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외솔 최현배 선생의 학문과 인간]

‘한글갈’의 문헌 연구

李浩權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1. 머리말

  이 글은 최현배의 저작인 ‘한글갈’을 대상으로 하여 거기에 나타나 있는 문헌적인 연구 내용을 살펴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글갈(正音學)’은 한글에 관한 역사적 문제와 이론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 가운데 역사적 문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각 시기별로 간행되었던 한글 문헌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국어사 자료로 이용되고 있는 문헌들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초판이 간행된 지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국어사와 관련된 문헌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小倉進平(1940)의 관련 부분과 함께 꾸준히 이용되어 오고 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국어학사적인 측면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문헌 연구의 측면에서는 특정 문헌 항목의 기술 내용에 대한 부분적 인용 및 평가가 있었고, 대부분은 개략적인 내용 소개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글갈’의 저술 목적의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내용상 많은 부분에서 문헌에 대한 연구를 보여 주고 또한 그 고찰 내용이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씌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초판(829면, 정음사)이 1942년에 간행되었고, 그 개정판인 ‘고친 한글갈’(710면, 정음사)이 1961년에 간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초판과 고친판 사이에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몇몇 차이를 보이지만1)  우리가 살펴보려는 역사편의 문헌에 대한 기술 부분에 있어서의 내용상 차이는 많지 않다. 여기서는 편의상 ‘고친한글갈’(이하 ‘한글갈’로 약칭함)을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면서 초판과의 다른 점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언급하기로 한다.


2. 체제상의 특성과 문헌 분류 방식

  2.1. 한글갈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 첫째 매 역사 편과 두째2) 매 이론 편으로 나뉘어 있다. 그 첫째 매인 역사편의 첫째 가름인 ‘훈민 정음의 창제’에서의 두째 조각 ‘훈민정음 원본의 상고’와, 두째 가름인 ‘한글 쓰기의 번짐(한글 使用의 發展)’이 문헌에 대한 연구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훈민정음 원본의 상고’ 부분에서는 문헌에 대한 원본 고증의 방법론을 보여 주고 있으며, ‘한글 쓰기의 번짐’ 부분에서는 각 문헌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문헌적 고찰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분량 면에 있어서도 이들은 전체 분량의 약 1/3에 가까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3)

  2.2. 문헌들에 대한 총체적 기술에 있어서는 대상이 되는 각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편성하는 일이 선행된다. 방대한 종류의 문헌 자료를 대상으로 각 문헌들을 일정한 체계에 따라 조리 있게 분류하여 배열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그에 따라 이러한 분류, 구분의 방법론은 서지학에서도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4)  문헌을 분류하는 데 있어서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선적으로 그 분류의 목적과 분류자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같은 분류 기준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문헌을 다루는 사람의 각 문헌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그 분류 결과가 부분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서서 한글갈의 문헌 분류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분류 방식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이 책에 나타난 문헌에 대한 전반적 인식 양상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갈에서 택하고 있는 문헌들에 대한 분류 방식은 1차적으로는 각 문헌에 사용된 한글 쓰기의 방법(한글의 역할)에 따른 것이다. 독특한 유별(類別) 분류 방식이라 할 수 있다.5) 이 1차적 분류는 이 책의 목차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첫째 조각: 한글의 독립적인 쓰기(한글 부류: 正音類)
두째 조각: 한문의 뒤침 (한문 뒤침 부류: 譯文類)
세째 조각: 한자의 뒤침 (한자 뒤침 부류: 譯字類)
네째 조각: 외국말의 뒤침 (외국말 뒤침 부류: 譯語類)
  위의 분류는 한글이 창제된 때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간행된 한글 관련 문헌들을 1차적으로 나눈 것이다. 이 분류 방식은 한글갈의 저술 목적과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한글 사용의 역사(한글갈에서는 이를 ‘한글 발전의 역사’라 부르고 있다)를 살피는 데에는 시대별이나, 주제별 분류를 1차적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는 이러한 유별 분류를 먼저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분류 체계 즉 ‘한글 쓰기의 얼안(範圍)’를 가르는 데 사용된 방식은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계층적인 것이다. 한글갈의 본문에서도 뚜렷이 명시하고 있듯이 우선적으로 행해진 분류 방식은 이분법적 체계다. 즉, 한글이 독립적으로 사용된 문헌과 종속적으로 사용된 문헌을 일차적으로 나누어 독립적으로 사용된 것을 ‘한글 부류’로 하고, 종속적으로 사용된 문헌을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한문 뒤침 부류’, ‘한자 뒤침 부류’, ‘외국말 뒤침 부류’로 각각 설정함으로써 그 결과로 표면상 위의 네 부류가 정립된 것이다.6)
  이렇게 1차적 순서에 의해 분류된 위의 네 가지 유별 항목들은 각각의 부류 속에서 다시 재분류되어 배열되는데 이때에는 2차적 순서에 의해 배열된다. 즉 정음류와 역문류로 분류된 문헌들은 주로 편찬 간행된 역조순에 의하여, 그리고 역자류와 역어류는 내용 및 종류에 따라 다시 한 번씩의 분류 과정을 더 거쳐서 주제별 또는 시대순으로 배열되는 것이다.
  이 분류 방식은 시기적으로 앞선 연구인 小倉(1940)의 문헌 분류와 비교할 때 매우 독창적이다. 小倉(1940)이 ‘支那語學’에서 다룬 문헌들이 한글갈에서는 ‘한문의 뒤침’과 ‘한자의 뒤침’으로 구분되어 기술된다. 小倉(1940)의 제13절 ‘諺解’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졌던 문헌들에 대해서도 앞서 제시했던 기준에 의해 다르게 분류된다. 즉, 釋譜詳節, 閨閤叢書 등은 ‘한글 부류’로 분류되고, 千字文, 類合 등은 ‘한자 뒤침 부류’로, 五大眞言, 眞言集 등과 士民必知, 天路歷程 등은 ‘외국말 뒤침 부류’로 각각 다르게 분류되는 것이다.
  분류에 있어서 보여 주는 이러한 차이점들은 일차적으로는 이 두 저서의 저술 목적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두 저서의 제목 ‘朝鮮語學史’와 ‘한글갈’은 그 사정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저자들의 한글 문헌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달랐던 데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언해서의 개념에 대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한문의 뒤침’과 ‘한자의 뒤침’을 구별한 한글갈의 분류는 적어도 언해 (또는 언해서)의 개념에 관한 한 小倉(1940)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7)


3. 문헌 연구의 전반적 고찰

      3.1. 한글 부류(正音類)

  ‘한글 부류’는 한글의 ‘독립스런 쓰기’를 보여 주는 문헌들이다. 여기에서는 각 문헌들이 시기별로 나뉘어 배열되어 있다. 첫째 가름 다섯째 조각인 ‘한글 역사의 시기 구분’에서 설정된 ① 한글 창제 시기(세종~세조, 1419~1468), ② 한글 정착 시기(성종~임진왜란전, 1470~1591), ③ 한글 변동 시기(임진왜란~경종, 1592~1724), ④ 한글 간편화 시기(영조~갑오경장전, 1725~1893), ⑤ 한글 각성 시기(갑오경장~해방전, 1894~1944), ⑥ 한글 대성 시기(해방 이후~)의 여섯 시기에 따라서 서술되는 것이다.8)
  이 시기 구분을 저자는 ‘한글 쓰기의 역사’와 ‘한글 갈기의 피어남 역사’라 하였다.9) 고친판에서 새로이 추가된 이 시기 구분은  한글사와 한글학사의 시기 구분을 위한 것이지만 정치 문화사적 측면도 많이 고려된 것이다. 이 시기 구분에 대하여는 국어학사적인 측면의 시대 구분이라 보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구분은 문헌 간행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춘 것이라 하겠다.
  ‘한글 창제 시기’에서는 龍飛御天歌, 月印千江之曲, 釋譜詳節, 月印釋譜에 대한 설명이 베풀어져 있다. 이들 문헌, 특히 뒤의 세 문헌의 편찬·간행을 종교적 (불교적) 측면으로 보지 않고 문학적 방면의 업적으로 평가한 것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에 대해서는 원간본과 복각본에 대한 판본 종류를 세밀히 고증한 것이 주목된다. 석보상절에 대하여는 그 대본으로 비록 한문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형식상 원문이 나란하지 않다는 점과 문체가 순연한 입말체라는 점을 들어 언해가 아닌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탁견이다. 월인천강지곡에 대해서는 석보상절 초간본에 끼어서 발견되었던 낙장을 통하여 고찰하고 있다.10) 월인석보에 대하여 월인천강지곡 부분을 본문, 석보상절 부분을 주석의 형식으로 설명한 것은 이 문헌의 형식에 대한 정곡을 얻은 것이다. 다만 서지적인 고찰에서 약간의 미흡한 점이 보인다.11)
  ‘한글 정착 시기’에서는 중명 시대의 한글 가사 작가 9명과 그들의 작품의 이름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 가운데 특히 정철의 松江歌辭에 대하여 판본적인 고찰을 하고 있다.
  ‘한글 변동 시기’에서는 신흠, 박인로, 윤선도 등의 시조 작품을 소개하고 김만중의 소설 등 한글로 씌어진 문학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한문본 林忠愍公實記와 한글본 ‘임경업전’의 제작의 선후 관계에 대한 논의 등이 나타나고, 고전 소설 11종에 대한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 외에 ‘임진록’과 ‘諺書’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보인다.
  ‘한글 간편화 시기’에서는 영정 시대의 靑丘永言 등 5종의 시가집과, 이 시기의 창작 소설, 번역 소설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을병연녹, 청규박물지, 규합총서 등의 문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순조 이후로는 한글 소설 3종을 열거하였다.
  ‘한글 각성 시기’에서는 西遊見聞, 地璆略論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간행된 법령, 신문, 잡지 및 신소설 등에 대한 간략한 기술이 있다.
  이 이후 ‘한글 대성 시기’에는 한글 운동 관련의 몇 문헌과 ‘큰 사전’ 간행의 경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정음류의 문헌에 대한 고찰은 한글 창제 시기에서는 자세하지만, 그 이후의 시기에서의 서술은 소략하여 이들 모두를 문헌 연구라 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한글의 독립적인 쓰기에 의해 간행된 문헌이 양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던 사실과도 관련된다. ‘한글 쓰기의 번짐’에서 ‘한글의 독립적 사용’이라 하여 가장 중시했던 이 부분이 문헌 연구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빈약한 부분이 되고 만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3.2. 한문 뒤침 부류(譯文類)

  3.2.0. 이 부류에서 다루고 있는 문헌은 다른 부류에 비하여 양적으로 훨씬 많다. 백화문의 언해를 제외하고 오늘날 우리가 언해서라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다 이 부류에 속하여 있다. 석의(釋義)와 구결(口訣) 문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한글 창제 이후에 간행되었던 문헌의 대부분이 언해서인 것에서 말미암는다. 그에 따라 한글갈의 문헌 연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기에서의 문헌에 대한 기술은 한글갈에서 행해지는 문헌에 대한 연구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의 문헌 배열 순서 및 방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의 배열은 기본적으로 앞의 ‘정음류’와 같다. 우선 시기별로 나누어지고 각 시기 내에서는 역조별 순서에 의하여, 각 역조 내에서는 간행 연도순 또는 주제순에 의하여 배열된다. 다만 여기에서는 ‘한글 대성 시기’는 설정되지 않았다. 이는 언해의 시대적 한계점을 인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둘째, 문헌이 실제로 간행된 시점보다는 편찬된 시점을 중시한다. 金剛經三家解와 證道歌南明繼頌이 성종대에 간행되었어도 세조대의 항목에 포함되고, 四書栗谷諺解가 영조대에 간행되었어도 실제로 편찬된 선조대에 먼저 수록되는 것이다. 또한, 원간본이 전하지 않고 중간본만 전하는 경우나 원간본과 중간본이 전혀 전하지 않는 문헌의 경우에도 각종 기록에 근거하여 원간본의 편찬 연대를 추정하고 그에 따라 서술한다.
  셋째, 각 문헌의 중간본의 처리이다. 처음에 원간본이 간행되고 그에 대한 후쇄본 또는 중간본이 후대에 다시 간행되는 경우에 이 문헌들에 대한 총괄적 설명은 원간본이 제시된 항목에서 베풀어지지만, 이들 각각의 중간본들은 각 시기별로 다시 표제 항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妙法蓮華經諺解의 경우 이 문헌이 처음 간행된 세조대의 간행 문헌 항목에서 그 문헌에 관한 설명과 중간본의 소개가 함께 나오지만, 다시 그것이 후쇄된 연산조와, 복각된 중종조와, 인종, 명종조, 그리고 영조조에 각각 독립된 항목으로 실려 있다. 이것은 매우 특징적인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생각하면 각 역조별로 간행된 문헌의 종류를 보여 주기 위한 조처로 보이지만 이 책의 표면적인 저술 목적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원간을 그대로 복각하는 일을 ‘한글 쓰기의 번짐’의 한 부류인 언해 사업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각 시대별로   간행된 한글 문헌의 빈도와 관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분의 저술 의도가 단순한 언해 사업만을 살피려는 데 한정되지 않고, 문헌 간행의 측면까지도 고찰하려는 것이었다고 이해한다.
  이제 각 시기별로 행해진 문헌 연구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3.2.1.한글 창제 시기

  이 시기에서는 訓民正音(언해본)을 비롯하여 간경도감 간행의 불경 언해서들과 救急方諺解 등의 16종의 문헌에 대한 설명이 베풀어져 있다. 이들 문헌은 그 동안 15세기 국어의 연구에서 많이 이용되어 온 것들이다.
  훈민정음 언해본의 언해 시기와 간행 시기에 대한 문제는 지금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제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는 동국정운 한자음과 사성통고의 치두, 정치 규정과 관련시켜 언해 시기를 세조조로 추정하는 한편, 이것이 세종조의 명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방법론적인 치밀성을 보여 주는 추정이라 할 수 있으나, 그가 본 ‘박님본’(박승빈 소장본)이 월인석보의 권두에도 있었을 가능성과 언해본 뒤에 부가되어 있는 치두와 정치에 대한 규정에 대한 이해가 미흡헀다.12)
  이 시기의 문헌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불경 언해서류이다. 여기서는 간경도감 간행의 10종의 불경 언해서들에 대하여 자세한 고찰이 행해지고 그 후대 중간본들에 대하여도 판본적인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간경도감의 후속 사업으로 간행된 성종조의 금강경삼가해, 남명집에 대해서도 그 실제 편찬 시기를 중시하여 이곳에서 함께 설명된다. 또 지장경 언해에 대한 설명도 이 시기에서 함께 하고 있는데 이는 지장경이 월인석보 권21의 내용과 같은 것이라는 데에 근거한다.


  3.2.2. 한글 정착 시기

  여기서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후반 사이에 편찬 간행된 문헌들에 대하여 고찰된다. 앞 시기에 간행되었던 문헌들의 후쇄본과 복각본을 제외하면, 역조별로는 성종조 內訓 외 8종, 연산주조 救急易解方 1종, 중종조 續三綱行實圖 외 19종, 인종, 명종조 救荒撮要 외 3종의 문헌들에 대해 각각 설명을 베풀고 있다. 이 항목 가운데에는 현재 전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들에 관한 소개와 관련 자료의 제시가 보인다.
  특히 중종조의 김안국 편찬인 二倫行實圖, 呂氏鄕約諺解, 正俗諺解에 대한 고찰이 정밀하여 이 자료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종조(?)’로 추정하여 놓은 六祖壇經諺解와 供養施食文諺解는 연산조 항목으로 옮겨져야 한다.


  3.2.3. 한글 변동 시기

  이 시기의 문헌들은 16세기 중반 이후와 17세기말 사이에 간행된 자료들이다.13) 복각본을 제외하면 선조조 七書諺解외 12종, 광해주조 梁琴新譜외 3종, 인조조 家禮諺解외 8종, 효종조 辟瘟新方외 4종, 현종조 新刊救荒撮要외 2종, 숙종조 心經附註釋疑외 5종의 문헌에 대한 소개 및 설명이 나온다.
  특히 선조조는 그 기간이 길어서 많은 문헌이 간행되었다. 그에 따라 여기서는 선조조의 간행 문헌을 다시 ① 경서의 언해, ② 불서의 언해, ③ 의방서 그 밖의 언해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경서의 언해 가운데 칠서 언해를 모두 선조조에 간행된 것으로 설명하였으나 이는 잘못 파악한 것이다. 실제로는 사서의 언해만이 선조대에 간행되고 삼경의 언해는 임진란 이후 광해군대에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불서 언해인 初發心自警文과 禪家龜鑑諺解에 대하여도 이들을 ‘사성점 치기의 최후의 한글 글발’이라 하였으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수정되어야 할 내용이다.14)
  이 시기의 마지막 항목에 있는 숙종조의 童蒙先習諺解와 그 이본들에 대한 고찰이 자세하다.


  3.2.4. 한글 간편화 시기

  여기에서 다룬 문헌들은 18세기와 19세기 국어사 자료로 이용되는 것들이다. 앞 시기 문헌에 대한 복각본들을 제외하면, 영조조의 것으로 御製內訓 외 12종, 정조조의 明義錄諺解외 14종, 순조조 이후로 胎敎新記諺解외 18종의 문헌들에 대한 고찰이 있다.


  3.2.5. 한글 각성 시기

  이 시기는 고종조 이후로 복각본 1종 외 啓蒙篇諺解와 이언(易言)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이다.


      3.3. 한자 뒤침 부류(譯字類)

  이 부류에 포함되는 문헌들은 앞의 정음류, 역문류와는 달리 ‘시기’를 따르지 않고, ‘갈래’에 따라서 서술된다. 배열의 순서가 앞에서와 달라진 이유는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 ‘역자류’의 갈래는 운서 , 옥편, 유별 자서로 하위 구분되어 있다.
  ‘언해한 운서’에서는 禮部韻略 등 언해 안된 중국 운서 3종과, 三韻通考 등 언해 안 된 우리나라 운서 3종에 대한 설명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나서 “우리 나라 사람의 손으로 꾸며지고, 또 한글을 쓴(사용한)”운서로 東國正韻을 비롯한 8종의 운서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15) 여기서는 특히 동국정운에 대한 설명이 많이 베풀어진다. 한글갈 초판이 간행되기 얼마 전에 그 원간본의 일부가 발견되어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동국정운의 내용에 대한 것과 훈민정음 언해본과의 관계가 깊이 고찰되고 있다. 또한 관련 기록을 통하여 洪武正韻譯訓과 洪武正韻通考가 같은 책인 것으로 추정하고, 홍무정운역훈과 四聲通攷가 같은 책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까지를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16) 또 四聲通解의 중간본에 대한 고찰에서 광해주 판의 ‘책장의 맨 차례’[錯紙]를 바로 잡은 것 등은 문헌을 보는 안목의 세밀함을 보이는 것이다. 그 외에 華東正音通釋韻考, 華東叶音通釋, 三韻聲彙, 御定奎章全韻 등의 운서에 대하여도 그 내용과 체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베풀어졌다.
  ‘언해한 옥편’에서도 龍龕手鏡을 비롯한 언해 안한 중국 옥편 4종과 韻會玉篇 등 언해 안한 조선 옥편 2종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언해한 조선 옥편으로 全韻玉篇을 비롯하여 그 이후에 간행된 4종의 옥편들에 대한 설명이 베풀어졌다. 전운옥편에 대한 설명은 특히 규장전운과 관련하여 자세하다.
  ‘언해한 유가름 글자책’에서는 訓蒙字會를 비롯하여 5종의 유별자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설명이 있다. 훈몽자회가 사성통해의 ‘중국음’ 표기와는 달리 ‘조선 속음’으로 표기된 것에 대하여는 이 책이 아동들의 한자 학습을 위해 편찬된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다. 특히 훈몽자회의 범례(凡例)에 대하여 높이 평가한 것은 한글갈의 저술 목적과도 잘 부합된다.
  위의 세 가지 외에도 여기에는 ‘이두, 이문에 관한 한글’ 항목이 있다. 이는 간편을 위한 조치라고 하였지만 체제상으로는 불균형을 이룬다.17)   여기에서는 羅麗吏讀를 비롯한 이두 관련 문헌 9종과 吏文續集輯覽 등 이문 관련 문헌 5종에 대한 간단한 문헌적 소개가 있다. 그러나 이두 번역의 문헌인 大明律直解, 鄕藥救急方 등은 제외되었다. 


      3.4. 외국말의 뒤침(譯語類)

  여기서 다루고 있는 자료들은 전통적으로 역학서(譯學書)라 불려 왔던 한학서, 몽학서, 왜학서, 청학서 문헌을 포함하여 ‘산스끄릳(梵語)’과 ‘서양말’에 관련된 한글 문헌이다. 앞의 네 종류는 그 문헌적 성격에 따라 ‘말광 부류(辭書類)’와 ‘독본류’로 각각 구분된다. 같은 문헌이라도 여러 언어에 공통적으로 관계되면 각 해당 항목에 다 나타난다. 즉, 三學譯語는 일본 말, 만주 말, 몽고 말에, 그리고 方言集釋은 이들 4개 말에 모두 사서류로 실리고, 그에 대한 설명이 베풀어지는 것이다.
  ‘일본말에 관한 한글’에서는 倭語類解 등 사서류 3종과 捷解新語 등 독본류 5종의 문헌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있다. 여기에는 왜학서로 불리는 대표적인 문헌들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으나, 伊路波는 제외되어 있다.
  ‘중국말에 관한 한글’에서는 語錄解 등 사서류 8종과 老乞大諺解 등 독본류 10종에 대한 문헌적 고찰이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노걸대와 박통사의 언해서에 관한 것이다. ‘노걸대’에 대하여는 “최초의 중국말 배움 책”으로 규정하고 그 편찬 시기를 고려말로 추측하였다. 朴通事諺解(실제로는 번역박통사 :필자주)의 초간본에 대한 고찰도 잘 이루어졌다.18)
  ‘만주말에 관한 한글’에서는 同文類解를 비롯한 사서 4종과 小兒論 등의 독본류 11종에 대한 설명을 베풀고 있다.
  ‘몽고말에 관한 한글’에서는 蒙語類解 등 사서 5종과 독본으로 蒙語老乞大, 捷解蒙語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설명이 나와 있다.
  ‘산스끄릳 어에 관한 한글’은 불가의 진언(眞言) 음역을 수록한 문헌을 다룬 것이다. 觀音菩薩呪經 등 16종의 진언 관계 문헌이 있다. 특히 五大眞言, 靈驗略抄, 眞言集 등 국어사 자료로 많이 이용되는 문헌에 대한 고찰이 자세하다.
  ‘서양말에 관한 한글’에서 다루는 문헌들은 대부분이 최근에 이루어진 예수교 관련 번역서들이다. 선교사들의 포교 목적으로 이루어진 성서 관계 번역서 18종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그 외에도 ‘텬로력졍’ 등 종교서류의 한글 번역서 6종과, 露韓辭典 등 어학서류 17종, 계몽서류의 번역으로 ‘민필지’, 마지막으로 천주교 관계 서류 20종이 열거되고 간단히 그 간행 사항이 적혀 있다.


4. 문헌 서지학적 고찰

      4.1. 실증적 고증의 방법론

  문헌의 내용을 정밀히 고증하여 그 원본(原本) 또는 정본(定本)을 수립하는 일은 문헌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19) 국어사 자료로 이용되는 문헌에서 원문의 오자, 탈자와 본문의 변개 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는 이러한 측면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하여 한글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원본 고증에 대한 정밀성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은 첫째 가름 두째 조각 ‘훈민 정음 원본의 상고’이다. 한글갈이 저술되던 당시까지도 아직 훈민정음 원본에 대하여는 논의가 분분헀던 상태였다.20) 여기에서는 그 무렵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포함하여 이본 6종을 서로 대비하면서 원본을 확정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고, 그 방법론 또한 정밀하다.
  여러 이본들 중에서 월인석보(희방사 판) 권두본의 첫 장에 변개가 있는 점과, 박승빈 본이 자획과 사성점 등의 모양에서 월인천강지곡이나 석보상절과 다르고 월인석보와 일치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이들이 세종대의 원간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해례본에 대해서는 자형과 자획의 특징, 정인지 서문의 내용 등 8가지 근거를 들어 이것이 원간본임을 입증하였다.
  훈민정음(해례본)의 본문 부분에 대한 교감(校勘)도 부분적이지만 이루어졌다. 주지하다시피 해례본의 맨 처음 두 장은 보수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수된 부분이 원본과는 다르게 되었는데, 한글갈에 이 부분에 대한 최초의 원전 비평적 연구가 나타난다. 즉, 훈민정음 본문을 이 책에 옮겨 실으면서 어지(御旨) 부분에서 “便於日用矣”의 ‘矣’자를 ‘耳’자로 교정하고, 권점(圈點)의 자리가 잘못된 것을 고쳐 잡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보수된 부분의 원문 구두점을 교감하려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그 결과가 정확하지 못했음이 한계로 지적된다.21)
  또한 한글갈은 각 문헌의 관련 기록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보여 준다. 관련 기록의 내용을 종합하여 해당 문헌에 대한 기술에 정확성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중종조에 김안국이 간행했던 여씨향약언해, 정속언해, 이륜행실도(p.133)22) 등의 여러 판본들에 대한 고찰에서 증보문헌비고, 중종실록, 고사촬요 등의 관련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특히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여씨향약언해의 원간지가 ‘善山’일 것으로 추정한 것 등은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추론 과정이 뚜렷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전하지 않는 문헌에 대한 설명을 베푸는 데에는 특히 관련 기록의 내용에 대한 종합화가 꼭 필요하다. 특히 한글갈에는 일서(佚書)로 알려진 문헌들의 항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중종조에 최세진에 의해 편찬 간행되었다는 효경언해(p.137)나 현종조에 개정되어 언해되었다는 소학언해(p.160) 등에 대한 설명이 베풀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문헌 기술의 방법은 小倉(1940)에서도 이미 있었다. 그러나 한글갈은 小倉(1940)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던 연주시격언해, 황산곡시집언해(p.126) 등의 문헌에 대해서도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그 편찬 간행의 일단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련 기록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잘못된 설명도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칠서언해’(p.131)의 항목에서 볼 수 있다. 국조인물지와 연려실기술별집의 기록에 의거하여 중종조에 유숭조(柳崇祖)에 의하여 칠서의 언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기술한 것이 그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그 기록은 유숭조가 칠서에 구결을 단 ‘七書諺解句讀’를 편찬한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글갈에서는 관련 항목별로 해당 문헌의 사진 도판을 160여 개 정도 제시함으로써 그 연구가 주로 실제 문헌에 기초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이 도판들은 모두가 小倉(1940)의 도판과는 다른 서영을 보여 준다. 각각의 그림[書影]에 대한 설명이 잘못된 것도 간혹 눈에 띄지만, 이렇게 많은 문헌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수집하여 수록함으로써 오늘날에도 중요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23)


      4.2. 문헌 기술의 체계성

  많은 문헌들을 고찰하여 각 문헌들의 성격을 밝히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편성하여 기술하는 것은 문헌 연구의 1차적 과제이다. 한글갈의 문헌 배열에 관한 문제는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각 항목 안에서의 문헌 기술과 관련된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각 항목의 표제로 등재되는 문헌의 책 이름[書名]에 관한 문제이다.
  고서의 경우 책 이름의 선정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딴 이름(이칭), 줄인 이름(약칭) 등의 문제와 더불어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서지학적인 입장에서만 보면 문헌의 대표 서명은 권두 서명[內題]이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어사 자료에 관한 한, 학계의 관용에 따른 명칭이 더 많이 통용되는 것이다. 즉, 서지학적으로 타당한 명칭이 국어학계에서는 쓰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컨대, 月印釋譜(P.61)의 권두 서명은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이지만 권두 서명의 원칙을 잘못 적용하면 이 책의 이름이 첫 행에 적혀 있는 대로 ‘월인천강지곡’이 되고 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엄연히 별개의 책인 월인석보와 월인천강지곡이 같은 명칭으로 불리게 되는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국어학계에서는 그 책의 서문과 판심에 나타나는 ‘월인석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고 또 그것은 타당한 명칭이 된다.
  한글갈에서 다루고 있는 문헌들의 책 이름은 대부분이 국어학계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명칭이다. 金剛經諺解(p.109)의 책 이름이 그 맨 첫 장에는 ‘금강반야바라밀경육조해서’로 나타나고, 본문 첫 장에는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그리고 장접음[板心]에는 ‘금강경’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그에 따라 이 책 이름을 ‘금강경육조해언해’, 또는 ‘금강경언해’라 부를 수 있다는 설명에서 한글갈에서의 여러 서명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한글갈이 서명에 대한 많은 고려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몇 예를 보기로 한다. 金剛經三家解(p.117)의 경우, 이 문헌의 권두 서명은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되어 있어 금강경언해의 권두 서명과 같다. 그러나 판심제가 ‘금강경삼가해’로 되어 있어 그에 따라 한글갈에서도 이 문헌의 서명을 ‘금강경삼가해’로 등재한 것이다. 이는 지극히 타당한 처리이다. 이러한 판심 서명에 대한 인식은 供養施食文諺解(p.138)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문헌은 眞言勸供과 三壇施食文의 합본으로 최근까지도 그 표면적인 권두 서명에 의해 ‘진언권공’으로 잘못 불리게 되는 오류가 있었다. 그러나 판심제가 ‘공양’과 ‘시식’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를 ‘공양시식문언해’라 한 것은 문헌의 서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보여 준 것이다.24)
  그러나 서명을 잘못 인식하여 오류가 발생한 것도 있다. 세조대의 간행으로 추정한 地藏經諺解(p.118)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장경언해는 그 권두 서명에 월인석보 권21의 권두 서명이 함께 나타나고 또 내용도 비슷하지만 훨씬 후대에 간행된 별개의 문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글갈에서는 월인석보 권21와 지장경언해를 서명에서 혼동한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보기로 하자. 한글갈에서 佛頂心陀羅尼經(p.127)이라 부른 명칭이 그것이다. 이 문헌은 그 내용이 관세음보살의 다라니에 관한 것이고 또 표지 서명[書外題]에도 ‘관음경’이라 된 경우가 많아 최근까지도 ‘관음경’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따로 제책한 ‘관음경’과 같아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서외제는 문헌을 개장할 때 자주 바뀌는 것이므로 불합리한 명칭이다. 한글갈에서 이를 ‘불정심다라니경’이라 부른 것은 권두 서명에 따른 것으로 서외제인 ‘관음경’보다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 문헌은 불정심타라니경, 불정심요병구산방, 불정심구난신험경 세 책의 합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 권말에 보이는 공통된 서명인 ‘불정심경’을 책 이름으로 정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둘째, 편찬 간행자에 관한 것이다.
  한글갈에서는 이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을 원 책의 서문, 발문 등의 기록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 정확함을 보이나 몇 가지 미흡한 점도 나타난다.
  楞嚴經諺解(p.106)의 편찬 간행에 관련된 사항들에 대한 고찰이 미흡하다. 牧牛子修心訣(p.113)의 내제 다음에 ‘丕顯閤訣/慧覺尊者譯’이라 명기되어 있으나, 번역자인 혜각존자만 밝히고 구결을 단 사람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도 불충분한 기술이다. 성종 16년에 간행된 佛頂心經(p.127)에 대하여 ‘간경도감 간행’으로 명기한 것은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간경도감은 이미 성종 2년에 폐지되었다. 이 문헌에 첨부되어 있는 학조(學祖)의 발문에 이끌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杜詩諺解(p.122)의 편찬자를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 의거하여 조위(曹偉) 한 사람으로 대표시킨 것은 의심스럽다. 또 地藏經諺解(p.118)의 번역자로 학조를 추정한 것은 아마도 지장경언해와 월인석보 권21을 혼동한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 하여도 이것을 학조의 번역으로 명시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어 보인다.
  셋째, 간행 시기의 파악에 대한 것이다.
  문헌에서 간행 연도를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것은 간기(刊記)이다. 그러나 사찰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헌에는 간기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차선책으로 그 책에 첨부되어 있는 서문, 발문 등의 기록에 의존하여 파악하거나, 그것도 없는 경우에는 관련 문헌의 기록, 문헌의 형태, 내용상의 특징 등에 의거하여 그 간행 시기를 추정하게 된다.
  한글갈에서는 문헌의 간행 연대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간기를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문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타당한 처리이고 그에 따라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간년 추정이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간기만을 너무 중시한 결과 간기가 아닌 지어(識語)나 묵서(墨書)까지도 과도하게 중시되었다. 釋譜詳節(p.62)의 간행 연대를 세종 31(1449)년으로 기술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석보상절 권9의 끝장에 적혀 있는 “正統拾肆年……”의 묵서를 근거로 한 것인데, 월인석보에 실려 있는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서문의 “正統十一年……” 기록보다도 묵서를 더 중시한 예로 볼 수 있다.
  넷째, 권책의 개념에 대한 문제이다.
  권수는 문헌별로 일정하지만 책 수는 제책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문헌의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권수이다. 한글갈에서 문헌에 대한 권 책의 표시는 비교적 정확하다. 圓覺經諺解(p.111) 와 같은 체재를 가지고 있는 문헌의 경우에는 권수의 혼란이 일어나기 쉬운데, 특히 한용운(韓龍雲)이 1932년에 안심사판으로 인출한 원각경언해가 10책으로 분책되어 널리 유포된 까닭에 그것을 근거로 원각경언해를 10권으로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최근까지도 있다. 한글갈에서는 이 문헌의 권수에 대해 ‘서 1권, 상 5권, 하 6권’으로 인식하여 합 12권으로 설명하였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서(序)는 ‘上 1之1’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전체를 11권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家禮諺解(p.156)를 5권이라 한 것도 잘못으로 지적된다. 실제로는 10권이기 때문이다.25)


      4.3. 판본에 대한 인식

  문헌의 물리적 형태에 대한 연구는 그 영역이 매우 넓다.26) 그러나 한글갈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기술이 그리 많지 않다. 서지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아니라 한글 자료를 다루는 입장에서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간인(刊印)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만이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한글갈에서 원간본과 중간본의 개념은 잘 정립되어 나타난다. 중간본 가운데서도 특히 복각본에 대해 ‘덮새김’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 판본의 성격에 대한 파악이 정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이본 가운데에서 원간본을 식별해 내는 통찰력을 보여 주고 있다. 法語(p.113)에 관한 고찰에서 여러 이본 가운데 9행 17자본을 원간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한 것은 탁견이다.27) 이와 더불어 蒙山法語(p.115)의 중간본에 대하여도 자세한 판본적 설명이 베풀어져 있다. 그러나 판본에 대해 잘못 인식한 경우도 나타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첫째는 다시찍음(후쇄)과 덮새김(복각)등의 용어 사용의 혼란이다. 예컨대, 연산조에 인출된 心經(p.128)의 후쇄본에 있는 학조의 발문에 따라, 이때에 “법화경, 능엄경, 금강경육조해, 심경, 영가집, 석보상절”이 같이 인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용하고 그에 따라 설명하였으나 서술되는 간본들의 처리가 일관되지 못하다. 법화경언해에 대하여는 ‘거듭찍음’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후쇄본임을 명시하였으나 , 그 외의 문헌들에 대해서는 중간 또는 덮 새김의 용어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석보상절에 대하여는 학조의 발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발문의 기록에는 ‘석보상절’이라 하였지만 사실 이것은 ‘월인석보’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석보상절이 활자로 간행되었으므로 그것의 후쇄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또 활자본 석보상절을 교정하여 새로 간행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월인석보의 책판이 있는데 석보상절을 다시 복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28)
  둘째는 활자본과 목판본의 식별이 잘못된 경우이다.29) 특히 활자본을 복각한 목판본인 경우 그 구별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周易傳義口訣(p.160)의 경우가 그러하다. 여기에 실려 있는 권 23의 서영을 보면 이는 세조대에 간행된 을해자본 주역전의구결의 복각본이다. 그런데 이것이 활자본인지 목판본인지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 문헌을 ‘지은이 연대 미상’이라 하여 현종조에 포함시킬 근거는 전혀 없다. 혹시 그것이 현종대에 복각된 것으로 추정된다하더라도 이러한 처리는 한글갈에서의 문헌 배열 체재로 보아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圓覺經諺解(p.111)와 圓覺經口訣에 대한 것이다. 세조조의 원각경언해에 대한 설명의 [붙임]에서 원각경언해의 중간본 가운데 활자본이 있다고 하는 것을 小倉(1940)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小倉(1940:227)에 제시된 해당 문헌의 서영은 세조조에 을유자(乙酉字)로 간행되었던 원각경구결의 만력판(?) 복각본이다. 小倉(1940)은 원각경구결을 원각경언해와 혼동하여 다루었고 한글갈의 저자는 이것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글갈에서는 이미 ‘口訣圓覺經’(p.104)이라 하여 원각경구결(가람본)의 서영을 제시하고 이를 세조조 활자본으로 설명한30)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목활자본인 供養施食文諺解(p.138)를 목판본으로 처리한 것과, 세조대의 필사본인 臺山御牒(p.120)을 목판본으로 잘못 기술한 것도 있다.


5. 맺음말

  이제까지 우리는 한글갈에 나타나 있는 문헌 연구의 내용을 살펴보고, 몇 가지 측면에서 그 특징들을 고찰하였다.
  한글갈에서 많은 양의 한글 문헌을 다룬 것은 한글 창제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글 사용의 역사적인 전개 과정을 서술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헌에 대한 고찰은 단순히 방편의 정도로 그친 것이 아니다. 방대한 양의 한글 자료를 수집 조사하여, 그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밀한 서지적 고찰을 한 점 등은 저자의 문헌학적 연구 태도를 충분히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어사 자료로서의 한글 문헌들이 새로이 많이 발견되고 각 문헌에 대한 연구가 심화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한글갈에는 잘못 기술된 부분과 더 보충되어야 할 것도 간혹 눈에 띄지만, 이 책이 저술되던 당시의 여러 가지 여건의 불비함을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특히 전문적으로 문헌에 대한 연구에만 전념하는 문헌 서지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종류의 한글 문헌들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애국적 한글 사랑에 기초한 탁월한 능력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한글갈에서의 문헌 연구 내용은 오늘날까지도 학계에 큰 보탬이 되는 위대한 저작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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