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語 學會 事件의 實相
왜정 말 민족 운동 도미(掉尾)의 대사건
일석(一石)은 일찍이 조선어 학회 사건의 전말(顚末)을 정리하는 글 서두에서 밝힌 일이 있다.의식 고취로 민족 혁명 꾀한 고루
그동안 조선어 학회 사건을 언급함에 있어서 함흥 영생 여학교 한 학생의 일기가 발단이 되어 일본 제국주의가 몰락하려는 최후 발악으로 우리 민족에 대한 야만적 폭력 탄압이 우발적으로 파급된 양 흔히 체험적 진술이 관련자들로부터 되풀이되어 왔으나, 이 사건의 주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극로(李克魯) 박사의 기록을 검증하면 반드시 그렇지 아니함을 알 수 있다.홍원으로 끌려가 고문 취조
조선어 학회 사건 최종심 판결문에 나오는 일석의 경력 및 사상 동향인즉 이러하다.대역 내란죄로 몰아 송치
갖은 야만죄인 수사가 강행되어 마침내 조선어 학회가 유례없는 범법 행위 단체로 조작 날조된 배경과 경위를 일석은 일일이 열거하였다.최후의 12인 기소 재판 회부
치안 유지법 1조에 저촉된 대역죄(大逆罪)의 사상범 피의자 28인은 함흥 감옥 구치감 독방에 수감되었다.4단 논법의 공판으로 실형 선고
이러한 예심 결정으로 기소되어 정식 재판에 회부된 피고들은 그해 11월 말경부터 함흥 지방법원의 공판에 임하였다.이극로 | 징역 | 6년 | ||
최현배 | ″ | 4년 | ||
이희승 | ″ | 3년 6월 | ||
정인승 | ″ | 2년 | ||
정태진 | ″ | 2년 | ||
김법린 | ″ | 2년, | 집행 유예 | 3년. |
이중화 | ″ | 2년, | ″ | 3년. |
이우식 | ″ | 2년, | ″ | 3년. |
김양수 | ″ | 2년, | ″ | 3년 |
김도연 | ″ | 2년, | ″ | 3년 |
이인 | ″ | 2년, | ″ | 3년 |
장현식 | 무죄 |
민족 운동 사상 불멸의 초석
상고 이유로 변호인들은 거의 한결같이 어문 운동은 문화 운동일 뿐 정치적 독립 운동이 아니고, 사전 편찬이란 단순히 어휘를 수록하여 주석하는 작업에 불과하며, 소극적이거나 간접적인 독립의 희망이나 희구, 임원 또는 회원들의 민족주의 사상 포지만으로 독립운동을 목적하는 조직 범행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적극적인 논지를 펼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