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의 경과 기략
― 朝鮮語 綴字法 統一案 制定의 經過 記略 ―
우리 조선에서 한글 운동이 일어난 것이 이럭저럭 40여 년을 지내 왔다. 이를 다른 나라에서의 그것에 견주면, 여간 뒤떨어진 일이 아니며, 세력도 더 말 할 수 없이 미미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이에 한 것에서 무슨 신통한 한 가지라도 들추어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수백 년 동안 우리로서 우리글을 무한히 멸시하고 천대하여 전연 돌아보지도 아니하던 것을, 지금 와서는 이와 아주 딴판으로 서적에나, 신문에나, 잡지에나, 기타 일용 행문에까지 모두 한글을 쓰게 되며, 전 민중이 새삼스럽게 이것을 무쌍의 보물로 알고 더욱더욱 이것의 애용(愛用)을 주장하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한글 운동의 한 보람이라고 할는지?
우리글이란 훈민정음(訓民正音) 이후 그릇된 그대로 정리 못된 그대로 버려두어 오늘날까지 내려왔으매, 지금은 각 사람 각자가 제멋대로 쓰는 것이 각기 법에 되어 종작을 잡을 수 없으며, 오늘날 이렇게 불규칙 무통일한 글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뜻 있는 이로서 누가 통탄하지 아니할 이가 있으랴. 그 사이 관변으로서는 교과서에 쓸 맞춤법(綴字法)을 개정함이 이미 3, 4차에 이르렀고, 민간으로서는 표음식(表音式) 혹 문법식(文法式)의 맞춤법을 쓰기 시험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글이 전보다 더욱 혼란하기 우심하여, 한 통일한 새 방법의 글이 하루바삐 이 세상에 나오기를 일반 사회에서 기대함이 더욱 깊었다.
이렇듯 세상 사람의 요구가 절박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더 1929년 한글날로써 각계 인사의 발기로 조선어 사전 편찬회(朝鮮語 辭典 編纂會)가 성립되고, 이를 이어 맞춤법, 말본[文法], 가로쓰기[橫書綴], 한문 글씨 줄임&[漢字 制限], 외국 말소리 적기[外國 語音 表記] 등 여러 가지를 제정하자는 것이 조선어 학회의 새 계획으로 작정되었다. 이 중에 사전 편찬에 직접 관련되는 맞춤법이 무엇보다도 더 긴급함을 알았다. 그리하여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 학회 총회에서 맞춤법 통일안 위원을 내어, 이로부터 맞춤법 제정을 착수하게 되었다. 그 경과 사항은 대개 아래와 같다.
이와 같이 전후 3개년 동안에 모인 횟수가 125회, 허비한 시간 수가 433시간, 실로 적지 않은 노력으로써 이 통일안이 나게 된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세종 대왕의 창의적(創意的) 정신과 한힌샘(周時經) 스승의 희생적 노력을 체득(體得)하여, 가장 신중히 고려하며 가장 엄밀히 처리한 것이 이 통일안의 정신이요, 결토 어느 일개인의 독단적 의사를 맹종(盲從)하였거나 몇 개인이 우물우물하여 만든 것과는 달라서, 학리적(學理的) 기초 위에서 다수인의 의견을 종합하여 이룬 것이다. 즉 위원 18인 중에도 그 연구의 태도와 문법적 견해가 각기 다른 것만큼, 의견의 불일치한 때가 많아서, 토의 중에는 심지어 피차에 정의를 손상할 정도까지의 격론도 없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것을 모두 조화하고 절충하여 가장 합리적(合理的)으로 성안한 것이니, 이것은 전체를 통하여 어느 한 편에만 치우친 일이 절대로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안이란 이름이 더욱 적당하다 한다.
우리가 영구히 기념할, 세종 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민간에 발표하시던 제487회의 한글날, 이러한 명절로써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우리 일반 사회에 발표하게 됨을 더욱 기뻐하는 바이다. 이것으로써 우리의 사업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만리장정에 겨우 일보를 내어 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생각한다. 우리는 더욱 앞으로 꾸준히 힘써서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