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한의 국어사전]

‘조선말대사전’(1992)과 문법 정보

남기심 / 연세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북한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조선말대사전’을 북한의 대표적 사전이라 보고 그를 대상으로 하여 논한다. 단, 남북한 어느 쪽의 사전도 문법 정보가 대단히 빈약하기 때문에 여기서 논하는 바는 사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수 있다.

  2. 남한의 사전도 그렇지만 ‘조선말대사전’의 문법 정보 역시 대단히 소루하다. 어느 사전이나 기본적인 품사 표시는 하고 있으나 품사의 종류는 기껏 열 개 미만이니, 수십만 어휘의 문법적 특성을 불과 열 가지 정도로 분류한다는 것은 각 어휘의 문법적 특성 표시를 아예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올림말의 문법 특성 표시를 잘 드러내자면 각 품사의 하위 분류가 좀 더 자세히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표시되어야 하는데 ‘조선말대사전’은 명사에 있어서 ‘불완전 명사’, 동사에 있어서 ‘자동사’와 ‘타동사’, 그리고 형태론적 정보로서 ‘앞붙이’, ‘뒤붙이’, ‘토’ 이상의 하위 분류가 없다.
  하위 분류가 너무 미세하면 일반성이 없는 문법 정보를 주는 결과가 되는 흠이 있을 수 있으나, 너무 간략하면 각 범주가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휘 하나하나의 개별적 특성이 묻혀 버리므로 그러한 정보는 주나 마나한 것이 된다. ‘조선말대사전’의 문법적 특성의 분류는 지나치게 간략하다.

  3. ‘단순하다’, ‘강경하다’, ‘강개하다’, ‘간주하다’… 등 용언의 어근인 ‘단순, 강경, 강개, 간주…’는 자립어로 쓰이는 일이 없고 따라서 이들에 어떤 품사도 부여할 수 없다. 그런데 ‘조선말대사전’에는 이들을 올림말로 올리고 각각 명사로 표시를 하였다. 이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명사란 품사 표시와 함께 “《단순하다》의 어근적 단어”와 같은 풀이를 붙이고 있으나 어떤 근거에서 이들을 단어로 보고 명사로 분류했는지 알 수 없다. 이들의 용례를 보이고는 있으나 그것은 이들의 명사로서의 용례가 아니라, 이들을 어근으로 한 ‘단순하다, 강경하다…’의 용례이다. (그나마 ‘간주’ 같은 것은 “《간주하다》의 어근적 단어”와 같은 풀이도 없어서 풀이의 일관성도 없다.) ‘조선말대사전’은 한자로 된 모든 어근을 이렇게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문법 정보는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사전 이용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애초부터 사전의 문법 정보에 대한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아래에 ‘조선말대사전’의 ‘단순’에 대한 풀이의 예를 보인다.

단순[명] 《단순하다》의 어근적단어. ↔ 복잡. (34)


  4. ‘조선말대사전’은 이른바 ‘품사 통용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처음, 지금, 오늘, 정말, 사실…’ 등은 명사로도 쓰이고 부사로도 쓰이는데 이들을 모두 한결같이 [명]으로만 표시를 하고 그 몇 가지 뜻갈래 중의 하나로 (다시 말하면, 다의적인 용법 중의 하나로 새 번호를 붙이고) “부사적으로 쓰인다.”, 또는 “(부사적으로 쓰이여)……의 뜻을 나타낸다.”와 같은 풀이를 하여 품사로서는 ‘명사’만을 인정하고 있다. ‘처음’과 같은 말에 대해서는 뜻갈래의 표시가 없이 명사로서의 뜻풀이에 잇대어 “…D(부사적으로 쓰이여) (그전에 없던것을) 비로소.”라고 했는데 이때의 ‘D’는 ‘일러두기’의 부호 설명에 의하면 “옹근뜻안에서 다시 갈라진 뜻의앞에” 쓰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래에 ‘조선말대사전’의 ‘처음’과 ‘지금’의 풀이의 예를 보인다.

처음 「2」「2」 [명] (시간적으로나 차례로) 맨 앞이나 먼저. ∥ ~과 나중.∣우리 나라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세금이 없는 나라로 되었다. D (부사도 쓰이여)(그전에 없었던 것을) 비로소.∥ ~보는 일. ~알게 되다.(655)
 
지금 「2」「3」 [명] ① = 이제①. ∣그런 일을 왜 지금에 와서야 말한단 말이냐? ② 바로 이 시각.∣ 지금부터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③ 말하는 바로 이때. ∥인류가 ~까지 창작해낸 문학예술작품.④ 살고있는 오늘의 시대. ∣ 지금은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인이 된 세상이다. /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시대이며 과학과 기술을 모르고서는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⑤ 부사로 쓰인다. ∣그들 기계화초병들은 지금 기름진 농장벌을 불이 번쩍나게 갈아엎고 있다. [只今] (1,424)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조선말대사전’은 올림말이 한 가지 이상의 품사 기능을 가지는 것은 그 말의 의미가 확장되어 쓰이는 데 따른 것으로서 문법적 기능을 의미 해석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들 이른바 ‘품사 통용어’를 두 가지 서로 다른 품사에 소속되는 동음어로 보는 것이 옳으냐, ‘조선말대사전’에서와 같이 한 가지 품사 기능만을 인정하여 다의어의 한 가지로 보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은 이론적인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그 판단이 쉽지 않으나, 적어도 ‘조선말대사전’의 문법 정보에 대한 태도의 일단은 살펴볼 수가 있다. 즉, ‘조선말대사전’은 의미 정보의 가치를 문법 정보의 가치 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전은 말이나 글의 의미 해석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정확하고 문법적인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전의 기능이다. 사전의 문법 정보는 올림말의 뜻풀이를 위해서는 물론, 글 쓰는 이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조선말대사전’의 문법 정보는 대단히 소루해서 그 어느 쪽의 필요도 충족시키기 어렵지마는, 그나마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것이 올림말의 핵심적 의미이며, 거기에서 뜻이 어떻게 갈라져 나가 쓰이는가를 보이기 위한 수단 정도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전 편찬의 목적을 말, 글 해석을 돕는 데 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5. ‘조선말대사전’의 문법 정보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서 한 예로 올림말 ‘맞다’의 풀이를 대상으로 하여 분석해 보기로 한다.
  다음은 ‘조선말대사전’의 ‘맞다’에 대한 풀이이다.

맞다 「2」「2」 [동] Ⅰ (자, 타) (쏘거나 던지거나 우에서 떨어지는것 등이) 어떤것에 가닿거나 그런것의 닿음을 받다. ∥비를 ~. 비에 ~. 이슬을 ~. 바람을 ~. 총알에 ~. Ⅱ (타) ① 때림을 당하다. ∥ 매를 ~. ② (주사나 침 같은것을) 놓음을 당하다. ∥ 침을 ~. 예방주사를 ~. ③ (도장 같은것을) 찍어받다. ∥ 도장을 ~. ④ (어떤 성적의 점수를) 받다. ∣ 학년말시험에서 모두 5점을 맞았다. ⑤(일부 명사들과 함께 쓰이여) 당하다. ∥합격을~. 핀잔을 ~. ⑥ (찾아오는 사람을) 례로 받아들이다. ∥ 손님을 반갑게 ~. 외국의 벗들을 ~. ⑦ 자기에게 절하는 사람에게 얼마간 허리를 굽혀 답례하다. ∣ 이 사람아 절을 먼저 하지는 않더라도 맞기는 해야지. (장편소설《림꺽정》 1) ⑧ 명절이나 철이 다가오&는것을 대하다.∥ 해방을 ~. 봄을 ~. 첫 번째로 맞는 방학.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기념일을 맞는 온 나라 근로자들은 끝없는 영광과 환희로 들끓었다. ⑨ (남편, 안해, 사위, 며느리 등을) 례식을 갖추어 얻다. ∥안해를 ~. 사위를 ~. 며느니를 ~. Ⅲ (자) ① 빈틈이 없이 서로 닿다. ∣약병의 뚜껑이 꼭 맞는다. / 나사가 꼭 맞는다. ② 서로 어긋나거나 틀림이 없이 일치하다. ∥수학문제의 답이 ~. 그의 말이 꼭 ~. 수자가 ~. ③ (사상, 견해, 감정이) 같아서 서로 통하거나 일치하다. ∥견해가 ~. 감정이 ~. ∣그들은 언어와 피부색은 서로 달라도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점에서 서로 사상과 견해가 맞는다. D (마음, 취미, 구미, 비위 등에) 들다. ∥구색이 ~. 취미에 맞는 옷차림, 조선사람의 비위와 구미에 맞는 음식. ∣그는 소년시절부터 봉건가정의 질곡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④ (크기나 정도가) 알맞다. ∥구두가 발에 ~. 옷이 몸에 ~. ⑤ (원리, 리론, 특성, 리익 등에) 부합하거나 적용하다. ∥우리 나라의 실정에 ~. 기후풍토에 ~. 주체철학의 원리에 ~. ∣우리는 우리 혁명을 우리나라의 력사적특성과 우리 인민의 리익에 맞게 해나가가고 있다. Ⅳ (일부 형용사의 《-아, -어, -여》형 아래에서 보조적으로 쓰이여) 그 형용사가 나타내는 뜻을 강조한다. ∥급해 ~. 바빠 ~. (917)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말대사전’에서 동사 ‘맞다’에 대한 풀이에 주어진 문법 정보는 ‘[동] , (자, 타), (자), (타)’로 표시된 것으로서, ‘맞다’가 동일한 환경에서 자, 타동사의 양쪽으로 쓰이는 경우, 자동사로 쓰이는 경우, 타동사로 쓰이는 경우를 구분해 보인 것이 전부이다. ‘맞다’의 뜻풀이는 먼저 이 세 가지 범주로 크게 나누어 가지고 각각 그 안에서 다시 세분화하여 서술하고 있다. 논의의 편의상 ‘조선말대사전’이 ‘맞다’의 뜻풀이를 Ⅰ, Ⅱ, Ⅲ으로 나누어 한 것을 각각 ‘맞다(Ⅰ)’, ‘맞다(Ⅱ)’, ‘맞다(Ⅲ)’이라 하기로 하자.

  5.1 먼저 (자, 타)라고 한 ‘맞다(1)’의 경우는 “(쏘거나 던지거나 우에서 떨어지는 것 등이) 어떤 것에 가닿거나 그런것의 닿음을 받다.”로 뜻풀이를 하고 “비를 ~/비에 ~”, “이슬을 ~”, “총알에 ~”와 같은 예를 든 것으로 보아 이때의 ‘맞다’는 ‘NP-를’이나 ‘NP-에’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즉 ‘NP-를’은 목적어이므로 이 때의 ‘맞다’는 타동사적 용법을 가진 것이며, ‘NP-에’는 목적어가 아닌 부사어의 일종이므로 이러한 때의 ‘맞다’는 자동사적으로 쓰인 것으로서 이렇게 타동사적 용법과 자동사적 용법을 드나드는 쓰임이 있다는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러나 목적어 자리의 명사가 사전에서 보인 ‘비, 이슬, 바람, 총알’이나 ‘창, 칼, 돌, 화살…’ 등일 때는 조사로서 ‘-를’이나 ‘-에’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으나 ‘물벼락, 함박눈, 햇살…’ 등일 때는 ‘-를’은 취할 수 있으나 ‘-에’는 취할 수 없으며, 반대로 ‘운석(隕石), 비행 물체…’ 등은 ‘-에’는 취할 수 있으나 ‘-를’은 취하지 않는다. 이로써 보면 “(쏘거나 던지거나 우에서 떨어지는 것 등이) 어떤 것에 가닿거나 그런것의 닿음을 받다.”의 뜻으로 쓰이는 ‘맞다’라도 목적어 ‘NP-를’과 ‘NP-에’ 중의 어느 하나를 취함에 있어서 일정한 제약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자동사와 타동사를 겸한다”는 지적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은 ‘NP-를’이라는 명사 항을 필수적인 성분으로 취하는 동사와 그렇지 않은 동사를 구별하는 것일 뿐, ‘NP-를’ 이외의 명사 항을 필수적으로 취하는 동사는 구분해 주지 못한다. 위의 ‘맞다’가 ‘NP-를’ 대신에 ‘NP-에’를 취할 때는 이를 자동사라고 할 만하지마는 ‘NP-를’의 ‘-를’이 ‘-에’로 바뀌어 쓰이는 것일 뿐, 그 ‘NP-에’가 ‘맞다’의 필수적 성분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NP-를’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느 동사를 ‘자동사’라고 한다든가 또는 ‘자, 타동사’를 겸한다든가 하는 것은 그러한 문법적 사실에 대해서 사전 이용자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는 바가 없다. 그뿐 아니라 ‘NP-를’ 대신 쓰이는 명사 항의 조사가 ‘-에’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전 이용자에게 알려 주는 바가 없다.

  이 ‘맞다(Ⅰ)’는 그것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NP-를’이나 ‘NP-에’ 이외에 수의적인 ‘NP-에’나 ‘NP-를’을 취한다. 다음 예의 밑줄 친 말이 그것이다.
(1) 철수가 머리에 돌을 맞았다.
(2) 철수가 머리를 돌에 맞았다.
  그런데 이 수의적 성분이 ‘-에’로 나타나는가 아니면 ‘-를’로 나타나는가 하는 데도 제약이 있다. 즉 다음 (1’)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마는 (2’)의 경우는 비문이 된다.
(1’) 철수가 머리 맞았다.
(2’) *철수가 머리 맞았다.
  또, ‘맞다(Ⅰ)’을 “(쏘거나 던지거나 우에서 떨어지는 것 등이) 어떤 것에 가닿거나 그런것의 닿음을 받다.”로 뜻풀이를 했는데 “쏘거나 던지거나” 하는 것은 그 행위자가 있다는 뜻이니 또 하나의 수위적인 명사 항 ‘NP-에게/한테’가 수의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1”) 철수가 불량배에게 머리를 돌에 맞았다.
  이러한 사실들, 즉 ‘맞다(Ⅰ)’이 ‘맞는 부위’를 나타내는 ‘NP-에/를’, ‘쏘거나 던지는 동작주’를 나타내는 ‘NP-에게/한테’를 수의적으로 취한다는 사실이 이 사전에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으며, 이러한 문법적 사실들은 ‘(자, 타)’의 표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5.2 ‘맞다’의 두 번째 풀이는 타동사란 뜻의 (타) 표시를 하고 이를 다시 아홉 가지로 나누어 풀이를 하였다. 이 속에 풀이된 여러 가지 뜻의 ‘맞다’는 목적어 ‘NP-를’을 필수적으로 대동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타동사로 쓰이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목적어를 필수적으로 가진다는 점 외에는 문법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 섞여 있어서 과연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처리할 수 있는지 크게 의심스럽다. 예컨대 “매를 맞다”에서와 같은 “때림을 당하다.”의 뜻이나, “침을 맞다”에서와 같은 “(주사나 침 같은것을) 놓음을 당하다.”의 뜻, 그리고 “핀잔을 맞다”에서와 같은 “(일부 명사들과 함께 쓰이여) 당하다.”의 뜻으로 풀이된 ‘맞다(Ⅱ)’는
(3) 철수가 상급생들에게 매를 맞았다.
(4) 면허도 없는 의사한테 주사를 맞다니!
(5) 그는 날마다 아내한테 핀잔을 맞는 것이 일이다.
에서와 같이 매를 때리거나 침을 놓거나 또는 핀잔을 주는 행위자를 나타내는 ‘NP-에게/한테’를 수의적인 명사 항으로 취하는데, 다른 뜻의 ‘맞다(Ⅱ)’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맞다(Ⅱ)’의 네 번째 풀이, “(찾아오는 사람을) 례로 받아들이다.”의 ‘맞다’는 이 ‘NP-한테/에게’가 없이 쓰인다. “며느리를 맞다”와 같이 “(남편, 안해, 사위, 며느리 등을) 례식으로 받아들이다.”의 뜻으로 풀이한 ‘맞다(Ⅱ)’는
(6) 김 초시는 친구의 딸을 며느리로 맞았다.
와 같이 ‘NP-를 NP-로’를 대동하는 용법도 있는데 이것은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맞다(Ⅱ)’와 문법이 다르다. 이러한 용법의 풀이는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데, ‘조선말대사전’의 편찬자가 ‘맞다’의 이러한 용법을 모르고 있었다면 모르지만 만약 알고도 “며느리를 맞다”와 동일한 용법으로 보고 따로 풀이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는 중대한 문법적 사실을 무시한 것이 된다. 이렇게 ‘NP-를 NP-로’를 명사 항으로 취하는 동사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다음에 몇 개만 예를 보인다.
(7) 나는 바람 소리를 거문고 소리로 생각했다.
(8) 모두들 그를 친절한 사람으로 느꼈다.
(9) 이번에는 김근수를 회장으로 뽑읍시다.
  위의 예문에서와 같은 ‘NP1-를 NP2-로’의 NP1과 NP2사이에는 주어와 서술어 사이의 관계와 같은 의미 관계가 있다. 즉 NP2는 NP1의 서술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서술어 ‘생각하다, 느끼다. 뽑다’ 등의 논항이 된다. 이들 동사들의 이러한 용법은 사전에 체계적으로 기술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매를 맞다”의 경우는 목적어 ‘매를’이 없이
(10) 그가 어떤 사람에게 두들겨 맞았다.
와 같이 쓰일 수도 있어서 이때는 자동사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사전의 방식으로는 오히려 Ⅰ에서 풀이를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를 맞다”와 뜻이 가까운 “주사나 침을 맞다”의 용법과는 거리가 멀게 풀이가 되어 또한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

  5.3 ‘맞다’의 큰 세 번째 풀이는 자동사로 쓰일 때의 것으로 그 속에 다시 다섯 가지 쓰임이 있음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도 문법적으로 이질적인 쓰임이 한데 묶여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맞다(Ⅲ)’의 첫 번째 풀이는 “빈틈 없이 서로 닿다.”라 하고 “약병의 뚜껑이 꼭 맞는다.”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의 뜻이 완전하려면
“약병의 뚜껑이 U 꼭 맞는다.”
라고 해야 한다. 이때의 ‘맞다’는 ‘병’과 ‘뚜껑’ 둘이 있어서 서로 잘 맞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맞다’는 ‘NP1-가 NP2-에 맞다’의 문장 구조를 가진다. 다만 “약병의 뚜껑이 꼭 맞는다.”에서 화용론적인 이유로 ‘NP2-에’가 생략된 것일 뿐이다. 국어에서는 주어나 목적어도 화용론적인 조건이 주어지면 얼마든지 생략될 수 있다. 만약 “약병의 뚜껑이 꼭 맞는다.”에 ‘NP-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를 무시하고 목적어의 필수성 여부에만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형평이 맞지 않는 기술일 수밖에 없다. “안방 열쇠가 건넌방에 맞는다.”와 같은 경우에는 ‘NP-에’가 생략되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뚜껑이 꼭 맞는다.”는
“뚜껑과 병이 꼭 맞는다.” (또는, “뚜껑과 병이 꼭 맞지 않는다.”)
의 문장 구조와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하면 “빈틈이 없이 서로 닿는다.”로 풀이된 ‘맞다’는 원천적으로 ’NP1-가 NP2-에 맞다’의 구조를 가지는 것이며 그것은 또 ’NP-와 NP-가 맞다’의 구조도 가질 수 있다거나 최소한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설명되어 있어야 한다. 이 ‘맞다’가 단순히 자동사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맞다(Ⅲ)’의 두 번째 풀이는 “서로 어긋나거나 틀림이 없이 일치하다.”라 하고 “그의 말이 꼭 맞다.”를 예로 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맞는다.”는 것은 “이러저러한 그의 말의 내용이 사실에 또는 이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명사 ‘말’은 원래 보문을 취할 수 있는 이른바 보문 명사이다. 즉,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말’, ‘어제 서울에 비가 왔다는 그의 말’, ‘집에 어서 들어가라는 저 사람의 말…’ 등과 같이 쓰인다. 그러니까 “그의 말이 맞다.”의 ‘말’은 그 말의 내용을 지칭한다. ‘말’ 이외의 다른 보문 명사도 얼마든지 이 자리에 쓰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1) 누구의 이 맞을까?
(12) 네 생각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니?
(13) 그의 의견이 맞을지도 모른다.
(14) 그 소문이 맞더라
  이들 예문의 밑줄 친 ‘답, 생각, 의견, 소문’ 등은 모두 보문 명사이며 그것이 맞다, 안 맞다 하는 것은 바로 그 보문 명사가 지칭하는 내용이 맞고 안 맞고 하다는 것이다. 또 이 ‘맞다’의 주어는 보문 명사 대신 사람 대명사가 쓰일 수도 있다.
(15) 가 맞을 리가 있겠니?
(16) 가 맞을 테니 두고 보시오.
  물론 이때도 ‘나’나 ‘너’가 맞는 것이 아니라, 나나 네가 말했거나 아니면 대답했거나 한 내용이 맞는다거나 틀린다거나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때 역시 ‘나’나 ‘너’가 말한 내용이 보문으로 나타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대신 그 행위자가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일종의 보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구성이 이 ‘맞다’의 주어 자리에 올 수가 있다.
(17) 이 집이 철수네 집이 맞지요?
(18) 2+4는 6이 맞다.
  언뜻 보면 이들 (17~18)의 문장에는 두 개의 논항이 있어서 앞의 (11~16)과는 문장 구조가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이들 두 문장의 ‘NP1-가 NP2-가’ 사이에는 각각 “이 집이 철수네 집이다.”, “2+4가 6이다.”에서와 같은 관계, 곧 일종의 주·술(主·述) 관계가 있어서 그 전체가 하나의 보문 같은 기능을 한다. 그렇게 보면 이 ‘맞다’의 주어가 되는 것은 어떤 명제 내용인데 그것을 보문 명사나 사람 대명사 또는 의미상 주·술 관계를 가지는 ‘NP1-가 NP2-가’의 형식으로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NP1-이/가 NP2-이/가’가 한 덩어리의 구성일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19) 내가 학과 수석이 맞더라.
(20) ㄱ. 선생님 댁이 이촌동이 맞지?
ㄴ. *선생님 댁이 이촌동이 맞으시지?
  일반적으로 주어가 일인칭일 때(더 정확하게는 화자 자신일 때)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술어가 이른바 회상 시제 ‘-더-’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내가 참 크더라.”, “*내가 옷을 잘 입었더군.”은 모두 비문이다. 그런데 위 (19)에 ‘-더-’가 쓰였다고 하는 것은 그 문장의 주어가 ‘내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며, ‘내가 학과 수석이’ 전체가 주어일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20ㄱ)에 대해 (20ㄴ)이 비문인 것도 ‘맞으시지’의 존대를 나타내는 ‘-시-’가 ‘선생님 댁’과 호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선생님 댁’이 주어가 아니라 ‘선생님 댁이 이촌동이’ 전체가 주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말대사전’에는 이러한 문법적 정보가 없다. 최소한 이 ‘맞다’의 주어 명사에는 보문 명사나 사람 대명사가 온다는 사실은 주어져 있어야 옳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때의 ‘맞다’는 ‘옳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 정의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이 ‘맞다’의 반대말은 ‘틀리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선말대사전’이 “서로 어긋나거나 틀림이 없이 일치하다.”로 정의를 했다. ‘일치하다’는 “무엇이 무엇과 일치한다.”와 같이 쓰여 반드시 어떤 것이 일치해야 할 대상을 나타내는 명사 항 ‘NP1-와/과’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일치하다’ 문장에는 부사 ‘서로’가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조선말대사전’의 이러한 정의는 이 ‘맞다’에 그와 같은 쓰임이 있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곧, “그의 말이 맞는다.”라는 문장은 “그의 말이 사실과 맞는다.”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맞다’ 문장에는 ‘NP-와/과’ 대신 ‘NP-에’가 나타날 수도 있어서 “그의 말이 맞는다.”, “네 의견이 맞는다.”는 각각 “그의 말이 사리에 맞는다.”, “네 의견이 이치에 맞는다.”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법적 사실들은 이 ‘맞다’의 쓰임과 ‘맞다(Ⅲ)’의 다른 쓰임들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쓰임들이 ‘맞다’의 다의적 성격을 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들이 마땅히 사전에 기술되어야 한다.

  6. 앞에서도 언급했거니와 사전의 문법 정보가 ‘앞붙이, 뒤붙이, 토’ 등의 형태론적 정보나, 품사 수준의 통사 정보만으로는 거의 아무런 문법 정보도 주는 것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동사를 풀이함에 있어서는 격틀의 제시가 필수적이다. 자, 타동사의 구분만으로는 목적어의 필수성 이외의 필수적 논항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제시하지 못한다. 주어진 올림말의 공기 제약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