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석 이희승 선생의 학문과 인간】
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 연구
-고전 작품 주석과 감상-
김대행 / 서울 대학교 국어 교육과 교수
Ⅰ. 고전 문학 관계 논지 개관
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 관계 논저는 “일석 이희승 선생 송수 기념 논총”에 목록이 실려 있다. 발표 시기순으로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조(時調) 기원(起源)에 대(對)한 일고(一考)(“학등(學燈)” 제2호, 1933. 11. 16.)
개성의 덕물산(德物山)에서 직접 채집한 무당의 ‘노랫가락’ 사설들을 논거로 삼아 시조의 신가(神歌) 기원설을 입론하였다. 신가 중의 ‘노랫가락’ 세 편을 자료로 삼아, 형식과 시상의 측면에서 민요 ‘노랫가락’과의 유사성을 입증한 다음, 이를 다시 시조와 대비하여 유사성을 검증하였다.
이러한 검증을 바탕으로, 신가의 노랫가락에서 민요의 노랫가락이 파생되고, 거기서 다시 시조가 형성됨으로써 시조의 기원이 이루어졌으며, 민요는 농목(農牧) 시대, 시조는 봉건 시대를 사회적 태반으로 하였기에 전자는 일반 대중의 장르가 되었으며 후자는 유한 소비 계급의 장르가 되었다고 하여 생활과 문학의 관련을 추찰하였다.
2.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해설(解說) (1)(조선일보.1935. 1. 3. 미완)
본디 연재할 계획으로 게재된 것인 듯하나 1회만 게재되고 이후는 집필되지 않았다. “일석 이희승 선생 송수 기념 논총”에도 ‘미완’이라고 적혀 있음을 본다.
1회 게재분은 ‘1. 머리말’에서 우리 민족이 민족문화 전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무지를 지적하고, 우리 문학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용비어천가>를 가리켜 ‘조선 문학의 효시’라고 하고 중국 문학만을 숭상하는 폐단을 지적함으로써 민족 문학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2. 편찬’에서는 편찬 시기가 세종24년부터 27년까지로서 한글 반포 전해에 이루어진 점을 강조하고, 편찬 동기가 이태조의 건국 정당화에 있었다는 점을 작품의 내용으로부터 추리하고, 음악과 무용을 곁들여 향유되었으리라는 점을 “악학궤범”과 “세종실록” 등의 자료로부터 추리하였으며, 제목이 용비어천가인 것은 송태조의 사적을 쓴 <용비기(龍飛記)>와 명태조의 전기인 <용비기략(龍飛紀略)>과 관련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현전하는 문헌은 효종 9년(1658)에 중간된 것이리라고 추리하였다.
3. 고전 문학(古典 文學)에서 얻은 감상(感想)(조선일보,1938. 6. 5.)
“건실 정당한 신문학을 수립하려면 우리 고전 문학의 재음미·재인식을 절대 조건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결론을 글의 첫머리에 내세움으로써 글의 성격이 전통론 및 문화 계승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실은 과거가 남긴 무엇’이므로 문학 창작을 위해서는 ‘과거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인식’과 ‘현실을 구성해 낸 필연적 조건의 추출 음미’가 필연적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고전 문학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 고전 문학의 결함으로 (1) 지나친 수식으로 과장이 심한 일, (2) 비사실적이어서 낭만주의에 기울어진 일, (3) 많이 권선징악의 재료로 삼은 일, (4) 관념적이어서 박력이 적은 일의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장점으로는 (1) 리듬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서 이것만으로도 매우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일, (2) 사물을 유취하는 버릇이 많아서 어휘를 풍부히 구사한 일, (3) 막연하나마 조선적 이데아의 주류가 흐르고 있는 일의 세 가지를 거론하였다.
현대의 작품 창작은 우리 고전 문학의 이러한 장단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방향으로서 내용적 검토와 형식적 음미의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내용적 검토는 과거의 문학에 담겨 있는 우리 선인들의 고유한 생활의 상징성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감정 습속의 주류를 우리의 것으로 해야지 ‘직역적 외래 정서’에 빠져 들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형식적 음미는 ‘혼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언어는 의미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며’, ‘적재적소’의 언어일 때 예술의 혼이 형성된다고 강조하였다.
4. 가사(歌詞) ‘토끼화상’의 해설 (“문장” 제1집, 1939. 1.)
글의 편차는 1. 개제(開題), 2. 토끼전과의 관계, 3. 원가(原歌), 4. 문구 해석1)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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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조선 문학 연구 초”에 수록될 때는 ‘어구 주해’로 바뀐다. 다른 글에서도 ‘자구 해설’, ‘해설’, ‘어구 주석’ 등 다양하게 쓰인 소제목을 책으로 묶으면서는 ‘어구 주해’로 하여 통일을 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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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으로 되어 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개제’에서는, 우리 문학에 끼친 중국 문학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나무꾼이 하는 노래에도 중국의 시문과 고사가 많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점과 노래가 구전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노래말이 바뀌고 의미가 변하는 예가 많음을 지적하였다.
한편으로는, 비록 중국 문학의 영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반이 되는 생활과 정조는 민족 고유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다만 그 원전이나 의미는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런 전제를 내세웠기에 주로 한자어의 주석이 이루어지는 기반이 마련된다.
‘토끼전과의 관계’에서는 <토끼전>을 가리키는 다른 제명(題名)들을 소개한 다음, 이야기 첫머리에서 토끼화상을 그리게 되는 대목까지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판소리 <수궁가>로부터 독립되어 양식화한 가사 <토끼화상>의 관계를 밝힌 다음, 이처럼 ‘토끼화상’이 가사로 양식화되어 불리기 시작한 시기를 추리할 만한 자료가 없음을 밝혔다.
‘원가’에서는 노랫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출처는 “신구잡가” 또는 “유행잡가”를 비롯하여 기타 몇 종류의 인쇄본과 사본이라고 설명하고, 문구에 서로 다름이 있어 표준화하였음을 밝혔다.
‘문구 해석’에서는 황금대(黃金臺), 봉황대(鳳凰臺), 능허대(凌虛臺), 동정 유리 청홍연, 거북 연적, 양두화필, 백릉 설화 간지, 봉래 방장, 신농씨 백초야, 아미산월반륜토의 10항목을 주석하였는데, ‘동정 유리 청홍연’은 ‘동작(銅雀) 용미(龍尾) 청강연(膏絳&硯)’이 전승 과정에서 변한 것이 아닐까 추정한 것이 특이하다.
5. 소설(小說)과 ‘얘기책’ (“박문” 제5집, 1939. 1.)
표준어 사정 회의에서 ‘소설’과 ‘얘기책’이라는 용어를 두고 벌어졌던 논전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머리를 꺼내고 있어 일단은 용어적 관심에서 출발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주된 관심은 용어 그 자체보다는 용어에 투영된 장르의 성격을 변별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장르의 성격과 관련하여 이 용어를 규정하기 위하여 통시적인 관점에서 그 개념과 범주가 변화해 온 궤적을 밝혔다.
넓은 의미의 소설은 패관 문학과 얘기책과 소설을 포함하는 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모두 소설이며, 좁은 의미의 소설은 소설과 얘기책을 포함하는 것이고, 아주 좁은 의미의 소설은 갑오경장 이후에 나온, 창작 의도와 기술이 동원된 예술적 작품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이어 얘기책과 소설의 차이점을 살피기 위하여 얘기책의 특징으로 (1) 개인의 전기 중심, (2) 우연한 사건 취급, (3) 초인간적 이적을 많이 다룸, (4) 권선징악의 자료를 지향함 등을 들고, 소설의 특징으로는 (1) 사건 중심주의, (2) 보편 타당성 있는 사건 취급, (3) 사실주의적 경향, (4) 인생 내면의 폭로 주력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차이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주장하는 핵심은 말미 부분에서 밝히고 있다. 이른바 ‘얘기책’이라 할 수 있는 고전 소설을 읽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으되, 민족 문학의 전통을 이해하고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찾아 읽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책을 현대 소설 못지 않게 출판하는 출판업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민족 문학 전통론을 중시하는 관점이 강하게 드러난다.
6. ‘새타령’ 해설 (“문장” 제2집, 1939. 2.)
내용의 순서는 1. 머리말, 2. 원가, 3. 어구 해설, 4. 여언, 5. 속편 “새타령”의 순서로 되어 있다.
‘머리말’에서는 <새타령>의 음악적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노래가 ‘유려한 율격과 유아(幽雅)한 (情致)와 청철(情徹)한 곡조’를 지니고 있다고 극찬하고 가야금을 곁들인 음악적 분위기를 그려 내면서 그 정서적 효용을 설명한다. 이 설명은 문학적 측면보다는 음악적 측면을 집중 조명한 것으로서 일석 선생이 고전시가를 생활 문화적 자질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
‘원가’에서는 새타령의 전문을 현대어로 바꾸어 소개하고 활자본과 사본을 정리한 것임을 밝혔다. ‘어구 해설’에서는 이본 간에 차이가 나는 부분을 대조하여 보이고 있으며, 주로 한문 어구의 해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소선적벽칠월야’는 ‘후적벽부’에 근거하여 ‘시월야’로 바로잡는 것이 옳으며 ‘유복귀인서기산’은 당나라 시인 잠참(岑參)의 ‘위보가인수기서(爲報家人數寄書)’로 바로잡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등의 원전을 밝힌 말 가다듬기에 치중하고 있다.
‘여언’에서는 이 작품의 구조가 이중적이어서 ‘산림비조 뭇새들…’ 이하는 또 다른 한편으로 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앞 부분은 한문 원전에서 따온 표현으로 가득하지만 후반부는 순 우리말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앞에서 나온 새가 뒤에서 다시 되풀이된다는 점 등으로 이중적임을 지적한 구조 분석이다.
‘속편 새타령’에서는 이용기 편찬의 고대본 “악부”라는 책에 실린 또 다른 한 편의 ‘새타령’ 노랫말을 소개하고 있다. 자료의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7. 가사(歌詞) ‘소상팔경(瀟湘八景)’ 해설 (“문장” 제3집, 1939. 4.)
내용의 전개는 1. 팔경변(八景辯). 2. 원가, 3. 주해의 순서로 되어 있으되, 주로 어구의 주석에 치중하고 있다.
‘팔경변’에서는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것이 중국의 남송(南宋) 이래로 전래된 관습임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을 본따 팔경을 예찬하는 글이나 노래가 많음을 설명하였다. 이 노래는 중국의 동정호를 중심으로 한 경치를 노래한 것이어서 중국 문학이 끼친 영향의 정도를 넌지시 시사하고 있다.
‘원가’는 “신구유행잡가”에 실린 것의 철자만 고쳐 되도록이면 원문에 충실하게 한 의도를 밝히고 한자를 괄호 안에 넣었다.
‘주해’에서는 총 29항목을 주석하고 있는데, 여러 이본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을 대조하여 문맥에 맞도록 바로잡고. 그 표현의 출처인 중국 문학의 원전을 찾아 소상하게 밝혀 놓았다. 예를 들어, ‘류세는 철광하야’가 다른 책에는 ‘유셰는 쳔광하야’ 혹은 ‘뉴세쳔 광하야’로 되어 있음을 보이고, 이것이 두보의 시구, ‘전광유수풍무(顚狂柳絮隨風舞) 경박도화축수류(輕薄桃花逐水流)’ 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8. ‘강호별곡(江湖別曲)’ 해설 (“문장” 제5집, 1939. 6.)
내용의 순서는 1. 해제, 2. 원가, 3. 주해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주로 어구의 해석에 중점을 둔 글이다.
‘해제’에서는 우리 문학의 전통에서 전원에 은거(隱居)하는 내용이 뿌리 깊은데, 그런 전통은 중국 문학에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로부터 시작하여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및 왕유(王維)의 ‘전원시(田園詩)’ 등의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원가’에서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고 현대 철자법으로 표기하였으며, 원전은 “신구유행잡가“에서 가져왔음을 밝혔다.
‘주해’에서는 총 27개항의 어구를 주석하고 있는데 잘못으로 보이는 표현은 바로잡고, 한시문의 인용은 원전을 밝혔으며, 우리말의 경우도 낯선 표현에는 뜻풀이를 하였다. ‘격안전촌양삼가(第岸前村兩三家)’가 ‘소상팔경가’에는 ‘제간전촌양삼가(第看前村兩三家)’로 나오며, 누구의 글에 나오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문헌마다 표현이 다른 것은 일일이 대조하여 문맥을 바로잡는 데 힘을 기울였다.
9. ‘유산가(遊山歌)’ 해설 (“문장” 제7집, 1939. 8.)
내용의 구성은 1. 허두, 2. 원가, 3. 해설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어구의 주석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다른 경우와 같다.
‘허두’에서는 ‘산천에 노니는 일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간단히 언급하고, 이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생활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원가’에서는 “신구유행잡가”에 있는 노랫말을 철자법에 맞도록 고치고 한자를 괄호 안에 처리하여 보여 주고 있다.
‘해설’에서는 총 42개의 어구를 주석하고 있다. 이본마다 표기가 다른 것은 일일이 대조하여 문맥에 맞도록 바로잡고, 잘못된 어휘를 바로잡았다. 예컨대, ‘죽장망혜(竹杖芒鞋)’에 대하여 ‘망혜(芒鞋)’라는 말은 없으므로 ‘메투리’를 가리키는 ‘마혜(麻鞋)’로 씀이 옳다고 하고, ‘마혜’의 ‘마’를 길게 발음하는 관계로 ‘망혜’로 변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특히 이 노래에 나오는 ‘천방져 지방져, 소코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와 같은 순 우리말 표현에 대하여 그 의미를 자세하게 풀이하였다.
10. ‘매화가(梅花歌)’ 해설 (“문장” 제9집, 1939. 10.)
글의 앞 부분에서는, 이 노래의 ‘매화’가 “꽃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물을 상징한 것인지 궁금하다.”고 하여 이 노래의 의미가 중의적(重義的)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노래에 관련된 서지 사항으로 게재된 문헌이 많지 못하다는 점과, 그 문헌들에 실려 전하는 노랫말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이런 전승 자료의 특수성 때문인지 글의 편차를 따로 정하지 않고 세 종류의 노랫말을 보여 주고 있다.
‘원가 1’은 대학본 “청구영언”에 실린 것을 현대 철자법으로 다듬어 실었고, 원가 뒤에서 그 서지 사항을 밝힌 다음, 표현상의 특색을 설명하고 시조 작품 중에 노랫말이 유사한 것을 제시하여 참고토록 하였다. 그리고는 시조 작품에 있는 매화시와 매화라는 기생이 지었다는 시조가 있는 점을 연결하여 여기서의 매화가 혹 기생을 암시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를 “(1) 매화가의 작자가 기생 매화이거나, (2) 다른 사람이 매화의 시조를 빌어 이것을 허두로 삼아 가지고 그 뒤에 노래를 첨가하여 지어낸 것이 가사 매화가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하여는 ‘매화가’의 다음 부분 내용과 연관지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원가 2’는 “신찬고금잡가”에 실린 것을 현대 철자법으로 바로잡고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제시하였다. “청구영언”의 매화가와 다른 점을 일일이 대조하여 보였으며, “청구영언”에 있는 ‘잔 처녀란 솔솔 다 빠지고 굵은 처녀만 걸리소서’가 “신찬고금잡가”에서는 ‘정든 사랑만 걸리소서’로 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후자를 단서로 하면 여성의 노래일 가능성이 있지만, 전자에 의한다면 여성의 노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원가 3’은 “남훈태평가”에 실린 것으로 이것도 현대 철자법과 괄호 안에 한자 표기 형태로 제시하고, “남훈태평가”의 발간 연대를 고증하여 대학본 “청구영언”보다 훨씬 앞선다는 점을 밝히고, 여기에도 ‘정든 사람만 걸리소서’로 표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매화가>의 작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비치고 있다.
이어지는 ‘어구 주석’에서는 총 13항목의 어구를 다른 예와 같이 주석하였고, 이 글은 특이하게 ‘통석(通釋)’이라는 난을 두어 노랫말을 산문으로 옮겨 풀어 보이고 있다.
11. “조선 문학 연구 초(朝鮮 文學 硏究 鈔)” (을유 문화사, 1946. 9. 10)
해방 전에 신문과 잡지에 실었던 글들을 모았다. 이미 “문장”지에 ‘새타령 해설’을 실을 때 ‘조선 문학 연구 초(1)’라는 표제를 달았고, 그 이후의 글들은 표제의 호수를 계속하여 ‘매화가 해설’에는 ‘조선 문학 연구 초(6)’이라는 표제가 달려 있다.
그러나 책으로 묶을 때는 이 여섯 편의 글 이외에도 나머지 글들을 모두 실어 모두 아홉 편의 글이 실렸다. 이미 쓴 글 가운데서 조선일보에 발표하였던 ‘용비어천가 해설(1)’만 제외되었다. 이 글은 완성된 글이 아니었기에 제외한 듯하다.
책의 순서를 보이기 위해서 목차에 실린 제목들만 옮겨 보면, 가사 ‘토끼화상’의 해설. ‘새타령’ 해설, 가사 ‘소상팔경’ 해설, ‘강호별곡’ 해설, ‘유산가’ 해설, ‘매화가’ 해설, 시조 기원에 대한 일고, 고전 문학에서 얻은 감상, 소설과 ‘얘기책’, 발문의 순으로 되어 있다.
목차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정작 발문을 보면 ‘발문 대신으로’라고 표제를 적고, 그동안 이런저런 연고로 연구 초록을 발표는 하였지만 자신이 없어 부끄럽기만 한데, 하지만 해방을 맞이하여 우리말 연구를 새로이 하려는 각오로 과거의 결과를 묶어 반성하고 단절하면서 새 출발을 하려는 표시라는 것, 고전 문학에 관한 참고 서적이 부족하다는 학도들의 요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것, 을유 문화사의 권고와 도움이 간절했기 때문이라는 것 등의 세 가지 이유를 밝혀 놓고 있다.
12. “역대 조선 문학 정화 권 상(歷代 朝鮮 文學 精華 卷 上) (인문사, 1938. 4.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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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48.4.15. 박문 출판사에서 “역대 국문학 정화 권 상(歷代 國文學 精華 卷 上)”으로 책이름의 ‘조선 문학’을 ‘국문학’으로 바꾼 것 이외에는 내용의 변동 없이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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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문학에 대한 이해력과 감상력의 배양을 주안점으로 하여 만든 교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정수(精粹)만을 가려 뽑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하였다.
싣는 손서는 시대의 역순으로 하였는데. 이는 독자의 고전 독해력에 대해 ‘점진 계도주의 (漸進 啓導主義)’의 관점에서 배려하였음을 밝혔다. 현대어와 편차가 적은 쪽에서부터 차츰차츰 고어 쪽으로 읽어 감으로써 낯설다는 인상을 줄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표기는 두 가지로 구분하는 원칙을 세워, 상권에서는 현대 철자법으로 다듬고 하권에서는 원본의 표기 그대로 함으로써 학구적 연구 자료가 되도록 차별화하겠다고 하였는데, 하권이 발간되었던 흔적은 보이지 않으므로 확인할 길이 없다.
한자는 그대로 노출시켰으며. 난해한 어구에는 간략한 주석을 달았는데. 그 내용은 “조선 문학 연구 초”에 실린 것보다는 훨씬 압축되고 간략하며 항목의 수효도 적게 제시되어 있다. 아마 연구물이라기보다는 교재이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원전은 한 군데만이 아니라 여러 이본들을 상호 대교(對較)하여 잘못이나 빠진 것을 바로잡는 태도를 취했다. 또 작품의 게재 방식은 시조의 경우는 10여 편 정도의 작품을 한 항목에 묶어서 제시하는 방식으로 하였고, 소설은 임의로 한 대목을 떼어서 실었다.
총 45항목이 실린 내용을 일별하기 위하여 장르별로 제목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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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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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가, 새타령, 봉선화(鳳仙花), 토끼화상, 선유가(船遊歌), 소상팔경(瀟湘八 景), 사시풍경가 (四時風景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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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가로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가리켜 잡가라고 하는 까닭은 ‘소리꾼 소리’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한 무리로 보는 관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후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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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달고, 이 제목 아래 8-10수씩의 시초를 묶어 싣고 있다. 이 제목들은 시조의 주제 또는 제재의 공통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촌수곽(山村水郭), 충성초색(蟲聲革色), 운니홍조(雲泥鴻爪), 행운유수(行雲流水), 한운야학(閑雲野鶴). 애모사연(愛慕思戀), 천석고황(泉石膏肓), 고정신미(古情新味), 단심여석(丹心如石), 토운생풍(吐賈生風), 사군자(四君子), 설월화(雪月花) |
| 소설 |
-광한루(춘향전의 일절), 공양미 삼백석(심청전의 일절). 용궁좌기(龍宮坐起)(토끼전의 일절), 허씨의 흉계(장화홍련전의 일절). 까토리 해몽(장끼전의 일절), 놀부의 포악(흥부전의 일절), 말 값 삼백냥(박씨전의 일절), 활빈당(홍길동전의 일절), 관음찬(觀音讚)(사씨남정기의 일절), 양천리주루탁계(楊千里酒樓擢桂) (구운몽의 일절) |
가사 (歌辭) |
-명당가(明堂歌), 농가월령가, 창랑곡(滄浪曲), 우부가(愚夫歌), 용부가(庸婦歌). 선루별곡(仙樓別曲), 백발탄(白髮歎) |
| 민요 |
-관등가(觀燈歌), 동요 삼 편, 너 어디 가 자고 왔니, 베틀노래, 시집살이, 떡타령 |
| 수필 |
-제침문(祭針文), 규중칠우공쟁론(閨中七友功爭論), 관(館)활량의 꿈 |
13. “국문학(고전 편) 개관” (국민 사상 연구원, 1953. 2. 18.)
이 책의 제목은 “일석 이희승 선생 송수 기념 논총”의 논저 목록에 실려 있다. 그러나 백방으로 알아 보았으나 이 책을 구해 볼 길이 없었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석 선생의 저서를 전시한 일석 기념관에도 보관되어 있지 않고, 아드님인 이교웅(李敎雄) 님도 이 책에 대하여 기억해 내지 못했다. 6·25 당시에 책을 많이 잃었기에 그 이전의 책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만,1953년에 나온 책이라면 분실될 만한 이유가 없으니 그 연유를 알 수 없다고 회고하였다. 다만, 1953년이 서울로 이사할 당시여서 보관이 충실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도 가칠 수는 있다는 말을 하였다.
이 책을 찾기 위하여 국립 도서관 및 국회 도서관과 주요 대학의 도서관까지 확인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제목에 괄호를 치고 ‘(고전 편)’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다른 분들과의 공저 가운데 고전 분야를 집필한 것은 아닌가 하고 그쪽으로 찾아보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출판처가 ‘국민 사상 연구윈’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발행한 책으로 이태극(李泰極) 저 “국민 사상과 시조 문학”이라는 책을 볼 수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국민 사상 연구윈’이 정확하게는 ‘국립 국민 사상 연구원’임을 알 수 있고, “국민 사상과 시조 문학”은 ‘사상 총서 4’라고 하여 기획물로 출판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비매품’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국가적 사업으로 출판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국문학 개관”과 이태극 선생의 저서가 같은 기획물인지 아니면 또 다른 계통의 출판이었는지조차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에 같은 기획물이라면, 일석 선생의 저서는 1953년인데 이태극 선생의 저서는 1955년에 간행되었고, 그 책의 번호가 4번인 것을 보면 “국문학 개관”은 아마도 이런 기획물의 초창기에 출판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연관이 있어 이태극 선생께 여쭈어 보았으나, “조선 문학 연구 초”를 가지고 강의를 하셨던 것은 기억하지만 “국문학 개관”은 보거나 들은 바가 없다고 회고하였다.
또 필자의 과문인 탓이겠지만, 다른 분의 글에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기나 언급한 것을 본 기억이 나지 않으니 내용의 짐작조차가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히 출판이 된 바 있기에 간행 연도까지 적어서 회갑 논문집에 논저 목록을 작성하였을 것이므로 이 책은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이 책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으므로 이 글의 제목을 ‘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 연구‘라고 하는 일조차 민망한 노릇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글 쓰는 일을 중단할까 하여 많이 망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석 선생의 학문과 인간의 전모를 다루는 기획 가운데 하나여서 이 부분만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동안 책을 찾아 헤매는 사이에 날짜가 많이 가 버렸고 해서 이제는 포기하는 일조차가 어렵게 되어버렸다.
이런 연고로 불완전한 글을 쓰는 송구스러움은 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훗날 이 책이 다행하게도 발견이 된다면 이 글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임을 전제하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일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Ⅱ. 고전 문학 연구에 나타난 특징
1. 시가 장르에 대한 관심
일석 선생의 논저는 주로 시가에 집중되어 있음을 본다. 조선일보에 실었던 ‘용비어천가의 해설 (1)’을 위시하여, “조선 문학 연구 초”에 실린 총 9편의 글 가운데 6편이 노래를 해설한 것이고, 고전 작품집이라 할 수 있는 “역대 조선 문학 정화”에서는 소설 10편과 수필 3편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시가 작품이다. 이처럼 대상 작품 주로 시가에 집중하여 선택한 것은 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에 대한 주된 관심이 시가 쪽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2. 잡가(雜歌)에 대한 집중적 관심
“조선 문학 연구 초”에 실린 6편의 글은 ‘토끼화상’, ‘새타령’, ‘소상팔경’, ‘강호별곡', ‘유산가’, ‘매화가’ 등이다. 이 중 ‘토끼화상’과 ‘소상팔경’에는 가사(歌詞)라고 분명하게 제목에서 적고 있지만 이들까지도 모두 잡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잡가’라는 용어에 대한 약간의 해명이 필요할 듯하다. 오늘날 우리 음악의 분류에 따르면, 12가사(歌詞)라고 하면, ‘황계사(黃鷄詞)’, ‘백구사(白鷗詞)’, ‘죽지사(竹枝詞)’. ‘길군악’, ‘상사별곡(相思別曲)’, ‘권주가(勸酒歌)’, ‘수양산가(首陽山歌)’, ‘양양가(襄陽歌)’, ‘처사가(處士歌)’, ‘매화태령’의 열두 편을 가리킨다. 한편 ‘유산가(遊山歌)’, ‘적벽가(赤壁歌)’, ‘제비가’, ‘집장가(執杖歌)’, ‘소춘향가(小春香歌)’, 형장가(刑杖歌)’, ‘선유가(船遊歌)’, ‘평양가(平壤歌)’의 8잡가와 ‘달거리’, ‘십장가(十杖歌)’, ‘방물가(房枸歌)’, ‘출인가(出引歌)’의 잡가를 합쳐서 12잡가라 하고, 이 밖에도 ‘휘몰 이 잡가’와 ‘산타령’ 등의 경기 잡가, ‘화초사거리’, ‘보렴’, ‘성주풀이’, ‘새타령’ 등의 남도 잡가, 공명가(孔明歇)’, ‘사설공명가’, ‘초한가(楚漢歌)’, ‘제전(祭奠)’ 등의 서도 잡가 등을 모두 합쳐서 잡가라 부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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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훈(1985), 국악 통론, (세광 음악 출판사), pp.46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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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잡가의 형성과 보급은 18,9세기에 소리꾼이라는 예능 집단이 생겨나게 된 것과 매우 관계가 건다. 이들 가운데는 기녀(妓女)도 있고 사당패와 같은 연희집단도 있어 그 성격은 매우 다양하였지만, 이들이 예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음악의 상품화와 관계가 깊다. 12잡가의 레퍼토리가 형성된 것이나, 판소리 가운데서 흥미 있는 대목을 떼어 ‘십장가’나 ‘소춘향가’ 등의 노래가 형성된 것도 이러한 향유 방식의 변화와 관계가 깊다. 심지어는 시창(詩唱)이나 송서(誦書)까지도 전문 예능인의 연행 곡목이 되었던 점은 이를 더욱 확신하게 한다.
이런 사정을 더욱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1910-20년대에 대량으로 출판된 잡가 관련 서적들이다. 일석 선생이 연구 자료로 삼은 것도 이들 가운데 하나인데, 이들은 대체로 “○○잡가”라는 책이름을 달고 있음을 본다. 이를 잡가라 한 것은 전문 소리꾼들이 노래하는 여러 종류의 것들을 한데 모았다는 뜻이겠는데, 이러한 점은 ‘박춘재(朴春載) 구술(口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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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송욱(池松旭) 편(1916), 신구(新舊) 시행 잡가(時行 雜歌).(서울: 대동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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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거나 ‘절대 명창 홍도(妅桃) 강진(康津) 구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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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姜羲永)(1915), (서울: 세창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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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기록이 밝혀져 있음으로 보아 더욱 분명해진다.
이때에 나온 잡가 관계 책들의 목차를 보면 소리꾼들이 엮어 낸 잡가 이외에 시조나 가사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잡가라고 하고 있음을 본다. 심한 경우에는 잡가라는 말도 아예 내던지고 ‘유행 창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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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형(姜夏馨)(1923), 남녀 병창 유행 창가(男女 竝唱 流行 唱歌), (서울: 태화 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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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못박은 책까지도 나오고 있다. 그렇고 보면 잡가라는 용어가 소리꾼들이 지어 내고 일반 서민들이 즐겨 부른 노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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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1984), “잡가고(雜歌攷)”, 한국 잡가 전집 4, (서울: 계명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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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규정이 타당하며, 오늘날로 말하면 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일석 선생의 저작에서 주로 다루어진 작품들이 대체로 이러한 잡가에 치중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특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문학 연구 초”의 곳곳에서 그 노랫말의 출처가 이들 활자본 잡가집을 주로 하고 그 밖의 사본들을 참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석 선생의 논저에서 ‘가사(歇詞)’로 표기한 것은 ‘가사(歌辭)’ 와는 다른 소리꾼 소리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고, 그런 점에서 보면 “역대 조선 문학 정화“에서 동요를 포함하여 민요 작품을 6편이나 게재한 것과 함께, 당대에 유행하는 서민들의 노래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읽어 낼 수 있다.
3. 노랫말의 현대어 표기
“조선 문학 연구 초”나 “역대 조선 문학 정화”의 표기는 모두 당시의 맞춤법에 따른 현대 국어로 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역대 조선 문학 정화”를 살피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권에서는 현대어로, 하권에서는 원전대로 표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는 익숙한 데서부터 시작하여 원전적인 가치와 의미까지를 아우르려고 했던 의도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4. 목차의 배열 순서
“조선 문학 연구 초”는 작품 해설 여섯 편을 앞세운 다음 시조 기원론 등의 이론 추구를 뒤에 두었고, “역대 조선 문학 정화”는 장르 구분 없이 뒤섞되 시기적으로 나중 것을 먼저 싣는 역순을 택하였다. 이 점도 이미 살핀 바와 같이 ‘점진 계도주의’라는 교육적 배려가 그런 결과로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5. 와탈(訛脫) 바로잡기의 주석
“조선 문학 연구 초”는 작품을 해설하되 주로 주석에 힘을 기울였고, “역대 조선 문학 정화”에서는 주석을 간략하게 줄이고 있다. 전자는 문맥과 관련지어 잘못된 표기나 불명확한 표현을 원전을 찾아 고증하고 있으며, 후자는 어휘의 설명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는 해설 중심이면서도 고증을 주로 하는 논문 성격의 것임을 보여 주고, 후자는 작품 자체를 읽히기 위한 교재적 성격임을 보여 준다.
6. 생활 중심의 감상 지표
“조선 문학 연구 초”에서 작품에 대한 해설은 대체로 (1) 문화적 배경 (2) 생활상의 효용 (3) 연관 작품과의 관계 (4) 함축적 의미의 추구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노래에 대한 이해를 학구적 수준보다는 생활적 교양의 수준에서 수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7. 전통 계승론의 옹호
‘용비어천가의 해설 (1)’과 ‘소설과 얘기책’ 그리고 ‘고전 문학에서 얻은 감상’이라는 세 글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우리 문학의 전통에 대한 이해와 그 현대적 계승이라는 두 가지 명제다. 민족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전통이 과거의 것으로 머물지 말고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는 자질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Ⅲ.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관
지금까지 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 관계 논저를 개관하고 거기에 나타나 있는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이제 그러한 논저 활동에서 우리가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 학자의 학문하는 지향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학문은 한 개인의 활동이라는 의미 이전에 사회적 삶과 지식사에 관련되는 문제이므로, 일석 선생이 추구한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이는 곧 일석 선생의 문학관, 특히 고전 문학을 보는 관점을 헤아리는 일이 될 것이다.
1. 민족적 자부심으로서의 고전 문학
비록 완성되지 못한 글이지만 ‘용비어천가의 해설 (1)’은 그 작품이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어 있다. 우리 문화가 별 수 없이 중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역량을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 상당하며, 한글의 창제 그리고 활자의 발명이나 첨성대의 존재 못지 않은 존재로서 <용비어천가>가 있다고 강조한 것을 본다.
<용비어천가>는 한글의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과 궤를 같이하는 자주성의 표현이며, 그것이 한글을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민족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각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은 민족 문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더불어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쓴 글이 바로 용비어천가 해설이며, 그 밖에도 ‘고전 문학에서 얻은 감상’은 우리 고전 문학의 장단점을 내용과 형식 면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한 글이다.
이러한 지적은 장점에 못지 않게 결점도 있음을 강조하면서 고전 문학이 지니고 있는 전통이 오늘날에도 새롭게 조명되고 계승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소설과 애기책’ 또한 이런 취지를 담고 있다.
이 세 글이 내포하고 있는 민족 문학에 대한 자부심은 곧 오늘에 되살려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전통론으로 강조된다. 그동안 우리 문학의 전통에 관한 논의가 많이 있어 왔지만, 이 글이 집필된 1930년대가 모더니즘의 드높은 파도에 흔들리던 서양 문학 지향의 시기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이식 문화론을 외치고 민족 개조론을 부르짖는 사람까지 나서는 등 민족과 사회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있었고 서구 문명에의 동화가 곧 개화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민족적 자부심으로서의 고전 문학 전통론이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는 자명해진다고 하겠다.
2. 살아 숨쉬는 문학의 지향
일석 선생이 문학의 역할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분명히 가려 적은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사설을 통해 그러한 관점을 간접적으로나마 추리할 수 있다.
우선 일석 선생의 논저에서 다루고 있는 고전 문학이 당대의 유행가라고 할 수 있는 잡가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가지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관심이 매우 특이한 사실이라는 점은 1947년에 펴낸 이명선(李明善) 편의 “조선 고전 문학 독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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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선문사. 이러한 태도는 김태준(1934)이 펴낸 “조선 가요 집성(朝鮮 歌謠 集成)”(서울: 한성 도서 주식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가요’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면서도 12가사는 싣되 잡가는 “청구영언”에 실린 것만을 옮겨 놓고 있다. 이런 점에 비한다면 일석 선생의 “조선 문학 연구”가 잡가 중심인 사실은 가히 파격적인 대상 선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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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실린 시가 작품의 목록과 대비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 책은 ‘황조가’에서부터 향가와 가사 그리고 시조 작품을 시대순으로 싣고 있다. 이 책에도 민요 두 편과 잡가 두 편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비중으로 볼 때 구색 맞추기 정도이고 중점은 옛 문헌 중심의 작품들이다.
일례로, 가사 작품을 싣는 데도 이명선은 정철, 박인로의 가사를 싣고 있는 데 반해 일석 선생은 ‘우부가’며 ‘용부가’ 그리고 ‘백발탄’ 등을 싣고 있음을 본다. 후자는 이른바 서민 가사라고 해서 최근에야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작품들임을 상기한다면 일석 선생의 고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문학적 고아성 (古雅性)보다는 현실적 생동성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감식안은 문학이 학문의 대상으로 끝나거나 고리타분한 고전으로 머물러 있지 말고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취지에 바탕을 두겠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기에 당대의 소리꾼들이 돈벌이의 자재로 삼았던 잡가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학문의 이름으로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전 문학이라는 말이 풍기는 예스러움과 근엄함 같은 것보다는 이 시대에 의의를 갖는 문학이라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태도가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고전 문학의 전통이 오늘날에 되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한 ‘소설과 애기책’과 ‘고전 문학에서 얻은 감상’의 두 글이다. 이 글들은 고전의 전통이 현대에 계승되어야 한다는 전통론에 주안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의 뒷면을 헤아리면, 문학의 전통은 현재적 의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지향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계승해야 할 장점과 함께 극복되어야 할 결점도 지적하였을 것이다.
일석 선생의 이러한 문학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잡가에 대한 연구가 최근에야 관심사로 등장하게 된 점도 그러하거니와, 우리 국문학 연구사에서 구비 문학을 학문의 대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나를 생각하면, 일석 선생의 문학관이 얼마나 강렬한 당대성의 중시였던가를 헤아릴 수 있다고 본다.
3. 생활 문화로서의 문학을 겨냥
<새타령>에 대한 해설에서 ‘가야금을 곁들인 이 노래를 들으면서 황홀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생활화하고 특히 ‘현대의 조선 여성이 가야금을 타면서 새타령 정도는 부르도록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한 부분이 있다. 잡가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은 점과 아울러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는 문학, 그것도 고전 문학이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오늘날 생활화되는 문화의 하나라야 한다는 관점의 표백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시각은 <토끼화상>과 판소리 <수궁가>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라든가, 우리나라에서 <소상팔경>을 노래하게 된 까닭을 설명한 부분, 그리고 <유산가>의 흥취는 증점(曾點)과 맹자 이래 오늘날의 하이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기는 데서 오는 것이며, 이것은 생활 그 자체임을 강조한 대목 등에서도 재확인된다. 문학은 문학 연구가의 전유물이거나 학습의 대상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우리 생활 속에서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생활 그 자체의 자료여야 한다는 관점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전 문학을 보았기에 작품의 표기는 한사코 현대어로 한 것으로 이해된다. 고전 표기가 갖는 낯선 느낌은 작품 감상 이전에 읽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혐이 없지 않다. 오늘날에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고전을 꼭 고전 표기로만 실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의 논의가 이러한데 일석 선생은 이미 60여 년 전에 그 일을 실제로 하고 있으니 문학과 생활의 관련에 대한 선구적 안목을 엿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역대 조선 문학 정화”가 장르의 구분 없이 시대의 역순으로 실은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장르의 분류라든가 시대순 배열은 연구자의 체계적 이해를 위해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지나친 장르론적 속박이 작품 자체의 이해를 좌우하고 경색되게 하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면, 체계화는 연구자의 몫이요, 일반 생활인은 장르와 시대에 구애됨이 없이 오늘날 생활을 위한 문화 자재가 되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일석 선생의 교양 중심의 작품 감상 목표나 현대어 표기 그리고 체계보다는 작품 위주로 편집한 편차에서 문학을 생활 문화로 보는 선진적 관점을 읽을 수가 있다. 오늘날 종합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음을 생각하면 생활 문화로서의 문학이라는 관점은 재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Ⅳ. 마무리
지금까지 살펴본 일석 선생의 고전 문학 관계 논저에 대해서 더 이상 덧붙일 말은 없을 듯싶다. 그러나 대상은 보는 눈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글이 일석 선생의 연구 업적을 제대로 보았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다만 내 자신의 주관에 충실하면서 논저들을 읽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그런 만큼 이 글이 지독한 편견의 표현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사실을 잘못 보았다는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우리 주위와 연관 지어 바라본 것이므로 그 시각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좀 잘못된 견해가 있다 한들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마친다. 누가 뭐라 해도 우주의 진리는 제가 자재(자재)하듯이, 일석 선생의 업적 또한 내가 무어라 하든 그 말에 상관없이 자재하거늘.
다만 한 권의 책 “국문학(고전 편) 개관”을 끝내 보지 못한 것 때문에 이 글은 썼으되 쓰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이 되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바라건대는 제발 기회가 닿아서 내 손으로 그 부분을 보충할 수 있게 되는 다행함이 있기만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