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석 이희승 선생의 학문과 인간】

‘국어 대사전’ 편찬

김문창 / 인하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머리말

  일석 이희승 선생은 국어학자요, 교육자며 문인이었다. 일석(一石)은 이 시대 마지막 선비, 아니 한 마디로 작은 거인이었다. 키가 남달리 작으면서도 학문과 인품 양면에 걸쳐 거대한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분은 세상에 드문 인격자, 군자였다. 군자는 불기(不器)라던가. 일석은 관계 범주상 학자요 교육자였으나, 한두 가지의 전문인으로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분은 그 여러 전문 기능을 동시에 지니면서 그러한 능력들을 조화시키고 초월한 대인, 이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큰 스승이었다.
  다섯 해 전 초겨울, 일석은 문득 우화등선(物匕登仙)하였다. 그분은 떠났으나 대쪽 같은 그의 지절(志節)과 난향 같은 마음결은 150여 편의 논문·논설문으로, 17권의 저서와 8권의 시집·수필집 등으로 남아 우리의 거울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벙어리 냉가슴’, ‘소경의 잠꼬대’, ‘먹추의 말참견’ 등의 수필집과 ‘국어학 개설’,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 ‘국어 대사전’ 등은 대표적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저서를 통해 그는 수필문학의 격조 높은 한 전범으로서, 국어학과 언어생활의 교사요 길잡이로서 영원히 남을 금자탑으로 기억될 것이다.
  육신이 ‘성령의 집’이라면 국어사전은 ‘민족 문화의 성전(聖殿)’이라 하겠다. 구소련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일화는 우리를 감동으로 전율시킨다. “단어란 작가의 영원한 호흡”이라고 그는 절규했었다. 그리하여 엄혹한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는 날마다 모국어 사전을 읽고 휴지 조각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이 써 내려가면서 외운 뒤에 몇 권의 단어장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다시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도 30여 년 동안 그는 모국어를 생명처럼 사랑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갈고 닦았다(장명수 1984). 모국어야말로 그 민족의 살이요, 피요, 호흡이며 영혼인 것이다. 그러니 국어사전은 그 민족 문화의 총화요 꽃이라 하겠다.
  이 글은 일석의 노작 가운데서도 특히 우리 문화의 기념비적 업적인 ‘국어 대사전’에 관하여 간략히 그 의의를 살펴보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때마침 금년 10월이 이희승 선생의 달로 정해졌으므로, 먼저 일석의 인품에 대하여 대략 회고해 보고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기타 국어사전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우리 국어사전의 현황을 점검하여 앞으로 간행될 새로운 국어사전에 참고가 되고자 한다.


2. 일석의 인품

  일석 이희승 선생은 평생 동안 ‘삼불의 비애(三不-悲哀) 속에서 살다 가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언제나 ‘벙어리·장님·귀머거리’ 노릇으로 겨우 실낱같이 구명도생(救命圖生)할 수 있었노라고, 자신의 마지막 수필집 ‘메아리 없는 넋두리’에서 나직히 술회하고 있다(김문창 1990:36). 그러나 과연 그분의 자탄(自歎)처럼 그토록 이 세상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했던 은둔의 일생이었던가. 아니 오히려 그분은 혹독했던 시련의 세월에 준열히 저항했던 위대한 영혼이요, 깨어 있는 시대 정신의 지고(至高)한 명징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고 판단된다. 정의를 몸소 실천하지 않을 수 없었던 행동하는 지성인의 전형을 그분은 단호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은 지조(志操)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지조의 3대 조건으로 그분은 이념·입지(立志)·실천을 꼽았다. 아세·곡필·훼절(阿世·曲筆·毁節)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노추(老醜)가 횡행하는 시대에 그분은 자신의 지조론을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시대의 불의에 거인처럼 우뚝 서서 바위인 양 대결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야무진 절개와 선비 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래오래 돌에 새겨져 전설인 양 유전되리라.
  일제의 식민치하에서 저들이 날조한 이른바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지절(志節)을 굽히지 않고 그분은 우리 국어를 지켜 냈다. ‘50년대 초 자유당 초기에 야기된 ‘한글 파동’ 때 분연히 일어섰으며, ‘60년 4·26 교수단 시위 때는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선두에 나서서 부정한 정권의 종식에 몸을 던졌다. 5·16 군사 혁명 뒤 동아일보 사장직 재임 때는 군정을 거부하였고, 온 천하의 입과 귀가 침묵당하던 유신 체제 아래서는 ‘민주 회복 국민 회의’의 고문으로 독재와 결연히 맞섰다. ‘80년대 5공화국 때도 시국 선언에 앞장서는 등, 그분의 일생은 불의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정도(正道) 그것이었다.
  자그마한 체구, 온화한 표정, 상아탑적 학자의 속성 그 어디에서 그토록 엄청난 정의의 힘이 솟아났던가. 오로지 정의와 진리 그 하나에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쳤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그리하여 그분은 양심의 귀로 듣고 바라보고 외칠 수 있었던 듯싶다. 유가에서 예로부터 주장해 오던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는 경지를 넘어, 그분은 대승적 입장에서 비리(與理)의 세상을 온 몸으로 통렬히 질타하며 ‘하나의 돌’처럼 자신과 이 민족을 지키는 일에 앞장섰던 것이다. 누가 감히 그분을 일러 ‘벙어리·장님·귀머거리’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분의 아호 ‘일석’(一石)이나 별호 ‘대추씨’는 그분의 그러한 지조와 송죽 같은 선비 정신을 잘도 상징하고 있다. 돌은 무재(無才)하며 곱지 못하고 활동성도 없으며 변통성도 없다고 그분은 자신의 수필집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분을 그처럼 쓸모없는 ‘하나의 돌’에 불과하노라고 시비할 수 있으랴.
  학자요 문인이요 언론인으로 교육자로 또한 애국자로서 그분이 남긴 족적(足跡)은 지대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분은 ‘작은 거인’이요 ‘큰바위 얼굴’이었다. 그분은 지금쯤 또 다른 돌로 태어나 남산골 샌님처럼 딸깍거리며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리들을 지켜 주고 있을 것만 같다.
  그분의 치열하고 올곧은 정신은 학문과 문학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국어학·국문학 연구와 수필집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주옥 같은 저서로 남게 되었다. 희로애락도 안으로 꼭꼭 여미며, 그분은 차돌처럼 자신에겐 준열하고 엄격했으되 사석에서 타인에겐 봄볕처럼 따스하고 새순인 양 부드러웠다. 이 땅의 전범(典範)으로 길이 남을 그분의 수필 갈피갈피에는 그분의 그토록 고결한 인품과 구수한 유머, 눈물겨운 페이소스가 진하게 그러나 잔잔히 흐르고 있다. 백척간두 같았던 근대사 100년을 파란만장 속에 살면서도 어두운 시대를 빛으로 대결하는 한편, 그분은 학문에도 남달리 온갖 정열을 다하여 지식인으로서의 아름다운 한 생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국어학계의 태두(太斗)요 거목(巨木)이며, 그 제1세대 선두 주자(走者)로서 그분은 지란(乏蘭)같은 선비의 한 전형이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이 시대 마지막 선비, 옹골찬 조선심(朝鮮心),대인 중의 대인이라는 만인의 찬사를 들어 마땅하리라.
  20여 년 전, 그분은 필자에게 천만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겸허하고 욕심 없던 그분도 여생에 꼭 몇 가지 일을 하고 싶으니 함께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국어 대사전’의 증보, ‘한국어 관용어 사전’ 만들기, ‘국어 정서법’의 이론 정립이 그것이었다. 근근히 석사를 마친 일개 젊은 중등 교사였던 필자로서는 도무지 말씀 같지도 않았다. 그 순간 필자는 돌처럼 굳은 듯이 앞뒤 헤아릴 길이 없었으나 그만 ‘……네’ 하고 약속도 아닌 신음 같은 반응을 하고 말았다. 그 뒤로 일석을 모시고 필자는 몇 년 동안 민중 서관을 드나들었다. 그 결과가 1982년 11월에 나온 ‘수정 증보판 국어 대사전’이었다. 이 새 사전은 ‘61년도 초판의 올림말 23만 어에다가 새로이 19만여 어휘가 추가되어 42만여 어휘로 늘었다. 기존 사전과 다른 점은, 국어 관용어 근 3천 항목과 각 항목의 용례가 수록된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국어사전 역사상 처음 시도된 것임에 틀림없다. 대학원 재학 시절의 동료들과 그리고 필자의 어린 제자들과 함께 자료 모으기 13년, 그분께 개인적으로 약속드린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전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국어에는 사전에 아직도 등재되지 못한 관용어가 근 1만 어와 좋은 용례들이 흙 속의 보석처럼 지천으로 숨어 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용례 180만여 어에 비하면 우리의 그것은 도저히 말도 아니 된다. 미수록된 관용어와 용례들이 앞으로 국어사전에 대거 보완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어사전과 별도로 관용어 사전이 따로 나와야 한다. 이 외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많은 고유어와 방언들이 대폭 실려야 한다. 정서법 개론은 이제 겨우 그 서설을 준비 중이므로 앞으로 할 일이 아득하다. 이리하여 필자는 그분의 ‘지엄한 말씀’에 여전히 응답드리지 못함을 수십 년간 괴로워하면서 죄인인 양 오늘도 자괴한다.
  그분을 도와 힘을 보탠 여러 학자와 출판사 편집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세상에 나온 그분의 국어사전은 분명히 훌륭한 업적이다. 아마도 우리 문화사상 길이 남을 명저의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 언어 사전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면을 달리하여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소매 끝을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3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며, 못난 제자일망정 말석에서 사랑을 받으며 클 수 있었던 필자는 그래서 행복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과의 만남은 감당키 어려운 고통이기도 하다. 길이요 등불이요 또한 채찍으로서 앞서 걷던 그분은 종생토록, 때때로 무너지려는 필자를 붙들어 일으키는 영혼의 몸으로 살아 계시리라 믿는다.


3. 이희승 편 ‘국어 대사전’ 개요

  일석 이희승 선생이 편찬한 ‘국어 대사전’은 국어사상 영원히 빛날 하나의 금자탑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 사전은 그 간행 시기와 내용·체재상 3가지로 나뉜다. 제1판은 1961년도, 2판은 1982년도, 3판은 1994년도에 각각 간행되었다. 이들에 대하여 아래에서 시대순으로 약술하고자 한다.


      3.1. 초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1961. 12. 28.
준비 기간: 1956. 5. 7.~1961. 12. 28.
간행 횟수: 32쇄 (1961~1981,20년간)
출판사명: 민중 서관
판행: A5판(가로 15㎝×세로 21㎝)
면 수: 3,463면
표제어 수: 약 23만 어
표제어 어종별 분배량: 약 58,324어(25.9%)
한자어 수: 약 150,935어 (67.02%)
외래어 수: 약 15,944어(7.08%)
특성: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름.
(2) 문법 용어·체계: 일석 자신의 학교 문법서인 ‘새 고등 문법’을 따름.
(3) 표제어: 약 23만 어. 당시 국어사전 중 최대 분량임.
(4) 백과사전식: 외래어뿐만 아니라 외국어·인명·지명·책명·사건명 몇 가지 부록 등도 수록함.
의의·해설: 일석의 ‘국어 대사전’은 한글 학회 편인 ‘큰사전’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본격적으로 학문적·체계적 바탕 위에서 당시 국어학계의 연구 성과를 총동원한 점에서 최초의 국어 대사전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이 사진의 표제어 양은, 그 이전의 최대 사전인 ‘큰사전’의 약 16만 어휘보다 약 7만 어가 더 많았으며, 용어의 보편성, 뜻풀이의 세련·현대화·용이성 등은 커다란 장점이었다. 또한 6권으로 분책된 ‘큰사전’의 사용상 불편 등을 해소한 1책 단권의 규모는 실용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환영받았다. 사서류 개척기에 불과했던 ’60년대 초에 이는 일대 획기적인 업적이었으므로,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한국 출판 문화상’을 1962년에 수상했다. 그 뒤 이 사전은 국어사전의 대명사처럼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1982년의 수정 증보판이 나올 때까지 32쇄를 거듭하기에 이르렀다(조재수 1984, 김민수 1986, 이병근 1990, 심재기 1991).

      3.2. 제2판 수정 증보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1982. 11. 25.
준비 기간: 1972~1962
출판사명: 민중 서림
판형: 사륙배판(가로 19㎝×세로 25.6㎝)
면 수: 4.504면
표제어 수: 약 42만 어
특성: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2) 문법 용어·체계: ‘학교 문법 통일안’(1963)을 따름.
(3) 표제어: 초판의 23만 어보다 무려 19만 어가 증가한 42만 어로 최대 분량임.
(4) 관용어: 국어사전 역사상 최초로 관용어 2,800여 어와 그에 따르는 용례를 수록함.
(5) 백과사전식
의의·해설: 이 사전의 표제항 42만여 어는 그 당시 국어사전 가운데 최대의 분량으로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압권이라 할 만했다. 뜻풀이 비교적 정연하고 간결·정확하여 일반 교양용 국어사전으로는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관용어의 수록은 국어사전 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사전의 교육적 기능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관용어를 포함한 표제어에 가능한 한 많은 용례를 제시한 것 또한 국어사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용례가 180여만 어, 미국의 ‘웹스터 영어 사전’은 근 170만 어, 독일의 ‘두덴 독일어 사전’은 200여만 어 등등(조재수 1984) 서구의 선진국 국어사전들에는 용례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일석의 이 ‘증보판 국어 대사전’의 규모는 저들에 비하면 도저히 언급하기조차 뭐한 일이지만, 순수 언어 사전의 본격적인 체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선 그 의의를 크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제적 가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나라 안에서만은 적어도 새로운 방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이 사전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줄 안다.
  이 증보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관용어 4천여 어, 용례 1만여 어, 관용어 표제항의 다의적 풀이항과 유의어항·반의어항 등 3만여 장의 원고(200자용)를 제공했으나 편집 사정상 대부분의 것들이 할애되고 말았다. 앞으로 이들 미수록 부분과 기타 일반 어휘의 용례까지 제시한다면, 20권짜리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나 24권짜리 ‘일본 국어 대사전’에 비견할 만한 한국어 대사전도 머지않아 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요즈음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어 대사전’의 용례 수집에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우리의 희망을 더욱 가시화하는 일로서 그 의의가 지대하다. 한편 고려 대학교와 연세 대학교에서 수 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와 유사한 사전 편찬 사업은 국어사전의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하리라 믿어 마지 않는다.


      3.3. 제3판 전면 개정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1994.3.25.
출판사명: 민중 서림
판형: 사륙배판
면 수: 4,784면
표제어 수: 약 45만 어
특성: (1) 정서법: 1988년 1월에 전면 고시된 문교부 제정 4대 정서법을 따름.
(2) 표제어: 신어·전문어 등이 다수 추가되었으나, 구체적인 수량은 밝히지 않았음.
(3) 어원: 1천여 항의 어원이 새로 추가됨.
(4) 북한어: 부록으로 일부 수록함.
(5) 백과사전식
의의·해설: 이번 제3판 일석 국어사전은 새로운 국어 정서법이 반영되었고, 어원 1천여 항과 북한어 일부가 새로이 실렸다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새로운 표제항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백과사전식 체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서, ’82년도 판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시적 변화로서 ’82년 판보다 ’94년 판이 280면쯤 증가하였다. 부록 증면 100여 면 이외에 180여 면의 본문 추가로써 추론에 보면, 이번 3판은 약 45만 안팎의 어휘가 되리라 짐작한다.

4. 기타 주요한 국어사전들

  일석 편 ‘국어 대사전’의 특성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기타 주요한 국어사전들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국어사전류는 중소 사전까지 합하면 대략 150여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요성이나 대규모라는 기준으로 보아 주요 사전은 약 20종쯤으로 파악된다. 이 중에서도 일반 언중에게 널리 알려지거나 애용되는 것은 다시 몇 종으로 제한되므로, 여기서는 주요한 대사전 몇 종에 한해서만 그 대강을 검토하기로 한다(조재수 1984, 이병근 1986, 남기심 1987, 김태기 1987, 이익환 1992).


      4.1. 조선 강문회 편 ‘말모이’

간행 연도: 간행되지 앓음.
준비 기간: 1911~1914(?)
주무 기관: 조선 광문회
집집: 주시경·김두봉·권덕규·이규영 등
의의·해설: 국어사전 ‘말모이’는, 최남선이 1910년 10월에 설립한 조선 광문회에서 그 원고 작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그 일부가 ‘ㄱ~걀죽’까지만 원고본으로 남아서 이병근(1977)이 소장하고 있다. 이 원고본은 우리 국어 표제어를 국어로 풀이한 최초의 순수 국어사전이라는 점, 비록 그 작업이 중단되어 햇빛을 보지 못하였으나, 현대 국어사전을 낳게 한 주요한 동기와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등등으로 그 역사적 의의는 지대하다(이병근 1977·1990).

      4.2. 문세영 편 ‘조선어 사전’

간행 연도: 1938. 7. 10.
출판사명: 조선어 사전 간행회
판형: A5판
면 수: 1,689면
표제어 수: 약 10만 어
표제어 범위: 고유어·방언·고어·이두·한자어·고사 성어·속담·전문 용어·외래어·일부 고유 명사 등
특성: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알안’이 최초로 적용됨.
(2) 발음: 음장을 표시함.
(3) 표제어: 성씨만 올리고, 윈칙적으로 고유 명사·사건명 등은 수록하지 아니 함
(4) 순수 언어 사전식
의의·해설: 이 사전은 조선 총독부 편 ‘조선어 사전’(1920)을 대본으로 하고 이윤재·한징 등의 지도를 받았으나, 역사상 최초로 간행된 국어사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길이 빛날 것이다. 이 사전은 고유 명사는 원칙적으로 제외하고, 고유어로부터 전문 용어에 이르기까지 표제어로 삼아 순수 언어 사전을 시도하였다. 뜻풀이·주석 내용·배열 방식 등도 세련되어 현대적 사전의 면모를 갖춘 것으로 당시로서는 유일무이한 국어사전이었다. 나라를 잃고 우리 민족어의 사용마저 혹독히 탄압받던 질곡의 시대에 눈 속의 매화처럼 역설적으로 피어난 이 사전은 그 당시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희망이요 힘이며 감격이었다. 그래서 이 사전은 발행 즉시 초판 1천 부가 매진되어 2쇄, 3쇄를 거듭하며 당시 우리 표준어 보급에 기여하면서 이 땅 유일한 국어사전으로 만인의 칭송과 사랑을 독차지하였었다(조재수 1984, 김민수 1986, 이병근 1990).

      4.3. 이윤재 편 ‘표준 조선말 사전’

간행 연도: 1947. 12. 20.
준비 기간: 1933~1947
저자명: 이윤재 지음, 김병제 엮음
출판사명: 아문각
판형: 사륙판
면 수: 908면
표제어 수: 약 8만5천 어
특성: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2) 발음: 필요한 경우 표시함.
(3) 표제어: 고어·이두·고유 명사 등은 원칙적으로 제외함.
(4) 표제어의 어종별 구별: 고유어와 구별하고자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 표를 붙임.
(5) 공시적 사전: 고어·이두 등을 제외하여 공시성을 표방함.
(6) 순수 언어 사전: 일러두기에는 고유 명사도 약간 수록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거의 싣지 않았음.
의의·해설: 이 사전은 고어·이두 등을 제외하여 문세영의 국어사전과는 일부 그 체제가 다르다. 그러나 고유 명사를 제외하는 등 대부분의 편집 방침은 문세영의 그것과 동질적이다. 이는 문세영이 사전 편찬 과정에서 이윤재의 지도에 전적으로 기대었던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윤재의 국어사전이 출판 순서상으로는 문세영의 그것보다 9년 늦게 나왔으나, 사실 일찍이 이윤재가 조선어 학회 국어사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이다.
  환산 이윤재 선생은 조선어 학회의 사전 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한편, 1933년 겨울부터 이 사전 편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흥사단 사건으로 일 년 남짓 투옥되었었고, 또한 이른바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 1일에 함남 홍원으로 압송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희승·최현배 선생 등 37인의 학회 관련 인사들이 함께 검거되었던 것이다. 변말로 육전·해선·공중전 등등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분들은 견디어 냈으나, 이윤재 선생은 모든 죄(?)는 당신 한 사람에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무죄하다고 성인군자처럼 강변하다가, 1943년 12월 8일에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이은상·이희승 선생의 육성 중언). 환산은 그렇게 장렬히 순직하고 당신이 개별적으로 주관하던 사전 편찬 사업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환산의 제자요 사위인 김병제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이 국어사전을 완성시키기에 이르렀다(조재수 1984, 김민수 1986, 이병근 1986. 지춘수 1991).


      4.4. 한글 학회 편 ‘큰사전’

간행 연도: 1947. 10. 9.~1957. 10. 9.
준비 기간: 1929. 10. 31,~1957. 10. 9.
주관 기관: 조선어 사전 편찬회→조선어 학회→한글 학회
출판사명: 을유 문화사
판형: B5판, 1책 6권
면 수: 3,804면
표제어 수: 16만 4,125 어
표제어 어종별 분배량: 고유어:74,612어(45.46%)
한자어: 85,527어 (52.11%)
외래어: 3,986어 (2.43%)
특성: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2) 문법 용어·체계: 이른바 ‘이름씨’식 한글 학파의 체계를 따름.
(3) 발음: 필요한 경우에 표시함.
(4) 표제어: 고유 명사에 이르기까지 어휘를 최대한 수록함.
(5) 체재: 용례·관계어 등으로써 어휘 구조를 명기하는 등 최초의 구조적 사전이라 하겠음.
(6) 백과사전식
(7) 크기:당시 최고·최대의 사전임.
의의·해설 : 이 ‘큰사전’의 백과사전식 체재와 방식은 그 뒤로 나오는 국어사전 편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 한 마디로 이 사전은 우리 겨레의 종합적 국어사전의 첫 금자탑으로 우리 문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찬란한 광휘였다.
  이 사전은 ‘조선어 학회 사건’, 6·25 전쟁 등등 많은 고난을 겪으며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된 하나의 주옥편이었다. 그 긴 세월만큼이나 이 사전 각 권의 이름·인쇄소·출판 연도 등이 서로 다르다. 이 ‘큰사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각별히 따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 많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만 줄이기로 한다(한글 학회 1971, 이병근 1986, 김영희 1991).


      4.5. 신기철·신용철 편 ‘표준 국어사전’

간행 연도: 1958. 12. 10.
준비 기간: 10년
출판사명: 을유 문화사
판형: 사륙배판
면 수: 1,708면
표제어 수: 약 20만 어
특성: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2) 문법 용어·계계: 이른바 ‘명사’식 문법 체계를 따름.
(3) 발음: 필요한 경우에 표시함.
(4) 표제어: 최대로 수록함.
(5) 백과사전식
의의·해설: 이 사전은 표제어의 양이 ‘큰사전’보다 근 4만 어가 늘었으나, 그 체재는 ‘큰사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4.6. 신기철·신용철 편 ‘새 우리말 큰사전’

간행 연도: 1974. 9.
출판사명: 삼성 출판사
판형: 사륙배판, 1책 2권
면 수: 3,856면
표제어 수: 약 31만 어
특성: (1) 표제어: 58년도 초판의 증보판으로, 표제어 31만여 어는 당시 국어사전으로는 최대 수량임.
(2) 백과사전식
의의·해설 : 이 사전은 한글 학회 편과 이희승 편 국어사전보다 표제어의 양이 증가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큰사전’은 6권으로 분책되어 사용상 불편하고 또한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이 사전은 ‘큰사전’과 이희승 편 ‘국어 대사전’과 모든 면에서 유사했으며 새로이 출판된 데다 어휘 수도 많았으므로 그 뒤 근 10년 동안 일석 사전과 함께 가장 많이 애용된 사전으로 유명하다. 시장 점유율로 보아 일석 편이 60% 정도, 이 신기철 편이 40% 정도로 우리 나라 국어사전 판도를 양분하여 한 동안 가장 유명한 사전으로 언중의 사랑을 받았다(김태기 1987, 이병근 1990).

      4.7 한국어 사전 편찬회 편 ‘한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1976. 3.
준비 기간: 1971. 4,~1976. 3.
출판사명: 현문사
감수자: 정인승·양주동·이숭녕·남광우·이응백·이을환·지춘수 등
판형: 신팔절판(가로 26㎝×로 37㎝×두께 11㎝)
면 수: 3,049면
표제어 수: 약 40만 어
특성: (1) 발음: 필요한 경우에 표시함.
(2) 관용어: 가능한 한 관용어와 그 용례를 제시함. 이는 국어사전 사상 최초의 일이었음.
(3) 고어: 가능한 한 출전을 밝힘.
(4) 크기: 표제어 약 40만 어는 당시의 국어사전 중 최대임.
(5) 백과사전식: 대역 사전처럼 각 표제어에 해당되는 영어를 제시하여 한영 사전의 기능도 부여함.
의의·해설: 이 사전은 그 당시까지 나온 사전 중 최대 어휘량을 자랑한다. 신팔절판의 판형은 초대형으로서 국내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미국의 ‘웹스터 영어 사전’ 같은 크기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점보판의 판형은 휴대 및 사용에 불편했다. 관용어 제시는 국어사전 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나 그에 딸리는 용례가 부족했고, 또한 일부 관용어를 단어로 간주하여 품사를 부여한 것은 부적절한 조치였다. 그 당시는 최대의 사전으로 1976년도 ‘한국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화젯거리였으나 보급률은 저조했었다.

      4.8. 한글 학회 편 ‘우리말 큰사전’

간행 연도: 1992. 1. 25.
출판사명: 어문각
판형: 사륙배판, 1책 4권, 총천연색
면 수: 5.856면
표제어 수: 약 45만 어
특성: (1) 정서법: 문교부의 신정서법을 거부하고, 한글 학회가 자체적으로 제정한 ‘한글 맞춤법’(1980)을 따름.
(2) 표제어 분리: 현대어와 고어·이두를 분리, 분책함.
(3) 표제어 증가: 신어·방언 등 새로운 표제어를 대폭 증가시킴.
(4) 한자어: 한자어 표제어의 한자는 뜻풀이 끝으로 돌려 붙임.
(5) 북한어: 북한어도 일부 수록함.
(6) 관용어·속담: 최대한 제시함.
(7) 용례: 용례를 비교적 풍부히 제시함.
(8) 순수 언어 사전식: 고유 명사·일본어·외국어 등을 최대한 억제하여 순수사전 체계를 지향함.
의의·해설: 이 사전은 국어사전 사상 또 다시 획기직인 기록들을 수립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어사전은 특정 학자나 학파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법인 신정서법을 외면하고 한글 학회의 ‘한글 맞춤법’에 따라 사전을 편집한 것은 크게 재고할 점이라 하겠다. 합성어·어원·문법 기능어의 풀이·용도의 제시·용례의 빈약성 등은 기존 사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 또한 적지 않다. 현대어와 고어의 분리, 신어·방언·관용어· 속담·북한어 등의 대폭 수용, 고유 명사·사이비 외래어의 억제 등으로 순수 국어사전을 모처럼 지향한 점 등은, 과거 ‘큰사전’의 아쉬움을 크게 개선한 것으로 이후 국어사전에 좋은 귀감이 될 것으로 믿는다(교수 신문 1992, 정재도 1992).


      4.9. 금성 출판사 판 ‘금성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1992.4.20.
출판사명: 금성 출판사
편집 위원: 김민수·고영근·임홍빈·이승재
판형: 변형 국배판
면수: 3,828면
표제어 수: 약 40만 어
특성: (1) 정서법: 4대 신정서법을 따름.
(2) 어원: 최초로 어원을 제시함.
(3) 용례: 근현대 작품에서 수집한 용례를 풍부히 제시함.
(4) 북한어: 북한어 3천여 어를 수록함.
(5) 백과사전식
의의·해설 : 이 사전은 몇 가지 면에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1988년 국가에서 공표한 4대 정서법을 이 사전은 부지런히 반영하였다. 풍부한 어원 제시는 국어사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용례 제시에서, 다른 국어사전들은 관용어·속담 등 주로 특수 어휘군에만 치중했으나, 이 사전은 일반 어휘에까지 확대하여 여러 작품에서 수집한 용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사전은, 새로운 맞춤법·어원·용례·방대한 표제에 등등으로 우리 국어사전 사상 또 하나의 귀중한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5. 주요 국어사전류 종합 검토

  위에서 각 사전마다 간략히 소개한 사항들을 좀 더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번호 편저자명 간행 연도 사전명 표제어 수 면 수 비고
1 조선 광문회   1911~?
  미간
 말모이 ? ?   미간행의 최초  사전
2 문세영   1938. 7.  조선어 사전   약 10만   1,689   최초의 국어사전
3 이윤재, 김병제   1947. 12.  표준 조선말  사전  약 8.5만    908   국어사전의 기초  닦음, 순수 언어  사전 지향
4 한글 학회   1047. 10~
  1957. 10.
 큰사전   약 16만   3,804   최초의 대사전,  백과사전식
5 신기철, 신용철   1958. 12.  표준 국어사전   약 20만   1,708   백과사전식
6 이희승   1961. 12.  국어 대사전   약 23만   3,463   본격 사전, 백과사전식
7 신기철,신용철   1974. 9.  새 우리말 큰사전   약 31만   3,856  본격 사전, 백과사전식
8 현문사   1976.3.  한국어 대사전   약 40만   3,049  최대 사전, 백과사전식
9 이희승   1982. 11.  수정 증보판 국어 대사전   약 42만   4,504  관용어용례 수록, 최대 어휘량, 백과사전식
10 한글 학회   1992. 1.  우리말 큰사전   약 45만   5,856  사적 정서법 적용, 관용어속담용 례 다량 수록, 최 대 사전, 순수 언 어 사전식
11 금성 출판사   1992. 4.  금성판 국어 
대사전
  약 40만   3,823  신정서법 적용, 어원 최초 제시, 관용어용례 다수 제시 백과사전식
12 이희승   1994. 3.  전면 개정판 국어 대사전   약 45만   4,784  신정서법 적용, 관용어용례 제시, 백과사전식


      5.1. 항목별 국어사전 고찰

          5.1.1. 한국어 사전 편찬사

  국어사전의 출발은, 1910년대초 주시경의 미간행 고본 ‘말모이’로부터 80여 년, 1938년에 최초로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으로부터는 고작 56년 전의 일이었다. 서구 여러 나라의 몇 백 년 넘는 언어 사전 편찬사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매우 짧다. 그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는 학문에 진념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반 세기에 걸친 피식민지 상황, 6·25전쟁, 수십 년간의 비문화적 독재 정치, 그 모든 시대 상황에 대한 저항 운동 등등 우리의 근대 100년사는 역사상 미증유의 대환란기였다고 할 만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저만한 국어사전이나마 우리가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5.1.2. 표제어 증가와 그 문제점

  최초의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제어는 약 10만 어쯤으로 추산된다. 그 뒤 5~10년 단위로 새로운 사전이 나오면서 표제어도 몇 만 개씩 증가되어 왔다. 그리하여 1992년도 한글 학회 편 ‘우리말 큰사전’에 이르러서는 표제어 사상 최대량인 45만 어가 수록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한편 일석의 ‘국어 대사전’도 판을 거듭할 때마다 체재·표제어 등에서 신기록을 수립해 왔다. 23만 어를 수록한 1961년도의 초판, 42만 어의 1982년도 증보판, 그리고 약 45만 어로 추정되는 1994년 판 모두가 간행될 때마다 기존 사전들을 능가하여 최대 어휘량을 자랑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표제어의 수량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냉철히 반성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표제어가 약 62만 어, 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은 약 50만 어 등등 외국의 국어사전들은 대체로 50만 안팎의 표제어를 싣고 있다. 이 어휘들은 물론 고유 명사 등을 제외한 일반 어휘들만을 뜻한다. 그들은 이렇게 언어 사전의 본령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 사전은 어떠한가. 표제어의 30% 정도가 인명·지명·책명·사건명 등의 고유 명사로 추정된다. 또한 외래어 아닌 외국어도 10% 안팎으로 실려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어사전의 45만 어휘 중 일반 어휘는 27만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조재수는 이보다 더 적게 잡아 국어 어휘를 20만 정도로 추정한 바 있다(조재수 1984: 21).
  초기의 문세영이나 이윤재의 사전은 순수 언어 사전적 체재였었다. 그런데 한글 학회의 ‘큰사전’이 고유 명사·사건명 등을 대거 등재시켜 표제어를 대폭 늘리면서부터 백과사전적 체재는 국어사전의 전형인 것처럼 오늘날까지 널리 확산되고 말았다. 이런 편집 방침은 물론 일본의 ‘광사림’(廣辭林)이나 ‘일본 국어 대사전’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1992년도 판 ‘큰사전’은 고유 명사 등을 원칙적으로 제외시키면서 백과사전형에서 손수 언어 사전형으로 국어사전 체제를 일신하고 말았다. 어휘 늘리기의 무분별한 무한 경쟁 풍조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런 변화는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언어 사전의 진정한 가치는 고유 명사·사이비 외래어 등이 제외되고 일반 어휘로만 구성된 순수성에 있다.


          5.1.3. 관용어에 관한 문제점

  관용어가 처음 실린 것은 현문사의 ‘한국어 대사전’이었다. 이는 국어사전 사상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런데 그 분류 기준에 일관성이 부족하여, 같은 유형의 특수 어휘군 가운데 일부는 관용어로, 다른 일부는 단어로 처리하고 품사까지 부여하였다. 이런 분류 방식은 여러 면으로 혼란을 초래하였다. 또한 관용어에 용례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자못 아쉬운 일이었다.
  만면에 일석의 ‘국어 대사전’은 대체로 일관된 관점에서 관용어를 준표제어로 설정하고 그 용례도 최대한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뒤로 대부분의 국어사전들은 일석 사전의 체재대로 관용어를 싣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992년도 한글 학회나 금성판 국어사전들이 모두 관용어와 그 용례들을 대폭 수록하고 있음은 아마도 일석 사전의 영향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앞으로는 고금의 모든 전적과 일상 대화에서도 용례를 대거 수집하여, 서양의 사전처럼 방대한 용례집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5.1.4. 문법 용어·체계·뜻풀이

  국어학계는 그 학풍에 따라 이른바 ‘한글 학파’와 ‘문법 학파’로 나뉘어 온 것이 사실이다. 1961년 이래 국어사전계의 독보적 존재로서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온 일석의 국어사전은, 문법학파의 보편적이며 공인된 문법 용어와 체계를 따르고, 뜻풀이도 비교적 간결·정확·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국어사전들은 참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문법 정보와 그 체계, 동음어의 배열 순위, 다의어의 의미 부여 순위, 뜻풀이의 과학성·용이성·간결성, 표제어의 용례 등등 미비점이 대단히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고를 달리하여 독립된 논제로서 수없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5.2. 편저자별 국어사전 고찰

  ①의 주시경 ‘말모이’는 비록 출간되지는 못하였으나 국어사전의 효시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②의 문세영 ‘조선어 사전’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발간된 국어사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④ 한글 학회 ‘큰사전’은 그 방대한 규모·체재·편찬 과정의 고난·진지성·오랜 세월의 적공 등등을 통하여 모든 국어사전들의 거울이요 모태가 되었기에 우리 문화사상 영윈히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이기문 1992: 2).⑦ 신기철·신용철 형제의 ‘새 우리말 큰사전’은 최근까지 일석 사전과 함께 시장 판매 점유율을 양분해 왔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까닭은, 아마도 모든 면에서 일석 사전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⑩ 1992년 판 한글 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은 또 한번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였다. 표제어가 국어사전 중 최다수인 약 45만 어요, 우리 국어사전들의 병폐인 백과사전식 체재를 과감히 벗어나, 고유 명사·사이비 외래어 등을 제외시키면서 순수 언어 사전 유형으로 그 편찬 방침을 바꾼 점 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는 언어 사전의 정도로 비로소 들어선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소수의 주요한 고유 명사 등이 더러 섞여 있으므로 순수한 언어 사전은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익환 1992:31, 이기문 1992: 2). 한편 이 한글 학회의 새 사전이, 국법인 4대 정서법을 거부하고 자기 학회의 사적 규범인 ‘한글 맞춤법’에 의거하여 문법 용어 등을 적용한 것은, 국어사전의 규범성·통일성·교육적 기능 등에 비추어 볼 때 적지 않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⑪ 1992년도 ‘금성판 국어 대사전’은 약 40만 어라는 방대한 표제어, 최초의 어원 제시, 관용어의 수록, 용례의 제시 신정서법의 적용 등 언중의 실용성에 가장 가까이 부응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⑥·⑨·⑫ 일석 ‘국어 대사전’의 특성은, 위에서 고찰해 온 여타 사전들과 비교하여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제어는 1판·2판·3판이 나올 때마다 당시의 최대량을 기록하였다. 문법 용어와 체계는 통일 문법 체계를 따름으로써 보편성·친근성을 확보하여 대중에 접근하기 유리하였다. 용이성·간결성·정확성을 기한 뜻풀이는 널리 정평이 나 있음이 사실이다. 백과사전식 체제는, 한 권의 사전으로 많은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기능 면에서는 대중의 기호에 잘 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현존하는 다른 국어사전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서 특기할 바는 아니다. 국어사전의 학문적 기능으로서 갗추어야 할 어원이나 언어의 통시적 변화 양상 등의 결여는 이 자리서 논의할 상황이 아니므로 달리 논의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초까지 ⑦의 신기철 사전과 함께 일석의 사전은 우리 국어사전 시장을 양분하여 석권해 했다. 그러나 1992년의 한글 학회와 금성 출판사의 사전, 1994년의 일석 사전 등 면모를 일신한 새로운 국어 대사전 몇 종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옴으로써, 앞으로 사전계의 판도 변화가 주목된다. 다만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기존 모든 국어사전들이 각기 그 특성에 따라 국어의 어문 정리와 통일에 기여해 왔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전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편저자들의 피땀 어린 노고에 마음 깊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6. 결 어

  1994년 10월의 문화 인물은 이희승 선생이다. 이에 따라 이 글은 일석의 인격과 학문을 기리고 유덕을 추모하는 일환으로 쓰여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분이 펴낸 ‘국어 대사전’에 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주된 임무였다. 따라서 이 글의 논조가 긍정적 시각에서 그분의 고결한 인품과 ‘국어 대사전’의 좋은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석의 ‘국어 대사전’은, ’61년·’82년·’94년 3차례에 걸쳐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발행되었다. 그때마다 이 사전들은 그 당시까지 나와 있던 국어사전 중 가장 좋은 사전이라는 찬사를 듣곤 하였다. 그렇게 좋은 사전이었음을 객관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우리는 위에서 국내의 주요 사건들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석 ‘국어 대사전’의 문법 용어와 체재가 공식적·보편적이어서 언중이 쉽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표제어가, ’61년판이 약 23만, ’82년 판이 42만, ’94년 판이 45만쯤으로 발행 당시마다 국어사전 중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표제어의 분야가 다양하여 각계각층 사람들이 요구하는 정보를 보다 많이 제공할 수 있었다. 뜻풀이가 쉽고 정확하고 간결하여 언중의 호감을 사기에 족하다. 그리하여 일석의 ‘국어 대사전’이 발행될 때마다 여러 국어사전 중 압권으로서 언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며 독보적인 존재로 지금까지 성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듯하다.
  이 글은 특정 집필 의도로 인하여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희승 선생을 기리며 추모하는 일이 이 글의 주안점으로, 글의 논조가 다분히 긍정적이어서 혹시 객관성이 결여되지 않았을까하는 점이다. 둘째, 지면의 제약과 더불어 사전의 거시 구조에 초점이 맞추어짐으로써, 미시 구조에 대하여는 논의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전학의 하위 범주에 해당되는, 개별 표제항·음운 정보·문법의 하위 정보·어원·표제어의 의미 정의·용법 해설·용례·유의어·반의어 등등(홍재성 1986:63, 이병근 1986:8, 이익환 1992:35)에 대해서는 따라서 마땅히 기회를 달리하여 논의해야 할 것이다. 사전학의 렌즈로 우리 국어사전들을 들여다보면 개선되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그것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나마 비교 우위론의 관점에서, 이희승 신생의 ‘국어 대사전’은 가장 훌륭한 사전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고 판단된다.
  일석과 살아생전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 일석의 글을 유심히 읽은 경험이 별달리 없는 사람들도 그분은 위대한 분이었노라고 입을 모은다. 그분은 94년의 생애를 통하여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다. 필자도 분외의 일이나 다행히 그분의 많은 제자들 가운데 말석에서나마 30년간 그분을 가까이 모시며 인간과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그분의 동숭동 서재에서, 마로니에가 내다보이는 찻집에서, 또한 출판사에서 그분을 단독으로 모셨던 기회가 필자에겐 여러 번 있었다, 시간 약속을 1분도 어기지 않던 그분을 가만히 뵈올 때마다 필자는 학이나 난초를 대하고 있다는 상념에 빠지곤 했었다. 살아간 길은 서로 달랐으되, 만년의 칸트나 괴테의 흰머리와 깡마른 모습이 서로 겹쳐 보이곤 하였었다. 그분에게는 훌륭한 학자라거나 수필가 또는 교육자 등의 구체적인 명칭이 잘 어울리지 않는 둣하다. 그분은 한 시대의 큰 스승, 아니 그저 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위대한 스승의 품 안에 안겨 본 사람이라면, 부모는 육체를 주셨으나 스승은 영혼의 부모라는 또 하나의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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