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대사전’ 편찬
1. 머리말
일석 이희승 선생은 국어학자요, 교육자며 문인이었다. 일석(一石)은 이 시대 마지막 선비, 아니 한 마디로 작은 거인이었다. 키가 남달리 작으면서도 학문과 인품 양면에 걸쳐 거대한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분은 세상에 드문 인격자, 군자였다. 군자는 불기(不器)라던가. 일석은 관계 범주상 학자요 교육자였으나, 한두 가지의 전문인으로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분은 그 여러 전문 기능을 동시에 지니면서 그러한 능력들을 조화시키고 초월한 대인, 이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큰 스승이었다.2. 일석의 인품
일석 이희승 선생은 평생 동안 ‘삼불의 비애(三不-悲哀) 속에서 살다 가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언제나 ‘벙어리·장님·귀머거리’ 노릇으로 겨우 실낱같이 구명도생(救命圖生)할 수 있었노라고, 자신의 마지막 수필집 ‘메아리 없는 넋두리’에서 나직히 술회하고 있다(김문창 1990:36). 그러나 과연 그분의 자탄(自歎)처럼 그토록 이 세상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했던 은둔의 일생이었던가. 아니 오히려 그분은 혹독했던 시련의 세월에 준열히 저항했던 위대한 영혼이요, 깨어 있는 시대 정신의 지고(至高)한 명징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고 판단된다. 정의를 몸소 실천하지 않을 수 없었던 행동하는 지성인의 전형을 그분은 단호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은 지조(志操) 그 자체라 할 만하다.3. 이희승 편 ‘국어 대사전’ 개요
일석 이희승 선생이 편찬한 ‘국어 대사전’은 국어사상 영원히 빛날 하나의 금자탑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 사전은 그 간행 시기와 내용·체재상 3가지로 나뉜다. 제1판은 1961년도, 2판은 1982년도, 3판은 1994년도에 각각 간행되었다. 이들에 대하여 아래에서 시대순으로 약술하고자 한다.3.1. 초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 1961. 12. 28. | ||
준비 기간: | 1956. 5. 7.~1961. 12. 28. | ||
간행 횟수: | 32쇄 (1961~1981,20년간) | ||
출판사명: | 민중 서관 | ||
판행: | A5판(가로 15㎝×세로 21㎝) | ||
면 수: | 3,463면 | ||
표제어 수: | 약 23만 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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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름. | ||
(2) 문법 용어·체계: 일석 자신의 학교 문법서인 ‘새 고등 문법’을 따름. | |||
(3) 표제어: 약 23만 어. 당시 국어사전 중 최대 분량임. | |||
(4) 백과사전식: 외래어뿐만 아니라 외국어·인명·지명·책명·사건명 몇 가지 부록 등도 수록함. | |||
의의·해설: 일석의 ‘국어 대사전’은 한글 학회 편인 ‘큰사전’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본격적으로 학문적·체계적 바탕 위에서 당시 국어학계의 연구 성과를 총동원한 점에서 최초의 국어 대사전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이 사진의 표제어 양은, 그 이전의 최대 사전인 ‘큰사전’의 약 16만 어휘보다 약 7만 어가 더 많았으며, 용어의 보편성, 뜻풀이의 세련·현대화·용이성 등은 커다란 장점이었다. 또한 6권으로 분책된 ‘큰사전’의 사용상 불편 등을 해소한 1책 단권의 규모는 실용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환영받았다. 사서류 개척기에 불과했던 ’60년대 초에 이는 일대 획기적인 업적이었으므로,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한국 출판 문화상’을 1962년에 수상했다. 그 뒤 이 사전은 국어사전의 대명사처럼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1982년의 수정 증보판이 나올 때까지 32쇄를 거듭하기에 이르렀다(조재수 1984, 김민수 1986, 이병근 1990, 심재기 1991). |
3.2. 제2판 수정 증보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 1982. 11. 25. |
준비 기간: | 1972~1962 |
출판사명: | 민중 서림 |
판형: | 사륙배판(가로 19㎝×세로 25.6㎝) |
면 수: | 4.504면 |
표제어 수: | 약 42만 어 |
특성: |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
(2) 문법 용어·체계: ‘학교 문법 통일안’(1963)을 따름. | |
(3) 표제어: 초판의 23만 어보다 무려 19만 어가 증가한 42만 어로 최대 분량임. | |
(4) 관용어: 국어사전 역사상 최초로 관용어 2,800여 어와 그에 따르는 용례를 수록함. | |
(5) 백과사전식 | |
의의·해설: 이 사전의 표제항 42만여 어는 그 당시 국어사전 가운데 최대의 분량으로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압권이라 할 만했다. 뜻풀이 비교적 정연하고 간결·정확하여 일반 교양용 국어사전으로는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관용어의 수록은 국어사전 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사전의 교육적 기능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관용어를 포함한 표제어에 가능한 한 많은 용례를 제시한 것 또한 국어사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
3.3. 제3판 전면 개정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 1994.3.25. |
출판사명: | 민중 서림 |
판형: | 사륙배판 |
면 수: | 4,784면 |
표제어 수: | 약 45만 어 |
특성: | (1) 정서법: 1988년 1월에 전면 고시된 문교부 제정 4대 정서법을 따름. |
(2) 표제어: 신어·전문어 등이 다수 추가되었으나, 구체적인 수량은 밝히지 않았음. | |
(3) 어원: 1천여 항의 어원이 새로 추가됨. | |
(4) 북한어: 부록으로 일부 수록함. | |
(5) 백과사전식 | |
의의·해설: 이번 제3판 일석 국어사전은 새로운 국어 정서법이 반영되었고, 어원 1천여 항과 북한어 일부가 새로이 실렸다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새로운 표제항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백과사전식 체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서, ’82년도 판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시적 변화로서 ’82년 판보다 ’94년 판이 280면쯤 증가하였다. 부록 증면 100여 면 이외에 180여 면의 본문 추가로써 추론에 보면, 이번 3판은 약 45만 안팎의 어휘가 되리라 짐작한다. |
4. 기타 주요한 국어사전들
일석 편 ‘국어 대사전’의 특성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기타 주요한 국어사전들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국어사전류는 중소 사전까지 합하면 대략 150여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요성이나 대규모라는 기준으로 보아 주요 사전은 약 20종쯤으로 파악된다. 이 중에서도 일반 언중에게 널리 알려지거나 애용되는 것은 다시 몇 종으로 제한되므로, 여기서는 주요한 대사전 몇 종에 한해서만 그 대강을 검토하기로 한다(조재수 1984, 이병근 1986, 남기심 1987, 김태기 1987, 이익환 1992).4.1. 조선 강문회 편 ‘말모이’
간행 연도: | 간행되지 앓음. |
준비 기간: | 1911~1914(?) |
주무 기관: | 조선 광문회 |
집집: | 주시경·김두봉·권덕규·이규영 등 |
의의·해설: 국어사전 ‘말모이’는, 최남선이 1910년 10월에 설립한 조선 광문회에서 그 원고 작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그 일부가 ‘ㄱ~걀죽’까지만 원고본으로 남아서 이병근(1977)이 소장하고 있다. 이 원고본은 우리 국어 표제어를 국어로 풀이한 최초의 순수 국어사전이라는 점, 비록 그 작업이 중단되어 햇빛을 보지 못하였으나, 현대 국어사전을 낳게 한 주요한 동기와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등등으로 그 역사적 의의는 지대하다(이병근 1977·1990). |
4.2. 문세영 편 ‘조선어 사전’
간행 연도: | 1938. 7. 10. |
출판사명: | 조선어 사전 간행회 |
판형: | A5판 |
면 수: | 1,689면 |
표제어 수: | 약 10만 어 |
표제어 범위: | 고유어·방언·고어·이두·한자어·고사 성어·속담·전문 용어·외래어·일부 고유 명사 등 |
특성: |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알안’이 최초로 적용됨. |
(2) 발음: 음장을 표시함. | |
(3) 표제어: 성씨만 올리고, 윈칙적으로 고유 명사·사건명 등은 수록하지 아니 함 | |
(4) 순수 언어 사전식 | |
의의·해설: 이 사전은 조선 총독부 편 ‘조선어 사전’(1920)을 대본으로 하고 이윤재·한징 등의 지도를 받았으나, 역사상 최초로 간행된 국어사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길이 빛날 것이다. 이 사전은 고유 명사는 원칙적으로 제외하고, 고유어로부터 전문 용어에 이르기까지 표제어로 삼아 순수 언어 사전을 시도하였다. 뜻풀이·주석 내용·배열 방식 등도 세련되어 현대적 사전의 면모를 갖춘 것으로 당시로서는 유일무이한 국어사전이었다. 나라를 잃고 우리 민족어의 사용마저 혹독히 탄압받던 질곡의 시대에 눈 속의 매화처럼 역설적으로 피어난 이 사전은 그 당시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희망이요 힘이며 감격이었다. 그래서 이 사전은 발행 즉시 초판 1천 부가 매진되어 2쇄, 3쇄를 거듭하며 당시 우리 표준어 보급에 기여하면서 이 땅 유일한 국어사전으로 만인의 칭송과 사랑을 독차지하였었다(조재수 1984, 김민수 1986, 이병근 1990). |
4.3. 이윤재 편 ‘표준 조선말 사전’
간행 연도: | 1947. 12. 20. |
준비 기간: | 1933~1947 |
저자명: | 이윤재 지음, 김병제 엮음 |
출판사명: | 아문각 |
판형: | 사륙판 |
면 수: | 908면 |
표제어 수: | 약 8만5천 어 |
특성: |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
(2) 발음: 필요한 경우 표시함. | |
(3) 표제어: 고어·이두·고유 명사 등은 원칙적으로 제외함. | |
(4) 표제어의 어종별 구별: 고유어와 구별하고자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 표를 붙임. | |
(5) 공시적 사전: 고어·이두 등을 제외하여 공시성을 표방함. | |
(6) 순수 언어 사전: 일러두기에는 고유 명사도 약간 수록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거의 싣지 않았음. | |
의의·해설: 이 사전은 고어·이두 등을 제외하여 문세영의 국어사전과는 일부 그 체제가 다르다. 그러나 고유 명사를 제외하는 등 대부분의 편집 방침은 문세영의 그것과 동질적이다. 이는 문세영이 사전 편찬 과정에서 이윤재의 지도에 전적으로 기대었던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윤재의 국어사전이 출판 순서상으로는 문세영의 그것보다 9년 늦게 나왔으나, 사실 일찍이 이윤재가 조선어 학회 국어사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이다. |
4.4. 한글 학회 편 ‘큰사전’
간행 연도: | 1947. 10. 9.~1957. 10. 9. | ||
준비 기간: | 1929. 10. 31,~1957. 10. 9. | ||
주관 기관: | 조선어 사전 편찬회→조선어 학회→한글 학회 | ||
출판사명: | 을유 문화사 | ||
판형: | B5판, 1책 6권 | ||
면 수: | 3,804면 | ||
표제어 수: | 16만 4,125 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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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 ||
(2) 문법 용어·체계: 이른바 ‘이름씨’식 한글 학파의 체계를 따름. | |||
(3) 발음: 필요한 경우에 표시함. | |||
(4) 표제어: 고유 명사에 이르기까지 어휘를 최대한 수록함. | |||
(5) 체재: 용례·관계어 등으로써 어휘 구조를 명기하는 등 최초의 구조적 사전이라 하겠음. | |||
(6) 백과사전식 | |||
(7) 크기:당시 최고·최대의 사전임. | |||
의의·해설 : 이 ‘큰사전’의 백과사전식 체재와 방식은 그 뒤로 나오는 국어사전 편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 한 마디로 이 사전은 우리 겨레의 종합적 국어사전의 첫 금자탑으로 우리 문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찬란한 광휘였다. |
4.5. 신기철·신용철 편 ‘표준 국어사전’
간행 연도: | 1958. 12. 10. |
준비 기간: | 10년 |
출판사명: | 을유 문화사 |
판형: | 사륙배판 |
면 수: | 1,708면 |
표제어 수: | 약 20만 어 |
특성: | (1) 정서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따름. |
(2) 문법 용어·계계: 이른바 ‘명사’식 문법 체계를 따름. | |
(3) 발음: 필요한 경우에 표시함. | |
(4) 표제어: 최대로 수록함. | |
(5) 백과사전식 | |
의의·해설: 이 사전은 표제어의 양이 ‘큰사전’보다 근 4만 어가 늘었으나, 그 체재는 ‘큰사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
4.6. 신기철·신용철 편 ‘새 우리말 큰사전’
간행 연도: | 1974. 9. |
출판사명: | 삼성 출판사 |
판형: | 사륙배판, 1책 2권 |
면 수: | 3,856면 |
표제어 수: | 약 31만 어 |
특성: | (1) 표제어: 58년도 초판의 증보판으로, 표제어 31만여 어는 당시 국어사전으로는 최대 수량임. |
(2) 백과사전식 | |
의의·해설 : 이 사전은 한글 학회 편과 이희승 편 국어사전보다 표제어의 양이 증가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큰사전’은 6권으로 분책되어 사용상 불편하고 또한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이 사전은 ‘큰사전’과 이희승 편 ‘국어 대사전’과 모든 면에서 유사했으며 새로이 출판된 데다 어휘 수도 많았으므로 그 뒤 근 10년 동안 일석 사전과 함께 가장 많이 애용된 사전으로 유명하다. 시장 점유율로 보아 일석 편이 60% 정도, 이 신기철 편이 40% 정도로 우리 나라 국어사전 판도를 양분하여 한 동안 가장 유명한 사전으로 언중의 사랑을 받았다(김태기 1987, 이병근 1990). |
4.7 한국어 사전 편찬회 편 ‘한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 1976. 3. |
준비 기간: | 1971. 4,~1976. 3. |
출판사명: | 현문사 |
감수자: | 정인승·양주동·이숭녕·남광우·이응백·이을환·지춘수 등 |
판형: | 신팔절판(가로 26㎝×로 37㎝×두께 11㎝) |
면 수: | 3,049면 |
표제어 수: | 약 40만 어 |
특성: | (1) 발음: 필요한 경우에 표시함. |
(2) 관용어: 가능한 한 관용어와 그 용례를 제시함. 이는 국어사전 사상 최초의 일이었음. | |
(3) 고어: 가능한 한 출전을 밝힘. | |
(4) 크기: 표제어 약 40만 어는 당시의 국어사전 중 최대임. | |
(5) 백과사전식: 대역 사전처럼 각 표제어에 해당되는 영어를 제시하여 한영 사전의 기능도 부여함. | |
의의·해설: 이 사전은 그 당시까지 나온 사전 중 최대 어휘량을 자랑한다. 신팔절판의 판형은 초대형으로서 국내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미국의 ‘웹스터 영어 사전’ 같은 크기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점보판의 판형은 휴대 및 사용에 불편했다. 관용어 제시는 국어사전 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나 그에 딸리는 용례가 부족했고, 또한 일부 관용어를 단어로 간주하여 품사를 부여한 것은 부적절한 조치였다. 그 당시는 최대의 사전으로 1976년도 ‘한국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화젯거리였으나 보급률은 저조했었다. |
4.8. 한글 학회 편 ‘우리말 큰사전’
간행 연도: | 1992. 1. 25. |
출판사명: | 어문각 |
판형: | 사륙배판, 1책 4권, 총천연색 |
면 수: | 5.856면 |
표제어 수: | 약 45만 어 |
특성: | (1) 정서법: 문교부의 신정서법을 거부하고, 한글 학회가 자체적으로 제정한 ‘한글 맞춤법’(1980)을 따름. |
(2) 표제어 분리: 현대어와 고어·이두를 분리, 분책함. | |
(3) 표제어 증가: 신어·방언 등 새로운 표제어를 대폭 증가시킴. | |
(4) 한자어: 한자어 표제어의 한자는 뜻풀이 끝으로 돌려 붙임. | |
(5) 북한어: 북한어도 일부 수록함. | |
(6) 관용어·속담: 최대한 제시함. | |
(7) 용례: 용례를 비교적 풍부히 제시함. | |
(8) 순수 언어 사전식: 고유 명사·일본어·외국어 등을 최대한 억제하여 순수사전 체계를 지향함. | |
의의·해설: 이 사전은 국어사전 사상 또 다시 획기직인 기록들을 수립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어사전은 특정 학자나 학파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법인 신정서법을 외면하고 한글 학회의 ‘한글 맞춤법’에 따라 사전을 편집한 것은 크게 재고할 점이라 하겠다. 합성어·어원·문법 기능어의 풀이·용도의 제시·용례의 빈약성 등은 기존 사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
4.9. 금성 출판사 판 ‘금성판 국어 대사전’
간행 연도: | 1992.4.20. |
출판사명: | 금성 출판사 |
편집 위원: | 김민수·고영근·임홍빈·이승재 |
판형: | 변형 국배판 |
면수: | 3,828면 |
표제어 수: | 약 40만 어 |
특성: | (1) 정서법: 4대 신정서법을 따름. |
(2) 어원: 최초로 어원을 제시함. | |
(3) 용례: 근현대 작품에서 수집한 용례를 풍부히 제시함. | |
(4) 북한어: 북한어 3천여 어를 수록함. | |
(5) 백과사전식 | |
의의·해설 : 이 사전은 몇 가지 면에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1988년 국가에서 공표한 4대 정서법을 이 사전은 부지런히 반영하였다. 풍부한 어원 제시는 국어사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용례 제시에서, 다른 국어사전들은 관용어·속담 등 주로 특수 어휘군에만 치중했으나, 이 사전은 일반 어휘에까지 확대하여 여러 작품에서 수집한 용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사전은, 새로운 맞춤법·어원·용례·방대한 표제에 등등으로 우리 국어사전 사상 또 하나의 귀중한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
5. 주요 국어사전류 종합 검토
위에서 각 사전마다 간략히 소개한 사항들을 좀 더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번호 | 편저자명 | 간행 연도 | 사전명 | 표제어 수 | 면 수 | 비고 |
1 | 조선 광문회 |
1911~? 미간 |
말모이 | ? | ? | 미간행의 최초 사전 |
2 | 문세영 | 1938. 7. | 조선어 사전 | 약 10만 | 1,689 | 최초의 국어사전 |
3 | 이윤재, 김병제 | 1947. 12. | 표준 조선말 사전 | 약 8.5만 | 908 | 국어사전의 기초 닦음, 순수 언어 사전 지향 |
4 | 한글 학회 |
1047. 10~ 1957. 10. |
큰사전 | 약 16만 | 3,804 | 최초의 대사전, 백과사전식 |
5 | 신기철, 신용철 | 1958. 12. | 표준 국어사전 | 약 20만 | 1,708 | 백과사전식 |
6 | 이희승 | 1961. 12. | 국어 대사전 | 약 23만 | 3,463 | 본격 사전, 백과사전식 |
7 | 신기철,신용철 | 1974. 9. | 새 우리말 큰사전 | 약 31만 | 3,856 | 본격 사전, 백과사전식 |
8 | 현문사 | 1976.3. | 한국어 대사전 | 약 40만 | 3,049 | 최대 사전, 백과사전식 |
9 | 이희승 | 1982. 11. | 수정 증보판 국어 대사전 | 약 42만 | 4,504 | 관용어․용례 수록, 최대 어휘량, 백과사전식 |
10 | 한글 학회 | 1992. 1. | 우리말 큰사전 | 약 45만 | 5,856 | 사적 정서법 적용, 관용어․속담․용 례 다량 수록, 최 대 사전, 순수 언 어 사전식 |
11 | 금성 출판사 | 1992. 4. |
금성판 국어 대사전 |
약 40만 | 3,823 | 신정서법 적용, 어원 최초 제시, 관용어․용례 다수 제시 백과사전식 |
12 | 이희승 | 1994. 3. | 전면 개정판 국어 대사전 | 약 45만 | 4,784 | 신정서법 적용, 관용어․용례 제시, 백과사전식 |
5.1. 항목별 국어사전 고찰
5.1.1. 한국어 사전 편찬사
국어사전의 출발은, 1910년대초 주시경의 미간행 고본 ‘말모이’로부터 80여 년, 1938년에 최초로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으로부터는 고작 56년 전의 일이었다. 서구 여러 나라의 몇 백 년 넘는 언어 사전 편찬사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매우 짧다. 그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는 학문에 진념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반 세기에 걸친 피식민지 상황, 6·25전쟁, 수십 년간의 비문화적 독재 정치, 그 모든 시대 상황에 대한 저항 운동 등등 우리의 근대 100년사는 역사상 미증유의 대환란기였다고 할 만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저만한 국어사전이나마 우리가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5.1.2. 표제어 증가와 그 문제점
최초의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제어는 약 10만 어쯤으로 추산된다. 그 뒤 5~10년 단위로 새로운 사전이 나오면서 표제어도 몇 만 개씩 증가되어 왔다. 그리하여 1992년도 한글 학회 편 ‘우리말 큰사전’에 이르러서는 표제어 사상 최대량인 45만 어가 수록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5.1.3. 관용어에 관한 문제점
관용어가 처음 실린 것은 현문사의 ‘한국어 대사전’이었다. 이는 국어사전 사상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런데 그 분류 기준에 일관성이 부족하여, 같은 유형의 특수 어휘군 가운데 일부는 관용어로, 다른 일부는 단어로 처리하고 품사까지 부여하였다. 이런 분류 방식은 여러 면으로 혼란을 초래하였다. 또한 관용어에 용례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자못 아쉬운 일이었다.5.1.4. 문법 용어·체계·뜻풀이
국어학계는 그 학풍에 따라 이른바 ‘한글 학파’와 ‘문법 학파’로 나뉘어 온 것이 사실이다. 1961년 이래 국어사전계의 독보적 존재로서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온 일석의 국어사전은, 문법학파의 보편적이며 공인된 문법 용어와 체계를 따르고, 뜻풀이도 비교적 간결·정확·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5.2. 편저자별 국어사전 고찰
①의 주시경 ‘말모이’는 비록 출간되지는 못하였으나 국어사전의 효시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②의 문세영 ‘조선어 사전’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발간된 국어사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④ 한글 학회 ‘큰사전’은 그 방대한 규모·체재·편찬 과정의 고난·진지성·오랜 세월의 적공 등등을 통하여 모든 국어사전들의 거울이요 모태가 되었기에 우리 문화사상 영윈히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이기문 1992: 2).⑦ 신기철·신용철 형제의 ‘새 우리말 큰사전’은 최근까지 일석 사전과 함께 시장 판매 점유율을 양분해 왔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까닭은, 아마도 모든 면에서 일석 사전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6. 결 어
1994년 10월의 문화 인물은 이희승 선생이다. 이에 따라 이 글은 일석의 인격과 학문을 기리고 유덕을 추모하는 일환으로 쓰여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분이 펴낸 ‘국어 대사전’에 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주된 임무였다. 따라서 이 글의 논조가 긍정적 시각에서 그분의 고결한 인품과 ‘국어 대사전’의 좋은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