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종합국어대사전 편찬】 |
-종합국어대사전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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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국의 사전다운 사전을
崔元植 /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같이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각종 사전의 긴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사전들은 되도록 사지 않는다. 우리말 세계 문학 사전은 물론이고 한국 문학 사전도 아직도 없이 버티고 있는 부끄러운 실정이다. 그런데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그 사전들을 만들어 낸 이들이라고 나는 강변하고 싶다. 관점의 균형, 전체의 체계, 서술의 요령 등은 차치하고 도대체 生沒연대를 비롯한 기본적인 사실들이 틀린 것이 허다하니 다른 나라 사람이 볼까 두렵다.
그 가운데 가장 딱한 것이 국어사전이다. 나는 집에서는 李熙昇 선생, 연구실에서는 李基文 선생의 사전만 가지고 버티다가, 요즘에야 궁리궁리 끝에 한글 학회에서 펴낸 개정판 큰 사전을 큰맘 먹고 구입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사전도 내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내가 국어사전을 끼고 독서할 경우는 대개 舊韓末에서 일제 시대의 작품을 읽을 때인데, 참으로 그 시대의 작품에서는 모를 말이 너무 많다. 확실히 해방 이후 등단한 작가들, 특히 요즘 작가들은 어휘력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서 사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제 시대 작가들보다 자칭 모국어 세대라고 떠들어대는 해방 이후 작가들의 어휘력이 오히려 풍부하지 못한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국어사전 편찬자들도 일단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전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풍요로운 우리말들이 사전에 오르지도 못한 채 사장됨으로써 그 전승이 끊어지는 데 일조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종합국어대사전에 간절히 바라기는 먼저, 해방 이전 작품들에서 우리가 허다하게 만나게 되는 그 풍부하게 살아 있는 우리말 어휘들이 가능한 널리 수록됐으면 하는 것이다. 작품을 읽다 모르는 말이 나와서 국어사전을 찾았는데 ‘역시나 또 누락되었군’- 이런 낭패감을 다시는 맛보게 되지 않기를! 일제의 가혹한 국어 말살 정책 속에서 모국어의 최후의 수호자로서 자기의 명예로운 임무를 눈물겹게 수행했던 이 작가들의 작품 속에 보석같이 박혀 있는 우리말을 살뜰히 갈무리하는 사전 편찬자의 아름다운 자세를 기대한다.
특히 월북 문인들의 작품에 대해서 더욱 유의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1988년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解禁 조치는 정말 잘한 일이다. 북한 문학사가 공개되면서 분명히 확인된 바이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놀랍게도 북한에서도 배척되었으나, 월북 문인들은 휴전선을 떠도는 외로운 혼령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반세기만에 우리 독자의 품안에 돌아온 월북 또는 在北 문인의 작품들도 자상히 검토함으로써 종합국어대사전이 옹근 의미에서 우리말의 진정한 寶庫로 되기를 바란다.
또한 어원을 될수록 밝혀 달라는 것이다. 문명국의 기준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어원사전의 존재 여부라고 하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는 걸핏하면 ‘반만 년의 찬란한 문화 민족’을 내걸지만 창피하게도 제대로 된 어원사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은 그 민족의 언어가 하나의 문화사적 부피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매, 여기에 그 민족의 세계관적 깊이가 示顯되는 것이다. 국문학도가 국어학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는 어휘론 또는 어원론인데, 寡聞한 탓인지 우리 국어학계는 이 분야 연구가 부진한 것 같다. 웬일인지 우리말을 외국이론의 실험 대상으로만 삼는 연구가 국어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듯 싶어 솔직히 그러한 학문 풍토가 못내 아쉽게만 여겨진다. 국어사전의 수준이 지금까지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한 것도 이러한 데 말미암을지 모르겠다.
나는 얼마 전 古書房에 갔다가 조선어 학회에서 간행한 <한글>지를 몇 권 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문인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는 점인데, 趙芝薰의 “어원소고”(한글, 1939, 12)는 특히 유익했다. 그는 여기서 절[寺]의 어원을 불교의 신라 전래에 관련한 ‘三國遺事’의 기록에서 찾았다.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와서 一善郡의 毛醴의 집에서 포교를 시작했다는 대목을 근거로 바로 모례가 절의 어원임을 해박한 지석을 바탕으로 고증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 말이 변천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毛醴[털예] > 털 > 덜 > 절
이 설의 신빙성 여부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거니와, 나로서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인도, 중국, 한국, 일본으로 번져 나간 불교사를 말을 통해서 상상 여행하는 즐거운 경험을 맛보았던 것이다. 이 점에서 어원 연구를 비전문가에게 맡기지 말고 국어학자들이 본격적으로 고구해 줄 것을 강력히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외래어 표기에 대해 한마디하겠다. 우리 외래어 표기에서는 非영어권에서 두루 나타나는 硬音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경음도 모두 澈音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우리 외래어 표기가 영어권에 종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원음주의에 철저히 충실한 것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보려는 세계화에도 걸맞는다는 점에서 재고를 요구하고 싶다.
모쪼록 새로 나올 종합국어대사전이 그야말로 면모를 일신해서 우리가 문명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문외한의 妄論을 너그러이 용납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