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한의 국어사전]

북한 사전의 다듬은 말

김흥수 / 국민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Ⅰ. 머리말

  말은 자체의 자율성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시대와 사회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말은 언중의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언어 의식과 감각에서 우러나오는 것 못지 않게 언중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외래 요소의 간섭과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국어의 처지에서 언어 외적 조건과 언중의 자각, 지향성은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기관, 단체에서 전개해 온 국어 순화의 노력은 그 두드러진 움직임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명분과 당위, 민족어의 이상론이 곧 실제의 순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득이(不得已), 소주밀식(小株密植), 전착도장(電着塗裝), 거치(据置), 고데, 구두, 아파트, 셔틀버스, 돈가스, 알리바이’ 중 살려 쓸 말은 없는지 고친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판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정밀하고 섬세한 작업을 거쳐 그럴듯한 대안을 내놓는다 해도 언중의 공감과 호응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언중의 말에 대한 감각은 예민하고 적확해서 안 쓰이게 되는 말은 어딘가 걸리는 데가 있게 마련이다. 언중 속에서 생겨나 널리 쓰이게 된 ‘가락국수, 병따개’, 요즘 생활 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는 ‘이야기 마당, 마을버스, 사자(증권 용어)’, ‘컴퓨터’에 대한 공식 순화안 ‘전산기’보다 인기가 있다는 ‘셈틀’ 같은 말을 보노라면 언중이야말로 순화의 주체라는 엄연한 사실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러면 언중 스스로 말을 거르고 씻어내는 힘, 낡은 말을 고치고 새말을 만들어 내는 힘을 믿고 순화 또한 언중에 맡길 것인가. 물론 언어 주체로서 언중의 몫은 더욱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언중의 수동적이고 산발적인 활동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순화의 대상은 방대하고 전문성을 띠기도 한다. 아울러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오늘의 문화 상황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순화의 흐름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국어의 현실이다. 체계적, 지속적으로 순화안을 마련하여 언중에 내놓는 일은 순화의 규범적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과정상의 범례이자 촉매로서 필요하다. 순화안은 언중의 민족어 의식과 잠재적 창조력에 자극을 주는 한편 언중의 반응에서 더 현실적이고도 매력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북한의 ‘어휘 정리’, ‘말다듬기’ 사업은 체계적, 지속적인 국어 순화 사업으로서 일정한 성과,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일이 이념을 배경으로 강력한 국가의 통제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두드러지기는 하나, 순화의 실제에 들어갈수록, 특히 말다듬기의 과정에서는 언어 외적 배경과 거의 무관하게 언어 내적 문제들이 핵심을 이룬다. 흔히 남북한어의 이질화가 강조되는 맥락에서 말다듬기의 결과인 ‘다듬은 말’도 이질화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말다듬기는 취지와 방법, 결과까지도 상당 부분 남한의 어휘 순화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론과 실태는 남한의 경우나 국어 순화의 전망에 대해 참조가 된다. 이를테면 ‘일몰’에 대한 남한 안 ‘해넘이’, 북한 안 ‘해지기’는 둘 다 언어적 사고의 산물로서 저마다 특색을 지니는, 단일 안 또는 통일 안 후보들이라 할 만하다. 특히 북한의 다듬은 말은 급속하게 만들어지고 보급되듯이 이내 고쳐 다듬기도 하고 다듬은 말을 폐기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실험적 시행착오의 사례로 음미할 만하다. 왜 ‘네트오버’는 ‘손넘기’에서 ‘그물넘기’로 바뀌고 ‘랭각수, 아이스크림’을 다듬은 ‘식힘물, 얼음보숭이’는 사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지, 말다듬기의 어려움과 과제를 표출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북한에서 어휘 정리, 말다듬기의 결과는 다듬은 말을 중심으로 사전에 반영된다. 따라서 사전에서 다듬은 말의 내용과 그 처리 양상을 보면 다듬은 말의 실태와 추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글1) 에서는 ‘조선말대사전’ (1992)의 다듬은 말을 중심으로 북한 말다듬기의 이론과 실제를 살펴보되 ‘현대조선말사전’(제2판, 1981)과의 차이에 유의하여 최근 추이의 단면도 엿보기로 한다.


Ⅱ. 어휘 정리와 말다듬기

      1. 어휘 정리, 버리기, 말다듬기

  북한에서는 언어가 객관적인 내적 법칙 못지 않게 언어 주체의 목적의식에 의해 발전한다고 본다. 그래서 국어 발전의 이상은 ‘사회주의민족어’를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며, 문화어는 그 집약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외래적요소와 낡은 요소를 가셔내고’ 민족적 고유 요소를 살리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때 어휘 정리는 그 출발점이자 기본 고리로서 글자 개혁, 철자법보다 ‘선차적인 과업’으로 제기된다. 어휘는 발음이나 문법보다 외래 요소와 낡은 요소의 ‘후과’와 간섭을 많이 입게 마련이고, ‘언어교제’에서 기본적이고 민족적 특성을 잘 나타내며, 전면적인 정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휘 정리의 내용과 의의는 <대사전>의 뜻풀이에서도 볼 수 있다.
어휘정리[명]     ((언어)) 어휘구성안에 있는 낡고 쓸데없는 어휘들을 빼버리고 어렵고 까다로운 외래적요소들과 비문화적요소들을 정리함으로써 단어체계를 고유어에 기초하여 하나의 체계로 바로잡아나가는것.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살리고 현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어휘 정리는 ‘버리기’와 ‘다듬기’를 포괄한다. 버리기는 그 사물, 말이 현대 사회주의 사회의 요구에 비추어 낡았기 때문에 ‘그냥 잘라버림’으로써 그 부정적 요인을 처음에 없애는 것이다. 지난날에 쓰이던 한문 투의 ‘여(余, 汝), 우황(又況), 구사(舊射), 량(凉)하다’가 이에 속한다. 외래어로 받아들일 필요 없는 외국어 ‘스프링, 자부동’이나 ‘좋지 않은 토배기사투리’인 ‘개수기(강냉이), 그시다(속이다)‘도 정리의 과정에서는 버릴 대상에 해당된다.
  다듬기는 ‘본래말’이 궁극적으로는 버릴 ‘안쓸말’이지만 아직 쓰이고 존재 의의가 없지 않기 때문에 우선 다듬은 말로 고치는 것이다. 다듬은 새말을 권장하여 본래말을 안 쓰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버리기보다 소극적이되 계발식 방도라 할 수 있다. <대사전>에서는 말다듬기의 내용과 의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말다듬기[명]     ((언어)) 한 민족어의 어휘구성속에 들어온 필요없는 외래적요소와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는 낡은 요소를 가셔버리고 고유어를 기본으로 하여 단어들을 하나의 체계로 발전시키는 일. 민족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며 인민들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언어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말다듬기는 어휘 정리의 중심적 과정으로서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언어학 특히 어휘, 의미의 이론을 적용, 검증,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데 버리기와 다듬기는 어휘 정리 과정에서 연속적으로 맞물리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따라서 사전에서도 버릴 후보가 될 수 있는 한자 말, 외래어의 처리 기준이 그리 명확하고 일관된 것 같지 않다. 이 점은 다음 절에서 예를 보기로 한다.


      2. 어휘 정리의 대상

  어휘 정리의 주 대상은 낡고 난해한 한자 요소와 외래적 요소이며2), 대상을 선정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고려될 수 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일반 기준은 얼마나 토착화되었는가이다. 가령 ‘십상(十成), 고취, 잠깐(暫間)’은 각 한자에 대한 표상을 거치지 않고도 의미를 통째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굳은 데 비해 ‘간벌(間伐), 상목(桑木)’은 각 한자를 거치지 않으면 뜻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덜 굳었기 때문에 ‘솎음베기, 뽕나무’로 다듬는다. 토착화되지 않은 한자 말은 한자나 한자의 뜻 해석이 어렵고 결합 방식이 한문 구조에 따르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3). 일본식 한자 말도 ‘대절(貸切), 취하(取下)’는 버리고 ‘권척(卷尺)’, ‘하조(荷造)’는 ‘도래자, 짐꾸리기’로 다듬는 데 비해 ‘계단, 매립, 수속, 입수’는 토착화되었다고 보아 다듬지 않고 있다. 외래어4) 또한 ‘라지오, 잉크, 뽀이, 룸펜(독), 가방&(불), 빵(뽀르뚜갈), 깜빠니아, 뻬치카(로시아), 가마니, 구두(일)’는 토착화된 것으로 보아 다듬지 않고 올린다.
  그러나 토착화의 정도와 양상이 같지 않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재기도 어려워서 ‘대사전’에서의 처리 또한 균일하지 않다. 예컨대 ‘거론, 경청, 도로(徒勞)’는 안 쓸 말로, ‘급단(急湍), 대한(大旱), 만추(晩秋)’는 다듬은 말 ‘된여울, 왕가물, 늦가을’로 나타나는 반면 ‘가왕(假王), 강박(糠粕), 령안(靈眼)’은 다듬지 않고 있다. 한자 성어 ‘견강부회, 곡학아세, 호연지기’는 안 쓸 말로, ‘금의야행, 화불단행’은 다듬은 표현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로, ‘가렴주구, 단순호치, 안빈낙도’는 다듬지 않은 채로 올라 있다. ‘구루마, 고데, 사시미, 하꼬’는 아예 안 올리고 ‘다다미’는 ‘누비돗자리’로 다듬는가 하면 ‘노가다’는 그냥 올리고 있다. 일본식 한자 말로 ‘견적, 추월’은 올리지 않고 ‘익사, 일부인(日附印)’은 ‘(물에) 빠져죽기, 날자도장’으로 다듬은 데 비해 ‘삽목(揷木)’은 그대로 올렸다. ‘앨범, 라인, 핸디캡’은 안 올리고5) ‘넌센스, 모토’도 안 쓸 말로 처리한 데 비해 ‘뽈, 메뉴, 스푼, 핸들’은 ‘공, 차림표, 오목숟갈, 운전대’로 다듬었고 ‘데뷰, 키스’는 그냥 올렸다.
  토착화된 한자 말이라도 고유어와 뜻같은 관계로 대응되어 이중 체계를 이룰 때는 한자 말을 격 있게 여기는 편견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다듬는다. ‘계란, 금전, 금일’을 ‘닭알, 돈, 오늘’로 다듬은 것은 그 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서양 외래어 ‘스토브, 콤팍트, 쨤’을 ‘난로, 분첩갑, 단졸임’으로 다듬은 것은 외래어라야 ‘신식맛’이 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언어감정’을 누르기 위해서일 것이다. ‘뜻빛갈’, 어감, 쓰임에 약간 차이가6) 있더라도 다듬을 수 있다. ‘계절, 부친, 자웅, 호텔, 유모아’를 ‘철, 아버지, 암수, 려관, 우스개’로 다듬은 것은 그 예이다. 그러나 뜻빛갈, 쓰임이 경어법, 비속성, 문체 등과 관련되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일 때는 ‘눌러두고’ 쓴다. ‘댁, 남자, 상인, 액체’를 ‘집, 사나이, 장사치, 물’과 같이 올리고 ‘처, 아동’과 ‘안해, 어린이’를 뜻같은 말로 처리한 것은 이에 따른다. 다만 ‘년세, 치아, 안구, 안질’을 ‘나이, 이, 이발, 눈알, 눈병’으로 다듬고 ‘로인’과 ‘늙은이’를 뜻같은 말로 처리한 데서는 평어, 속어쪽으로 흐르기 쉬운 고유어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기본 뜻이 같아도 단어 결합7) 이나 ‘뜻폭’에 차이가 있을 때는 다듬는 데 신중해야 한다. ‘일기, 국가’를 ‘날씨, 나라’로 다듬지 않은 것은 ‘날씨 예보, 독립나라’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8) 을 고려한 것이고, ‘가치, 가격, 료금’ ‘광선, 색, 기색’을 ‘값’, ‘빛’으로 일률적으로 다듬지 않은 것9) 은 ‘값, 빛’의 뜻폭이 넓은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외래어에서 특히 고려할 기준은 국제적 접촉, 교류에서 요구되는 세계 공통성이다. 즉 현대의 추세에 따라 ‘민족적인것과 외래적인것의 호상작용’과 ‘언어발전의 세계공통적방향’을 중시하여 세계 공통적인 어휘로 공인될 말은 살려 쓴다. 예컨대 ‘로케트, 데터(data), 콘베아, 에네르기’는 아예 다듬지 않고 ‘뉴스, 넥타이, 로타리, 바라이데(variety), 발코니, 프로필, 아이스크림, 안단테’는 ‘새소식, 목댕기, 돌이판, 노래춤묶음, 내민대, 옆모습, 얼음보숭이, 천천히’로 다듬었다가 뺐으며 ‘모자이크, 쩨리’와 다듬은 말 ‘쪽무이그림, 단묵’은 관계에 대한 아무 표시 없이 제각기 올리고 있다. 다만 세계 공통성을 인정하는 데는 절제와 신중을 강조함으로써 될 수 있는 대로 다듬으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마네킨, 바이트, 슈제트, 스토킹, 카텐, 콤퓨터’는 ‘몸틀, 쇠칼, 얽음새, 운동긴양말, 창가림, 전자계산기’로 다듬어 뜻같은 말로 처리하고 ‘나이프, 도레스(dress), 뽄찌(punch), 옵사이드’는 ‘밥상칼, 나리옷, 구멍따개, 공격어김’으로 다듬었다.
  한편 사상, 의식, 교양 면에서 부정적인 것도 기준이 되고 있으나 그러한 점을 뜻풀이에 반영하되 다듬거나 버리는 예는 많지 않다. 이는 중요한 ‘로작’, 문헌, 작품의 한자 말과 외래어는 인식 교양적 기능의 차원에서 사전에 그대로 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정순기‧리기원 1984:18~22)과 맥이 닿는다. 그래서 지난날의 요소를 반영하는 낡은 한자 말 ‘과거(科擧), 봉직, 호패, 주재소, 어전회의, 풍수(風水)’들도 ‘봉건사회에서, 낡은 사회에서, 리조때, 일제때, 군주제도에서, 미신적관념에서’ 같은 조건을 달고는 있지만 다수 올라 있다. 고유어의 경우 의식, 교양 면에서 부정적이라 해서 정리한 예는 더욱 드물어서 ‘상판대기, 꼬라지, 놈팽이’류의 비속어도 ‘홀하고 속되게, 얕잡아, 낮잡아’ 같은 단서를 붙여 올리고 있다. 다만 동식물 이름을 다듬는 중에 어감이 나쁜 요소를 포함하는 경우 고유어도 다듬은 예가 보인다. 가령 ‘구와쥐손이풀, 개두루미, 개망초, 말오줌대’는 ‘갈래손잎풀, 흰목검은두루미, 돌잔꽃, 나도딱총나무’로 다듬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준들에서 두드러진 것은 의미나 표현의 풍부함을 손상하지 않고 그에 기여하려고 하는 점, 새로운 정보나 세계 보편적인 지식을 적극적으로 소화하려고 하는 점, 언중 속에서의 실제 쓰임을 존중하고자 하는 점들이다. 아울러 일반 기준의 판단과 적용이 사례에 따라 일관되지 않게 처리되고 있는 점도 띈다. 이는 주로 다듬은 말이 언중에 ‘안겨오지 않고 접수되지 않게’ 만들어졌을 때의 문제, 정리를 보류하여 본래말을 함께 올리는 문제에서 비롯된다(정순기·리기원 1984:22, 박상훈 외 1986:70).
  덧붙여 어휘 정리가 단어 수준을 넘어 구절, 문장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한문 투 말, 표현 ‘금세기, 불가분리적10)’, 한자말성구 ‘고장난명, 금시초문’은 한문과 국어 구조의 특성상 ‘지금 세기, 떼여낼수 없는, 외손벽이 울랴, 들으니 처음’과 같이 단어를 넘어 다듬을 수밖에 없다. 또한 ‘도립전회운동, 건곡(乾穀), 무황란, 성숙림, 익충’은 ‘거꾸로서서돌기, 잘 마른 낟알, 노란자위 없는 알, 다자란숲, 리로운 벌레’로 다듬었다. 후자는 ‘굳은살’류의 통사적 복합어에 준한다고 볼 수 있으나 역시 단어 수준에서는 다소 짐스럽고 생경한 조어 방식이다. 이들 구절 수준의 말다듬기는 본래말이 단어로 인식될 수 있는 한자 말인 탓으로 어휘 정리의 대상이 되었으나 고유어로 다듬는 과정에서 어휘 차원을 넘어서게 된 예이다. 따라서 말다듬기가 어휘에서 시작되어 표현, 문체 일반으로 이어지고 확대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말다듬기의 과정11)과 추이

  1964년 설치된 국어사정위원회는 어휘 정리 사업과 언어생활의 지도와 통제를 담당하는 전문 기관으로서 말다듬기 작업과 다듬은 말의 보급, 통제를 총괄한다. 그 안에 부문별로 설치된 분과 위원회는 학술·전문 용어 다듬기를 수행한다. 보급은 교육, 출판 보도 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하되 지상 토론을 벌여 언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언중의 요구, 지향, ‘창발적의견’을 반영한다. 다듬은 말은 분야에 따라 또는 종합적으로 자료집에 정리되고 약간 걸러져 사전에 수록된다.
  어휘 정리의 방도는 ‘깜빠니야적(일시적)’ 아닌 ‘점차적’ 방법에 따라 늘 쓰는 일상어, 기본 어휘에서부터 정리해 가고, 학술 용어 또한 기본적, 근간적인 것부터 다듬어 그것을 바탕으로 관련 용어들을 다듬는다. 이를테면 ‘계란’의 계열 어휘 중 ‘계란색, 계란탕, 계란포, 계란형’은 흔히 쓰는 어휘로서 ‘닭알색, 닭알탕, 알쌈, 닭알모양’으로 다듬고 있는 데 비해 다소 전문적인 ‘계란선(膳), 계란소(素)’는 다듬지 않고 있다12). ‘계절’의 경우도 생활에서 친숙한 대상인 ‘계절조, 계절풍’만 ‘철새, 철바람’으로 다듬고 있다. 그리고 기상 용어이되, 학술 용어로서 기본적인 ‘계절풍’을 ‘철바람’으로 다듬음에 따라 지리 용어 ‘계절풍기후, 계절풍지대’, 임학용어 ‘계절풍림’도 ‘철바람기후, 철바람지대, 철바람숲’으로 다듬게 되었으며 해양용어 ‘계절풍해류’는 다듬을 대상으로 인식되게 된다. 다만 어려운 한자 말, 외래어는 전문·학술 용어에 많고 따라서 어휘 정리에서도 학술 용어 정리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다듬은 말의 양도 일반 어휘보다 많다13). 아울러 한 단어가 일반어와 전문어로 두루 쓰일 때 전문어의 경우만 다듬고 있다든가 일반어보다 전문어를 먼저 다듬은 예가 나타난다. ‘동화, 루설, 바스케트, 조합, 집합, 해체’는 전문·학술 용어의 쓰임에서 ‘닮기(언어), 새기(전기), 필림주머니(문예), 무이(수학), 모임(수학), 차풀이(운수)’로 다듬고 있고, ‘집합나팔, 집합소, 집합지, 집합체’는 안 다듬은 반면 ‘모임론(수학), 모임상태(화학), 모임시추(광업), 모임점(물리), 모임떼(생물)’14) 는 다듬어져 있다. 한편 품사 면에서는 명사가 압도적으로서 이는 전문·학술 용어가 명사에 집중되어 있고 본래의 한자 말이 거의 명사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의 어휘 정리에 관한 논의와 사전들을 살펴보면 원칙과 기본 방향은 유지하되 얼마간의 궤도 수정과 변화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언어 현실과 언중의 언어 의식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사업을 진행하려는 경향이 띄고 따라서 초기에 비해 본래말의 의의와 언중의 수용성이 더 강조된다15). 이 점은 사전에 빠졌던 한자 말과 외래어를 올렸다든가 다듬었던 말을 빼거나 다시 다듬은 데서도 드러난다(Ⅲ. 2에서 상술).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어휘 정리 사업과 다듬은 말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고 보고 큰 성과를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그 연속과 확대의 맥락에서 ‘대사전’에서도 상당수의 새 다듬은 말을 올리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나 주목되는 것은 사전에 다듬은 말이라는 표시는 없지만 다듬은 말인 것이 분명한 말들의 존재와 그 위상이다. 이들은 본래말을 확인하기 어렵기는 하나 많은 경우 다듬었던 말이 본래의 고유어와 대등할 정도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보아 다듬은 말이란 꼬리표를 떼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가령 ‘벤또’를 다듬은 ‘곽밥, 밥곽’은 본래말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이제 다듬은 말이란 의식 없이 쓰이게 된 듯하다. ‘가락지빵, 걸음대’는 ‘도나트, 보행기’를 다듬은 것 같기는 하나 역시 본래말과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없다. ‘가둠식물대기(농학), 가지물길(수리), 거둠률(경제), 걸름식먹이먹기(수산), 걸음수렬(기계), 겉보기비김(화학), 겉얼부풀이(운수), 다리넘겨짚기속임(체육)’ 같은 전문어는 전문가가 아니면 본래말을 더욱 알기 어렵다16). 다만 본래말이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경우 다듬은 말의 위상은 그만큼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의 존재가 북한어의 현실과 추세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면 말다듬기의 성과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Ⅲ. 사전에 반영된 다듬은 말의 양상

      1. 사전에서의 다듬은 말 처리

  ‘다듬은 말’은 ‘대사전’에 다음과 같이 풀이되고 있다.
  다듬은 말 한자말이나 외래어 가운데서 조선말로 토착화되지 않은 말을 우리말로 알기 쉽게 다듬어서 고친 말. <<가축>>, <<노크>>란 말을 고친 <<집짐승>>, <<손기척>> 같은 말이다.
  사전의 올림말에서 다듬은 말은 그 한 부류로 제시되고 있으며 특히 과학 기술 용어를 비롯한 전문어의 위상과 본래말을 같이 올리는 점이 언급되고 있다17). ‘대사전’에서는 다듬은 말을 그 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고 표시도 달리 한다. 그 세 부류의 내용과 표시 예는 다음 ㄱ~ㄷ과 같다.
ㄱ. ‘이미 다듬어쓰고있는 말’
마방 [명] (다듬은 말로) 말칸.
마다라스 [명] (다듬은 말로) 침대깔개.
ㄴ. ‘전날에 쓰던 말이 아직도 일부 그대로 쓰이고있는것’
강성기초 [명] ((건설)) 육중하고 튼튼한 기초. [다듬은 말로 : 억센기초]
ㄷ. ‘마땅히 고유어로 다듬어써야 할 말’18)
마도석 [명] ⇒ 숫돌.
마령서 [명] ⇒ 감자.
  이들 유형은 말다듬기의 단계 또는 다듬은 말의 정착 과정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ㄴ류는 초기 단계로서 정착이 잘 진행될 경우 ㄱ류로 발전되고, ㄷ류 또한 ㄱ류로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2절에서 상술).
  이들 외에도 어휘 정리와 관련된 부류 표시, 부호에는 다음이 있다.
‘지난날에 쓰이던 한자말이나 한문투의 말’
마고채 [명] ⓧ 표고나물.
마두출령 [명] ⓧ …
‘비규범적인것을 규범적인것에 보내주는 경우에’19)
강타기 → 얼음지치기.
강태3 → 이끼.
‘고유한 우리 말로 다듬어썼거나 쉽게 풀어쓴 말앞에’
간과1 [명] ① … ② … [看過] 간과하다 [동](타) … *보아넘기다. 넘겨버리다.
‘말다듬기와 관련하여 쓰지 말아야 할 한자말이나 외래어로 된 학술용어 앞에’
가는관 [명] 직경이 가는관. [x세관3]
  이들 중 ‘ⓧ’류는 버리기의 대상이되 본래말을 올린다는 취지에서 올린 것으로 다듬은 말의 문제에서는 벗어난다. ‘*’류는 거의 동사의 경우로20), 명사 중심 또는 전형적인 다듬은 말의 관점에서는 다소 벗어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사를 다듬는 데 대한 인식은 명사를 다듬는 데서도 이미 활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표현, 문체까지를 염두에 둔 거시적 맥락에서는 오히려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예컨대 ‘방부제, 방설림, 방수, 방한’을 ‘썩음막이약, 눈막이숲, 물막이, 추위막이’로 다듬는 데는 ‘방지하다’를 ‘*막다’로 다듬는다는 의식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나아가 ‘갈망하다’, ‘무효화하다’를 풀어 쓴 표현 ‘*목마르게 바라다. 애타게 기다리다. 애타게 바라다. 몹시 바라다’. ‘없애다. 보람없이 만들다. 보람없게 하다. 안되게 하다’는 표현적, 문체적 가치도 고려하고 있어서 문맥과 정황에 따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다21). 아울러 ‘하다, 되다’ 동사형이 성립되는 명사 어근, 어간을 다듬은 경우는 형식상으로는 명사를 다듬은 것이되 내용상으로는 동사 다듬기와 맞물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굴착, 방치, 세척’의 경우 다듬은 말 ‘파기, 놓아두기(화학), 씻기’와 ‘굴착하다, 방치하다, 세척하다’에 대한 ‘*파다. 파들어가다, *버려두다, 놓아두다. 내버려두다, *씻다. 닦다. 빨다’는 다듬기의 맥락이 같을 수밖에 없다22).


      2. 사전에 나타나는 다듬은 말의 추이

  ‘현대사전’과 ‘대사전’은 다듬은 말의 목록과 내용, 본래말의 처리, 본래말과 다듬은 말의 관계 표시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들 차이는 말다듬기의 대상과 방식에 대한 세부적 조정, 다듬은 말의 정착 과정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이라는 점에서 다듬은 말의 실태와 추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는23) 특히 다듬은 말의 진전 또는 약화, 정착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차이를 살펴본다.
  다듬은 말이 언중 속에서 제 지위를 굳혔거나 가장 잘 굳혀 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사전에 다듬은 말 표시나 본래말에 대한 정보 없이 올라 있을 때이다(Ⅱ. 3 참조). 그다음 단계쯤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듬은 말이 본래말 이상으로 또는 그 못지 않게 정착되었으나 인식, 정보 차원에서 다시금 본래말을 밝혀 다듬은 말이나 뜻같은말의 관계로 처리하는 경우24) 이다. 다음은 그 예이다25).
<현대조선말사전> (제2판) <조선말대사전>
ꠏꠏꠏꠏꠏ 잠망 (잠학) (다듬은 말로) 누에그물.
ꠏꠏꠏꠏꠏ 목교 (다듬은 말로) 나무다리1.
ꠏꠏꠏꠏꠏ 랏치 (기계) (다듬은 말로) 걸톱.
ꠏꠏꠏꠏꠏ 하향채굴 (광업) (다듬은 말로) 내리캐기.
ꠏꠏꠏꠏꠏ 두발 ⇒ 머리털.
ꠏꠏꠏꠏꠏ 드라이클리닝 ⇒ 마른빨래.
ꠏꠏꠏꠏꠏ 데파트 ⇒ 백화점.
ꠏꠏꠏꠏꠏ 록화테프 = 록화띠.
ꠏꠏꠏꠏꠏ 련성단 (천문) = 련별떼.
  다음은 이미 ‘현대사전’에 본래말이 올라 있되 다듬은 말과 관계 표시 없이 따로 올라 있다가 다시 다듬은 말 또는 뜻같은 말로 처리된 경우이다. 이 역시 다듬은 말이 상당히 정착되고 있으면서도 본래말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경우라 하겠다.
<현> <조>
목기 목기3 (다듬은 말로) 나무그릇.
나무그릇 나무그릇 … [x 목기3]
       
벽촌 벽촌 ⇒ 두메마을. 산골마을. 외진마을.
       
두메마을 두메마을 … [x 벽촌]
산골마을 산골마을
외진마을 외진마을 … [x 벽촌]
       
랭수 랭수 ⇒ 찬물.
찬물 찬물1
       
광증 광증 = 미친증.
친증 미친증
  다음은 두 사전의 다듬은 말이 같고 관계 표시도 같은 경우로서 다듬은 말이 별다른 기복 없이 꾸준히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겠다.
<현> <조>
근해 (다듬은 말로) 가까운 바다.
가까운바다 … [x 근해]
       
승모근 (다듬은 말로) 고깔살.
고깔살 (생리) … [x 승모근]
코나 (들어온말) (체육) 코너 (다듬은 말로) 구석. 모서리.
(다듬은 말로) 구석. 모서리. [corner「영」]
구석 ① … ② … 구석 ① … [x 코나] ② …
모서리 ① … ② … 모서리 ① … ② … [x 코너]
 
가옥 ⇒ 집
 
결실 ① … [다듬은 말로: 여물기.열매맺이]
열매맺이 … [x 결과]
고기압 (기상) … [다듬은 말로: 높은기압]
  다음은 다듬은 말이 같되 본래말과의 관계 표시, 올림말로서의 처리 등이 달라진 경우로서 다듬은 말이 정착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진전, 약화, 본래말과의 관계 조정 등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조>
간작 (농학) ⇒ 사이그루. 간작 (농학) (다듬은 말로) 사이그루.
사이그루 (농학) …  사이그루  … [x 간작]
대질 ⇒ 무릎맞춤. 대질 (다듬은 말로) 무릎맞춤.
무릎맞춤 … [x 대질] 무릎맞춤 … [x 대질]
건현 (해양) … [다듬은 말로: 물우배전] 건현 (다듬은 말로) 물우배전.
물우배전 (해양) … [x 건현]
오바로크 (들어온말) (다듬은 말로) 오바로크 ⇒ 감침재봉기. [overlock「영」]
감침재봉기. 감침재봉 … [x 오바로크]
감침재봉기 감침재봉기 톱날재봉기.
수검  …  (다듬은 말로) 검사받기. 수검 (다듬은 말로) 검사받기.
검사받기 … [x 수검]
  다음은 다듬은 말이라는 표시가 없어지고 본래말과의 관계가 뜻같은 말로 처리되거나 아무 관계 표시 없이 따로 올라 있게 된 경우이다. 여기에는 다듬은 말이 본래말과 대등한 지위에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 경우가 많지만 본래말의 벽에 부딪혀 잠정적으로 뜻같은 말이나 각각의 말로 처리한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 어느 쪽이든 다듬은 말과 본래말의 공존, 경쟁관계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 <조>
복리2 (다듬은 말로) 겹리자. 복리2 복변리
겹리자 [x 복리] 겹리자 = 복리2
공명 ① (물리) (다듬은 말로) 껴울림. 공명 ① (물리) = 껴울림①
껴울림 (물리) … [x 공명] 껴울림
기프스 (들어온말) (의약) (다듬은 기프스 (의학) = 석고붕대. [Gips
말로) 석고붕대. 「독」]
석고붕대 (의약) [x 기프스] 석고붕대 (의학) 기프스
습곡 (지질) (다듬은 말로) 땅주름. 습곡 ((지질))
땅주름 (지질) [x 습곡] 땅주름
안마2 (체육) (다듬은 말로) 고리틀. 안마2 (체육)
고리틀 (체육) [x 안마] 고리틀 (체육)
개간 (다듬은 말로) 땅일구기. 개간1
땅일구기 (농학) 땅일구기 (농학)
구릉 (지리) [다듬은 말로: 언덕] 구릉 (지리)
언덕 언덕
  위에서 ‘껴울림, 석고붕대’는 뜻풀이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공명, 기프스’ 못지 않게 세력을 얻게 됨으로써 본래말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땅주름, 고리틀, 땅일구기, 언덕’은 본래말과 공존하면서 힘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의미, 쓰임을 나눠 맡는 것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겹리자’는 뜻풀이가 본래말 쪽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아 기존의 ‘복리’에 고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여기서 다듬은 말이 우세해지면 본래말이, 본래말이 우세해지면 다듬은 말이 안 쓰이게 될 수 있는데 다음은 그 일면을 드러내는 것 같다.
<현> <조>
대퇴신경 (생리) (다듬은 말로) ꠏꠏꠏꠏꠏ  
넙적다리신경.
넙적다리신경 (생리) 넙적다리신경 (생리)
전분가 전분가
농마값 [x 전분가] ꠏꠏꠏꠏꠏ
  위에서 각각 다듬은 말, 본래말만 올린 것은 다듬은 말의 정착 과정에서 명암이 엇갈리는 두 예를 보여 준다 하겠다.
  다듬은 말을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 결정적 예는 ‘현대사전’의 다듬은 말이 ‘대사전’에서 빠진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다.
<현> <조>
분기선 (운수) (다듬은 말로) 갈림줄. 분기선 (운수)
길림길 (운수) [x 분기선] ꠏꠏꠏꠏꠏ
연마재 (다듬은 말로) 갈이감. 연마재 = 연마재료.
갈이감 [x 연마재] 연마재료 (기계) 연마재.
갑상선 (생리) (다듬은 말로) 방패샘. 갑상선 (생리)
방패샘 (생리) [x 갑상선] ꠏꠏꠏꠏꠏ
메스시린더 (들어온말)(다듬은 말로) 눈금통. 메스실린더 (화학)…[messcylinder「영」]
ꠏꠏꠏꠏꠏ
리마 (들어온말) (다듬은 말로) 다듬송곳. 리마 (기계) [←reamer「영」]
다듬송곳 (기계) [x 리마] ꠏꠏꠏꠏꠏ
모작 [다듬은 말로: 본따짓기] 모작
독후감 [다듬은 말로: 읽은느낌] 독후감
망각하다 *잊어버리다. 잊다. 망각하다 ꠏꠏꠏꠏꠏ
  이들은 다듬는 방식의 문제와 관련되어 언중의 지지를 얻기 어려웠던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더 들면 ‘우묵밸동물(강장동물), 크게본(거시적), 많은나이(고령), 고비온도(림계온도), 벌레없앰약(구충제), 살힘(구매력), 싫음증(권태감), 지내덥히기(과열), 지붕없는차(무개차), *끝, 끝장, 마감, 마무리(결말), *사다, 사들이다(구입하다)’ 등이 있다. 이때 다듬은 말을 뺀 것이 폐기인지 보류인지도 사례에 따라 검토할 여지가 있지만 특히 본래말을 다듬을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고 여전히 다듬을 대상으로 남겨 놓고 있는 경우에는 뺀 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게 된다.
  ‘대사전’에서도 바로 이 점에 유의해 일부에 대해서는 전의 다듬은 말을 빼는 데 그치지 않고 새 다듬은 말로 고쳐 올리고 있다.
<현> <조>
근사치 (수학) (다듬은 말로) 가까운값. 근사치 (수학) (다듬은 말로) 근사값.
가까운값 (수학) [x 근사치] 근사값 (수학) [x 근사치]
림간 ⇒ 숲사이. 림간 ⇒ 숲속.
식균 [다듬은 말로: 균먹기] 식균 (다듬은 말로) 균먹이.
균먹이 (생물) [x 식균]
관모1 (생물) ① [다듬은 말로: 우산털] 관모2 ① (생물) (다듬은말로) 우산갓.
우산털 (생물) [x 관모1] 우산갓 (생물) [x 관모2]
교대2 [다듬은 말로: (다리) 끝기둥] 교대2 ⇒ 다리턱1.(橋臺)
다리턱1
개방현 (음악) (다듬은 말로) 놓은줄. 개방현 (음악) … 빈줄.
놓은줄 (음악) [x 개방현] 빈줄 = 개방현.
개대황 → 들대황. 개대황 → 긴잎송구지.
들대황 긴잎송구지 [x 들대황]
  이는 어학적으로 타당하고 언중의 요구나 수용성에 맞는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으로서 다듬는 방식의 세부적 문제와 관련된다(Ⅳ장).
  끝으로 다듬지 않았던 본래말을 새로 다듬거나 새 올림말을 올리면서 본래말을 다듬어 올린 경우가 있다.
<현> <조>
개면기 (경공업) … 개면기 (다듬은 말로) 솜헤침기.
솜헤침기 (방직) … [x 개면기]
동음어 (언어) = 동음이의어. 동음어 ⇒ 소리같은 말.
동음이의어 (언어) … 동음이의어 ⇒ 소리같은 말.
소리같은말 (언어) …
ꠏꠏꠏꠏꠏ 준숙림 (다듬은 말로) 거의자란숲.
거의자란숲 (림학) … [x 준숙림 ]
ꠏꠏꠏꠏꠏ 대어 ⇒ 큰 물고기26)
ꠏꠏꠏꠏꠏ 라스트 ⇒ 마지막.
  이들은 최근 말다듬기의 추가 대상 선정 경향과 다듬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방향과 전망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된다.
  한편 다듬은 말의 추이는 뜻풀이를 어디서 어떻게 하는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뜻풀이를 해 주는 쪽, 뜻풀이가 자세한 쪽이 단순히 관계 표시(다듬은 말로), [다듬은 말로: ○ ○], ⇒, =, )만 있는 쪽, 뜻풀이가 간단한 쪽보다 일반적으로, 주로 쓰일 개연성이 높다 하겠다. 다음 예를 보기로 한다.
<현> <조>
데리끼 [명] (다듬은 말로) 기둥기중기. 데리크 [명] (기계) 기중기팔이 수직기둥의 두리를 돌면서 일하도록 만든 기중기. 크게 수직기둥, 팔, 회전원판 등으로 되여있다. … ⊜ 데리크 기중기. [derrick「영」]
기둥기중기 [명] 고정된 기둥에 팔이 달려있는 기중기.[x 데리끼] 기둥기중기 (건설) 고정된 기둥에 팔이 달려있는 기중기.
락엽수 [명] (다듬은 말로) 잎지는 나무. 락엽수 [명]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나무. 참나무, 황철나무, 사시나무, 봇나무와 같은 넓은잎나무들과 이깔나무, 수삼나무와 같은 일부 바늘잎나무들이 이에 속한다. ∥ ~와 상록수.[落葉樹]
잎지는 나무 [명] (생물) 해마다 추위나 건조가 닥쳐올 때 잎이 말라죽거나 떨어지는 나무. 잎지는나무 [명] (생물) 해마다 추위나 …
  ‘현대사전’에서는 다듬은 말에만 뜻풀이를 해 줌으로써 본래말의 쓰임을 억제하려 했으나 ‘대사전’에서는 다듬은 말의 뜻풀이는 간단한 풀이를 유지하는 반면 본래말의 뜻은 자세히 풀이해 주고 있다. 이는 다듬은 말 외에 본래말도 살려 그 의미, 쓰임을 기능적으로 분담케 한다는 취지도 있겠으나 본래말의 비중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뜻풀이에서는 뜻풀이의 방식 또한 말다듬기의 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다듬은 말을 비롯한 고유어 표현을 적극적으로 살려 쓰며27), 단어 수준으로 뜻을 풀이했을 때는 다듬은 말의 재료, 원천이 되기도 한다. 다음은 그 예이다.
부침지삭 [명] 동의학에서, <<뜬맥(부맥), 가라앉은맥(침맥), 느린맥(지맥), 빠른맥(삭맥)>>을 아울러 이르는 말. [浮沈遲數]
습곡1 [명] (지질) 지각을 이루고있는 지층이 구조적힘을 받아 물결모양으로 주름이 잡힌것. 우로 두드러진 주름과 아래로 우무러진 주름이 있다.
땅주름 [명] 땅껍데기 (지각)를 이루고있는 땅층(지층)들이 땅껍데기운동(지각운동)의 영향을 받아 물결모양으로 주름이 진것.
<현> <조>
동선 [명] 구리줄. 동선 [명] ⇒ 구리줄. [銅線]
고포 [명] 누데기. 헌천. 낡은천. 고포 [명] (다듬은 말로) 누데기. 헌천. 낡은천. [古布](2)
로라 [명] (들어온말) 굴대. 굴개. (같은말) 로르. 로라 [명] ① ⇒ 굴개2 ② ⇒ 굴대1 [roller「영」](6)
람루하다 [형] 어지럽다. 더럽다. 람루하다 [형] 어지럽거나 더럽다. ∥의복이 ~. [襤@褸-]
*어지럽다. 더럽다. 해지다.
  요컨대 말다듬기는 반 이상은 성공적이거나 긍정적인 쪽으로 진전되고 있으나 상당수는 실패해 조정, 폐기되고 본래말과 갈등, 공존 관계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다듬은 말 일변도의 지향성을 완화하는 대신 본래말의 쓰임과 의의를 인정하고 고려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다28).


Ⅳ. 말다듬기의 방법론과 실제

      1. 말다듬기의 방식

  말다듬기의 방식은 어떤 감(재료)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크게 네 형태로 나눈다. (최완호‧문영호 1980:61~70).
  첫째 ‘바꿔고치기’는 본래말을 이미 쓰고 있는 고유어로 바꾸는 것으로서 주로 본래말이 고유어와 2중 체계의 관계에 있을 때 적용된다. ‘하복, 고도, 담수, 턴넬, 필드’를 ‘여름옷, 높이, 민물, 굴, 마당’으로 다듬은 것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친숙한 말이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고유어의 의미, 쓰임이 본래말과 꼭 같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백색’은 ‘흰색’으로, ‘백색닭, 백자기’는 ‘흰닭, 흰 자기’로 다듬되 ‘백색테로, 백색인종’은 다듬지 않고 ‘간식, 리봉’과 ‘새참, 댕기’도 뜻같은 말로 처리한다. 그러나 ‘화단, 랭수’와 ‘꽃밭, 찬물’의 차이는 본질적이 아니기 때문에 다듬을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둘째 ‘찾아고치기’는 언중 속에서 쓰이면서도 사전에 오르지 않은 묻혀 있는 말이나 방언에서 좋은 고유어를 찾아내어 고치는 것이다. 그 예로 ‘가다리굴, 가두배추(캬베쯔), 가둑누에고치(作繭), 가대기군(하역군), 가시아버지(장인), 거충약(외용약), 기스락물(락수), 굽인돌이(카브), 아지치기(분얼 分蘖), 남새(채소), 농마(전분 澱粉), 아낙각(내각), 지내싣기(과적재), 내굴길(연도 煙道), 따발굴(라선형턴넬), 도드리 (돌기), 애기름(간유 肝油)’ 등이 있다. 이들은 토착어의 생명력을 되살린다는 의의가 크되 현대 문화어의 요구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지나친 토박이 사투리나 속어는 배제된다.
  셋째 ‘살려고치기’는 잘 안 쓰이게 된 고유어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고유어의 뜻을 넓게 적용하여 고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처음 차례, 다음 차례, 제대로 갖춘’ 이라는 뜻의 ‘애벌, 버금, 옹근’을 살려 ‘애벌종이(초배지), 애벌이김(화학 용어), 버금턱(농학 용어), 옹근가림(개기식), 옹근길이(전장), 옹근잎(완전엽)’으로 다듬는 것이다. 이때도 고유어의 잠재력을 북돋우고 되일으키되 현대적 감각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만들어고치기’는 가장 적극적인 창조적 과정으로서 기존의 고유 요소를 기계적으로 대입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결합해 고치는 것이다. 예컨대 ‘캬라멜, 도로꼬, 벨, 소장, 답판’의 다듬은 말 ‘기름사탕, 밀차, 부름종, 가는밸, 발디디개’는 명사 병치, 동사 어간, 동명사형, 관형형, 타동성과 명사 파생 접사 등을 활용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사물, 개념에 걸맞는 참신함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계획 조어, 학술‧전문어 다듬기에서 애용되는데 작위적이고 생경한 논리에 빠지기 쉬운 만큼 언중의 수용성이 문제가 된다.
  한편 말을 다듬는 데 쓰는 감은 물론 고유 요소가 바람직하겠으나 토착화된 한자 요소는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한자 말도 ‘서점, 서한체소설, 기조’의 경우 ‘책방, 편지체소설, 기본방향’으로 다듬은 것을 볼 수 있으나 한자 말은 으레 고유어나 고유 요소로 다듬게 마련이다. 그러나 외래어는 고유어로 다듬기가 수월하지 않을 때는 우선 한자 말로 고치는 것도 다듬기의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파이프, 그라프, 드라마, 모던’을 ‘관, 도표, 극, 현대적‧류행적’으로 다듬은 것은 이에 따른다. 특히 학술 전문어에서는 아직 고유 요소보다 한자 요소의 비중이 커서 고유 요소로 다듬었다가 다시 한자 요소로 돌아간 예도 적지 않게 띈다. 예컨대 ‘찌쁘라(기계용어), 가감변(기계), 연무기, 다단분쇄’는 ‘뒤집개, 맞춤여닫이, 내굴뿌무개, 여러번바수기’로 다듬어졌다가 다시 ‘전복기, 조절변, 내굴분무기, 어러단분쇄’로 고쳐 다듬었다. ‘투매’는 한자 말, 다듬은 말, 서양 외래어의 삼각 관계를 보여주는 예로서 ‘덤핑’과 같은 뜻같은 말로 처리하게 됨에 따라 ‘투매’와 그 다듬은 말인 ‘막팔기’는 각각 올리게 되었다.
  말다듬기 특히 만들어 고치기는 본래말과 같은 의미를 유지하면서 본래말을 다른 말로 바꾸는 절차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번역과 흡사한 양상을 띤다. 그래서인지 말다듬기에서도 번역의 두 방식 곧 직역 또는 축자역과 의역 또는 자유역에 가까운 두 조어 방식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본래말의 형식에 따라 그 각각의 의미 요소에 다듬은 요소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분석적, 기계적 방식과 본래말의 형식에 묶이지 않고 전체 의미에 대해 다듬은 요소를 나름대로 대응시키는 종합적, 기능적 방식이 있다. 예컨대 축자적 방식은 ‘석교, 고적운, 소염제, 보루지(board지), 파이프오르간’을 ‘돌다리, 높은더미구름, 염증없앰약, 관풍금29), 판종이’로 다듬는 것이고, 기능적 방식은 ‘록지, 강설, 침두(枕頭), 십중팔구’를 ‘푸른땅, 눈내림, 베개머리30), 열에 여덟, 아홉’ 아닌 ‘잔디밭, 눈, 머리맡, 열에 아홉’으로 다듬는 것이다.
  축자적 방식은 조어가 수월하고, 본래말과의 대응 관계를 쉽게 떠올릴 수 있어서 의미적 유연성(有緣性 motivation)이 투명하다. 그러나 본래말의 의미가 이미 축자성을 잃은 ‘마분지(馬糞紙), 도한(盜汗), 락화생(落花生)’은 ‘말똥종이, 훔침땀, 떨어진꽃생김’의 뜻으로 새길 수 없기 때문에 ‘판종이, 식은땀, 땅콩’으로 다듬는다. ‘방한모, 포충망, 활차’를 ‘추위막이모자, 벌레잡이그물, 미끄럼차’ 대신 ‘겨울모자·털모자, 후리채, 도르래’로 다듬은 것은 파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2. 실머리의 선택

  한 사물, 개념에 대해 조성된 단어에는 그 사물, 개념을 특징짓는 어떤 계기 ‘실머리’가 있다. 말다듬기에서는 특히 실머리를 꼭 들어맞게 잡아야 파악성이 있고 언중에 ‘안겨올’ 수 있어서 쉽게 ‘접수’, 수용될 수 있다.
  다듬은 말의 실머리는 같은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본래말의 실머리를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31). 실머리는 다양해서 ‘막대균(간균), 둥글모자(베레모)’는 형태나 모양에서, ‘나사돌리개(도라이바), 살림방(거실)’은 기능 또는 용도, ‘나비헤염(접영), 끌신(슬리퍼)32) 은 행동‧작용 양태, ‘뿔활(각궁)’은 재료, ‘입둘레살(구륜근)’은 장소에서 잡고 있다. 특히 ‘대사전’에는 ‘현대사전’에서 자유역에 따라 실머리를 달리 잡았던 것이 축자역으로 돌아온 경우가 있어서 실머리를 바꾸는 데 신중해야 함을 보여 준다. 예컨대 ‘로안, 권연, 착생식물, 훈증제, 네트오바’는 ‘돋보기눈, 가치담배, 한자리식물, 냄새벌레약, 손넘기’로 다듬었다가 ‘늙은눈, 만담배, 붙어살이식물, 냄새쏘임약, 그물넘기’로 다시 다듬었다. 그런데 외래어는 본래말의 실머리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래말의 뜻에 더 의존하게 된다. ‘호주머니(포케트)’는 고유어의 실머리에 자동적으로 따르게 된 예, ‘빨간약(마큐롬)’은 화학적 속성 아닌 색깔에서 잡은 예, ‘고기순대(칼파스)’는 재료에서 잡은 예이다. ‘다이야’는 ‘렬차다님표’였다가 ‘렬차시간표’로 바뀌었다.
  그러나 본래말의 실머리를 따름으로써 다른 문제가 생길 때는 실머리를 달리 잡을 필요가 있다. 먼저 본래말의 실머리가 파악성, 정확성 면에서 떨어질 때는 실머리를 다른 관점에서 잡거나 더 정밀하게, 한정해서 잡는다. 가령 ‘상하차, 중령림, 싼도뻬빠’를 ‘오르고 내리기, 가운데나이숲, 모래종이’라고 해서는 그 사물, 개념이 잘 안 떠오르므로 ‘싣고부리기, 한창나이숲, 갈이종이’로, ‘운단(雲丹), 콜드크림’에 대해 ‘성게젓, 찬크림’은 불충분하거나 오해할 여지가 있으므로 ‘성게알젓, 기름크림’으로 그 뜻을 명확히 해 준다. ‘대사전’에서도 이러한 이유로 실머리를 ‘현대사전’과 달리 잡아서 고쳐 다듬은 예가 나타난다. ‘도근점(圖根點), 잔향, 차방, 침제, 압정, 드리볼’을 ‘잔다리밑점, 남은울림, 왼쪽부기, 담금약, 누름못, 몰기’로 다듬어서는 뜻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보아, ‘세부측량기준점, 뒤울림, 계산자리왼쪽, 우림약, 납작못, 두번몰기’로 고쳐 다듬었다.
  본래말의 실머리를 우리 민족과 말의 특성, 실정, 감각에 맞추어 고쳐 잡음으로써 파악성과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제초, 저예망, 뿌라우’를 ‘풀뽑기, 바닥끌그물, 서양연장’ 대신 ‘김매기, 후리그물, 틀보습’으로 다듬고 ‘가연, 검연기(방직용어), 에스(S)빔(방직), 에이(A)괴탄(지질), 구형강(溝形鋼), 쟈케트’를 ‘빔먹임, 빔재개, 오른빔, 무른탄, ㄷ(드)형강, 뜨개덧저고리’로 다듬는 것이다. 비유적 실머리를 활용하는 것도 언중의 심리와 시적 감각에 호소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류성우, 고가교·륙교, 홍채, 케이프’를 ‘별찌비33), 구름다리, 무지개막, 날개옷’으로 다듬은 것은 그 예이다. ‘동물탄(화학용어)’을 ‘짐승숯’으로 다듬었다가 ‘동물탄’으로 고친 데는 비문화적 실머리를 피한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듯하다.
  본래말의 실머리를 단일하게 고정하기보다 선택의 여지를 둘 경우, 또 의미, 쓰임이 단일하지 않아서 실머리를 달리 잡아 줄 필요가 있을 경우는 실머리를 복수로 잡아34) 다듬은 말도 복수로 된다. 예컨대 ‘복토, 곡초, 기포, 도서대출, 마후라, 호크, 카바’는 ‘흙덮기. 씨묻기’, ‘짚. 벼짚. 낟알짚’, ‘거품. 가스집. 가스구멍’, ‘책빌리기. 책내주기’, ‘맞단추. 걸단추’, ‘목수건. 머리수건. 목도리’, ‘덮개. 씌우개. 잇. 보’로 다듬었고, ‘그리쁘, 디너파티’는 쓰임을 구별하여 ‘① 종이끼우개, ② 머리말개, ③ 집개, 물개’, ‘①⇒만찬회, 저녁참 ②⇒저녁연회 ③⇒정식식사’로 다듬었다. 아울러 ‘연사, 이묘’에서 동작과 그 결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의미이나35) 다듬은 말에서는 ‘실꼬기. 꼰실’, ‘모옮기기. 옮긴모’와 같이 포괄되고 있다.
실머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특히 잘 나타나는 것은 전문어에서 분야에 따라 실머리를 달리 잡는 경우이다. ‘내구성, 인상’은 ‘현대사전’에서 ‘질길성(경공업 용어), 끌어올리기(체육)’로만 다듬었으나 ‘대사전’에서는 그에 더하여 ‘오래견딜성(금속), 끌어내기(운수)’로 다듬었으며, ‘부목(副木)’은 ‘현대사전’에서부터 의학, 전기 용어의 쓰임을 구별해 ‘부축판, 덧(붙임)대’로 다듬었다. 기계 용어 ‘절삭밥’ 또한 깎는 대상에 따라 ‘쇠밥, 깎음밥36), 흙밥’을 구별하고 있다.


      3. 단어 만들기감과 결합 방식

  실머리를 잡아 의미의 기본, 핵심이 정해지면 어떤 ‘만들기감’을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 의미를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여기서도 고유 요소를 적극적으로 찾고 활용하는 것은 전제가 되며 다만 개념의 전문성, 정확성을 위해 필요에 따라 한자 요소를 고려한다.
  어휘 재료의 선택에서 특히 문제되는 것은 같은 계열의 본래말 의미 요소에 대해 역시 비슷한 계열의 여러 고유 요소들이 후보가 되는 경우이다. 이때는 의미, 쓰임의 좀 더 섬세한 차이, 분야의 차이를 고려하여 알맞은 감을 고르게 되고 따라서 같은 본래말 요소가 다듬은 말에서는 다양한 요소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내(內)’는 ‘안, 아낙, 속’으로, ‘외(外)’는 ‘겉, 거충, 바깥’, ‘단(單)’은 ‘한, 홑, 외’, ‘소(小)’는 ‘작-, 잘-, 가늘-, 어리-, 쪽, 새끼’, ‘세(細)’는 ‘가늘-, 잘-, 실, 애기’, ‘공(空)’은 ‘비-, 헛, 민’으로 두루 나타난다. 그 예는 ‘안바다(내해), 아낙중심(내심), 속껍질(내피)’, ‘겉귀(외이), 거충약(외용약), 바깥쪽(외측)’, ‘한몸수꽃술(단체웅예), 홑리자(단리), 외그루(단작)’, ‘작은 글자(소문자), 잔물결(소파), 가는밸(소장), 어린아이(소아), 쪽잎(소엽), 새끼손가락(소지)’, ‘가는모래(세사), 잔뿌리(세근), 실버들(세류), 애기풀(세초)’, ‘빈말(공담), 헛돌이(공전), 민낚시(공조)’ 등이다. 동사 ‘탈(脫)’은 특히 다양하게 다듬고 있어서 ‘벗-, 털-, 어기-, 빠지-, 빼-, 뽑-, 떼-’ 등으로 나타난다37).
  만들기감의 선택도 실머리의 선택과 같이 의미, 쓰임의 차이와 그에 대한 인식,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다. 미세한 차이를 복수 다듬은 말에 포괄한 예로는 ‘틈. 짬. 짬새(기계 용어 ‘공극’)’, ‘묶음줄. 동임줄(결박선)’, ‘알낳이. 알쓸이(산란)’, ‘높낮이, 높고낮음(고저)’이 있다. 분야에 따른 의미의 차이를 만들기감의 선택에 반영한 예로는 ‘표피’에 대한 ‘겉껍질(생물용어), 겉가죽(생리)’, ‘현수선’에 대한 ‘처진선(수학), 드림줄(전기)’, ‘표면파’에 대한 ‘겉면물결(수리), 겉면파(물리), 겉물결(수산)’, ‘수견’에 대한 ‘고치따기(잠학), 고치받기(방직)’가 있다. 만들기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사전에 반영된 예로는 ‘당의기, 동심원, 의사(擬死)’를 ‘사탕입히개, 한중심원, 가짜죽음’으로 다듬었다가 ‘사탕입히는 기계, 같은 중심원, 거짓죽음’으로 고친 것이 띈다.
  고유 어휘 요소를 새롭게 살려 다듬는 데 생산적으로 활용한 예로는 ‘거꿀, 갑작, 사귐, 껴-’가 눈에 띈다. 그 예는 ‘거꿀닭알모양(도란형), 거꿀돌이(역전, 역회전), 거꿀수(역수), 거꿀흐름(역류)’, ‘갑작달리기(급출발), 갑작바람(돌풍), 갑작변이(돌연변이), 갑작끓기(돌연비등)’, ‘사귐(교차), 사귐각(교각), 사귀점(교점), 도로사귐점(도로교차점)’, ‘껴녹음점(공융점), 껴끓음(공비), 껴앙금앉기(공침), 껴울림(공명)’ 등이다. 한편 다듬은 말의 조성에서 매우 중요하고 자주 쓰이는 문법요소, 피동‧사동 접사, 관형형 어미 ‘-은, -는, -을’, 동명사 어미 ‘-음, -기’는 그 선택 조건이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고 있기는 하나 일관되지 못하고 미묘한 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전에서도 이들의 처리가 달라지고 있는 예가 나타난다. 가령 ‘페곡선’은 ‘닫긴곡선’에서 ‘다문곡선’으로, ‘굴촉성’은 ‘닿아굽음성’에서 ‘닿아굽힘성’으로, ‘가스청정, 가시광선, 식균, 쇄목기, 권사기, 강하성어류, 다한증, 명시거리’는 ‘가스맑힘, 보이는빛, 균먹기, 나무갈이기계, 실감이기계, 내리는물고기, 땀많은증, 잘보일거리’에서 ‘가스맑히기, 보임광선, 균먹이, 나무갈기기계, 실감는기계, 강내림성물고기, 땀많음증, 잘보임거리’로 바뀌었다. 문법 요소의 차이가 복수 다듬은 말에 포괄되고 있는 예로는 ‘알까기, 알깨우기(부화)’가 보인다. 아울러 접사적 한자 요소 ‘성(性), 도(度)’류가 특히 학술 용어에서 매우 생산적인 것도 눈에 띈다. ‘향습성, 투과성, 다공성, 경사도, 공극도’를 다듬은 ‘누기굽힘성, 나듬성, 구멍성, 비탈도, 짬새도’는 그 예이다.
  결합 방식에서 우선 두드러진 것은 단어 수준을 넘어설 정도의 통사적 구성을38) 활용하는 점이다. 관형 구성, ‘-고, -어’ 구성, ‘-이, -게, -으로’ 부사적 구성을 즐겨 쓰는 것은 이에 따른다. ‘들어올림식말뚝박는 기계(권양타항기), 깨우쳐주는 교수(계발식교수), 사람없는 등대(무수인등대), 크고 무거운 짐(광대화물), 무너져쌓인 층(붕적층), 멀리헤기(원영 遠泳), 크게 보이기(대시증), 넓게 뿌리기(광조파), 옆으로 치기(측타)’ 등은 그 예이다. 구성 성분의 결합 과정에서 무리한 수식, 특이한 구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예로는 ‘강제살찌우기(강제비육), 센자르기(강전정 强剪定), 거꿀방울재기(역적정 逆滴定), 여럿보이기증(다시증), 달고수리(무해차수리 無解車修理), 된머리기름(포마드)’ 등이 있다. 현대어에서 위축된 동사 어간 합성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든가 의태어 같은 부사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주목된다. ‘섞붙임(교잡), 올리방향(상행), 올리닮기(역행동화), 내리캐기(하향채굴), 둥글모자(베레모), 노라발간색(황적색)’, ‘불룩밸(결장 結腸), 얼룩점병(반점병), 깜빡막(순막 瞬膜), 물렁병(연화병), 부들털(융모)’는 그 예이다.


      4. 체계성과 간결성

  단어들은 어휘 체계 안에서 서로 의미, 형식상의 관련을 지닌다. 따라서 다듬은 말에서도 본래말의 체계성에 따라 같거나 비슷한 계열, 의미장의 어휘는 정연하고 일관된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체계성은 크게 의미와 형식의 두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으며, 의미의 체계성은 주로 실머리의 일관성과, 형식의 체계성은 만들기감, 결합 방식의 일관성과 맞물린다.
  본래말의 실머리가 체계성을 지니고 있는 한 어휘 계열로 생리 용어 ‘전두골(前頭骨), 측두골, 후두골/전두근(筋), 측두근’을 생각해 보자. 이들은 머리 전체에서 자리하는 위치를 실머리로 삼아 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전두골, 전두근’의 경우는 ‘앞머리’보다 ‘이마’가 더 친숙하고 간결하다는 점에서 ‘이마뼈, 이마살’로 다듬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같은 계열에 속하는 다른 말들과의 체계적 관련이 깨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이들 계열은 체계성을 살려 ‘앞머리뼈, 옆머리뼈, 뒤머리뼈 / 앞머리살39), 옆머리살’로 다듬었다. 마찬가지로 ‘대장, 소장’은 ‘굵은밸, 작은밸’ 또는 ‘큰밸, 가는밸’ 아닌 ‘굵은밸, 가는밸’로 다듬었다. 그렇다고 늘 체계성과 일관성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말의 체계성이 다듬은 말의 경우에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도 없고 의미를 특징짓는 데 작위적 논리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시침, 분침, 초침’의 계열에서 ‘시침, 분침’을 ‘짧은바늘, 긴바늘’ 또는 ‘작은바늘, 큰바늘’로 다듬을 경우 ‘초침’은 이들의 실머리로 특징짓기 어렵기 때문에 ‘초바늘’로 다듬어 두는 것이다. 또 고치의 질을 뜻하는 잠학 용어 계열 ‘상견, 중견, 하견’에서 ‘상견’을 ‘좋은고치’로 다듬는다면 ‘중견, 하견’도 ‘보통고치, 나쁜고치’로 다듬는 것이 체계상으로나 실머리의 일관성 면에서는 이상적이다. 그런데도 ‘하견’을 고치의 상태를 묘사하는 ‘허벅고치’로 다듬고 ‘보통고치’를 ‘중고치’로 바꾼 것은 ‘허벅’의 고유한 맛을 살리고 ‘중견’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 여겨진다.
  형식의 일관성 면에서 전제되는 것은 같은 계열은 다듬음 여부에서부터 체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장(腸)’ 계열을 ‘밸’ 계열로 다듬을 때 일부만 산발적으로 다듬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다듬는 것이 체계상 반듯하기 때문에 다듬기 초기에는40) ‘직장, 회장, 맹장’은 물론 ‘공장, 십이지장’까지 ‘곧은밸, 구불밸, 막힌밸, 빈밸, ㄷ(드)자밸’로 다듬었다. 만들기감과 결합 방식의 문제로는 품사, 관형형‧동명사형 어미, 어순의 예를 보기로 한다. 먼저 ‘근해, 원해/내해, 외해’의 계열은 ‘가까운바다, 먼바다/든바다, 난바다’로 다듬을 경우 형용사와 동사가 끼리끼리 하위 묶음을 이루어 이상적인 체계가 된다. 그런데 실제 사전에서는 ‘내해’를 명사 요소인 ‘안바다’로 다듬어 ‘외항’의 ‘바깥항구’에 짝을 이루게 되는 체계상의 불균형을 보여 준다. 반대어 계열 ‘혐기성, 호기성’은 ‘현대사전’에서 ‘공기꺼릴성. 산소꺼릴성, 공기즐길성. 산소즐길성’으로 다듬었다가 ‘대사전’에서는 ‘공기꺼림성. 산소꺼림성, 산소즐김성’으로 고치고 아울러 ‘혐기성미생물, 호기성미생물’까지 ‘산소꺼리는 미생물, 산소즐기는 미생물’로 다듬었다. 어미 요소가 바뀌면서도 체계성을 유지하는 점이 주목된다. ‘전설음, 중설음, 후설음’계열과 ‘설면음, 설단음, 설측음’ 계열은 어순 면에서 차이가 있어서 ‘앞혀소리, 가운데혀소리, 뒤혀소리’와 ‘혀바닥소리, 혀끝소리, 혀옆소리’와 같이 다른 어순으로 다듬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설음’ 계열도 ‘혀앞소리, 혀가운데소리, 혀뒤소리’로 다듬어 본래말의 두 하위 계열을 아우르는 더 큰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다음으로, 단어는 복잡한 개념도 제한된 형식에 함축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에 말다듬기에서도 간결성과 함축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지나치게 간결성에 이끌리다 보면 의미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미를 유지하면서 간결하게 다듬는 지혜가 필요하다.
  흔히 쓰는 방법으로는 생략이 있다. 먼저, 그 내용을 논리적으로 쉽게 추론해 복원할 수 있는 요소는 생략할 수 있다. 예컨대 ‘투묘정박(投錨碇泊)’에서 ‘투묘(닻내리기)’는 ‘정박(닻머물기)’의 전제가 되기 때문에 ‘묘박’으로 단축, 해석하여 ‘닻머물기’로 다듬는 것이다. ‘착유기(搾油器)’를 ‘기름짜는 틀’에서 동사 요소를 생략한 ‘기름틀’로 다듬은 것 또한 생활 지식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며, ‘피치카토’를 그냥 ‘튕기기’나 ‘뜯기’로 다듬은 것도 이 용어를 쓰는 음악 분야에서는 현악기 주법이라는 점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기(結果期), 결과수(樹), 결과지(枝), 결과원(園)’ 계열에서는 ‘열매맺이때, 열매 맺는 나무, 열매가지, 열매(맺는41)) 과수원’에서 보듯이 ‘열매가지’에서만 동사 요소가 생략된 것을 볼 수 있다. ‘격세유전, 급수탑, 내심, 목판, 살수차’는 ‘대건늠유전, 물(주는)탑, 아낙닿이중심, 나무새김판, 물뿌림차’였다가 동사 요소가 빠진 ‘세대유전, 물탑, 아낙중심, 나무판, 물자동차’로 바뀌었다. 한편 농학 용어 ‘무효아지’의 ‘무효(無效)’를 ‘쓸데없는’ 대신 접사적 요소 ‘헛’으로 다듬거나 ‘공차주행’에 대한 ‘빈차달리기’에서 조격 요소 ‘-로’를 뺀 것도 간결하게 하는 방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생략이 의미에 지장을 주었다고 보아 생략된 요소를 되살리는 경우도 있다. ‘호안림, 음절글자, 탈피선’이 ‘강기슭숲, 마디글자, 허물샘’이었다가 ‘강기슭보호림, 소리마디글자, 허물벗기선42) 으로 된 것은 그 예이다.


      5. 의미 영역과 어휘 체계의 변화

  단어는 다의성을 띠기 때문에 뜻이 같거나 비슷한 단어라도 의미의 폭에서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더구나 한자 말, 외래어와 국어 고유어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더 클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듬는 과정에서도 의미의 폭과 어휘 체계 면에서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먼저 본래말 의미의 일부만 다듬고 그 다듬은 의미가 다듬은 말 의미의 전부일 때는 의미 축소가 나타난다. 예컨대 ‘초산(初産)’의 두 큰 의미 ‘(의학)처음으로 아이를 낳는 것. (축산) ① (짐승이) 첫번째로 새끼를 가지거나 까거나 낳은 것 또는 그 새끼. ② 짐승이 한해에 여러번 새끼친 가운데서 그해에 처음으로 새끼를 치는것.’ 중 축산 용어의 의미만 ‘첫배’로 다듬은 ‘대사전’의 경우가 그렇다. 이에 비해 ‘현대사전’은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도 ‘첫몸풀이’로 다듬었는데 이때는 ‘분만’을 ‘아이낳이~몸풀이43), 새끼낳이’로 다듬은 경우와 같이 어휘 분화의 예가 된다. ‘부평초, 요람’에서 본래의 뜻만 ‘개구리밥, 자장그네’로 다듬고 비유적 의미는 놓아두었을 때도 의미 축소가 일어난 셈이다.
  본래말의 의미가 다듬은 말의 다의성과 관련되어 새 의미를 추가할 때는 다듬은 말의 의미가 확대되는 결과를 낳는다. 생물 용어 ‘포낭’을 ‘주머니’로 다듬고 ‘작은 저수지’나 ‘탄광 땅속에 물이 차있는 부분’을 ‘물주머니’로 부르게 되어 ‘주머니, 물주머니’의 뜻폭이 넓어지게 된 것은 그 예이다.
  본래말의 다의성과 관련되어 본래말이 여러 말로 다듬어질 때는 의미 분화에 따른 어휘 분화가 나타난다. 예컨대 ‘카바’는 ‘덮개‧씌우개, 덧양말, 막이(체육 용어)’로, ‘에프론’은 ‘앞치마, 앞치마4(기계), 물받이(수리, 건설), 앞무대(연극)’로, ‘카라’는 ‘긷받이~목달개, 턱고리, 축목턱(기계)’으로, ‘격막’은 ‘가름막(화학), 사이막(생물)’으로 분화되고 있다.
  의미가 서로 통하는 본래말들이 같은 말로 다듬어질 때는 제각기 분화되어 있던 의미들이 다듬은 말의 다의성 속에 모이게 된다. ‘배수, 방(防)수, 탈수, 축(縮)수’의 다듬은 말 ‘물빼기’는 그 대표적 예이다. 이에 비해 ‘고깔살’의 본래말 ‘각추근, 승모근’, ‘껍질벗기기’의 본래말 ‘박(剝)피, 탈피’는 동의어 또는 유의어 관계 정도로 생각된다.
  의미가 먼 본래말들이 같은 말로 다듬어질 때는 동음이의성이 나타난다. 예컨대 전기 용어 ‘루설’과 영화 용어 ‘용명(溶明)’은 ‘새기1, 새기2’로 화학용어 ‘격막’, 생리용어 ‘횡격막’은 ‘가름막2, 가름막3’으로 나타난다.
  특히 본래말이 풍부한 계열 어휘를 거느릴 경우 분화된 다듬은 말이 계열 어휘를 재편해 가는 양상은 어휘 분화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가령 ‘경사(傾斜)’는 ‘비탈’과 ‘물매’의 두 계열로 나뉘어 ‘비탈각, 비탈도, 비탈면, 비탈흐름, 비탈안개/물매높이, 물매낮추기, 물매저항(운수 용어), 물매면’과 같이 계열 어휘장(場)을 이루며, ‘분(分)’의 의미를 포함하는 계열 어휘는 ‘현대사전’의 다듬은 말에서 ‘가르-’와 ‘나누-’의 두 계열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뿌리가르기(분근), 갈림점(분기점), 빛가르개(분광기), 갈래모(분생묘) / 전류나누개(분류기), 나눔층(분층), 나눔축(분배축)’과 같다. 그러나 ‘대사전’에서는 많은 다듬은 말이 폐기되고 특히 ‘나누-’계열은 드물어서 체계성과 어휘장 분화의 논리가 언어현실에 수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V. 맺음말

  지금까지 <조선말대사전>의 다듬은 말을 중심으로 북한 말다듬기의 이론과 실제를 살폈다. 그래서 말다듬기의 대상 선정 기준과, 방법론에서 실머리와 단어 만들기감의 문제, 어휘 체계의 변화를 어느 정도 개관할 수 있었다. 아울러 <조선말대사전>의 다듬은 말의 양상이 <현대조선말사전>(제2판)과 달라진 점에 유의하여 그 변화의 추이를 살폈다. 그 결과 언중의 요구와 실제 쓰임을 더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 점, 다듬은 말의 전개 양상이 진전, 정착, 약화, 폐기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을 짚어 낼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학술‧전문 용어의 다듬기와 고유 토착어 살려 쓰기이다. 그 풍부한 사례와 의의 있는 시행착오는 남한의 여러 분야에서 퍼져가고 있는 자생적 움직임과 공공 기관의 작업에도 적지 않은 참조가 될 것이다.
  북한의 말다듬기가 지나치게 의도적, 작위적이고 급속한 점, 사전이 매우 규범적이어서 실제의 언어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점, 다듬은 말이 양산되어서는 신속하게 폐기되는 점들은, 사전에 나타난 것만으로 다듬은 말의 실태를 짚는 데 결정적인 문젯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일단 사전에 나타난 현상이 다듬은 말의 현실을 어떻게든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그 세부와 행간에서까지 의미를 찾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다듬은 말이 국어의 일부로 되는 것은 언중에 달린 것인 만큼 사전에서의 처리가 어떠냐가 다듬은 말 자체의 타당성과 적합성을 판단할 근거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터키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어휘 순화는 관계 기관, 언어 전문가, 여러 분야 전문가, 그리고 언중의 너 나 없는 애정과 책임 속에서, 끊임없는 착오와 실패, 드문 성과와 보람 속에서, 모두의 의식과 생활 속에 뿌리내려 간다. 그래서 우리의 깊숙한 곳까지를 변화시키고 우리 정신의 일부가 된다. 국어의 어휘 순화, 다듬은 말의 미래 또한 우리 모두의 참여 속에 결실로 나타나리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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