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본’의 월갈
1. 머리말
허웅 교수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우리 민족의 창조적 활동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과의 축적인 우리말에 대해 전후 모순 없는 체계를 세워 연구한 결과가 ‘우리말본’이다.”(허웅:1991)(1) | 곳에 따라선 엄청난 오류와 혼란을 ‘우리 말본’은 지니고 있다. …‘우리말본’의 맹신자가 전문인들 중에서도 있다는 사실이 종종 필자로 하여금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 말본’은 그 본래의 목적인, 개별 언어로서의 한국어가 가지는 용법과 규칙의 정확한 기술과 체계화에 실패하였다(이익섭:1967). |
(2) | 식민지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학문 태도의 당위성이 인정되며, 당시 연구의 어려운 환경에 비추어서 그 업적의 위대함이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말본’은 비단 외국 학설뿐만 아니라, 주시경이나 김두봉과 같은 앞선 학자들의 문법 연구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방대한 국어 자료를 정확하게 분석·정리하여 정연한 문법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어떤 언어관에서든, 앞으로의 국어 문법 연구는 ‘우리말본’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외솔의 문법 연구는 훌륭하였던 것이다(안병희:1985). |
2.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
2.1. 연구 대상
‘우리말본’의 연구 대상은 우리말(배달말)의 본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말에는 일정한 본이 있는데, 그 본을 말본(어법)이라 하고, 그 말본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본갈(어법학)이라고 규정했다. 사람은,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낱말(단어)을 서로 얽어 붙여서 쓰는데, 말본이란 곧 낱말을 부려 월(문)을 구성하는 과정이라 했다. 이러한 말본은 개인의 머릿속의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말에 바탕을 둔다고 하였다.(3) | 낱말이 곧 말 전체가 아니요, 말본은 낱말을 부려서 월을 이루는 데에 성립하는 것인즉, 낱말을 닦는 씨갈은 다만 월갈의 차림이 될 따름이요, 그 자체가 곧 말본갈은 아니다. 말본은 확실히 월갈에서 그 구실을 다 이루는 것이다. 곧, 월갈은 씨갈에서 연구한 낱말이 어떻게 서로 얽히어서 완전한 사상을 나타내게 되는가, 그 운용관계를 대체로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4,529] |
(4) | 월갈의 범위 | |
1. | 모두 풀이(總論) | |
2. | 월의 밑감(文의 素材) 월의 밑감의 뜻과 갈래/낱말/마디/이은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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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월의 짠 조각 혹은 조각(文의 組成部分, 成分) 월의 조각의 갈래/월의 조각의 되기/월의 조각의 벌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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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월의 조각의 서로 맞음(文의 成分의 相應) 높힘의 서로 맞음/꾸밈의 서로 맞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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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월의 갈래(文의 種別) 짜임으로 본 월의 갈래/바탈로 본 월의 갈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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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월점 치기(句讀點 使用法) |
2.2. 연구 방법
‘우리말본’은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서술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5) | 말본은 개인의 머리 속의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귀납적으로 그 본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본갈의 본은 기술적, 설명적임이 그 본색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 번 발견되어서 일반이 인정한 말본갈의 본은, 뒤에 그 말을 쓰는 사람, 배우는 사람에게 대하여는, 규범적이 되는 것이다. |
(6) | ㄱ. | 병렬 관계: 벌린씨 - 벌린월 |
ㄴ. | 합일 관계: 녹은씨 - 이은월 | |
ㄷ. | 주종 관계: 가진씨 - 가진월 |
(7) | 그러한즉, 남의 나라 말본을 닦아서, 우리말본의 닦기에 참고로 씀은 괜찮을 뿐 아니라, 차라리 해야만 할 것이지만, 짬없이 남의 말본에만 따르고, 제 말의 특유한 성질과 법칙을 살피지 아니함은 아주 큰 잘못이라 아니 할 수 없느니라.[3] |
3. 월의 구성 재료
3.1. 월과 월의 구성
‘우리말본’에서 월을 ‘하나됨(통일성)’과 ‘따로섬(독립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8) | 월(문)이라는 것은 한 통일된 말로 드러난 것이니: 뜻으로나, 꼴(형식)로나 온전히 다른 것과 따로선(독립한) 것이니라.[530] |
(9) | ㄱ. | 월의 재료: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흙, 돌, 나무, 쇠, 따위 |
ㄴ. | 월의 성분: 집의 방, 마루, 부엌과 같이 제각기 맡은 구실 |
(10) | ㄱ. | 저이가 언제 왔나 ? (낱말) |
ㄴ. | 따뜻한 봄철이 돌아왔도다. (이은말) | |
ㄷ. | 내가 무궁화를 좋아함은 그 꽃이 무궁무진으로 피기 때문이다. (마디) |
3.2. 월의 재료
‘우리말본’에서는, 말의, 그 짜임에 의한 갈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538의 잡이](11) | ㄱ. 낱말(단어,word) |
ㄴ. 이은말(연어,phrase) | |
ㄷ. 마디(구, 절,clause) | |
ㄹ. 월(문,sentence) | |
ㅁ. 대문(段,paragraph) | |
ㅂ. 마리 (首, 一篇의 文章) |
(12) | 꾸밈씨[느낌씨>매김씨>어찌씨(+토씨)]> 풀이씨 > 임자씨(+토씨) |
(13) | ㄱ. 향기가 맑은 매화가 피었다. |
ㄴ. 마음이 깨끗하기가 흰 눈과 같다. | |
ㄷ.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아니한다. | |
ㄹ. 하늘이 높고, 땅은 두텁다. | |
(14) | ㄱ. 향기가 맑다. |
ㄴ. 마음이 깨끗하다. | |
ㄷ. 물이 맑다. | |
ㄹ. 하늘이 높다. |
(15) | ㄱ. 꽃은 웃고, 새는 노래한다. |
ㄴ. 서리가 내리면, 나뭇잎이 빨갛게 물든다. |
(16) | ㄱ. 자유를 사랑함은 사람의 본질이다. |
ㄴ. 그가 그 일을 잊어 버렸다. | |
ㄷ.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많이 거둔다. | |
ㄹ. 그는 제 생각을 고집하여 굴하지 아니한다. |
(17) | 자유를 사랑함은 사람의 본질이다. |
(18) | ㄱ. 자유-를 사랑하-ㅁ |
ㄴ. (사람-이) 자유-를 사랑하-ㅁ |
4. 월 성분
4.1. 월 성분과 월 성분의 유형
월은, 그 구실로 보아서, 몇 가지 성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나눈 조각을 월 성분(월의 조각)이라 했다. 월 성분은 으뜸조각과 딸림조각과 홀로조각으로 체계화했는데, 으뜸조각(주요 성분)에는 임자말‧풀이말‧부림말‧기움말을 , 딸림조각(종속 성분)에는 매김말‧어찌말을 , 홀로조각(독립 성분)에는 홀로말을 설정했다. 이러한 월 성분은 풀이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리토씨의 체계와 일치한다. 이러한 서술 역시 체계적인 기술의 한 예이다. 임자 자리토/임자말, 매김 자리토/매김말, 어찌 자리토/어찌말, 부림 자리토/부림말, 기움 자리토/기움말, 부름 자리토/홀로말.[540](19) | ㄱ. 이것은 첨성대이다. |
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
4.2. 월 성분의 성립
‘우리말본’에서는 월 성분 각각에 대하여 그것이 성립되는 조건을 일일이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임자말의 경우를 들어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임자말은 원칙적으로 ‘임자씨+토씨’로 이루어진다. 임자씨 외에도 풀이씨의 이름꼴과 임자마디, 또는 풀이의 주제가 되는 말은 모두 임자말에 올 수 있다고 서술하였다.[550~552](20) | ㄱ. 무궁화꽃이 피어 있었다. (이름씨) |
ㄴ. 놀기가 일하기보다 되다. (풀이씨의 이름꼴) | |
ㄷ. 비가 자주 옴은 농사에 좋다. (임자마디) | |
ㄹ. ‘있’은 줄기요, ‘다’는 씨끝이다. (주제가 되는 말) |
(21) | ㄱ. 사람이 제 목숨을 아낀다. (임자자리 토씨‘-이’) |
ㄴ.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왔다. (매김자리 토씨 ‘-의’) | |
ㄷ. 바람도 부는데, 비조차 오네. (도움토씨‘-도’) | |
ㄹ. 사람(이) 좋은 줄을 이제야 알았느냐? (생략) |
4.3. 어순: 월 성분의 배열
‘우리말본’에서는, 모든 월 성분은 월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일정하다고 지적하여, 말본 기술에서 어순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어순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어순의 자유로움도 인식하여, 바른 자리 어순, 거꾸른자리 어순을 들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어순은 나라말에 따라서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여 언어 유형론적 성격도 인식하였다. 우리말 어순의 특성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585-604]](22) | ㄱ. 임자말은 앞에, 풀이말은 뒤에 위치한다. |
ㄴ. 기움말과 부림말은 임자말과 풀이말 사이에 위치한다. | |
ㄷ. 꾸밈말은 꾸미는 말 앞에 위치한다. | |
ㄹ. 어찌말과 부리말과의 자리잡기는 일정하지 아니하다. | |
ㅁ. 홀로말은 월의 맨 앞에 위치한다. | |
ㅂ. 어찌말은 거꾸른자리가 가능하나, 매김말은 그렇지 못하다. | |
ㅅ. 월 가운데 한 성분이 여럿이 나란히 설 수 있다. |
4.4. 월 성분의 생략
월 성분은 월에서 각각 일정한 구실을 하지만, 생각의 분명함을 지니는 범위 안에서는, 되풀이함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월을 간결하게 하고, 말힘을 세게 할 목적으로 월 성분을 생략할 수 있다고 하였다.[605~609](23) | ㄱ. 언니는 서울로 (가고), 아우는 평양으로 갔습니다. |
ㄴ. (당신이) 가실 적에 (나를) 부르셔요. |
4.5. 월 성분의 서로 맞음
월갈 연구에서 주요한 과제는 월 성분 사이의 서로 맞음에 대한 분석이다. 월 성분끼리 가려잡기의 현상이나 제약 현상은 모두 이와 같은 개념이다. 특히 현대 통사론 연구의 주된 과제가 규칙이나 원리를 설정하여 통사적 제약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데에 있을 정도로 이것은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우리말본’에서 이러한 ‘월 성분의 서로 맞음’을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비록 설명에 있어서 불합리한 점, 분석 대상이 제한된 점이 한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과제를 제시하여 분석했다는 점에서, 현대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큰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높임의 서로 맞음과 꾸밈의 서로 맞음을 제시하였다.[611](24) | ㄱ. 과연 그렇구나 | [긍정] |
ㄴ. 그 사람은 결코 가지 않는다. | [부정] | |
ㄷ. 하물며 여남은 장부야 일러 무삼 하리오? | [물음] | |
ㄹ. 아마 그렇겠지. | [추측] | |
ㅁ. 만약 비가 올 것 같으면, 나는 못 가겠다. | [가정] |
5. 월의 체계
‘우리말본’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월의 체계를 세웠다. 그 하나는 ‘짜임새(구조)’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바탈(성질)’이라는 관점이다. 바탈은, 말하는 이의 듣는 이에 대한 의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는 임자말-풀이말의 관계에 따라 ‘홑월(단문)’과 ‘겹월(복문)’로 체계화하고, 바탈에 의한 월의 체계는 의향법 체계에 의한 것인데, 베풂월‧시킴월‧물음월‧꾀임월로 체계화했다.5.1.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
월을, 그 짜임새로 따라, 홑월과 겹월로 체계화했다. 임자말과 풀이말과의 관계가 단 한 번만 성립한 월을 홑월이라 규정하고, 임자말과 풀이말의 관계가 두 번 혹은 그 이상 성립하는 것을 겹월이라 규정했다. 이러한 규정은 ‘임자말과풀이말의 관계’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월의 체계를 세운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과 체계는, 내용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말 기술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홑월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623](25) | 아이가 글을 읽는다. |
(26) | 아버지와 아들이 밭을 간다. |
(27) | 그 애가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
(28) | 꽃과 잎이 붉고 푸르다. |
(29) | 아주 이른 아침에, 그는 뜨끈뜨끈한 국밥을 많이 먹고, 긴 가래를 오른손에 가지고, 뒤뜰 여덜 마지기 논으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
(30) | 나는 겹월의 가름에 대하여, 퍽 오래 동안을 두고 여간 고심하지 아니하였다. 어느 나라 말본을 따르고자 하여도 맞지 아니하며, 앞사람의 가름법을 따르고자 하여도 또한 맞지 아니하였다. …이 세 가지의 맺음 걸림과 그 걸림에 따른 겹월의 셋 가름은 저 야마다 님의 분류와 같은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름은 다만 단순한 모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월의 여러 가지의 실제적 성질을 분류 고찰한 결과로 위와 같이 한 것이다.[625] |
(31) | ㄱ. 벌림(병렬) 관계 - 벌린월(병렬문) |
ㄴ. 어우름(합일) 관계 - 이은월(연합문) | |
ㄷ. 거느림(주종) 관계 - 가진월(포유문) |
(32) | ㄱ. 나뭇잎이, 소리도 없이, 떨어진다. |
ㄴ. 향기가 좋은 꽃이 만발하였다. | |
ㄷ. 달이 밝기가 낮과 같다. | |
ㄹ. 후덕한 사람은 인망이 높으니라. |
(33) | ㄱ.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
ㄴ.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울고, 서리는 하늘에 찼다. |
(34) | ㄱ. 심기는 괴롭지마는, 거두기는 즐겁다. |
ㄴ. 봄이 오면, 꽃이 핀다. |
(35) | 짜임새에 의한 월의 체계 | ||
ㄱ. | 홑월 | ||
ㄴ. | 겹월 | ||
1. | 주종적 | ||
<거느림>: 가진월[으뜸마디+딸림마디] | |||
2. | 대등적 | ||
<벌림>: 벌린월[맞선 마디-대등성 강] | |||
<어우름>: 이은월[맞선 마디-대등성 약] |
5.2. 바탈에 의한 월의 체계
‘우리말본’에서는 월을, 바탈에 따라 다시 체계를 세웠다. 바탈은 말하는 이의 듣는 이에 대한 의향을 뜻한다. 베풂월(서술문)‧시킴월(명령문)‧물음월(의문문)‧꾀임월(청유문) 등이 그것이다.[633](36) | 바탈에 의한 월의 체계 | ||||
ㄱ. | 개별적 관계 | ||||
1. | 단독적 태도 | ------------------------- | 베풂월 | ||
2. | 관계적 태도 | ||||
[말하는이 중심] | ------------------ | 시킴월 | |||
[말듣는이 중심] | ------------------ | 물음월 | |||
ㄴ. | 공동적 관계 | ------------------------- | 꾀임월 |
(37) | ㄱ. | 누구에게 “나는 못하겠다.”(↑) (물음: 못하겠다고 하느냐?) |
ㄴ. | 너도 사람이냐 ? (베풂: 너는 사람이 아니다.) | |
ㄷ. | 영길아, 너는 밥을 안 먹니? (시킴: 밥을 먹어라.) | |
ㄹ. | 자네 같이 안 가겠는가 ? (꾀임: 같이 가세.) | |
ㅁ. | 나 그 책 좀 보세. (시킴: 그 책 좀 보여 주어라.) |
6. 맺음말
이 글에서 필자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의 ‘월갈’편을 연구사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해 보고자 하였다. ‘월갈’ 편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검토하고, 또한 구체적인 연구 내용을 되살펴 본 결과, ‘우리말본’은 우리말을 앞뒤 모순 없는 논리로 연구하여, 우리말의 월갈을 일정한 체계로 확립하였음을 새삼 확인하였다.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