역한 말투인데, 그나마도 표현 수준이 말이 아니다. ‘군인과 무기가 적탄에 맞지 않도록(적탄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시설이나 지형지물(地形地物)’이라고 하면 되겠다.
방위 기제(防衛機制) 「명」「심」 인간이 적응하기 곤란한 상황이나 *파국(破局)에서 면하려고 자기를 방어하는 방법의 기본적 기제.
  * 부분은 from disaster를 직역했기 때문에 상식에 어긋나는 표현이 됐다. ‘면한다’가 타동사니까 ‘파국에서’를 ‘파국을’로 고쳐야 한다.
은폐부(隱蔽部) 「명」「군」인원과 전투 기술·기재 등을 적의 감시·화력으로부터 은폐할 수 있는 곳.
  철저한 영어식 문장이다. 따라서 이는 ‘인원과 전투 기술·기재 등이 적의 감시와 화력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고쳐야 한다.

  이쯤되면 국어사전이 아니라 기형어(畸形語) 사전이라고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필자가 이렇게 지적하는 것을 가리켜 시대 변천에 따라 대중적으로 변하는 언어 현실을 무시하는 짓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 언어 현실이 선진 사회에서 후진 사회로 흘러든 문화 현상이기 때문에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고 한다.
  언어가 시대 변천에 따라 변하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마는 건전하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진행하는 언어 변화는 더 편하고, 아름답고, 논리적으로 닦여서, 겨레를 슬기롭게 하는 것이지, 앞에 지적한 것처럼 거북하고, 더럽고, 이치에 어긋나서 이런 표현을 글로 쓰는 사람조차도 제 가족이나 이웃끼리 말할 때는 도저히 쓸 수 없는 흉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오늘 우리 국어를 더럽히는 기형잡어(畸形雜語)들은 언어 대중의 힘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 대중 속에서 빠져 나와 현대판 사대주의 귀족이 된 속물들이 솜씨 없이 아무렇게나 빚어 놓은 추물(醜物)이다.
  말을 꺼내면, 남이 알아듣건 말건 의례, ‘자고로, 미상불, 옥체미령, 유만부동, 일언이 폐지하면’ 따위 문자를 엮어서 유식을 과시하고 자기 만족에 도취해 거드름 피우던 덜떨어진 선비들처럼, 현대판 귀족들은 순수한 우리말을 쓰면 촌스럽고 무식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뜻도 잘 모르는 한자어를 맞지도 않는 경우에 아무렇게나 쓰고, 일어·영어투로 된 말을 골라 쓰면서 자신이 유식한 줄 안다. 그래서 대통령의 담화문이나 연설문, 아나운서의 방송말, 언론인들의 보도 기사와 논설, 교수들의 논문, 각급 학교 교과서, 유명 작가들의 소설, 수필, 시, 법조문, 연극 대사 등에 이 추물이 골고루 파고들어 국어의 오염도는 바야흐로 낙동강, 영상강의 오염 수준을 무색하게 한다.
  수용해야 할 유입(流入) 문화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그 무식함과 비굴함이 너무 더러워서 진저리가 난다. 국어사전에 실린 각 분야의 학술 용어들은 근대사에 낙오한 우리가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첨단 과학이 남을 뒤따라가는 형편이므로 수용해야 할 것이 많다. T.V, 컴퓨터, 핵 기술 용어 등 물질 과학에 속하는 단어나, 민주, 자유, 평등, 박애 등 인권 존중 사상이나 인류의 복지를 향상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공헌한 위인들의 거룩한 정신은 국적이나 종족을 가리지 말고 수용해서 문화 선진국을 이룩하는 밑천으로 삼아야 하지만, 우리말의 특유한 표현 구조를 파괴해서 남의 말 구조에 맞춰서 말하기 힘들고 듣기 역겹게 만들어 놓고 좋아하는 것은 정신 이상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말의 우수성은 한글의 우수성과 일치한다. 첨단 과학이나 학술 용어, 기술 용어 말고는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온갖 말이 다 있고 통사 구조(統辭 構造)도 일어나 영어를 빌어다 보충해야 할 만한 결함이 전혀 없다. 일어나 영어 원서를 정련(精鍊)한 우리말로 번역하면 원문보다 훨씬 짧아지고 뜻이 선명해진다. 이런 특성을 모르는 무식한 학자들이 번역하면 원문보다 더 길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괴상한 사조어(私造語)가 끼어들고 문맥이 삐뚤삐뚤해서 내용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읽는 사람이 골탕을 먹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마는데, 전국 서점 책꽂이에 무수히 꽂혀 있는 유명 교수들의 번역본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국어에 만연한 독소를 시급히 일소해야 한다. 어떤 교육자는 다수 국민이 오랫동안 써서 정착한 말은 고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교육자임을 부정하고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제주도 사람들을 보라. 자기들끼리 하는 토박이말을 들으면 어느 외국어 같지만 본토 사람과 말할 때는 완벽한 표준어를 쓴다. 그런데 국어에 마치 쌀에 피나 뉘, 잔돌처럼 섞여, 학생들의 표현력 성장을 저해하고 겨레 정신을 마비시키는 영어·일어투 잡어(雜語)를 몰아내는 일을 왜 못한단 말인가?
  제주도 사람들이 표준어를 익히는데 들인 노력의 일 할만큼만 힘을 기울이면 된다. 대학을 나온 교육자들이 그동안에 영어를 배우느라고 들인 노력의 1%만큼만 노력해서 바른 국어를 익히고 학생을 가르치면 된다.
  필자는 지난 두 해 동안에 서울 시내 여덟 가지 일간지에 실린 여러 분야 인사들의 글을 교정해서 보냈는데 그중에서 많은 분들이 전화나 편지로 간곡하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한 다음에 하는 말은, 모두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나와 교수가 될 때까지, 이런 지적을 한번도 받아 본 일이 없는데 뜻밖에 신문을 통해서 이런 지도를 받으니 말할 수 없이 고맙다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국어 교육을 얼마나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했는지를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입증해 주는 말이다. 금년 들어 대통령이 ‘교육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어를 이 상태로 놔두고는 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대통령이 솔선해서 말을 바르게 하도록 노력하고 여태까지 무관심 속에 묻어 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원체 권위주의가 판치는 우리나라라 필자 같은 무명인(無名人)이 이 일을 아무리 죽도록 외쳐도 쇠귀에 경 읽기지만, 말 한마디가 모든 법보다 큰 위력을 가진 대통령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추진하면 짧은 동안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필자는 대통령의 관심을 환기해 보려고 지난 두 해 동안 무던히 애써 왔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은 방법으로, 대통령 취임사로 시작해서 신문 기자 회견 때의 연설문, 3.1절 기념사, 8·15 경축사, 신년사(新年辭), 국무 회의에서 한 연설문 등이 신문에 실릴 때마다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교정해서 “제발 일어, 영어투 섞어 쓰지 말고 대통령과 나라의 위신을 세워 달라”는 호소문을 곁들여 보내고 졸저(拙著)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도 보내 봤지만 그때마다 반응은, 박관용 비서실장 명의로 인쇄한 형식적인 편지 한 장을 거듭해 보내는 것뿐이었다. 문민정부라지만 무명인의 힘으로는 대통령의 말초 신경 하나에도 접할 길이 없다. 그러나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하면 된다(꼭 해야 한다). 종합국어대사전을 편찬하기에 앞서, 생활 국어에서 순화 대상을 빠짐없이 찾아내서 세목(細目)을 만들어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보내 실천 방안을 마련해 정책화해서 방송, 신문, 출판을 동원해 사회 교육 차원에서 실천하고, 교육부 장관은 모든 교과서의 표현을 바로잡고 각급 학교 교원을 재교육하며, 정부가 실시하는 각종 시험에서 국어를 바르게 써야 합격할 수 있도록 출제를 하는 등 성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정부는 제 나라말에 절대적인 긍지를 가지고 법으로 지키는 프랑스 정부를 본받아 국민에게 국어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지도급 인사 중에는 우리가 지극히 어려운 영어 발음을 잘 못하는 걸 보면 비웃고 자신은 국어 발음을, 우리말을 배워 쓰는 외국 사람만큼도 못하게 형편없이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남이 영어로 지은 글을 보고 국산 영어, 콩글리쉬(Konglish)라고 비웃으면서 자신은 영어식 국어(Engiean)를 써 놓고 떳떳하다. 현대판 사대주의의 극치요, 극도로 비굴한 노예 근성인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극심하다. 어린이들 같으면 고쳐 줄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고쳐 줄 수 없어서 고쳐 주지는 않고 뒤에서 흉만 보니까 그렇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으니 불쌍한 일이다.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 중에서 치밀하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은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일을 지혜롭게 생각하고, 치밀하게 계획해서, 전지전능을 발휘해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을 기르는 첫걸음이고 모든 교육의 기초 작업이다.
  이런 기초 위에서 교육 개혁을 해야 깨끗한 정치인, 건전한 기업인, 장인 정신이 투철한 기술인, 거룩한 종교인, 복지 사업가, 존경받는 교육자, 신뢰받는 의사를 길러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아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