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외솔 최현배 선생의 학문과 인간]

‘우리말본’의 월갈

권재일 /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머리말

  허웅 교수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우리 민족의 창조적 활동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과의 축적인 우리말에 대해 전후 모순 없는 체계를 세워 연구한 결과가 ‘우리말본’이다.”(허웅:1991)
  이 글에서 필자는 이러한 ‘우리말본’ 가운데, ‘월갈’편을 연구사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해 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말본’에 대한 연구사적인 언급 두 편 (외솔 선생의 직접 제자가 아닌 분이 쓴 글)을 들어 두기로 한다.
(1) 곳에 따라선 엄청난 오류와 혼란을 ‘우리 말본’은 지니고 있다. …‘우리말본’의 맹신자가 전문인들 중에서도 있다는 사실이 종종 필자로 하여금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 말본’은 그 본래의 목적인, 개별 언어로서의 한국어가 가지는 용법과 규칙의 정확한 기술과 체계화에 실패하였다(이익섭:1967).
(2) 식민지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학문 태도의 당위성이 인정되며, 당시 연구의 어려운 환경에 비추어서 그 업적의 위대함이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말본’은 비단 외국 학설뿐만 아니라, 주시경이나 김두봉과 같은 앞선 학자들의 문법 연구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방대한 국어 자료를 정확하게 분석·정리하여 정연한 문법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어떤 언어관에서든, 앞으로의 국어 문법 연구는 ‘우리말본’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외솔의 문법 연구는 훌륭하였던 것이다(안병희:1985).
  연구사적인 관점이란 어떤 현상에 대한 연구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역사적인 방법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우리말본’의 ‘월갈’ 편이 우리말 연구사에서의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가를 새롭게 인식해 보려는 것이다. 연구사적인 검토가 가지는 중요한 의의는 검토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데 있다. 따라서 이 글이 지향하는 바는, ‘우리말본’의 ‘월갈’ 편에서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새롭게 인식하여, 앞으로 우리말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글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먼저 ‘월갈’ 편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포괄적으로 서술한다. 월갈의 개념과 범위는 연구 대상에서, 연구의 목적, 외래 및 선행 이론의 수용 자세 등은 연구 방법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이어서 구체적으로 월의 재료, 월 성분, 월의 체계 등에 대해서 서술하여, ‘우리말본’이 지니는 연구사적인 의의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1937년에 첫 출판된 ‘우리말본’의 마지막 수정판은 1971년의 「네 번째 고침판」이다. 이 글에서 인용하는 내용의 [ ]속 숫자는 1971년 판의 항목 번호를 가리킨다.]


2.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

      2.1. 연구 대상

  ‘우리말본’의 연구 대상은 우리말(배달말)의 본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말에는 일정한 본이 있는데, 그 본을 말본(어법)이라 하고, 그 말본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본갈(어법학)이라고 규정했다. 사람은,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낱말(단어)을 서로 얽어 붙여서 쓰는데, 말본이란 곧 낱말을 부려 월(문)을 구성하는 과정이라 했다. 이러한 말본은 개인의 머릿속의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말에 바탕을 둔다고 하였다.
  ‘우리말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소리갈’과 ‘말본갈’이 그것인데, 말본갈은 다시 ‘씨갈(詞論)’과 ‘월갈(文章論)’로 나뉜다[3-4]. 씨갈이 월의 구성 재료인 낱말의 형식과 월에서의 작용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것에 비하여, 월갈은 월에 관한 여러 현상을 밝히는 것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고 하였다. 월갈은, 말로써 한 통일된 생각을 나타내는 형식을 기술하여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3) 낱말이 곧 말 전체가 아니요, 말본은 낱말을 부려서 월을 이루는 데에 성립하는 것인즉, 낱말을 닦는 씨갈은 다만 월갈의 차림이 될 따름이요, 그 자체가 곧 말본갈은 아니다. 말본은 확실히 월갈에서 그 구실을 다 이루는 것이다. 곧, 월갈은 씨갈에서 연구한 낱말이 어떻게 서로 얽히어서 완전한 사상을 나타내게 되는가, 그 운용관계를 대체로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4,529]
  씨갈은 생각을 나타내는 재료를 연구하는 분석적‧정지적인데 비하여, 월갈은 그러한 재료로 월을 만들어 생각을 나타내는 본을 연구하는 종합적‧활동적이다. 월갈은 씨의 상관적 운용론(syntax)이라 규정하였다. 낱말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상관적인 운용을 연구하는 것을 월갈로 규정하였다. ‘우리말본’에서 이와 같이 월갈을 규정한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말본갈(즉, 문법론)의 중심되는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려면, 반드시 여러 낱말을 서로 얽매어서 월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씨갈보다는 월갈이 말본갈의 핵심적이며 궁극적 목표임을 밝혀 주었다. ‘말본연구의 대부분은 씨갈에 허비된다[4].’라는 표현에서 씨갈은 말본갈의 궁극적 목표인 월갈을 위한 선행 연구에 해당한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말본’에서 기술한 월갈의 구체적인 범위는 다음과 같다.
(4) 월갈의 범위
1. 모두 풀이(總論)
2. 월의 밑감(文의 素材)
월의 밑감의 뜻과 갈래/낱말/마디/이은말
3. 월의 짠 조각 혹은 조각(文의 組成部分, 成分)
월의 조각의 갈래/월의 조각의 되기/월의 조각의 벌림
4. 월의 조각의 서로 맞음(文의 成分의 相應)
높힘의 서로 맞음/꾸밈의 서로 맞음
5. 월의 갈래(文의 種別)
짜임으로 본 월의 갈래/바탈로 본 월의 갈래
6. 월점 치기(句讀點 使用法)
  ‘모두 풀이’에서 월의 정의를 내리고, 월갈의 주요 연구 대상으로, 월의 구성 재료, 월성분, 월 성분의 서로 맞음, 월의 유형을 설정하였다. 이는 현대 통사론의 주요 연구 대상을 모두 담고 있어, 연구 대상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말본’은 대단히 체계적인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월 성분에서는, 어순, 생략 현상, 그리고 성분 사이의 제약 현상 등을 모두 다루고 있음은 주목받을 사실이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우리말본’의 ‘월갈’ 편은 월갈의 개념과 연구 대상을 분명히 규정하였는 바,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말의 월갈(통사론) 연구를 본 궤도에 올려놓은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2.2. 연구 방법

  ‘우리말본’은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서술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5) 말본은 개인의 머리 속의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귀납적으로 그 본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본갈의 본은 기술적, 설명적임이 그 본색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 번 발견되어서 일반이 인정한 말본갈의 본은, 뒤에 그 말을 쓰는 사람, 배우는 사람에게 대하여는, 규범적이 되는 것이다.
  위의 서술에서 우선 귀납적인 방법론을 지적할 수 있다. 말본의 연구 대상으로서 말은 객관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말본은 이러한 말에 대하여 귀납적으로 그 본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위의 서술에서 보면, 말본의 연구는 언어 자료를 관찰하고, 이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가져야 함을 제시하였다. 객관적인 언어 자료를 대상으로 이를 귀납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 말본 연구의 본색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과학적 연구 방법의 기본 태도 바로 그것이다. 또한 외솔은 말본 연구의 규범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우리말본’의 목적은 , 객관적인 개별 언어로서의 우리말의 정확한 기술과 설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과 글자의 정리를 위한 실천적인 가치, 그리고 우리말 교육을 위한 실용적 가치에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학문 태도와 방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으나, 외솔은 우리 민족이 되살아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민족의 고유 문화를 떨쳐 일으키는 일이라 하고, 고유문화 가운데서도 말과 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이해한다면, 이러한 학문 태도의 당위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본’의 중요한 방법론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언어 사실의 기술과 설명에 있어서의   체계화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특정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체계를 세워서 파악하는 방법이 체계화의 방법이다.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타당성과 일관성을 지니는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어느 한 부분을 체계화하기 위해 설정된 기준이 그 부분의 체계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같은 현상 안에서 다시 다른 부분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도 쓰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말본’에서는, 월 성분, 월의 체계, 그리고 겹월의 하위 체계 등 여러 기술에서 이러한 체계화의 기술이 두드러져 있다.
  한 예를 들어, 낱말의 구성과 월의 구성에서 같은 기준을 제시하여 체계화하였다. 관계를 벌림(병렬), 어우름(합일), 거느림(주종)으로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겹씨의 하위 체계와 겹월의 하위 체계를 기술하였다.[625]
(6) ㄱ. 병렬 관계: 벌린씨 - 벌린월
ㄴ. 합일 관계: 녹은씨 - 이은월
ㄷ. 주종 관계: 가진씨 - 가진월
  ‘우리말본’의 연구 방법 가운데 주목할 사실 가운데 또 하나는, 외래 및 선행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우리말의 특성에 맞게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우선 다음과 같은 외솔의 서술을 옮겨 본다.
(7) 그러한즉, 남의 나라 말본을 닦아서, 우리말본의 닦기에 참고로 씀은 괜찮을 뿐 아니라, 차라리 해야만 할 것이지만, 짬없이 남의 말본에만 따르고, 제 말의 특유한 성질과 법칙을 살피지 아니함은 아주 큰 잘못이라 아니 할 수 없느니라.[3]
  일반적으로 외래 이론을 수용하는 태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유형은 무비판적인 수용이고, 둘째 유형은 수용에 대하여 무비판적인 배척 혹은 무관심인데, 이러한 두 유형은 모두 다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셋째 유형은 비판적인 수용의 태도인데, 이 태도는 외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서 이를 독창적인 이론으로 발전시키려는 태도이다. 이것이 외래 이론을 수용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말본’에서 외래 이론을 수용한 태도는 셋째 유형에 속한다. 우리말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한 바탕에서, 일본과 서양 학자의 이론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수용한 태도이다. ‘우리말본’을 보면, 일본과 서양 학자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래 이론으로는 풀기 어려운 여러 언어 사실을 밝혀 우리말 특성에 맞게 이론을 체계화하여, 어느 서술이든 우리말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말 연구사에서 가끔 ‘우리말본’이 체계와 내용에서 일본 학자 야마다의 책을 모방하였다고 지적하고, 그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평가를 가끔 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 평가는 올바른 것이 못 된다. 외래 이론의 수용과 관련하여 비난해야 할 사실은 외래 이론의 무비판적인 모방이나 번안적 연구이다. 예를 들어 지난 6‧70년대 미국의 변형 생성 문법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말을 연구했던 것은 바로 비난받아야 하는 수용의 태도일 것이고, 이 이론을 우리말의 특성에 맞게 비판적인 관점에서 수용하여 발전시켰던 연구는 우리가 오히려 지향해야 할 연구 태도였다. 그러므로 ‘우리말본’의 어떤 서술이 단순히 일본 책의 어떤 것과 일치한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비단 외래 이론뿐만 아니라, 주시경과 같은 앞선 학자들의 연구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켰음을 ‘우리말본’에서 볼 수 있다. 외솔은 주시경의 학문적인 정신과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구체적인 학설까지 맹종하지는 않았다. 주시경의 분석적 체계를 지양하고, 종합적 체계를 세운 것이 그러한 예이다.


3. 월의 구성 재료

      3.1. 월과 월의 구성

  ‘우리말본’에서 월을 ‘하나됨(통일성)’과 ‘따로섬(독립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8) 월(문)이라는 것은 한 통일된 말로 드러난 것이니: 뜻으로나, 꼴(형식)로나 온전히 다른 것과 따로선(독립한) 것이니라.[530]
  한 생각에는 하나의 통일 작용이 필요한데, 하나의 통일된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 월의 기본 조건이며, 비록 생각의 하나됨은 있을지라도, 만약 따로섬이 없으면, 완전한 월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따로섬을 얻으려면 그 말이 끝남을 가지되, 다만 한 번 끝남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말본’에서는 이러한 월의 구성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하나는 월을 구성하는 재료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월을 구성하는 성분의 관점이다. 다음과 같은 비유가 이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540]
(9) ㄱ. 월의 재료: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흙, 돌, 나무, 쇠, 따위
ㄴ. 월의 성분: 집의 방, 마루, 부엌과 같이 제각기 맡은 구실
  흔히 이 두 관점을 혼동하여 말본을 기술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우리말본’은 월의 재료와 월 성분을 분명히 구분하여 , 정확한 말본 서술의 바탕을 이루었다. 월은, 월의 재료가 각각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여 월 성분을 이루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10)에서 월 성분인 임자말은 월의 재료인 낱말로 되기도 하며, 이은말로 되기도 하고, 마디로 되기도 한다.
(10) ㄱ. 저이가 언제 왔나 ? (낱말)
ㄴ. 따뜻한 봄철이 돌아왔도다. (이은말)
ㄷ. 내가 무궁화를 좋아함은 그 꽃이 무궁무진으로 피기 때문이다. (마디)

      3.2. 월의 재료

  ‘우리말본’에서는, 말의, 그 짜임에 의한 갈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538의 잡이]
(11) ㄱ. 낱말(단어,word)
ㄴ. 이은말(연어,phrase)
ㄷ. 마디(구, 절,clause)
ㄹ. 월(문,sentence)
ㅁ. 대문(段,paragraph)
ㅂ. 마리 (首, 一篇의 文章)
  이 가운데 대문과 마리는 말본갈의 범위 밖이며, 낱말, 이은말, 마디가 바로 월의 재료라고 하였다. 비록 이러한 월의 재료에 대한 개념과 성격에  대한 설명은 앞선 학자의 책에도 나타나지만, 이를 명확히 하고 풍부한 예를 보인 것은 ‘우리말본’의 큰 성과이다. 다만 형태소, 형태론적 구성(어절), 통사론적 구성 등과 같은 개념과, 월의 기저 구조을 상정하여 이은말을 마디로 해석하려는 현대적 개념을 도입했더라면, 언어 현상을 더 잘 기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낱말은 월의 재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토씨를 제외한 모든 낱말은 재료로서 능히 월 성분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낱말이 스스로 월 성분이 되는 힘은 서로 같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 주목된다. 그 힘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534~535]
(12) 꾸밈씨[느낌씨>매김씨>어찌씨(+토씨)]> 풀이씨 > 임자씨(+토씨)
  마디는, 끝나기만 하면, 또는 따로 서기만 하면, 월이 될 만한 구성이면서, 완전히 끝나지 아니하고, 또는 따로 서지 아니하여, 다만 월의 한 성분이 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마디는 이은말과는 달리, 반드시 임자말과 풀이말을 온전히 갖추고 있어야 성립한다. 기저 구조를 상정해서 임자말이나 풀이말이 생략된 마디도 인정하는 변형 생성 문법적 생각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다음 (13)의 밑줄 그은 구성은 마디인데, 이들은 따로 서기만 하면 (14)와 같이 월이 된다.[536]
(13) ㄱ. 향기가 맑은 매화가 피었다.
ㄴ. 마음이 깨끗하기가 흰 눈과 같다.
ㄷ.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아니한다.
ㄹ. 하늘이 높고, 땅은 두텁다.
    
(14) ㄱ. 향기가 맑다.
ㄴ. 마음이 깨끗하다.
ㄷ. 물이 맑다.
ㄹ. 하늘이 높다.
    마디는, 임자마디(체언절), 풀이마디(용언절), 매김마디(관형절), 어찌마디(부사절), 맞선 마디(대립절)로 체계화했다. 맞선 마디란 앞뒤 마디가 서로 대등한 가치를 가지고 맞선 것으로, (15)와 같이 겹월을 구성한다.[537]
(15) ㄱ. 꽃은 웃고, 새는 노래한다.
ㄴ. 서리가 내리면, 나뭇잎이 빨갛게 물든다.
  이은말은 여러 낱말이 모여서 복잡한 뜻을 나타내되, 아직 온전한 생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 즉 월은 물론 아직 마디도 되지 못한 것이라 규정했는데, 이은말 역시 임자 이은말, 풀이 이은말, 매김 이은말, 어찌 이은말로 체계화했다.[538~539]
(16) ㄱ. 자유를 사랑함은 사람의 본질이다.
ㄴ. 그가 그 일을 잊어 버렸다.
ㄷ.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많이 거둔다.
ㄹ. 그는 제 생각을 고집하여 굴하지 아니한다.
  마디에서 월 성분(임자말과 풀이말)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구성을 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17)을 (18ㄱ)으로 보아, 여러 낱말이 모여서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은말로 보는 관점)과, (18ㄴ)으로 보아, 임자말 ‘사람이’가 구조적으로 숨어 있는 (혹은, 생략된) 것으로 보는 관점(마디, 또는 월로 보는 관점)이다. ‘우리말본’에서는 월의 겉 구조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18ㄱ)의 관점에서는 반면, (18ㄴ)의 관점은 변형 생성 문법적 생각이다.
(17) 자유를 사랑함은 사람의 본질이다.
(18) ㄱ. 자유-를 사랑하-ㅁ
ㄴ. (사람-이) 자유-를 사랑하-ㅁ
    

4. 월 성분

      4.1. 월 성분과 월 성분의 유형

  월은, 그 구실로 보아서, 몇 가지 성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나눈 조각을 월 성분(월의 조각)이라 했다. 월 성분은 으뜸조각과 딸림조각과 홀로조각으로 체계화했는데, 으뜸조각(주요 성분)에는 임자말‧풀이말‧부림말‧기움말을 , 딸림조각(종속 성분)에는 매김말‧어찌말을 , 홀로조각(독립 성분)에는 홀로말을 설정했다. 이러한 월 성분은 풀이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리토씨의 체계와 일치한다. 이러한 서술 역시 체계적인 기술의 한 예이다. 임자 자리토/임자말, 매김 자리토/매김말, 어찌 자리토/어찌말, 부림 자리토/부림말, 기움 자리토/기움말, 부름 자리토/홀로말.[540]
  ‘우리말본’의 월 성분의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움말(보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풀이말의 임자말과의 관계 형식은, 1) 무엇이 어찌하다, 2) 무엇이 어떠하다, 3) 무엇이 무엇이다의 세 가지이다. 이는 각각, 움직씨, 그림씨, 잡음씨가 그 역할을 한다. 다만, 잡음씨는 풀이하는 형식적 힘만 있고, 그 실질적 속성 관념이 없기 때문에, 그 실질 관념을 깁는 말이 필요하다. 잡음씨에 실질적 속성 관념을 깁는 말이 기움말이다. 즉 기움말은 잡음씨와 한 덩이가 되어서 월의 풀이를 온전히 하는 월 성분이다.[544]
(19) ㄱ. 이것은 첨성대이다.
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4.2. 월 성분의 성립

  ‘우리말본’에서는 월 성분 각각에 대하여 그것이 성립되는 조건을 일일이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임자말의 경우를 들어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임자말은 원칙적으로 ‘임자씨+토씨’로 이루어진다. 임자씨 외에도 풀이씨의 이름꼴과 임자마디, 또는 풀이의 주제가 되는 말은 모두 임자말에 올 수 있다고 서술하였다.[550~552]
(20) ㄱ. 무궁화꽃이 피어 있었다. (이름씨)
ㄴ. 놀기가 일하기보다 되다. (풀이씨의 이름꼴)
ㄷ. 비가 자주 옴은 농사에 좋다. (임자마디)
ㄹ. ‘’은 줄기요, ‘’는 씨끝이다. (주제가 되는 말)
  임자말은 임자자리 토씨 ‘-가, -이, -에서, -께서, -께옵서’가 결합하여 구성함과, 딸림마디의 임자말에서는, 더러 매김자리 토씨 ‘-의’가 대신하는 일이 있음과, 또한 도움토씨가 결합하거나, 임자자리 토씨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음도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21) ㄱ. 사람이 제 목숨을 아낀다.  (임자자리 토씨‘-이’)
ㄴ.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왔다. (매김자리 토씨 ‘-의’)
ㄷ. 바람도 부는데, 비조차 오네. (도움토씨‘-도’)
ㄹ. 사람(이) 좋은 줄을 이제야 알았느냐? (생략)

      4.3. 어순: 월 성분의 배열

  ‘우리말본’에서는, 모든 월 성분은 월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일정하다고 지적하여, 말본 기술에서 어순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어순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어순의 자유로움도 인식하여, 바른 자리 어순, 거꾸른자리 어순을 들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어순은 나라말에 따라서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여 언어 유형론적 성격도 인식하였다. 우리말 어순의 특성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585-604]]
(22) ㄱ. 임자말은 앞에, 풀이말은 뒤에 위치한다.
ㄴ. 기움말과 부림말은 임자말과 풀이말 사이에 위치한다.
ㄷ. 꾸밈말은 꾸미는 말 앞에 위치한다.
ㄹ. 어찌말과 부리말과의 자리잡기는 일정하지 아니하다.
ㅁ. 홀로말은 월의 맨 앞에 위치한다.
ㅂ. 어찌말은 거꾸른자리가 가능하나, 매김말은 그렇지 못하다.
ㅅ. 월 가운데 한 성분이 여럿이 나란히 설 수 있다.

      4.4. 월 성분의 생략

  월 성분은 월에서 각각 일정한 구실을 하지만, 생각의 분명함을 지니는 범위 안에서는, 되풀이함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월을 간결하게 하고, 말힘을 세게 할 목적으로 월 성분을 생략할 수 있다고 하였다.[605~609]
(23) ㄱ. 언니는 서울로 (가고), 아우는 평양으로 갔습니다.
ㄴ. (당신이) 가실 적에 (나를) 부르셔요.

      4.5. 월 성분의 서로 맞음

  월갈 연구에서 주요한 과제는 월 성분 사이의 서로 맞음에 대한 분석이다. 월 성분끼리 가려잡기의 현상이나 제약 현상은 모두 이와 같은 개념이다. 특히 현대 통사론 연구의 주된 과제가 규칙이나 원리를 설정하여 통사적 제약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데에 있을 정도로 이것은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우리말본’에서 이러한 ‘월 성분의 서로 맞음’을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비록 설명에 있어서 불합리한 점, 분석 대상이 제한된 점이 한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과제를 제시하여 분석했다는 점에서, 현대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큰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높임의 서로 맞음과 꾸밈의 서로 맞음을 제시하였다.[611]
  예를 들면, 양태적 의미를 가지는 어찌말과 풀이말에 서로 맞음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꾸밈의 서로 맞음이라 하였다.[621]
(24) ㄱ. 과연 그렇구나 [긍정]
ㄴ. 그 사람은 결코 가지 않는다. [부정]
ㄷ. 하물며 여남은 장부야 일러 무삼 하리? [물음]
ㄹ. 아마 그렇지. [추측]
ㅁ. 만약 비가 올 것 같으면, 나는 못 가겠다. [가정]

5. 월의 체계

  ‘우리말본’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월의 체계를 세웠다. 그 하나는 ‘짜임새(구조)’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바탈(성질)’이라는 관점이다. 바탈은, 말하는 이의 듣는 이에 대한 의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는 임자말-풀이말의 관계에 따라 ‘홑월(단문)’과 ‘겹월(복문)’로 체계화하고, 바탈에 의한 월의 체계는 의향법 체계에 의한 것인데, 베풂월‧시킴월‧물음월‧꾀임월로 체계화했다.

      5.1.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

  월을, 그 짜임새로 따라, 홑월과 겹월로 체계화했다. 임자말과 풀이말과의 관계가 단 한 번만 성립한 월을 홑월이라 규정하고, 임자말과 풀이말의 관계가 두 번 혹은 그 이상 성립하는 것을 겹월이라 규정했다. 이러한 규정은 ‘임자말과풀이말의 관계’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월의 체계를 세운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과 체계는, 내용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말 기술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홑월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623]
  임자말과 풀이말이 각각 하나씩인 것이 홑월이다((25)). 그리고 임자말이 비록 여럿이라도, 풀이말과의 관계가 단 한 번만인 것도 홑월이며((26)), 풀이말이 여럿이라도, 임자말과의 관계가 단 한 번만인 것도 홑월이다((27)). 또한 임자말과 풀이말이 함께 여럿으로 되었을지라도, 그 관계가 다만 한 번만인 것도 홑월이며((28)), 그 밖에 꾸밈말, 기움말 따위의 있고 없음과 적고 많음은 홑월이 되고 안 됨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29)).
(25) 아이가 글을 읽는다.
(26) 아버지와 아들이 밭을 간다.
(27) 그 애가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28) 꽃과 잎이 붉고 푸르다.
(29) 아주 이른 아침에, 그는 뜨끈뜨끈한 국밥을 많이 먹고, 긴 가래를 오른손에 가지고, 뒤뜰 여덜 마지기 논으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이상과 같은 분석은 월 구조를 직선적으로 분석하는 관점이다. 실제 위의 (26), (27), (28), (29)에서 임자말과 풀이말의 관계가 한 번만 나타나 있다기보다는, 비록 겉으로는 임자말 또는 풀이말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관계는 충분히 두 번 이상 나타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주시경 문법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짜임새와 속뜻으로 있는 짜임새를 달리 상정했는데, ‘우리말본’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짜임새만 직선적인 방법으로 분석했다. 이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마디’의 개념 설정과 관련을 맺는 분석이기도 한다.
  겹월은 한 월에 둘 이상의 마디를 가진 월, 즉 임자말과 풀이말과의 관계가 두 번 이상 성립하는 월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겹월을 ‘마디의 결합 관계의 모양’이라는 기준에 따라 가진월‧벌린월‧이은월로 하위 체계화했다. 그런데 겹월의 하위 체계를 세우는 데에는 무척 고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30) 나는 겹월의 가름에 대하여, 퍽 오래 동안을 두고 여간 고심하지 아니하였다. 어느 나라 말본을 따르고자 하여도 맞지 아니하며, 앞사람의 가름법을 따르고자 하여도 또한 맞지 아니하였다. …이 세 가지의 맺음 걸림과 그 걸림에 따른 겹월의 셋 가름은 저 야마다 님의 분류와 같은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름은 다만 단순한 모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월의 여러 가지의 실제적 성질을 분류 고찰한 결과로 위와 같이 한 것이다.[625]
  ‘우리말본’에서는 겹월의 하위 체계를 위하여 ‘(둘 이상의 것이 모여 한 덩이가 되는) 결합 관계의 모양’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기준은 겹씨의 하위 체계의 기준이기도 하다. 어느 한 부분을 체계화하기 위해 설정된 기준이, 같은 현상의 다른 부분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도 쓰일 수 있어야 일관성 있는 기준이 되는데, 낱말의 구성과 월의 구성에서 일관성 있는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른, 겹월의 하위 체계는 다음과 같다.[625]
(31) ㄱ. 벌림(병렬) 관계   - 벌린월(병렬문)
ㄴ. 어우름(합일) 관계 - 이은월(연합문)
ㄷ. 거느림(주종) 관계 - 가진월(포유문)
  먼저, 가진월은 어떤 마디가 월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월 성분을 이룬 것을 안은월을 말한다. 즉 으뜸마디가 딸림마디(어찌마디‧매김마디‧이름마디‧풀이마디)를 가진 겹월이다.[626]
(32) ㄱ. 나뭇잎이, 소리도 없이, 떨어진다.
ㄴ. 향기가 좋은 꽃이 만발하였다.
ㄷ. 달이 밝기가 낮과 같다.
ㄹ. 후덕한 사람은 인망이 높으니라.
  벌린월은 각각 독립하여 대등한 자격을 가진 둘 이상의 맞선 마디를 나열하여 한 덩이로 만든 월이다. 앞마디의 풀이말은 나열형으로 뒷마디에 이은월이다. [627]
(33) ㄱ.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ㄴ.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울고, 서리는 하늘에 찼다.
  이은월도 각각 같은 자격을 가진 두 마디가 이어져 한 덩이가 된 월이다. 앞마디의 풀이말은 나열형 이외의 씨끝에 의해 뒷마디에 이어진다. 이은월을 따로 세우느냐, 아니면 이것을 ‘어찌마디’를 안은 가진월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결국 이은월을 세운 것은, 그 앞뒤 마디 사이의 관계가 종속적이 아니라, 대등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628]
(34) ㄱ. 심기는 괴롭지마는, 거두기는 즐겁다.
ㄴ. 봄이 오면, 꽃이 핀다.
  이상의 서술을 바탕으로, ‘우리말본’의,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5)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
ㄱ. 홑월
ㄴ. 겹월
1. 주종적
  <거느림>: 가진월[으뜸마디+딸림마디]
2. 대등적
  <벌림>: 벌린월[맞선 마디-대등성 강]
  <어우름>: 이은월[맞선 마디-대등성 약]

      5.2. 바탈에 의한 월의 체계

  ‘우리말본’에서는 월을, 바탈에 따라 다시 체계를 세웠다. 바탈은 말하는 이의 듣는 이에 대한 의향을 뜻한다. 베풂월(서술문)‧시킴월(명령문)‧물음월(의문문)‧꾀임월(청유문) 등이 그것이다.[633]
  먼저 바탈에 의한 체계화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마련하였다. 즉, 월을 그 바탈로 가르려면, 먼저 그 풀이의 바탈을 근거로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월은 임자말과 풀이말로 기본이지만, 이 두 가지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것은 풀이말이다. 임자말은 흔히 생략되고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풀이말은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은 서술은 타당한 기준을 세워 체계화하였다는 점과 우리말 기술에서 풀이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풀이말 중심의 기술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견해라고 본다. 이와 같은 기준에 의한 월의 체계는 다음과 같다.
  풀이말의 태도에 따라, 월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공동적 동작을 하자고 요구하는 월이 꾀임 월이다. 둘째, 말하는 이가 다만 자신의 개별적 생각을 나타내는 월이 있인데, 이것은 다시 둘로 나뉜다. 1) 생각을 말하는 이에게만 한정하고 듣는 이는 고려하지 아니하는 월이 베풂월이고, 2) 반드시 듣는 이를 고려하고 그에게 어떠한 생각을 제출하는 것으로, 말하는 이의 생각을 중심으로 듣는 이가 그대로 하기를 요구하는 월이 시킴월, 듣는 이를 중심으로 그에게 어떠한 생각의 발표를 요구하는 월이 물음월이다.
(36) 바탈에 의한 월의 체계
ㄱ. 개별적 관계
1. 단독적 태도 ------------------------- 베풂월
2. 관계적 태도
[말하는이 중심] ------------------ 시킴월
[말듣는이 중심] ------------------ 물음월
ㄴ. 공동적 관계 ------------------------- 꾀임월
  이러한 월들에 대하여 ‘우리말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현상들도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이러한 분석 내용은 현대 통사론의 연구에서도 주요 대상이 되고 있음을 주목한다.[635-648]
  첫째, 월의 형식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베풂월은 풀이씨의 베풂꼴로 끝맺는다. 느낌월을 따로 설정하지 않은 근거도 형식적 특성으로 설명했다. 시킴월의 형식적 특징은 풀이씨의 씨끝이 시킴꼴이며, 물음월은 풀이씨의 씨끝이 물음꼴이며, 꾀임 월은 풀이씨의 씨끝이 꾀임 꼴이다.
  둘째, 각 월이 가지는 통사적 제약을 분석하였다. 임자말의 경우, 베풂월과 물음월은 따로 제약이 없으나, 시킴월은 임자말이 2인칭이어야 하고, 꾀임월은 임자말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풀이말의 경우, 시킴월과 꾀임월은 움직씨만 허용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셋째, 각 월이 가지는 화용론적 쓰임을 분석하였다. 베풂월이 물음으로 쓰이는 경우(37ㄱ), 물음월이 베풂(37ㄴ), 시킴(37ㄷ), 꾀임(37ㄹ)으로 쓰이는 경우, 꾀임월이 시킴으로 쓰이는 경우((37ㅁ)) 등을 제시한 화용론적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37) ㄱ. 누구에게 “나는 못하겠다.”(↑) (물음: 못하겠다고 하느냐?)
ㄴ. 너도 사람이냐 ? (베풂: 너는 사람이 아니다.)
ㄷ. 영길아, 너는 밥을 안 먹니? (시킴: 밥을 먹어라.)
ㄹ. 자네 같이 안 가겠는가 ? (꾀임: 같이 가세.)
ㅁ. 나 그 책 좀 보세. (시킴: 그 책 좀 보여 주어라.)

6. 맺음말

  이 글에서 필자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의 ‘월갈’편을 연구사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해 보고자 하였다. ‘월갈’ 편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검토하고, 또한 구체적인 연구 내용을 되살펴 본 결과, ‘우리말본’은 우리말을 앞뒤 모순 없는 논리로 연구하여, 우리말의 월갈을 일정한 체계로 확립하였음을 새삼 확인하였다.
  ‘우리말본’의 ‘월갈’편은 월갈의 개념과 연구 대상을 분명히 규정하여 우리말의 월갈(통사론) 연구를 본궤도에 올려놓은 연구라 평가할 수 있으며, 또한 객관적인 언어 자료를 대상으로 이를 귀납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한 과학적 방법뿐만 아니라, 타당성과 일관성을 지닌 기준을 설정하여 언어 현상을 체계화한 연구 방법도 역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말의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한 바탕에서, 일본과 서양 학자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외래 이론으로는 풀기 어려운 여러 언어 현상을 밝혀 우리말 특성에 맞는 이론으로 체계화한 것도 우리말 연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라고 하겠다.
  연구사적인 검토가 가지는 중요한 의의는 검토 대상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살펴온 ‘우리말본’의 「월갈」은, 우리말 말본 연구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쳐 왔으며, 아직 질과 양에 있어서 이를 뛰어넘을 만한 업적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말 연구가 나가야 할 분명한 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말의 바람직한 연구를 위해서는 학문의 올바른 전통을 찾아 이를 계승하여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어떤 언어 이론에 근거하든, 먼저 ‘우리말본’에서 그 전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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