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보고】
하얼빈 동포 한국어 교사 연수
허철구 / 어문 실태 연구부 학예 연구사
1. 목적
이 글은 1994년 7월 8일부터 7월 24일까지 한신 대학교 金東植 교수와 함께 해외 동포 한국어 교사 연수 사업의 하나로 中國 黑龍江省 하얼빈 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내용과 경험을 보고자의 느낌을 더하여 쓴 것이다. 해당 지역의 언어 실태뿐만 아니라 현지 동포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도 이 글을 통하여 진솔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앞으로 유사한 업무로 이 지역을 방문할 사람들에게 이 글이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2. 일정
7월 8일 09:00에 연길시 파견자인 서울 대학교 李翊燮 교수와 우리 원의 趙南浩 선생 일행과 함께 OZ 3155편으로 김포 공항을 출발하여 북경 시간으로 11:00에 천진 공항에 도착하였다. 흑룡강성 민족 연구소의 朴蓮玉 선생과 동북 삼성 조선 어문 공작 판공실의 鄭聖範 선생이 마중하였다. 인사도 제대로 나눌 겨를 없이 곧바로 연변 파견자 일행과 헤어져 北京으로 출발하였다.
북경에 도착, 서둘러 숙소를 정한 다음 파견 첫날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골몰하던 중 뜻밖에 기상 악화로 연길시로 출발하지 못하고 같은 호텔에 투숙한 이익섭 선생님 일행과 다시 만났다.
7월 9일에는 북경 시내를 둘러보았다. 전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소식에 다소 어수선한 심정이었지만 중국의 거리는 무심한 듯 평온하였다. 영, 청조를 거쳐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역사를 겪어 낸 중국 역사의 상징인 듯 서 있는 天安門 주위로 휴일을 맞아 중국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오가고 있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서둘러 자금성을 둘러보았다. 그 위세와 오연함이 자못 놀라운 한편 이 넓은 중국 땅과 수많은 한족 속에서 소수의 우리 동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오후에는 북경의 주요 서점들을 둘러보았다. 왕부정 서점 한 귀퉁이에는 조선어 책 판매대가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나마 모두 한어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 오면 반드시 들렀다는 유서 깊은 琉璃廠 거리에 가 보았다. 여유 있게 손님을 맞는 책 상인들이나 정취 있는 거리의 모습과는 달리 몰래 빼돌린 유물붙이를 들고서는 사라고 속삭이는 밀매꾼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한 서점에서 980元을 주고 “漢語 大詞典” 1질을 구입하였다.
다음날 목적지인 하얼빈(哈爾濱)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오신 오수원 처장과 함께 일행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따라 달려 시내에 도착, 예정 숙소인 民族 飯店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에는 省 민족 사무 위원회의 이정호 주임을 비롯한 현지 관계자들이 주최하는 간담회에 참석, 따뜻한 인사와 함께 현지 실태를 들었고 앞으로의 교육 일정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호텔에 마련된 연회실에서 여흥으로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예정대로 7월 11일 교육 학원에서 개강식을 하였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하얼빈시의 조선족 소학교 조선어 교사들이었는데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훨씬 넘어 80여 명이 참석하였다. 그들이 가장 곤란을 겪고 있는 언어 예절과 한글 맞춤법을 김동식 선생과 나누어 4시간에 걸쳐 강의하였다. 거리의 소음은 심하고 시간은 짧았지만 수강생들은 매우 진지하였다.
다음날인 12일에는 朝鮮一中에서 같은 내용으로 조선일중 교사 및 소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였다. 강의 도중에 어린 학생들도 들어왔는데 초롱초롱한 눈매와 달리 강의 내용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한 여학생은 내년에 또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13일에 비가 많이 내렸다. 숙소에서 굽어보는 송화강은 눈에 띄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비가 듣는 시외버스를 타고 五常市로 출발, 4시간여 만에 도착하였다. 오상은 1993년에 시로 승격된 곳으로 총 인구 100여만 명에 조선족이 약 4만여 명을 차지하여 우리말 교육과 문화 교류에 있어 중요한 곳이다. 현지 관계자들은 오상시 조선족의 교육열이 동포들 가운데 가장 높다고 자랑이 대단하였다. 다음날인 14일에 조선족 고급 중학교에서 중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우리말의 예절과 한글 맞춤법을 주 내용으로 강의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이 일일이 녹음하는 등 열심이어서 과연 그들의 자랑이 과장만은 아닌 듯했다. 강의가 끝나는 대로 오후에 하얼빈에 돌아왔다.
15일은 黑龍江 新聞社를 방문하여 좌담회를 가졌다. 흑룡강 신문은 조선어 판 약 4만부, 한어 판 10여만 부가 발행된다. 일요일은 한국 경제 특집을 낼 만큼 이 신문은 한국에 관심이 많고 우호적이다. 그렇지만 참석자들은 남한의 간행물들이 외래어를 지나치게 많이 써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잊지 않았고, 남북한의 어문 규범이 달라 저들로서 매우 곤란한 경우가 많다며 하루 빨리 통일된 규범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저녁에는 숙소인 민족 반점의 조선족 직원을 대상으로 언어 예절을 교육하였다. 대체로 조선족 젊은이들은 우리말을 하더라도 완벽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언어생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일정대로라면 16일은 목단강시로 출발하여야 하는데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주요 교통망이 두절되어 하얼빈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날씨는 개었지만 끊어진 다리, 철도가 복구되지 못하고 있었다. 목단강시 강의를 19일로 연기하고 지난 일정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면서 주말을 보냈다.
교통 사정이 별로 호전되지 않아 연기한 날짜인 19일에도 목단강시로 가지 못하였다. 오후에 하얼빈의 黑龍江 朝鮮語 放送局을 방문, 좌담회를 가졌다.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은 1963년에 우리말 방송을 시작하여 현재 하루 5시간씩 보도, 문예, 특별 프로 등을 방송한다. 동포들이 우리말을 익힐 때 방송을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송국은 말의 높낮이나 길이까지 세세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과거에는 평양말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현재는 억양 등에서 서울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흑용강 신문사와 마찬가지로 남한의 외래어 남용을 지적하기도 하였는데 그에 답하여 현재 남한의 국어 순화의 실태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19일에는 숙소에서 현지 언어 조사를 위하여 녹음을 실시하였다. 녹음에 응해 주신 이병철 선생은 오랫동안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하신 분인데 올가을에 고급 중학교 졸업 이상의 조선족, 한족 등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우리말을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 학교를 개교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다음날인 20일에는 하얼빈 근교의 城高里라는 조선족 마을을 찾아가 촌장을 모시고 2차 녹음을 실시하였다. 막걸리를 빚고 초가집이 많이 남아 있을 정도로 시골 지역이어서인지 사투리가 많았다. 언어 자체를 떠나 이주 초기 그 지역에서 그 조상들이 일본군이나 비적들로부터 겪은 고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또 하나의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결국 목단강시 방문을 취소하고 21일 북경으로 출발하였다.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든 정에다가 파견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가는 느낌까지 더하여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陽에 불시착하는 우여곡절 끝에 밤늦게 북경에 도착하였다.
22일은 휴식을 취하며 교육 일정을 정리하였다. 오후에는 다소 한가한 마음으로 북경 시내와 서점가를 둘러보았다.
23일은 만리장성에 올랐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든 거대한 성벽에 지금은 수많은 이민족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개혁 개방의 중국을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산은 높았으나 바람 한 점 없어 찌는 듯이 더웠다. 그 더위에 고맙게도 우리를 안내해 준 조선족 아가씨는 우리말을 잘 했다. 다만 중국의 역사적 인물은 잘 알면서도 世宗 大王이나 退溪 선생은 전혀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24일은 天津 공항으로 가서 이익섭 선생님 일행과 만나 서울로 출발, 오후 5:00에 김포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3. 해외 동포 한국어 교육의 목표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의 세대 간에 언어적 단절감이 생기는 것을 막고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감 회복 및 유지, 그리고 장차 한중 교류 등 국제적 교류에서 동포들이 설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해 주는 것을 목표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현지 동포들은 대체로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등 중국 사회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또한 민족 얼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중국의 소수 민족 정책에 힘입어 현재까지 우리말을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 다수인 중국인 사회에 어울려 산다는 한계 때문에 점차적으로 중국어는 알되 우리말을 모르는 세대들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동포 가운데 우리말을 잘 아는 세대들은 현재 어문 규범을 비롯한 남북한의 말이 다르다는 점이 고민이며, 그 이하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완전치 못하다는 문제까지 안고 있다. 젊은 세대의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젊은 세대들이 우리말을 모름으로써 윗세대와의 언어적 공감을 갖지 못하고 나아가 우리 문화, 역사 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점점 더 단절감을 갖게 된다. 이들 젊은 세대에 대한 올바른 한국어 교육은 시급하고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족의 동실성 회복이라는 대전제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면에서도 이유가 있다. 최근 한중 수교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인데 그때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동포는 당연하게도 현재의 젊고 어린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 그 윗세대들은 이들 후세들을 교육할 입장에 있지만 그들로서도 표준적인 우리말이 정립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우리의 풍습, 예절, 역사 등에서도 좀 더 알아야 할 입장에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동포들이 스스로 이 같은 세대 간의 언어적, 문화적 단절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최근 한중 수교를 계기로 한국 기업인, 여행객 등의 출입이 늘어나면서 동포들의 남한 사회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은데, 이 같은 현지 동포들의 기대와 노력을 수용하여 그들이 중국어를 잘하는 한편으로 우리말도 잘 구사하여 앞으로 우리말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민족 언어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도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4. 현지 동포 사회의 성격과 한국어 사용 실태
흑룡강성 지역의 동포 수는 약 45만 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 하얼빈시(전체 인구 약 500만 명)에 약 8만 명, 목단강시에 약 20만 명, 오상시(전체 인구 100여만 명)에 약 4만 명이 집중되어 있다. 대체로 1세들은 생계를 찾아 19세기 말엽인 구한말 시대에 이곳으로 이주하였는데, 현재 6, 70대들도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대다수일 정도로 이곳 이주의 역사는 길다.
이주한 사람들은 경상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다. 현재 흑룡강성 동포들의 약 70% 정도가 남한 쪽에 근원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곳 동포들의 언어는 이중 언어 생활이라고 할 수 있어 이주 2세들인 6, 70대부터 40대 정도까지는 대부분 중국어와 우리말을 모두 잘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나 어린 세대들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사용하기도 한다. 하얼빈시만 보면 40대 이상은 거의 모두 우리말을 잘하지만, 30대 이하는 약 절반 정도가 우리말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약 70% 정도가 우리말을 안다고 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우리말을 아는 비율은 점점 떨어져 20살 이하 가운데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35%에 불과하다고 한다. 더욱이 젊은 층은 우리말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여기에 밥 먹어도 됩니까?”처럼 ‘에’와 ‘에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등 조사를 잘 쓸 줄 모르거나, 호칭어·지칭어나 ‘-시-’의 경어법을 잘 모르는 등 우리말 습득이 완전치 못한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인 사회에 어울려 살다 보니 중국어를 우선적으로 익혀야 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한편, 동포들만 모여 사는 일부 시골 지역은 어린아이들이 중국어를 모르고 우리말을 쓴다. 이는 우리 동포들의 이주 및 그 생활양식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이주 초기에 동포들은 밭농사 위주의 한인들과는 달리 논농사를 위해 낮은 지대에 따로 모여 살았는데 이러한 생활양식은 우리말을 보존하여 쓸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중국인 사회에 휩쓸린 대도시와는 달리 여전히 동포들만 모여 사는 시골 지역은 중국어는 모르고 우리말부터 익히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도시인 하얼빈에 비하여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오상시의 동포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말을 할 줄 안다고 한다.
이주한 사람들이 경상도 지역의 출신이 많아서 현재 이 지역의 언어는 억양, 높낮이, 말투 등에서 경상도 방언의 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경상도 등 한반도 남부 지역의 언어를 근간으로 하고는 있지만 주은래 정권 때 북한의 언어를 규범으로 채택한 이후 어휘 등에서 북한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한어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한어의 영향을 예를 들면 ‘일없다’와 ‘전화치다’는 한어 ‘無事’와 ‘打電’을 옮겨 쓰는 말이고, ‘애인(愛人)’도 한어의 뜻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서로를 부르고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리말 뜻의 애인은 ‘대상(對象)’이라고 한다. ‘채소/채(음식)’, ‘영도(책임자)’ 등도 한어의 영향을 받은 말들이다. 현지 동포들은 이러한 한어적 영향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안배(按配)’는 무척 많이 쓰는 말인데 방송국에서는 이 말 대신 ‘안내, 마련, 배치’ 등을 쓰고 있으며, ‘공작(工作)’은 우리말의 어감에 맞는 ‘사업’으로 바꾸어 쓴다. 중국 정부와의 문서 등 공적인 의사소통에서는 ‘電視臺’로 쓰지만 동포들끼리는 ‘방송국’이라고 한다.
어문 규범에 있어서는 중국의 동포 전체가 자체적으로 규범을 만들어 쓰고 있으나 남북한의 차이 때문에 크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동포들의 규범은 남한보다는 북한에 가까운데 특히 강조하는 것은 두음 법칙에 관련된 표기로 동포들은 북한 안과 마찬가지로 ‘리익, 류씨’와 같이 적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은 ‘녀성’으로 적으면서도 발음은 대체로 ‘여성’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언론 기관 등은 외래어 표기에 특히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동포들은 ‘조즈(만두)’와 같이 한어를 그대로 따온 말들은 별로 쓰지 않는데 근래에 ‘센터’와 같은 영어 외래어가 많이 들어오고 널리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포들이 영어를 잘 몰라 이해하지 못하는 외래어가 많다. 따라서 최근 흑룡강 신문은 ‘에너지(能)’와 같이 중국식 외래어를 한자로 병기하는 방안을 택하고 있기도 하다. 널리 쓰이는 외래어라 하더라도 ‘콤퓨터(흑룡강 신문)/컴퓨터(연변일보)’와 같이 아직 통일되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 대체로 외래어 및 그 표기는 북한 과 매우 유사하다.
강제적인 법 조항은 없으나 신문, 출판물 등은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중국 최초로 흥룡강성 지역에서 소학생을 대상으로 3~6학년 동안 1,200자의 한자를 우리 음으로 교육하는 실험을 마치기도 하였다.
이 지역은 남한과 다른 특이한 어휘가 있으며, 남한의 어휘 가운데 이해하지 못하는 말도 일부 있다. 이를테면 남편을 ‘나그네’라 하며, 시동생을 부를 때 ‘도련님’ 또는 ‘서방님’이라 하지 않고 ‘시동생’으로 호칭한다. 오빠의 배우자를 가리키는 말인 ‘새언니’를 모르며 대신 ‘올케언니’라고 한다. ‘아재’는 아가씨나 아주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차간은 ‘바구니’라고 하며, 아파트는 ‘층집’이라고 한다. ‘면목이 없다’는 안면이 없다라는 뜻의 말이다. ‘심지어(는)’는 대체로 ‘지어(는)’로 줄여 쓴다.
5. 한국어 교육의 효과적 방안
흑룡강성 지역의 한국어 교육은 두 개의 대상으로 나누어 생각하여야 한다. 우리말을 잘 알지만 남한의 규범에는 익숙하지 않은 장년층 이상과 우리말이 서툴거나 전혀 모르는 젊은이 계층이다.
전자에 대한 교육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 져야 한다. 중국의 동포들은 남한과의 교류로 이미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규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독자적인 규범을 만들어 쓰고 있는 그들로서는 일방적인 남한의 어문 규범 교육에는 매우 거부감을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의 어문 규범 연수는 교육의 형태만 고집하지 말고 토론 및 논의의 형식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목표 또한 동포들의 어문 규범을 수정하는 데에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남북한 및 해외 동포들의 어문 규범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통일할 때를 대비하여 남한의 어문 규범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를 제공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표준적인 한국어의 보급을 위해서는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이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의 동포들은 점진적으로 우리말을 잊어 가고 있는 단계에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고 우리말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는 이들 젊은 층을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을 우리가 직접 교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해외 동포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교육이 관련성을 갖도록 항상 배려하여야 한다.
동포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국가적인 차원에서 현지의 동포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할 전문 기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때 교사는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파견한 국어 전문가 또는 교육받은 현지 한국어 교사를 채용한다.
둘째, 흑룡강성 내에 있는 각급 조선족 학교와 연계하여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흑룡강성 내에 조선족 소학교는 400개, 초급 중학교 70여개, 고급 중학교 19개가 있다. 소수의 전문가를 장기적으로 파견하여 이들 학교의 교사들을 정기적으로 교육함으로써 학생들에 대한 우리말 교육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언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방송국 및 신문사와 연계하여 공동의 사업을 펼쳐 나가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은 몇 해 전부터 한국 KBS에 초청되어 아나운서의 발음 교육 등을 연수받고 있다. 그 결과 이들 아나운서들의 말은 서울말에 가깝게 발음되고 있다. 방송이 언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한국 내 언론사와 연계하여 어문 규범 등의 교육 내용도 포함시킴으로써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넷째, 교육 학원이나 각급 학교 등 현지의 한국어 교육 기관이나 한국어 관련 기관 및 단체, 한국어 연구가들에게 남한의 한국어 관련 자료들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국어 학습 자료, 각급 교과서, 한국어 교육용 녹음 테이프나 녹화 테이프 등을 제공하여 스스로 익히게 하는 방안이다. 자료들에 의한 교육은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며 또 현지의 동포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한편, 자라나는 세대들이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어를 우선적으로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에 걸맞는 동기가 주어져야 한다.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득, 민족에 대한 자긍심, 충분한 여건 등이 그것이다. 다행히 젊은 세대들도 한중 교류의 과정을 통하여 최근 경제적 측면 등에서 한국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우리말 습득의 중요성 및 현실적 이점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와 더불어 동포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 주고, 한국어 교사를 교육하고 우리말 학습에 필요한 교재를 제공하거나 하여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동기와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6. 한국어 전문가 파견의 문제점
중국에 파견할 한국어 전문가는 국가의 어문 담당 기관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계획에 따라 선발하여야 한다. 현재와 같이 단기적인 사업에서 國立 國語 硏究院에서 선발 파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장기적으로 상주할 전문가를 파견하는 경우라면 많은 인원을 확보해야 하고 이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
첫째, 파견자는 무엇보다도 남한의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등 어문 규범을 숙지한 사람이어야 하며 나아가 북한의 어문 규범, 중국의 어문 규범에 대한 소양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높은 수준의 동포 한국어 교사들에 대한 교육에 있어서 이 어문 규범의 숙지는 필수적이다.
둘째, 파견자는 정확한 표준어 및 표준 발음법을 구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파견자의 언어는 그대로 학습 자료가 되는 만큼 교육 내용과 다른 식의 말을 구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파견자는 언어 예절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흑룡강성 동포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언어 예절인 만큼 파견자는 특히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이든 예절에 맞게 말하는 언어 습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넷째, 동포 한국어 교사들은 대부분 정규 교육 기관에 근무하는 교사들이므로 국어 학습을 비롯한 교육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단순히 교사들에 대한 일방적인 강사로서가 아니라 국어 교육에 대한 상담자나 조언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파견지는 민속 등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현지 동포들이 언어를 단순히 언어로만 국한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얼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만큼 우리 고유의 문화 및 역사에 대한 지식 및 보존에도 관심이 높다.
7. 교재 및 서적 보급
현재 중국 흑룡강성 지역에 보급되는 한국어 관련 교재 및 서적은 양적으로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태이며 종류에 있어서도 매우 제한되어 있다. 자료의 보급은 현지 동포들이 가장 강력하게 희망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말을 할 줄 모르는 젊은 세대나 어린 세대들의 보다 충실한 국어 교육을 위하여 한국어 학습 교재를 제공하여야 한다. 현재 흑룡강성 동포들은 고급 중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韓國語 敎育 學校를 올해 9월에 개교할 계획으로 한국어 교육의 움직임이 더욱 크게 일고 있다. 이들을 비롯한 젊은이들 및 소학교 학생들의 우리말 교육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양질의 전문 한국어 학습 교재를 비롯하여 동화책, 역사책, 과학책 등을 제공하여야 한다.
현지의 한국어 교사, 전문적인 연구가들에게 남한의 각종 국어학 연구 자료들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국립 국어 연구원의 정기 간행물 및 그 밖의 연구 단체들의 연구 자료들을 정기적으로 보내도록 하여야 한다. 이는 남한의 어문 규범을 확대 보급한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일 수 있다. 이들 연구 자료들을 제공함으로써 현지의 전문가들이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 결과로 남한의 어문 규범에 대하여도 보다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기관에 우리 어문 규범 관련 자료를 제공하여야 한다. 현지 흑룡강 신문사는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992)를 기본 사전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남한의 외래어 표기법 관련 자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들 기관들에 대한 적극적인 자료 보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8. 파견 교육 시기 및 방법에 대한 문제점
이번 교육은 흑룡강성 지역의 각급 학교의 학사 일정 및 지리적 문제 등과 관련하여 한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강의하지 못하고 매번 장소를 옮겨 강의하였다. 그 결과 수강생들이 장기간 수강하는 것이 어려웠다. 현지 각급 학교의 학사 일정은 7월 25일경에 대부분 끝난다. 따라서 효과적인 연수를 위해서는 7월 25일 이후나 학기말 시험이 시작되는 7월 초 이전에 연수 활동을 해야 한다. 현지의 동포들은 오히려 8월의 방학 기간에 교사들이 각종 일로 바빠 참석률이 저조할 것이므로 학기 중인 5월이나 9월께가 더 낫다고 말한다. 다만 학기 중에 파견하는 것은 우리의 사정상 어려우므로 여러 모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올해와 같이 각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강의하는 방법도 장점이 없지는 않다. 일정 지역에서만 강의하면 그 지역 외의 거주 동포들은 참석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는데 순회하면서 강의를 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수강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충분한 내용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연수 기간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참고로, 앞으로 사업 추진 접촉 대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수에서 행정적인 업무는 성 민족 사무 위원회에서 담당하였고, 교육 행사는 성 교육 학원 민족 교연부에서 담당하였다. 민족 사무 위원회는 성 정부 소속이고 교육 학원은 성 교육국 소속으로 별도의 기관이다. 다만 소속된 동포의 지위를 고려할 때 민족 사무 위원회(부주임)가 상급 기관이며, 현지에서 연수 사업을 관할한 주무 부서도 성 민족 사무 위원회이다. 또 현지의 성 교육 학원과 직접 접촉하더라도 현지에서 다시 성 민족 사무 위원회에 통보하고 행정적인 협조를 받아야 한다. 더욱이 앞으로 여러 가지 방향으로 교류가 확대될 것에 대비하여서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포괄적인 업무 능력을 지닌 성 민족 사무 위원회와 직접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교재 및 자료는 두 기관에 고루 제공하여 각 기관에서 관할하는 단체들에 고루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입장을 현지에 분명하게 통보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9. 맺는 말
중국은 날이 갈수록 개방되고 있다. 전체 인구의 93.4%를 차지하는 절대 다수의 한족들이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모든 분야에서 앞서 가고 있다. 중국 내 55개 소수 민족은 소수 민족 정책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족과 함께 발전의 도상에 서야 할 때로 보인다. 이는 우리 동포인 조선족에 있어서도 절실한 문제이고 실제로 우리 동포들은 그러한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조선족은 중국 내 소수 민족 가운데서도 제 나라 말과 글을 모두 보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한족과 함께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힘써 일하는 한편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 이민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이들이 언제까지나 제 민족의 말을 보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은 언어에 있어서도 한어에 더 능통하며 한족과 같은 사고방식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흑룡강성 거주 동포들은 이러한 점을 우려하며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후세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동포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도 잘 해 나갈 것으로 믿고 있지만 한국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동포들은 한국어 교사 연수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의 인원 및 예산으로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이들 각 성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