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석 이희승 선생의 학문과 인간】

일석 이희승 선생과 한글 맞춤법

이광호 /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교수


1.서론

      1.1 말과 문자

  1933년 조선어 학회(현재의 한글 학회)가 제정 공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하 ’통일안‘으로 약칭함)은 그동안 부분적인 개정을 거쳐 1989년 2월 28까지 쓰였으나, 같은 해 3월 1일 이후부터 새로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쓰이게 되었다.
  일석은 ‘통일안’ 제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였고, 이의 공포 이후에도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를 저술하여 ‘통일안’의 이론적 뒷받침에 기여한 바 크다. 1989년 신구문화사의 ‘한글 맞춤법 강의’는 여기서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 이 책은 공저(안병희)이므로 일석 자신만의 견해로 볼 수 없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통일안 강의’에 나타난 일석의 맞춤법관과 1957년 “국어학 논고”(제1집)의 “ᇐ” 받침의 불가를 논함과 “ㅆ” 받침의 가부를 논함, 그리고 “ㅎ” 받침 문제 등의 내용을 통해서 맞춤법 이론의 일단을 엿보기로 한다. 다만 맞춤법은 ‘말을 문자로 표기하는 규범’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상식적인 내용을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언어는 인간만이 사용하는 표현 수단이다. 언어의 기원이나 그 발달 과정을 상세히 밝히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언어의 기원이나 그 발달 단계의 일부가 밝혀진 것도 고대의 단편적인 기록에 의한 것이고 대부분은 추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언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말을 하는 시간과 장소에 듣는 사람이 없으면 그 어느 누구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금같이 귀중한 말이라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말의 값어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귀중한 말, 그것이 지식을 전하는 말이거나 교훈적인 말이거나를 막론하고 그런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남겨 두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욕구는 자연히 문자를 낳게 만들었다. 이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사고하는 힘과 그것을 밑바탕으로 하여 새 것을 창조하고 응용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구어(口語, spoken language)를 오랫동안 남겨 둘 수 있는 말, 곧 문어(文語, written language)로 바꾸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남기고 있는 중국의 갑골(甲骨) 문자, 이집트의 상형(象形) 문자(hieroglyphics), 수메르(Sumer)의 설형(楔形) 문자(cuneiform) 등등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오래된 문자로 손꼽히거니와, 그 뒤 이런 문자들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국어의 경우도 결코 예외가 아니어서 삼국 시대의 한자 차자 표기, 곧 고유 명사 표기, 이두, 구결, 향찰 표기를 거쳐 1443년에 드디어 ‘훈민정음’, 즉 ‘한글’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1.2 일석의 문자관

  국어학 논고(제1집) ‘문자 이야기’에 일석의 언어와 문자에 대한 견해가 나와 있다. 다음 (1)이 그것이다.
(1) 말하자면 文字는 言語가 입는 衣裳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읍니다. 言語는 몸똥이요, 文字는 옷입니다. 그러므로 言語가 생기기 전에 文字가 있을 수 없읍니다. ……중략…… 어쨌든 言語와 文字는 密接한 關係를 가졌읍니다, 文字는 言語의 衣裳이요, 또 文化를 재는 尺度입니다.
  문자를 언어가 입는 ‘옷’에 비유한 이와 같은 일석의 문자관은 바로 몸에 맞는 옷이 옷으로서의 값어치를 갖는 것처럼 문자도 그 언어에 맞는 것이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p.4)에서 ‘띄어쓰기’를 설명하면서 다음 (2)와 같이 한글 표기가 국어의 본질에 합하지 못한다는 부분적인 단점을 지적하고 있다.
(2)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 때에, 좀 더 국어의 본질(本質)에 착안(着眼)하였으면, 당연히 단어 본위로 철자(綴字)하도록 글자를 만들었을 것이요, 지금 쓰고 있는 글자와 같이 음절(音節) 본위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원칙적(原則的)으로 한 음절(音節)이 한 단어(單語)가 되는 한문(漢文)글자의 영향(影響)를 받아서 그리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석은 훈민정음[한글]이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임을 인정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즉, 훈민정음은 국어의 음운 조직에 가장 잘 합치되어 우리말을 표기 못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인지 서문 중의 문구와 같이 풍성학려(風聲鶴唳)와 계명구폐(鷄鳴拘吠)라도 다 적을 수 있는 글자이며 못 적을 발음이 없으면서도 자수가 28자에 불과하여 자획이 간단한 글자이고 또 문자 발달 사상에 있어서 최고 수준에 오른 음표 문자(音標 文字, phonetic letters) 또는 음소 문자(音素 文字)라는 것이다. (이희승, 국어학 개설[1950], 민중 서관, pp.32-33).
  이런 평가를 받는 한글이라는 문자가 국어를 표기하기에 이른 역사적 과정은 어떠하였는가? 그 실상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3 한글 표기의 역사적 실상

  세종 25년(1443)에 창제된 한글은 15세기에 매우 엄격한 표기법의 원리에 따라 표기되었다. 명기(明記)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원칙은 대체로 ‘음소적’(音素的)인 것과 ‘음절적’(音節的)인 것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깊다·없다’에서 어간 ‘깊-·없-’이 활용 어미 ‘-으니’가 연결되면 ‘기프니·업스니’로 실현되고 또 다른 활용 어미 ‘-고’가 연결되면 ‘깁고·업고’로 실현되어 어간이 환경에 따라 ‘깊-·깁-’, ‘없-·업-’으로 실현되는 것을 표기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후자는 현대 국어 표기법과는 달리 언제나 실제로 발음되는 음절을 표기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같은 ‘깊다·없다’의 어간 ‘깊-·없-’으로 예를 들자면, 활용 어미 ‘-으면·-어서’가 이 어간에 연결되면 실제 발음이 ‘기프면·기퍼서, 업스면·업서서’로 발음되어, 그것을 표기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국어 표기법에서 ‘깊으면·깊어서, 없으면·없어서’로 표기하여 언제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15세기의 엄격한 국어 표기법은 16세기에 ‘더러’ 현대 국어와 같이 분철되어 ‘먹임(食)·갈아침(敎)’ 등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받침 ‘ㄷ·ㅅ’의 구별이 없어져 ‘받(田)-밧·고(如)-고’가 되었으며, 더구나 ‘사(人)·옷(衣)’ 등과 같은 증철(重綴) 또는 혼철(混綴)되는 표기가 나타나면서 그 엄격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따라서 15세기의 엄격했던 표기법 원리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표기법의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17세기-19세기의 근대 국어 표기법의 혼란이 바로 그 결과이다. 물론 이 혼란은 15세기의 엄격했던 표기법 원리를 준거로 하였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표기 가운데서 가장 뚜렷했던 세 가지 예만을 간략하게 제시한다.
  첫째, 말 첫머리에 자음을 합해서 쓰는 어두 합용 병서(語頭 合用 竝書)의 혼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에는 ‘나다(出發)·(意)·(用)·(蓬)’ 등의 예에서처럼 ‘ㅳ·ㅄ’으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기이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근대 국어로 이어지면서 어느 때는 15세기 국어 표기법 그대로 표기되기도 했으나, 그것과 동시에 또 ‘나다··쓰다·쑥’ 등으로 표기되어 ‘ㅳ·ㅄ’이 ‘ㅼ·ㅆ‘으로 혼동되어 쓰이게 되었다. 더욱 그 혼란 정도가 심한 예 하나를 보면, 현대 국어의 “땅이 꺼지다”의 동사 ‘꺼지다’가 그것이다. 곧 이 단어는 중세 국어에서는 ‘지다’이었으나 근대 국어에서는 말 첫머리에서 ‘ㅴ·ㅲ·ㅺ’ 세 가지가 서로 뒤섞여 표기됨으로써 실제로는 동사 하나가 ‘디다·디다·디다’로 나타나게 되었다.
  둘째, 받침 ‘ㅅ’과 ‘ㄷ’이 극히 혼란스럽게 쓰였다. ‘굳다(固)·묻다(問)’가 ‘굿다·뭇다’로, ‘맛(味)·못(池)’이 ‘맏·몯’으로 표기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런 표기 현상은 18세기에 점차 ‘ㅅ’ 받침으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역시 혼란스러운 표기법을 면키 어려웠다.
  셋째, ‘ㄹ-ㄹ’·‘ㄹ-ㄴ’이 서로 결합되는 현상이 규칙적이지 못하고 임의로 쓰였다. 가령, 현대 국어라면 당연히 ‘진실(眞實)로·불러(呼)·흘러(流)’로 쓰일 것인데, 이들이 근대 국어에서는 ‘진실로·블러·흘러’와 함께 ‘진실노·블너·흘너’로 표기된 예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체로 국어를 표기함에 있어, 근대 국어에서는 엄격한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고 제 마음대로 표기하는 경향이 강하여 문자 생활에 큰 혼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4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뿌리

  19세기의 혼란스러웠던 국어 표기법은 공용어를 쓰거나 공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큰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갑오경장이 진행되던 1894년(고종 때) 11월에는 모든 공문에 국문으로 본을 삼을 것을 칙령으로 명하게 됨에 따라, 국문의 표기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 최초의 표기법 정리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지석영(池錫永)의 신정국문(新訂國文)이었다. 근대 국어 말기와 현대 국어 초기의 몹시 혼란스러웠던 국어 표기법을 규범화하기 위하여 지석영이 고종에게 상소하여 1905년에 채택하여 발표된 이 신정국문은 문자 체계의 확립을 목표로 한 것인데, 그 대표적인 내용은 ‘·’자를 폐지하고 ‘이으’의 합음으로서 ‘〓’을 새로 만들고, 된소리 표기는 ‘된시옷’으로 통일하자는 것 등이다. 이것은 비록 법령으로 공포되었으나 ‘〓’자를 새로 만드는 것 등이 문제가 되어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이 신정국문은 그 내용이 더욱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1907년 당시 학부(교육부) 내에 ‘국문 연구소’(國文 硏究所)를 개설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했다.
  20세기 초 국어 표기법의 정리 문제로 설립된 국문 연구소는 당연히 국어의 문자 및 그 표기법 문제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있었다. 국문 연구소 연구위원들이 1907년 9월부터 1909년 12월까지 연구한 ‘연구 10제’가 바로 이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국문 연구소의 표기법 통일안은 결국 ‘국문 연구 의정안’(國文 硏究 議定案)으로 확정되었는데, 이 가운데서 국어 표기법 개정안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3) (가) ‘·’자는 계속 사용한다.
(나) 초성과 종성이 혼동되어 쓰이는 ‘ㅇ’과 ‘ㆁ’은 ‘ㆁ’으로 통일하여 쓴다.
(다) 된소리는 ‘ㄲ ㄸ ㅃ ㅆ’ 등으로 하고 ‘ㅺ ㅼ ㅽ’ 등은 버린다. ‘ㆅ’은 쓰지 않는다.
(라) 모든 초성은 종성에 쓸 수 있다.
(마) 장모음은 왼쪽 어깨[左肩, 좌견]에 1점을 찍어 표시한다.
(바) 한글은 훈민정음 예의(例義)와 그 이후의 전통을 쫓아 초성·중성·종성 세 자를 묶어서 한 자로 만들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국문 연구소의 이 ‘연구 의정안’은 상당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겨질 수 없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로 국권을 잃게 됨으로써 국어와 그 표기법 문제에 관심을 둘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조선 총독부는 부분적으로 쓰이고 있던 국어와 그 표기법의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제정된 ‘국문 연구 의정안’을 그대로 쓰지 않고 새로운 통일안을 공포하였다. 그것이 바로 1912년 4월에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普通學校用 諺文 綴字法)이다.
  이 철자법의 중요한 내용 세 가지는 다음 (4)와 같다.
(4) (가) ‘.’대신 ‘ㅏ ’를 쓴다.
(나) 된소리는 ‘ㅺ ㅼ ㅽ’처럼 된시옷으로 쓴다.
(다) 받침은 ‘ㄱ ㄴ ㄹ ㅁ ㅂ ㅅ ㅇ ㄺ ㄻ ㄼ’만 쓴다.
  이 내용은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및 현행 ‘한글 맞춤법’과 동떨어진 것으로, 국어 표기법을 국문 연구소의 ‘국문 연구 의정안’이라는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준을 둔 규정이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국어 표기법 통일안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5) (가) 경성어(京城語)[서울말]를 표준으로 함.
(나) 표기법은 표음주의(表音主義)에 의하고 발음에 원(遠)한 역사적 철자법 등은 차(此)를 피함.
  첫째 기준은 바로 1933년에 제정 공포된 통일안의 총론 “2.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 말로 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고, 둘째 기준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법과 같이 ‘음소주의’(音素主義) 표기법을 반영한 것이므로 자연히 음가(音價)와 관계없는 문자는 표기법 체계에서 배제되었다.
  이 ‘철자법’은 그 뒤 1921년 3월에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대요’(普通學校用 諺文 綴字法 大要)로, 1930년 2월에 ‘언문 철자법’으로 공포되었는데, 전자는 1912년의 그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으나 후자는 총설 3항과 각설(各說) 25항이 있어 구체적인 ‘국어 표기법 통일안’이 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기법을 통일하려는 노력은 결국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계승 발전되었고 이 ‘통일안’이 결국 국어의 정서법(正書法)므로 정착되었다. 이 통일안은 부분적으로 개정되고 또 1989년에 수정되어 1989년 3월 1일 이후부터 ‘한글 맞춤법’이 되었으나 그 근본 원리는 ‘통일안’과 동일하다.


2.본론

      2.1 일석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

  현대 국어 정서법이 정확한 규정에 따라 완성된 것은 1933년 ‘통일안’에서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중세 국어, 특히 15세기 국어 표기법이 과학적이므로 매우 정연한 질서를 갖는 표기법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기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지, 그것이 정확한 규정에 따라서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일석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제정 과정에 참가하였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 통일안은 처음에 총론 3개항, 각론(各論) 65개항으로 되어 있었으나 1946년 개정에서는 63개항으로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1933년 당시까지 어떤 통일안보다도 방대하고 가장 훌륭한 체계를 갖춘 최대 규모의 표기법 통일안의 규정집이다. 일석은 권덕규·김윤경·박현식·신명균·이극로·이병기·이윤재·장지연·정렬모·정인섭·최현배를 비롯하여 뒤에 추가된 김선기·이갑·이만규·이상춘·이세정·이탁 등과 함께 3년간 125회의 회의를 거쳐 이 통일안을 완성하였다. 비록 국권을 상실하였으나, 이 통일안은 범국가적이고 전 민족적인 대규모 사업이었고 모든 지혜를 집결한 것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안에 대한 일석의 평가는 남다른 것이었다.
(6) 3개년 동안 이 통일안을 만드는 데 직접 관계한 위원(委員)들은 물론, 적어도 국어에 뜻을 둔 여러 선배(先輩)와 동지(同志)들이 혹은 오랫 동안 국어교육에서 얻은 실제의 경험(經驗)과 혹은 정밀(精密)한 과학적(科學的) 연구로부터 얻은 어학적(語學的) 이론(理論)을, 그 한 개 한 개의 성과(成果)야 크거나 적거나, 수 많은 돌을 쌓아 탑(塔)을 모으듯 한 것이 이 맞춤법 통일안이니, 이것이 비록 양으로는 보잘 것 없을 지라도, 우리의 과거 반 세기 동안 말과 글에 관한 학술적(學術的) 노력의 총 결산(總決算)이요, 동시에 광휘(光輝)있는 고심의 결정체(結晶體)인 것을 단언(斷言)하기에 주저(躊躇)하지 않는 바다.
(새로 고친판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綴字法 統一案 講義) pp. 19-20, 1959, 新丘 文化社)
  ‘통일안’의 내용이 대체로 높이 평가됨에도 불구하고, 총론 1항에 모순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일석은 이 통일안이 그야말로 ‘경험’과 ‘정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얻은 ‘어학적 이론’을 갖춘 표기법 규정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2 일석의 맞춤법관

  국어 맞춤법[정서법, 正書法]에 대한 일석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논의에서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7) (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1959, 신구 문화사).
(나) “ᇐ” 받침의 불가를 논함(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 문화사).
(다) “ㅆ” 받침의 가부를 논함(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 문화사).
(라) “ㅎ” 받침 문제(1959, 국어학 논고 제1집, 을유 문화사).
  일석 자신이 ‘말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언어학’(言語學, linguistics)을 매우 중요한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어 맞춤법도 될 수 있으면 언어학 이론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증거를 우리는 ‘통일안 강의’ 총론 ‘1·2·3’의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일석이 “국어 철자법(綴字法) 전체에 대한 정신(精神), 즉 큰 강령(綱領)이라고도 할 수 있고, 대원칙(大原則)이라고도 할 수 있다.”(통일안 강의 p.23)고 생각한 ‘통일안의 총론’을 다음에 제시하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석의 맞춤법관의 일단을 살펴보기로 한다.
(8) (가) 한글 맞춤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나)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 말로 한다.
(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이어 쓴다.
  일석은 위의 총론 (8)(가)에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곧, 첫째, 맞춤법 규정의 대상은 표준말[標準語]이고 둘째, 그 표준말은 표기법에서 ‘발음’대로 충실히 적어야 한다. 셋째, 그러나, 그것이 문법에 맞지 않고 어그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표준말에 대한 규정은 (8)(나)에서 다시 규정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약하고 ‘발음’과 ‘문법’ 규정만을 보기로 한다.
  모순 관계로 지적되기도 하는 발음과 문법의 문제는 이 둘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원칙’이라는 조건을 두어 “예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 일석의 설명이다. 이런 규정에 대한 일석의 설명을 보기로 한다.
  첫째,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는다’는 규정은 어문일치(語文一致)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곧 전부터 기록하던 습관에 의하여, 실제의 발음대로 적지 못하고 ‘아침[朝]·토끼[兎]·어깨[肩]·빨래[流濯]·나비[蝶]’ 등을 아·톳기·엇개·빨내·나븨, 나뷔 등으로 적거나 또 한자음을 기록할 때, 실제의 발음대로 적지 않고 ‘기차(汽車)·여자(女子)·사회(社會)·정중(鄭重)·낙원(樂園)·노인(老人)·천지(天地)’ 등을 각각 ‘긔챠·녀, 녀자·샤회·졍즁, 뎡즁·락원·로인·텬디’ 등으로 적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표기나 발음이 변화된 말의 표기는 의당 현재의 발음대로 표기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둘째, ‘문법에 맞도록 적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발음대로 적는다’는 규정에 대한 제한 규정임이 분명하다. 왜 원칙을 ‘표준어를 발음대로 적는다’고 규정해 놓고, 이를 다시 제한하는 규정으로 ‘문법에 맞아야 한다’는 내용을 덧붙여 놓았을까?
  일석은 ‘통일안 강의’(pp.25-26)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즉 “어느 나라말을 막론하고, 실제에 사용하고 있는 말 -그중에서도 속어(俗語)같은 것-은 너무 그 발음대로만 따라서 적는다면, 말 자체(自體)의 품위(品位)도 낮을 뿐 아니라, 문법과 어그러지는 일도 많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먹다[食]·넓다[廣]·옷안[衣內]·국물[湯液]’ 등의 예를 들어, 이들이 각각 ‘머거서 ·머그니·먹고’ ‘널버서·널브니·넓고’, ‘옫안·오단’, ‘궁물’ 등으로 표기된다면, 발음에는 매우 충실하게 표기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 ‘넓고’와 ‘옫안’은 그렇지 않다.), 문법을 세워서 정리하기에는 여간한 어긋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말을 막론하고, 순 표음주의(表音主義)로만 맞춤법을 규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석의 주장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통일안 총론1에 대한 일석의 견해는 ‘어법에 맞도록’이 제1원리가 되고 ‘소리대로’는 부대적(附帶的) 규정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여 “한글 맞춤법은 표준말을 어법에 맞도록 적되, 소리대로 적음을 원칙으로 한다”와 같이 인식하고 있었다고 해석된다.
  이는 이기문(국어사 개설(1972), 민중 서관, pp.225-226) 등에서 적절히 지적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결국 ‘형태 음소적 원리’(形態音素的 原理)라는 언어 이론이 이 통일안에 잘 설명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 근원은 주시경의 주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우 사소한 예이지만, 주시경은 원형[기본형]으로 언어를 통일하기 위해서 동사 ‘하다’의 어간 ‘하-’에 연결되는 활용어미 ‘-여’를 모두 ‘-어’로 통일하여 표기한 적이 있다. 이 ‘-여’는 활용 어미 ‘-아/-어’에 대한 이단(異端)이기 때문에 일사분란한 통일주의자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총론 2인 (8)(나)는 표준말 규정이다. 이는 시간적으로는 ‘현재’, 계층적으로는 ‘중류’, 공간적으로는 ‘서울’ 등의 조건을 갖춘 ‘말’을 의미한다. 표기법 규정이 표준어를 표기하는 데 초첨을 맞춘 것은 시대와 지역, 계층 등에 따라, 의미는 같으나 발음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모두를 표기할 수 없고, 다만 그 언어 사회의 규범이 되는 말만을 표기하여 문자 언어 생활을 통일하려는 데 그 뜻이 있다고 하겠다. 이를 좀 더 실감 있게 설명하기 위하여 일석은 ‘파리[蠅]·팔[腕]·팥[豆]’ 등이 전남이나 경남 일부 지역에서 ‘포리·폴·퐅’ 등으로 쓰이고 ‘여우’[狐]란 단어가 지방에 따라서는 ‘여시·여수·여스·여호·여깽이·예끼’ 등으로 쓰이며, 또 시대적으로 현재도 사용되는 단어 ‘소사(召事)·상전·까닭·강’ 등이 옛날에는 ‘조이·항것·젼·’ 등으로 사용되어, 이들을 맞춤법 규정에 따라 통일해서 쓰지 않은 경우, 언어생활의 혼란을 초래할 것을 실증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석은 통일이 없는 곳에는 지리멸렬(支離滅裂)이 있고, 따라서 쇠퇴(衰退)와 침체(沈滯)가 있을 뿐이므로 표준말을 세운다는 것은 말을 통일하여 발전시키는 데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시대적 조건으로 현재의 말, 계급적 조건으로 중류 계급의 말, 지방적 조건으로 문화·교통·정치의 중심지인 서울의 말을 표준어로 정한다는 것이다.
  총론 3인 (8)(다)는 ‘띄어쓰기’ 규정이다. 일석의 이 규정에 대한 해석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고 치밀하며 어느 경우에는 자못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그 당위성을 결론부터 제시하면, 그 첫째가 글 뜻[文意]의 오해를 방지(防止)하고, 둘째 독서(讀書)의 능률(能率)을 올리는 두 가지의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일석은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하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9) (가) 나물좀다오.
(나) 눈에서피난다.
(다) 장비(張飛)가말탔다.
(라)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마) 예수(耶蘇)가마귀를쫓았다.
(바) 오늘밤나무사온다.
  위의 (9)(가)-(9)(바)는 띄어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대체로 다음 (10)이 된다.
(10) (가) (a) 나물(山寀) 좀 다오.
(b) 나 물(水) 좀 다오.
(나) (a) 눈에서 피(血)난다.
(b) 눈에 서피(薪)난다.
(다) (a) 장비가 말탔다.
(b) 장비 가말(轎子) 탔다.
(라) (a) 아버지가 방(房)에 들어가신다.
(b) 아버지 가방(鞄)에 들어가신다.
(마) (a) 예수가 마귀(魔鬼)를 쫓았다.
(b) 예수 가마귀(烏)를 쫓았다.
(바) (a) 오늘밤 나무사 온다.(今夜 羅武士 來)
(b) 오늘밤 나무 사온다.(今夜 買柴 來)
(c) 오늘밤 나 무 사은다.(今夜 我買菁根 來)
(d) 오늘 밤나무 사온다.(今日 買栗本 來)
(e) 오늘 밤 나무 사온다.(今日 栗與木 買來)
(f) 오, 늘 밤나무 사온다.(噫, 常買栗木 來)
(g) 오, 늘 밤 나무 사온다.(噫, 常買栗與柴 來)
(h) 오늘밤 나무사 온다.(오늘밤 나무야 온다)
  특히 (9)(바)에서, 그 의미가 띄어쓰기에 따라 (10)(바)(a)부터 (10)(바)(h)까지 8가지가 된다고 예시한 점은, 그 사실 자체를 누구나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노력에 재삼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여기서 일단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의 총론에 나타난 일석의 맞춤법관을 다음 (11)로 정리하기로 한다. 물론 이 (11)은 잠정적이다.
(11) (가) 맞춤법은 통일된 표기법으로 현실 발음과 함께 기본형 [원형]이 유지되도록 규정되어야 한다.
(나) 맞춤법에서는 표준어를 정하고, 이를 표기하여야 한다.
(다) 맞춤법에서는 띄어쓰기는 글 뜻의 오해를 막고 독서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면 맞춤법 통일안 각론에 나타난 일석의 맞춤법관은 어떤 것이었는가? 이에 대하여 중요한 몇 가지 예만을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총론에서는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조건을 중요시하였는데, 이것은 각론(各論)에서 결국 어휘 형태소(語彙 形態素)의 독립성을 인정하여 실제의 발음에 의미를 결부시켜 가능하면 원형을 밝혀 적는 맞춤법을 택하게 된 것을 뜻한다. 일석의 설명을 보기로 한다.
  즉, 제2장 1절 ‘된소리’에서 제3항의 ‘어깨[肩]·거꾸로[倒]·깨끗하다[潔]’ 등은 ‘엇개·것구로·깻긋하다’와 동일한 발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후자가 한 단어 안에서 아무 뜻이 없는 두 음절 사이에서 나는 된소리이기 때문에 ‘ㅅ’이 아래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 된소리를 그대로 적는다는 것이다(통일안 강의, pp.77一78). 이와 같은 견해는 사람(人)·고기(肉)·사내(男)’ 등을 ‘살암·곡이·산애’로 적지 않는 것과 동일한 원리라는 것이다.
  둘째, 제3장 제1절 ‘체언과 토’에서 제7항의 ‘떡이·떡을·떡에’(餅) 및 ‘손이·손을·손에’(手) 등을 ‘떠기·떠글·떠게’ 및 ‘소니·소늘·소네’ 등으로 표기하지 않고 언제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는 규정에 대한 일석의 설명이다.
  즉, 이 규정은 ‘체언과 토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적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구별하여 적은 ‘떡이·손이’ 등은 체언과 토를 잘 구별하여 표기하였으므로 단어의 형식이 고정되고 문법적 통일이 잘 이루어져, 글 읽는 이에게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떠기·소니’처럼 아무 법칙 없이 말소리의 결과만을 표기하여, 체언과 토 두 가지의 어형이 일정하게 보존되지 못하면 독서의 능률상 매우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통일안’의 규정들에 대한 일석의 해설은 대체로 발음보다는 의미에 중점을 둔 표기법을 선호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가령, ‘통일안’ 제2장 제2절 설측음 “ㄹ”에 대한 제4항에서 의미 없이 발음되는 설측음 “ㄹ”은 “ㄹㄹ”로 적는다는 규정이 그렇고, 또 제2장 제3절 구개음화의 [붙임 1]에서 단어 ‘굳이(固)·해돋이(日出)·같이(同)’ 등의 발음이 분명히 ‘구지·해도지·가치’ 등처럼 구개음화되어 나타나는 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원형을 밝혀 적는 예외 규정도 그렇다고 하겠다.
  셋째, ‘통일안’ 제3장 제5절 ‘받침’의 제11항의 내용을 보기로 한다.
(12) 제11항 재래에 쓰든 받침 이외에,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ㄳ ㄵ ㄽ ㄾ ㄿ ㅀ ㅄ ㅆ위의 받침들을 더 쓴다.
  ‘통일안’의 (12)와 같은 받침 규정에 대하여 일석은 훈민정음의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이란 문구를 논리적으로 “초성 글자는 필요에 따라서 받침으로 쓸 것이다. 전부 종성으로 쓸 필요가 있으면 전부 쓸 것이요, 그 일부만 써도 족하면 일부만 써라 하는 뜻이다.”로 해석된다고 설명하고, 이어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초성 종성 통용 팔자’(初聲 終聲 通用 八字)라 하여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만 초성이나 받침에 공통으로 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는 것이다. 일석은 이 제한을 “이와 같은 받침의 제한이 우리 나라 글을 매우 혼란(昏亂)하게 무법칙(無法則)하게 만들어 왔다”(통일안 강의 p.148)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안'에서 새로 쓰기로 결정된 18가지 받침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그 받침은 “ㄷ ㅈ ㅊ ㅋ ㅌ ㅍ ㅎ·ㄲ ㄳ ㄵ ㄶ ㄽ ㄾ ㄿ ㅀ ㅄ ㅆ” 등 18가지이다. 그 단어의 예는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으나, 역시 일석의 맞춤법관은 가능하면, 그리고 언제나 그 단어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한다는 일관된 논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11)에서 감정적으로 제시했던 일석의 맞춤법관을 다음 (13)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3) 일석의 맞춤법관
(가) 국어 맞춤법은 단어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되, 소리대로 적음을 원칙으로 한다.
(나) 국어 맞춤법은 표준어를 정하고 이를 (12)(가)에 따라 적는다.
(다) 국어 맞춤법은 글 뜻의 오해를 막고 독서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단어(單語) 본위(本位)로 띄어 쓴다.
  ‘통일안’ 강의에 나타난 일석의 맞춤법관은 물론 그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통일안’의 맞춤법 규정을 하나하나 해설함에 있어, 적절한 예를 들어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설명을 가한 것을 보면 (13)과 같은 내용이 일석 자신의 개인적인 맞춤법관이라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2.3 ‘일석의 맞춤법관’에 나타난 기본 원리

  다소 되풀이 되는 감이 없지 않으나, 실제로 (13)(가)와 같은 일석의 맞춤법관은 어떤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누구나 다 아다시피, 한글은 표음 문자(表音 文字)이고 그리하여 ‘바람 소리·학 우는 소리·닭울음 소리·개 짖는 소리’까지도 쉽게 적을 수 있다고 해 놓고 어떤 원리에서 ‘통일안’ 총론 1에서 ‘소리대로 적되’와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두 조건이 논리적으로 모순되도록 맞춤법의 강령, 곧 대원칙을 규정하였는가? 즉, 그렇게 된 원리는 어떤 것이었는가? 일석 자신도 이 대원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표음 문자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맞춤법에서는 ‘먹이[食料]’, ‘국물[湯液] 등이 ‘멕이·메기’, ‘궁물’ 등 그 소리대로 표기된 예를 들고 “발음에는 매우 충실하게 기록되었다 할 수 있으나, 문법을 세워서 정리하기에는 여간한 주어(齟齬=어긋남)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말을 물론하고, 순 표음주의(表音主義)로만 맞춤법을 규정하여서는 안 될 것을 용이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통일안’ 강의 p.26)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 원리를 우리는 다음 (14)로 제시하고, 이를 ‘통일안 강의’, ‘ᄙ 받침·ㅆ 받침·ㅎ 받침’ 등의 논의에서 증명해 보기로 한다.
(14) 일석의 맞춤법관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리는 ‘학술적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합리주의’이다.
  이와 같은 일석의 기본 원리는 이미 ‘맞춤법 통일안 강의’ 머리말(p.19)에 “정밀(精密)한 과학적(料學的) 연구로부터 얻은 어학적(語學的) 이론(理論)을 쌓아 탑(塔)을 모으듯 한 것이 이 맞춤법 통일안”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또, (14)와 같은 원리는 통일안 제1장 제2절 ‘자모(子母)의 이름’에서 자음의 경우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초성 종성 통용 8자(初聲 終聲 通用 八字)에서는 ‘ㄱ(其役) ㅂ(非邑)’ 등이었으나 초성 독용 8자(初聲 獨用 八字)에서는 ‘ㅌ(治) ㅊ(齒)’로, 강위(姜瑋)의 동문자모분해(東文字母分解)에서는 초성 18은 ‘ㄱ(그) ㄲ(끄) ㅋ(크)’로, 종성 8은 ‘ㄱ(기윽) ㄴ(니은) ㅅ(시의)’로, 그리고 지석영의 신정국문에서는 초성 종성 통용 8자는 ‘ㄱ(기윽) ㄴ(니은) ㅅ(시옷)’으로, 초성 독용 6자는 ‘ㅈ(지) ㅊ(치) ㅋ(키)’ 등으로 이름을 붙여, 전혀 통일된 논리를 찾아볼 수 없는 데 반하여, ‘통일안’의 자모의 이름에서는 일사분란하게 그 원리(규칙성)을 지키고 있다. 그것이 바로 다음 (15)이다.
(15)
글씨
이름


귿











  여기서는 오히려 ‘기역·디귿·시옷’이 ‘기윽·디읃·시읏’으로 통일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하기보다는 ‘지읒-히읗’이 일률적으로 통일되어 자모의 이름으로 쓰인 것이 훨씬 이상하다. 결국 이렇게 된 것도 (14)와 같은 원리 때문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제 (14)와 같은 원리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일석의 맞춤범 논의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첫째, “‘ᄙ’ 받침의 不可를 論함”을 보기로 하자. 이 논의에서 일석은 신기함이나 다른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라서 적는 사람을 제외하고 ‘먹어·잡어·밟어’ 등과 똑같은 논리로 ‘어(流),어(呼)·어(乾)’로 표기하는 사람을 비판하고 그 부당함을 증명하고 있다.
  일석은 국어의 활용부(어미)를 다음 (16)과 같이 셋으로 나누고 있다.
  이 (16)의 (가)(나)(다)에 모든 어간을 맞추어 보아 괴리(乖離)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어간은 바른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어간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ᄙ’ 받침의 어간 ‘··’은 (16)(다)에서 괴리가 나타나 어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어간들은 실제로 (16)(다)에 적용하면 ‘거든·거든·거든’ 및 ‘고·고·고’ 등이 되어 비문법적이 된다. 따라서 일석은 이 동사들의 어간은 ‘흘르 불르 말르’가 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흘러 블러 말러’의 경우, 그 어간에서 활용 어미 ‘-어’을 분석해 내면, 결국 어간 ‘··만 남게 되어 결국 이 동사들의 어간이   ’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데 대한 해답을 ‘학술적인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곧, 일석의 주장대로 이 동사들의 어간을 ‘흘르·불르·말르’로 설정하고, 이것에 활용 어미 ‘어’가 연결된 것이 다음 (17)(가)이고 ‘쓰어’[書], ‘끄어’[消]에서 ‘으’가 탈락되어 ‘써·꺼’가 되듯이 ‘르’의 ‘으’가 탈락된 뒤 ‘ㄹ’이 ‘어’와 결합한 것이 바로 (17)(나)라는 것이다.
(17) (가) 흘르어·불르어·말르어
(나) 흘러·불러·말러
  논지가 분명하다. 따라서 ‘ᄙ’ 받침은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석의 주장이다. 이 주장 속에는 ‘학술적 이론’이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둘째. “‘ㅆ’ 받침의 可否를 論함”을 보기로 하자. 일석은 “ㅆ” 받침을 채용해야 된다는 점에서 그것에 해당되는 말을 “있다” 및 시제의 선어말 어미 ‘았/었·겠’으로 국한시키고 있다. 먼저 “ㅆ” 받침의 ‘있다’는 그 어간이 역사적으로 “이시→잇→있”으로 변천되었다고 해석하고 “ㅆ”받침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시한 논거를 다음 (18)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8) (가) “잇”을 어간으로 하여야 옛날 표기법에 맞는다.
(나) “ㅆ” 받침으로 발음하는 지역은 경성[서울]의 일부 지역이고 대부분 “잇”으로 발음하므로 “있”은 표준어가 될 수 없다.
(다) “ㅆ” 받침을 채용하면 철자법이 곤란하여 쓰기와 인쇄하기에 불편이 막심하다.
  (18)과 같은 논거에 대하여 일석은 일일이 논박하고 “ㅆ” 받침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18)에 대한 반론을 (19)로 요약 제시한다.
(19) (가) 옛날 표기법은 그 당시의 발음이므로 현대 표기법에 반영할 필요가 없다. 국어를 정리 통일하려면 반드시 현대어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고어에 “잇”으로 쓰였다 하여 그것을 따르면 우리 말을 정리 통일하는 데 배치된다. 옛 표기법을 써야 한다면 ‘끝’(末)과 ‘꽃’(花)도 마땅히 ‘귿’과 ‘곶’으로 표기해야 된다.
(나) “있”으로 발음하는 지역을 경성의 일부 지역이라 하나, 실제로 경기 충청남북, 강원도를 비롯하여 황해도의 대부분, 전라남북도의 일부분, 그리고 함경도의 일부분에서도 그렇게 발음한다. 특히 경남 고성, 통영 등지에서도 “있”으로 발음하는 곳이 있다.
  따라서, 당연히 “있”으로 표기하는 것이 합당하다. 더구나 “있”은 경성어이고, 그것이 표준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 “ㅆ” 받침을 쓰면 철자상, 인쇄상 곤란이 많다는 이유는 전혀 타당하지 못하다. “ㅆ”뿐만 아니라 둘 받침은 모두 그렇다고 해야 하는데, 유독 그 이유를 “ㅆ” 받침에만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있·았/었·겠’과 같이 “ㅆ” 받침을 써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에도 일석은 ‘학술적 이론’을 제시함을 결코 잊지 않는다. 곧, “없”의 활용형 ‘업스니·업 서서·업고·업시’와 같이 “있”도 ‘잇스니·잇서서·잇고·잇지’의 형식을 취하면 표면적으로는 어간이 ‘없·업’, ‘있·잇’이 되어 ‘한 개 단어의 일정한 형상을 유지할 수 없으며 그 의미를 곧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있’으로 어간을 확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석의 맞춤법관의 하나로 확정된 (12)(가)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는 내용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된다. 일석은 “ㅆ” 받침을 지지하는 설명 중에 “나는 이 어간과 활용부[어미]를 구분하여 쓰는데 매우 치중하고 싶으니, 그와 같이 해야 한 개 단어의 일정한 형상을 유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 단어를 일견하는 동시에 그 단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어의 형상을 일정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심지어 “표음 문자(表音 文字)의 표의화(表意化)를 주장하고 싶다”고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 논지 속에도 결국 ‘학술적 이론’이 담겨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셋째, “ㅎ” 받침 문제를 보기로 하자. 이 논문에서 일석은 여러 가지 학술적 이론을 제시하고 국어 맞춤법에서 “ㅎ” 받침을 써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 핵심적인 논지만을 제시하기로 한다.
  기존의 받침 규정과 국어의 본질과 받침, 그리고 새 받침의 필요성을 논하고 ‘音理上으로’나 ‘語法上으로’ 또 ‘歷史的 根據’로 “ㅎ” 받침을 맞춤법에 써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음리상으로 “ㅎ”은 ‘후두에서 발음되는 자음의 마찰음’으로 평음十성문의 마찰음인 ‘ㅎ’이 결합되면 기음(氣音)[유기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ㅎ”은 후두음 이외의 모든 자음과 혼합하는 성질을 가졌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니까, 특히 “ㅎ”이 파열음과 결합하여 유기음 ‘ㅋ ㅌ ㅍ ㅊ’이 되는 것은 그 내용으로 ‘ㅋ ㅌ ㅍ ㅊ’ 속에 ‘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똑같은 해석이라고 하겠다.
  일석은 “ㅎ” 받침을 써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ㅎ” 받침을 가진 말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20) (가) 單終聲으로 “ㅎ” 받침을 가진 말: 동사-낳다[産]·놓다[放]·쌓다[積] 등. 형용사-좋다[好]·하얗다[白]·그렇다[然] 등
(나) 重終聲 중에 “ㅎ” 받침을 가진 말: 동사-끊다[斷]·않다[不]·꼲다[考査]·잃다[失]·앓다[病]·끊다[切-1]. 형용사-많다[多]·언짢다[不好]·괜찮다[無關]·않다[非]
(다) “ㅎ”이 완전히 받침으로 굳어 버린 말: 단종성-좋다·놓다·쌓다 등. 중종성-끊다·많다·옳다·끓다 등
(라) 명사 혹은 명사형 어원에 “”가 붙어서 용언으로 쓰이다가, 그 “”의 “·” 음이 줄어서 “ㅎ” 받침이 생성(生成)하는 도중에 있는 말: 단종성-그러하다→그렇다·이러고→이렇고·저러지→저렇지·가다→갛다
중종성-아니다→아닣다→않다·귀치아니고→귀치아닣고→귀치않고→귀챦고→귀찮고·점지아니지→점지아닣지→점지않지→점쟎지→점잖지·괜치아니다→괜치아닣다→괜치않다→괜챦다→괜찮다·精지→정ㅎ지·願고→원ㅎ고
  (20)의 예들 중에서 특히 (20)(라)에 속하는 모든 말, 즉 어미에 “”를 가진 말로서 그 “”의 모음 “.”가 줄어지고 “ㅎ” 받침을 가지게 되는 도중에 있는 말들이 바로 “ㅎ”이 받침으로 표기되어야 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일석은 ‘어법상(語法上)으로’도 “ㅎ” 받침을 가진 말의 활용형을 보이고 아울러 “ㅎ” 받침을 써야 된다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곧, ‘낳[産]·넣[入]·좋[好]’ 등이 활용 어미 ‘거든·게·고’와 결합하면 그 실제의 발음이 각각 ‘낳-나커든·나케·나코, 넣-너커든·너케·너코, 좋-조커든·조케·조코’ 등이 되는 데 반하여 ‘먹다’[食]의 어간 ‘먹’의 경우는 ‘먹거든·먹게·먹고’가 되어 활용 어미 ‘거든·게·고’가 어느 경우에든 ‘커든·케·코’로 되어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활용 어미 ‘거든·게·고’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어간의 받침으로 “ㅎ”을 표기해야 된다는 것이 일석의 주장인 것이다.
  우리는 일석이 ‘“ㅎ” 받침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학술적 이론을 밑바탕으로 원형을 유지하도록 어간을 설정하고, 그것을 표기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결론

  우리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 “ᄙ” 받침의 불가를 논함, “ㅆ” 받침의 가부를 논함, 그리고 “ㅎ” 받침 문제 등의 논저를 통해서 일석의 맞춤법관과 그 기본 원리를 소략하게 찾아보았다고 생각된다. 그 내용을 여기에 다시 (21), (22)로 정리함으로써 결론에 대신하려 한다. 다만,(21), (22)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타당한 맞춤법 이론이 일석의 주장 속에 수립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의 역량이 부족하여 그것을 올바로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런 점이 발견되면 언제라도 결론을 수정하고 바른 가르침을 따르겠다.
(21) 일석의 맞춤법관
(가) 국어 맞춤법은 단어나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되, 그것을 소리대로 적음을 원칙으로 한다.
(나) 국어 맞춤법은 표준어를 정하고 이를 (21)(가)에 따라 적는다.
(다) 국어 맞춤법은 글 뜻의 오해를 막고 독서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단어(單語) 본위(本位)로 띄어 쓴다.
(22) ‘일석의 맞춤법관’에 나타난 기본 원리: 학술적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합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