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어 의태어의 시적 위상과 기능
1. 시적 언어로서의 성격과 그 위상
국민학교 상급생일 때던 50년대 중반 무렵이던가. 선생님께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때면 으레껏 먼저 의성어와 의태어를 예로 드시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찰랑찰랑, 촐랑촐랑, 출렁출렁, 철렁철렁 ……. 깡총깡총, 껑충껑충, 깡충깡충 ……. 이들 의성어 의태어의 갖가지 어투와 미묘한 어감 차이는 그 무렵의 어린 내 언어 감각에 비추어서도 무척 신기했던 것 같다. 육이오 전쟁의 쓰라린 비극을 탄피 치기나 전쟁놀이로 껴안고 보냈던 소년기의 우리들은, 잠시 한때나마 거친 놀이에 싫증나 갑자기 무료해질 때면 곧잘 이들 의성어 의태어로 말 잇기 놀이를 하며 새로운 재미로 키득거리곤 했다.2. 두 가지 미학적 기능
의성어·의태어가 말로서의 아름다움만큼 시의 아름다움으로서 전면에 도드라질 수 없다는 것, 그것도 감각적 재현의 아름다움이라는 특수한 표현 영역에 제한된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두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들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이들이 수행하는 두 가지 중요한 시적 기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형상적 기능’과 ‘유희적 기능’이 그것이다. 이들은 의성어·의태어가 시에서 수행하는 두 가지 중심되는 미학적 기능으로서, 물론 어느 쪽이나 기본적으로는 위의 두 특성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에 관여하는 정도는 서로 달라서, 형상적 기능이 주로 전자와의 관련 속에서 수행되는 기능이라면 유희적 기능은 주로 후자와의 관련 속에서 수행되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形象的 機能은 모든 시의 언어가 본질적으로 시적 형상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의성어 의태어에만 특별히 한정하여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시의 언어가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형상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의성어·의태어로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도 기본적인 미학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성어·의태어 특유의 감각적 재현에 의한 형상성의 구현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종류의 시적 언어와 구별된다.
冬至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
春風니블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님오신날 밤이여든 구븨구븨 펴리라 |
----黃眞伊 (심재완, ‘역대시조전서’: 894) |
푸른 잎 이들대는 잎이 넓은 떡갈나무, 오월에도 치워 떠는 파들대는 사시나무, 키가 큰 물푸레와, 풍, 솔, 밤나무 옷나무와, 머루, 다래, 어름, 칡, 댕댕이 넝쿨들이, 푸른 산 돌 바위 위로 얼크러져 오르는데, 삐이 호이, 비이 호이, 홀로 우는 새의 소리…… 머언 산에는 뻐꾸욱, 뻐꾸욱, 울며 오는 뻐꾹 소리…… 또, 물소리…… 돌을 씻고 돌틈으로, 돌돌돌 쪼로로록 흘러오는 물의 소리…… |
---박두진, <햇볕살 따실 때에> 셋째 연(‘해’, 1949) |
먹으나 입으나 둥-둥- |
벗으나 굶으나 둥-둥- |
둥그대 당실 둥-둥- |
-제주 지방 전래 동요(박두진 편, ‘한국 전래 동요집’:470) |
우희 웃둑 션 소나무불젹마다 흔들흔들 |
올에 셧 버들 무음일 죠셔 흔들흔들 |
님그려우눈물은 올커니와 닙코어이 무음일 셔 후루룩 빗쥭 니 |
-작자 미상(심재완, ‘역대시조전서’: 2563) |
金鳥玉兎드라 뉘 너를 나관 |
九萬里長天에 허위허위 단이다 |
이후란 十里에 한번식 쉬염쉬염 니거라 |
-작자 미상(심재완, ‘역대 시조 전서’: 383) |
히히 히히 히히 히히 |
이러도 히히히히 저러도 히히히히 |
양에 히히히히 니 일일마다 히히히로다 |
-金得硏, <山中雜曲> 53수 중 제41수 (‘葛峯先生 遺墨’) |
3. 어학적 관심과 시적 관심의 거리
한 사건을 놓고 각자가 놓여 있는 처지나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른 해석이 가능한가를, 우리는 매일의 일상사를 통해 무수히 겪고 보면서 살아간다. 일상사의 일이야 얽힌 이해 관계 때문에 객관적 해석의 시각이 발붙이기 어려워서라고 할 수 있지만,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식의 구조가 복잡해져 학문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정도에 맞추어, 대상에 대한 해석 관심과 시각의 차이도 더욱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사정은 다같이 언어 문제를 중심부에 놓고 다루는 어학과 문학에서 역시 크게 다를 바 없고, 의성어· 의태어를 바라보는 어학적 관심과 문학적 관심에서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이 글 또한 의성어·의태어를 문학적 관심에서 철저히 시의 언어로서 다루어 왔으며, 그런 만큼 시각의 차이 또한 더 깊은 골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틉니다. |
연분홍 송이송이 못내 반가워 |
나비는 너흘너흘 춤을 춤니다. |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
연분홍 살구꽃이 나부낍니다. |
연분홍 송이송이 바람에 지니 |
나비는 울며울며 반겨 듭니다. |
-金億, <연분홍 송이송이> (‘詩歌集’,1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