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종합국어대사전 편찬】

-종합국어대사전에 바란다.-

통일 시대의 민족문화 창달의 길잡이가 되길

安三煥 /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평소에 많은 시간을 번역에 할애하고 있는 나에게는 국어사전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나는 국어사전을 잘 찾지 않는다. 사전을 찾기가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찾아봤자 필요한 정보가 없을 때가 많아서이다. 사전을 찾으면 무엇인가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는 기쁨이 있어야 할 텐데, 대개는 실망스럽고 짜증이 나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선진국 진입과 세계화를 운위하고들 있지만, 우선 쓸 만한 국어사전 한 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또한 민족문화 창달의 기본 바탕이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듣자 하니,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종합국어대사전”(가칭)의 편찬을 계획, 현재 이를 위한 각종 기초 연구와 원고 집필 준비 작업을 동시에 진행 중이라 한다. 평소 국어사전에 대해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을 느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로 편찬될 “종합국어대사전”에 대한 소망을 몇 자 적어 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의 일반적인 취약점은 표제어의 설명만 있고 용례가 없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편찬자가 임의로 작물을 한 듯한, 연대와 출처가 불명확한 용례들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정곡(正鵠)’이란 표제어를 보면, “① 과녁의 한 가운데의 점. ② 꼭 바르고 없어서는 안 될 목표, 또는 핵심(核心)의 비유.”(신기철/신용철:새 우리말 큰사전)라고만 설명이 되어있어, 이 명사의 쓰임새가 어떤 지는 알기 어렵다. 즉, ‘정곡’의 뜻은 짐작할 수 있지만, 정곡을 쑤시는 것인지, 때리는 것인지, 혹은 찌르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은 사람은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다른 예로, ‘아가씨’란 표제어를 보자면,
아가씨 「명」 ① 처녀나 젊은 여자를 부르는 말. 소저(小姐)
② 손아래 시누이를 가리키는 말(김민수 외:국어대사전, 금성사)
이라고만 되어 있어, 이를테면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교포 2세나 서양 사람을 위해서는 정보가 아주 부족하다. 이 사전을 그대로 믿는다면, 오늘날 서울의 음식점에서 여종업원을 보고 “소저!”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 않은가!
  참고로 “독일어사전”(속칭: “그림(Grimm) 사전”)에서 ‘아가씨 Fräulein’란 표제어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Fräulein:
중성 명사(대명사로 받을 때에는 여성으로도 간주됨).
중세고지독어: freuwelin/fröuwelin/“frouwe/부인, 마님”의 축소 명사형).
(귀족 계급의)처녀. (공주까지는 안 되는)귀족의 딸, 양갓집 규수(閨秀), 귀한 집 아가씨:
 
그때 그는 그 아가씨를 찬양하여
그녀의 기사가 되겠다고 맹세했도다!
 
(“파르시팔”, 370,22)
파우스트: 아름다운 아가씨, 제가 감히
아가씨를 모셔다 드려도 될까요?
그레첸: 저는 귀한 댁 딸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아요.
안내해 주시지 않아도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괴테:12,133)
 
(Frau의 뜻이 ‘부인’에서 ‘여자’라는 뜻으로 변화됨에 따라) 처녀, 아가씨: 이봐요, 사랑스러운 아가씨!
(발터 폰 데어 포겔보이데, 49,25)
 
한 아리따운 처녀가
내 곁에 앉았었네.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난 그녀의 기사가 되고 싶었지.
(울란트, 83)
 
(짐승의) 암놈:
혈육 있는 모든 짐승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해되
(루터:창세기 6,19)
  위의 번역 인용은 지면 관계상 많은 부분을 생략해 버렸기 때문에 “그림 사전”의 참다운 모습을 전하기에는 미흡하지만, 그런대로 “그림 사전”에서 표제어의 설명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가를 대강은 제시하고 있다. 즉, 먼저 표제어의 고어 형태를 제시하여 어원을 밝히고 있고, 그 다음에는 그 표제어가 나오는 주요 원전상의 용례들을 연대순으로 밝히되, 원전들의 권수 및 면수를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그 표제어의 형태와 의미의 변천 과정을 훑어볼 수 있고, 그것이 쓰이고 있는 구체적 문맥을 살펴볼 수 있으며, 미흡할 경우에는 제시된 원전을 직접 찾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아가씨>란 말이 중세 시대, 괴테의 시대, 그리고 울란트의 시대에는 어떻게 쓰였는가를 독자는 이 사전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말 사전을 이런 식으로 편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어원학, 국어 발달사 등 각 분야의 국어국문학적 연구 성과들이 다량 축적되어있어야 하고, “용비어실천가”, “두시언해”, “춘향전” 등에서부터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겨레의 주요 언어 유산들이 거의 모두 전산 입력되어 있어야 한다.
  나라를 빼앗긴 통한 속에서, 동족상잔과 분단 체제의 아픔 속에서, 군사 독재와 산업화의 비정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국어사전 하나 변변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1838년에 그림 형제가 시작한 “그림 사전”이 보불 전쟁과 양차 세계 대전을 거쳐 독일 분단 시대인 1971년에야 비로소 무려 133년만에 완간됨으로써 마침내는 통일 독일의 문화적 디딤돌이 되었음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국립국어연구원은 부디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히 준비 작업을 해 나가기 바라며, 아울러 정치적 분단을 초월하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통일 시대의 한겨레 문화 창달의 길잡이가 될 “종합국어대사전”를 편찬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