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 이희승 선생과 한글 맞춤법
1.서론
1.1 말과 문자
1933년 조선어 학회(현재의 한글 학회)가 제정 공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하 ’통일안‘으로 약칭함)은 그동안 부분적인 개정을 거쳐 1989년 2월 28까지 쓰였으나, 같은 해 3월 1일 이후부터 새로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쓰이게 되었다.1.2 일석의 문자관
국어학 논고(제1집) ‘문자 이야기’에 일석의 언어와 문자에 대한 견해가 나와 있다. 다음 (1)이 그것이다.(1) | 말하자면 文字는 言語가 입는 衣裳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읍니다. 言語는 몸똥이요, 文字는 옷입니다. 그러므로 言語가 생기기 전에 文字가 있을 수 없읍니다. ……중략…… 어쨌든 言語와 文字는 密接한 關係를 가졌읍니다, 文字는 言語의 衣裳이요, 또 文化를 재는 尺度입니다. |
(2) |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 때에, 좀 더 국어의 본질(本質)에 착안(着眼)하였으면, 당연히 단어 본위로 철자(綴字)하도록 글자를 만들었을 것이요, 지금 쓰고 있는 글자와 같이 음절(音節) 본위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원칙적(原則的)으로 한 음절(音節)이 한 단어(單語)가 되는 한문(漢文)글자의 영향(影響)를 받아서 그리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
1.3 한글 표기의 역사적 실상
세종 25년(1443)에 창제된 한글은 15세기에 매우 엄격한 표기법의 원리에 따라 표기되었다. 명기(明記)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원칙은 대체로 ‘음소적’(音素的)인 것과 ‘음절적’(音節的)인 것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깊다·없다’에서 어간 ‘깊-·없-’이 활용 어미 ‘-으니’가 연결되면 ‘기프니·업스니’로 실현되고 또 다른 활용 어미 ‘-고’가 연결되면 ‘깁고·업고’로 실현되어 어간이 환경에 따라 ‘깊-·깁-’, ‘없-·업-’으로 실현되는 것을 표기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후자는 현대 국어 표기법과는 달리 언제나 실제로 발음되는 음절을 표기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같은 ‘깊다·없다’의 어간 ‘깊-·없-’으로 예를 들자면, 활용 어미 ‘-으면·-어서’가 이 어간에 연결되면 실제 발음이 ‘기프면·기퍼서, 업스면·업서서’로 발음되어, 그것을 표기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국어 표기법에서 ‘깊으면·깊어서, 없으면·없어서’로 표기하여 언제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것과 대조적이다.1.4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뿌리
19세기의 혼란스러웠던 국어 표기법은 공용어를 쓰거나 공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큰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갑오경장이 진행되던 1894년(고종 때) 11월에는 모든 공문에 국문으로 본을 삼을 것을 칙령으로 명하게 됨에 따라, 국문의 표기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3) | (가) | ‘·’자는 계속 사용한다. |
(나) | 초성과 종성이 혼동되어 쓰이는 ‘ㅇ’과 ‘ㆁ’은 ‘ㆁ’으로 통일하여 쓴다. | |
(다) | 된소리는 ‘ㄲ ㄸ ㅃ ㅆ’ 등으로 하고 ‘ㅺ ㅼ ㅽ’ 등은 버린다. ‘ㆅ’은 쓰지 않는다. | |
(라) | 모든 초성은 종성에 쓸 수 있다. | |
(마) | 장모음은 왼쪽 어깨[左肩, 좌견]에 1점을 찍어 표시한다. | |
(바) | 한글은 훈민정음 예의(例義)와 그 이후의 전통을 쫓아 초성·중성·종성 세 자를 묶어서 한 자로 만들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
(4) | (가) | ‘.’대신 ‘ㅏ ’를 쓴다. |
(나) | 된소리는 ‘ㅺ ㅼ ㅽ’처럼 된시옷으로 쓴다. | |
(다) | 받침은 ‘ㄱ ㄴ ㄹ ㅁ ㅂ ㅅ ㅇ ㄺ ㄻ ㄼ’만 쓴다. |
(5) | (가) | 경성어(京城語)[서울말]를 표준으로 함. |
(나) | 표기법은 표음주의(表音主義)에 의하고 발음에 원(遠)한 역사적 철자법 등은 차(此)를 피함. |
2.본론
2.1 일석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
현대 국어 정서법이 정확한 규정에 따라 완성된 것은 1933년 ‘통일안’에서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중세 국어, 특히 15세기 국어 표기법이 과학적이므로 매우 정연한 질서를 갖는 표기법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기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지, 그것이 정확한 규정에 따라서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6) | 3개년 동안 이 통일안을 만드는 데 직접 관계한 위원(委員)들은 물론, 적어도 국어에 뜻을 둔 여러 선배(先輩)와 동지(同志)들이 혹은 오랫 동안 국어교육에서 얻은 실제의 경험(經驗)과 혹은 정밀(精密)한 과학적(科學的) 연구로부터 얻은 어학적(語學的) 이론(理論)을, 그 한 개 한 개의 성과(成果)야 크거나 적거나, 수 많은 돌을 쌓아 탑(塔)을 모으듯 한 것이 이 맞춤법 통일안이니, 이것이 비록 양으로는 보잘 것 없을 지라도, 우리의 과거 반 세기 동안 말과 글에 관한 학술적(學術的) 노력의 총 결산(總決算)이요, 동시에 광휘(光輝)있는 고심의 결정체(結晶體)인 것을 단언(斷言)하기에 주저(躊躇)하지 않는 바다. (새로 고친판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綴字法 統一案 講義) pp. 19-20, 1959, 新丘 文化社) |
2.2 일석의 맞춤법관
국어 맞춤법[정서법, 正書法]에 대한 일석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논의에서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7) | (가) |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1959, 신구 문화사). |
(나) | “ᇐ” 받침의 불가를 논함(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 문화사). | |
(다) | “ㅆ” 받침의 가부를 논함(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 문화사). | |
(라) | “ㅎ” 받침 문제(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 문화사). |
(8) | (가) | 한글 맞춤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
(나) |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 말로 한다. | |
(다) |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이어 쓴다. |
(9) | (가) | 나물좀다오. |
(나) | 눈에서피난다. | |
(다) | 장비(張飛)가말탔다. | |
(라) |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 |
(마) | 예수(耶蘇)가마귀를쫓았다. | |
(바) | 오늘밤나무사온다. |
(10) | (가) | (a) 나물(山寀) 좀 다오. |
(b) 나 물(水) 좀 다오. | ||
(나) | (a) 눈에서 피(血)난다. | |
(b) 눈에 서피(薪)난다. | ||
(다) | (a) 장비가 말탔다. | |
(b) 장비 가말(轎子) 탔다. | ||
(라) | (a) 아버지가 방(房)에 들어가신다. | |
(b) 아버지 가방(鞄)에 들어가신다. | ||
(마) | (a) 예수가 마귀(魔鬼)를 쫓았다. | |
(b) 예수 가마귀(烏)를 쫓았다. | ||
(바) | (a) 오늘밤 나무사 온다.(今夜 羅武士 來) | |
(b) 오늘밤 나무 사온다.(今夜 買柴 來) | ||
(c) 오늘밤 나 무 사은다.(今夜 我買菁根 來) | ||
(d) 오늘 밤나무 사온다.(今日 買栗本 來) | ||
(e) 오늘 밤 나무 사온다.(今日 栗與木 買來) | ||
(f) 오, 늘 밤나무 사온다.(噫, 常買栗木 來) | ||
(g) 오, 늘 밤 나무 사온다.(噫, 常買栗與柴 來) | ||
(h) 오늘밤 나무사 온다.(오늘밤 나무야 온다) |
(11) | (가) | 맞춤법은 통일된 표기법으로 현실 발음과 함께 기본형 [원형]이 유지되도록 규정되어야 한다. |
(나) | 맞춤법에서는 표준어를 정하고, 이를 표기하여야 한다. | |
(다) | 맞춤법에서는 띄어쓰기는 글 뜻의 오해를 막고 독서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 |
(12) | 제11항 재래에 쓰든 받침 이외에,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ㄳ ㄵ ㄽ ㄾ ㄿ ㅀ ᇚ ㅄ ㅆ위의 받침들을 더 쓴다. |
(13) | 일석의 맞춤법관 | |
(가) | 국어 맞춤법은 단어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되, 소리대로 적음을 원칙으로 한다. | |
(나) | 국어 맞춤법은 표준어를 정하고 이를 (12)(가)에 따라 적는다. | |
(다) | 국어 맞춤법은 글 뜻의 오해를 막고 독서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단어(單語) 본위(本位)로 띄어 쓴다. |
2.3 ‘일석의 맞춤법관’에 나타난 기본 원리
다소 되풀이 되는 감이 없지 않으나, 실제로 (13)(가)와 같은 일석의 맞춤법관은 어떤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누구나 다 아다시피, 한글은 표음 문자(表音 文字)이고 그리하여 ‘바람 소리·학 우는 소리·닭울음 소리·개 짖는 소리’까지도 쉽게 적을 수 있다고 해 놓고 어떤 원리에서 ‘통일안’ 총론 1에서 ‘소리대로 적되’와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두 조건이 논리적으로 모순되도록 맞춤법의 강령, 곧 대원칙을 규정하였는가? 즉, 그렇게 된 원리는 어떤 것이었는가? 일석 자신도 이 대원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표음 문자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맞춤법에서는 ‘먹이[食料]’, ‘국물[湯液] 등이 ‘멕이·메기’, ‘궁물’ 등 그 소리대로 표기된 예를 들고 “발음에는 매우 충실하게 기록되었다 할 수 있으나, 문법을 세워서 정리하기에는 여간한 주어(齟齬=어긋남)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말을 물론하고, 순 표음주의(表音主義)로만 맞춤법을 규정하여서는 안 될 것을 용이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통일안’ 강의 p.26)라고 언급하고 있다.(14) | 일석의 맞춤법관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리는 ‘학술적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합리주의’이다. |
글씨 | ㄱ | ㄴ | ㄷ | ㄹ | ㅁ | ㅂ | ㅅ | ㅇ | ㅈ | ㅊ | ㅋ | ㅌ | ㅍ | ㅎ |
이름 | 기 역 |
니 은 |
디 귿 |
리 을 |
미 음 |
비 읍 |
시 옷 |
이 응 |
지 읒 |
치 읓 |
키 읔 |
티 읕 |
피 읖 |
히 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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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가) | 흘르어·불르어·말르어 |
(나) | 흘러·불러·말러 |
(18) | (가) | “잇”을 어간으로 하여야 옛날 표기법에 맞는다. |
(나) | “ㅆ” 받침으로 발음하는 지역은 경성[서울]의 일부 지역이고 대부분 “잇”으로 발음하므로 “있”은 표준어가 될 수 없다. | |
(다) | “ㅆ” 받침을 채용하면 철자법이 곤란하여 쓰기와 인쇄하기에 불편이 막심하다. |
(19) | (가) | 옛날 표기법은 그 당시의 발음이므로 현대 표기법에 반영할 필요가 없다. 국어를 정리 통일하려면 반드시 현대어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고어에 “잇”으로 쓰였다 하여 그것을 따르면 우리 말을 정리 통일하는 데 배치된다. 옛 표기법을 써야 한다면 ‘끝’(末)과 ‘꽃’(花)도 마땅히 ‘귿’과 ‘곶’으로 표기해야 된다. |
(나) | “있”으로 발음하는 지역을 경성의 일부 지역이라 하나, 실제로 경기 충청남북, 강원도를 비롯하여 황해도의 대부분, 전라남북도의 일부분, 그리고 함경도의 일부분에서도 그렇게 발음한다. 특히 경남 고성, 통영 등지에서도 “있”으로 발음하는 곳이 있다. 따라서, 당연히 “있”으로 표기하는 것이 합당하다. 더구나 “있”은 경성어이고, 그것이 표준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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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ㅆ” 받침을 쓰면 철자상, 인쇄상 곤란이 많다는 이유는 전혀 타당하지 못하다. “ㅆ”뿐만 아니라 둘 받침은 모두 그렇다고 해야 하는데, 유독 그 이유를 “ㅆ” 받침에만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있·았/었·겠’과 같이 “ㅆ” 받침을 써야 한다. |
(20) | (가) | 單終聲으로 “ㅎ” 받침을 가진 말: 동사-낳다[産]·놓다[放]·쌓다[積] 등. 형용사-좋다[好]·하얗다[白]·그렇다[然] 등 |
(나) | 重終聲 중에 “ㅎ” 받침을 가진 말: 동사-끊다[斷]·않다[不]·꼲다[考査]·잃다[失]·앓다[病]·끊다[切-1]. 형용사-많다[多]·언짢다[不好]·괜찮다[無關]·않다[非] | |
(다) | “ㅎ”이 완전히 받침으로 굳어 버린 말: 단종성-좋다·놓다·쌓다 등. 중종성-끊다·많다·옳다·끓다 등 | |
(라) | 명사 혹은 명사형 어원에 “”가 붙어서 용언으로 쓰이다가, 그 “”의 “·” 음이 줄어서 “ㅎ” 받침이 생성(生成)하는 도중에 있는 말: 단종성-그러하다→그렇다·이러고→이렇고·저러지→저렇지·가 다→갛다 중종성-아니다→아닣다→않다·귀치아니고→귀치아닣고→귀치않고→귀챦고→귀찮고·점지아니지→점지아닣지→점지않지→점쟎지→점잖지·괜치아니다→괜치아닣다→괜치않다→괜챦다→괜찮다·精지→정ㅎ지·願고→원ㅎ고 |
3.결론
우리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 “ᄙ” 받침의 불가를 논함, “ㅆ” 받침의 가부를 논함, 그리고 “ㅎ” 받침 문제 등의 논저를 통해서 일석의 맞춤법관과 그 기본 원리를 소략하게 찾아보았다고 생각된다. 그 내용을 여기에 다시 (21), (22)로 정리함으로써 결론에 대신하려 한다. 다만,(21), (22)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타당한 맞춤법 이론이 일석의 주장 속에 수립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의 역량이 부족하여 그것을 올바로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런 점이 발견되면 언제라도 결론을 수정하고 바른 가르침을 따르겠다.(21) | 일석의 맞춤법관 | |
(가) | 국어 맞춤법은 단어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되, 그것을 소리대로 적음을 원칙으로 한다. | |
(나) | 국어 맞춤법은 표준어를 정하고 이를 (21)(가)에 따라 적는다. | |
(다) | 국어 맞춤법은 글 뜻의 오해를 막고 독서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단어(單語) 본위(本位)로 띄어 쓴다. | |
(22) | ‘일석의 맞춤법관’에 나타난 기본 원리: 학술적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합리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