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외솔 최현배 선생의 학문과 인간]

외솔의 한 평생을 지배한 근본 애국 사상

허웅 / 한글 학회 이사장


1. 머리말

  외솔이 지은 책, 그리고 쓴 논문들은 수없이 많아서, 그 제목들을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것도 더러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조선 민족 갱생의 도’는 그것을 지은 지가 매우 오래 되었고, 그 문체가 요즈음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매우 어색한 것이기 때문에 젊은 분들 가운데는 이 논문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논문은 외솔의 한 평생을 지배한, 그 나라 사랑의 근본 사상을 정열적으로 기록한 것이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2. 지은 경위

  외솔의 행적을 보면, 외솔이 32살에서 33살 사이, 즉 1925년 봄에서 1926년 봄에 이르는 동안에, 일본 경도 대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이 논문을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속사정을 그는 이렇게 적어 놓고 있다.
  나는 대학원 재학 일년 동안에 ‘조선 민족 갱생의 도’란 장편 논문을 썼다. 이것으로써 나 스스로의 일본 유학 십년 간의 졸업 논문으로 자처하게 되었다.
  그 뒤에 외솔은 연희 전문 학교의 조교수로 취임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 논문이 동아 일보에 연재되어, 대단한 호응을 받았었다 한다. 그것은 이 논문의 근본 취지가 그때 시들어만 가고 있었던 조선 민족이 되살아나기 위한 목표를 다음의 네 가지에 두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네 가지 목표란;
(1) 우리 민족은 살아나야겠다는, 삶에 대한 의욕을 떨쳐 일으켜야 한다.
(2) 우리 민족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부터 먼저 가져야 한다.
(3) 다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민족의 이상을 세우고,
(4) 살아나야겠다는 의욕과,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 때를 놓치지 않고, 노력을 끈질기게 계속해야 한다.

3. 그 내용의 대강

  이것만 보여서는 탁상공론 같게도 보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외솔은 이 논문을 쓰기 위해서, 그때의 우리나라와 세계의 현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기반 위에서 치밀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이 논문을 썼던 것인데, 이 논문의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1) 그 머리말과 서문에서는, 어떤 민족이든 안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힘, 살아나가려는 창조적인 힘이 강하게 움직이면 그 겨레는 일어날 것이요, 그렇지 않은 겨레는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중병을 앓고 있는데, 그 증세가 어떠한 것인가?
(3) 그러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4) 우리는 이런 원인으로 말미암아 이런 큰 병을 앓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이 큰 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있다면, 그 원리는 어디에 있는가?
(5) 우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이 내용의 다를 여기에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그 가운데에서 가장 알맹이라고 생각되는 부분, 그 머리말과 서문의 내용을 간단히 말해 보려 한다.


4. 변함없는 그의 근본 사상

  동아 일보에 실렸던 그의 이 논문은 그 뒤 한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1930년 1월 10일에 쓴 그 머리말에서 외솔은, 이 글을 신문에 실었던 1926년대나 그때나 바뀌지 않는 그의 ‘근본 사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말과 글을 고쳤음.)
  나의 신념에 따르면, 사회 조직이야 어떠하든, 생기가 왕성한 민족은 일어날 것이요, 생기가 약한 민족은 망할 것이다. 물론 인류 사회는 세월과 함께 자꾸 합리적으로 진화 발달해 가야 한다. 그러나 항상 그 진화 발달하는 사회의 주인공의 영관(榮冠)을 잡을 이는 반드시 그 생기가 넘쳐흐르고, 활동이 강렬한 민족일 것이다. 조선 민족이 다시 살아나고 일어나는 것도 단순한 바깥 세계의 수동적 변화에 기대할 것이 아니요, 차라리 바깥 세계의 변혁에 대한 능동적 분투, 창조적 활동에 말미암을 것이다. 조선 생명의 발동의 크고 바른 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능동적이오 자발적인,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힘(살아 나가려는 창조적 힘)이 강하게 움직이는 겨레는 일어날 것이요, 그렇지 않은 겨레는 망하고 만다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근본 사상이다. ‘능동적, 창조적, 생기’란 말에 그는 힘을 넣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5. ‘도’, ‘이’와 ‘살음’

  외솔은 ‘능동적 창조적 생기’를 ‘살음’이라 하여, 이것을 ‘도’(道)나, ‘이’(理, logos)와 결부하고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우주에 있는 것은 모두 활동과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니, 활동 이외에 물체가 없고 진행 이외에 물체가 없으니, 활동과 진행은 곧 ‘도’, ‘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은 ‘살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의 서언의 첫머리에는 또,
  그 천변만이의 가운데에, 한 가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이 맥맥히 관통하며, 역력히 편재함을 알지니; 지난날의 동양이나 서양의 철학자는 이 일관하고 편재하는 그 무엇을 혹은 ‘도’라 하며, 혹은 ‘이’라 하였더라.
란 말이 있는데, 이 생각은 꼭 주시경의 ‘국어 문전 음학’(1908년)에 있는 다음 생각과 흡사하다.
  넓고 그지없어, 아래 위와 밖이 없는 저 우주에, 하나가 있어 사방에 충만하니, 그것은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처음과 끝이 없다. 그 사이에 무수한 물체가 있으니, 그것들은 다 이것을 좇아 이루어지고, 또 모든 물체가 각각 이를 따라 명한 성이 있다. 이것은 사물의 으뜸이요 모든 사물의 임자이니, 하늘이라든지, 상제라든지, ‘이’라든지 하는 것이 다 이것을 말함이다.

6. 생명의 자유 발전은 인생의 본질적 요구

  우주의 모든 현상은 진행이요 창조적 활동, 곧 ‘살음’인데, 이 살음이 가장 활발한 것은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어떠한가?
  오늘의 조선 민족아, 너에게 과연 생명의 자유 발전이 있으며, 생존의 숭고한 영예가 있느냐? 불행하다! 너에게는 쇠잔과 고통이 있으며, 영락과 비애가 있을 뿐이로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생명의 창조적 자유 발전인데, 우리에게는 ‘쇠잔과 고통’, ‘영락과 비애’가 있을 뿐이니, 이 힘 없는 생명에 자유로운 발전을 꾀하며, 모욕 받은 생존에 영예를 되찾아서, 쇠퇴한 힘을 다시 일으켜, 겨레의 능동적, 창조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민족적 노력의 공동 목표가 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우리의 활동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다 함께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 치의 땅을 개척함에도, 한 권의 책을 읽음에도, 한 자의 글을 배움에도, 한 가지 이치를 연수함에도 우리는 이러한 민족적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의 산하를 사랑하며, 조선의 민족을 사랑하며, 그 산하와 민족 사이에 반만년이나 이어 내려온 조선의 문화를 사랑한다. …우리는 조선을 사랑하는 조선 사람이다.
  그렇다고 외솔은 편협한 국수주의자는 아니다. 우리는 세계의 한 일원임을 잊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는 ‘조선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 발전에 참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외솔은 이 논문에서, 이러한 근본 사상, 이러한 현실 분석, 이러한 철저한 민족주의의 이상을 밑바닥에 깔고, 우리 민족의 창조적 활동 곧 ‘살음’의 힘을 드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이 글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삶의 지혜를 안겨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