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글은 조선적으로
근래에 듣기 어려운 우리 정음 기념의 소리가 '신민'지의 첫돌로서 일어남에 대하여 우리는 이를 더욱 의미 깊은 기념임을 안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말이 있건만 이를 아름다움으로 알지 아니하며 훌륭한 글씨가 있건만 이를 훌륭하다 치지 아니한다. 남들은 제 것 아닌 것으로 가지고도 제 것처럼 남의 것에서 반쪽씩이나 떼어 가지고도 오히려 세계에 첫째임을 자랑하여 한껏 사랑하지 아니하는가. 우리는 그러하긴커녕 도리어 그에 대하여 박대하기를 어느 외국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심히 하는 적도 없지 아니하다. 보통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도 '가갸거겨'보다 'アイウエオ'를 더욱 많이 읽게 되며 중등학교 학생들도 우리말 배우기보다 영어 같은 것 배우기에 더욱 재미 붙이는 것이 오늘날 우리 조선 학생의 경향이다. 그뿐 아니라 중학교나 대학교를 마친 자라도 우리말로써 쉬운 편지 한 장이라도 문체에 틀림없이 쓰는 자가 드물 것이다. 여간 국문으로 말 만들어 쓰는 이라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각기 제멋대로 이렇게 저렇게 쓰는 일도 있다. 적이 학식이 있다는 자라도 신문지 사회면을 볼 때에 맨 국문으로 쓴 기사에 이르러는 누구나 다 진저리를 낸다. 이러한 모든 원인은 우리나라 사람이 이미 몇 천 몇 백 년으로 남의 글인 한문 글씨를 퍽 애중히 여기어 왔고 우리글인 정음 글씨라면 여지없이 하대하여 온 악한 버릇이 아직도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음의 글씨됨이 소리가 갖추고 모양이 고르고 쓰기에 편리하고 보기에 예뻐서 문자로의 완전한 자격이 있고 귀중한 가치가 있어 세계 어느 나라 문자하고도 서로 견주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한 문자임은 내외국 사람을 물론하고 칭도하지 아니하는 자 없다. 우리가 이를 잘 만들어 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어늘 우리가 근본 맘이 나약하고 뜻이 든든하지 못한 탓으로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를 버릴 용기가 없고 옳은 줄 알면서도 그대로 행하여 쓸 성의가 없다. 먼저 사람의 그릇을 지금 사람이 따르며 지금 사람의 그릇을 또 뒷사람이 본받아서 그 불규칙한 서법과 불통일한 문체가 갈수록 더욱 혼돈 잡답하여 필경 정리될 날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적이 이에 뜻이 있는 사람이면 우리글을 바른 본으로 잡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고 이제 우리글을 씀에 관하여 몇 가지 생각한 바를 들어 간단히 말하려 한다.
첫째, 표준 글을 쓸 것. 현금에 우리 조선 사람의 행용하는 글은 여러 가지 법이 있다. (가) 맨 한문으로 쓰는 순 한문법, (나) 구결(口訣)이나 국문으로 써 한문 아래에 토를 달아 쓰는 현토법, (다) 한문과 국문을 섞어 쓰는 국한문 혼용법, (라) 조선말로 쓰면서도 한문으로 된 말에만 한자로 쓰는 소위 언문일치법, (마) 순전히 조선말로만 쓰는 순 국문법들이다. 순 한문법과 현토법은 예전 한문만 쓰던 시대의 글로 지금은 자연 쓰지 않게 될 것이니 이에 대하여는 말할 것 없겠고 국한문 혼용법은 지금도 어떠한 데든지 많이들 쓰나 가장 우습게 된 문체다. 가령 "봄에 꽃이 열다."라는 말을 한문 음에 좇아서 "춘에 화가 개한다."라 읽으면 이는 조선말도 아니요 중국말도 아니니 이러한 문체를 우리가 늘 쓰게 되면 장래에는 우리의 말까지도 온통 그리 되고 말 것이니 이러한 것이 국어 발전상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될 것이다. 언문일치법이란 것은 근래에 꽤 많이 써 오는 것으로 국한문 혼용법에 비하면 훨씬 진보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를 쓰는 데 다소 모순되는 점이 없지 아니하다. 우리말에 한문 음으로 된 말을 한자로 쓴다면 일어로 된 것은 일문으로, 영어로 된 것은 영자로 써야 할 것이 아닌가. 가령 "나는 점심밥과 우유와 차를 먹었다."라는 말을 쓸 때에 "나는 べントワ와 Milk와 茶를 먹었다."라 써야 할지니 이 무슨 기괴한 글일까. 조선말에 한문만을 넣는 것이나 일문, 영문까지 아울러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리니 한문만 넣는 것을 무관하다 하는 것이 마치 오십 보로 백 보를 웃는 셈이다. 순 국문법이란 것은 여태까지 하류 사회에서만 쓰는 일종 하등 문체로 알아 오는 것이나, 이것이 과연 조선말을 본위로 삼은 순전한 조선 글이다. 우리가 표준 글을 정하려고 할진대 반드시 이 순 국문법을 쓸 것이다.
둘째, 말소리 되는 대로 글을 쓸 것. 말을 쓰는 데는 말의 소리에 맞게 쓰는 것이 원칙이다. 예전 소리를 쓰는 것이라든지, 한문 말을 많이 쓰는 것이라든지, 외국 말을 남용하는 것이라든지 이러한 것은 절대로 옳지 못한 일이다. '소래'를 '소리'로, '일흠'을 '이름'으로, '아해'를 '아이'로 고쳐 써야 할 것이며 비록 한문으로 된 말이라도 이미 우리말로 된 것은 또한 우리 말소리에 맞게 쓸 것이니 곧 '텬디'를 '천지'로 '됴선'을 '조선'으로, '뎐챠'를 '전차'로 고쳐 쓰는 것이 좋은 줄 안다.
셋째, 어근(語根)에 맞게 글을 쓸 것. 말을 어근에 맞게 쓰는 것은 문법을 정리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일뿐더러 기음문(記音文)을 쓰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 한다. 가령 "사람이 집에서 일을 하오."라는 말을 "사라미 지베서 이를 하오."라 써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요, 둘 다 말소리에도 틀림이 없이 꼭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뒤에 것과 같이 쓴다면 그 말의 사(詞)를 문법적으로 도저히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또 이를 읽기에도 얼마나 거북할 것인가. 그러나 누구나 다 먼저 것같이 쓰는 것이 옳은 줄 안다. 그러면서도 얼마는 어근에 맞게 쓰고, 얼마는 어근에 맞지 않게 쓰는 모순도 있다. 가령 '달이 밝아서'란 말에 '밝'이란 데 일부러 받침 둘씩까지 하여 어근되는 것을 똑똑히 표하면서 만일 '산이 놉하서'란 말에는 '놉' 아래에 있는 토 '아서'가 '하서'로 변하니 차라리 이럴진댄 '밝아서'도 '발가서'라 쓰는 것이 무방하지 아니한가. 다같이 어근에 맞게 쓰려면 '밝아서', '높아서'라 쓰는 것이 옳은 줄 안다. 우리가 정음 글씨의 받침이라는 것을 다만 ㄱㄴㄹㅁㅂㅅㅇ에만 한하고 그 밖에 ㄷㅈㅊㅋㅌㅍㅎ 들은 다 받침으로 쓰지 아니하나 어근에 맞게 글을 쓰려고 하면 그것도 다 받침으로 써야 될 것이다.